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의 위기관리학

[정용민의 위기 커뮤니케이션]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긁어 부스럼 만들 일 있어?” 제품 이물질 사건에 대해 우리의 공식입장을 빨리 밝히자 주장하는 홍보팀에 대해 CEO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제품 관련해서 기사가 어디 어디 난거야? 그거 온라인에 몇 개 났다고 우리 홈페이지에다가 떡 하니 잘못했다
뭐했다 팝업창 올리면 앞으로 누가 그 제품을 사먹겠어?”

책임 못질 일이면 홍보팀은 잠자코 있으라고 하신다. 마케팅이나 영업쪽에서도 ‘아직까지는 도소매상들이 그 기사를 못 본 것
같으니까 그냥 있는 게 낫겠다’는 반응이다. 괜히 홍보팀이 헛발질을 해대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 오버해서 대응하는 데만 몰두하는
게 아니냐 하는 표정이다.

“아니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홈페이지에다가 올리면 누가 우리 축제에 오겠어?” 모 지역 축제를 앞두고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일부 홍보담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괜히 이슈를 공식화해서 이러 쿵 저러
쿵 발표를 하면 올 사람도 안 올게 뻔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사건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그냥 올꺼 아니야?”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자제하라는 조언 뒤에 나오는 말이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위기관리는 기술에 대한 문제 이전에 철학에 대한 문제다. 기업의 철학 그리고 경영적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대한 검증의 한 방식이다. 단 한 명의 소비자 또는 단 한 개의 제품이라도 기업의 측면에서는 소중해야 한다. 또 그렇게
커뮤니케이션 해 왔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해야 옳다.

지금까지 생각해 왔고, 외쳐왔던 그 가치 또는 주문(mantra)을 아무 낯섬 없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곧 위기관리고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다. 소비자가 불안해 할만한 이슈에 대해 ‘모르는 게 약’이라는 포지션은 입장을 바꾸어 보아도 옳지 않다.
적극적 리콜이 우리 제품의 문제를 몰랐던 소비자들에게 까지 우리 회사의 잘못을 인식시키는 오버액션이라고 보는 회사에게 중장기적인
소비자 신뢰는 존재하기 어려운게 아닐까.

적극적인 리콜이 우리회사의 제품과 소비자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는 회사가 성공해야 옳은 게 아닌가. 평소에 그렇게 말해 왔으니 그게 당연한 게 아닌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PR컨설팅을 해 보면 일부에서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소비자들이나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신뢰를 주지 않는다 불평한다. 그리고 그 이유가 뭔지 하도 오래되어 직접적인 원인이 파악되지
않는다 안타까워한다.

그 주된 이유는 말과 행동에 있어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기시에 가치를 가차없이 등져버린 전례들이 무수히 쌓여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나 국민들이 하나 하나의 이슈들을 잊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사라지기는 힘들다. 소비자들이
경악할만한 논란들도 시간이 지나면 하나 둘 잊혀지는 듯 하지만, 얼마 후 유사하거나 별도의 위기가 발생하면 그 이전의 나빴던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 나기 마련이다.

위기시 이해관계자들에게 확실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회사의 원칙과 가치 그리고 평소에 이야기하던 주문(mantra)를
반복적으로 일관되게 확인 시켜 주는 것이 제대로 된 위기관리고 중장기적 신뢰 형성이다. 그래야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그
이전의 대응방식을 기억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은 해당 회사를 신뢰하게 된다. 위기관리 방식에 있어 예측이 가능하게 되는 거다. 예측이
가능하면 이해관계자들에게 패닉의 수준은 최소화되는 법이다.

위기시에 매번 이랬다 저랬다 하는 원칙과 가치를 등지는 선택들을 해 온 회사에게 어떤 이해관계자가 편안한 마음과 신뢰의 태도를 견지할 수 있을까. 한번 이해관계자들을 속이고 눈감았던 회사에게 어떤 감사를 해야 하나 말이다.

‘쉬 쉬’의 위기관리학. 단기간적인 소득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미처 이슈를 모르는 소비자들이 그 제품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할 수 있다. 불미스러운 사건을 모르는 일부 소비자들이 그냥 축제를 즐길 수도 있다. 이런 단기간의 가시적인 소득과
중장기적인 기업의 철학을 바꾸자 하면 할말은 없다.

어차피 기업의 철학과 가치를 온전하게 가져가면서 일관성 있게 성공하는 기업이나 조직은 1% 미만이다. 나머지 99%는 그
1%를 바라보면서 부러워하는 게 현실이다. 그 둘의 차이는 위기시 실행이냐 침묵이냐 하는 아주 간단한 그러나 따르기 어려운 선택
때문이다.

정 용 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스트래티지샐러드(www.strategysalad.com) 대표 파트너
前 PR컨설팅그룹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사장
前 오비맥주 홍보팀장
前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EDS,
JTI, KTF, 제일은행, Agribrand Purina Korea, Cargill, L’Oreal, 교원그룹,
Lafarge, Honeywell 등 다수 국내외 기업 경영진 대상 미디어 트레이닝 및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코칭
Hill & Knowlton, Crisis Management Training Course 이수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네덜란드 위기관리 컨설팅회사 CRG의 Media training/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위기관리커뮤니케이션 전문 블로그 Communications as Ikor (www.jameschung.kr) 운영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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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

4의 “‘쉬쉬’의 위기관리학”에 대한 답변

  1. PleasantPD 아바타

    미국의 경우 리콜이 PR이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잡았죠. 리콜 전략과 실행을 제대로 수행해내는 PR 에이전시가 각종 어워드 대상자로 선정되는 경우도 많고. 진정성을 담은 리콜은 그 자체로 이슈화되면서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진정성을 더해주는 효과를 가져다 주더군요.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터지기 전까지는 무조건 홀딩!’ 전략이 대세인 듯.

    1. 정용민 아바타

      맞습니다. 그게 기업 내부의 정서이니 힘든거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

  2. 프랑스파리 아바타

    미리 감지 했을때, 또는 구멍을 발견 했을때, 확산되기전에 스스로 인정한다는게 참 어렵긴하다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이제 거짓이 유지되는게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이니까요.

    1. 정용민 아바타

      철학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는 게 바로 그때문이지요. 어렵습니다. 맞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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