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위기관리, 기업이 묻고 컨설턴트가 답하다

8월 082026 0 Responses

위기, 이렇게 라도 끝낼 수 있다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기업이 발생된 위기를 종결시키는 방식, 예를 들면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 수용 같은 것으로, 극대화된 위기상황을 종결로 이끈다는 전략이 있더군요.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강력한 결정으로 대형 위기를 종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먼저 한 가지 전제부터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기를 기업이 ‘종결시킨다’는 표현 속에 담긴 생각이 그것입니다. 과연 위기의 종료를 기업이 결정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위기의 종료는 기업이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지켜보던 이해관계자들 전반의 공유된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언론이 관심을 거두고, 여론이 시선을 옮기고, 피해자와 규제기관이 각자의 정리를 마치는, 공식 문서 한 장 없는 비공식적 흐름이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합의이지요. 기업은 그 합의의 형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입니다. 위기를 우리 손으로 끝낼 수 있다는 생각은, 통제 불가능한 것을 통제 가능하다고 믿는 위험한 착각입니다.

그렇다면 말씀하신 사업 철수, CEO 교체, 법적 판결의 수용 같은 강력한 결정들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종료의 ‘선언’이 아니라, 거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종료를 ‘구매’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사업 철수는 사업 그 자체를 지불한 것입니다. CEO 교체는 리더십을 지불한 것이지요. 이해관계자들이 ‘이 정도면 되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만한 값을 치르고, 그들의 합의를 앞당겨 사 오는 것입니다.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곧 권한의 증거는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심판에게 몰수패를 요청해 경기를 끝내는 것과 같습니다. 경기는 분명 끝났지만 누구도 그것을 경기 운영 능력이라 부르지 않지요. 오히려 그 거대한 가격표야말로, 위기의 종료 시점을 기업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사실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스스로 끝낼 수 있었다면 그런 값을 치를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진짜 질문은 ‘이 방식이 효과적인가’가 아닙니다. ‘왜 이런 대가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는가’입니다. 사업과 리더십을 내놓아야만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얻을 수 있는 지경이라면, 그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관리의 영역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 앞의 수많은 갈림길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위기관리의 정의가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적시에 하는 것. 이 정의는 궁지에 몰려 사업과 CEO를 내놓는 순간에 구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의 초기에, 더 정확히는 위기가 오기 전 평시에 구현되는 것입니다. 제때 치렀어야 할 작은 비용을 미루고 미루다, 마지막에 가장 비싼 값으로 한꺼번에 치르는 것. 그것을 전략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강력한 결정으로 위기를 끝내는 장면은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기관리의 성공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이 지불하는 최후의 계산서에 가깝습니다. 그 계산서를 받아 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 위기 종료의 진짜 열쇠는 거기에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원문: 이코노믹리뷰

8월 012026 0 Responses

말실수 좀 했다고 큰 문제가 되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경쟁사 공장 사고 위기관리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있는데요. 당시 대표나 공장장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 실수를 여러 번 하더라고요. 저희는 깜짝 놀랐는데요. 이후 그 말실수를 지적하는 부정기사 몇 개 외에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실수하지 말라는 조언은 약간 과장된 거 아닐까요?

날카롭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경쟁사의 말실수가 아니라, 그 장면을 보시고 대표님이 내리신 결론입니다. “말실수해도 별 문제 없더라”는 결론 말입니다.

잠깐 사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은 경쟁사 제품에 결함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런 결함이 생겼는지 뜯어보고, 우리 제품에는 그런 문제가 없도록 개선하시지요. 그렇게 남의 약점을 우리의 강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경쟁력입니다. 옛말로 타산지석입니다. 남의 산에 있는 거친 돌로 내 옥을 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유독 위기관리에서는 이 타산지석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사의 사고 대응을 그렇게 면밀히 지켜보시고도, 대표님이 얻으신 결론은 “말실수, 별거 아니네”였습니다. 만약 제품이었다면 어떠셨을까요. 경쟁사의 불량품이 어쩌다 리콜을 피해 갔다고 해서, “저 정도 불량은 괜찮구나”라고 결론 내리진 않으셨을 겁니다.

말실수도 똑같습니다. 그 경쟁사가 넘어간 것은 말실수가 무해해서가 아닙니다. 결함 있는 제품이 운 좋게 리콜을 피한 것과 같습니다. 사고 자체가 워낙 커서 말실수가 묻혔을 수도, 더 큰 뉴스가 관심을 가져갔을 수도, 회사의 평판 체력이 버텨 줬을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인명 피해가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그 한마디는 유가족의 마음에, 수사기관의 심증에, 법정의 판단에 그대로 새겨졌을 겁니다. 결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졌을 뿐이지요.

그 사례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정반대입니다. “말실수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자”입니다. 경쟁사가 카메라 앞에서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사전 준비와 대변인 훈련이 부족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보고 준비하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것이 위기관리의 경쟁력입니다.

왜 우리는 유독 위기관리에서만 이 좋은 교본을 덮어 둘까요. 제품 경쟁은 매출과 점유율로 당장 성적표가 나오니 다들 열심히 배웁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량은 평시에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위기가 터지지 않으면 아무도 그 준비를 알아주지 않지요. 게다가 남의 위기는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밀어 두기 쉽고, 위기관리를 꾸준한 경쟁력이 아니라 한 번의 사고 대응쯤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제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관리에서도 합니다. 경쟁사의 그 말실수는, 대표님께 공짜로 배달된 기출문제입니다. 그 문제집을 덮지 마시고, 우리 대변인의 훈련 교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회사와, 그것을 남의 일로 흘려보내는 회사. 다음 위기 앞에서 두 회사의 격차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7월 252026 0 Responses

우리 같은 조그만 회사도 위기관리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회사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조그만 중소기업입니다. 직원도 100명이 채 안 되고요. 지역에서는 오래된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유명하거나 큰 기업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업에게 위기관리 체계와 역량을 계속 강조하시던데, 저희 같은 규모의 회사도 그렇게 해야 할까요?”

먼저 대표님이 ‘위기관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그리고 계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아마도 대기업의 홍보실과 두꺼운 매뉴얼, 별도의 예산과 조직 같은 것을 떠올리고 계실 겁니다. 만약 위기관리가 그런 것이라면, 대표님 회사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점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님 회사에 필요한 위기관리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질문 속에 이미 답의 실마리가 들어 있습니다. 대표님은 “지역에서 오래된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하셨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수십 년 걸쳐 지역에서 쌓아 온 그 신뢰가, 대표님 회사가 가진 가장 값진 자산입니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과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오래 공들여 쌓은 신뢰일수록, 한번 금이 가면 회복에 몇 배 시간이 걸립니다. 대기업의 명성은 광고로도 사지만, 지역의 오래된 신뢰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위기관리란 무엇일까요. 거창하게 볼 것이 없습니다. 그 오래된 신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 그것이 대표님께 필요한 위기관리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이미 그 일을 매일 하고 계십니다. 현장의 안전을 살피고, 거래처와의 약속을 지키고, 직원들의 사기를 챙기고, 자금이 막히지 않도록 신경 쓰는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위기관리입니다. 대표님은 이미 이 회사의 위기관리 책임자이신 셈이지요.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 일을 ‘무의식적으로, 마주치는 대로’ 하고 계실 뿐입니다. 위기관리라고 부를 만한 것은, 그 일을 ‘의식적으로, 미리’ 하는 것입니다. 그 작은 차이가 위기의 순간에는 생각보다 큰 격차를 만듭니다.

지금까지 큰 탈 없이 회사를 잘 이끌어 오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위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운이 좋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위기가 아예 없는 회사는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그 위기가 아직 대표님을 찾아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지금까지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괜찮겠지’라는 생각이야말로, 작은 회사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마음입니다.

그러니 제가 권해 드리는 것은 거창한 준비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에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상황 한두 가지를 평온한 지금 미리 떠올려 보시는 것, 그때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지를 마음속에 그려 두시는 것, 그리고 회사의 앞날을 쥔 몇몇 사람과 평소 신뢰를 두텁게 해 두시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돈이 드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한 번 먹는 일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위기관리는 회사를 크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오래 지켜 온 것을 지키는 일입니다. 대표님 회사는 유명하지 않아서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오래 신뢰받아 왔기에 더더욱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규모가 작다는 것은 위기관리를 건너뛰어도 되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조심히 지켜야 할 이유인 것이지요.

7월 192026 0 Responses

CEO에게도 표현의 자유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저희 대표께서는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못하면 되겠냐 한탄을 하십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그런 권리를 행사하면 왜 안되냐는 거죠. 홍보실에서는 계속 불안합니다. 기자들과의 자리는 만들지 않으면 되는데, 개인적으로 하시는 소셜미디어가 문제지요. CEO의 표현의 자유 어떻게 봐야 할까요?”

홍보실의 그런 불안을 이해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의 한탄도 이해는 됩니다. 다만 이 문제를 ‘표현의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로 따지기 시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대표께도, 저에게도,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없지요.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말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 말한 뒤의 책임까지 없어진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 누구도 대표님의 입을 막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활을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쏠 자유는 있어도, 그 화살이 날아가 일으킨 일까지 없던 일이 되지는 않지요. 원치 않는 오해를 사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법적인 다툼으로까지 번집니다. ‘말할 자유’는 있어도 ‘그 말의 결과에서 도망칠 자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 이것이 표현의 자유의 진짜 얼굴입니다.

여기에 CEO라는 자리의 특별함이 더해집니다. 대표님은 회사를 ‘내 회사’라고 느끼시겠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면 회사와 주주로부터 경영을 ‘맡은’ 사람입니다. 남의 소중한 것을 대신 맡아 지키는 자리라는 뜻이지요. 이런 사람을 법에서는 ‘수임자’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피듀시어리(fiduciary)’라고 하는데, 말은 거창해도 뜻은 단순합니다. 나를 믿고 맡긴 사람들의 이익을 내 기분보다 앞에 두어야 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갈등이 생깁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개인’과, 맡은 것을 지켜야 하는 ‘수임자’가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히는 것이지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제 기분대로 핸들을 꺾을 수 없듯, 회사를 맡은 사람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둘을 다 가지려 하니 늘 갈등과 스트레스가 따라오는 것이죠. 결국 어느 하나는 택하셔야 합니다. 자유로운 개인으로 사실지, 책임 있는 수임자로 사실지.

그렇다면 CEO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에서 풀어야 할까요. 바로 회사 이야기 안에서입니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지켜야 할 가치와 원칙, 우리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대표님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쏟아부어도 좋을 주제가 회사 안에 이미 넘쳐납니다. 사실 이것들만 부지런히 이야기해도 하루가 모자란 것이 CEO입니다. 표현의 욕구는 바로 그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푸시면 됩니다.

사회적으로 구설에 오른 CEO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분들의 ‘하고 싶은 말’은 예외 없이 ‘그만한 책임’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대놓고 하면 안 될 말’만이 아닙니다. CEO가 한 말 가운데 조금이라도 ‘적절하지 않은 말’은, 그게 무엇이든 문제가 됩니다. 그 기준은 개인의 상식이 아니라 맡은 자리의 무게에 맞춰지니까요.

정 표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싶으시다면, 그건 은퇴 후에 한 사람의 개인으로 돌아가 마음껏 찾으시면 됩니다. 그 자리에 계신 동안만큼은, 하고 싶은 말보다 지켜야 할 책임이 늘 반걸음 앞선다는 것. 이것이 CEO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답일 것입니다.

7월 132026 0 Responses

직원의 실수로 벌어진 위기인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번 사건도 그렇습니다. 이건 엄연히 저희 직원이 직무상 실수를 해서 발생된 사건입니다. 그에 대해서 회사가 해당 직원에 대해서 책임을 물어 내부적으로 조치를 했고, 대표께서도 도의적으로 사과를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계속 회사를 비판하는데요.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먼저 조금 냉정한 말씀부터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느끼시는 억울함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실수한 직원에게 책임을 물었고, 대표께서 도의적 사과까지 하셨는데도 비판이 이어지니 심하다 느끼실 만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번 위기의 책임은 실수한 그 직원 개인보다 오히려 회사 쪽이 더 큽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회사가 놓치고 있기에 비판이 잦아들지 않는 것이지요.

영국의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James Reason)이 제시한 ‘스위스 치즈 모델(Swiss Cheese Model)’이라는 유명한 사고 이론이 있습니다. 큰 사고가 터지면 사람들은 대개 실수한 한 사람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형 사고는 결코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조직에는 여러 겹의 방어선이 있습니다. 설계, 검수, 결재, 교육, 감독, 그리고 조직문화까지.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치즈를 여러 장 겹쳐 놓은 것과 같지요. 평소에는 한 겹이 뚫려도 다음 겹이 막아 줍니다. 그런데 이 구멍들이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순간, 위험은 그대로 관통해 사고로 터지고 맙니다.

여기서 핵심은 이것입니다. 사고가 최일선 담당자의 손에서 터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검수와 결재, 교육과 문화라는 방어선을 ‘모두 통과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순간적 실수 뒤에는, 그 실수를 걸러내지 못한 여러 겹의 구멍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구멍들은 대개 경영진의 판단과 조직문화 속에 오래 잠복해 있던 ‘구조적 결함’입니다. 다시 말해 직원은 방아쇠를 당겼을 뿐, 그 총에 실탄을 채우고 안전장치를 풀어 둔 것은 회사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위기관리는 어디에서 시작될까요. ‘누가 실수했는가’를 찾는 데서가 아니라, ‘왜 우리의 방어선들이 한꺼번에 뚫렸는가’를 묻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자는 실수한 직원 한 사람을 징계하고 대표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회사의 시스템 그 자체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지금 공중이 비판을 거두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번 사건이 ‘어쩌다 한 직원이 저지른 일탈’로 정리되는 순간, 똑같은 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나리라는 것을 말이지요.

이번 위기를 우연이나 개인의 일탈로 정의해 버리면, 문제의 핵심인 내부 체계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습니다. 구멍 뚫린 치즈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다음 사고는 예정된 수순이 되지요. 반대로 회사가 ‘이것은 우리 시스템의 문제였다’고 직시하고 그 방어선을 하나하나 손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비판은 잦아들고 신뢰는 회복의 길로 들어섭니다.

직원의 실수를 감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실수를 개인의 것으로만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최일선의 실수를 걸러내는 것이 바로 회사의 체계이고, 그 체계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 경영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잠시 내려놓고 회사가 스스로 더 큰 책임을 지겠다고 나설 때, 그 위기는 비로소 반복의 고리를 끊고 관리되기 시작합니다.

6월 302026 0 Responses

자극 없는 자극은 소멸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한 업계의 담합 사실이 적발되어 크게 논란이 되는 상황을 모니터링 중인데요. 그 담합 제품을 받아 오래 사업해 온 곳에서 언론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담합 기업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겠다는 거죠. 저희가 볼 때는 그 회사들이 그런 자극에 대응해도 실익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아주 근본적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만으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착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위기는 말로 풀리지 않습니다. 실제 행동과 커뮤니케이션이 함께 갈 때, 비로소 위기관리, 더 정확히 말하면 데미지 컨트롤(damage control)정도가 겨우 가능해질 뿐이지요.

애초에 사후 위기관리에는 ‘성공’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위기가 발생한 그 순간, 위기관리는 이미 절반 이상 실패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피해를 줄이기 위한 데미지 컨트롤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데미지 컨트롤 안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해낼 수 있는 몫은 생각보다 훨씬 제한적입니다.

질문하신 다른 업계 상황도 본질은 같습니다. 담합이 적발된 회사들을 향해 거래처들이 손해배상을 외치며 대대적인 언론전을 펼치고 있다 하더라도, 그 회사들이 커뮤니케이션으로 맞대응 해 얻을 실익은 없습니다. 효과도 없습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말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담합이라는 행위와 그로 인한 실제 피해, 그 자체가 본질인 사안에 말의 응수를 더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렇다면 회사들은 ‘그저 침묵한 채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먼저 ‘침묵’입니다. 대응 실익이 없는 상황에서는, 침묵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때 ‘낫다’는 것은 옳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설프게 커뮤니케이션에 나서는 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낫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침묵이란 언론이나 매체를 통해 공중을 향해 메시지를 내보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공개 대응은 실익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잠잠해지려던 언론의 관심과 거래처의 분노를 계속 자극할 뿐입니다.

자극 없는 자극은 소멸합니다. 상대가 던진 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자극은 갈 곳을 잃고 스스로 사그라듭니다. 그런데 ‘대응’이라는 명분으로 맞자극을 더하는 순간, 최초 자극을 시도했던 거래처는 더 큰 명분과 에너지를 얻어 그 공세를 더 오래, 더 강하게 키워 나가게 됩니다. 불은 끄겠다고 휘저을수록 더 거세지는 법이지요. 도전에 일일이 응전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하나의 전략, 곧 전략적 침묵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전략적 침묵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공개적으로 말을 아끼는 그 시간에도, 거래처와의 수면 아래 협의와 논의는 멈추면 안 됩니다. 겉으로 조용한 기업이 물밑에서는 오히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공개 대응을 멈추는 것과 문제 해결을 멈추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진짜 위기관리는 늘 조용한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6월 302026 0 Responses

창구일원화가 부담되는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전문가들이 평시나 위기 시 창구일원화를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사실 저희 홍보실은 창구일원화가 부담이 됩니다. 저희에게 아무 정보가 없는데, 기자 문의를 받는 것이 힘듭니다. 차라리 각 부서에서 기자들에게 잘 답변해 주면, 결과가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컨설턴트의 답변

어떤 상황인지 알겠습니다. 정작 손에 쥔 정보는 없는데 기자 문의는 홍보실로 쏟아지니 창구일원화가 부담스럽다는 말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부담의 원인을 창구일원화에서 찾으시면 해법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니 문제입니다.

창구일원화는 전 세계 대부분 기업이 평시와 위기 시를 막론하고 사내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거의 모든 기업이 같은 원칙을 채택해 실행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창구가 여럿으로 흩어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창구를 하나로 모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보다 훨씬 많고 훨씬 심각하기 때문이지요.

창구가 다변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선 같은 사안을 두고 부서마다 다른 이야기가 나갑니다. 영업, 생산, 법무, 인사가 제각각의 사실관계와 해석을 내놓는 순간, 기업은 스스로 모순된 메시지를 외부에 노출하게 됩니다. 기자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습니다. 부서를 한 곳씩 찔러 보며 가장 말이 헐거운 약한 고리를 공략하고, 거기서 나온 한마디가 회사의 공식 입장으로 둔갑해 보도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담당자의 부주의한 발언 하나가 법적 리스크로 번지기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통제 불능입니다. 누가, 언제, 무슨 말을 했는지 회사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위기 시 책임 소재마저 흐려집니다. 톤과 수위가 제각각인 목소리들은 결국 내부 혼선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구 다변화가 꼭 필요하다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들이 있습니다. 첫째, 부서별로 언론 창구를 공식적으로 임명해야 합니다. 다변화란 ‘아무나’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사람만 답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둘째, 그렇게 임명된 창구들은 집중적인 대변인 트레이닝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각 대변인은 언론의 문의를 받는 즉시 그 사실과 내용을 실시간 수준으로 홍보실과 공유해야 합니다. 이런 내부 체계와 공적 실행이 갖춰지지 않은 채 창구만 흩어 놓는다면, 그것은 최악의 상황을 부르는 길입니다. 나아가 이는 홍보실의 직무유기와도 맞닿는 문제이기에,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부서별 공식 창구를 임명하고, 그들을 훈련시키고, 실시간 공유 체계를 만들고, 그 다수 대변인을 지속적으로 관리,점검,감독하는 일.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시겠습니까? 그 복잡한 길보다 훨씬 단순하고 확실한 길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에서 홍보실로 중요한 정보와 자료가 흘러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홍보실이 사내에서 정보에 대한 임파워먼트를 확보하여, 명실상부한 유일의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홍보실이 힘든 진짜 이유는 창구일원화 그 자체가 아닙니다.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법은 창구를 흩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홍보실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정보 없는 창구는 부담이지만, 정보를 쥔 창구는 기업의 강력한 방패입니다. 홍보실의 존재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6월 302026 0 Responses

경쟁사의 위기관리에서 배우라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얼마전 경쟁사 공장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해서 위기관리를 하는 것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저희 분석으로는 그 회사 최초 사과문도 그렇고, 사고현장에서의 기자회견 메시지도 그렇고 별로 벤치마킹할 수준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런 경쟁사의 위기관리에서 대체 뭘 배워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좋은 모니터링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질문 속에 이미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배움이란 ‘잘한 것’에서 얻는 것이라는 전제이지요. 경쟁사가 잘한 것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지극히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접근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편이 더 중요합니다. 경쟁사가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서 배우는 일이 그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잘한 것은 사실 금방 따라 할 수 있고, 따라 하기도 쉽습니다. 좋은 사과문 한 장, 잘 정리된 메시지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기에 모방의 출발점이 분명합니다. 반면 경쟁사가 잘하지 못한 부분은 다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조건이 분명히 있었다는 뜻이고, 그 사정과 조건은 우리 회사에도 그대로 잠복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시 말해, 경쟁사의 실패는 곧 우리도 똑같이 실패할 수 있는 지점을 미리 보여 주는 거울인 셈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그 못한 이유를 우리 안에서도 찾아내 고치고, 미리 개선해 두어야 합니다. 잘한 것을 따라 하기보다 이쪽이 훨씬 어렵습니다.

말씀하신 사과문과 사고 현장 메시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그들보다 더 나은 사과문을 쓰려면, 그 품질과 전략을 끌어올리려면, 결코 짧지 않은 사과문 개발 연습과 반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곧 오랜 시간의 투자와 전담 인력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고 현장에서의 기자회견과 질의응답을 전략적으로 해내는 일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준비와 훈련을 요구합니다. 특히 대변인 역할을 맡아야 하는 대표, 공장장, 안전·환경 임원에 대한 대언론 커뮤니케이션 훈련은 생각보다 훨씬 많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누구도 하루아침에 숙련된 대변인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가장 먼저 가져야 할 것은,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경쟁사와 다른 기업의 위기관리를 보며 ‘샘’을 내는 습관입니다. 저들이 잘했다면 어떻게, 왜 잘했는지를 파고들면서 ‘우리도 저만큼은 해야겠다’는 건강한 경쟁심으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저들이 못했다면, ‘우리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또 다른 의미의 샘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은 경쟁사의 위기관리로부터 별반 배우려는 관심이나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뒷담화나 비하인드 스토리에만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해당 케이스를 허비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경쟁사에게 그런 위기가 발생했는지조차 관심 없는 경우도 실제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태도가 더 큰 문제겠지요.

경쟁사의 위기관리는 잘하든 못하든 모두 우리의 교본입니다. 잘한 것에서는 따라잡을 목표를, 못한 것에서는 피해야 할 함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진짜 벤치마킹입니다.

6월 302026 0 Responses

원 보이스 가이드라인을 지금?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생산시설에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발생했는데, 언론 커뮤니케이션은 홍보실이 주관해 초기에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문제는 사내와 협력사 쪽 발언을 어느 정도 통제해야 하는 건데요. 창구일원화나 사적 커뮤니케이션 금지 관련한 원보이스 가이드라인을 즉시 배포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훌륭하십니다. 위기 상황에서 원 보이스(One Voice)의 중요성을 내부적으로 공감하고 계신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사실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체계를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공유하겠다는 판단 역시 훌륭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위기 한복판에서 사내와 협력사의 흩어진 목소리 때문에 추가적인 곤욕을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 필요성을 절감하기 때문이지요.

가끔 “가이드라인이 있어도 어차피 지켜지지 않는다”며 회의적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옳지 않은 생각입니다. 가이드라인이 있고 공유까지 되었는데도 원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과, 애초에 그런 것 자체가 없어 지킬 기준조차 갖지 못했던 사람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전자는 개인의 일탈 문제이고, 후자는 조직 체계의 부재 문제입니다. 따라서 그런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공유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정작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는 ‘시점’입니다. 미국 위기관리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카우보이는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 하지 않는다.” 모든 위기관리 체계의 적시성(timing)에 대한 조언입니다. 지금 상황을 한번 그려 보시지요. 생산시설에서 이미 위기가 발생했고, 그 직후 언론 커뮤니케이션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사내와 협력업체에서 정리되지 않은 이야기와 정보들이 새어 나가기 시작하니, 부랴부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하려는 상황인 것이죠. 이것은 이미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말을 뒤따라 뛰면서 어떻게든 올라타 보려는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코 능숙한 카우보이의 모습은 아닌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가이드라인을 공유하는 적시는 언제일까요? 모든 위기관리 체계의 개발과 공유의 골든타임은 평시(平時)입니다. 위기가 발생하기 직전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럼 이미 위기가 터졌으니 이번에는 공유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는 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예상하고 계셔야 합니다. 사전 교육이나 훈련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위기 발생 후 가이드라인을 던지듯 공유하게 되면, 실제 현장에서의 실행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곤란한 것은, 일부 구성원들이 이를 함구령이나 입막음으로 해석한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이드라인을 공유하고도 또 다른 내부 불만과 잡음이라는 문제가 생기니, 공유하나 마나 한 결과가 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다시 강조 드립니다. 평시가 골든타임입니다. 일단 위기가 발생하고 나면, 그 시점에 새로 만들어 내놓는 모든 가이드라인은 상한 생선과 같아진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경험은 공유하시되, 진짜 교훈은 따로 챙기십시오. 이번 위기가 정리된 직후, 가장 평온한 그 평시에 교육과 훈련을 곁들여 원 보이스 체계를 제대로 세워 두는 것, 그것이 다음 위기를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투자입니다.

6월 302026 0 Responses

그만하자는 여론은 어떻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그렇게 오랫동안 비판을 쏟아 내던 언론 일부가 갑자기 ‘이제 되었다 그만하자. 충분하다’는 입장으로 돌아서는 현상을 본적이 있습니다. 언론의 의제설정이론이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요. 위기를 맞은 기업에 대한 언론의 비판 그리고 갑작스러운 여론 정리. 이건 어떤 계기로 전환되는 건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언론의 의제설정이론(Agenda-Setting Theory)은 간단히 말해, 언론이 어떤 사안을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느냐에 따라 대중이 ‘무엇이 지금 중요한 문제인가’를 인식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업이 위기관리 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언론은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 의제를 종료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평소 언론관계에 공을 들이고, 위기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언론의 의제 설정 활동을 최대한 단축시키려 애를 쓰는 것입니다. 의제가 길게 노출될수록 본래의 사안과 직접 관련이 없는 2차, 3차 파생 이슈까지 줄줄이 따라붙기 마련이기 때문이지요. 언론이 한번 설정한 의제를 스스로 거두어들이게 만드는 계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강력한 언론관계라는 사실은 이미 주지의 사실입니다.

기업은 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그들의 감정과 해석, 그리고 의견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과 실제 행동을 실행해 나가지요. 강력한 언론관계가 전제된 상황에서, 이렇게 외부 이해관계자와 언론의 의견을 두루 반영한 위기관리 전반의 실행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언론의 판단과 평가에 의한 의제 종료가 ‘제안’됩니다.

여기서 굳이 ‘제안’이라는 표현을 쓴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언론이 일사불란하게 ‘이제 되었다, 그만하자’고 선언하거나 일제히 입장을 바꾸는 상황까지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이들 중 유력한 언론 일부라도 의제 종료의 입장을 표하게 되면, 그것이 전반적인 여론,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언론의 1차적 관심과 주목을 완화시키는 데 분명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유력 매체 한둘의 톤이 바뀌면, 후속 보도를 준비하던 다른 매체들도 ‘이 사안은 이제 끝물’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기업으로서는 여론과 언론의 입장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그동안 효과를 거두었던 위기관리 실행과 정렬된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최대한 로우 프로파일(low profile)로 잔불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좋은 대응 방식입니다. 가라앉기 시작한 마당에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거나, 분위기에 들떠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는 순간, 꺼져가던 의제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때는 무엇을 더 하느냐보다, 무엇을 하지 않느냐가 오히려 더 중요한 판단이 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핵심 인사이트는 언론관계입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언론관계는 쌍방향의 의견 교환이 가능한 관계를 뜻합니다. 사전에 쌍방 간 상당한 수준의 이해와 협조 체제가 수립되어 있어야 하고, 이런 경험이 오랜 기간에 걸쳐 두텁게 축적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언론은 이제 죽었다, 사람들은 신문 안 본다, 요즘 누가 TV를 보느냐’고 여기는 경영진이라면, 솔직히 이런 전략적 투자와 그를 통한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위기가 터진 다음에야 부랴부랴 언론관계를 찾는다면, 그때는 이미 늦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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