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와 답변은 어떻게 다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발표는 회사가 내놓을 내용을 정해 한 번에 전달하는 것이고, 답변은 상대가 제기한 질문에 대응해 이어지는 것입니다. 두 가지는 시작점과 끝나는 시점, 성패를 판단하는 주체가 모두 다릅니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의 설명이 답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경우, 대개 설명의 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설명이 발표의 형태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답변책임(answerability)이 요구하는 것은 뒤쪽입니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터지면 회사가 내놓은 설명을 두고 알맹이가 없다거나 형식적이라는 평가가 따라붙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설명을 합니다. 자료를 내고, 브리핑을 하고, 질의에 응합니다. 그런데도 그 설명이 답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갈리는 것은 설명의 양이나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회사가 내놓은 것이 발표였는가 답변이었는가입니다.

구분발표답변
시작점회사가 내놓을 내용을 정함상대가 제기한 질문
끝나는 시점전달이 끝났을 때질문한 쪽이 이해했을 때
묻지 않은 것말하지 않아도 무방다루지 않으면 회피로 남음
이후단발로 종결후속 질문에 계속 대응
성패 판단회사가 함상대가 함
표. 발표와 답변의 구분 — 스트래티지샐러드

이 차이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오래 다루어져 온 구분이기도 합니다. 제임스 그루닉(James Grunig)은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정리하면서, 조직이 정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방식과 상대와 주고받으며 조정되는 방식을 구분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후자입니다.

검증할 수 없으면 답이 되지 않습니다

발표가 답변에 이르지 못하는 지점은 실무적으로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제기된 질문 가운데 일부만 다룹니다. 회사가 답할 수 있는 항목은 상세하게 설명하고 곤란한 항목은 언급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이때 비어 있는 자리는 답하지 못한 것으로 읽히지 않고 답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읽힙니다.

둘째, 검증할 수 없는 수준에 머무릅니다. 인지 시점을 밝히기는 하되 관련 사항을 인지하고 조치했다는 서술로 끝나는 경우입니다. 언제, 누가, 무엇을 보고받아, 어떤 판단으로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가 없으면 상대는 그 설명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확인할 수 없는 설명은 신뢰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셋째, 이어지지 않습니다. 초기 발표는 이루어지지만 후속 질문에 대응하는 체계가 없습니다.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이 중단되고, 종료 시점에 결과만 통보됩니다. 그 사이의 공백은 외부의 추정으로 채워지며, 나중에 나온 회사의 설명은 이미 형성된 추정을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기업이 조심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업이 요식적인 수준에서 설명을 멈추는 것은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따르는 위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진술은 법적으로 불리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하나를 답하면 그와 연결된 질문이 따라옵니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말했다가 나중에 번복하면 그 자체가 새로운 사안이 됩니다. 위기 상황에서 법무가 발언 범위를 좁히려 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래서 실무의 과제는 위험을 감수하고 다 말하라는 요구가 될 수 없습니다. 위험을 관리하면서 답하는 방법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아직 말할 수 없는지를 구분해 제시하는 것, 확정된 사실과 확인 중인 사실을 나누어 말하는 것, 지금 답할 수 없는 항목에 대해 언제 답하겠다고 밝히는 것이 그 방법에 해당합니다.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히는 것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앞의 것은 회피로 남고 뒤의 것은 답변의 일부가 됩니다.

사과할 수 없는 때에도 답할 수 있습니다

국내 실무에서 사과와 설명이 한 덩어리로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법무 검토로 사과가 유보되면 설명까지 함께 멈추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 가지는 성격이 다릅니다. 사과는 책임을 인정하는 의사 표시이고, 답변은 사실과 판단의 경위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사과를 유보하는 국면에서도 답변은 계속할 수 있으며, 그 구간에서 답변은 신뢰를 유지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됩니다.

반대 방향도 성립합니다. 법적으로 면책된 뒤에도 답변책임은 남습니다.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은 법적 책임을 덜어 주지만 이해관계자에게 답할 의무까지 없애지는 않습니다. 소송에서 이긴 기업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기에서 생깁니다.

답변은 준비되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답변책임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은 통상의 위기 커뮤니케이션과 세 가지 점에서 구별됩니다.

시작점이 다릅니다. 회사가 전달할 내용을 정하는 데서 출발하지 않고 이해관계자가 제기한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발표는 회사가 고르고, 답변은 상대가 정합니다.

시점이 다릅니다. 메시지를 다듬는 일은 위기가 발생한 뒤에 가능하지만, 답할 수 있는 상태인가는 평시의 기록과 의사결정 체계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습니다.

목적이 다릅니다. 인식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문책과 배상은 사안을 종결시키고, 답변은 사안을 이해시킵니다. 신뢰의 회복은 뒤쪽에 달려 있습니다.

스트래티지샐러드가 미디어 트레이닝과 대변인 트레이닝, 핵심 메시지 워크숍을 별도의 과정으로 운영하는 것도 이 구조 때문입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정하는 작업과, 제기될 질문에 검증 가능한 수준으로 위험을 관리하면서 답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작업은 서로 다른 준비를 요구합니다.

답변은 잘 말하는 능력의 문제이기 이전에 답할 것이 남아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James E. Grunig & Todd Hunt, Managing Public Relations (1984) — 조직 커뮤니케이션의 유형 구분
W. Timothy Coombs, Ongoing Crisis Communication (2019) — 위기 커뮤니케이션에서 정보 공백과 외부 추정의 형성
경영판단원칙은 미국 회사법에서 형성되어 국내 법원 실무에도 수용되어 온 법리입니다. 발표와 답변의 구분, 세 가지 결손 유형의 정리는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2009년 국내 최초의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를 창업했습니다. 약 30년간 국내외 300여 개 기업과 조직의 위기, 이슈관리를 자문해 왔으며 위기관리 분야 저서 다섯 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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