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사과·유감 표명

  • 범인과 해결사의 차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대표이사가 책임지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요. 일단 그런 주장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대응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표가 책임지라는 주장은 좀 너무 한 거 아닐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불미스러운 일이라는 것의 정의를 보면, 사전적으로는 발생된 일이 ‘아름답지 못하고 추잡한 데가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법적으로 처벌 대상인지 아닌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는 상태인 듯하고요.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상황에 처하신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포함해 해당 기업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의 되는 경우에는 항상 그에 대한 ‘책임’이라는 화두가 떠 오르게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종의 문제해결 방식으로 책임을 정의하기도 합니다. 피해자나 그 주변인들의 경우에는 사과, 배상, 처벌이라는 개념으로 책임을 정의할 때도 있습니다. 그 외 이해관계자들의 경우에는 책임을 최소한의 위기관리 방식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책임이라는 것은 문제 해결에 한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계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핵심은 ‘책임을 누가 지는가?’에 대한 것일 겁니다. 일단 불미스러운 일을 만든 그 당사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문제상황을 두고 굳이 범인과 해결사를 나눈다면, 당연히 불미스러운 일을 만든 사람이 범인이 되겠습니다. 따라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책임은 해당 범인이 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런 범인에 대한 기업의 해결사 역할이 충분하지 않다고 볼 때, 피해자와 이해관계자들은 종종 해당 범인과 함께 더 큰 책임을 질 사람을 찾게 됩니다. 기업은 왜 범인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나? 기업이 그렇게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를 수 있도록 범인을 왜 관리하지 못했나? 관리 부실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하는 추가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숨겨져 있는 해결사를 찾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이런 시각 변화와 주장 격화는 아주 기본적인(default) 것입니다. 따라서 리더가 책임 져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리더가 항상 해결사의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면서 범인을 정확하게 벌하는 모습을 커뮤니케이션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단 기업이 불미스러운 일과 마주했을 때, 기업과 리더가 해결사, 불미스러운 일을 만든 사람을 범인으로 단칼에 정의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그에 더해 불미스러운 일을 만든 사람이 기업내에서 아주 중요한 사람이거나, 심지어 리더 자신인 경우에는 더욱 더 범인과 해결사의 구분은 힘들게 됩니다. 기업은 이 때문에 스스로 범인과 해결사의 명확한 구분과 처벌의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 두루뭉술 해 보이는 대응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같은 범인’이라는 생각을 같게 합니다. 이때는 이미 대응 타이밍을 놓친 셈입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범인을 처벌하겠다며 해결사를 자처해도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죠. 문제가 발생되면 위기관리 주체가 항상 기억해야 하는 기본적 주문이 있습니다. ‘스스로 범인이 될 것인가? 해결사가 될 것인가?’ 이는 흔히 비판 받는 꼬리 자르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 주제는 다음 기회에 다루겠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잊혀지기 위해서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가 이번 문제로 대대적으로 사과했고, 보상도 다 마무리 지었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 기사와 루머들이 줄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희가 계속 반박하고 해명하면서 노이즈를 줄여보려 하고 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여러 기업이 그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위기대응을 모두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노이즈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서 힘드신 거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회사가 사과하고 보상하고 그 외 당연히 해야 할 대응을 했으면, 부정 여론도 차차 줄어들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이전 대응방식이 효과 없던 것 아니냐 하는 내부 의견도 나올 것입니다.

    당연히 해야 하는, 곧 우리가 흔히 ‘일반적’ 위기대응이라고 부르는 모든 노력을 실행에 옮기셨다면, 일단 적절한 초기 위기관리는 수행하신 것입니다. 이 과정과 실행을 건너뛰어도 될 만큼 특별한 위기관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죠. 그 실행 시점이 적시였다면 더욱 그 의미는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에는 기업마다 다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기업은 우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다 했다. 그러니, 여론이 사그라들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자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기업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은데도, 여론이 호전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차이에서 이후 대응의 전략과 방식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한데 쌓아 올려진 장작에 붙어 있는 불을 우리는 ‘화톳불’이라고 합니다. 어떤 화톳불은 손가락 굵기 대여섯개 장작더미에 붙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화톳불은 사람 몸통 크기 수 십 개 장작 더미에 붙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둘 중 어떤 쪽이 더 오래 갈까요? 당연히 굵은 장작더미 화톳불이 훨씬 더 오래 갈 겁니다.

    이 화톳불의 크기가 위기의 심각성이고, 불이 꺼지기 까지의 시간이 위기와 여론의 지속 기간입니다. 그렇게 보면, 자사 위기의 특성과 심각성에 따라 화톳불의 불꽃이 언제까지는 남아 있겠구나 하는 예상이 가능하게 됩니다. 위기가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부정기사와 여론은 오래 갑니다.

    즉,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초기 위기대응을 제대로 실행했다면, 그 이후에는 잔불을 정리하면서 가능한 화톳불이 스스로 소화되기를 인내와 맷집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입니다. 큰 화톳불이 빨리 꺼지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부채질을 해 대거나, 불씨를 들쳐내서는 안 됩니다.

    화톳불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할 일부 부정기사와 루머 등에 계속 반박 해명한다며, 그리고 무언가를 더 해야 하겠다며 계속 새로운 대응 실행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대응은 꺼져가는 화톳불에 새로운 장작을 계속 던져 넣는 셈입니다. 화톳불이 완전히 꺼질 리 없고, 이내 다시 활활 타오르는 상황만 반복되는 것이죠. 화톳불을 조금이라도 빨리 꺼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장작을 더 이상 던져 넣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략적 침묵이며, 인내에 기반한 위기 대응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일반적인 대응? 특별한 대응?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는 이번 위기관리에 있어서 그냥 일반적인 대응보다는 무언가 특별하게 대응한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했던 일반적인 대응과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요? 이를 통해 회사가 차별화 된 이미지를 가져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에서 일반성이라는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이 고민해서 실행을 이루어 낸 공통적 일반성이 있다면, 이는 이미 그 가치와 의미가 검증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위기관리 관점에서는 위기가 발생되기 이전에 여러 기업들이 노력했던 사전적인 위기관리의 일반성에 더욱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후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그 공통적인 일반성은 분명히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 상식적이고 이해가능한 ‘일반적 대응’ 방식이란 어떤 것일까요? 위기상황이 발생되면 일반적으로 기업은 사과 커뮤니케이션이나 해명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사과 팝업을 올리고, 사과 광고를 하기도 합니다. 콜센터를 대폭 확장하기도 하고, 고객 개개인에게 문자와 메신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도 합니다. 영업장에 위기관리 목적의 포스터를 부착하기도 하지요.

    좀더 엄중한 위기라고 생각한다면 오너와 대표가 직접 기자회견을 해서 커뮤니케이션 하기도 합니다. 상황관리적인 의미로는 사고를 관리하고, 피해자를 돌보고, 제품을 리콜을 하고, 개선안을 마련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약속하고, 조사와 개선, 재발방지, 보상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내부 교육을 강화하는 등이 그런 일반적인 위기대응 방식이 될 것입니다.

    이 이외에 특별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전략이시라면, 우선 그 이전에 일반적인 위기관리 활동은 먼저 다 하셔야 한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그 일반적인 위기관리 활동의 형식이나 규모 그리고 기술적 방식은 특별하게 달리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과기자회견에 피해자 대표와 가족들을 동반한다 거나, 기자회견 이전에 대표이사가 피해자들에게 먼저 사과하고 보상에 대한 담대한 약속을 하는 하는 형식이 일견 특별한 방식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천억 이상 수천억의 개선 투자를 약속하고 실행하는 것도 특별한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 모든 특별할 수 있는 위기관리 방식들은 이전의 일반적인 위기관리 방식에 더해지거나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위기관리 방식을 생략하거나 건너뛰고서, 홀로 특별한 위기관리 방식이란 있을 수도 없고, 있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시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일반적이라는 의미를 고루하고 심심하고 별다름 없는 보통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위기관리에서는 상식적인, 합리적인, 당연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당연한 위기관리 방식이 가장 좋은 위기관리 방식입니다. 이해관계자 관점에서 당연한 것을 먼저 찾아 실행하십시오. 그 후의 특별함이란 당연함의 기반 위에서 대단함을 더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요즘 저희 회사로 인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위에서는 상황 관리를 위해 계속 뭐든 해보라 하십니다. 사실 저희가 초기에 일단 공식 사과를 했고,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은 한 것 같은데요.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보라고 하시니 걱정입니다.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할 것이 남아 있다면, 그 상황은 최악의 위기는 아닌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무언가를 해서 상황이 (금세 또는 단기간에) 안정된다면, 그 또한 큰 위기는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전문가나 일반인들은 회사에게 사과를 해서 문제를 해결하라, 진정성이 곧 해답이다,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면 성공한다 같은 조언을 합니다. 하지만, 경험상 그러한 사과, 진정성,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으로 해결될 상황이라면 진짜 위기는 아닙니다.

    물론 규모나 파장이 작은 위기라도 분명 위기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말씀처럼 세상이 떠들썩 할 정도의 상황을 회사가 만들었다면, 그 경우에는 상당히 중대한 위기를 관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그 같은 위기에는 효과적 답이나 치료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과나 진정성, 신속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일부 부정성을 제거하거나, 위기 지속기간을 비교적 단축시키는 경우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적인 대응으로도 완전하게 관리되지 않는 것이 중대한 위기상황입니다.

    말 그대로 중대한 위기에는 백약이 무효하게 느껴 집니다. 이런 경우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 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더욱 집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속되는 부정성 강한 비판 시각을 극복하기 위해 긍정적 홍보 주제를 개발해 활발히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부정적 상황에서 그 중심에 있는 회사의 갑작스러운 홍보성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의미와 느낌으로 공중에게 받아들여 질지를 예상해 보아야 합니다. 실행해서 효과가 없거나, 상황을 더욱 자극할 실행은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지요.

    수사기관 소환을 앞두고 있는 경영진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도 예를 들어 보시죠.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해당 경영진이 대대적으로 인터뷰를 해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를 공개 반박하면 어떻게 될까요? 사회적으로 제품 품질과 안전에 대해 비판받게 된 소비재 회사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대대적인 제품 할인행사와 기부활동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정 이슈에 휩싸인 회사가 무언가는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 회사 홍보실이 여러 기자들을 만나 광고협찬비를 직접 제시하며 청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언가는 해야 하니, 우리는 뭐든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실무그룹이 있다면?

    무언가를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먼저 제대로 할 수 있어야 중대한 위기와 적절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잠시 멈추는 것도, 중대한 위기 시에는 아주 효과적인 위기관리가 될 수 있습니다. 위기 시 무엇을 실행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보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을 가려서 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실행 방식입니다. 일단 전략적 방향성을 정확하게 세운 후 꼭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에 대한 분별을 기해 보시지요. 위기 시 뭐든 해보자는 종종 실패를 부르는 주문이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기업은 항상 선의의 행위자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1982년 미국 시카고. 익명의 누군가가 약국 진열대에 놓인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주입했다. 일곱 명이 사망했다. 제조사인 맥닐컨슈머프로덕츠와 모회사 존슨앤존슨은 범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통망 어딘가에서 저질러진 외부 범죄의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맥닐은 시장에 유통 중이던 타이레놀 3100만 병을 즉각 전량 회수했다. 당시 기준으로 1억 달러가 넘는 비용이었다. 사과했고,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피해자 중심으로 움직였다. 위기관리론의 교과서가 된 사건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기업 위기관리 강의실과 컨설팅 현장에서 이 케이스는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타이레놀처럼 해야 한다”는 말은 위기관리의 불문율처럼 통용된다. 그런데 타이레놀 케이스와 한국의 기업 위기 케이스들은 과연 유사한 구조인가?

    기업은 더이상 선의의 행위자가 아니다

    기존 위기관리론은 암묵적으로 기업을 선의의 행위자로 전제한다. 위기는 기업 밖에서 오고, 기업은 그것을 당한다는 구조다. 타이레놀 모델이 그 전제의 정점에 있다. 범죄자가 위기를 만들었고, 맥닐은 피해자이면서 위기를 관리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 위기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이 전제는 대부분 통하지 않는다. 기업 내부 갑질 케이스에서는 누가 위기를 만들었는가? 대리점 갑질 폭언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을 때, 그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 데이터센터 화재로 수천만 명이 서비스 장애를 겪었을 때, 단일 장애점 구조를 설계하고 방치한 것은 누구였는가? 통신사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보안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은 책임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타이레놀 케이스를 만능 교과서로 삼는 한국 위기관리론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실질적 다수는 기업이 피해자가 아니라, 기업 자신의 행위 또는 부작위가 위기의 직접 원인인 구조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타이레놀 모델을 적용하면, 위기 자체를 잘못 판단하게 되는 오류에 빠진다.

    두 축으로 위기의 실체를 바라보자

    한국 기업 위기를 있는 그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은 주체 ‘책임도’다. 해당 위기에 대해 관리 주체가 지는 사회적, 도덕적, 법적 책임의 총량이다. 두 번째 축은 ‘위기유발의도의 강도’다. 위기 발생 구조에서 특정 행위자의 목적적, 의식적 의도가 얼마나 강하게 개입되었는가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두 축 모두 시작점이 0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위기로 판정되는 순간, 해당 주체에게는 최소한의 사후 대응 ‘책임’이 이미 발생해 있다. 마찬가지로 위기 발생 이전 주로 목격되는 ‘방치, 방관, 방목’은 의도가 없는 현상이 아니다. 위기관리의 본질적 정의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을 위반하는 소극적 선택으로서, 약한 형태의 위기유발의도인 셈이다. 이렇듯 모든 위기에는 의도와 책임이 존재한다. 분류되어야 하는 것은 그 존재 여부가 아니라 강도의 차이다. 이 두 축을 교차시키면 네 개의 영역이 도출된다. 이것이 이슈, 위기 통합 관리 매트릭스다.

    제1사분면: 작위형 위기, 가장 중한 유형

    주체 책임도 크고, 위기유발의도도 강한 조합이다. 식별 가능한 특정 행위자의 의식적, 선택적 행위 자체가 위기의 직접 발생 원인인 경우다. 핵심 판별 기준은 하나다. “해당 행위자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 유형에는 개인 일탈형, 계획적 논란화형, 조직적 불공정거래형, 허위, 기만 마케팅형, 안전, 환경 기준 의도적 위반형, 재무 조작형, 채용, 노동 착취 설계형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내부 갑질과 거래처 등 외부 갑질, 폭언, 부적절한 정치성 강요, 분식회계, 가격 담합 등이 이 유형의 대표 케이스들이다.

    두 축 모두 최고값에 위치하는 이 사분면은 성격상 가장 중한 유형이다. 대응 전략의 핵심은 행위자 격리와 행위에 대한 직접적 책임 인수다. 언어적 사과만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하며, 구조적 재발 방지의 가시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한국 오너 기업에서 자주 목격되는 패턴은 가해 당사자가 동시에 위기관리 의사결정자인 이중 구조다. 이 구조에서 행위자 격리 없이는 어떤 대응 전략도 공중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종종 목격해 왔다.

    제2사분면: 부작위형 위기, 한국 위기의 실질적 다수

    주체 책임도는 크지만, 위기유발의도는 약한 조합이다. 주체에게 위기를 유발하려는 명시적 의도는 없었지만, 조직 시스템의 설계 부재, 방치, 방관, 방목이 위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경우다. 핵심 판별 기준은 “조직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까?”다.

    보안 방목형, 인프라 방치형, 노동안전 방관형, 가치관, 문화 방관형, 운영, 마케팅 과실형이 이 유형에 포함된다.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데이터센터, 생산시설, 물류센터 화재, 근로자 연속 사망, 남혐, 여혐 이슈, 기업의 정치 사회 아젠다 몰이해로 발생된 위기들이 이 사분면의 대표 케이스들이다.

    이 유형에서 방치, 방관, 방목의 삼분법은 내부 귀책 수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방목은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지 않은 것, 방치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작동을 내버려둔 것, 방관은 문제가 가시화되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방관의 귀책이 가장 무거운 이유는 인지 이후의 무선택이 위기유발의도 선택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실질적 다수가 이 사분면에 분포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실패가 대부분 악의보다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중은 무관심을 악의보다 가볍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알면서도 하지 않았다”는 방관의 증거가 드러나는 순간, 공중의 판단은 더욱 가혹해진다.

    제3사분면: 이슈관리 핵심 영역, 위기 이전의 공간

    주체 책임도가 적고, 위기유발의도 약한 조합이다. 아직 위기로 전환되지 않은 사회적 갈등 잠재력의 영역이다. 관리 주체의 직접적 귀책이 낮고 위기를 유발하려는 의도도 약하거나 부재하지만, 방치하면 위기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적 긴장 상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분면이 이슈관리 유형 전체를 포괄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임도나 유발의도가 사회적 가시화의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 이슈는 위기로 판정되어 다른 사분면으로 이동한다. 즉, 이 사분면은 두 축 모두 임계점 이하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이슈만을 포함하는 영역이다.

    사회적 의제 충돌형 이슈, 규제 환경 변화형 이슈, 업계 전반 신뢰 하락형 이슈, 기술, 사회 변화 충돌형 이슈가 여기에 속한다. ESG 관련 이슈들, 플랫폼 경제와 기존 규범의 마찰, 인공지능·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이 영역에 위치한다.

    이 사분면에서의 개입비용은 위기로 전이된 이후의 수습비용과 비교할 수 없이 낮다. 이슈관리의 실패는 이슈를 위기로 악화되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제4사분면: 외부공세형 위기, 타이레놀이 속하는 곳

    주체 책임도는 적지만, 위기유발의도가 강한 조합이다. 실질 귀책은 낮거나 최소인데,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위기를 구동하는 경우다. 이 강한 위기유발의도의 출처는 주로 외부다. 주체의 책임이 적은데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존재한다면, 그 의도의 주체는 논리적으로 외부일 수밖에 없다.

    1982년 타이레놀 케이스가 바로 이 사분면에 위치하는 케이스다. 외부 범죄자의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위기를 구동했고, 맥닐사의 실질 귀책은 최소였다. 타이레놀 모델이 교과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분면 안에서만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다수가 제2사분면에 분포하는데 타이레놀 모델을 적용해온 것, 이것이 한국 위기관리론의 가장 큰 구조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에는 외부범죄 공격형, NGO, 시민단체 공세형, 경쟁사 마타도어형, 정치적 표적화형, 전직 임직원 보복형, 미디어, 인플루언서 표적형이 포함된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대표 케이스다. NGO 연계 연구팀의 공세 구조가 위기를 구동한 반면, 결과적으로 실질 귀책은 최소였다.

    이 사분면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전략 오류는 제2사분면의 대응 방식, 즉 내부 개선과 사과 중심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수습할 내부 귀책이 없는 상황에서 사과를 선택하는 순간, 공중은 귀책이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분류가 잘못되면 처방이 잘못된다.

    분면에서의 위치는 계속 고정되지 않는다

    이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위기는 진행되고, 대응이 개입되며, 공중의 해석이 축적되면서 케이스의 사분면 위치는 이동한다.

    두 축의 이동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X축(주체 책임도)은 객관적 사실의 확인과 변경에 의해 움직이는 경성(硬性) 변수다. 추가 사실 발견, 반복 발생, 은폐 시도 발각, 법적 판결 확정이 X축을 상승 이동시킨다. 반면 X축의 하강 이동은 극히 어렵다. 한번 확정된 귀책은 사실상 사라지지 않는다.

    Y축(위기유발의도)은 공중의 인식과 해석에 의해 움직이는 동적 변수다. 위기 발생 이후 주체의 대응 방식을 관찰하면서, 공중은 위기유발의도를 소급하여 재평가한다. 늦장 대응, 축소 시도, 형식적 사과는 모두 사전 의도의 증거로 해석된다. 반대로 진정성 있는 적시 대응은 Y축의 추가 상승을 차단한다.

    즉, 실무적으로 위기관리 주체가 실질적으로 통제 가능한 변수는 Y축이다. X축, 즉 이미 발생한 귀책은 사후에 없애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Y축, 즉 공중이 인식하는 위기유발의도는 대응의 적시성과 진정성으로 방어할 수 있다.

    가장 파국적인 경로는 제2사분면에서 출발한 위기가 대응 실패를 거쳐 공중의 Y축 재판단을 통해 제1사분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보안 방목형의 부작위 위기였던 케이스가 있다. 그러나 늦장 공지, 형식적 사과, 피해 규모 축소 시도가 반복되면서 공중의 판단은 바뀌었다.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의도에 대한 판단이 소급하여 형성된 것이다. 대응의 실패가 위기 성격 자체를 바꿔버린 경우다.

    분류가 달라지면 처방이 달라진다

    처방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타이레놀 케이스는 제4사분면의 이야기다. 한국 기업 위기의 다수는 제1사분면과 제2사분면의 이야기다. 이 두 세계에는 같은 처방이 통하지 않는다. 핵심은 위기유발의도라는 개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평시에도, 위기 국면에도, 이 개념은 작동한다.

    X축의 책임은 때로 시간이 소멸시켜 준다. 사건은 잊히고 귀책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위기가 불타오르는 국면에서 살길은 단 하나다. 공중이 인식하는 위기유발의도를 최소한으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타이레놀이 40년 뒤에도 교과서로 남아 있는 진짜 이유다. 맥닐은 귀책이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위기유발의도를 단 한 순간도 의심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위기가 어느 사분면에 위치하는지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분면에서 공중이 위기유발의도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것이다.

  • 위기관리에 대한 스토아 철학자들의 조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10년 전, 필자가 스토아 철학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게 기업 위기관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철학 공부를 한다고 펼쳐 든 책이 대부분 스토아 철학 책이었다. 2000년도 더 된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이, 지금 이 순간 쏟아지는 언론 보도와 SNS 여론, 규제기관의 조사와 소비자 불매운동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을수록 오히려 그 어떤 현대적 위기관리 이론보다 더 본질에 가깝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세기, 철학자 제논이 아테네의 스토아 포이킬레라는 주랑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철학이다. 이 철학의 핵심은 단순하다.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으며, 현명한 사람은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통제 가능한 것에만 에너지를 집중한다는 것이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이성으로 판단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덕스러운 행동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스토아 철학의 핵심이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크리시포스. 이들이 남긴 글과 사유는 지금도 경이로울 만큼 생생하게 살아있다.

    위기관리 컨설턴트로서 필자가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위기가 터지면 경영진이 패닉 상태에 빠지고, 그 패닉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며, 그 잘못된 결정이 위기를 더 키우는 악순환이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조언만 제대로 따랐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가치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는 걸 보면서, 필자는 확신하게 됐다. 스토아 철학은 기업 위기관리의 가장 깊은 뿌리가 될 수 있다고.

    스토아 철학자들의 여덟 가지 조언을 세 단계로 나눠 살펴보자. 위기가 오기 전에 갖춰야 할 것들, 위기가 터진 순간부터 수습까지 지켜야 할 것들, 그리고 위기가 끝난 후에도 멈추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첫 번째 조언: 위기는 예고 없이 오지 않는다

    세네카는 이렇게 경고했다.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준비 없이 미래를 맞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늘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대비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역경에 대한 사전 명상)을 강조했다.

    위기 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면 설마가 아니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내부 제보가 있었고, 현장 실무자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비슷한 사례가 경쟁사에서 먼저 터졌는데도 흘려보낸 경우. 위기의 전조는 대부분 존재했다. 다만 경영진이 불편해서, 바빠서, 설마 하는 마음에 외면했을 뿐이다. 세네카라면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당신은 가장 나쁜 상황을 충분히 상상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그 상상에 대비해 오늘 무언가를 하셨습니까?

    두 번째 조언: 감정은 판단을 흐리고, 조직 전체를 흔든다

    스토아 철학의 체계를 완성한 크리시포스는 감정의 위험성에 대해 깊이 파고들었다. 분노, 공포, 과도한 낙관, 이 세 가지가 위기 상황에서 경영진의 판단을 가장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했다. 그런데 크리시포스의 이 경고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 절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리더의 감정 상태는 조직 전체로 즉각 전파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조직 차원의 위기관리 문제다.

    위기가 터진 다음 날 아침, CEO의 첫 마디는 30분 안에 조직 전체로 퍼진다. “우리 망하는 거 아니야?”라는 한마디가 떨어지면 오전이 지나기 전에 “위에서도 답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말이 돌고, 대응팀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진다. 브리핑 도중 감정이 격해진 CEO가 내뱉은 한마디가 다음 날 헤드라인이 되고, 밤새 불안 속에서 내린 새벽 네 시의 결정이 오전에 번복되는 장면도 낯설지 않다. 한편으로는 밤새워 작성하고 법무 검토까지 마친 공식 입장문이 발표 직전 CEO의 감정 하나로 뒤집히는 일도 있다. “이 기자 예전부터 우리 회사 물어뜯으려 했잖아.” 그 순간부터 입장문에 공격적인 문장들이 추가됐고, 결국 여론을 더 악화시켰다.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판단과 행동만큼은 이성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크리시포스가 말한 진정한 평온이며, 위기 앞에서 리더가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적 자산이다. 그리고 이 평온은 위기가 터진 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위기 이전부터 꾸준히 단련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조언: 상황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판단이 문제다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다.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의 위기인데, 경영진이 “이건 회사 역사상 최악의 사태”라고 규정해 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 판단이 내려지면 실무자들은 우울한 시나리오만 보고하기 시작하고, 의사결정은 공포 위에서 이루어지며,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반대로 심각한 위기를 “이 정도는 곧 지나가겠지”라고 흘려버리는 경영진도 있다. 그 판단 역시 재앙의 씨앗이 된다. 위기 그 자체가 기업을 무너뜨리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위기에 대한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이 기업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네 번째 조언: 목적지 없는 배에는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그 다음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항구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다.

    위기가 터지면 대응팀을 꾸리고, 긴급 회의를 열고, 보도자료를 쓰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데 “우리가 이 위기를 통해 최종적으로 어디에 도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는 경영진은 생각보다 드물다. 목표가 없으니 전략도 없고, 오늘의 대응이 내일의 대응과 충돌하고, CEO 발언이 실무진 행동과 따로 논다. 위기관리의 출발점은 대응 속도가 아니라 대응 방향의 설정이다.

    다섯 번째 조언: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하라

    방향을 바로잡았다면, 다음은 에너지를 어디에 쏟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들은 우리 안에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 밖에 있다.

    위기 대응 회의실에서 경영진의 시선은 온통 밖을 향해 있다. “저 기자가 왜 저렇게 쓰는 거야”, “경쟁사가 이 기회에 우리를 흔들려는 거 아니야”. 한 시간짜리 회의에서 우리가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10분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머지는 전부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대한 분노와 불안이다. 그러는 사이 골든타임은 조용히 흘러간다. 경영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자기 회사가 무엇을 결정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다. 이 원칙 하나만 지켜도 위기 대응 회의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여섯 번째 조언: 역할에 충실하라

    에픽테토스는 모든 사람은 삶이라는 연극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그 역할에 충실한 것이 덕이라고 했다.

    CEO가 직접 기자들과 통화하며 배경을 설명하는 사이, 홍보팀은 그 내용을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된다. 법무팀은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는데 영업팀장은 고객사에 이미 사과 메일을 보낸 상태다. 재무팀이 보상 규모를 산정하기도 전에 홍보팀은 “신속히 보상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혼선들이 동시에 터지는 순간 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해진다.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초과하거나 회피하지 않는 것, 그것이 위기 대응 체계의 기본이다.

    일곱 번째 조언: 명성보다 행동이 먼저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좋은 평판을 얻으려 노력하지 말고, 평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하라.

    피해자 지원은 아직 검토 중인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가 먼저 나오고, 재발방지 시스템은 설계도 안 됐는데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 앞선다. 처음 한두 번은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의 간극이 드러나는 순간, 신뢰는 위기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은 곳으로 추락한다. 실질적인 피해 복구와 진정성 있는 사과, 구체적인 재발방지 조치. 이것이 선행되지 않은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역풍을 맞는다.

    여덟 번째 조언: 위기 이후의 개선 없이는 위기관리도 없다

    세네카는 말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것, 그것이 철학의 목적이라고.

    위기가 수습되면 기업들은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대응팀은 해산되고, 모니터링은 종료되고, 임원들의 관심은 다음 분기 실적으로 이동한다. 위기에서 배워야 할 것들은 서랍 속 보고서 안에서 조용히 잠든다. 그렇게 2년, 3년이 지나면 비슷한 위기가 다시 터지고, 또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무엇이 취약했는지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시스템과 문화를 실제로 바꾸는 것, 그것이 위기관리의 진짜 완성이다. 세네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같은 위기에 두 번 무너지는 기업은, 첫 번째 위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기업이라고.

    스토아 철학자들의 이 조언들은 어느 한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00여 년간 동서양의 수많은 리더들이 이들의 사유에서 위기를 버텨낼 힘을 얻었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의 CEO들 중에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책상에 두고 읽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것이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위기관리 현장에서 일한 필자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기업 경영진들도 오늘부터 스토아 철학을 가까이하시기 바란다. 자기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하는 것에서 시작해, 조직의 위기 대응 역량을 한 차원 높이는 데까지, 스토아 철학은 분명 좋은 교사가 되어줄 것이다. 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 그때 당신 곁에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세네카가 있다면, 그 위기의 무게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 기업 경영진은 위기 시 왜 ‘소통 강박’에 빠지나?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 부정 이슈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경영진이 가장 먼저 취하는 행동을 상기해 보자. 대개의 경우 홍보팀을 긴급 소집해 사과문을 다듬거나, 언론 보도의 흐름을 전환하기 위한 전방위적 커뮤니케이션을 지시하는 것이 그 첫 수순이다. 그러나 위기관리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이러한 필사적 노력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소통 강박(Communication Obsession)’이라 정의한다.

    소통 강박이란, 기업이 위기 해결을 위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상황관리(Action)를 실행하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수단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병적 증상을 말한다. 이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발현된다. 첫째는 ‘강박적 소통 폭주’로, 실효적 해결책이 뒷받침되지 않은 메시지를 무차별적으로 살포하며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전시 효과에 집착하는 형태다. 둘째는 ‘전략 없는 마비’로, 냉철한 전략적 판단 대신 공포와 무력감에 사로잡혀 의사결정 자체를 유예해 버리는 상태다.

    기업에 문제가 발생하면, 경험이 풍부한 커뮤니케이션 부서장이나 임원들은 종종 “대응을 자제하자” 혹은 “대응할 실익이 없다”는 조언을 건넨다. 외부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판단에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사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 목적은 문제 해결 그 자체가 아니라, 문제로 인한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에 있다. 내외부 베테랑들이 대응 자제를 권고하는 것은, 해당 사안이 아직 임계 수준의 위기가 아니거나, 대응의 시점과 대상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경험적 판단에 근거한다.

    그러나 소통 강박에 사로잡힌 경영진은 이러한 조언을 실무진의 무능이나 무관심, 혹은 책임 회피로 곡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불이 났는데 가만히 있자는 것이냐”는 식의 경영진발(發) 강박은 결국 무리한 소통 시도로 이어진다. 대응이 불필요한 작은 불씨에 소통의 연료를 무차별적으로 투입해 문제를 오히려 키우는, 이른바 ‘미필적 실수’가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미국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선구자 아서 페이지(Arthur W. Page)는 “PR이란 90%는 옳은 일을 하는 것이고, 10%는 그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이 명제는 위기관리 현장에서도 변함없는 진리로 통용된다. 성공적인 전략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실질적인 상황관리(행동, 개선, 보상)가 전제되거나 병행될 때에만 그 가치를 발휘한다.

    90%에 해당하는 실질적 조치 없이 10%의 커뮤니케이션에만 매달리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격이다. 경영진은 소통의 기술을 고민하기에 앞서, 우리 조직이 과연 90%의 ‘옳은 일’을 실행하고 있는지, 즉, 상황을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는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9:1의 균형이 무너진 소통은 자칫 기만에 가까운 행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소통 강박에 빠지는 일곱 가지 원인

    위기관리 현장에서 관찰되는 경영진의 소통 강박 증상은 단순한 개인적 실수가 아니라, 다음과 같이 고착화된 심리적 오류와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다.

    첫째. 소통은 상황관리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가성비 함정

    “지금 당장 사과문 올리고 보도자료 배포해. 비용이 드는 보상안은 나중에 검토하고, 일단 말로라도 사태를 진정시켜야 하지 않겠어?”

    경영진에게 리콜, 보상, 시스템 전면 개편과 같은 ‘상황관리’는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고통스러운 결단이다. 반면, 메시지는 즉각 작성해 배포할 수 있고 비용도 미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체 없는 소통은 대중에게 ‘언젠가는 갚아야 할 부채’로 차곡차곡 누적된다.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언어는 결국 더 큰 이자를 얹어 상환해야 하는 치명적 위기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경영진은 간과한다.

    둘째. 무대응은 곧 패배라는 공포와 통제력 과시 욕구

    “가만히 있을 거야? 우리가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해! 아무것도 안 하면 잘못을 인정하는 꼴밖에 안 돼.”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으면 무능해 보인다는 공포가 경영진을 지배한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 자신의 통제력을 내외부에 가시화하려는 리더십 증명 욕구가 강박적 지시로 이어진다. ‘전략적 인내’와 ‘무능한 방치’를 구별하지 못한다. 의미 없는 활동량으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려 하지만, 이는 전술적 목적도 없이 제한된 자원만 소진하는 패착에 불과하다.

    셋째. 기술적 해결주의와 프레임 전환에 대한 맹신

    “우리에게 유리한 기사들로 포털을 채워. 댓글 여론만 잡으면 이번 고비는 넘길 수 있어. 기술적으로 어떻게든 프레임을 바꿔봐.”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알고리즘 제어나 검색 결과 정화, 혹은 고도화된 언론 플레이가 본질적 결함을 은폐할 수 있다고 믿는 오류다. 구조적 결함이라는 몸통은 방치한 채 여론의 흐름이라는 깃털에만 에너지를 쏟는 셈이다. 오늘날의 대중은 메시지의 기교보다 행위의 일관성과 진정성을 먼저 읽어낸다는 사실을 망각한 지시다.

    넷째. 이해관계자를 공감 대신 제압 대상으로 간주하는 태도

    “저들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집단이야. 대화해봤자 소용없어. 법무팀과 협의해서 우리 논리로 밀어붙여. 입도 못 열게 만들어.”

    피해자나 여론을 소통을 통한 공감의 대상이 아니라, 무력화해야 할 ‘장애물’로 간주할 때 소통 강박은 더욱 심화된다. 이러한 ‘전략 없는 마비’ 증상은 대중에게 오만과 폭력으로 읽히며, 내부 고발이나 추가 폭로를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어 위기를 전이·확산시킨다.

    다섯째. 내부 보고 체계의 왜곡과 ‘보고를 위한 소통’의 악순환

    “사과문 조회수가 얼마야? 기사는 몇 건이나 나갔어? 수치가 부족해. 더 적극적으로 우리 입장을 뿌려!”

    위기 상황에서 실무진은 경영진으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소통 활동을 보고용 실적으로 활용한다. 경영진은 이 수치에 안도하며 더욱 강도 높은 소통을 주문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문제가 얼마나 해결되었는지가 아니라, 메시지가 얼마나 많이 노출되었는지가 성공의 척도가 되는 전형적인 ‘활동성 함정’에 빠진 상태다.

    여섯째. 한국적 망각 주기에 대한 요행과 전략 없는 마비

    “일단 소나기만 피하자. 담당자 없다고 하고 시간을 끌어봐. 며칠 지나면 다른 이슈가 터져서 다들 잊어버릴 거야.”

    과거의 위기가 시간의 흐름 속에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던 경험은 나쁜 학습 효과를 낳는다. 이는 전략적 인내가 아닌, 무책임한 방치로서의 침묵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기록은 영구적이며, 이러한 마비 상태는 훗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박적 폭주’를 불러오는 시한폭탄으로 작동한다.

    일곱째. 전략적 현실주의의 부재와 감정적 호소에 대한 과의존

    “사과문을 더 절절하게 써! 진정성이 느껴져야 해. 눈물 한 방울 쏙 빼낼 수 있다면 여론도 돌아서지 않겠어?”

    법적 배상 규모를 냉정하게 산정하고 비즈니스 안정성을 검토하기보다, 감성적 호소로 여론을 전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경우다. 실질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은 감정적 호소는 대중에게 기만으로 비치며, 기업의 도덕적 신뢰를 앞당겨 소진시킨다. 위기관리 전략가라면 사과문의 수사(修辭)를 다듬기 전에, 보상안의 구체성부터 먼저 점검해야 한다.

    전략의 부재가 강박을 낳는다

    결론적으로, 경영진이 경험하는 이 모든 소통 강박의 증상들은 단 하나의 근본 원인에서 기인한다. 바로 ‘전략과 준비의 부재’다. 사전에 위기를 진단·분석해 구체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갖추지 못한 기업은, 위기가 실제로 닥치는 순간 본능적 공포에 사로잡힌다. 준비되지 않은 경영진에게 소통은 가장 달콤한 도피처이자,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감옥이 된다.

    소통 강박은 전략 보유 여부에 따른 조직적 병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 성공적인 전략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상황관리라는 실체가 수반되어야 한다. 90%의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소통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다. 평시의 안일함이 위기 시의 강박을 낳고, 그 강박은 다시 실패한 소통으로 이어져 기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소통 강박이 매번의 위기에서 아무런 성찰 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단순한 실수를 넘어 기업의 DNA 자체를 파괴하는 조직적 재앙으로 진화할 수 있다.

    경영진 스스로 자문해보기를 권한다. 우리 기업은 지금 소통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통 강박을 앓고 있는가? 소통 강박에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소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소통의 기술을 연마하기 전에, 위기 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관리 전략을 먼저 수립해야 한다.

    미리 준비된 전략을 토대로 위기 시 조직의 의사결정과 실행을 철저히 통제·관리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위기관리의 성공은 얼마나 화려하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아서 페이지의 조언처럼 얼마나 충실하게 90%의 ‘옳은 행동’을 선행하고 그 결과를 10%의 정교한 소통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강박이라는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략이라는 강력한 치료약을 손에 쥘 때다.

  • 왜 기업마다 위기의 정의는 다른가?

    [The PR 기고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 교과서 중 개론서라면 항상 빠지지 않는 부분이 ‘위기의 정의와 유형’이다. 위기가 발생되는 형태를 저자마다의 시각으로 분류해서 정의하고 구별해 놓고 있다. 그 교과서를 읽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위기라고 하는 것이구나 하며 위기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일부 기업 내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그런 위기 유형들을 모아 자사의 사업분야와 현황에 따라 재분류 해 위기관리 매뉴얼에 정리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기업들의 위기관리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바에 따르면, 교과서 내용과 같이 정형화되어 있는 위기유형은 사실 현장에서의 판단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떤 기업은 그런 기존의 위기유형 분류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상황을 위기로 정의한다. 어떤 기업은 분명히 위기유형에 정해진 형태의 상황을 맞았음에도 그것을 위기라 정의조차 하지 않는다.

    왜 같은 유형의 부정 상황으로 보이는데, 어떤 기업은 그것을 위기라 하고, 또 다른 어떤 기업은 그것을 위기로 여기지 않을까? 왜 기업은 각자 생각과 판단대로 위기를 자유롭게 정의하는 것일까?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어떨 때는 위기로, 다시 어떨 때는 위기로 판단하지 않는 것일까? 왜 기업마다 위기의 정의는 다를까? 그 이유를 알아보자.

    첫째, 사업분야에 따라 위기가 다르다

    상식적인 이야기다. 라면을 만드는 기업과 선박을 만드는 기업은 전혀 다른 유형의 위기를 경험한다. 매출 10조원 기업의 위기와 매출 100억원 기업의 위기는 서로 다른 것이 당연하다. 규제기관에 의해 사업 인허가가 좌우되는 기업과 자유롭게 사업할 수 있는 기업은 서로 다른 위기 기반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사업을 하는 기업과 지방에서 지역 사업을 하는 기업은 각자 생각하는 위기가 다르다.

    둘째, 내부 철학과 원칙에 따라 위기가 다르다

    같은 부정 상황을 놓고도 어떤 기업은 그것을 부정성이 낮은 수준이라 평가하고, 적극적 위기관리를 하지 않는다. 오래된 업계 관행이라 하거나, 기업의 오래된 전통이라며 그 상황을 위기로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다른 어떤 기업은 앞의 기업이 놀랄 정도로 깐깐하게 부정성을 판단해 같은 상황을 위기로 다양하게 정의한다. 이 기업은 업계관행은 물론, 당연해 보이는 업무 프로세스도 컴플라이언스라는 잣대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재검토하고, 관련된 발생 상황들을 모두 위기라 정의하고 대응한다.

    셋째, 사업 전략과 방향성에 따라 위기가 다르다

    어떤 기업은 무리해서 더 크게 성장하거나 시장을 넓히겠다는 계획이 없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왠만한 여론의 비판이나 소송, 환경 및 지역단체들의 항의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우리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전혀 두렵지 않다’는 식으로 위기를 바라본다. 다른 어떤 기업은 사업을 다양하게 확장해 국내와 글로벌 시장으로 계속 진입시킨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자회사들을 지속 상장하려고도 노력한다. 이 기업은 앞의 기업보다 고객과 시장 그리고 정부 규제기관 등의 눈치를 많이 본다. 자칫 조그마한 논란이나 비판이 사업 확장과 시장진입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한다. 이런 기업은 다양한 위기 유형을 정리해 대비하는 위기관리 활동에도 열심을 다한다.

    넷째, 기업을 둘러싼 핵심 이해관계자들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일단 B2B(기업 대상 사업) 기업과 B2C(개인 소비자 대상 사업) 기업은 각자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특성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B2B는 굵직하고, 규제관련, 경쟁관련 부정 상황들이 많다면, B2C는 고객과 관련된 다양하고 자잘한 부정 상황들이 흔하다. 고객의 경우에도 국내 고객이 중심인 기업의 위기가 다르고, 해외 고객이 중심인 기업의 위기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별 위기라 볼 수 없는 상황이 해외 특정 국가 고객들에게는 큰 위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다섯째, 의사결정자들의 스타일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젊고 진취적인 스타트업 대표의 위기관리 시각과, 상대적으로 연령이 높고 보수적인 대기업 대표의 위기관리 시각은 전혀 다르다. 그 각자 특징에 따라 위기에 대한 정의가 다르고, 위기관리와 관련된 의사결정 모습도 전혀 다르다. 단순하게 감정적 부침이 잦은 스타일의 경영자가 보는 위기와 안정적인 감정상태에서 담담하게 의사결정 하는 스타일의 경영자의 위기가 다르다. (사실, 현장에서는 VIP가 그 상황을 위기라 정의하셔야 비로소 위기가 된다. VIP가 위기라 정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기가 아닌 것이 된다.)

    여섯째, 기존 위기관리 시스템 수준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평소 위기관리를 생각해 보지 않고, 관심이나 투자가 전혀 없던 기업에게는 돌발적 혼돈 상황이 발생되면 이는 곧장 패닉에 빠질 수도 있는 위기가 되 버린다. 흔한 예로, 언론은 그냥 광고를 싣는 곳이라 생각해 담당 기자관리를 등한시했던 기업은, 자사와 관련된 사소한 부정기사에도 큰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그 상황을 위기라 정의하기도 한다. 반면, 위기관리 시스템을 상당수준 갖추고 숙제를 꾸준히 잘 해 왔던 기업은 다른 위기관을 가진다. 앞의 기업이 고통스러워 한 부정 기사 정도는 위기로 정의하지 않는다. 다양한 대응을 실행해 상황을 관리해 버리기 때문이다.

    일곱째, 현재 내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리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해도, 예를 들어 5년전과 현재의 위기관리는 다를 수 있다. 당시에는 해당 기업이 그 상황을 중대한 고객관련 위기로 정의했고, 선제적이고 파격적인 리콜을 실행했던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후 수년간 계속 사업이 불안했고, 매출은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불행하게도 현재 다시 동일 상황이 발생했지만, 경영진은5년전과 같은 수준의 리콜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 따라 상황을 달리 정의하고, 부분 A/S를 실시하거나, 문제 사실을 숨기며 적극적으로 위기관리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관련 상황은 같지만, 대응 가능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덟째, 위기를 반복한 기업인지에 따라 위기는 다르다

    특정 위기를 자사의 역사상 처음 경험하는 기업이 내리는 위기에 대한 정의와, 특정 위기를 자주 발생시켰던 기업이 내리는 위기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게 다르다. 매번 개선이나 재발방지를 약속했음에도 동일 또는 유사한 부정 상황이 계속 발생되는 기업에게 있어 각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앞의 기업은 교과서 대로 자사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해당 상황을 큰 위기로는 정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복적으로 유사한 실수를 거듭한 기업은 그렇게 편하게 위기를 정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홉째, 사회적 트렌드에 따라서도 위기는 달라진다

    사내 직원간 괴롭힘이 발생돼 논란이 되었을 때 기업이 선제적 사과로도 이내 위기관리가 가능했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직장내 괴롭힘이 법적 사회적으로 중대범죄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여러 케이스에서 극단적 비판과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이때 자사에서도 터져버린 직장내 괴롭힘 논란은 앞의 운이 좋았던 기업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사과 커뮤니케이션으로 관리되었던 상황이,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사업적으로도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돼 버리는 중대 위기로까지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부정상황도 트렌드의 영향을 받아 다양한 위기로 정의된다.

    마지막, 정확한 이유 없이도 위기는 종종 달라진다

    이 부분이 실무자들에게는 가장 어렵고 힘든 위기관리 환경이 될 것이다. 지난번에 이 같은 부정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사내에서 바로 중대 위기로 정의하고 적극 대응과 배상을 해 성공적 위기관리로까지 인정받았던 경우가 있었다 치자. 유사한 부정상황이 발생되어 지난 번 같이 중대 위기로 정의하고 대응하려 하니, 사내적으로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위기대응을 해야 하는 실무자들은 왜 그때와 지금이 다른 지 잘 이해가 가질 않게 된다.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굳이 구체적 이유나 문제를 제기하기도 불편하게 되어 버렸다. 현장에서는 이렇게 별 이유 없이 종종 위기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기도 한다. 희귀한 경우가 절대 아니다.

    위기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임원이나 실무자들은 절대로 위기에 대한 정의가 미리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위기의 유형도 그에 따라 마찬가지라 생각해야 한다. 그때 그때 다르고, 이 회사와 저 회사가 다르다. 이 경영진과 저 경영진이 다르고. 사업적 계획도 조건도 다르고. 이해관계자와 기업의 철학과 원칙도 다르기 때문이다. 전례와 트렌드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심지어 아무 이유 없이도 위기라는 정의는 때때로 달라진다.

    이런 불확실성과 예측불가능성이 어찌 보면 위기의 특징이다. 위기란 그런 것이다. 이를 정확하게 먼저 인정해야 제대로 된 위기관리 시스템을 시작할 수 있다. 그래야 모든 것이 계속 변화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최대한 확실성과 예측가능성을 고민해 자사 시스템에 적용시켜 보자 하는 절실한 동기가 생겨나게 된다. 우수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진 기업들은 이렇게 정확한 현상 인정과 그에 기반한 절실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위기가 정형화되어 있고, 자사의 위기에 대한 정의가 언제나 일관되어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그런 상상에서 벗어나야 진짜 실행가능한 시스템이 보이게 될 것이다.

  • 위기관리를 AI가 할 수 없는 이유

    [The PR 기고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가 발생된 기업의 의사결정그룹에 들어가 여러 논의를 하다 보면, 임원들이 종종 묻는 질문이 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시나요?” “언제까지 이런 언론의 비판이 이어질까요?” “지금 대응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아야 할까요?” “이런 유사 케이스를 다루어 보셨으니까 아실 것 같은데요. 이번 저희 케이스가 상대적으로 심각한 것인가요?”

    이런 질문을 하는 임원들은 위기관리를 일종의 과학이라 생각하는 분들이다. 위기관리 이론과 원칙에 의해 많은 부분을 정확하게 예상할 수 있고, 판별 가능하며, 심지어 통제까지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위기관리가 과학이라면 요즘 화두인 AI가 위기를 관리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관리는 과학이라기 보다는 예술(Art)에 가깝다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여러 전문적 의견이 엇갈리는 근본적 이유가 위기관리의 예술적 성격 때문이다. 위기상황과 관련하여 대부분의 주제들이 가변적인 혼동 그 자체다. 그런 여러 혼동을 관리하는 위기관리가 어떻게 과학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위기상황을 두고 대응 결정을 할 때 종종 충돌하고, 의사결정자들을 갈등하게 만드는 대표적 주제들을 정리해 본다. 과학으로는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예술로도 문제를 푼 다기 보다는 문제를 다룬다(manage)고 보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신속한 대응 vs. 타이밍을 기다리는 대응

    위기관리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신속성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 상황에 있어 관련 기업이 신속한 대응을 하라는 의미의 조언은 없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위기 시 신속하게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민에 빠진다. 빨리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에 사로 잡힌다.

    그러나, 위기 상황은 그 유형과 변화 방향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일정 기간 지켜보며 타이밍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에 대한 판단은 여러 변수들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간단하게 원칙 비슷한 것을 만들자면 “적시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조언이 될 것이다. 그 다음 문제는 “그렇다면 바로 그 ‘적시’는 언제인가?”다. 이에 대한 의사결정은 다시 예술이 돼 버린다.

    VIP가 나서야 vs. 담당 책임 임원이 나서야

    일반적으로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에 있어 VIP의 가시성을 강조하고 조언한다. 회사가 위기를 맞았을 때 뒤로 숨는 VIP는 위기관리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능한 신속하게(여기에서도 예술성이 필요) VIP가 앞으로 나가 머리를 숙이고, 사과문을 읽고, 질의 응답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른 시각도 있다. 위기상황에 직접 관리책임이 있는 고위임원이 먼저 나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하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도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비장의 카드로 VIP가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낫다는 조언을 한다. 양쪽 시각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질문은 “임원이 나서야 하는 경우는 무엇/언제이고, VIP가 나서야 하는 경우는 무엇/언제인가?”다. 의사결정이 그래서 어렵다.

    사과해야 한다 vs. 반박해야 한다

    비교적 사과를 해야 하는가 반박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보면 어떤 경우 사과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반박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이 생겨난다. 어떤 부분까지는 사과해야 하고,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따라온다.

    위기상황에 대하여 회사에 심각한 책임이 있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사과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거나, 직접적 책임성이 일부 부족하거나 (여러 주체가 얽혀 있는 경우), VIP 판단이 사과할 수 없다는 것인 경우에는 사과를 하지 않기도 한다. 상당히 여러 예술적 요소들이 관여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사적으로 위기관리 해야 한다 vs. 위기관리팀이 해야 한다

    이 주제도 전형적인 예술적 주제다. 어떤 기업 대표께서는 전사적으로 위기관리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어떤 기업 대표께서는 위기관리라는 것이 우리의 핵심 사업이 아닌 관계로 전사적으로 모든 직원이 평시에 위기관리 역량을 키우고 준비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 하신다. 대신 부서의 특정 인력을 모아 위기관리팀을 구성하여 그들을 중심으로 위기를 관리하게 해야 한다고 하신다.

    두 시각 모두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위기관리 체계와 관련되어 있는 이 누가(who)에 대한 주제는 아주 복잡한 예술성에 기반한 토론 주제다. 위기의 규모, 형태, 심각성, 부서 관련 양상, 전사적 데미지 유무 등이 다차원적으로 관여되기 때문이다. 위기 규모에 대해 모 기업에서는 위기관리 매뉴얼에 “예상되는 데미지가 매출의 OO% 이상 일 때, 이하일 때”를 나누어 대응 조직 범위와 수위를 정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기준도 사실 과학적이지는 않다.

    언론에 위기관리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vs.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상당히 민감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위기관리 상황에서는 내부적으로 항상 중요한 의사결정 주제다. 저널리즘과 언론의 사회적 역할 그리고 의미를 강조하며 언론을 상대로 기사를 매수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 주장하는 임원도 있다. 그에 대해 회사가 입을 데미지를 예상하면 언론에게 위기관리 예산을 어느 정도 쓰는 것이 결과적으로 회사에 이득이 된다는 현실적 주장을 하는 임원도 있다.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예술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어떤 기사에는 예산을 써야 하고, 어떤 기사에는 쓰지 않아야 하는가?” “어느 매체에는 예산을 쓰고, 어떤 매체에는 쓰지 말아야 하는가”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는 어떻게 대응 예산을 써야 하는가?”하는 여러 고민 주제가 쏟아진다. 이런 경우 확실하게 이렇게 저렇게 하십시오 조언하는 전문가가 있다면 한번은 의심해 보아야 한다. 누구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변수에 대한 입체적 검토와 분석 없이 정해진 조언을 해서는 안 된다.

    우호 언론을 활용해야 한다 vs.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이 주제 또한 흔하게 논의되는 주제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상황이 우호 언론을 활용할 수 있는 상황인가?” “우호 언론이라는 곳이 현재 상황에서 우리를 위해 나서 줄 것 인가? (나설 수 있는 상황인가?)와 같은 예술적 질문이 이어진다. 우호 언론을 활용한다면 과연 어떤 논리를 가지고 우리 회사를 감싸 줄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나오곤 한다.

    어떤 노력을 기해서라도 특정 언론을 우호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현재 상황에 반전이 생길 것인가 하는 것도 검토 주제다. 자칫 우호 언론들이 나서서 불완전 한 논리로 상황에 개입하는 경우 이해관계자(주로 규제기관)를 자극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심지어 기관의 수사나 조사를 받고 있는 경우 우호언론의 섣부른 개입은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변수들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계량할 수 있을까?

    위기 지속 기간을 줄여야 한다 vs. 어느 정도 시간을 끌어야 한다

    골치 아픈 주제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위기관리 목적에 있어서 위기의 지속기간을 최단기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조언을 한다. 하루 이틀에 적극 관리해 끝낼 수 있는 위기를, 몇주간 끌지 말라는 것이다. 위기 지속 기간이 짧을수록 이해관계자나 공중의 기억은 적어지고, 부정적 인식의 수준도 줄어 든다는 이야기를 한다.

    반면에 가능한 상황을 견뎌가며 장기적 대응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규제 및 수사 기관의 개입이 있는 경우 일반적으로 조사 및 수사 기간이 장기화 되기 때문에, 그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 관리 해 나가야 한다는 조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 예술적인 질문은 “일단 초기 상황은 적극관리 해서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인식을 선제적으로 관리해 놓고, 장기적인 조사나 수사 대응을 하는 것은 어떤가?”하는 질문이다. 예스나 노 또는 A or B로 답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련되어 있는 변수들을 먼저 보고 고민해야 하는 질문이다.

    위기상황이 이제 끝났다 vs. 아니다 아직 좀더 자중해야 한다

    언제쯤 다시 광고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찬 난감하다. 현재의 상황이 아직도 불타고 있는데, 마케팅 부서에서는 광고의 재개 일정을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영업부서에서도 여러 미래 예측 질문을 해 온다. 최초 상황이 어느 정도 관리되었고, 언론기사가 줄고, 온라인에서의 관심도 상당수 사라진 것 상황이 되면 그런 질문들을 더욱 더 잦아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여론 상황이 아직도 불안정하다는 지표와 수치들을 보여주며, 일정 기간 좀 더 자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예술적 질문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다음주부터는 어떤가? 다음 달 초부터는 어떤가?”같은 질문들이다. 일부에서는 전문가의 예상과 예언을 혼동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여러 예술적 위기관리 주제들은 거의 모든 위기관리 현장에서 반복되고 반복된다. 유사해 보이는 위기 상황에서도 기업에 따라, 때에 따라, VIP의 의중에 따라, 임원들의 내부정치적 입장에 따라, 규제나 수사기관의 움직임에 따라, 그 외 더 많은 자잘한 변수들에 따라 대응방식이나 방향까지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 때 그 때 마구 쏟아지는 예술적 고민 주제들을 다루어 가며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를 과학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예술적인 질문에 대해 적확한 답을 바로 내놓지 못하는 전문가들이 한심스러울 것이다. 전문성 자체에 대한 의심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속이 시원하기는 커녕 위기상황 보다도 더욱 답답할 수 있다.

    그래서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모든 위기관리를 관통하는 정답은 없다고 말한다. 대신 해답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또한 예술적인 이야기다. 지금도 위기관리에 관심을 두고 위기관리를 공부하려 하는 여러 실무자들에게는 위기관리를 과학이라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먼저 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위기관리를 바라보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때로는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정답 보다 해답을 찾는 노력이 현실적일 수 있다. 최선의 방안을 찾아야지 완전한 방안을 찾으려 해서는 힘들기만 할 뿐이다. 어느 정도 리스크를 감당하더라도 실행해야 할 대응도 있을 수 있다. 윤리적이거나 도의적으로 일부 문제가 있는 대응 방식을 과감하게 선택해야 할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선 회사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극약 처방을 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가 입은 데미지가 생사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대응역량과 예산을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결정 속에는 사람이 있고, 예술이 있다. AI는 과연 그런 현실을 사람보다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까?

  • VIP가 위기관리를 리드해야 하는 이유

    [The PR 기고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수많은 위기관리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위기관리 성공 포인트 중 하나가 ‘VIP가 직접 위기관리를 리드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어느 누구도 위기가 발생되면 VIP는 물러서 계셔야 한다 던가, 위기의 책임으로부터 VIP를 자유롭게 하라는 등의 조언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마다 VIP는 직접 위기관리 전반을 리드하고, 스스로 책임지고, 어떤 것에도 자유롭지 않게 노심초사해야만 하는 걸까? 그래야만 위기가 관리되는 것일까?

    오랫동안 일선에서 기업 위기관리 케이스를 인하우스와 함께 하다 보면, 기업 간 확연하게 목격되는 다름은 VIP의 관여도의 차이다. 어떤 기업에서는 심각한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VIP가 좀처럼 대책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평상시와 같은 의사결정 속도와 프로세스를 밟으며, VIP는 위기관리 위원회의 상황 요약과 종합된 의견을 보고 받기 원하신다. 그러한 의사결정의 장소에도 특정 고위 임원이 단독으로 들어가 알현하고 윤허를 받는 식으로 위기대응이 결정된다. 한시가 급한 시기임에도 그러한 의전은 지켜진다. 만약 종합된 위기관리위원회의 의견이 VIP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에는 위원회의 논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반면, 어떤 기업은 위기가 발생되자 마자 VIP가 위기관리위원회 자리에 착석을 한다. 구체적 상황보고를 직접 받고, 논의를 이끌어 나간다. 대응책 마련을 위해 사내 담당자들과 외부 컨설턴트들에게 VIP는 계속 질문을 한다. 어떤 내용도 따로 요약을 하거나 정리해 재보고 할 필요가 없이 그 자리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대응 의사결정을 내린다. 일정 기간 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는 하지만, 보다 실질적인 대응이 가능해 진다.

    이 두 타입의 기업 중 어떤 기업이 상대적으로 성공적인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지는 쉽게 예상 가능하다. 뛰어난 위기관리위원회와 외부 컨설턴트 그룹을 보유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한 대응 훈련과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해도, VIP의 관여는 필수적이다. 우수한 위기관리 조직에서 VIP의 관여는 화룡점정의 의미를 지니고, 부족한 위기관리 조직에게 VIP의 관여는 위기관리를 위한 버스터(booster, 촉진제)의 의미를 가진다.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위기관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 왜 VIP가 깊이 관여해야 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리해 본다.

    첫째, VIP가 해야 빠르다

    의사결정 단계를 최소화한다는 것은 위기관리 체계에 있어 기본 중 기본이다. 이를 위해 현장의 판단을 존중하는 체계(Commander’s Intent)도 있는 것이고, 심지어 선조치 후보고라는 원칙도 생겨났다. 위기 발생 직후 위기대책회의에 VIP가 참석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신속한 대응 측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또한 일선 임직원이 내릴 수 있는 의사결정의 수위는 항상 제한적이다. 대리가 내릴 수 있는 위기대응 의사결정과 부사장이 내릴 수 있는 위기대응 의사결정의 수위는 다르다. 계속해서 담당 임직원이 의사결정 수위를 점검하며 주저할 때 VIP는 그 자리에서 바로 VIP 수위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려 줄 수 있다. 일선 인력이 주저하며 허비하는 물리적 시간을 없애 버릴 수 있다. 당연히 의사결정이 빠르니 대응도 빨라진다.

    둘째, VIP가 해야 하나가 된다

    위기관리를 전사적 업무라고 이해하는 기업 구성원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재무부서에서는 왜 우리가 홍보부서에서 겪고 있는 위기를 함께 해 주어야 하는지 의아해한다. 왜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 대응 회의에 영업부서들까지 들어가야 하는지 묻는 임직원도 있다. 반대로 법무부서나 홍보부서 등은 왜 거의 모든 회사 위기에 불려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불만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절대로 위기 앞에서 기업 구성원들은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VIP가 직접 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착석하여 의사결정을 독려하면 구성원은 비자발적이라도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부서별로 생각과 판단을 이야기하게 된다. 이는 모든 부서가 VIP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대응을 논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VIP의 가시성이 해당 위기의 중대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많은 부서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일단 하나가 된 의사결정그룹은 위기관리에 성공할 가능성을 높인다.

    셋째, VIP가 해야 과감 해 진다

    부실한 아파트 시공 문제를 지적 받은 건설사가 있다고 치자.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판의 여론이 생겨 회사 존립이 어려워질 수준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자. 수천억에 이를 수도 있는 ‘헐고 다시 짓기’ 의사결정을 사내에서 누가 나서서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일단 회사가 살아야 하니 내가 나서서 의사결정 하겠다는 과장이나 이사가 나올 수 있을까?

    이미 대량 판매한 고급 화장품에서 법적으로 문제 있는 성분이 들어있었다는 보도를 맞게 된 기업이 있다고 치자. 직후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소비자의 불만과 반품 및 환불 요구를 상상해 보자. 수십에서 수백억원에 이를 수도 있는 몇 만 소비자 불만에 대한 대응방안을 사내에서 누가 의사결정 할 수 있을까? VIP가 대책회의에 들어오셔서 “소비자 불만 없게 무조건 전량 환불 조치해 줍시다” 한 마디면 위기관리는 성공에 가까워지는데, VIP와 연락도 가능하지 않다면 해당 위기 상황은 어디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까?

    넷째, VIP가 해야 믿는다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언론을 피해 숨는 VIP가 있고, 언론 앞에 나서는 VIP가 있다. 좋은 뉴스에는 자주 언론에 비춰지기를 즐기시던 VIP도 위기가 발생되면 태도를 바꾸시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평시에는 언론을 가깝게 하지 않으시다가도 위기가 발생되면 언론 앞에 나서시려는 VIP도 있다. 어느 VIP가 국민 그리고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더욱 신뢰를 받을 수 있는지는 자명하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위기 시에는 기업 VIP의 가시성을 키우라는 전략적 조언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화 해 인식한다. 흔히 기업을 좋은 기업 나쁜 기업이라 칭하는 것에서도 인간화 개념은 그 기반이 된다. 기업을 인간처럼 인식한다고 했을 때 그 얼굴이 되는 것은 VIP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그 기업의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위기 시 기업의 빌딩이나 로고, 유리 창구, 전화 속 기계음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원할 때 앞으로 나서 얼굴을 드러내며 회사의 입장과 계획을 커뮤니케이션 해 주는 VIP가 성공요인인 이유다. 사람들이 일단 믿어야 위기관리도 성공한다.

    다섯째, VIP가 해야 따른다

    일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상황관리 보다 먼저 가는 케이스들이 있다. 일단 VIP가 신속하게 의사결정 하셔서 과감하게 배상안을 마련해 커뮤니케이션 한 것과 같은 경우다. 사람들이 그 계획을 듣고는 이내 비판을 누그러뜨리게 되었고, 언론을 비롯한 관전자들이 해당 의사결정의 과감성에 의미를 두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위기관리가 이제 마무리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배상과 관련된 직접적 이해관계자 일부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누가 실제 책임을 지고 어떻게 그 배상 부담을 나누어 져야 하는가에 의견이 갈린 것이다. 실무그룹이 서로 왕래하며 배상안 실행을 위한 논의를 이어 나가지만 이해관계자들의 설득과 동의가 지난하다. 이런 경우에도 VIP들끼리의 담판이나 합의가 있으면 사후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된다.

    흔히 VIP들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말을 한다고는 하는데,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위기관리는 성공에 더욱 가까워진다. 위기 상황에 대해 일부 실무적 책임감을 느끼는 임직원들도 이런 경우에는 VIP를 따르며 협조자와 해결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 그들은 자신의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위기관리의 걸림돌 또는 훼방자의 역할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VIP가 해야 일관성이 생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표이사를 해임해 버리는 기업이 있다. 위기 발생의 책임을 묻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회사를 대표하는 누군가는 위기관리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너가 있는 경우에는 오너가 직접 그 역할을 대행하기도 한다. 해임된 전임 대표이사는 개인적으로는 불명예스럽지만, 힘들고 어려운 위기관리 과정을 이끌지 않아도 되어 차라리 홀가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위기가 발생되자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린 VIP, 이후 위기관리를 다 마친 것처럼 보여주는 회사의 태도는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VIP가 위기관리 전반을 리드하는 경우 사람들은 최소한이라도 해당 위기관리의 일관성에 신뢰를 가진다. 피해자, 분노자, 비판자 등은 해결자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VIP를 보고 싶어한다. 그런 상황에서 VIP가 사임 또는 해임되어 사라져 버리고, 그 역할을 해 줄 사람은 보이지 않은 채 위기관리를 마무리하려는 회사가 있다면 그에 대한 결과는 뻔한 것이다. 끝까지 마무리해 줄 수 있는 해결자로서의 VIP는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일곱째, VIP가 해야 개선과 재발방지가 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위기발생 시 원칙으로 개선을 약속하고,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커뮤니케이션을 해 급한 불을 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 약속은 실제로 지켜지지 않거나, 아주 일부만의 제스츄어로 마무리된다. 실제 그 약속이 지켜졌는지 지켜지지 않았는지가 확인되는 시기는 유사한 위기 상황이 재발하는 경우다. 그 때 가면 왜 지난 개선 및 재발방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가 하는 더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일부 기업은 그런 경우에도 다시 개선과 재발방지를 강하게 약속하며 큰 불을 끄려 한다.

    국민들과의 약속이 있었다면 그 약속은 최초부터 VIP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의지를 관철하는 것도 VIP가 되어야 한다. VIP가 직접 그 약속 내용을 기억하며 개선과 재발방지 조치를 완성해 낼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도 존재한다. 일단 그 약속을 믿어보자 하는 국민들의 생각도 VIP를 보며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중요한 책무를 완성시킬 수 있고, 시켜야 하는 사람도 VIP다. 다른 사람이 리드 할 수 있는 얼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와 같이 VIP는 위기관리를 위해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기업내 핵심 자산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과 전문가들은 위기 발생 시 해당 기업 VIP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한다. VIP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하고, 그의 입에서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를 기대한다. 혹시나 직면한 위기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숨으려 하는 것은 아닌지를 의심의 눈초리로 살핀다.

    위기관리가 잘 되면 사람들은 VIP가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리드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가진다. 반대로 위기관리가 잘 안되면 VIP가 적절한 역할을 해 주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비판한다. 결국 위기관리 성패에 있어 모든 사후 평가는 VIP가 홀로 지게 되는 것이다. VIP는 어떤 경우에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로워지고 싶어 할수록 문제는 더욱 더 커지게 된다. VIP가 위기관리를 직접 리드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