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의 뿌연 가슴팍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는 특정 브랜드를 언급하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 때,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시계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프랭크 뮐러의 수천만원짜리 시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게 ‘비방전’으로 비화하자,
한나라당이 나서 “수천만원짜리 고급 시계가 아니라, 북한공단에 입주한 로만손이 만든 통일시계”라고 해명했고, 이어 소송에도
나섰다.

그렇다면 애초에 김윤옥 여사가 직접 언론에 나서서 “이 시계요? 아, 로만손이에요”라고 말을 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그것도 ‘역풍’을 맞았을 확률이 크다. “특정업체를 홍보해준다”는 비난이 강하게 일었을 테니까.


랜드 언급을 꺼리는 우리의 체면 문화는 ‘글로벌 브랜드’를 키우는 데는 악재다. 브랜드는 자본주의의 꽃씨다. 그걸 언급하는 걸
천하게 생각하는 문화라면, 백년이 더 흘러도 우리나라에서 ‘J.크루’ 같은 히트 상품은 안 나올 것 같다. [조선일보]

조선일보 박은주 엔터테인먼트 부장께서 아주 공감가는 글을 써주셨다. PR일을 하면서 가장 스트레스가 쌓이고, 반대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부러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우리나라는 시장이 성장하거나 국가경제가 활발해 질 수 있는 토양이 아니다.

박부장의 글에서 박부장은 미국 정치권과 Gap, Crocs, J Crew등의 브랜드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셨다. 오바마의 아내인 미셀과 그의 딸들이 중산층 브랜드인 J Crew를 입었다는 사실 때문에 J Crew가 인기 품목으로 떠 오르고, 부시가 Crocs를 신고 휴가를 즐기는 사진으로 Crocs가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김윤옥 여사의 로만손 케이스를 들어 주셨지만, 우울하게 거기 까지 가지 않더라도 TV에서 항상 받는 스트레스가 바로 그거다. 1박 2일과 무한도전에서는 분명히 North Face와 같은 아웃도어 웨어 브랜드들이 눈에 들어 오는데 제작진은 철저하게 그 로고 부분을 안개 처리한다. 심지어 실생활이 조명되는 인생극장류나 VJ특공대 같은 경우에도 안개가 화면 절반을 차지 할때가 많다. 드라마는 어떤가… 심각한 멘트를 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배우의 스웨터에 어처구니 없이 붙어있는 녹색 테잎에 눈길이 자꾸간다.

이렇게 노출을 막는다고 실제 시청자들이 그 브랜드를 모르는 게 아니고, (알 사람, 살 사람은 사실 다 안다…) 외국인들이 이런 비주얼을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는 상당히 젠틀하구나”하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 하는거다.

국민들이 소비를 열심히 하는 가 하면 바로 언론에서는 ‘흥청망청 소비’라고 꼬집는다. 크리스마스를 즐길 수도 있는 국민들에게 연말연시를 조용하게 보내라 주문한다. 발렌타인즈 데이를 ‘외국산 뿌리 없는 소비 문화’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일부 과자업체들이 고안한 빼빼로데이 같은 경우에도 ‘과자업체들의 괴상한 상혼’이라고 뿌리를 뽑아야 속이 시원들하다.

무슨 무슨 데이를 챙기면서 즐겁고 재미있어 하는 사람들의 정서적인 소득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언론이나 정부와 규제기관들이 오직 경제와 공정경쟁에만 집중해 왔나 말이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심통 같다)

나라전체가 그냥 조선시대 이전으로 돌아가 (먹을게 없으니) 검약하고, (쓸돈이 없어) 절제하고, (선정적인 TV 없이) 글이나 읽으면서 살면 좋다는 건지 알수가 없다.

지금도 TV에서는 뿌연 화면이 강호동의 가슴팍에 어른거린다. 그걸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이 참 불행하다. 그 뿌연 화면과 철지난 100여년 전 어설픈 선비정신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하나의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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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12의 “강호동의 뿌연 가슴팍”에 대한 답변

  1.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아바타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서양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경제에 대해서는 고등학교때 배운 것 밖에는 모릅니다만, 보통 프로테스탄티즘의 검약이 자본을 축적하게 만들었고, 여기서 자본주의가 나왔다고 배웠습니다. 그에 비해서 동양의 선비정신은 개인적으로는 근검절약했지만, 사회적으로는 “禮예”라는 형식으로 끊임없이 지출을 요구했고, 이때문에 자본의 축적이 힘들고 자본주의의 탄생이 어렵다고 배웠지요.(이 부분은 박경리의 토지를 보시면 대충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조선시대의 크리스마스라고 할 수 있는 추석때, 최진사댁을 중심으로 잔치가 벌어지는데, 그 비용은 당연히 최진사댁에서 부담하죠.)
    그런데 정용민님은 유교에서 소비를 억제해서 자본주의의 토양이 아니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유교의 병폐가 “허례허식”이고, 이 허례허식이라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소비”죠. 그것이 허례허식이 되는 것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의 문제일 뿐이구요.( 연인에게 고백을 하면서 준비하는 선물을 “허례허식”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어서이지 물건 자체의 특징 때문이 아니죠. 마찬가지로 제사가 허례허식이라면, 그것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서 이미 돌아가신 조상을 그리는 마음이 절실하지 않아서이지, 상차림이 어떠어떠해서 허례허식은 아니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교를 말할 때에 언제나 “제사지내는게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하죠. 정용민님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보고는 “유교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싫어해서 제사를 통한 소비지출이 억제되었다”라고 말씀하시는지요? 아니면 제사지내느라고 돈쓰는 것은 낭비이고 빼빼로와 초컬릿은 건전한 소비진작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2.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아바타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맹자는 당시에 주위사람들에게서 “너무 화려하게 하고 다닌다”고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아십니까? 조선시대 선비들의 검약이란,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서 재산을 쌓지 않는 것이고, 자기 개인만을 위한 소비를 싫어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돈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조선시대 양반들이 퇴직금을 사용하는 가장 모범적인 방안은, 자기 고향에 가서 고향 사람들을 위해서 돈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기증”에 해당하는 구휼에서 부터, 오늘날의 “소비활동”에 해당하는 각종 잔치와 명절을 주관하는 것까지 다양하죠. 그래서 옛날 위인전을 보면, 퇴직할때 퇴직금으로 얼마나 받았는데, 죽을때는 돈한푼 안남기고 주위사람들을 위해 다~쓰고 죽었더라, 뭐 이런 구도가 많습니다. (단순한 기증이 아니구, “소비”입니다. 가령, 집안에서 누가 농사지으면 혼내요. 돈있는 내가 사먹어야지 농사꾼들들도 먹고산다고, 돈있는 양반이 농사를 짓는 것은 농사꾼을 괴롭히는 일이라고…)

  3.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아바타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헷갈리는게…어떤 사람들은 브랜드를 찾는게 체면치례고, 체면치례는 유교의 폐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브랜드를 싫어하는게 검약하고자 하는 체면치례고, 체면치례는 유교의 폐해라고 합니다. 둘 다 실제로 유교나 나아가서는 우리 할아버지들의 삶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실제로 아는 것도 전혀 없고, 책을 읽은 것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자기 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한 행동이나 일반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마음에 안드는 것은 모조리 유교탓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속담으로는 “잘 되면 내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도 또 유교탓으로 돌릴런지요.

  4.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아바타
    논지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오바마의 아내와 딸은 중산층 브랜드를 입었다구요….일부로 “중산층”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은, 역시 지도층이 너무 화려하고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은 위화감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바로 그게 선비들의 검약함아닌가요? 이 사람들의 이러한 “검약함”은 선비들의 “검약함”과 어찌 다른지요?
    남의 나라 대통령 딸이 입는 옷의 브랜드는 알면서, 100년도 안된 우리 자신의 삶에는 관심도 없이 비난만 하는 것이, 우리나라가 발전할 수 없는 하나의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1. 정용민 아바타

      흥미로운 시각이십니다만…제 글의 논지와는 약간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 글은 기본적으로 논쟁을 위한 글이 아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5. 행인 아바타
    행인

    윗 분께서 논지에서 벗어났다고 하셨지만, 참조할 수 있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도 “에헴”하면서 고상한 척 하고자하는 선비의식이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브랜드 물건을 안 사는 것도 아니고, 반자본주의적인 의식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단지 상업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업주의에서 오는 행복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리고 순수하고도 고상한 취미와 쾌락만을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이죠. 결국 위선이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1. 정용민 아바타

      위선이라는 부분에 동의합니다.

  6. 키르케 아바타

    여담 : 김윤옥 여사가 <이 시계요? 아, 로만손이에요.>라고 직접 하지 못한 것은, 그 시계는 로만손이 아니었으니까

  7. 송선생 아바타

    제 예물시계가 로만손인데…:)

    1. 정용민 아바타

      🙂 송선생님 5일 목요일 오후에 뵈요. 일단 5시경으로 정해 놓았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연락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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