[태그] 사과·유감 표명

  • 왜 불완전한 사과도 효과가 있을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더피알=정용민|최근 기업 위기 현장에서 묘한 장면이 반복된다. 한참 늦었고, 표현도 군데군데 부적절하고, 책임 인정과 재발 방지 약속마저 어딘가 허전한 사과가, 그럼에도 논란을 비교적 빠르게 가라앉히는 장면이다. 원칙대로라면 불완전한 사과는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없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자꾸 어긋난다. 이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한 실무자들은 이내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런 의문은 최근 상황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위험하다. 한 발만 더 나가면 “어차피 운과 분위기가 좌우한다면 사과는 적당히 형식만 갖춘 통과의례 아닌가”라는 냉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적지 않은 실무자가 이미 사과를 그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냉소는 한 가지 결정적인 구분을 놓친 데서 비롯된다. 바로 ‘불완전한 사과’에도 전혀 다른 두 종류가 있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사과는 겉으로는 다 비슷해 보이지만, 열어 보면 두 종류로 갈린다. 하나는 ‘구겨진 상자’다. 겉면이 찌그러지고 모양이 빠졌을 뿐, 그 안에는 책임 인정과 진심, 구체적인 시정이라는 알맹이가 멀쩡하게 들어 있는 사과다. 말이 좀 거칠었고, 타이밍이 늦었고, 전달이 어설펐던 정도다. 사람들은 구겨진 겉상자는 너그럽게 용서한다. 상자의 값어치는 겉모양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물에서 나온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사과가 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제 몫은 하는, 이른바 ‘그럭저럭 괜찮은(good-enough) 사과’다. 우리가 ‘불완전한데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례의 상당수가, 실은 겉만 구겨졌을 뿐 알맹이는 온전했던 이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빈 상자’다. 겉포장은 번드르르하고 리본까지 묶였는데, 막상 열어 보면 비어 있다. 책임은 슬그머니 회피하고, 가해자의 해명과 자존심이 사과보다 앞서며, 시정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려진다. 알맹이가 없는 사과다. 원칙대로라면 이런 사과는 절대 통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가끔 논란이 가라앉는다. 바로 여기서 실무자의 착시가 시작된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 상대가 화를 풀었으니, ‘빈 상자도 괜찮구나’라고 잘못 배우는 것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모든 오해의 뿌리다. 그래서 현장 실무자들이 사과에 대해 흔히 품는 일곱 가지 오해를, 이 구분을 기준으로 하나씩 짚어 보고자 한다.

    “사과문 한 장 잘 내면 기사도 줄고 댓글도 식는다. 결국 사과란 이 소란을 멈추는 일 아닌가?”

    사과를 불 끄는 소화기로만 본다. 그러나 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활활 타오르는 겉불과, 그 아래 숯처럼 남아 오래 가는 속불이다. 어설픈 사과로도 겉불, 즉 기사와 댓글의 불길은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속불이다. 훼손된 신뢰라는 속불은 겉이 잠잠해진 뒤에도 재 속에서 빨갛게 살아 있다. 소화기로 겉불만 끄고 ‘불 껐다’며 돌아서는 기업은, 며칠 뒤 같은 자리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사과의 진짜 임무는 겉불 진화가 아니라 속불 진화다.

    “지난번 그 회사도 사과는 엉망이었는데 결국 잠잠해졌잖아. 사과의 완성도가 그렇게 중요한가?”

    가장 위험한 오해다. 빈 상자를 건넸는데도 상황이 잠잠해졌다면, 그것은 사과가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운’이 대신 해 준 것이다. 시간이 흘렀거나, 더 큰 뉴스가 터졌거나, 충성 고객이 많았거나, 회사가 워낙 커서 버틸 체력이 있었을 뿐이다. 이는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갔는데 마침 처마 밑으로만 걸어 비를 피했다고 해서, ‘우산은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리는 격이다.

    게다가 사과는 운 옆에 가만히 앉은 들러리가 아니다. 제대로 된 사과는 그 운을 직접 만들어낸다. 좋은 사과는 언론이 기사를 거두게 하고, 충성 고객을 붙들며, 비판자에게 빌미를 주지 않는다. 반대로 빈 상자 사과는 스스로 악운을 부른다. 사과 자체가 또 다른 기삿거리가 되고, 조롱의 소재가 되며, 비판자에게 새 탄약을 쥐여 준다. 빈 상자가 통했다면 운이 좋았던 것이고, 구겨진 상자가 통했다면 그 안의 알맹이가 운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타이밍을 잘 잡아 그럴듯하게 연출해서 한 방에 터뜨리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

    빈 상자를 화려한 포장으로 덮으려는 발상이다. 그러나 연출된 사과는 잠깐의 침묵은 살 수 있어도 신뢰는 사지 못한다. 요즘 대중은 사과의 무대 조명을 보면서 그 뒤의 계산까지 함께 읽는다. 공들인 연출일수록, 그 속내가 들통나는 순간의 역풍은 더 사납다. 사과는 남을 향해 쏘아 올리는 한 발의 폭죽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회사인가’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선언문이다. 폭죽은 터지는 순간 가장 화려하고, 곧바로 차갑게 식는다.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눈물 한 방울 쏙 빠지게 다듬자.”

    진정성은 문장을 다듬어 짜낸다고 생기지 않는다.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그 말 앞에 놓인 행동에서 새어 나온다. 피해를 실제로 복구했는지, 보상이 구체적인지, 재발을 막을 조치가 손에 잡히는지가 먼저다. 옳은 행동이 9할이고 그에 대한 말은 1할이다. 행동이라는 9할을 비운 채 말이라는 1할만 화려하게 꾸미는 사과는, 알맹이 없이 리본만 예쁜 빈 상자일 뿐이다. 사과문의 미사여구를 손보기 전에, 보상안의 빈칸부터 채워야 한다.

    “급할 것 없다. 충분히 검토하고 완벽하게 다듬어서 내보내자.”

    지연된 사과가 그럭저럭 넘어간 사례를 보고 타이밍을 사소하게 여긴다. 그러나 사과에서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렷한 메시지다. 사과가 늦어진 만큼 사람들은 ‘버티다가 떠밀렸구나’, ‘계산하느라 늦었구나’라고 읽는다. 식어 버린 음식은 원래 맛과 다르다. 늦었는데도 통한 듯 보였다면, 그건 식은 음식을 손님이 배가 고파 그냥 먹어 준 것일 뿐이다. 적시성은 사과의 곁가지가 아니라 재료의 일부다.

    “우리가 이만큼 고개를 숙였으면 됐지, 뭘 더 바라나?”

    완전한 사과와 빈 상자를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누구를 바라보는가’이다. 제대로 된 사과는 상처받은 상대를 바라본다. 그가 무엇에 아팠고 무엇을 듣고 싶은지에서 출발한다. 빈 상자 사과는 거울을 바라본다. ‘사과하는 나’의 입장, 억울함, 체면이 한가운데 놓인다. 최고의사결정자의 개인적 속내나 서운함이 사과문에 끼어드는 순간, 그것은 위로가 아니라 두 번째 상처가 된다. 사과라는 선물의 주인은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이다.

    “책임을 인정하면 소송에서 불리하다. 표현은 최대한 두루뭉술하게 가자.”

    빈 상자가 만들어지는 가장 흔한 통로가 바로 이 법적 방어 논리다. 법적 위험을 챙기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책임을 요리조리 피한 모호한 사과는 받는 사람에게 ‘사과가 아니라 변명’으로 읽히고, 줄이려던 여론의 불길을 오히려 키운다. 법정에서 한방으로 이기려다 광장에서 열방을 먼저 얻어 맞는 셈이다. 법무의 방패와 평판의 회복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손에 함께 쥐고 균형을 잡아야 할 두 개의 공이다.

    결국 사과의 값어치는 날씨에 비유하면 분명해진다. 날씨는 못 바꿔도 외투는 챙길 수 있다. 햇볕이 좋았다고, 폭풍이 너무 거셌다고 외투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똑같은 날씨라면 외투를 챙긴 쪽이 늘 덜 고생한다. 사과는 위기라는 궂은 날씨 속에서 기업이 챙길 수 있는 유일한 외투다.

    그래서 사과는 보험을 닮았다. 우리는 보험의 가치를 ‘어차피 올해 집에 불 안 났잖아’로 따지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빈 상자로도 한 번은 넘어간다. 그러나 운이 나쁜 날을 대비하는 것, 그것이 사과가 존재하는 이유다.

    불완전한 사과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실패’가 아니다. 빈 상자가 운 좋게 통해 버리는 ‘성공’이다. 그 한 번의 요행이 조직에 가장 나쁜 교훈을 새기기 때문이다. “사과는 알맹이 없이 겉만 그럴듯하면 된다, 나머지는 분위기가 해결해 준다.” 이 학습이 쌓이면, 기업은 위기에서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능력, 곧 ‘제대로 사과하는 힘’을 스스로 녹슬게 만든다. 그렇게 능력이 텅 빈 자리에 정작 운 나쁜 위기가 찾아오는 날, 기업의 손에는 운도 사과도 없이 빈 상자 하나만 남는다.

    게다가 빈 상자 사과가 남긴 신뢰의 빈자리는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외상값처럼 장부에 차곡차곡 적힌다. 그리고 다음 위기 때 ‘그때도 그러더니’라는 이자까지 얹어 한꺼번에 청구된다. 빈 상자로 불을 껐다고 믿는 기업은, 실은 불을 끈 것이 아니라 다음 화재의 불씨를 곳간에 쌓아 둔 것이다. 불완전한 사과가 통한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이, 기업이 가장 비싼 청구서에 외상으로 서명하는 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위기인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건 엄연히 저희 직원이 직무상 실수를 해서 발생된 사건입니다. 그에 대해서 회사가 해당 직원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 내부적으로 조치를 했고, 대표께서도 도의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계속 회사를 비판하는데요.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먼저 조금 냉정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수한 직원에게 책임을 물었고, 대표께서 도의적 사과까지 하셨는데도 비판이 이어지니 심하다 느끼실 만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위기의 책임은 실수한 그 직원 개인보다 오히려 회사 쪽이 더 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회사가 놓치고 있기에 비판이 잦아들지 않는 것이지요.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제시한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라는 유명한 사고 이론이 있습니다. 큰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대개 실수한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형 사고는 결코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직에는 여러 겹의 방어선이 있습니다. 설계, 검수, 결재, 교육, 감독,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를 여러 장 겹쳐 놓은 것과 같지요. 평소에는 한 겹이 뚫려도 다음 겹이 막아 줍니다. 그런데 이 구멍들이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 위험은 그대로 관통해 사고로 터지고 맙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고가 최일선 담당자의 손에서 터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검수와 결재, 교육과 문화라는 방어선을 ‘모두 통과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순간적 실수 뒤에는, 그 실수를 걸러내지 못한 여러 겹의 구멍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구멍들은 대개 경영진의 판단과 조직문화 속에 오래 잠복해 있던 ‘구조적 결함’입니다. 다시 말해 직원은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그 총에 실탄을 채우고 안전장치를 풀어 둔 것은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위기관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누가 실수했는가’를 찾는 데서가 아니라, ‘왜 우리의 방어선들이 한꺼번에 뚫렸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자는 실수한 직원 한 사람을 징계하고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회사의 시스템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지금 공중이 비판을 거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번 사건이 ‘어쩌다 한 직원이 저지른 일탈’로 정리되는 순간, 똑같은 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이번 위기를 우연이나 개인의 일탈로 정의해 버리면, 문제의 핵심인 내부 체계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습니다. 구멍 뚫린 치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다음 사고는 예정된 수순이 되지요. 반대로 회사가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직시하고 그 방어선을 하나하나 손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비판은 잦아들고 신뢰는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직원의 실수를 감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일선의 실수를 걸러내는 것이 바로 회사의 체계이고, 그 체계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경영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회사가 스스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때, 그 위기는 비로소 반복의 고리를 끊고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 경쟁사의 위기관리에서 배우라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얼마전 경쟁사 공장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해서 위기관리를 하는 것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분석으로는 그 회사 최초 사과문도 그렇고, 사고현장에서의 기자회견 메시지도 그렇고 별로 벤치마킹할 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사의 위기관리에서 대체 뭘 배워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좋은 모니터링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질문 속에 이미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배움이란 ‘잘한 것’에서 얻는 것이라는 전제이지요. 경쟁사가 잘한 것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지극히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접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편이 더 중요합니다. 경쟁사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서 배우는 일이 그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잘한 것은 사실 금방 따라 할 수 있고, 따라 하기도 쉽습니다. 좋은 사과문 한 장, 잘 정리된 메시지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기에 모방의 출발점이 분명합니다. 반면 경쟁사가 잘하지 못한 부분은 다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조건이 분명히 있었다는 뜻이고, 그 사정과 조건은 우리 회사에도 그대로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경쟁사의 실패는 곧 우리도 똑같이 실패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보여 주는 거울인 셈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 못한 이유를 우리 안에서도 찾아내 고치고, 미리 개선해 두어야 합니다. 잘한 것을 따라 하기보다 이쪽이 훨씬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사과문과 사고 현장 메시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그들보다 더 나은 사과문을 쓰려면, 그 품질과 전략을 끌어올리려면, 결코 짧지 않은 사과문 개발 연습과 반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곧 오랜 시간의 투자와 전담 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고 현장에서의 기자회견과 질의응답을 전략적으로 해내는 일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준비와 훈련을 요구합니다. 특히 대변인 역할을 맡아야 하는 대표, 공장장, 안전·환경 임원에 대한 대언론 커뮤니케이션 훈련은 생각보다 훨씬 많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누구도 하루아침에 숙련된 대변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것은,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경쟁사와 다른 기업의 위기관리를 보며 ‘샘’을 내는 습관입니다. 저들이 잘했다면 어떻게, 왜 잘했는지를 파고들면서 ‘우리도 저만큼은 해야겠다’는 건강한 경쟁심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들이 못했다면, ‘우리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또 다른 의미의 샘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은 경쟁사의 위기관리로부터 별반 배우려는 관심이나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뒷담화나 비하인드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해당 케이스를 허비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경쟁사에게 그런 위기가 발생했는지조차 관심 없는 경우도 실제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태도가 더 큰 문제겠지요.

    경쟁사의 위기관리는 잘하든 못하든 모두 우리의 교본입니다. 잘한 것에서는 따라잡을 목표를, 못한 것에서는 피해야 할 함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진짜 벤치마킹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소통은 평시에?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문제가 발생해 요 며칠간 엄청나게 바쁩니다. 계속 해명문을 내고, 각종 자료를 뿌리고, 이해관계자들과도 다각도로 소통하고 있는데요. 제대로 소통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부 부서에서는 소통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네요.”

    컨설턴트의 답변

    아주 중요한 주제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은 이슈나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소통이 문제의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고 해결로 이끄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점입니다. 소통이 문제 해결에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은, 그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입니다. 적절한 사전 소통은 문제가 문제로 불거지기 전에 이를 미리 해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평소에 충분한 소통 없이 문제가 터진 뒤에 이루어지는 사후 소통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야기 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때늦은 소통은 이미 발생한 문제를 그 이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없애는 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소통은 문제 발생 이전까지의 예방적 효과를 지닙니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소통은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데미지 컨트롤’의 수단으로만 유효합니다.

    해명, 사과, 개선책, 재발방지대책, 보상에 관한 소통들은 모두 그 목적이 데미지 컨트롤에 있습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이라기 보다는 문제가 재앙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소통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혼동을 겪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소통하고 있는데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마치 엄청난 물을 퍼붓고 있는데도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하고 이상한 느낌이지요.

    하지만 사후 소통의 역할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이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있습니다. 주변을 충분히 적셔 놓으면 불길이 옮겨붙거나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비유를 문제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시점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불씨가 생기기 전에 집 안팎을 충분히 적셔 놓는다면 어떨까요? 설령 불씨가 생기더라도 폭발적으로 번지거나 커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전 소통의 효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 문제 발생 후 소통을 지속하고 계신 것 자체는 좋습니다. 다만 그 소통의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전 소통과 사후 소통은 그 성격과 목적이 다릅니다. 빨리 이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시고, 현재 상황의 목적에 맞게 소통을 잘 관리해 나가시길 권해 드립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관리에도 크리에이티브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는 크리에이티브 사업을 하고 있으며, 평시에도 기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저희가 볼 때 기존 기업들의 이슈나 위기관리 방식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좀 더 크리에이티브 한 전략에 기반한 대응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단 말씀하시는 크리에이티브(창조적 대응)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어떤 방식까지 고민 중이신지 확인하기 어려워 정확한 조언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단, 제 생각에 이런 고민은 어느 한쪽이 옳다 혹은 그르다의 이분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성격이라고 봅니다. 또한 기존 기업들의 위기관리 방식이 효과가 없다고 볼 수도 없으며, 반대로 귀사의 방식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아직은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발생한 이슈나 위기의 성격일 것입니다.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떤 원인과 형태로 발생해 확산되었는지를 잘 판단해야 대응 기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반 맥락에 따라 전략이 세워지는 것이지, 무조건 크리에이티브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전제를 두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이슈나 위기 자체가 기본적으로 상당한 부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수적인 대응과 창조적인 대응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최고의사결정자의 권한입니다. 관리 활동 전반에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가 판단한 상황에 기반해 대응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적으로 어떤 방향이 맞고 틀린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임상적으로 확실한 점은 기존 기업들의 크리에이티브 한 대응 방식이 현장에서 과연 효과적이었는가 하는 평가입니다. 생각보다 그런 방식은 오히려 부정적인 주목만 증폭시키거나, 운이 좋은 경우라도 불필요한 화제만 낳았을 뿐 관리 효과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 케이스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대개 보수적인 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과 신생 기업에서 젊은 경영자 개인의 판단에 의해 실행되곤 했습니다.

    기업의 연력과 규모, 의사결정 구조와 리더의 성향이 주요 변수였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젊은 경영자의 시각에서는 기존 기업들이 매번 고개 숙여 사과하고, 저자세로 일관하며, 합리적 수준을 넘어서는 보상을 하는 모습이 고리타분하고 답답해 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에 대한 대안이 곧 크리에이티브라고 쉽게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자사에서 발생 가능한 위기의 성격과 형태에 대해 보다 깊고 넓게 분석해 보시기 바랍니다. 위기 발생 시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끼게 될지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대응 방식에 대한 판단은 그 이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심지어 광고대행사 대표님들께도 위기 때는 크리에이티브를 잠시 내려놓으시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이는 크리에이티브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슈와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사과문을 꽤 잘 썼네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사회적 관심의 중심에 있는 한 기업 대표가 발표한 사과문을 보았습니다. 사과의 이유, 공감, 해법, 개선책 등 사과문의 정석을 보는 듯했습니다. 사과문이 이렇게 제대로 만들어져 발표되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위기관리가 마무리 수준에 들었다고 보아도 되겠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 위기관리에서 가장 흔히 오해되는 주제가, ‘사과가 곧 위기관리’라는 개념입니다. 이런 단순 개념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추측하는 것은 이전 여러 기업이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려 하고, 사과문을 발표해도 그 품질이나 구성이 확연하게 떨어졌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 이유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기업을 목격해 오다가, 어느새 부터 신속하게 먼저 사과하고, 멋지게 사과문을 만들어 발표하는 곳들이 나타나자 ‘사과’가 곧 위기관리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사과 커뮤니케이션을 인간 개인의 사과 커뮤니케이션과 동질의 것으로 보면서, 인간적 사과를 기업의 사과 형식에 그대로 대입하려 해서 그런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주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인간 개인의 사과와 기업의 사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주제입니다.

    인간 개인이 하는 사과와 기업이 ‘해야만’ 하는 사과는 고민의 차원이 다릅니다. 앞의 것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당위나 윤리에 기반한다면, 뒤의 것은 실익과 전략에 상당부분 기반합니다. 기업의 위기관리가 전략적이며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가 그 기반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인간적 사과와 기업의 사과를 혼동하면 여러 추가적 문제가 생길 뿐입니다.

    다시 질문에서 언급된 잘 쓰여진 사과문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대로 된 사과문은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업에게는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기업이 사과문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이지요. 핵심은 제대로 된 사과문이 당면해 있는 위기상황을 사과자의 의도대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과라는 커뮤니케이션만으로 해결될 상황인 것이냐는 확인도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위기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행동(상황관리)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여러 행동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 사과문 같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따르는 것이죠. 제대로 된 행동, 대응, 상황관리를 계란의 노른자로 비유한다면, 그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관리는 계란의 흰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른자 없이 흰자만 있는 계란? 반대로 노른자만 있고 흰자가 없는 계란? 이 둘 중 어느 것이 좋은 계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제대로 된 사과문은 제대로 된 초기 행동을 통한 상황관리와 ‘함께’ 할 때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과문이 곧 위기관리라는 생각은 그래서 잘 못이라는 것이죠.

    기업이 사과문을 잘 써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나 AI가 발달하면서 “세상에는 멍청함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과문 같이 당연함과 일반성이 곧 우수성으로 보이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사과문이 제대로 된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이후 상황이 어떻게 관리되어 가는가에 따라 평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창하게 흰자만 꽉 차 있는 계란인지, 노른자와 흰자가 함께 들어 있는 계란인지를 확인해 보아야 확실히 알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관련 개념 · 위기 시 사과문은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말 줄이고 일을 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위기가 발생되면 언론과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측에 빨리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주문도 일반적이 되었고요. 그런데, 위기가 발생했을 때 ‘말을 줄이고 일을 하라’는 조언도 있더군요.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 전반에 대한 개념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위기관리를 자전거로 비유해 보죠. 자전거는 앞바퀴와 뒷바퀴가 있어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만약 앞바퀴나 뒷바퀴가 없다면, 그 자전거는 정해진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자전거는 위기관리, 앞바퀴는 상황관리(행동에 기반한 대응) 그리고 뒷바퀴를 커뮤니케이션 관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상황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서로 균형을 맞추어 역할해야 자전거(위기관리)가 제대로 달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좋은 위기관리는 또 계란으로도 비유됩니다. 계란을 위기관리라 할 때, 노른자는 상황관리, 흰자는 커뮤니케이션 관리가 된다는 것이죠. 노른자가 없는 계란? 흰자가 없는 계란? 둘 중 어떤 것이 더 나은 계란인가? 왜 그 둘은 꼭 같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이 계란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물론 위기관리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문제는 위기관리에 있어 실제 기업들이 너무 커뮤니케이션에만 집중하는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말만 하거나”, “말만 앞서거나”, “말만으로 천냥 빚을 갚으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경우이죠.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위기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회사측의 ‘행동(일)’입니다. 실행 그 자체입니다. 단호하고 과감하게 문제를 해결해 버리는 행동, 즉 적절한 상황관리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뒤를 따르는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관리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기업에서는 왜 상황관리 같은 행동보다,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둘 까요? 노른자는 메추리알 크기로 놓아두고, 흰자는 타조알 크기만큼 부풀리려 하는 걸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실행보다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커뮤니케이션은 간단합니다.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황을 일단 모면하거나,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둔 케이스들도 꽤 되기 때문이지요.

    언론과 여러 이해관계자들은 위기상황 이후 기업이 약속한 개선이나 재발방지 대책 등에 중장기적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다른 새로운 위기가 연이어 발생되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전술적으로 상황을 보며 대응하려 합니다. 이 전술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저 여론의 특성을 기업에서 영리하게 활용하는 것이죠.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에게 위기관리의 아주 유용한 툴이 되고 있습니다. 예산과 노력이 많이 드는 진짜 행동보다 훨씬 가성비 있고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의 비유처럼, 앞바퀴가 사라진 자전거 모양의 위기관리, 노른자 없이 덩그러니 흰자만 담긴 계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단거리 운행을 하거나, 일단 삶아 먹는 데 큰 문제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전거로 천리길을 가고, 그런 계란을 매일 아침 먹게 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누구나 무엇이 진짜이고 어떻게 해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건전한 상식에 기반한 위기관리가 진짜 아닌가 합니다. 말을 줄이고 일을 더 하라는 주문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왜 조용히 넘어가려 할까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나 이슈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강조되는 것이 상황이 발생되면 신속하게 회사 입장을 밝히고, 여러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지속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 보는데요. 심지어 오버 커뮤니케이션도 훌륭한 전략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네 왜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이 궁금해하는 주제입니다. 학계나 언론에서는 위기관리의 모범 사례로 1980년대 초 미국 ‘존슨앤드존슨 타이레놀 독극물 사건’을 단골 소재로 꼽습니다. 이 사례는 너무나 자주 인용되어, 이제는 위기관리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대중조차 내용을 알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케이스에서 늘 강조되는 성공 요인은 ‘신속함’,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원칙 준수’, ‘고객 중심 사고’, 그리고 ‘과감한 리콜’ 등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대목에서만 인사이트를 얻으려 합니다. 그리고 우리 기업들에게 “미국의 그 기업을 본받으라”고 주문하며, 똑같이 대응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훈수를 둡니다. 하지만 그러한 처방은 현실적이지 않고 유효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위기의 ‘본질’에 있습니다. 당시 타이레놀 사건은 회사의 제조 과실이 아니라, 신원 미상의 범인이 저지른 테러였습니다. 즉,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에게 귀책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진정으로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Even though)’의 정신입니다. 자사 책임이나 잘못이 없었음에도, 환자와 고객의 안전을 위해 막대한 매출 손실을 감수하며 과감한 전국적 리콜을 단행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반면 우리 현실은 어떤 가요? 우리 기업이 직면하는 위기나 이슈 중에는 자사의 책임이나 과실이 명백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기업에게 귀책사유가 전혀 없는, 억울한 위기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드문 케이스는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도 못하며, 일부 언론이나 온라인에서 잠시 노이즈를 일으키다 소멸합니다. 반면, 대중의 이목을 끄는 대형 위기는 대부분 기업에게 태생적으로 불리한, 부정적인 기반 위에서 발생합니다.

    이처럼 기업의 책임이 막중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려면 어떻게 될까요?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기업은 발생한 상황에 대해 모든 책임과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과감한 약속과 실천을 즉각적으로 제시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가장 이상적이고 훌륭한 대응이지요.

    그러나 현실의 많은 기업은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극도로 부담스러워 합니다. 법적,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고, 무엇보다 향후 완벽한 재발 방지나 개선을 약속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어려워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다수 기업이 위기 발생 시 전략적으로 ‘로우 프로파일’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당장은 비판 받더라도 일단 조용히 상황을 넘기면, 훗날 회복할 기회가 다시 올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업의 침묵과 소극적 대응에 익숙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냉혹한 현실적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단어와 표현을 전략적으로?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홍보임원인 저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메시지에 어떤 전략적 단어와 표현 그리고 맥락을 담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사과나 해명문에서도 회사가 어떤 단어와 표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전략적 단어와 표현의 활용 어떻게 보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전략적 단어와 표현 그리고 맥락의 활용이 커뮤니케이션의 주축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 가치가 빛을 발합니다. 우리는 “‘아’다르고 ‘어’다르다” 이야기합니다. 위기 시 기업의 공식 메시지에 적확한 단어와 표현이 담기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볼 주제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맥락과 그 수용자 반응에 대한 것입니다. 학계에서는 화자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면, 그것이 수용자에게 정해진 반응을 만들어 낸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총알 이론’입니다. 이제는 그런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기업이 특정 위기를 맞아 자사 입장과 생각 그리고 대책을 여러 수용자에게 이야기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시죠. 해당 상황에 대해서는 수용자가 1차적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개인별로 이미 그 상황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단계지요. 맥락이 일부 생겨 버린 겁니다.

    이때 그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실행됩니다. 당연히 기업은 새롭게 형성된 맥락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가장 안전 합니다. 하지만, 그 맥락을 제대로 이해 못하거나, 무시하면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목적으로 특별히 고안된 단어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수용자 눈이나 귀에 거슬리는 메시지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그런 단어나 표현은 로펌, 변호사 또는 사내 특정 임원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고안해 낸 것입니다.

    물론 확정적, 극단적, 과도한 단어나 표현은 경계하고, 부정적 표현은 가능한 중립적으로 바꾸어 사용한다 등등의 일반적 커뮤니케이션 스킬 범위에 있는 선택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외 특별하게 ‘고안된’ 단어나 표현은 대부분 수용자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질감 때문이죠. 더 큰 문제는 그 이질적 단어나 표현이 수용자로 하여금 해당 기업의 숨겨진 의도를 추측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부정적 추측이 불필요한 단정과 평가로 이어져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방해하는 새로운 상황이 생산됩니다.

    무엇이든 과도하거나 넘치면 모자람보다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법입니다. ‘일반적’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누구나 공히 이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평범하거나 품질이 낮다고 봐서는 안 됩니다. 특히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과문이나 해명문을 포함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모든 메시지는 누가 봐도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수용자 인식과 느낌에 기반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메시지인지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합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고안된 창조적 단어나 표현을 가미하는 순간, 또 다른 상황을 잉태하게 됩니다. 곧, 반(反)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이죠.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무조건 소통을?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지금 이슈는 홍보실에서 볼 때 현상황에서 함부로 커뮤니케이션 하게 되면 여러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윗분들께서는 계속 소통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슈나 위기 발생 시에는 무조건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 하시네요.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지난 십여 년간 여러 서적이나 교육 프로그램에서 ‘소통(疏通)’을 강조하는 트렌드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소통만이 살길이다. 소통으로 이슈나 위기를 관리해라. 소통이 전략이다 등 여러 주장과 조언이 생겨났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많은 기업 경영자들이 일종의 ‘소통강박’에 빠지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소통을 강조하곤 합니다.

    소통의 의미를 사전에서 살펴보면, 소통이란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communication과 같은 의미랍니다. 얼핏 보면 아주 당연하고 쉬운 개념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뜻’입니다. 그 ‘뜻’ 즉, 이슈나 위기 시 기업이 소통하고자 하는 ‘뜻’이 가장 어려운 소통의 장애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슈나 위기관리를 위해 기업이 전달하고자 하는 ‘뜻’에는 사과, 진정성, 해명, 억울함, 비장함, 개선 의지, 재발방지의지 등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의 ‘뜻’을 접하는 대상들에게도 각자의 ‘뜻’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업의 ‘뜻’과 그 대상의 ‘뜻’이 다르거나 어긋나는 경우에는 ‘소통’이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소통이 곧 고통으로 변하는 이유이죠.

    그런 고통스러운 소통 시도가 반복되며, 새로운 오해가 생겨나며, 고통이 점점 더 심각 해 지는 실제 상황을 여러 번 목격하셨을 것입니다. 소통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통은 되지 않는 것이 기본(default)이라 보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생각입니다. 특히 첨예한 분노, 경악, 실망, 오해, 추측, 억측, 공격성 등이 수면위로 떠 오르는 이슈나 위기 상황에서 소통이란 성공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운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슈나 위기관리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을 그래도 어느정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그럼 어떤 전제가 필요할까요? 당면한 이슈와 위기에 대한 기업의 입장이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의미에 기반해야 합니다. 그 입장자체가 소통 대상인 사람들의 시각과 정확하게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를 위해서는 해당 기업이 평시 사회적으로 올바른 의미에 기반한 행동을 하는 것에 익숙해 있어야 합니다. 기업문화나 철학이 실질적이고 완전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그런 경우 불행하게 이슈나 위기에 휘말리더라도 기업이 소통을 통해 오해를 없애는 것이 보다 수월하게 됩니다. 소통 방식이나 기술 등은 그 다음이죠. 전략도 마찬가지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재 홍보실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주저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에는 상당한 전략적 판단이 기반해 있을 것이고요. 무조건 소통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습니다. 있을 수도 없습니다. 무조건이라는 전제가 들어 있다면 뭐든 의심해야 합니다. 소통하지 않는 것도 소통입니다. 전략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소통을 잠시 미루거나 상황을 보며 하지 않는 것도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일단 소통강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전략이 보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