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없앨 수 있을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알려진 바로 티벳에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도 ‘걱정을 해서 위기가 없어지면 이세상에 위기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앞의 속담에서는 걱정해서 해결되지 않는 걱정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데 비해, 뒤의 해석에서는 걱정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좀더 강하게 담고 있는 것이 다르다.

전문가들을 그에 따라 단순 걱정만 하지 말고, 필요한 대비와 개선을 하라는 조언을 한다. 철저하게 대비하면 위기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철저하게 대비한다고 해서 위기 자체가 사라지거나, 발생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우리는 최대한의 대비를 통해 해당 위기가 발생되지 않게 계속 관리해 가고 있을 뿐이다.

기업 경영진과 위기관리 관련 상담을 하다 보면 “위기관리 매뉴얼이 효과가 있을까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트레이닝을 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시뮬레이션은 효과가 있나요?”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의 실제 의미는 매뉴얼이나, 트레이닝, 시뮬레이션을 하면 위기가 미연에 사라지거나, 발생한 후에도 곧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로 해석된다.

그에 대한 답은 물론 아니다 뿐이다. 이는 환자의 병을 고친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와 병든 환자를 돌본다는 생각을 하는 의사의 경우와 같이 서로 다른 생각을 전제로 한다. 여기에서 병은 위기다. 그리고 하나의 상수(常數)로서 역할을 한다. 그 상수를 없애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는 치료되지 않거나, 병이 악화되는 환자를 계속해서 돌보는 것을 힘들어 하게 된다. 이내 의사라는 직업이나 역할에 대한 자괴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상수로서 자신은 병을 돌보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의사라면, 환자의 다양한 상황에서 보다 환자를 위한 치료와 배려에 계속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업과 역할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위기관리도 마찬가지다. 위기관리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위기라는 상황을 사전과 사후에 다루는 (돌보는) 것이다. 발생되지 않도록 계속해서 다루고 돌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발생되었다면, 정성껏 그 위기를 다루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관점에서 많은 기업은 평시와 비상시 계속해서 위기를 다루고 돌보는 노력을 한다.

이번 글에서는 그런 ‘다루고 돌보는’ 관점에서 어떤 노력이 보다 위기관리에 효과적인지를 이야기해 본다. 공통적으로 기업이 생각하고 추진하는 위기관리 노력에 대한 오해나 습관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위기관리 매뉴얼은 따끈할 때만 의미 있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몇 십년간 만들어 본 경험에 따르면 기업 위기관리 매뉴얼의 수명은 6개월을 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면 회사의 위기관리 체계가 잡힌 것이라고 믿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수개월에 걸쳐 만들어 완성(?)하고 나면 그 직후부터는 날이 갈수록 구식이 되어 버린다. 매뉴얼에서 가장 중요한 ‘누가?’라는 섹션이 계속해 바뀌기 때문이다. 조직의 구성이나 편제도 바뀐다. 그에 더해 매뉴얼은 아무도 읽어 보지 않은 채 회사 캐비닛과 몇몇 직원의 하드드라이브 속에 숨는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의미나 가치를 가지려면, 기업 차원에서 계속해서 다루고 돌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위기관리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방치되는 위기관리 매뉴얼은 현장에서 작동될 수 없다. 현재 자사의 위기관리 매뉴얼 최종 업데이트 일자를 한번 확인해 보자.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강의를 들어 위기관리 하는 기업 없다

위기관리 강의를 정기적으로 자주 듣는 한 회사가 있다. 그렇게 고위 경영진이 정기적으로 유명한 전문가를 초청해 위기관리 강의를 듣는 데도, 회사에서 발생되는 위기는 끝이 없다. 계속해서 유사하거나 동일한 위기가 반복된다. 경영진이 강의를 그렇게 열심히 듣는데도 왜 똑 같은 위기는 반복  발생될까? 그에 더해 사후에도 위기를 잘 관리해 내는데 어려움을 느끼기까지 할까?

강의를 듣고 위기관리를 하려는 생각이 문제다. 비행기 조종사가 강의만 듣고 비행기를 조종한다고 생각해 보자. 수영을 해서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사람이 강의만 듣고 깊은 물 속에 뛰어 든다고 생각해 보자. 학습은 학(學)과 습(習)이 합쳐진 말이다. 배움과 익힘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위기관리 관점에서는 오히려 ‘습’ 부분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직원과 경영진의 위기관리 마인드 배양, 위기 의식 고취 등과 같은 목적을 내세우는 강의는 사실 적절한 ‘학’이라 보기도 어렵다.

위기관리에 대한 학습이 의미나 가치를 가지려면 지속적으로 실질적인 구성원의 고민과 활동 그리고 의사결정과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 그것도 한 번에 큰 돈을 써서 위기관리를 하겠다는 구호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다루고 돌본다는 생각이 기반이 되는 꾸준한 익힘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팀 없으면 위기관리 없다

위기관리 체계에서는 ‘누가?”라는 개념이 핵심 중 핵심이라고 했다. ‘누군가’ ‘누구든’ ‘모두가’ ‘아무나’ 등의 개념이 회사에 공유되어 있다면, 위기관리는 절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개념은 ‘아무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위기관리팀’이라는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 완화하고, 대비하고, 대응하고, 활동한다는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백에 구십구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될 것이 뻔하다. 물론 모두가 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다.

위기가 언제 발생될지도 모르는데, 상설조직을 보유하라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는 기업도 있다. 맞다. 위기관리 체계에서 조언하는 위기관리팀이란, 위기관리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는 부서별 담당자들과 그들 각각의 책임과 역할에 대한 의미다. 상설조직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위기 시 역할과 책임을 나누어 실행하기 위한 비상조직을 의미한다.

어떤 형식이든 위기관리팀이 지정되지 않거나 존재하지 않는 기업은 위기관리에 분명히 실패한다. 만약 위기관리팀이 구성되어 있더라도, 실질적인 위기관리 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실패한다. 그 위기관리팀 구성원이 계속해서 바뀜에도 불구하고 훈련을 업데이트 하지 않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다루고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시뮬레이션 해도 위기는 막지 못한다

시뮬레이션의 전제는 해당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발생되지 않을 위기 유형을 놓고 시뮬레이션 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시뮬레이션이 위기의 발생 자체를 막거나, 사라지게 하는 효과는 있을 수 없다. 또한 예를 들어 고객정보유출 상황을 대비한 시뮬레이션을 한 기업도, 그 직후 제품안전 관련 위기가 발생하면,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비한 많은 부분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결과를 얻는다. 위기 유형이 다르니, 대응 조직과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전에 특정 위기를 대비한다는 전제로 시뮬레이션을 깊이 해 본 기업은 실제 그 위기가 발생하면 시뮬레이션 해 보지 않은 경우보다는 훨씬 더 잘 대응한다. 여러 상황과 이해관계자에 대한 파악, 선제적 상황 이해, 돌발변수 분석, 커뮤니케이션 준비, 대응책에 대한 마련과 예산 산정 및 확보, 인력 편제 등등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조직 역량이다.

핵심은 그러한 시뮬레이션이 제대로 된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기적이거나 다양한 위기유형을 전재로 한 시뮬레이션을 위기관리팀이 지속 경험하게 기업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계속해서 다루고 돌보는 노력에 대한 조언이다.

트레이닝도 위기를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하고,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일부 기업에서는 신임임원이나 대표를 위한 교양 차원의 트레이닝을 실시하기도 한다. 언론을 비롯한 이해관계자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해 달라는 주문을 한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트레이닝을 하자고 한다.

그러나, 트레이닝은 말 그대로 ‘훈련’이다. ‘훈련’은 항상 피훈련자의 적절한 고통과 인내를 필수로 한다. 훈련이 재미있고, 간단하기만 하면 그것은 제대로 된 훈련이 아닐 수 있다. 그에 더해 훈련은 최악과 돌발적인 여러 상황을 전제로 하고, 그에 대한 실질 대응을 학습하는 것이다. 그 부분이 단순 강의와 훈련이 다른 점이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훈련이라면, 우리 회사에 대한 다양한 문제 그리고 대비 차원의 깊은 고민을 함께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실적 논의와 대응 방식을 고민하는 ‘활동’이 뒤 따라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트레이닝은 위기를 방지할 수 없다. 단,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훈련된 경영진은 훈련되지 않은 경영진과는 매우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우선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는다. 최대한 신속하게 움직이고 의사결정 해 내려 노력한다. 커뮤니케이션을 통제하려 하고, 메시지를 다듬는데 익숙해져 있다. 상황을 보는 눈이 다르고, 위기관리에 있어 목적과 목표를 배분하는 프로세스를 차근차근 밟는다. 이는 계속해서 다루고 돌보아야만 이를 수 있는 역량인 것은 확실하다.

위기를 없애려 하는 기업이 실패한다

이 세상에 단박으로 해결되어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 문제란 없다. 집이나 사무실에 생긴 단순한 벌레도 단박에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는 않는다. 위기는 없애려 해서는 관리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위기는 마치 죽음과 같이 언젠가는 온다는 생각을 하며, 그 때를 준비하고 기다리라는 조언은 상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그렇게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현실적이지 않다며 반론 한다. 수십년에 한번 발생될까 말까 하는 위기를 설정해 계속 대비하며 시간, 인력,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교과서에서나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지, 계속 위기관리만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트레이닝이나 시뮬레이션은 물론이고, 위기관리 매뉴얼에도 그렇게 장기간의 돌봄은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그래서 한 번 이런 것이라는 경험 정도만 제공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조직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되는 이야기들이다. 그것이 회사의 현실일 수 있다.

그러나, 딱 한가지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바로 위기를 없애려 하는 생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위기라는 생각 자체를 없애고(잊고) 싶어하는 것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돌보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우리 회사의 현실이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타협은 위기를 조직내에서 잊히게 만들고, 그런 상태만 일정기간 지속되면 위기는 사라지지 않고 되레 찾아오고 만다. 지속적으로 돌보고 다루는 것은 숙제를 제때 한다는 의미다. 엄청나게 밀린 숙제는 언젠가는 복수를 한다. 무서운 말이지만, 실제 현실에 대한 말이기도 하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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