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에서 무대응과 침묵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침묵은 사안에 대해 밖으로 말하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고, 무대응은 판단과 조치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두 말은 현장에서 한 덩어리로 쓰이지만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위기 대응에서 벌어지는 실패의 상당수는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침묵은 발화를 멈춘 상태를 가리킵니다

침묵은 밖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뜻합니다. 그 침묵이 어떤 성격인지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로 갈립니다.

판단을 마치고 고른 침묵을 전략적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말하면 어떤 질문이 따라붙는지, 말하지 않으면 어떤 해석이 생기는지를 검토한 뒤 발화를 미룬 경우입니다.

같은 조용함이 다른 데서 나오기도 합니다. 판단할 사람이 정해지지 않아 아무도 움직이지 못한 마비, 답할 것이 두려워 입을 닫은 회피가 그렇습니다. 밖에서 보이는 모습은 셋 다 같습니다.

그래서 침묵이라는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판별되지 않습니다. 전략적 침묵은 침묵 가운데 조건을 갖춘 한 갈래를 가리키는 좁은 말이며, 침묵 전체를 대신하는 말이 아닙니다.

무대응은 조치가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무대응은 발화와 다른 곳을 봅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는가, 피해자를 접촉하고 있는가, 규제기관에 자료를 내고 있는가, 필요한 회수나 시정이 진행되고 있는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들에 아무 답이 없는 상태가 무대응입니다. 말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성립합니다.

두 가지를 함께 놓으면 네 가지 상태가 나옵니다

발화 여부와 조치 여부는 각각 따로 움직입니다. 두 축을 겹쳐 놓으면 회사가 놓일 수 있는 자리가 네 곳으로 나뉩니다.

조치가 진행됨조치가 없음
밖으로 말함대응이 이루어지는 상태말만 남은 상태
밖으로 말하지 않음전략적 침묵이 성립하는 자리무대응
표. 발화와 조치로 본 네 가지 상태 — 스트래티지샐러드

전략적 침묵이 성립하는 자리는 한 곳뿐입니다. 말하지 않으면서 조치는 진행되는 자리입니다. 조치가 없는 채로 조용한 상태는 침묵이 아무리 의도적이어도 무대응으로 분류됩니다.

주목해야 할 곳은 말만 남은 상태입니다. 입장문을 내고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까지 했는데 실제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경우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커뮤니케이션 지표로만 보면 활발한 대응으로 보이기 때문에 내부에서 문제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해관계자가 확인하는 것은 발화의 양이 아니라 조치의 실재입니다.

침묵이 무대응으로 바뀌는 경로가 있습니다

실무에서 자리가 옮겨 가는 방식은 대개 같습니다. 「일단 조용히 갑시다」라는 결정이 내려집니다. 처음에는 대외 메시지만 멈춥니다.

그런데 말할 것이 없으면 회의를 열 이유가 줄어듭니다. 회의가 줄면 확인해야 할 사실도 줄고, 확인이 없으니 조치도 사라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을 멈춘 결정 하나가 조직 전체를 세웁니다.

침묵을 택했다면 그 자리에서 함께 정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을 멈추는 동안 무엇을 계속할 것인가입니다. 사실 확인은 누가 이어 가는지, 이해관계자 접촉은 유지되는지, 상황 보고는 어느 주기로 올라오는지를 정해 두지 않은 침묵은 며칠 안에 무대응이 됩니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상대가 있는 사안에서 회사가 도발에 응하지 않기로 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멈춘 것은 반응이며 대응은 계속됩니다. 그 시간에 회사는 상대의 의도를 분석하고 사실관계를 확보하고 개입 시점의 기준을 세웁니다. 분석도 기준도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것과는 다른 상태입니다.

침묵은 끝나는 방식으로 평가됩니다

침묵은 언제든 끝납니다. 끝나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회사가 정해 둔 시점에 스스로 끝내거나, 외부 압박에 밀려 끝나거나입니다.

위기 상황에서의 전략적 침묵을 실증 연구로 다룬 커뮤니케이션 연구자 어거스틴 팡(Augustine Pang)과 옌 진(Yan Jin) 등 일곱 명의 연구진은, 침묵을 깨는 방식이 계획된 것이었는지 강제된 것이었는지에 따라 공중이 그 조직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같은 기간의 침묵이라도 끝나는 방식이 다르면 평가가 갈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침묵을 결정할 때 함께 정해야 하는 것이 언제 끝낼 것인가입니다. 이 시점을 정해 두지 않으면 회사는 스스로 끝낼 수 없고, 외부가 대신 끝내 줍니다. 그 시점에는 이미 무대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질문을 나누어 물어야 합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따로 물어야 할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는 조치의 문제이고, 지금 무엇을 말할 것인가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입니다.

두 질문을 하나로 묶으면 답도 하나로 나옵니다. 말할 것이 없으니 할 것도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위기 대응에서 가장 위험한 결론입니다.

침묵은 말을 멈추는 결정입니다. 일까지 멈추면 그것은 무대응입니다.

더 읽어 보실 자료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침묵 안쪽의 구분에 관한 것입니다.
노코멘트는 해도 되는가: 말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형식에 관한 것입니다.
홀딩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가: 말할 것이 정해지기 전의 대응 형식에 관한 것입니다.
발표와 답변은 어떻게 다른가: 발표하지 않는 것과 답하지 않는 것의 차이에 관한 것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민법 제681조 — 수임인의 선관주의의무
상법 제382조의3 — 이사의 충실의무
Augustine Pang, Yan Jin, Youngji Seo, Sung In Choi, Hui-Xun Teo, Phuong D. Le, Bryan Reber, “Breaking the Sound of Silence: Explication in the Use of Strategic Silence in Crisis Communic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Business Communication (2022) — 침묵을 깨는 방식이 공중 인식에 미치는 영향
위 개념들을 위기 대응 관점에서 발화와 조치의 두 축으로 정리하고, 네 가지 상태와 두 질문의 분리 운용으로 구성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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