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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구일원화와 창구다양화는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창구일원화는 외부로 나가는 모든 메시지를 지정된 하나의 창구를 통해서만 내보내는 체계이고, 창구다양화는 이해관계자별로 지정된 여러 창구가 하나의 메시지를 나누어 전달하는 체계입니다. 둘은 대립하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어느 쪽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변수는 창구의 수가 아니라 회사가 하나의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입니다.

    창구일원화는 원보이스가 어렵기 때문에 나온 차선책입니다

    위기가 오면 모든 구성원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원칙이 먼저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현장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대표이사와 임원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말이 나오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온 차선책이 창구를 좁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 수 없다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이자는 접근입니다. 창구를 좁히는 것은 통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실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됩니다. 임원들은 자사의 공식 메시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의 취재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응하다 문제를 키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간 한마디를 되돌리는 비용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의 창구로 감당되지 않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창구일원화의 원형은 대언론 커뮤니케이션에서 나왔습니다. 상대가 언론 하나였을 때는 홍보실 하나로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하나의 위기에 언론, 규제기관, 수사기관, 국회, 고객, 투자자, 협력사, 시민단체, 커뮤니티가 동시에 관여합니다. 각각이 요구하는 정보의 성격도, 대응의 속도도, 필요한 전문성도 다릅니다. 한 부서가 이 전부를 감당하려면 그 부서가 회사만큼 커져야 합니다.

    창구를 하나로 유지하려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대응의 지연입니다. 창구는 하나인데 처리량이 넘치면, 답을 받지 못한 상대들이 각자 다른 경로를 찾아 나섭니다. 통제하려던 시도가 통제 밖의 접촉을 만들어 냅니다.

    창구다양화는 창구를 늘리는 것이지 목소리를 늘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가장 자주 오해되는 지점입니다. 창구다양화는 각 부서가 각자의 판단으로 말하기 시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의 합의된 메시지를 여러 창구가 나누어 전달한다는 뜻입니다. 늘어나는 것은 창구의 수이고, 늘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목소리의 수입니다.

    구분하나의 목소리여러 목소리
    창구 하나창구일원화. 전통적인 안전판이며 실행 난도가 가장 낮음원칙이 선언만 되어 있는 상태. 지정되지 않은 창구가 이미 작동하고 있음
    창구 여럿창구다양화. 다양성 환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체계창구다변화. 회사가 스스로 모순된 메시지를 노출하는 통제 상실 상태
    표. 창구의 수와 목소리의 수 — 스트래티지샐러드

    오른쪽 아래가 실무에서 가장 두려운 자리입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영업과 생산과 법무와 인사가 제각각의 사실관계와 해석을 내놓는 순간, 기자는 그중 가장 말이 헐거운 곳을 찾아 그 한마디를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보도합니다.

    회사 안에는 이미 창구가 여럿 있습니다

    창구다양화는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회사에는 이미 이해관계자별 접점이 나뉘어 있습니다. 언론은 홍보실, 정부와 국회는 대외협력, 수사기관과 규제기관은 법무, 고객은 고객만족 부서, 투자자는 재무 담당이 상대합니다.

    창구다양화는 이 접점들의 역할을 위기 시에 커뮤니케이션 창구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입니다. 여기에 회사의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과 주요 커뮤니티처럼 새로 생긴 매체별 접점을 창구로 추가합니다. 구조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구조에 메시지와 권한을 붙이는 작업입니다.

    창구다양화가 성립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창구를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다양화는 아무나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사람만 답하는 것입니다. 임명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창구일원화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둘째, 임명된 창구는 전원 대변인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창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훈련 대상이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셋째, 각 창구는 문의를 받는 즉시 그 사실과 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홍보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 공유가 끊기면 회사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게 됩니다.

    넷째, 핵심 메시지가 사전에 합의되어 모든 창구에 공유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원보이스의 실체입니다. 창구일원화 역시 물리적으로 창구를 하나로 묶는 것만이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동일한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체계를 뜻합니다. 이 체계가 서 있다면 창구를 항상 하나로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원보이스가 서지 않으면 창구일원화로 돌아와야 합니다

    네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창구만 늘리는 것은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그것은 창구다양화가 아니라 창구다변화이며, 회사가 스스로 통제를 포기하는 결정입니다.

    판단은 단순합니다. 지금 이 회사가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창구에 정확히 실어 보낼 수 있는가. 답이 그렇다면 창구다양화가 더 나은 체계입니다. 답이 아니라면 창구일원화로 돌아와야 합니다. 창구일원화는 원보이스 역량이 부족한 조직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안전판이기 때문입니다.

    이 판단은 회사의 이상이 아니라 현재 역량을 기준으로 내려야 합니다. 다양화가 이상적인 체계라는 것과 우리 회사가 지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어느 쪽을 택할지 판단할 때 확인할 것

    지금 이 사안의 핵심 메시지가 문서로 정리되어 있는지 먼저 보십시오. 정리된 메시지가 없으면 창구가 몇 개든 목소리는 갈라집니다.

    각 부서의 창구가 이름으로 지정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부서 단위로만 정해져 있으면 실제 상황에서는 전화를 받은 사람이 창구가 됩니다.

    그 창구들이 최근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지 짚어 보십시오. 임명과 훈련 사이의 간격이 실패가 발생하는 자리입니다.

    창구가 받은 문의가 홍보실로 모이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보십시오. 이 경로가 없으면 다양화는 분산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표이사와 최고경영진이 이 원칙의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공유되어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최상단에서 한 번 깨지면 아래에서 쌓아 온 체계는 그 자리에서 무너집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원칙의 정의와 적용 범위를 다룹니다.
    대변인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맡는 사람의 역할입니다.
    미디어 트레이닝이란 무엇인가: 창구를 늘리면 훈련 대상도 늘어납니다.
    이해관계자란 무엇인가: 창구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개념입니다.

  • 상황관리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상황관리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실제로 하는 조치를 정하고 실행하는 영역입니다. 사고를 수습하고, 피해자를 돌보고, 제품을 회수하고,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는 일이 여기에 속합니다. 위기관리는 이 상황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두 축으로 이루어지며, 두 축 가운데 앞서는 쪽이 상황관리입니다.

    상황관리는 말이 아니라 조치입니다

    위기가 오면 회의실에서 가장 먼저 오가는 말은 대개 무엇을 발표할 것인가입니다. 그러나 발표할 내용을 만드는 일과 사태를 실제로 해결하는 일은 다른 작업입니다.

    상황관리의 산출물은 문장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회수 결정, 보상 기준, 원인 조사 착수, 재발 방지책, 조직 개편 같은 것들입니다. 이 산출물이 없는 상태에서 나가는 말은 설명이 아니라 약속이 되고, 지켜지지 않은 약속은 다음 위기의 재료가 됩니다.

    상황관리는 네 가지 일을 순서대로 합니다

    첫째는 사실 확인입니다. 무엇이 언제 어디서 왜 벌어졌고 지금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합니다. 이 단계를 건너뛰면 이후의 모든 판단이 추정 위에 놓입니다.

    둘째는 조치 결정입니다. 확인된 사실 위에서 회사가 무엇을 할 것인지, 누가 언제까지 할 것인지를 정합니다. 이 자리에서 결정되지 않은 일은 밖에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실행입니다. 결정한 조치를 실제로 집행하고 그 과정을 기록합니다. 기록이 없으면 나중에 증명할 수 없습니다.

    넷째는 검증입니다. 그 조치가 실제로 상황을 바꾸었는지 확인합니다. 바뀌지 않았다면 조치를 바꾸어야지 표현을 바꿀 일이 아닙니다.

    주관은 홍보가 아닙니다

    상황관리를 홍보실에 맡기는 회사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수와 보상과 원인 규명은 홍보실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상황관리의 주관은 사업, 안전, 품질, 생산, 법무처럼 그 조치를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부문입니다. 홍보실은 그 결정에 참여하되 대신 결정하지 않습니다. 두 축의 책임자가 각각 지정되어 있지 않으면, 급한 쪽이 다른 쪽을 밀어냅니다.

    행동이 소통을 이끌어야 합니다

    위기에서 경영진이 마주하는 가장 큰 유혹은 실체보다 소통을 앞세워 상황을 뒤집으려는 조급함입니다. 이 조급함은 대개 전략적 판단이 아니라 심리적 압박에서 나옵니다.

    소통 행위 자체가 하나의 사건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사실, 사과문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기사거리가 되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조치가 먼저 서고 그 실체를 정확히 전달하는 경우, 소통은 주인공이 아니라 행동을 증명하는 조연이 됩니다.

    아직 준비된 조치가 없다면, 설익은 발표로 스스로 논란을 키우기보다 홀딩 메시지로 시간을 확보하고 대응의 내실을 갖추는 편이 낫습니다. 행동이 뒷받침된 소통만이 상황을 되돌립니다.

    상황관리가 아닌 것

    사업연속성계획과 다릅니다. 설비 복구, 생산 대체, 공급망 복원처럼 사업 자체를 되살리는 일은 별도의 전문 영역이며, 위기관리에서 말하는 상황관리와 목적이 다릅니다.

    법무 대응과도 다릅니다. 법적 유불리 판단과 소송 전략은 법률 대리인의 영역입니다. 위기 국면에서 법무 검토와 상황관리는 나란히 진행되지만 서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여론 대응도 아닙니다. 여론을 읽는 일은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데 쓰이는 것이지, 여론에 맞추어 조치를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상황관리가 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

    지금 회의에서 논의되는 것이 조치인지 표현인지 확인해 보십시오. 두 가지가 섞여 있으면 둘 다 부실해집니다.

    발표 직전에 발표할 조치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다시 확인하십시오. 존재하지 않는 조치를 발표하는 순간 다음 위기가 시작됩니다.

    각 조치에 담당자와 기한이 붙어 있는지 보십시오. 붙어 있지 않은 조치는 결정된 것이 아니라 언급된 것입니다.

    외부 자문을 받고 있다면 그 자문이 어느 축을 다루는지 물어보십시오. 커뮤니케이션만 자문하는 곳에 상황관리까지 기대하면 위기 한복판에서 공백이 드러납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상황관리를 뒤따르는 다른 한 축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조치가 정해지기 전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위기관리 골든타임이란 무엇인가: 두 축이 함께 굴러야 하는 시간대입니다.
    위기관리 시 포지션이란 무엇인가: 조치가 정해진 뒤에 입장이 섭니다.

  • 사과보다 선행해야 하는 것?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관점에서 사과 방식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스터디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기업의 사과 사례를 모으고, 사과문 구조와 메시지를 분석하고 있지요. 저희도 사과문을 내 본 경험이 있는데, 이런 준비가 더 나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준비에 대한 조언이 있으실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일반적으로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사과문을 붙들고 씨름하는 기업이 대부분인데 그런 준비를 미리 하신다니 대단합니다. 홍보실이 고민해 문안을 쓰고, 고치고, 여기저기 검수를 받는 데 아까운 시간을 다 빼앗기는데 말이죠. 그렇게 형식과 전략, 프로세스를 미리 개발해 공유해 두신다면 실제 위기 때 훨씬 수월하고 신속하게 제대로 된 사과문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 준비 과정에서 꼭 함께 짚어 보셨으면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과연 사과가 사과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과가 존재하려면 그 앞에 맥락(context)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왜 벌어졌고, 누가 어떻게 다쳤으며, 사람들은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그리고 사과하는 기업 측에서 그 맥락 전반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이해 없이 내놓는 사과는 진짜 사과가 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진짜냐 아니냐’의 기준은 문구나 형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과를 받는 대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가, 곧 수용성(acceptance)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다듬은 문장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과가 아니지요. 그래서 맥락에 대한 기업측의 이해가 핵심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얼핏 그런 이해라는 것이 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기업이 바로 이 이해의 단계에서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습니다.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어디까지가 우리 책임인지에 대해 부서마다 의견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시간에 쫓기지요. 결국 이해가 일부만 진행된 상태에서 “사과를 안 할 수는 없으니 일단 하자”는 결론으로 떠밀려 갑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어설픈 사과의 상당수가 이렇게 태어납니다.

    그러니 사과문의 형식을 연구하시는 만큼, 이 이해의 과정과 방식에 대한 내부 고민도 함께 해 두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이해를 잘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정답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핵심은 하나 있습니다. 기업의 정무감각입니다. 달리 말하면 기업의 입장에서 여론을 읽고 공감하는 역량이지요. 이것은 매뉴얼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연마해야 하는 것이고, 그중 상당 부분은 최고의사결정권자의 영역입니다.

    이런 전제와 선행 없이 맨 끝단의 사과에 대해서만 체계를 만든다는 것은, 영혼 없는 마네킹을 만드는 일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옷은 잘 갖춰 입었고 자세도 반듯한데, 정작 아무도 그 앞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죠. 사과문의 구조를 연구하시는 그 스터디에, ‘우리는 이 맥락을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를 묻는 단계를 가장 앞에 놓아 보시기 바랍니다. 사과의 품질은 결국 거기서 갈릴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 CEO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대표께서는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면 되겠냐 한탄을 하십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그런 권리를 행사하면 왜 안되냐는 거죠. 홍보실에서는 계속 불안합니다. 기자들과의 자리는 만들지 않으면 되는데, 개인적으로 하시는 소셜미디어가 문제지요. CEO의 표현의 자유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보실의 그런 불안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한탄도 이해는 됩니다. 다만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대표께도, 저에게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없지요.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말한 뒤의 책임까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표님의 입을 막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활을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쏠 자유는 있어도, 그 화살이 날아가 일으킨 일까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지요. 원치 않는 오해를 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법적인 다툼으로까지 번집니다. ‘말할 자유’는 있어도 ‘그 말의 결과에서 도망칠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표현의 자유의 진짜 얼굴입니다.

    여기에 CEO라는 자리의 특별함이 더해집니다. 대표님은 회사를 ‘내 회사’라고 느끼시겠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면 회사와 주주로부터 경영을 ‘맡은’ 사람입니다. 남의 소중한 것을 대신 맡아 지키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법에서는 ‘수임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피듀시어리(fiduciary)’라고 하는데, 말은 거창해도 뜻은 단순합니다. 나를 믿고 맡긴 사람들의 이익을 내 기분보다 앞에 두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개인’과, 맡은 것을 지켜야 하는 ‘수임자’가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지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제 기분대로 핸들을 꺾을 수 없듯, 회사를 맡은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다 가지려 하니 늘 갈등과 스트레스가 따라오는 것이죠. 결국 어느 하나는 택하셔야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실지, 책임 있는 수임자로 사실지.

    그렇다면 CEO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요. 바로 회사 이야기 안에서입니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 우리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대표님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부어도 좋을 주제가 회사 안에 이미 넘쳐납니다. 사실 이것들만 부지런히 이야기해도 하루가 모자란 것이 CEO입니다. 표현의 욕구는 바로 그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푸시면 됩니다.

    사회적으로 구설에 오른 CEO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분들의 ‘하고 싶은 말’은 예외 없이 ‘그만한 책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놓고 하면 안 될 말’만이 아닙니다. CEO가 한 말 가운데 조금이라도 ‘적절하지 않은 말’은, 그게 무엇이든 문제가 됩니다. 그 기준은 개인의 상식이 아니라 맡은 자리의 무게에 맞춰지니까요.

    정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싶으시다면, 그건 은퇴 후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가 마음껏 찾으시면 됩니다. 그 자리에 계신 동안만큼은, 하고 싶은 말보다 지켜야 할 책임이 늘 반걸음 앞선다는 것. 이것이 CEO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일 것입니다.

  • 창구일원화가 부담되는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전문가들이 평시나 위기 시 창구일원화를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사실 저희 홍보실은 창구일원화가 부담이 됩니다. 저희에게 아무 정보가 없는데, 기자 문의를 받는 것이 힘듭니다. 차라리 각 부서에서 기자들에게 잘 답변해 주면, 결과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어떤 상황인지 알겠습니다. 정작 손에 쥔 정보는 없는데 기자 문의는 홍보실로 쏟아지니 창구일원화가 부담스럽다는 말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부담의 원인을 창구일원화에서 찾으시면 해법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니 문제입니다.

    창구일원화는 전 세계 대부분 기업이 평시와 위기 시를 막론하고 사내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기업이 같은 원칙을 채택해 실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구가 여럿으로 흩어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창구를 하나로 모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보다 훨씬 많고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지요.

    창구가 다변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같은 사안을 두고 부서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갑니다. 영업, 생산, 법무, 인사가 제각각의 사실관계와 해석을 내놓는 순간, 기업은 스스로 모순된 메시지를 외부에 노출하게 됩니다. 기자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습니다. 부서를 한 곳씩 찔러 보며 가장 말이 헐거운 약한 고리를 공략하고, 거기서 나온 한마디가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둔갑해 보도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담당자의 부주의한 발언 하나가 법적 리스크로 번지기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통제 불능입니다. 누가,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회사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위기 시 책임 소재마저 흐려집니다. 톤과 수위가 제각각인 목소리들은 결국 내부 혼선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구 다양화가 꼭 필요하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다변화가 목소리까지 갈라지는 상태라면, 다양화는 창구의 수만 늘고 목소리는 하나로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첫째, 부서별로 언론 창구를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다양화란 ‘아무나’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사람만 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둘째, 그렇게 임명된 창구들은 집중적인 대변인 트레이닝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각 대변인은 언론의 문의를 받는 즉시 그 사실과 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홍보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런 내부 체계와 공적 실행이 갖춰지지 않은 채 창구만 흩어 놓는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을 부르는 길입니다. 나아가 이는 홍보실의 직무유기와도 맞닿는 문제이기에,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부서별 공식 창구를 임명하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실시간 공유 체계를 만들고, 그 다수 대변인을 지속적으로 관리,점검,감독하는 일.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시겠습니까? 그 복잡한 길보다 훨씬 단순하고 확실한 길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에서 홍보실로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흘러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홍보실이 사내에서 정보에 대한 임파워먼트를 확보하여, 명실상부한 유일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홍보실이 힘든 진짜 이유는 창구일원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창구를 흩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홍보실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정보 없는 창구는 부담이지만, 정보를 쥔 창구는 기업의 강력한 방패입니다. 홍보실의 존재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관련 개념 · 창구일원화란 무엇인가 · 창구일원화와 창구다양화는 어떻게 다른가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경영이냐? 관계냐? 그것이 문제?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는 투자사업부서 임원인데요. 홍보실에 불만이 많습니다. 일부 온라인매체에 익명 소스발로 저희 투자내용 관련 루머들을 기사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때마다 저는 강력하게 대응하자 하는데, 홍보실은 관계도 중요하다며 대응에 수동적입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사업부와 홍보실, 사실 둘 다 틀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익명 소스발 루머 기사에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사업부의 주장도 이해가 됩니다. 언론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홍보실의 입장도 현실적입니다. 문제는 이 두 입장이 충돌할 때마다 매번 같은 논쟁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반복 자체가 이미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죠.

    이런 상황이 자꾸 발생한다면, 그것은 사업부와 홍보실 중 누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최고경영진이 명확한 방향성과 원칙을 세우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익명 소스를 통해 반복적으로 시장 루머가 기사화되고, 그것이 실제 투자 사업에 타격을 주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어떻게 됩니까. 어느 시점에 가서는 그 루머로 인한 손실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손실이 확정된 이후에는 회복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응의 기준은 손실이 실제로 발생하는 시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손실 가능성이 존재하는 그 순간부터 원칙에 따라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부적으로 먼저 합의되어야 할 방향입니다.

    그 합의의 핵심은 일관성입니다. 이럴 때는 대응하고, 저럴 때는 모른 척하고, 이 매체는 건드리지 않고, 저 매체에는 강하게 나가는 식의 비일관성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일관성 없는 대응은 언론에게 잘못된 신호를 줍니다. “이 회사는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는 인식이 생기면, 루머성 기사는 더 빈번해질 수 있습니다.

    원칙은 단순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거나 사실과 다른 내용이 기사화된다면, 홍보실이 일차적으로 정확한 사실관계를 반영시키기 위해 움직입니다. 해당 매체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는 법적 대응입니다. 소송의 대상과 규모 역시 일관된 기준으로 적용합니다.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의 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원칙을 홍보실이 혼자 세울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업부가 밀어붙인다고 해서 관철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최고경영진의 영역입니다. 최고경영진이 원칙과 방향에 먼저 합의하고, 대응 수위를 사전에 설정해 두어야 합니다. 그 위에서 사업부와 홍보실이 같은 방향으로 정렬될 수 있습니다.

    홍보실이 말하는 “관계”도 사실 이 원칙 안에서 관리되어야 합니다. 관계를 이유로 원칙을 흔드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마찰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루머성 기사를 허용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반복적으로 회사에 데미지를 끼치는 매체와의 관계는, 경영적 시각에서 냉정하게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 피해를 감수한다는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합의가 대응보다 어렵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회사에 문제가 발생되어 언론이 다루게 되면,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은 내부에서 대응에 대한 합의를 하는 과정입니다. 서로 언론기사들을 대하는 태도나 해석이 다르고요. 방법론에 있어서도 홍보실 의견을 잘 듣지 않습니다. 어떻게 개선을 할 수 있을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언론 기사가 나오자마자 긴급하게 소집된 대응 회의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절대 인정하면 안 된다”고 하고, 누군가는 “고객사 눈치가 보이니 일단 사과부터 하자” 하고, 최고 경영진은 “언론이 왜 이걸 다루는지 모르겠다”며 기사 자체를 부정합니다. 홍보실은 나름의 대응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건 홍보실 생각이고”라는 말과 함께 묻혀버립니다. 한 시간짜리 회의가 끝나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 상황을 보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저 자리에서 합의를 빨리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위기가 터진 그 순간에 처음 합의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늦은 것입니다. 위기 상황에서의 내부 갈등은 그 순간의 기술로 푸는 것이 아니라, 평시 만들어둔 구조로 풀어야 합니다.

    무엇을 평시에 만들어 두어야 할까요?

    첫째는 위기관리 의사결정 체계의 사전 문서화입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라도 하지요. 어떤 위기 상황에서 누가 최종 결정권을 갖는지, 각 부서 역할과 발언 범위는 어디까지 인지를 미리 정해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니 대응 회의실은 매번 각자의 경험과 직관과 부서 이익이 충돌하는 난전이 됩니다.

    둘째는 평시 위기관리 협의체의 운영입니다. 가상의 위기 시나리오를 놓고 주기적으로 모여 대응 방향을 논의해보는 시뮬레이션을 해두면, 실제 위기 상황에서 각 부서가 서로의 관점 차이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나는 의견 충돌과 한 번 겪어본 의견 충돌은 해소되는 속도가 전혀 다릅니다.

    셋째는 홍보실의 역할 재정의입니다. 홍보실이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실행 조직으로만 인식되는 한, 다른 부서들이 홍보실 의견을 전략적 판단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보도자료 쓰는 팀’의 의견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주도하는 팀’의 의견은 같은 내용이라도 회의실에서 받아들여지는 무게가 다른 것이죠. 이 포지셔닝은 홍보실 스스로 평시에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관련 지식과 정보를 조직 내에서 꾸준히 공유하고, 시뮬레이션을 주도적으로 리드하고, 경영진에 대한 미디어트레이닝을 주관하고, 이를 통해 경영진과의 신뢰 관계를 평소에 쌓아두는 것, 그것이 위기 순간에 홍보실 의견이 무게를 갖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핵심은 위기 시 다양한 시각들을 통합해 하나의 대응 방향으로 수렴시키는 ‘구조와 프로세스’가 있느냐입니다. 그 구조가 평시에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위기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내부를 먼저 흔들고 나서야 겨우 대응이 시작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됩니다. 지고지난(至苦至難) 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홍보팀에서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대표님께서 홍보팀에 향후 발생 가능한 OO위기건을 놓고, 준비차원에서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짜보라 하셨습니다. 홍보팀 차원에서 OO위기 발생 시 커뮤니케이션 팩을 만들어 보라 하셔도 힘든데, 전사 차원의 위기관리 시나리오 작업이 홍보팀 실무차원에서 가능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홍보팀이 단독으로 전사적 위기관리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표님의 지시 의도를 먼저 파악하셔야 합니다. 동일한 지시라도 해석에 따라 작업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해석은, 홍보팀이 전사 위기관리팀을 대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먼저 제시하고, 각 부서가 자기 역할에 맞는 대응 방안을 제출하면 홍보팀이 이를 취합해 통합 시나리오로 구성하라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식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홍보팀 관점에서 예상 위기 상황별로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적 밑그림을 그려보라는 지시일 수 있습니다. 이 역시 홍보팀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홍보팀이 부서 자체적으로 전사 대응전략과 방안까지 모두 설계해 내라는 의미라면, 이건 현실적이지 않은 지시입니다. 왜 그럴까요?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느 정도 사내 공통으로 수렴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과 방법론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각 부서마다 해당 위기 시나리오에 대한 책임의 유무와 강도가 다르고, 역할 배분과 의사결정, 그에 따른 활동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홍보팀이 이를 대신 정리해 주거나 독자적으로 완성할 수는 없는 것이죠.

    특히 최고의사결정그룹의 시나리오별 의사결정 방향이 먼저 설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정교한 대응전략과 방안도 사실상 나올 수 없습니다. 위기관리위원회나 멀티부서 협력체가 함께 작업한다 해도 의사결정그룹의 그런 전제 없이는, 그건 전략 문서가 아니라 그냥 상상화에 불과합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욕심을 내어 모든 상황, 모든 변수를 반영한 시나리오를 최대한 다양하게 개발하려 하는 경우입니다. 특정 위기유형 하나만 해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시나리오가 수십 개, 많게는 수백 개까지 만들어집니다. 그 각각에 서로 다른 대응전략을 매칭한다? 작업량만 폭발적으로 늘어날 뿐, 실전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단 하나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기관리 시나리오 개발 작업은 다른 위기관리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시작 전에 상하좌우가 동일한 프로젝트 정의와 범위, 그리고 방식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막연히 A4 용지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위기 시나리오를 그려 나가다 가는,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홍보팀의 무능함만 안팎으로 드러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대표님께 작업에 앞서 프로젝트 정의와 범위, 참여 주체,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사전 합의를 요청하시는 것, 그것이 이 상황에서 홍보팀이 취해야 할 가장 현명한 첫 번째 대응일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예상질의응답팩은 대체 왜?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이번 이슈로 사과 기자회견을 준비할 때 홍보팀이 기자들이 질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에 하나 하나 답변을 달아 ‘예상질의응답팩’이라는 걸 만들어 왔습니다. 대표인 제가 보기에는 실제로 그런 질문을 기자들이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나오지 않을 질문을 준비한다? 좀 이상한 거 아닌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예상질의응답팩의 목적과 효과 등에 대하여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상질의응답팩의 개발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을 앞둔 모든 경우 필수적 업무입니다. 준비 없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은 ‘안전 로프 없이 번지를 뛰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예상질의응답팩은 그런 생명줄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홍보실이 여러 루트와 분석을 통해 기자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논점들을 정리합니다. 그 논점간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그 순서에 따라 관련 부서들과 함께 질문과 답변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에서 답변을 종합하고 편집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회사의 핵심 메시지라는 것도 도출됩니다.

    많은 기업 홍보실무자들이 이 과정을 반대로 진행해 업무를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핵심메시지를 만들어 놓고, 그에 따라 질문에 답을 끼워 넣는 것이지요. 하지만, 먼저 우선순위에 따른 질문에 하나 하나 답을 달아 정리해 보고, 그 중 중요하고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답변들을 추출해 모으면 그게 바로 핵심메시지가 됩니다. 업무가 훨씬 빠르고 쉽게 되지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왜 기자들이 물어보지 않을 질문에도 답을 만드는 수고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을 만드는 그 과정은 홍보실만의 업무 과정이 아닙니다. 발생한 이슈에 관련된 모든 부서들이 예상되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함께 고민하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플랜은 아무것도 아니고, 플래닝이 전부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듯 그 고민과 합의의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해당 이슈에 대한 회사(모든 부서 구성원)의 핵심 포지션과 메시지들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위에서 메시지를 정해서 아래로 공유하는 탑다운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구성원들이 훨씬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내부의 메시지를 만들게 되니까요.

    결국 예상질의응답팩은 외부를 넘어 내부 커뮤니케이션 목적 또한 상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정 이슈가 갑작스럽게 발생했을 때, 회사 내부 관련 부서들은 각기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회사 공통의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 해 할 것입니다. 거래처나 각종 이해관계자, 파트너, 고객들에게 어떻게 이 상황과 회사의 노력을 설명해야 할지도 잘 정리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를 이슈발생 시 혼돈(chaos) 단계라고 부릅니다. 예상질의응답팩은 그런 혼동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정렬시키는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기자들이 그러한 여러가지 질문을 실제로는 묻지 않을 가능성이 높더라도, 그런 모든 질문에 회사가 준비된 답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혼돈에서 벗어나 안정감을 모두 공유하는 것이지요. 최악의 질문에도 준비되어 있고, 기자들의 어떤 시각에도 대응 가능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위기관리는 그런 준비 자체를 의미합니다.

    관련 개념 · 예상질의응답팩이란 무엇인가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홍보실 의견이 무시되는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매번 비슷한 고민입니다. 이슈나 위기 때 홍보실 의견은 회사에서 거의 무시 받습니다. 아무리 대응 의견을 보고해도 별로 그에 따르는 경우가 없거든요. 최근에는 우리가 대응 의견 보고해도 소용없다는 홍보실 내부 분위기까지 생겼습니다. 왜 회사에서는 홍보실 의견을 무시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이 주제는 상당히 흔하고 그럼에도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던 업계 고질적 고민입니다. 저희도 외부 컨설턴트로서 클라이언트 이슈나 위기 시에는 대응 전략과 보고를 반복합니다. 무엇이 가장 이상적이고 현실적인 대응 전략인지, 그리고 그 전략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방법들은 무엇인지를 따져 공유합니다. 그러나 그중 클라이언트가 수용해 실제 실행까지 옮겨지는 대응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래도 클라이언트 쪽에서 볼 때 저희 보고와 제안이 상황 이해의 기반이 되거나, 특정 방향타로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그나마 만족하고 있습니다. 보고나 제안이 그냥 무시된다 거나 사라져 버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기업 홍보실에서는 나름 서운한 감정이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 ‘대응 전략과 방안을 제시해 보았자 무시당할 테니까’ 같은 내부 분위기까지 생겼을 정도라면 큰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홍보실의 의견이 이슈나 위기 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요? 현실적인 이유는 몇 가지로 추려집니다.

    첫째, 홍보실의 대응 전략과 방안은 사실 사내 여러 의견 중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홍보실은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당면한 이슈나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고의사결정그룹은 그 외에도 상당히 여러 기능과 분야에 대한 대응 옵션들을 동시에 고민해야 합니다. 따라서 어떤 것이 우선순위인가 하는 기준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때때로 뒤로 밀리는 경우들이 생기곤 합니다. 그 외에도 일부 홍보실의 경우에는 전략(why)보다 무엇을(what) 하겠다는 식의 대응 방안 보고가 많아서, 윗분들이 보시기에 약간 편협하고 수단 중심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번째, 홍보실 대응 전략과 방안이 다른 대응 부서들의 것과 서로 정렬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홍보실의 대응은 기본적으로 법무, 대관, 영업, 마케팅, 인사, 생산, 기획, 재무 등의 대응과 궤를 같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급히 만들어진 상황 대응 중심의 홍보실 의견은 때때로 다른 부서 전략과 상충되거나 중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홍보실 의견이 상대적으로 이질적으로 보여지는 것이죠. 이는 정렬되지 않은 의견을 내는 다른 부서들에게도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는 체계적인 문제입니다. 앞서 설명 드린 내부 정렬 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각 부서간 강한 사일로(silo)가 있고 상호 비밀주의가 있어 서로 정보나 전략이 공유되지 않는 체계가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부서들이 서로 각자 길을 가니, 최고의사결정자도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선택을 어려워합니다. 그 과정에서 홍보실 의견도 다른 부서들의 것과 같이 운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를 깊이 고민해 내부 체계적 개선 주제로 삼아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매번 반복된다면 그 이유도 비교적 확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확실한 이유를 찾아 변화시켜 보는 것이 ‘매번’이라는 고질적 상황을 극복하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