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CEO·최고경영진

  • 그냥 해프닝 수준이잖아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신입직원들을 강하게 군대식으로 집단 훈련시키는 동영상이 온라인에 공유 되어 요즘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근데 솔직히 그게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원래 수 십 년 이어져온 사내 관행인데 말이죠. 또 그걸 위기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이상해요. 그냥 그건 해프닝인데?”

    컨설턴트의 답변

    그렇게 말씀하시는 임원 분들이 많아서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말씀 드립니다.  첫째, 어떤 것이라도 어떤 이유라도 사회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논란이 발생했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치 않습니다.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많은 기업이나 유명인들이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는데도 그에 대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을 가지고 논란이 발생되다니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제3자들이나 그 논란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을 스스로 전혀 이해하거나 공감하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하는 주제입니다.

    둘째, 수 십 년 이어진 관행이 최근에는 문제의 핵심입니다. 바로 그 관행이 문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관행은 무조건 보존되거나 강화되어야 하는 지상명령이 아닙니다. 그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도 이제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빨리 이해하셔야 또 다른 문제 관행들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연세 드신 경영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80년대 이전까지도 버스나 기차 그리고 심지어 비행기 내부에서도 사람들은 흡연을 했었습니다. 재떨이도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당연해 보이는 관행이었습니다. 그런 관행이 지금 다시 시작되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준이나 판단 그리고 평가도 변합니다. 그에 대응해서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셋째,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그 자체가 더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기업의 경영진이 사회적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무적 감각까지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근 사회적 여론이 어떻고, 어떤 논란들이 발생했고, 무엇 때문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 마인드가 흔하기 때문에 발생된 위기가 계속 다시 반복됩니다. 소위 말하는 꼰대 행위와 갑질이 반복되고, 사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반복되고, 폭언, 구타와 폭력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많은 문제의 녹음과 녹화 동영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는데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주의가 없으니 유사한 위기가 이어집니다.

    밀레니엄 세대라 불리는 젊은 직원들을 이해하지 못하니 문제는 더욱 더 다양해져만 갑니다. 기업의 위기는 대부분 기업의 문제이고 잘못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경영진들이 위기의 핵심일 수 있습니다.

    넷째, 해프닝이라 생각하는 것들이 쌓여 회사의 명성이 되고 이미지가 됩니다. 해프닝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 쌓이지 않는 것이라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더 큰일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슬 비에 옷 젖는다는 말도 있죠. 작은 구멍 하나가 거대한 댐을 붕괴시킨다는 위기관리 명언도 있습니다.

    경쟁사에서 발생하지 않는 해프닝이라면 자사에서도 발생하면 안됩니다. 경쟁사에서 발생된 해프닝이라도, 자사에서는 절대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도 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럴 수 있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느냐 이야기 하는 사내의 안이한 마인드입니다.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고, 문제가 되었다면 바로 고쳐 개선하면 됩니다. 그 자체가 위기관리입니다.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이 문제 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CEO가 언론을 이해하지 못할 때 보이는 증상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자사에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고의사결정권자인 CEO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혼란이나 무리수 없이 순리에 따라 문제를 풀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다. 정상기업으로 분류되는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는 공히 CEO의 언론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 있다. 반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언론을 제대로 된 이해하고 있는 CEO가 매우 드물다.

    이는 특정 기업군과 CEO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진화 기간과 사회적 책임과 노출 규모 등 여러 사회적 환경에 의해 대기업군 CEO들은 보다 빠른 발전을 한 것뿐이다. 이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여러 번에 걸쳐 사회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많은 교훈들로 각 회사 CEO들은 훈련되었다. 그런 반복적 경험과 교훈, 훈련이 쌓여 지금과 같은 CEO 언론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임원으로 일하다 중견이나 중소기업 대표로 자리를 옮긴 CEO들은 해당 기업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언론 이해보다 훨씬 더 높은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스타트업 등에서 일하다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경영진의 경우에는 기존 대기업의 일반적인 언론관을 낯설어 하기도 한다. 오히려 보수적이라 보거나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받고는 한다. 상호간에 차이와 다름이 있다는 의미다.

    이번 주제로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CEO들이 보이는 공통 증상들을 알아본다. 한가지 논의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론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의미는 ‘CEO가 기자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들과 매우 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냥 CEO가 기자들과 막역한 사이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하소연하거나 일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지인 기자들을 활용할 수는 있다. 일부 친한 기자는 회사 편을 들어 우호적 기사를 내 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커넥션이 곧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CEO가 보이는 주요 증상들은 무엇일까? 회사에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런 이해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부정적 상황에서 보여지는 증상들을 꼽아 본다.

    첫째, CEO께서 부정기사나 보도를 나가지 못하게 하라 하신다

    기사를 빼라. 못 나가게 하라. 보도를 막아라. 방송 안되게 하라. 이런 지시를 하는 CEO는 언론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집중적으로 해명을 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초기 취재를 완화시키거나 기사나 보도 톤앤매너를 조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못 나가게 하라는 지시는 그런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초대형 기업들은 기사나 보도를 쑥쑥 빼는 것 같던데 왜 우리 홍보실은 빼지 못하는가 하고 묻는 CEO도 사실 언론을 잘 모르는 분이다. 초대형 기업도 기사나 보도를 그렇게 쉽게 쑥쑥 빼지는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사는 그런 초대형 기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는 CEO는 현재 어떤 언론사 어떤 기자가 무슨 주제로 취재를 하고 있는지를 먼저 심도 있게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부정 기사나 보도 대응에 있어 목표를 세운다. 어느 주제나 어느 앵글은 가능한 피했으면 한다는 논의로 대응을 시작한다. 최선을 다하지만 해당 기사나 보도를 싹 빼겠다는 생각이나 지시를 하지는 않는다. 언론을 잘 이해하는 CEO는 홍보실과 함께 주로 데미지 컨트롤을 위한 접근을 지시한다.

    둘째, CEO 자신이 언론사 VIP에게 연락해보겠다고 하신다

    평소에 A매체 회장이 내 친구야. B방송 사장이 선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CEO들이 주로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언론사 윗분들에게 전화를 많이 한다. SOS 전화를 하는 셈이다. A매체 기자가 현재 자사에 대한 부정적 취재를 하고 있는데, CEO가 A매체 윗분들에게 전화를 한다고 해당 취재가 사라질 수 있을까? 전화를 받은 그 언론사 윗분들은 이후 취재하는 그 기자를 불러 취재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언론사 분위기에서 그런 취재 중단 지시가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CEO라면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순 하소연을 하고 어떤 도움이나 해명을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CEO의 그런 전화들이 많아질 수록 해당 기사나 보도 대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기사나 보도가 나가기 전 여기저기 언론사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압력도 아닌 압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노이즈만 대대적으로 일으킨 기업들이 실제로도 많다. 그후 그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까? 글쎄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라면 심사숙고해서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딜 주제를 가지고 핵심 인사를 선택적으로 접촉하려 노력한다. 지인이라고 해도 가능한 말을 아끼고 걸려온 전화에도 주로 들으려 한다. 여러 유력인사들의 조언을 듣고 겹치는 핵심 인맥을 찾으려 한다. 노이즈 보다는 조용하게 타겟에게 접근하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

    셋째, CEO가 여기 저기에서 이야기를 듣고 언론대응을 지시하신다

    일단 먼저 정확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다. 특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하고 난 이후 기사나 보도를 보고 연락해 오는 지인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론에서 다룬 피상적 내용들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대응이나 전략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들이 원래부터 다양한 이슈나 위기관리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정무적 감각이나 예전 일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 할 수는 있지만, 그 조언의 수준이 CEO에게 새로운 경우는 드물다.

    해당 이슈나 위기의 배경이나 세부 정보를 잘 알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CEO에게 전하는 조언은 최대한 CEO가 개인적으로 필터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 하나를 매번 위기대응팀에게 전달하고 이것도 시도해 보라 저것도 해 보라 하는 지시를 하면 상황을 관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CEO는 그것이 무엇이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겠지만, 이슈나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 우선순위를 따져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이라는 개념이 들어서서는 안된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라면 최초 정한 이슈나 위기관리 목적에 기반하여 조언을 분별할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면 현재의 위기관리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반대로 위기관리 목적 달성으로부터 심각하게 멀어지게 될 것인가? 그것을 꼭 지금 실행해야 할 것인가? 아니라면 언제 실행해도 괜찮을 것인가? 등등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다.

    넷째, CEO가 앞장서 돌아다니신다

    알고 있는 지인 기자들을 죄다 만나서 하소연을 하는 경우다. 심지어 현재 취재중인 기자나 PD를 직접 만나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 기자나 PD와 친한 지인을 찾아 마치 비즈니스 미팅 같이 알음알음 기자와 PD에게 접근한다. 심지어 그런 개인적 어프로치를 회사 홍보실이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홍보실이 일부 알고 있어 위험성을 이야기해도 CEO가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CEO들 상당수가 취재 중인 기자나 PD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 기자의 질문에 길고 긴 답변을 해 완성도 높은 기사를 선물하고, PD의 질문에 답변하는 CEO의 모습이 방송을 그대로 탄다. CEO가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으니, 기자나 PD도 비즈니스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는 절대 함부로 개인이 나서지 않는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홍보실이 존재하는 이유를 기억한다. 경험 많고 훈련된 홍보실을 내세워 언론과 공식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기자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언론사를 대표하는 공인으로 바라본다. 회사와 회사가 그러하듯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나 하나 제대로 하려 노력한다.

    다섯째, CEO가 예산을 활용하라 하신다

    기자에게 돈을 주라 지시하는 CEO는 한 십년전까지는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취재를 막으려 예산을 동원하는 경우는 아직도 존재한다. 언론사 광고국을 통해 정보에 접근하려 하기도 한다. 언론사 데스크에게 광고로 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소규모 매체들의 경우에는 그런 옛적 관행이 존재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언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CEO라면 그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고 있는 CEO라면 취재 과정에서 갑자기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기자나 데스크에게나 돈으로 딜을 하자는 제안은 하지 않는다. 다른 라인을 통해서도 공개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가진 홍보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순리대로 문제를 풀려 노력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홍보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CEO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여섯째, CEO가 처음부터 로펌들을 불러 언론 대응을 지시하신다

    대형 로펌은 사실 대형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을 맡는 것을 매우 껄끄러워한다. 이미 해당 로펌에서는 대형 언론사 한두 곳을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대대적으로 시끄러운 대언론 소송을 맡는 것이 로펌 차원에서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큰 수입이 되는 소송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잘 모르는CEO는 초기부터 로펌들을 불러 대대적인 언론사 상대 소송을 지시하고, 취재하는 데스크와 기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라 지시한다.

    언론 대응은 홍보실의 역할이다. 아무리 뛰고 나는 로펌도 자사 홍보실만큼 언론 대응을 잘 하기는 어렵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는 홍보실의 조언을 먼저 듣고, 홍보실의 전략적 대응과 발 맞추어 로펌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언론 대상 소송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소송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송이나 그로 인한 판결을 최종 목표로 두지 않는다. 언론을 잘 아는 CEO는 그런 법적 제스츄어를 통해 언론과 딜을 성사시키려 한다. 로펌을 단순 송무 대리인으로 활용하기 보다, 협상과 딜을 만들어내는 중간자로 활용하려 한다. 회사와 홍보실, 로펌 그리고 언론이 상호간 윈윈하는 지점을 함께 찾는 것이다.

    일곱째, CEO가 자사 홍보실을 못 믿겠다 하신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와 관련한 부정 기사나 보도의 취재가 진행 중일 때, 가장 힘들고 가장 대응에 심혈을 기울이는 부서가 바로 홍보실이다. 그런데 CEO는 왜 그들이 제대로 대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각할까? 왜 그들이 대응에 있어 무력하다고 판단할까? 언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CEE들은 그럴 때 일수록 홍보실에게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묻는데, 왜 언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는 홍보실이 무력하다고만 생각할까? 그간에는 무엇이 다를까?

    그런 다름 때문에 기업 CEO를 비롯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룹은 평소 언론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이전과 현재 언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계속 새롭게 업데이트 해 이해해 나가야 한다. 부정기사나 보도에 대응했던 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서 어떤 것이 유효했고, 어떤 것이 무리수였는지를 판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사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언론 대응에 성공할 수 있다.

    CEO인 자신이 언론사 부장들을 모두 알고 있으니 언론을 나만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과 같이 기자들과 친한 것과 부정 이슈나 위기 발생 시 대응해야 할 언론을 잘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CEO와 기자가 친한 것을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본다면, 부정 이슈나 위기 시 취재 상황에서는 개인의 관계는 사라지고, 회사와 회사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자. 자꾸 그 속에 개인의 관점을 투영하거나 개인간 관계에 주로 의존하는 비정상적 어프로치를 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자.

    무엇은 해야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먼저 이해해 보자. 그렇게 하기 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는 문제없던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조언에도 공감해야 한다. 회사에서 가장 공적 대응 경험이 많은 홍보실을 무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통해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고 있는 CEO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성공적으로 이슈와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 평시 언론관계 역량이 위기관리 성패 가른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임원과 실무진들을 대상으로 위기관리 워크샵을 할 때 종종 ‘숙제를 잘 해 놓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린 학생 시절 경험했을 수도 있는 기분을 다시 떠올려 보자. 숙제검사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하루는 수업을 시작하자 마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제 내준 숙제해 온 사람은 숙제를 책상위에 펼쳐 놓도록 해. 숙제 안 한 사람들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고.”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물론 숙제를 정상적으로 해 온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숙제를 펼쳐 놓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반면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벌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 가슴 두근거림과 두려움은 실제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업에게 그 기분 나쁜 숙제검사는 곧 부정 이슈의 발생이나 위기의 발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세계적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이야기했다. “누구나 즐겁게 수영을 하지만, 그 풀장에 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수영복을 입고 있지 않았는지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시장이 악화되었을 때에는 어떤 기업의 펀더멘털이 좋은 지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비유다. 이슈나 위기관리에서도 그렇다. 평소에는 대부분 기업이 이미지 좋고, 평판도 훌륭해 보이 지만, 그 회사에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그 기업의 실제 이미지와 평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상기업인지 그 여부가 드러난다.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해당 역량에 대한 착시 현상이 존재한다. 요즘같이 유가(buying)를 기반으로 보도자료나 기사를 뿌려 댈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더 언론관계 역량의 품질을 식별하기 어렵다. 예산이 풍부하면 그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와 버즈가 생성되니, 그 결과를 놓고 언론관계를 잘한다 홍보를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대한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발 되면 해당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은 그대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누가 맡겨진 숙제를 잘 해 왔는지를 그대로 검사 받는 상황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보담당이나 부서는 물론 대표이사와 여러 임원들까지 인지부조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언론관계나 홍보를 잘 해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지?’ 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특히 이런 현상은 정상 홍보 역량과 조직을 갖춘 대기업들에서 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최근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서 훨씬 더 흔하게 목격된다. 부정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언론관계 역량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게는 어떤 구체적 해프닝들이 발생될까? 정리해 본다.

    미디어리스트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가장 대표적 언론관계 역량의 문제가 미디어리스트와 관련되어 있다. 기업 언론관계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홍보실로부터 최신 버전의 미디어리스트를 받아 점검해 보면 된다. 자사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대부분 언론관계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업들의 미디어리스트는 기준이 모호하거나, 예전 담당기자의 정보가 들어있거나, 새롭게 변화는 상황과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작스럽게 상황이 발생하여 자사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해야 하는데, 그 리스트가 충분하거나 유효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는 기업들이 있다. 미디어리스트 내 한 언론사에는 데스크급 기자의 정보가 전부이고, 어떤 언론사는 이미 퇴사해 버린 기자들의 정보만 가득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미디어리스트는 전혀 쓸모 없는 쓰레기인 셈이다.

    아는 기자는 많은데, 친한 기자가 없다

    이 또한 전형적으로 이슈나 위기관리 시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다. 미디어리스트에 담당기자 정보가 200-300명 되지만, 그 중 누구 하나에게 딱히 전화 걸어 정보를 확인하기 쉬운 기자가 없는 상황이 이런 경우다. 예전에 친했던 기자는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 되어 직접적으로 해당 이슈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아주 모르는 기자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그 옛 기자에게 전화해 간접적인 확인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전형적으로 언론관계 업무와 관련해 제 숙제를 그때 그때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슈관리를 위해 한 경제지 내부 분위기를 알고 싶다고 그 경제지의 자매지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든가. 한 종편의 취재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같은 오너의 일간지 기자를 만나 본다든가. 흔히 광고국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그런 류다. 직접적 언론 네트워크 대신 간접적으로 또는 두세 다리를 건너서 상황을 파악하는 활동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언론관계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 취득의 범위나 정확성이 떨어진다

    당연한 결과다. 앞서 미디어리스트와 친한 기자의 부재 원인과 바로 연결되는 결과다.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작업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인데, 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 상황 정보를 취합해 본 경험이 있는 실무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정보를 조각 조각으로 입수해서는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충분해 보이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었다 해도 그에 대해 크로스 체킹 해 보기 전에는 정확성을 부여할 수 없다. 자꾸 새롭게 충돌하거나 가려져 있는 다른 정보들이 나타나고, 주장과 예측이 진짜 정보들과 버무려져 혼란스럽기만 하게 된다.

    언론관계 숙제를 제대로 해 놓지 못한 기업은 기자들을 통한 정보 취득과 분석 작업은 일단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수되는 정보 양이나 질이 형편없을 뿐 아니라, 정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소스 기자들이 아주 예전 기자였던 분이거나,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단순 시니어 기자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분이면 상황은 더욱 더 재앙적으로 변한다.

    다른 출입처 기자 리스트가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라면 담당기자 리스트와 커넥션은 물론, 그에 더해 법조, 국회, 특정 규제기관 출입기자단 리스트가 어느 정도 구비되어 있어야 대응 업무가 가능 해 진다. 미디어리스트가 곧 언론관계나 커넥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험 있는 홍보임원이나 팀장이 있는 기업에서는 이전 담당기자들이 출입처가 변경되어 여러 주요 기자단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커넥션을 찾을 수 있다. 리스트만 있으면 즉각적인 커넥션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 발생되면, 홍보실은 관련된 기관이나 조직의 담당기자 리스트를 구하려 애쓴다. 각종 방식으로 우회하여 미디어리스트를 입수하고, 그 중 커넥션 있는 기자들을 찾아 내 정리하며 접근 방식을 고민한다. 이는 그나마 언론관계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진 기업이다. 그 외 기업은 혹시나 운이 좋게 해당 기관의 미디어리스트를 구했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

    보도자료는 평소 잘 써서 여기 저기 기사화했는데, 실제 발생된 문제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문 작성에는 자꾸 주저하게 되는 경우다. 다른 기업은 실제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샘플을 급히 구해 보기도 한다. 어떤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상호간 왈가왈부만 이어진다.

    일부 조언하는 내외부 분들로부터 자꾸 자신의 생각을 포함하라며 지시가 내려온다. 수정과 수정이 계속된다. 문서 하나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의 검토와 훈수가 이어지다 보면, 해명문이나 사과문이 장장 수 천자 수준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식 또한 많은 사공이 인풋을 한 결과 언론대상 해명문이나 사과문의 형식을 일찌감치 벗어나 버린다. 정치 성명문 같기도 하고, 법적 소장 같기도 한 괴상한 문서가 생성된다. 평소 제대로 된 언론관계 역량을 기반으로 정상적인 대 언론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되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해프닝이 내부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그후 결국 그 문서를 모르는 기자들에게 이메일 발송한 뒤 배포 완료를 선언한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언론 체계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홍보실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일상적인 언론 관련 내용들에 대해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생소 해 한다. 평소 언론관계 역량이 안정된 기업에서는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도 언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경험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 못한 기업에서는 언론이 매우 새롭다. 홍보실에서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해도 임원들이 그 조언을 듣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홍보실이 너무 언론 시각에서만 이야기한다 거나, 언론편을 들고 그들의 눈치를 너무 살핀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의사결정자들이 언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꾸 대응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무리수가 이어진다. 홍보실은 그 사이에서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하부 업무만 반복한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내부 의사결정자들의 심기를 관리하고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평소 경영진의 언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경험은 언론관계 역량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이 언론을 몰라서는 이슈나 위기관리는 커녕 사업도 어렵다.

    의사결정권자들이 홍보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러니다. 평소에는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자사 홍보실에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발생되니 금세 신뢰를 거두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의사결정자들은 기본적으로 변덕스럽다. 각 기능들의 실체와 수준을 신속하게 평가하고, 대안을 찾는데 익숙하다. 평소 언론관계 역량은 위기 시처럼 직접 평가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반면 상황이 발생하고 하루 정도면 의사결정자들은 홍보실의 실제 역량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문제는 단순히 의사결정자들이 홍보실에 대한 신뢰만 거두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더 큰 난맥상이 목격된다. 전문성 없고, 허락되지 않은 임원들의 개인적 언론 접근이 이어진다. 현장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공식 메시지가 아닌 내용들이 전파된다. 상당히 위험한 언론 매체들의 동원 시도도 이어지고, 전혀 다른 위기를 양산해 낸다. 통제불가능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 돼 버린다. 일단 홍보실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경영진이 기존 홍보실을 제외하거나 무력화시켜서는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홍보담당자나 홍보임원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홍보담당자라도 평소 언론관계 역량을 제대로 가꾸어 왔고, 맡겨진 숙제를 잘 해 왔다면 이슈나 위기 발생 시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역량과 커넥션을 잘 발휘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내려 현장을 뛰며 밤을 새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경우 홍보담당자는 극도의 불안과 패배감 그리고 조직적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되면 해야 할 업무는 더 줄어드는 경험을 한 홍보담당자는 그런 상황에 처한 경우다. 일부 대응 업무만 맡겨진다 거나, 위기관리팀을 소집 운영하거나 보조하는 총무의 역할로 홍보담당자의 역할이 바뀌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슈나 위기 발생 시 홍보담당자가 무력감을 느낀다면, 그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자사에게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되어 진짜 거대한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를 경험해 본 경영진이나 홍보담당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경험이 오랜 홍보팀장이나 임원들의 경우에는 물론 기억에 남는 자신의 위기관리 케이스를 몇 개 꼽을 것이다. 그 외에는 자잘하거나 부정적인 해프닝에 대한 홍보실 차원의 다양한 대응 경험이 대부분이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건 그 자잘하고 부정적인 해프닝 수준의 일상적 이슈관리에 관한 것이다. 그 때 그때 해당 해프닝에 대응하면서 자신과 자기 부서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역량이 부족하다 느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무엇을 해야 그런 어려움과 부족함을 해소시킬 수 있을지를 경영진과 함께 여럿이 고민해 보면 좋다.

    그런 일상적인 깨달음과 기억들 그리고 고민들이 실행으로 이어져야 언론관계 역량이 성장한다. 정상기업으로서 필요한 정상적 언론관계 역량을 갖추게 된다. 지금은 상황이 평온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이만하면 충분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문제를 찾아내는 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언제 이 풀장의 많은 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우리의 수영복이 드러날지 노심초사해 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유익한 일이다. 막연히 불안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 사과의 원칙에 맞서는 변명들

    [The PR 기고문]

    사과의 원칙에 맞서는 변명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나 셀럽들이 큰 문제와 마주했을 때 가장 흔히 선택하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바로 ‘사과’다. 상당히 많은 문제들이 사려 깊지 못함으로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이 ‘사과’는 곧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자체 또는 전부로 까지 오해되기도 한다.

    물론 적절한 ‘사과’없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모든 위기 상황에서 ‘사과’가 필수적인가 하는 것에는 논의가 필요하다. 무조건이라는 개념은 전략적이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사과의 원칙에 대해서도 ‘무조건’이라는 기준이 있다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 무조건적 원칙을 따를 때 생기는 추가적 문제에 대해서도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업이나 조직의 사과라는 것이 종교적 고해성사나 개인간 사과와는 다른 성격의 것이기 때문에, 사과의 원칙에 대한 보다 조심스러운 이해와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에도 여러 기업과 셀럽이 연이어 사과문을 공개하고 있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라면, 그들 대부분이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사과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일부 개인 셀럽의 경우 자필 사과문이 일반화되었다는 것이 주요 트렌드가 되겠다. 반면, 기업들의 경우 예전 같은 일간지 지면을 통한 사과광고의 빈도는 대폭 줄었다. 최근 들어서는 대대적으로 기자회견을 자청해 경영진이 고개를 숙이는 사과 퍼포먼스도 점차 줄어가는 느낌이다. 사과가 이제는 일반화되었고, 하나의 통과의례와 같이 변해 버렸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글에서는 기존의 대표적 사과의 원칙에 대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실무자들의 변명 또는 반론을 모아 정리해 본다. 무조건적 사과의 원칙 도그마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직접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하라?

    맞다. 피해자에게 직접 그리고 구체적으로 사과하라는 말은 적절하다. 두리뭉술하게 사과하는 척을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하지 말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운전사를 폭행한 회장님이 문제를 제기한 운전사를 찾아가지 않고, 먼저 기자회견을 열어 전혀 상관없는 기자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황당한 케이스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제기한 원점(source)은 가해자를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단 만나서 마음을 풀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가해자의 순진한 생각이다. 문제를 제기한 원점은 일종의 원한과 복수심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 원한과 복수심이 없었으면 아예 문제를 제기하거나 폭로하지 않는다. 대신 그전에 상대를 찾아가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용서하려 노력한다. 그런 일련의 노력들이 실패했거나, 하기 싫었기 때문에 원점은 원한과 복수심을 가지게 된다.

    그런 감정 수준의 원점에게 가해자가 직접 찾아가 사과를 한다는 것은 이상적이긴 하지만, 가능한 경우는 적다. (원한이나 복수 감정이 아주 약한 원점의 경우에만 일부 가능)

    일단 만나기 힘든 원점을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사과하는 것도 어떻게 현실적이 될 수 있을까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나주지 않고 가해자를 피하는 원점에게 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체적인 사과를 전달할 수 있을까? 가해자로 폭로 된 모 기업 오너 자제의 경우 피해자를 찾아가 빈집 문에 쪽지 메모를 꽂아 놓기도 했다 하던데, 그런 방법도 통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원점이 만나주겠다, 사과를 들어 보겠다 하는 경우라면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하라’는 원칙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원점이 그 모든 것을 꺼리는 경우에 가해자는 어떤 차선책을 실행해야 할까? 바로 대외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옵션 뿐이다.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에게 해당 문제에 대한 자사나 자신의 입장과 사과 메시지를 공개하는 실행이 그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려움은 또 있다. 원점이 아닌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사과 할 때 얼마나 문제관련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고민이다. 자신과 원점 밖에 모르는 아주 민감한 내용까지 충실하게 담아야 하는가 하는 가에는 여러 반론이 있다. 지나치게 구체적일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왜 문제 당사자가 아닌 공중이나 이해관계자에게까지 그런 구체적 내용을 설명해 가며 스스로 논란을 키워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사실 답이 부족하다.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 후 사과하라?

    일단 큰 문제를 제기한 원점이 만족할 만한 가해자의 공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희귀하다. 심지어 가해자가 종교적 회개와 스스로를 향한 형벌을 감수한다 하더라도 피해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은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더구나 그 원점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가해자가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 원점 당사자가 아니라면 그 고통은 절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거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섣부른 가해자의 공감은 원점의 더욱 더 큰 분노만 자아낸다. 이해되지 않는 고통에 대한 어설프면서 구체적인 가해자의 공감 커뮤니케이션은 곧 폭력이다.

    흔히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면 공감이 떠오른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기업이나 조직 그리고 일부 셀럽은 그럴 수 있는 주체들이 아니다. 다양한 여러 변수들과 주변 조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역지사지는 개인적 마음으로는 가능하지만, 조직 차원에서 실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나타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과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비판 받는 기업이나 조직의 경영진들이 모두 비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가해자는 대부분 피해자의 고통을 공감할 수 없다. 이전에도 없었고,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는 더욱 더 공감이 어렵다. 그 대신 문제 제기를 통해 자사 또는 자신에게 피해를 준 원점을 도리어 가해자라 생각하며, 자신의 고통에 스스로 공감하기 시작할 뿐이다. 제대로 된 공감의 형성이 이렇게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도 어림짐작 한 공감을 절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일반적인 공감 수사로 자사 또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것이 나을까? 어떤 것이 최악일까 예상하여 최악을 피하는 것이 위기관리인데, 어떤 옵션이 최악을 피할 수 있는 것일까?

    또한 기업이나 조직 그리고 유명 셀럽의 경우 ‘공감’은 적절한 배상 또는 합의방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리적이나 정서적 공감은 완전하게 불가능하더라도, 크고 적극적인 배상액이나 합의방식을 제시한다면 일정 수준 이상 공감으로 주변에게 이해 받게 된다. 이 때도 피해자가 이해하는가는 또 다른 주제다.

    조건 없이 사과하라?

    개인적으로 사과할 때 이렇게 조건을 달아 사과하는 것은 일종의 비아냥에 가까워 피해야 할 금기인 것이 맞다. 개인적으로 사과를 받아주려 하던 피해자도 빈정 상하게 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그러나 원점이 만나주지 않을 때나, 연락할 방법이 없거나,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만나주신다면 용서를 빌겠습니다” 하면 안 될까?

    더구나 지금 사과가 여러 상황으로 여의치 않아 일단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에게 자사 또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사과 형식이라면 더욱 더 이런 의지의 표현은 필요하지 않을까? 충분히 상대를 만나 조건 없이 사과할 수 있는데,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사과의 입장을 표현하는 경우가 문제이지, 그런 조건을 토로하는 경우 자체가 문제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 말이다.

    용서를 구한다는 표현 쓰지 마라?

    그러면 어떤 표현을 써야 하나. 사과드리면서 용서를 구한다는 표현을 빼고 어떤 사과가 가능한가. 일부에서는 용서해야 할지 말지는 피해자가 판단할 일이니 자꾸 용서를 구한다 하는 것은 2차 피해를 의미한다 하는데, 그런 주장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는 전체적 사과의 맥락과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수사학적으로 표현 단위 하나 하나를 평가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고, 용서를 받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원점은 용서를 해 줄 의지가 희박한데, 용서를 빌지도 못한다면 그 진짜 용서는 어디에서 올 수 있을까? 종교적인 회개와 용서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처벌이 현재 기업이나 조직 상황에서 가능할 것인가? 자신이 사용한 제품에 이물질이 나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자가 회사에 용서를 받기 위해 제시한 조건이 과도하다면 이를 필히 시행해 진짜 용서를 구해야 할까? 이물질에 책임지고 대표이사가 당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모든 일간지 전면에 사과 광고를 싣고, 매출의 1프로를 자신이 정한 기관에 기부하라는 요구를 들어주면서 진짜 용서를 얻어내야 할까? 조건 없이 용서를 구하려면 말이다.

    대중은 가해자에게도 사과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들어 발견한 아주 새로운 사과의 원칙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주장은 만약 대중이 가해자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가해자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 상황은 가해자에게 기본적으로 위기상황이 아니다. 대중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을 때나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중은 항상 문제의 주체나 가해자에게 사과를 강요하게 되어있다. 이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는 이를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좀더 나은 사과를 꾀한다. 대중의 압력 처럼 강력하고 위협적인 위기관리 동력이 없다.

    위와 같은 주장은 일견 대중의 압력에 밀려 기업이나 조직 그리고 셀럽들이 대충대충 사과를 하는 상황을 지적했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적 대중이나 정상적 위기관리 주체에게는 해당하는 원칙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의 사과 압력은 더 강해져야 하고, 보다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나 조직 그리고 셀럽 스스로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하게 된다.

    여러 사과의 원칙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현실적이라 생각하고 공감 큰 사과의 원칙은 이것이다.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은 크게 사과해야 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여러 전문가들은 사과의 원칙을 ‘제대로 사과할 줄 모르는 기업, 조직, 사람’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나마 좀 더 나은 사과를 하도록 하는 조언이다.

    하지만, ‘제대로 사과할 줄 하는 기업, 조직, 사람’에게는 그 원칙이 전략적 조언이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주어진 상황과 여러 주변 조건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고 고안해 낸 사과가 훌륭한 사과다. 원점이 마음을 바꾸고, 용서해 주고, 결론적으로 다같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류의 동화에 기반한 사과가 과연 현실에 존재하는가는 각자 판단할 일이다. 사과는 원칙 보다는 전략의 주제다.

  • 책에 쓰지 못하는 위기관리 아포리즘

    [The PR 기고문]

    책에 쓰지 못하는 위기관리 아포리즘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 이론이나 실전 인사이트가 쓰여 있는 책들은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원칙이나 방법론은 상호간에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위기관리 원칙과 방법론이 서로 전혀 다르고 수 없이 많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원칙이나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들이 위기관리 서적에 쓰지 못하거나, 쓰여 남겨지는 데 적절하지 않은 일부 원칙과 방법론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 류의 원칙과 방법론을 기본적으로 부정적이거나 탈법적인 것으로 해석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들 대부분은 실제 기업 내부의 사정과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며, 위기관리 주제가 따라야 하는 당위성을 일부 대체하는 유효한 기술적 원칙일 뿐이다.

    가끔 위기관리 강의를 하다 보면, 기업 경영진의 표정에서 ‘공자의 말씀을 하시는 군’하는 갑갑함을 느낄 때가 있다. 무언가 실제 써먹을 수 있고, 현장에서 바로 통하는 특제처방을 원하는 것이다. 그 바램 대로 이번에는 만병통치약이나 즉효약 까지는 아니지만, 때에 따라 해결사는 될 수 있는 위기관리 아포리즘(aphorism)을 정리해 본다. (아래 보면 기록을 남기지 말라는 원칙이 있는 데 결국 이렇게 기록을 남긴다)

    1. 큰일 일 수록 혼자 하자

    비밀은 모두가 죽었을 때 지켜진다는 말이 있다. 기업 위기에 있어서 여러 경영진이 관여되어 있는 이슈나 사건이 많다. 그 관행이나 실행에 진짜 문제소지가 있다면, 관련자와 비밀을 지켜야 하는 사람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래야 사후 위기관리도 간단 해 진다.

    • 감정 대신 주판을 튕기자

    자사에 대한 부정 여론이 일어나면, 경영진은 상당한 심적 부담과 상처를 토로한다. 합리적 의사결정이나 상황 판단을 방해하는 감정적 장애가 생긴다. 감정을 최대한 멀리하고 해당 이슈나 위기로 인한 피해나 손해를 정확하게 계산하자. 어떻게 해야 그것들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신 몰두하자.

    •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

    가만히 있어도 일정 수준 상처로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남은 상처는 일정기간 노력을 통해 흔적을 지워 나갈 수 있다. 당장 입은 작은 상처를 참지 못해 정신없이 반응하고, 전략 없이 실행을 다양화해서는 안 된다. 지나면 별 것 아닐 일을 마구 긁어 상처를 크게 만든 경우가 많다. 일단 견뎌보자.

    • 항상 걸린다 생각하자

    말로만 투명사회라 하지 말자. 모든 부정적 의사결정과 그에 관한 활동과 근거들은 남는다. 털면 털린다는 말을 명심하자. 털리지 않아 그렇지 어떤 언론이나 기관이든 마음먹고 자사를 털면 털린다. 문제나 논란이 될 것에 대해서는 미리 법과 여론 차원의 해명이나 설명, 반박 근거들을 준비하자. 그래야 사후 데미지컨트롤이 일부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죄는 걸린 죄다.

    • 기록 남기지 말자

    모든 행동은 기록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만든 기록이나, 사려 깊지 못해 만들어지는 기록을 경계하자. 최근 이슈와 위기관리 케이스를 보면 남아 있는 기록들이 후폭풍의 기반이 된다. 이슈와 위기관리 시 기업 내 의사결정 그룹의 기록은 결국에는 지뢰로 남는다. 단, 우리의 기록은 남기지 말되, 상대의 기록은 챙기자. 혹시라도 도움이 될 때가 온다.

    • 사적인 말은 화를 부른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허심탄회란 전략이 없다는 의미다. 막말의 정의는 준비하지 않고 내 뱉은 말이라는 뜻이다. 사적인 말이 포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그대로 방송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예전에는 기자에게만 말 조심하면 되는 환경이었지만, 이제는 경영진 주변 모든 사람이 기자다. 말이 화를 부른다는 말은 이제 불변의 진리가 되었다.

    • 얼굴 가리지 말자

    부정 이슈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언론의 취재를 받게 되면, 경영진들은 얼굴을 감싸고 가리며 피하려 한다. 사진 찍히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낀다. 우산이나 서류 봉투로 얼굴을 가리려 노력하기도 한다. 그런 행위는 언론의 보도 장면을 흥미롭게 만들 뿐 아무 의미도 없다. 공중의 인식 형성에도 유리하지도 않다. 뉴스를 재미있게 만들지 말자.

    • 위기관리, 어설프게 하려면 차라리 가만 있자

    흔히 침묵은 죄의 인정이라 한다. 하지만, 어설픈 커뮤니케이션은 죄의 확정이다. 여론의 법정을 통한 죄의 확정 이후에는 아무런 위기관리 방법도 통하지 않는다. 위기관리에서 어설픔이나 준비되어 있지 않음은 재앙을 부르는 주문이 된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불쌍하게 보이기라도 한다.

    • 유죄추정의 법칙이 현실이다

    마녀사냥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마녀로 의심받는 자는 어떤 반론을 해도 결국은 죽는 구도다. 마녀는 물에 뜬다는 기준에 따라 피의자를 묶어 깊은 물 속에 담그기도 했다. 그가 떠오르면 마녀임을 입증한 것이라 끌어 내 화형을 시킨다. 반대로 오랫동안 물에 뜨지 않으면 그 피의자는 죽는다. 마녀사냥을 피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마녀가 할 만한 짓을 하지 않는 것 뿐이다.

    1. 할 수 있는 것을 중요도에 따라 하자. 차근차근.

    급한 복통에 고통받으며 화장실 앞에서 여러 겹 옷을 벗으려 혼자 발버둥 치는 사람을 상상해 보자. 주변에 여럿이 도와주었으면 어땠을까? 심한 복통이 오기 전에 미리 옷을 벗어 놓거나, 많은 단추를 풀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신속대응은 미리 준비해야만 가능하다. 그 때가면 어떻게 되겠지는 착각이다.

    1. 얼굴 알려질 수록 잃을 건 는다. 섣불리 얼굴 내지 말자

    공중에게 많이 알려진 VIP와 잘 알려지지 않은 VIP가 같은 실수를 범했다면, 상대적으로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은 누구일까? 착한 기업으로 이름 날리던 회사와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가 같은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우리나라에서 유명해지는 것은 때때로 죄다. 최소한 큰 부담이며, 비용이다. 제대로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할 것이라면 차라리 유명해지지 말자.

    1. 위기관리는 단호해 보이면 된다. 당당하자.

    문제가 생겼다. 그것이 실수 건, 해프닝이건 개선책과 재발방지책을 발표하면 문제는 풀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개선책과 재발방지책의 수준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 발생한다. 최대한 단호하고 과감하게 사과하고 개선과 재발방지책을 제시할 수록 오히려 칭찬받을 가능성은 커진다. 개선과 재발방지를 위한 의지는 당당해야 인정받는다.

    1. 홍보한다면서 위기 만들지 말자

    홍보와 위기는 한 끗 차이다. 홍보를 잘 못하면 위기가 된다. 위기관리는 잘하면 홍보가 된다. 노이즈 마케팅이었다는 사후해명은 대부분 말장난이다. 노이즈가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라면 그건 그냥 위기일 뿐이다. 그 노이즈를 최초 기획했을 때 목적이 무엇이었던 가에 답이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시끄러우니까 그냥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 하진 말자.

    1. 뭘 안해서가 아니라 뭘 하니 죄가 된다

    위기관리 매뉴얼과 실행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라는 의미다. 위기관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후 평가가 부정적일 가능성은 줄어든다. 반면, 위기관리를 위해 무언가를 나서서 했을 때에는 사후 평가에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은 는다. 이를 임직원 모두는 동물적 감각으로 알고 있다. 복지부동에 대한 경고와 함께 적절한 실행 가이드라인을 주어야 위기관리는 시작된다.

    1. 내가 살아야 위기관리다

    회사의 위기라고 해도 일단 내가 살아야 한다. 내가 일단 피해 입지 않는 범위에서 위기관리도 가능해진다. 그래서 회사의 위기관리 목표와 임직원 개개인의 위기관리 목표는 종종 동일하지 않다. 많은 기업의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이 매뉴얼에 따라 위기대응을 하면 사후에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고 적어 두는 이유다.

    1. 요즘 누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지는 좀 알자

    똑같은 짓 당분간 하지 말자는 의미다. 경쟁사가 갑질 논란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우리 회사도 돌아봐야 한다. 대기업 블라인드에 불이 붙었다면, 그 내용을 우리 회사에서도 들어보고 이해해야 한다. 여론은 떼를 지어 몰려 다닌다, 누가 현재 어떤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지 알아야 똑 같은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다.

    1. 위기대응 하는 실무자들이 날수 있게 하자

    어떤 위기관리 체계를 만들더라도 실무자들이 실행을 어려워하고, 실행에 걸림돌이 되는 체계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경영진이 핸들링 하기 좋은 체계보다 실무자들이 쉽고 편하게 실질적 위기대응을 할 수 있게 하는 체계에 좀 더 신경 쓰자.

    1. 어차피 책임은 결국 대표가 진다. 그러니 먼저 말하자

    왜 내가 책임 져야 하는가 하는 말은 종종 괘변이라 욕을 먹는다. 대표이사나 조직의 장은 책임을 지는 자리다. 자신이 아니라 주장해도 결국에는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위기를 관리하는 가 아니면 위기에 의해 관리되는 가는 중요한 차이다. 먼저 스스로 내가 책임질 테니 최선을 다해 위기를 관리하자 말 하면 사후에 차라리 남는 것이라도 있다.

    1. 일단 욕먹은 것은 빨리 고치자

    어떤 기업 케이스이건 예전에 욕만 먹고 안 고치면 더 욕먹고 또 욕먹게 된다.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회사 명성은 계속 곤두박질 친다. 예전에 문제가 되었거나, 다른 기업이 욕먹는 부분은 재빨리 찾아 개선하고 재발방지 하게 만드는 게 필수다. 더 중요한 건 욕 먹을 짓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 착한 기업은 없다

    착한 기업은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착하게 계속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를 위해 평시나 위기 시 일관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위기관리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보다 훨씬 눈에 띈다는 것을 이해하자. 그들보다 훨씬 더 다양하게 욕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자. 그래서 더욱 더 주변과 자신을 살피며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자. 그 뿐이다.

    • 막말인지 아닌지는 화자가 제일 잘 안다. 자신을 속이지 말자

    자신이 한 말로 논란이 일어났다면, 스스로 먼저 질문하자. 그 말이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돌발적으로 나온 것이었는지 판단해 보자. 사전에 준비된 것이었다면 그 준비에 문제가 있었음을 사과하자. 돌발적이었어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준비된 말은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발생한 논란을 두고 화자가 자신을 속이면 논란만 더 커진다.

    • 여러 회사가 동시에 위기관리 할 때에는 다른 회사들 보다 딱 한 발자국만 잘 하자

    곰을 만날 때 뛰어야 하는 이유는 곰보다 빨리 뛸 수 있어서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옆 사람보다 멀리 도망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뛰는 것이다. 많은 기업이 동시에 같은 문제에 엮였을 때에는 불필요하게 튀거나 뒤쳐지지만 않으면 산다.

    • 공감은 돈 안 든다. 인색하지 말자

    공감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공감을 책임인정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주어진 상황과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이해하게 되면 이해관계자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기업을 인간화 하여 커뮤니케이션 하는 데 성공하면 위기는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공감의 힘을 믿자.

    • 가장 최고의 위기관리 경지는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서는 말이 필요 없다.

  •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이해한다

    [The PR 기고문]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이해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린 아이들은 종종 사물을 마주할 때 마치 그것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심지어 인형, 장난감, 의자, 선풍기 등과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도 있다. 각종 동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람의 모습으로 말과 행동을 하는 동물과 사물이 인기 많은 주인공이다. 심리적으로 사물을 인간화 하여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과 기업의 관계도 그렇다. 사람들이 기업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관계 맺으려 하기 이전에, 오래전부터 기업은 사람들 머릿속에 자신이 자리잡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기업 광고에서 유명 모델을 내세우거나, 사람을 로고로 만들거나, 이미지 좋은 사람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다양한 스타일로 대중에게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우리가 다양한 기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여러 인간의 모습이 그 때문이다.

    기업 자체로는 인간의 모습을 띠지 않지만, 사람들이 기업을 생각할 때에는 특정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기업은 세련되고 스마트한 청년의 모습이다. 어떤 기업은 우직하고 성실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애정 있고 상냥한 엄마의 모습도 있다. 어떤 기업은 이국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의 셀럽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관계를 그린다.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기업의 인간적 면모는 아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기반이 된다. 평시와 위기 시 일관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볼 때 기존 보유하던 인간성 자산을 위기 시 얼마나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위기관리 성패가 갈린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위기 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기업들의 주된 인간적 유형을 살펴본다.

    그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평소 엄청난 광고 및 홍보 물량으로 사람들과 꾸준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기업이 있다. TV나 온라인 상에서 끊임없이 그 기업의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찬사가 메아리 친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 기업을 아주 멋지고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그 기업과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아다니고, 그들이 베푸는 여러 사회활동과 행사에도 흔쾌하게 참석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과 그 기업은 막연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회사 제품에서 엄청난 문제가 발견되었다. 소비자 일부는 실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언론과 규제기관이 나서면서 금세 북새통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그 친구(기업)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 기업은 그 것은 문제가 아니라 관행이었을 뿐이며 심지어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 이야기한다. 일부 피해 입은 소비자에게는 보상하겠지만, 너무 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 같이 만들지 말라 소리쳤다.

    그 기업을 오랜 친구로 여기던 사람들은 그 기업에게서 낯섦을 느꼈다. 어 저 친구가 왜 저러지? 저런 친구가 아닌데 이상하네? 친구가 왜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할까? 사람들은 그 친구를 향해 애석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후 어느 날 그 기업이 다시 등장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역시 최고의 친구라 이야기하며 다가온다.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같이 다시 더 좋은 친구가 되자 손을 내민다. 더욱 다양한 행사에 초대하고, 사회 봉사 활동에 나서는 자신에게 박수 처달라고 요청한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고민에 빠진다. 그때 그 친구는 어디로 간 걸까?

    너는 나를 알지만 나는 너를 모른다

    철수에게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원하고 주식을 사서 주주로서 자랑스러움 까지 느끼고 있다. 그 기업의 여러 온라인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 하고 있으며, 종종 댓글을 달아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기업의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우호적 평가를 하기도 한다. 때때로 그 회사의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다닐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수는 그 기업 제품을 사용하다가 큰 문제를 발견했다. 당연히 이 문제는 오랜 친구 (기업)가 나서서 깔끔하게 해결해 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다. 소비자만족센터에 전화를 걸고, 매장에 나가 상담까지 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당신이 제품 관리를 잘 못한 것일 뿐, 우리에게 책임도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였다. 일부 직원은 귀찮다는 듯 철수에게 블랙 컨슈머라며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다.

    철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를 좋아하고 응원했는데, 이럴 수 있어?’ 화가 나고 눈물까지 난다. ‘누가 당신 보고 우리를 좋아하라고 했나? 그냥 당신이 우리를 짝사랑했던 것 뿐이잖아. 심지어 우린 당신을 잘 몰라. 알 필요도 없고. 바보 같은 녀석’ 그 기업은 이렇게 철수와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것 같다. 철수는 생각한다. 이게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가 진짜 맞나?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어떤 기업이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문제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온다. 보도 내용을 보니 정말 어처구니없고, 그에 대해 기업이 해명하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이 기업을 이전에 몰랐었고 이 부정적 뉴스를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그 기업에 대해 악평을 하고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기업은 억울했다. 자신들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앞뒤와 전후좌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미웠다. 우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욕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에게 왜 저렇게까지 악의를 품으며 공격할까? 우리가 자기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식으로 우리를 힘들게 할까? 하며 서러움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아주 친한 친구가 비난 받을 상황이 되면, 아예 입을 다문다. 그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까지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욕을 하는 상황에서 나까지 나서서 내 친한 친구에게 욕을 퍼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위와 같이 서러움을 느끼는 그 기업은 평소에 사람들과 친한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좀 더 했었어야 했다. 낯선 기업은 그 자체가 취약함이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는 항상 색안경을 끼게 된다.

    너희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온라인에서 팔로워만 수십만명 거느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 매일 매시간 사람들과 대화하며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 엄지척을 들어 보이며 기업에게 좋은 친구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기업 경영진은 이정도 사랑받는 기업이라면 어떤 사업이라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크게 문제가 터졌다. 여기저기에서 화살이 날라와 꽂혔다. 기업은 여러 다양한 메시지로 해명하고, 예전처럼 대화를 계속하려 하는데,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그렇게 많던 엄지척이 하루 아침에 수많은 나빠요와 싫어요로 대체되어 버렸다. 경영진은 물론 임직원들까지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나쁜 놈도 이런 나쁜 놈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가 당신들에게 얼마나 잘 했는데? 이런 불만이 기업 경영진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유형은 평시 자사에게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진정한 우정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상호 관계가 그런 우정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 의례적/이익적 관계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호 관계 때문에 이런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는 기업들이 늘어간다.

    너희가 뭔 데?

    평소 광고나 홍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기업이 있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은 대부분 사람들과 여론에 대하여 부정적인 개념까지 가지고 있다. 특히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멸했다. 언론은 썩었고, 온라인은 쓰레기 통이라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일부 불만이나 비판은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가니까.

    사람들은 그 기업을 상당히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인간으로 인식했다. 때로는 무례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태도에 실망했다. 딱히 그 기업과 친해지고 싶지 않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마음도 별로 없었다. 그냥 저 기업은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지내고 있었다. 기분 나빠 관심두기 싫은 인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업에 큰 문제가 발생됐다. 수사기관이 그 기업을 압수수색하고, 오너와 대표이사를 줄줄이 소환 했다. 언론과 온라인도 당연히 주목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분 나쁨에 관심을 끊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내 그 여론은 엄청난 비판과 비난 그리고 공격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그 공격성을 행동으로 까지 표현했다.

    그 기업은 여러 조언을 들어 오너가 직접 나와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겸허하게 책임 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기업을 향한 화살은 줄어들지 않았다. 예전 사례와 다른 사례들이 줄줄이 따라 나와 더 다양한 비판이 창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한번 이럴 때가 올 것이라며 기다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무례하게 우리를 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 기업은 이러게 생각했다. ‘올 게 왔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사람은 기업을 생명이 있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별 관심이나 관계 맺기의 기회가 없던 기업을 볼 때에는 그냥 낯설거나 한 두 번 본 인간으로만 이해한다. 알고는 있지만 친하지는 않은 그런 존재다. 일부 기업은 운 좋게 그 보다 사람들에게 좀더 관심과 사랑을 받는 친구로 여겨 지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강화되면 사람들은 일부 기업을 아주 친한 친구, 막역한 사이로 인식하기 까지 한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 기업에게 ‘인간화’ 전략을 종종 조언한다. 해당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고통을 받았거나, 분노를 느끼는 여러 사람들과 먼저 공감해 보라 이야기한다. 위기 시 기업이 주변 사람들을 오래된 친구로 보는지, 그냥 아는 친구로만 바라보는지, 별로 친하지 않은 인간으로 바라보는지, 전혀 낯설어 하는지는 해당 기업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공감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 된다.

    당연히 사람들은 기업이 자신을 좋은 친구로 여길 때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에 더해 자신들이 그 기업을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면 더욱 더 이상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위기관리에 실패할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고, 대신 이해와 장상참작의 분위기가 생겨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기업이 제대로 인간화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기업은 좀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업은 위기 시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좋은 친구로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좋다.

    자사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기 전에, 친구들과의 관계를 먼저 따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래된 좋은 친구는 좀처럼 배반하지 않는다. 모르면서 친구를 욕하지도 않는다. 친구가 어려울 때에는 도움의 손길도 내민다.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좋은 친구가 많은 기업은 성공한다. 그러니 위기일 수록 그 친구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 보자.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기는 사라진다

    [The PR 기고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기는 사라진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발생된 위기는 사라진다. 언젠가는 우리 기억에서도 잊혀진다. 위기를 모든 사람이나 기업이 필히 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선 그 위기로 자신이 잃을 것이 많아야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반대로 그 위기로 잃을 것이 없거나, 무시할 만하다면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도 된다.

    실행해서 얻을 것이 있다면 그 대응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아 특정 위기관리를 하더라도 얻을 것이 변변하지 않다면 그 대응은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잃을 것이 없는 개인이나 사람이 억지로 위기관리를 하려 할 때 발생된다. 별로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오버해 대응하다 보니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실행해도 얻을 것이 뻔한데, 막무가내로 힘들게 실행 해 망신을 당하고 결과를 망친다. 왜 그런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을 했는가 물으면 그런 경우 대부분은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또는 ‘본 때를 보여주려고’ 등의 답변이 돌아온다. 아쉬운 경우다.

    이번에는 위기 발생 시 대응을 해야 하는 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쟁점들을 살펴보겠다. 위기관리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가장 위험한 단어는 ‘무조건’이라는 말이다. 이 다음 글을 읽기 위해서는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무조건 대응해야 한다는 상식을 먼저 버리자. 위기가 발생하면 대응해야 할 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는 새로운 상식을 가지고 글을 읽어 보자.

    대부분의 위기는 스스로 사라진다

    이건 진리다. 몇 년간 수십년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개인이나 기업의 위기는 없다. 며칠이나 몇 개월 고생을 해도 결국 위기는 사라져 버린다. 엄청나게 활활 타오르는 산림의 화재도 언젠가는 꺼져 버리게 마련이다. 한없이 밀려오는 강물도 언젠가는 줄어든다. 어떤 위기 건 끝이 있다.

    그에 비해 위기관리 주체인 자신이나 자사는 대부분 그 끝을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을 보인다. 금세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폭발적인 억울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대적하고 싶은 본능으로 고통받는다. 전문가들이 좀 더 미래를 보자 하더라도 그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어떻게 든 대응해야 이 상황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위기가 발생되면 그 위기를 검증된 의사결정자 스스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대응의 첫걸음이 된다. 금세 사라질 성격인지, 장기간 소란을 피울 성격의 것인지 먼저 판정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간 소란이 이어질수록 우리에게 점점 더 큰 데미지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살펴보자. 일단 이미 받은 데미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데미지가 계속 추가되어 우리의 맷집 한도를 뛰어 넘게 될 상황인지 여부다. 대응은 그 후에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이다.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 때만 대응하자

    특정 대응을 실행해서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경우 그 대응을 실행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무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예측해 볼 때 실행을 하더라도 크게 얻을 것이 없거나, 전혀 목적과 동떨어진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실행은 자제하는 것이 낫다.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홧김에 하는 대응은 위험하다. 기분전환용 대응도 그렇다. 억울함이나 분노를 어떻게 든 풀어보려 하는 대응도 종종 큰 논란을 만든다. 그걸 “왜 실행하는가?”라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왜냐하면”이라는 답변이 궁하다면 그 실행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 이유가 있더라도 들어보아 위기관리를 위한 핵심 목적이 아니라면 조금 참아 보는 것이 낫다.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이것 저것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질문하는 개인이나 기업도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산속에서 타오르는 불이나 밀려오는 강물도 언젠가는 줄어든다. 사소하게 실행한 여러 대응이 그 결과를 만들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대응은 그냥 소모적인 것일 뿐, 진정한 위기관리는 되지 못한다.

    전략을 기술이나 트릭과 혼동하지 말자

    위기관리에서는 순리를 따라야 그나마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는 안되는 대응을 두고 스스로 기술적인 것이라 부르면 안된다. 신기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대응도 매번 바람직할 수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과 트릭을 총동원해서 하는 희한한 대응은 자칫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자신 또는 자사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 평시가 아니라 특정 위기시에 위기관리 주체인 자신 또는 자사의 의지대로 여론이 움직여진다 믿는 근거는 무엇일까? 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도 그렇다.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 또는 내부고발자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충격적 방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훌륭한 전략은 견디는 것이다. 자신이나 자사의 맷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꼭 해야 하는 대응에 효과적으로 집중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 그 기간 동안 입은 데미지는 사후에 어떻게 든 노력해서 복구하면 된다. 한 겨울 덫에 걸린 산토끼처럼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뭐든 다 해 보자 해서는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질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해야 할 것만 하는 것이 전략적인 것이다. 어떤 것을 해서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비전략적이고, 무능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버리자. 때때로 그렇게 보여도 그 이유를 계속 상기해보자.

    막무가내 침묵과 전략적 침묵은 다르다. 무대응과 전략적 대응 자제도 또 서로 다르다. 그리고 침묵하지 않는 것이 침묵보다 차라리 쉽다. 무조건적 대응이 전략적 대응자제보다 훨씬 쉽다. 그래서 기업이나 개인은 쉬운 것을 좋아하고 선택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전략은 없어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전략적으로 대응을 자제하는 것을 누가 못할까 생각한다.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해 보면 안다. 전략적 침묵처럼 어려운 실행이 없다. 전략적 대응자제처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위기 시에는 내부와 외부 자극에 위기관리 주체가 끊임없이 들썩들썩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략적 침묵이나 대응자제를 잘 못 생각하는 사람은 그 대응을 두고 상황을 외면하고 외부 변화에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외부 변화를 입체적으로 파악해 업데이트 받고 있어야 전략적 침묵이나 대응자제는 가능해진다. 강력한 위기관리 리더십이 내부에 존재해야 겨우 유지 가능한 어려운 전략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대응보다 해야 하는 대응을 하자

    내가 온라인을 잘 알고 잘 하고 있으니 온라인으로만 대응 해 야지 하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우리가 출입기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위기 원점보다 먼저 출입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 실행이 하고 싶은 것이냐 꼭 해야만 하는 것이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가장 좋은 대응 방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동시에 그 실행이 현 상황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일 경우다. 그 결과는 당연히 좋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고, 그나마 자신이 잘하기 때문에만 선택한 대응은 위험하다. 최대한 상황을 분석해 자신이 원하는 대응 방식이 그를 관리하기 위해 최선인가는 가려 보자는 이야기다.

    위기관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대상과 채널 그리고 메시지의 우선순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우선순위와 비중 할당에 있어 하고 싶은 방향 보다는 꼭 해야만 하는 방향을 잘 찾아 정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순리를 따르는 위기대응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위기관리 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

    해당 위기가 우리의 실수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면 그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순리다. 해당 위기가 우리의 불법적 관행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면 스스로 법적 책임을 감수하며 반성하는 것이 맞다. 재발방지는 이 경우에도 기본이다. 말도 안되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논란이라면 사실관계를 해명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그런 순리를 자신의 사정 때문에 외면하고 역행하는 경우에 발생된다. 자신들의 실수였음에도 그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 법적 책임을 지기 싫어하고 어떻게 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어떤가? 스스로도 힘겹다. 어마 어마한 예산을 써가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순리라 보기는 어렵다.

    수년이 흘러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기업이나 개인도 물론 존재한다. 일부는 그를 보고 위기관리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위기관리의 완전한 성공을 의미하지는 못한다. 그런 기업이나 개인은 다시 다른 법적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똑같은 위기관리(?)에 만족하면서 반복되는 실행을 할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위기관리라 생각할 것이다. 순리를 따르자. 순리를 떠올리며 평소에 위기를 관리하자. 그것이 더 낫다.

    위기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나 위기가 발생한 직후 위기관리 주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일부에서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하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대응’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일부는 아이디어를 달라고도 한다.

    그만큼 대응 방식이나 그와 관련된 전략은 위기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간과하는 것은 대응하지 않는 것도 대응이라는 생각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최초 경영진이 결정한 대응 자제에 대한 기조를 유지하는 도중에도 실무진들은 계속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의문을 품는다. 이래서는 안돼는 데, 무언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계속 몸이 달아오른다. 이런 경우 경영진은 왜 대응을 자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반복적으로 실무진들에게 설명하고 확인시켜야 한다. 위기 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완전한 대응이 된다.

    이 글에서는 위기는 이내 사라지니 대응하지 말아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침묵이나 대응 자제가 항상 유효한 전략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기 시 무조건적 대응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하는 것이다.  전략적인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앉아 있는 상대는 강하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든 대응 준비를 마치고 상황을 면밀하게 바라보는 역량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경지의 것이 아니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대응을 자제하며 필요한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 꼭 대응해야 할 때와 꼭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때를 잘 가려 대응하자. 무조건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 라는 기준을 세우자. 전략이 있으면 대부분의 위기는 사라진다.

  • 위기관리 시 음모론은 왜 떠오를까?

    [The PR 기고문]

    위기관리 시 음모론은 왜 떠오를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대형 위기가 발생되면 그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음모론이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이 대형 재난이거나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면 그 음모론은 더욱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지속 각색되어 퍼져 나간다. 인간의 본성에 기반한 음모론 형태가 많은 것으로 보아 사람들도 어느 정도 음모론을 기대하거나 의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듯하다.

    흥미로운 것은 기업에게 위기가 발생했을 때도 그와 유사한 음모론이 다양하게 대두된다는 점이다. 사회나 국가 차원으로 접했던 습관에 의해 기업이 그런 음모론을 떠올리는 것인지, 자사를 타겟으로 하는 모종의 음모가 실재하기 때문에 기업이 주목하는 것인지 단순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번 글에서는 위기를 맞은 기업 내부에서 생겨나는 음모론 형태와 그 배경 그리고 위기관리 컨설턴트로서 경험에 기반한 조언을 정리해 본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 기업 위기관리 시 목격되는 맹목적 음모론 기반의 대응이나 의사결정 그리고 평가가 최대한 줄었으면 한다.

    음모론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전지전능함을 전제로 한다

    자사는 상대가 전지전능하다고 믿어야 음모론이 완성된다. 경쟁사가 언론을 통해 자사를 집요하게 음해하고 있다 믿는 경우도 그렇다. 자사보다 경쟁사 홍보실이 훨씬 더 강하고, 전략적이며, 주도 면밀하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런 음모론은 성장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경쟁사측에서 언론을 통해 자사에 대한 음해 정보를 마구 퍼뜨리고 있다면, 자사 홍보실에서는 그 내용이나 경로 그리고 기자들로부터의 정보 입수가 가능해야 정상이다.

    그런 구체적 정보가 없거나 부족한 상태에서 심증은 있는 데 물증이 없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상황판단은 아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그렇게 티끌 없이 치밀하고 전지전능한 상대나 개체는 없다. 최근 같은 투명적 사회 환경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상대방이 완벽하게 자사를 노리고 있다면, 왜 자사의 역량으로는 그 만큼 하지 못했는지를 먼저 돌아 보아야 한다.

    음모론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통적 공격성을 전제로 한다

    일부 기업에서는 언론도 우리를 공격하고, 검찰과 청와대와 국회와 시민단체가 모두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자사가 그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고 하면서 그들 모두가 자사에게는 적으로 보인다는 해석을 한다. 자사가 무엇을 해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반영해 주지 않으며, 항상 삐딱하게 자사를 바라본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경우는 해당 기업의 지나친 피해의식이 그 기반이다. 이전에 특정한 계기를 통해 그런 피해의식이 사내에 생겨났고, 일정기간 동안 부정적 환경에 시달렸던 트라우마 때문에 주변 이해관계자들에게 자꾸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 일부가 적대적이라 해도 전체나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이 실제로 ‘마녀사냥’을 하려면 단순한 느낌 보다 훨씬 많은 심각한 전제 상황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주변 이해관계자를 적으로 보고 음모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라고 해도 기업 차원에서 어떻게 해야 주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를 정상화 할 수 있을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음모론은 자사의 무기력함을 먹고 자란다

    기업 경쟁 차원에서도 상대 기업이 어떤 혁신적인 신제품을 출시해서 시장 전쟁을 일으키면, 자사에서도 그에 대한 응전과 반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 경쟁사 신제품 보다 훨씬 더 나은 신제품을 출시하거나, 전혀 다른 시장을 치고 들어가 시장을 흔들거나 하는 등 모든 전략과 역량을 집중해 열심히 대응하곤 한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음모론을 주로 이야기하는 경영진들은 그런 도전과 응전이라는 개념을 위기관리에 적용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내부적으로 상대로부터의 그러한 도전을 감지했다면, 왜 자사에서는 적절한 응전을 하지 않는가 질문하면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저희는 경쟁을 젠틀하게 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그런 회사와는 좀 성향이 다릅니다.” “수준 낮은 회사가 막판 발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들으면 무언가 자사가 멋져 보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현실적으로 보면 상황에 대한 심리적 회피이자 포기로 보인다. 경쟁사의 음모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된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응전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경영진의 의무라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전을 포기한 채 음모론만 곱씹고 있다면 사실 그 상황은 음모론에 기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일종의 젠틀함을 내세우는 무기력함이 그 원인인 것이다.

    음모 자체를 인간으로서 불가항력한 것이라 해석한다.

    이번 위기는 음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자사가 어떤 대응을 해도 제대로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 더 나아가서 그 누가 이런 음모와 마주하더라도 성공적인 위기관리는 절대  어려울 것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음모라는 너무나 큰 힘이 자사를 둘러싸고 있고, 수많은 위해가 외부로부터 가해지고 있으니 일단 견디면서 생존하자는 모드로 바로 돌입한다. 데미지 컨트롤이라고 해서 일단 가만히 인내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집중하자는 의견이 주를 이루기도 한다.

    싸움에서 상대를 너무 크게 보거나 상상하면 초기부터 전의를 상실하게 되는데, 바로 그 형상이다. 그러나, 좀 더 전략적인 기업이라면 처음부터 상황을 음모론의 틀속에서만 해석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해서 상대가 누구인지, 어떻게 하면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지를 합리적으로 논의하려 노력해 볼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그런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으려 노력은 할 것이다.

    음모론이라고 생각해야 편안한 경우도 있다.

    발생한 모종의 사회적 지탄과 그로 인해 이어지는 이해관계자의 공격을 피부로 경험하면서, 음모론을 떠올리는 기업 내부에는 ‘자사는 아무 잘 못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겨우 그 정도의 잘못을 가지고 왜 우리가 이렇게 음모에 시달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거다. 경쟁사의 경우 우리와 비슷한 잘못을 해도 우리만큼 여론의 지탄을 받지 않는데 왜 우리만 이런 가 불평한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해당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진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기업이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 주변 이해관계자들은 그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신들이 생각할 때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관행이었고, 문화이었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해석하는 것이다. 자사가 주변 이해관계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으려 하는 셈이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는 음모론이 의심의 대상이자 큰 변명이 된다. 우리는 별 잘못이 없는 데 이상한 음모론에 희생되었다는 자체 해석을 하게 된다.

    음모론을 다뤄야 무언가 수준이 높다는 느낌을 가진다

    상당수의 음모론은 기업 말단 실무진에서 나오기 보다는 고위 경영진으로부터 나온다. 일부 실무진이 음모론을 이야기해도 경영진이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당 실무자의 개인 의견으로만 머문다. 반대로 최고경영진이 음모론을 이야기하면 실무자들은 그에 동의하며 의사결정 방향을 그 방향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최고경영진이나 그 주변에서 조언하는 전문가들은 부정적 상황과 맞닥뜨리면 ‘이 상황이 왜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가?’ 궁금해한다. 최근 시시각각 바뀌는 시류나 환경을 단시간에 따라잡아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당 상황의 특수성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여의치 않다. 그러다 보니, 해당 상황을 그냥 음모론이라는 아주 단순한 프레임에 넣어 해석하는 선택을 한다. ‘이해하지 못하겠으니 이건 분명 음모’라는 사고의 프로세스를 거치는 것이다.

    사내 시각으로는 고위경영층이 실무진 보다 훨씬 더 많은 고급 정보와 인맥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이 해당 상황을 음모론에 연계해 이야기하면 그걸 믿을 수밖에 없다. ‘VIP가 청와대 이야기를 들었는데…’ ‘VIP 사위가 검찰에 있는데 그 쪽 이야기가…’ ‘VIP 지인들이 알아보니 그런 음모가…’ 이런 사내통신이 돌아다니게 된다. 무언가 그런 정보와 음모론을 꿰뚫고 있어야 수준 높은 위치라는 느낌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이는 음모론에 기반한 위기관리 방식 중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음모론을 위기관리 사후 평가에 활용하려는 생각도 있다

    큰 음모가 있었다, 그것이 기반이 되어 현재 같은 사태가 발생되었다, 지금 같은 최악의 상황은 불가항력적인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사내 공감대가 일단 있으면 위기관리 실무는 차라리 쉬워 질 수 있다. 사후 평가에 있어서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해진다. 일종의 피해의식으로 인한 동질감이 사내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 스스로 이번 건은 강력한 음모로 인해 우리가 희생양이 되었고, 마녀사냥의 광풍이 분 것이라 생각하면 실무진들의 문제를 이해하게 된다. 실무자들은 비슷하게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했으면 최선을 다한 것이라는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음모론이 혹시나 있었을 수 있는 위기관리 전반 프로세스에서의 취약성과 문제점을 일시에 덮어주게 된다. 책임으로부터 모두가 자유롭게 된다. 만약 회사의 위기 시 마다 자주 음모론이 떠오른다면, 이와 같은 직원들의 현실적 이유 때문이 아닌가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음모론을 이야기하려면 심증이나 일부 근거만을 기반으로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반대로 확실한 증거나 근거들이 충분하다면 일단 그 상황은 음모론에 의해 움직여지는 상황은 아니다. 음모론을 습관적으로 언급하거나 초기부터 프레임화 하려는 시도는 상호간 경계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단순한 분석이나 동질감을 느끼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실제 위기관리에는 큰 장애가 된다.

    또한 음모론이 자주 생겨나는 기업 내 분위기는 건전하다 보기 어렵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음모론이 판을 치고, 그 음모론에 의해 모든 것이 돌아가며 충돌하고, 음모론이 또 다른 음모론을 낳고 하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기업 위기관리에 있어 종종 발견되는 사내 분위기로서의 음모론은 그래서 문제다. 음모론은 그냥 소셜이나 영화속에서만 즐기자.

  • CEO의 허심탄회 소망이 재앙이 되는 이유

    [The PR 기고문]

    CEO의 허심탄회 소망이 재앙이 되는 이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신임 대표가 취임하게 되면 대부분 회사에서는 신임대표와 직원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마련한다. 직원들은 새 대표의 얼굴을 직접 구경하며, 그가 가진 경영 방향성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신임 대표 입장에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직원들과 마주해 허심탄회하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일종의 상견례의 기분으로 서로가 즐겁게 얼굴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여기 까지다. 일단 간담회가 끝나면 상황은 이상한 쪽으로 흐르곤 한다. 직원들 각자가 신임 대표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한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새 대표에 대해 그리고 회사 분위기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블라인드에는 익명의 직원들이 신임 대표의 간담회 속 언급 내용들을 메모 형식으로 공유하며 평가를 시작한다. 그 포스팅 속 텍스트에 몰입된 사람들이 부문별한 개인적 평을 덧붙인다. 신임 대표의 일부 부적절 했던 메시지에는 융단폭격이 가해지고, 머지않아 그 내용이 언론에 기사화된다. 결국 소망이 재앙으로 변해 버렸다.

    신임 대표의 순수하고 희망적인 소망이 대체 어떻게 몇시간 만에 재앙의 모습으로 변질될까? 무엇이 문제일까? 신임 대표의 순진함이 문제인가? 직원들의 몰지각함이 문제인가? 언론의 지나친 가십성 관심이 문제인가? 대체 왜 그런 재앙이 여러 회사에서 반복될까? 그 이유를 이해해 보자.

    첫째, 소통은 고통이다

    얼마전부터 기업이나 정부나 할 것 없이 소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통은 지상명령이 되어 버렸다. 소통은 꼭 해야만 하고, 소통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리더들은 소통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소통을 잘하는 리더로서 스스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 애쓴다.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자주 하려 한다. 각종 회식이나 모임에 얼굴을 비춘다. 젊은 신입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언제든 대표에게 아이디어를 던지고 질문하라 한다. 대표이사의 사무실 문을 오픈 해 놓고 누구든 할말이 있으면 들어와 이야기 나누자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열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레터를 쓰고, 멘토링도 즐긴다.

    여기에서 핵심은 그러한 소통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리더가 확실히 깨달어야 여러 소통의 노력들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점이다. 소통이 마냥 즐겁게 느껴지거나, 소통에 가슴이 뛰거나, 소통은 편안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리더는 위험하다. 소통은 듣는 것이 주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직원들의 다양한 사견들을 듣는 것은 더 나아가 공포다. 이런 고통과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 리더의 소통 방식은 위험한 것이라는 반증이다.

    둘째, 자녀와도 소통이 어려운 가장의 소망은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중년 가장은 자신이 20-30 년 동안 키운 아들 딸 과도 소통을 어려워한다. 세대차이는 물론이고,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적응이 좀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자신이 아버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 느끼는 비율은 상당히 적다.

    그런 흔한 중년 가장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어디에 선가 소통의 자신감이 생겨난다. 20-30대 직원들에게 리더인 자신이 허심탄회 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들이 웃으며 공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성공담이 그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고, 리더로서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정확하게 각인되리라 소망한다.

    그런 믿음과 소망이 위험하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더구나 마주 앉은 상대 직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녀들 보다 내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낯선자들이다. 그에 더해 대표와 직원이라는 정치적 조직적 분리가 기반 되어 있다. 그들이 신임 대표에 대해 오랜 익숙함과 친근함, 그리고 사랑을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 많은 기반들이 생략된 채 행해지는 낯선 소통의 시도는 폭력이 된다.

    셋째, 하고 싶은 말 보다는 해야 할 말만 해야 하는 시대다

    회사내에서 직원들과 ‘정’을 나누는 시대는 끝났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예전 그 시절에도 진짜로 직원들과 정을 나눈 리더들은 없었을 수도 있다. 일단 정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리더가 산다.

    ‘허심탄회’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 놓는다는 의미다. 일단 기업 내에서 리더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제 마음을 터 놓는 것이 가능한가? 큰 일 날 소리다. 생각을 터 놓는 것은 또 어떤가? 언제 누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터 놓아 본적 있는지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허심탄회와 같은 개념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보는게 안전하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을 비롯한 유명기업들의 리더는 직원들과 철저하게 ‘정치적 정도 (Political Correctness)’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주체를 가장 안전하게 방어해 주는 개념이 정치적 정도다. 누구와도 중립적인 개념의 메시지로만 커뮤니케이션 하기 때문이다.

    최근 리더들이 골치 아파하는 커뮤니케이션 주제인 젠더, 사회적 차별 및 불평등, 부적절한 규정, 공정성, 정치적 가치관, 환경, 사회적 가치 등과 관련해 어떤 것이 정치적 정도이며 그에 기반한 메시지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리더가 소통에 성공한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있어 정치적 정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무조건 재앙이 된다. 하고 싶은 말 보다 꼭 해야 하는 말만 하자

    넷째,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지 못할 이야기는 직원에게도 하지 말자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된 세상이다. 직원들도 이제는 모두 기자다. 직원의 휴대폰에는 언제든 기사를 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채널들이 반짝이고 있다.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지 못할 말이면 직원들에게도 하면 안되는 환경이 되었다. 블라인드나 소셜미디어에서 보기 싫은 자신의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말자. 그러면 재앙은 미연에 방지된다.

    일부 리더는 직원들에게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강조하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로 알리지 못하는 제한이 필요하다 이야기한다. 회사 모니터링 체계와 규정을 강화해서 온라인에서 일부 몰지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직원들을 찾아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받게 되는 회사의 피해에 대해 그대로 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물리자고도 한다.

    하지만, 다시 기억하자. 직원은 기자다. 기자는 질문하고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을 세상에 알린다. 직원에게 질문하지 말고,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블라인드에 올리지 말라 강제할 수는 없다. 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도 없다. 기자가 쓰는 부정기사를 전략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기자가 부정적인 것이라 판단할 기사 꺼리를 회사가 만들지 않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수밖에 없다.

    다섯째, 노 선배와의 허심탄회를 한번 생각 해 보자

    CEO 자신보다 대략 서른살 많은 직장 선배가 자신과 같은 또래들을 모아 놓고 그의 스타일 대로 소통한다고 상상해 보자. 80~90세 선배가 자신의 오래된 경험과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거다. 중년인 자신들에게 회사 생활하는 방법과 여러 최근 사내 이슈에 대해 선배 나름대로 생각을 피력한다. 그리고는 중년인 후배들에게 멘토링을 해 주겠으니 허심탄회 하기를 제안한다. 어떤 느낌이 드나?

    바로 그 느낌이 현재 직원들이 느끼는 소통의 세대차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자. 최근 젊은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꼰대’다. 일단 싫다는 거다. 말도 통하지 않고, 더 나아가 말하기도 싫은 대상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금지어가 된 지 오래다. ‘라떼 이스 호스(Latte is horse)’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선배들의 라떼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일부 80년대 생들은 벌써 젊은 꼰대라고 까지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제인가? 그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기업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글쎄다. 수십년 전에도 젊은 친구들은 윗 사람들을 꼰대라 불렀었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꼰대는 존재했다. 그 때 그 선배들을 꼰대라고 부르며 뒷담화 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그 꼰대의 자리에 오른 것뿐이다.

    소통이 성공하려면 상대의 문제를 문제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상대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상수라고 간주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리더는 자신이 꼰대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친근한 꼰대가 되는 것이 낫다. 직원들과의 소통에서도 불편하고 기분 나쁜 꼰대로 비추어 지지 않기 위한 준비된 노력만이 상책이다.

    마지막,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하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소통의 시도다. 준비 없는 소통, 메시지전략과 핵심 메시지 없는 소통은 곧 위기로 발화된다는 생각을 하자. 이미 우린 수많은 소통으로 인한 재앙을 목격했다. 재앙으로 결론 난 소통의 시도들의 주된 공통점은 리더가 완벽하게 소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통을 지원하는 실무팀에서도 리더를 위한 철저한 준비와 지원이 부족했을 것이다.

    소통은 고통이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소통의 시도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시도하는 소통은 언제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실패를 줄이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부단히 해야 맞다. 해야 하는 말로만 메시지 전략을 짜야 한다. 세부적인 핵심 메시지도 대부분 해야 할 말에 연결되어지는 구조를 지녀야 한다. 리더는 스스로를 부정하지 말고, 직원들이 바라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좀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또한 철저한 준비와 노력과 연습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런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준비의 과정을 참지 못하는 리더라면, 지금과 같은 소통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신도 실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신비함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존재 가능한 것이다. 만약 거룩한 신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와 면대면 소통을 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 하자 한다면 이내 신비감은 사라질 것이다. 그 신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면 실망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완전히 준비된 전략을 가지고 직원들 앞에 나와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할 것 같은 리더라면, 차라리 신비함을 유지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면대면을 피하고 전통적인 텍스트와 잘 편집된 영상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다. 소통의 횟수를 의미 있게 조정하고, 주제를 완전하게 관리해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 일단 무엇보다도 안전한 소통의 방식이어서 더 가치가 있다. 트렌드를 쫓는 헛된 소망이 재앙으로 변질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준비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비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결과를 예상하거나 일부라도 통제할 수 없다. 결과와 반응을 그저 운에 맡기는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될 뿐이다. 이제부터 허심탄회라는 말은 쓰지 말자. 정이나 운을 기대하지도 말자. 헛된 소망을 버리고, 준비와 연습을 통한 전략을 믿자.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본질로 돌아가자.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의 흔한 특징

    [The PR 기고문]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의 흔한 특징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대체 어떤 기업이 위기관리를 잘 하나요? 어떻게 해야 위기관리 잘한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잘되어 있는 기업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위기관리 관련 모임이나 워크샵에 가면 아주 흔하게 듣게 되는 실질적 질문이다.

    한 중견기업 회장께서는 조찬 자리에서 이렇게 물으셨다. “그래도 위기관리는 OO그룹이 제일이죠? 제가 봐도 유일하게 좀 제대로 하는 것 같더군요.”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뜸을 들이자 옆에 있던 다른 기업 대표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건 OO그룹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겠지요. 예산이나 인력도 많고, 네트워크도 좋고…” 다른 기업 대표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기관리 컨설턴트 일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위기관리는 대기업이 잘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경영진 생각 속에는 ‘우리는 그 OO그룹 보다 작고, 예산도 없고, 인력도 충분하지 않아서 위기관리는 잘 못할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개념이다.

    이런 경영진의 생각은 몇 가지 위기관리 자체에 대한 피상적 오해해서 비롯된 것이다. 일단 위기관리는 언론이나 정부규제 부처에 접근해 문제를 문제없게 만드는 매직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여러 트릭과 큰 돈이 든다 여긴다.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런 기업이 유력자나 유력 그룹을 찾는 이유는 그런 믿음 때문이다.

    또 다른 오해는 홍보실이나 대관, 법무 등 조직이 대규모로 구성 유지되어야 하고, 그 속에 전관들이 많아 알아서 위기를 관리하는 체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들이 평시에도 많은 커넥션을 만들어 사전 정지작업이나 무마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위기관리라 생각한다. 반면 자신의 기업은 홍보실조차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고, 사실 부서장들의 전문성도 신뢰할 수 없어 위기관리는 힘들다 한다.

    그보다 더 심각한 오해는 경영자 스스로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실제 현실과 많이 다른 경우 발생한다. 위기관리는 일선에서 하는 것이다는 개념. 위기는 무책임한 언론이나 몰상식한 온라인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 위기가 발생되면, 임직원이 움직여 어떻게 든 조용하게 만들어야 성공이라는 생각 등이 더 큰 문제를 만든다. 일상적으로 대화를 나눌 때 경영진은 그런 잘못된 시각을 비웃는다. 그러나 실제 자사에 위기가 발생되면 생각이 바로 그와 같이 바뀐다. 어쩔 수 없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기존에 경영진이 가지는 중요한 위기관리에 대한 오해를 기반으로, 실제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들의 흔한 특징을 정리해 본다. 이런 기업이 진짜 위기관리를 잘 하는 기업이다. 참고해 보자

    1.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평소에 위기를 관리한다

    이슈나 위기의 씨앗과 싹을 찾아 낸다. 이슈나 위기의 성장을 씨앗기, 새싹기, 성장기, 발화기, 휴면기로 나눈다고 보면, 아주 초기에 문제의 ‘낌새’를 찾아내는 기업이다. 보통 실무자들 선에서 이런 문제들은 상부로 즉각즉각 보고되고 구체적 해결 제안까지 공유된다. 임원들이 정기적인 이슈 트래킹 미팅을 통해 자사에게 발생 가능한 이슈나 위기 요소들에 주목하고 관심을 가진다. 대표이사 또한 어떤 문제 요소들이 현재 존재하고 성장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이런 식의 평시 위기관리가 성공적인 기업의 가장 흔한 기반이다.

    • 위기관리 잘 하는 기업은 항상 일을 빠르게 잘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평시에 제대로 일이 빨리 빨리 진척시키지 못하는 기업이 위기 발생 시 그 보다 잘 하리라는 예상은 하기 힘들다. 평시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면 위기 발생 시 어떤 상황이 발생될지 상상이 가능하다. 신속한 보고와 팀워크, 적절한 타이밍에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명령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어 재빠르게 움직이는 실무진. 그리고 중요한 시간관리와 데드라인 마인드. 이런 가치에 충실한 기업이 위기관리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현장에서 보면 빠른 기업처럼 부러운 것이 없다. 위기를 맞은 기업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정말 장관이다.

    • 위기관리 잘 하는 기업은 CEO가 항상 정위치 한다

    상황 보고를 CEO가 직접 받는다. 의사결정을 리드하고 통제하는 것도 CEO가 한다. 그런 CEO가 실행안에 대해 여러 임원과 토론하고, 직접 지시를 내린다. 보고와 실행 시점을 정해 시간관리를 리드한다. 기자회견을 하는 경우 스스로 단상에 올라간다. 이를 위해 급히 준비 훈련을 할 때에도 셔츠를 풀어 헤치고 밤 늦게까지 연습한다. CEO가 위기관리를 내 일이라 생각하는 거다. CEO가 정위치 하면 의사결정은 빨라지고, 실행도 바로 된다. 불필요하게 정보를 반복적으로 대뇌일 필요도 없다. 위기 시 임직원들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 시간에 CEO를 설득하고 있으면 안된다.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매뉴얼보다 경험을 중시한다

    이제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다.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은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관심도 있지만, 그를 기반으로 하는 훈련과 시뮬레이션에 더 투자를 한다. CEO 스스로도 해 봐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임원들 사이에서도 이전 위기관리 경험이 있는 임원이 더 위기관리를 잘한다는 것이 상식이 된다. 이런 기업은 위기관리 대응 위원회나 팀을 만들어 놓고 정기적으로 새로운 이슈나 상황을 전제해서 반복 토론하고 대응을 연습한다. 열심히 반복해서 연습하는 기업을 이길 수는 없다.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실무자들이 일을 제대로 한다

    위기관리의 정의를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경영진 뿐만 아니라 실무진들에게도 적용된다. 실무자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하는 기업의 경우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좋은 대응 결과를 보인다. 제대로 일하는 홍보실, 제대로 일하는 대관과 법무, 제대로 일하는 인사, 기획, 마케팅, 영업, 기술, 생산, 총무들이 모여 일사분란 함이 나타난다. 가끔 우리 회사 직원들은 일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그 정도면 그건 이슈나 위기관리 이전에 해결해야 할 경영적인 숙제다. 그게 바로 위기 일 수도 있다.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컴플라이언스가 살아 있다

    위기관리 담당자들이 모여 “사내 감사 기능만 제대로 확립 운영되어도 위기의 상당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최근 상당히 강조되는 ‘컴플라이언스’는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에게는 신앙 같은 가치다. 준법과 법의식이 임직원에게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다. 심지어 위기 발생 시 대응 방식에 있어서도 그것이 법적으로 논란이 있을 수 있을지 여부를 꼼꼼히 따지고 선별한다. 법이나 규정에 대한 준수는 이슈나 위기관리에 있어 가장 기초다. 여론이나 정무감각을 논하기 아주 이전의 기초작업으로 위기관리 성공의 기반이 된다.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조력자들을 거느린다

    이슈나 위기관리는 우리 임직원만 움직여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기업이 위기관리에 성공한다. 그런 기업은 문제 발생 시 이전부터 자사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있는 로펌이나 위기관리펌, 언론관계 및 대관 전문가들을 자사 위기관리팀 구성원으로 즉각 소집한다. 이미 그들 모두는 기존 임원들과 일면식이 있고, 함께 일해 본 경험이 많은 그룹이다. 그들과 협업 체계를 신속하게 형성해 내 외부 시각을 균형 있게 포함한 대응을 결정한다. 자사에게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그들을 통해 보완 받는다. 자사에게 강력한 역량이 있으면 그들의 실행 지원에 힘을 보탠다. 그런 기업은 이렇게 원팀을 잘 꾸린다.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주장보다 근거가 많다

    주장만 많은 기업은 위기관리에 유리하지 않다. 주장은 근거가 있을 때만 그 유효성을 보장받는다. 근거 없는 주장만 만연해서는 논란만 키울 뿐이다. 위기관리를 잘 하는 기업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도출된 대응 내용 하나 하나에 근거가 잘 마련된다. 제대로 된 각종 조사자료나, 법적 계약서, 소송 및 판결 기록, 전문 논문, 실험 및 연구 자료 등이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근거들을 적절하게 활용해 자사의 주장을 강화한다. 밖으로 전달하는 모든 메시지에 힘이 생긴다. 정확성과 적절성은 기본이다.

    •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직원들의 애사심이 크다

    애사심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일단 위기관리를 실행하는 실무진들이 자사는 정직하고, 좋은 회사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위기관리를 잘 하게 된다. 대응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실무자들이 자사의 원칙과 가치를 기반으로 판단해 해결책을 찾는다. 우리 대표께서도 이런 문제에 봉착하면 똑같이 이렇게 했을 꺼야 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선에서 의사결정 한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을 자랑스러워 한다. 이렇게 위기관리에 있어 신속대응팀이나 일선 지휘관의 의도(commander’s intent) 존중 문화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1.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위기관리를 우선한다

    이런 기업에서는 위기 발생 시 모든 업무의 우선순위를 위기관리 업무에 둔다. 위기 발생 시 많은 위기 대응 부서들이 기존 업무는 잠시 내려 놓고 위기관리 업무에 우선순위를 두어 집중한다. 최소한 위기대응 회의에 들어와서 노트북으로 자기 일을 하는 임직원은 볼 수 없다. 대응 임직원이 위기관리에 업무의 우선순위를 두어 집중한다는 것은 일단 그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방향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나의 방향성, 하나의 생각, 하나의 목적과 목표는 우선순위의 전제 없이는 갖추어 지기 어렵다. 위기관리를 잘하는 기업들은 그걸 이해한다.

    1.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위기로부터 배운다

    똑 같은 위기를 반복적으로 계속 경험하는 기업은 내부적으로 ‘위기유발의 의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임직원 개인이 위기를 발생시켜야 하겠다는 부정적 의도를 복합적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 않고 서는 문제 해결이나 개선이 되지 않은 채 똑 같은 위기를 반복 경험하는 멍청한 상황은 상상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위기를 관리하고 나서도 열심히 그 문제에 집중한다. 위기관리 프로세스 전반을 점검하고, 취약성이 나타난 분야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런 주목은 대부분 개선의 실행으로 이어진다. 최소한 조그만 규정 몇개나 장비 구입 하나라도 개선 실행을 한다.

    1.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은 VIP가 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앞의 열 한가지 역량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이 열 두번째 특징이 없으면 모든 역량은 쓸모 없는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기업의 VIP가 위기를 만들었을 때 그 위기를 제대로 관리해 줄 수는 없다. VIP 스스로가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매니저이자 리더인데, 자신이 위기를 만들게 되면 그 기능이 적절하게 발휘될 수 없는 법이다. 많은 VIP 위기 케이스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기업의 VIP는 문제 해결사(problem solver)가 되어야 지, 스스로 문제(problem)가 되면 안된다.

    이상과 같은 위기관리 잘하는 기업의 특징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기존 일부 경영진이 상상하는 그런 가치나 개념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기업이니까 잘 하지. 예산이 많아서 잘할 거야. 인력이 충분하니까 못할 수 없지 등과 같은 피상적인 생각들은 실제 자사의 위기관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규모, 어떤 업계의 회사이던, 앞에서 제시한 열두가지 특징만 잘 챙겨 다듬는다면, 위기관리를 잘 하게 된다. 최소한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지게 된다. 그건 개런티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