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치 앞을 모르겠다 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기업 내에서 이런 탄식이 흘러 나온다. 너무 상황이 각자 제멋대로 움직여 바로 한 시간 후도 예상이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매뉴얼을 기억해 그에 정해진 위기관리위원회를 소집해 보자. 요직에 있는 그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어 보자.
일반적으로 한치 앞도 모르겠다는 것은, 현재까지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고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각자 상호 공유하는 파편적 상황들이 서로 충돌하고 오버랩 되면서 순서 자체가 헷갈리게 된 것이다. 마치 머릿속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니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위기관리 위원회가 다 모였으면, 커다란 칠판을 가져다 놓고 현재까지 상황을 시계열에 따라 잘 정리해 보자. 10여명 가량이 구두로만 상호 상황 공유를 할 때 보다, 다 같이 볼 수 있는 칠판에 상황공유 내용을 써 정리할 때 훨씬 더 효율적인 상황파악이 가능해 진다. 일단 기록되어 있는 상황을 기반으로 다음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기 때문에 반복이나 중복이 적어진다.
이에 따라 상황을 잘 정리하면 토론 후 1-2시간내에 현재까지의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 된다. 그리고 그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은 모두 같은 상황관을 가지게 된다. 가끔 위기관리위원회와 격리된 대표이사와 핵심 고위임원그룹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도 상황보고는 한층 용이해진다. 대표이사가 직접 칠판 앞에 와 앉으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하는 상황은 지속적으로 추가 기록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에 더해 예상 상황변화도 가능한 정리해 기록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어떤 이해관계자를 우선해야 하는지, 어떻게 각자 책임과 역할을 나누어 이해관계자들을 관리해야 하는지,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관리책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맨 위 가장 잘 보이는 칠판 부분에는 해당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목적과 목표를 정리해 놓도록 하자. 위기관리 대응책이 나오면 그것을 목적과 목표에 따라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매겨보자. 대응이 실제로 잘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아직도 실행 중인지 파악해서 대응 기록에 표식을 메겨보자.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문의나 요청 사항 또한 정리해 기록하자.
이에 더해 이 종합상황판을 보며 최고의사결정자들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예상 시나리오들을 정리해 보아야 한다. 현재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다가올지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해 진다. 홍보의 시각, 법무의 시각, 대관의 시각, 영업의 시각, 마케팅의 시각, 기획의 시각, 재무의 시각 등을 종합적으로 들어보면, 앞으로 어떤 일이 추가 발생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경우와 저런 경우들로 예상 상황을 그룹화 할 수도 있게 된다. 그 중 최악의 상황도 보는 눈이 생긴다. 마이너 한 상황에 관해서는 사전 완화나 방지 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찾을 수 있게도 된다. 이 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위기관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위기관리에 있어 이러한 대응 프로세스를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비유 해보자. 운전자가 곧 위기관리위원회라 생각하자. 운전자가 자동차에 올라 탄다.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 결정해 네비게이션을 켜 목적지를 입력한다. 이는 곧 위기관리위원회가 기록과 분석을 시작하는 순간이다.
네비게이션은 목적지까지 여러 행로를 추천한다. 이 후 운전자가 원하는 기준에 따라 행로를 결정하게 된다. 초행길이라면 운전자가 목적지까지 행로를 쭉 살펴 볼 수도 있다. 어느 지역에서 우회전 하고, 어떤 지역에서 고가도로를 타야 하는지 살핀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과 빌딩들을 지나야 목적지가 보일지도 네비게이션을 들여다 보면 머릿속에 그릴 수 있다.
운전자가 이제 자동차를 몰고 그 네비게이션을 따라 이동한다. 실제 위기관리가 실행되는 순간이다. 한참을 운행하다 보니, 갑자기 길이 막히고 진전이 힘든 상태가 된다. 네비게이션에서는 우회도로들을 다시 계산해 제시해 준다. 그 중 한 도로를 결정하고, 운전자는 그 길을 찾아 차를 움직인다. 그때 그 때 도로상황에 따라 새로 제안되는 우회도로를 따라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만약 위기관리위원회가 모인 장소에 제대로 관리되는 상황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는 네비게이션 없이 머릿속 기억과 운에 의지해 낯선 길을 가는 운전자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다. 몇 백 미터 마다 차를 세워 주변 행인에게 방향을 묻는 혼돈의 실행이 반복될 것이다. 갑자기 막히는 길을 우회해 보려 해도 확신 가는 길이 없고, 자칫 잘 못된 길에 들어서면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결국 몇 번 우회와 막다른 골목을 경험하게 되면, 최초 원했던 목적지로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될 대로 되라며 자동차를 길가에 세우게 된다. 운전자는 운전자 대로 피곤하고,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무리한다. 위기관리위워회, 상황판, 예상 시나리오, 의사결정 패턴에 문제가 있다면, 항상 자동차 네비게이션을 떠올려 보자. 무엇이 왜 잘 못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