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에서 정무감각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결정을 여론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미리 읽어, 회사의 판단에 반영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쓰이던 말이지만, 기업이 사회 안에서 생겨나고 성장하고 생존한다는 이해가 일반화되면서 기업의 역량으로 옮겨 왔습니다. 작동해야 하는 시점은 언제나 의사결정 이전입니다.
정무감각은 사전에 없는 말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정무감각」을 찾으면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신어와 생활어를 폭넓게 싣는 우리말샘에도 등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전에 오른 것은 그 재료가 되는 두 낱말뿐입니다. 정무(政務)는 정치나 국가 행정에 관계되는 사무이고, 감각(感覺)은 바깥의 자극을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관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말이 쓰였습니다. 국민의 여론을 잘 읽고 그에 맞추어 공적 업무를 처리하는 사람을 두고 정무감각이 좋다고 평합니다. 사전에 실리지 않았을 뿐 뜻은 분명한 관용어입니다.
이 말이 기업으로 옮겨 오면, 여론이 무엇을 원하는지 판단해 그에 맞는 의사결정을 돕는 현실감각이 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의사결정을 위해 행해지는 기업의 통합적 판단입니다. 그 판단에는 여러 기준과 가치가 들어가지만, 가장 중심에 놓이는 것은 여론입니다.
정무감각을 갖추는 일은 세 가지가 순서대로 쌓여야 가능합니다.
| 구성 요소 | 무엇을 하는가 | 없을 때 나타나는 모습 |
|---|---|---|
| 공유된 기준 |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의 선을 평시에 사내에 합의해 둠 | 사안마다 판단이 달라지고, 결정의 근거가 담당자 개인의 성향에 의존함 |
| 지속적인 청취 | 이해관계자 접점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넘어 들어야 할 이야기까지 모음 | 듣기 채널은 많으나 여론을 읽지 못하고, 회사에 유리한 신호만 골라 들음 |
| 여론 시뮬레이션 |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결정 이후의 반응을 미리 그려 봄 | 발표한 뒤에야 반응을 확인하고, 그때부터 대응이 즉흥적으로 흐름 |
이어지는 내용은 표의 순서를 따릅니다.
공유된 기준이 정무감각의 토대입니다
정무감각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습니다. 관에서 정무 업무를 해 본 임원이나 고문을 몇 사람 영입해 해결되는 주제도 아닙니다. 대표부터 실무 직원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사회성과 사회 의식이 공유되어 있어야 그 위에서 감각이 작동합니다. 건전한 사회 시민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에 대한 기준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내 원칙의 형태로 명문화된 경우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어떠한 종교적, 사회적, 인종적, 성적 편견도 배격한다는 원칙이 공유되어 있으면 인사와 구매, 영업,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모두 그 기준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원칙에 반해 편견에 기반한 결정을 한 임직원은 그에 따른 제재를 받습니다. 이런 적용이 반복되면서 기준은 강화되고, 시간이 지나면 사내에서 하나의 철학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기준이 없는 조직에서는 정무감각을 요구해도 결과가 매번 달라집니다. 같은 성격의 사안을 두고 어떤 때는 조심하고 어떤 때는 밀어붙이게 됩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회의 참석자의 성향뿐이라면, 그 회사에는 감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가 있었을 뿐입니다.
지속적인 청취가 감각을 유지시킵니다
기준이 자리 잡았다면 그다음은 환경 모니터링과 리스닝입니다. 여러 사회 구성원을 자주 접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를 넘어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까지 들어 회사의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자주 확인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기업 내부에는 이미 듣기 채널이 충분히 많다는 사실입니다. 소비자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부서가 있고, 고객과 하루 종일 대화하는 부서가 있으며, 언론을 접촉하는 부서와 관계 기관을 드나드는 부서, 거래처와 직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부서가 각각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채널을 두고도 여론을 읽지 못한다면 청취의 양이 아니라 반영의 경로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혼란스러운 국면에서는 듣는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해관계자들로부터 독특하거나 창조적인 의견을 찾기보다, 그들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일반적인 여론에 집중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런 목소리들이 기업을 하고 싶은 일의 유혹에서 떼어 내 해야만 하는 일 쪽으로 돌려놓습니다.
청취가 실제로 작동할 때 조직 안에서는 이런 문장들이 나옵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시기이니 특정 정책을 지지하는 기존 광고는 잠시 중지하는 편이 좋겠다, 지난해까지 이어 온 캠페인이 최근 논란과 얽혀 있으니 다른 캠페인으로 대체하자, 이 광고의 표현은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부를 수 있으니 순화하자. 정무감각은 이런 피드백의 형태로 실무에 나타납니다.
여론 시뮬레이션이 결정의 결과를 미리 보여 줍니다
여론의 법정에서 여론은 곧 법입니다. 실제 법정의 법과 다른 점은 그 법이 계속 변한다는 것입니다. 정해진 대로 수십 년을 일관되게 작동하는 법과 달리 여론은 그렇지 않으므로, 한두 번의 경험으로 여론을 알게 되었다고 자신해서는 곤란합니다.
여론은 감정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그 평가 자체는 대체로 정확합니다. 다만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그 성질에 이미 익숙해 있어야 합니다. 내리는 비와 부는 바람을 탓할 수 없는 것처럼, 여론은 읽고 예측하고 맞추어 나가야 하는 조건입니다.
자사 제품을 먹고 병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소비자가 나와 주목을 받는 상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법정에서 인과관계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내는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여론의 법정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고통을 호소하는 상대를 끌어안고 같은 편에 서는 판단이 여론 감각이며, 재판과 판결은 그 이후의 문제입니다.
감각이 부족한 기업이 문제를 키웁니다. 사회를 시끄럽게 해서라도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버티는 경우입니다. 위기 국면에서는 미세한 메시지 하나와 행동 하나가 여론을 움직입니다. 대표이사가 숙인 고개의 각도를 재는 여론이 있고, 사과가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을 세고 있는 여론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 국면에는 세 가지 질문이 계속 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여론은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대신 다른 대응을 택하면 여론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 여론 시뮬레이션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결정이 즉흥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정무감각은 의사결정 이전에 발휘됩니다
논란이 불거진 뒤에 급히 모으는 정무감각은 완전한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 시점에는 선택지가 이미 줄어 있고, 어떤 판단을 해도 대응처럼 읽힙니다.
실행 방법은 단순합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둔 시점에 홍보와 법무, 대관, 소비자 만족, 마케팅, 영업 등 이해관계자 접점에 있는 인력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입니다. 회사의 시각이 아니라 이해관계자의 시각에서 그 주제를 최대한 바라보고 그들의 생각을 정리해 보는 자리입니다. 국제표준화기구의 리스크 관리 표준인 ISO 31000이 2018년 개정에서 이해관계자의 포함을 원칙의 하나로 둔 것도 같은 취지입니다.
여기에 자주 나오는 반론이 있습니다. 기업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결정해야 하는데 사회적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다 꼭 해야 할 일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반론은 이해관계자의 시각과 기업의 시각이 정반대로 충돌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반대로 충돌하는 주제라면 그 결정은 회사에 더욱 중요합니다. 회사의 존립을 흔들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과정은 결정을 막는 절차가 아니라 결정을 진화시키는 절차입니다. 다양한 시각을 검토하고 감안해 여론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주제를 다듬는 일이며, 그만큼 의사결정의 품질과 직결됩니다.
이 감각이 사전에 작동하면 부정적 결정 자체가 줄어듭니다. 품질을 앞세워 온 기업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품질을 일부 양보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그 결정 이후의 여론을 그려 볼 수 있는 회사라면 쉽게 수긍하지 못합니다.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지 않겠느냐는 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대로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회사는 결정을 내리고, 이후에는 데미지 컨트롤의 영역으로 넘어갑니다. 위기관리의 본령은 그 이전에 있습니다.
좋은 기업, 훌륭한 기업, 멋진 기업은 단편적인 광고나 이미지, 이벤트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정무감각 위에서 내려진 결정들이 쌓여 그렇게 됩니다. 정무감각은 의사결정 이전에 발휘되어야 하며, 그것이 곧 품질 높은 이슈관리이자 위기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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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 「정무(政務)」와 「감각(感覺)」 표제어. 「정무감각」은 등재되어 있지 않음(2026년 9월 조회)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 「정무 감각」 미등재(2026년 9월 조회)
ISO 31000:2018, Risk management — Guidelines (ISO/TC 262) — 2018년 개정에서 이해관계자의 포함을 원칙의 하나로 둠
정무감각을 공유된 기준·지속적인 청취·여론 시뮬레이션의 세 가지로 정리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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