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정부·규제기관

  • 경쟁 비딩에 관하여

    보통 우리나라 PR계에서는 에이전시 선정에 있어서 경쟁비딩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90년대말경까지만 해도 경쟁비딩으로 얻은 클라이언트보다 수임으로 관계를 맺게된 클라이언트들이 훨씬 많았다.

    특히 당시에는 CK가 Hill & Knowlton의 국내 associate였기 때문에 이러한 수임 관계는 더더욱 많았다. 일반적으로 예비 클라이언트로부터 전화나 이메일이 온다. 그 예비 클라이언트는 에이전시 프로파일을 보내달라고 하거나, 그것도 생략하고 “이런 이런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가? Fee structure를 보내달라”는 식의 빠르고 단순한 프로세스로 클라이언트 관계가 시작된다.

    지금보면 약간 ‘성의없는’ 비지니스 계약같지만, 원래 PR업계는 그랬다. 비정상적이 아니었다.

    경쟁비딩이라고 해도 각각의 에이전시들이 자신들이 왜 해당 클라이언트에게 가장 적합한 에이전시인지를 설득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에이전시의 소개, 강점에 대한 설명, 그리고 지금까지의 클라이언트 서비스 결과등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이면 된다. 보통 현재 외국 클라이언트들은 이런 프로세스로 익숙하게 성장해있다. 얼마나 이 에이전시가 믿음이 가는가, 좋은 서비스 트랙을 걸어오고 있는가,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업계의 레퍼런스들은 어떤가를 유심히 살핀다.

    그리고 집중적인 질의 응답을 통해서 얼마나 이전의 성공적인 퍼포먼스가 실제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진행되어져 얻은 것들인지를 확인한다. 그게 전부다. 외국 클라이언트와 마주 앉아 있으면 이 클라이언트가 우리 회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아주 진지한 경험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이나, 한국인이 중역으로 포진해 있는 외국계 기업, 정부부처 및 공공기관등에서 실시하는 경쟁비딩은 약간 이상한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주로 공부하고 싶어하는 에이전시 자체에 대한 정보 보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들어 오라고 한다. 플랜을 짜 가지고 오라고 한다. 뭔가 쌈팍한 프로그램을 보겠다고 한다. 솔직히 가만히 들으면 그럴듯 하다. 창의적인 면을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쟁비딩 형식은 PR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짧아서 생겨난 시스템이다. 어떻게 RFP 한장이나 그것도 생략한 채 ‘우리회사의 발전적인 PR방안’이라는 3개의 단어를 기반으로 제대로 된 전략을 세우고, 프로그램을 세우고, 키메시지를 만들고, 예산과 타임라인을 짜는가 말이다.

    그런 플랜을 전체적으로 짜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프로그램들이 실행되거나 실행 가능한 부분들은 거의 없다. 경험상으로도 PR에이전시에서 경쟁적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프로그램들은 거의 경악스러운 수준인 것들이 많다. 왜냐하면 PR에이전시들은 우리가 하고 있는 비지니스 자체에 아직은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 필요없는 일을 쓸데없이 하는 것이다.

    좀더 에이전시 자체에 대해 공부 하는 시간으로 경쟁비딩을 가져 갔으면 한다. 아무데도 쓸데없는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기 위해 PR AE들이 허무한 시간을 보내면서 밤을 세우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PR은 광고나 프로모션과는 다르다.

  • “부시의 정치두뇌 칼 로브처럼…” 미대선 책사들이 뛴다

    “부시의 정치두뇌 칼 로브처럼…” 미대선 책사들이 뛴다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07-08-21 03:15 | 최종수정 2007-08-21 09:10

    2000년과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Bush) 대통령을 당선시킨 1등 공신인 칼 로브(Rove)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이 31일 사임한다. 2008년 선거에서는 로브만한 전략가 겸 ‘킹 메이커’가 누가 될지 관심이 모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화·민주 주요 대선출마자들을 보필하며 ‘제2의 로브’를 꿈꾸는 이들을 소개했다.

    ◆홍보전문가 중심 민주당 두뇌들

    민주당에는 글로벌 홍보회사 ‘버슨-마스텔러’ 월드와이드 부문 최고경영자(CEO)이자, 힐러리 클린턴(Clinton) 상원의원(뉴욕)의 최고 정치고문인 마크 펜(Penn)이 있다. 펜은 ‘자유주의(리버럴)’ 이미지가 강한 힐러리 의원을 중도 쪽으로 움직이게 해 지지층을 넓혔다. 또 이라크전 지지 투표 전력(前歷)을 실수라고 인정하지 않게 하는 등의 핵심 전략을 주도했다.

    시카고의 광고제작자 데이비드 액슬로드(Axelrod)는 2004년 버락 오바마(Obama)의 상원의원(일리노이) 당선을 이끌었고, 내년 대선에서 다시 오바마의 책사(策士)로 뛴다. 오바마가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정치적 동지로 지내와서, ‘부시-로브’ 관계보다도 끈끈하다는 평가다.

    ◆공화당은 톰슨 아내 등 두각

    공화당에선 프레드 톰슨(Thompson) 전 상원의원(테네시)의 아내 제리(Jerry)가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성공한 남성과 결혼한 나이 어리고 예쁜 장식용 아내)’란 대중적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외모로 남편 옆에 늘 붙어서 바람을 일으킨다. 루돌프 줄리아니(Giuliani) 전 뉴욕시장 캠프에선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정치 파트를 이끈 전략가인 마이크 두하임(DuHaime)이 핵심 ‘브레인.’ 오랫동안 존 매케인(McCain) 상원의원(애리조나)을 도운 전략가 존 위버(Weaver)는 텍사스에서 정치기술을 연마했다는 점에서 로브와 가장 비슷했지만, 지난 달 캠프를 떠났다.

    로브, 고위 공무원들을 부시 재선 위해 동원

    한편, 떠나는 로브의 앞에는 ‘권력 남용’ 논란이 불거졌다. WP는 20일 정권유지를 위해 행정부를 총동원한 로브의 행태를 조목조목 파헤쳤다. 그는 부시 대통령 재선을 1년쯤 앞둔 2003년 10월1일 최고위 관료들을 불러놓고 “대통령의 재선 의제를 최대한 널리 알리도록, 행정부의 모든 활동을 백악관과 신중히 조율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작년 중간 선거에선 최고위 관료들을 7번이나 크리스토퍼 샤이스(Shyas) 하원의원(코네티컷)의 선거구에 보내 그를 지원하게 했다. 결국 뉴 잉글랜드(미 북동부 지역)에서 살아남은 공화당 의원은 샤이스밖에 없었다.

    [남승우 기자 futuris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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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핀 닥터 좀 예쁘게 봐주세요…

    어제자 동아일보 이승헌 기자와 김현수 기자가 쓴 ‘한국형 스핀닥터 나오나’ 기사가 참 유익했다. (아래에도 포스팅을 했다)

    스핀 닥터라는 말은 들은지도 쓴지도 오래되었지만 그 뜻을 곰곰히 생각해 본 것은 2002년인가 한통의 이메일에서 였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서 일하시다가 당시 딜로이트 컨설팅 홍보 담당자로 회사를 옮겼던 박현정 선배(현 Unique 대표, 한경닷컴 The 커뮤니케이션 칼럼 코너 운영)로 부터의 이메일이었다.

    ‘정부장님, 제가 Spin이라는 외국책을 읽고 있는데, PR적으로 이 Spin이라는 뜻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요?’..이런 내용으로 기억한다.

    참으로 난감했다. 사전상의 의미로 Spin은;

    1 <면·양털 등을> 잣다;<실을> 잣다
    2 <거미·누에 등이> <실을> 내다, 자아내다
    3 <팽이 등을> 돌리다;(선반(旋盤) 등으로) 회전시켜 만들다;맴돌리다
    4 (장황하게) 이야기하다(tell);오래[질질] 끌다 《out》
    5 <차 바퀴 등을> 공전시키다, 겉돌게 하다

    이런 뜻이라고 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말로 뜻과 어울리는 표현이 없다. 그래서 당시 내 답변은 “길게 풀어서 뜻을 설명하자면…여론에 영향을 미쳐서 의도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정도 의미라고 할까요..”했던 것 같다.

    Spin Doctor. 가뜩이나 어려운 Spin이라는 단어에 doctor라는 더 어려운 단어가 붙었으니 이걸 어쩌나.

    각종 자료나 기사를 보면 ‘선거참모’ ‘선거캠페인 전문가’ ‘언론담당보좌관’ ‘여론정책 보좌관’ ‘특별 보좌관’ 부터 ‘홍보전문가’나 ‘언론을 자기 입맛에 맞게 요리하는 해결사’라는 창의적인 표현까지 그 해석이 다양하다.

    스핀 닥터의 이미지는 거의 모두 부정적이다. 정치라는 지저분한 시장에서도 더욱 더러운 존재로 표현된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후보에게 정책은 곧 자신의 비전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정책에 어떻게 실제 국민의 니즈를 담아내는가 하는 것은 가장 큰 숙제고, 후보의 역량이다.

    스핀 닥터는 다음과 같은 전문가라고 보면 된다.

    1. 여론을 정확하게 읽는다.
    2. 정책결정자에게 그 여론의 핵심을 전달하고 함께 관리 방향성을 논의한다.
    3. 결정된 정책을 다시 여론에 반영한다.

    나는 여론에서 시작해서 여론으로 끝내는 작업이 스핀 작업이라고 본다. 흔히 스핀 닥터들을 욕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3번 활동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 여론은 조작이나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그냥 천심(天心)으로 홀로서 있는 것으로 보아 ‘감히 자신의 뜻대로 여론을 움직이려 하다니…”하는 생각이 그 밑바닥이다.

    그러나 스핀 닥터들은 1번과 2번과 같은 일련의 활동들에 더욱 열심이다. 되지도 않는 정책을 팔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단, 예외로 욕먹어야 하는 스핀 닥터들은 ‘이라크 살상무기 이슈’ ‘9.11. 테러 배후설’등등의 다분히 정치 의도적인 여론 공작을 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불쌍(?)한 스핀 닥터들도 있다. 클린턴의 ‘아칸소 주지사 시절 섹스 스캔들’이나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을 관리했던 스핀 닥터들이다.

    지금도 르윈스키 섹스 스캔들에 대한 해명(?)을 위해 뉴욕 NBC 아침 뉴스룸에 나와 앉은 ‘힐러리 클린턴’의 얼굴을 기억한다. 스핀 닥터들과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을까? 여자의 자존심을 구기면서…

    결론은 모든 스핀 닥터들이 나쁜 사람들은 아니다라는 것. 이번 대선을 통해서도 훌륭한 스핀 닥터들이 많이 나와주길 국민으로서 기대한다. PR인으로서는 더더욱 부러운 일이다. 그러한 경험이 말이다.

  • 언론인의 대선에서의 역할

    뭐 정치 저널리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홍보담당자로서 대선 시장을 바라다보면 항상 눈에 거슬리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들 중의 하나가 언론인들이 대선 주자들의 홍보담당직을 맡는다는 거다.

    미디어 오늘의 한 기사를 보니 벌써 아니 그 이전부터 대선주자들 각각에 대한 언론인들의 줄서기들이 진행중인 것 같다. (몇몇 아는 언론인들 중 시니어분들은 자기의 이름이 특정 대성 후보라인으로 회자되는 것을 극히 경계하는 것 같은데, 그 반대인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이명박 선거캠프

    비공식 공보라인으로 언론인 자문그룹 세종로 포럼(대표 최규철·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세종로 포럼에는 최 전 국장과 김효재 전 조선일보 편집 부국장 대우, 이성준 전 한국일보 부사장 등이 참여
    미디어홍보위원장에는 KBS 앵커 출신의 이윤성 의원
    TV토론대책위원장은 중앙일보 편집국장 출신의 고흥길 의원
    인터넷위원장은 MBC 기자출신의 국회 문광위 소속 심재철 의원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 언론담당 특별보좌관과 경기도 공보관을 거친 차명진 의원이 미디어홍보본부장
    KBS 공채 1기 아나운서 출신으로 국회 문광위 소속인 박찬숙 의원이 TV토론 대책본부장

    박근혜 선거캠프

    이연홍 전 중앙일보 정치부장
    이상현 전 한겨레 편집부국장 등 10여 명의 중견 언론인이 참여. 이들은 각 사별로 전담 관리.

    최근에는 조선일보 워싱턴 특파원 출신 허용범 차장이 조인.

    광고회사 상무 출신인 허유근씨가 기획 홍보팀의 팀장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가 팀원(홍보특보)으로 활동
    장경상 홍보·기획 보좌역은 캠프 내 실무기획 전략통
    메시지팀은 지난 대선 이회창 후보 당시부터 메시지 작성을 맡아 온 연설 전문가인 조인근 특보 체제 아래 정호성 국회 보좌관, 코미디 작가 출신 최진웅 전 보좌관 등이 활약

    손학규 선거캠프

    조용택 전 조선일보 편집 부국장
    차제원 전 국제신문 기자 등이 공식적 공보채널

    정동영 선거캠프

    이재경 전략기획 실장과 정기남 공보실장이 실무 책임.
    언론 홍보 기획 등을 책임지는 박영선, 김현미, 정청래, 민병두 의원 등도 언론과 접촉면 강화

    이 홍보 및 공보라인을 형성하는 인력들의 면면을 보면 거의 모두 기자출신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자출신 국회의원들도 결국에는 공보라인으로 분류되어 대선에서 혁혁한(?) 공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기업 전직홍보담당자들이 한두명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공보라인을 구성하는 주력이 아직도 기자출신들이라는 것이 참 아쉽다.

    물론 정치 공보라는 것이 민간 홍보와 여러가지 틀린 점이 있는것은 사실이다. 정치 공보라는 것에는 정치논리가 중심이 되어 큰틀에서 전체적인 여론(대세)을 읽는 감각이 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자와의 개인적이나 정치적인 코드도 상당히 중요하다. 인간적인 야망도 큰 동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볼때 민간 기업 홍보담당자들은 급수가 낮다고 평가받기 쉽다. 아직도 정치인들은 비지니스를 급수가 낮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겁고 중차대한 업무를 민간에서 잔뼈가 굵은 홍보담당자들에게 맡긴다는 것이 탐탁치 않을 수 있다.

    또한 대선주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당 출입 기자 시절 부터 맺어온 인연들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국회의원시절부터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또는 단란주점에서 함께 마시던 소줏잔과 폭탄잔에 묻어 있는 기억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나.

    아직 공보 또는 홍보라는 것을 ‘관계, 컨넥션, 네트워크”로 주로 평가하는 그 바닥에서 소위 “조선일보 전 정치부장” 출신의 전직 언론인은 곧 ‘조선일보’를 우리편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하나의 큰 채널로 간주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기자관리’에는 돈이 필요하다 (미디어 오늘)

    결론적으로, 우리 홍보인들이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 있다.

    1. 정치 공보 시장을 전직 기자들에게 계속 양보할 수 밖에 없는가?
    2. 우리 민간 홍보전문가들이 정치 공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강점을 구비해야 하는가?
    3. 민간 홍보전문가들이 정치 공보 시장에 진입한다면 과연 어떤 차이(Differentiation)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4. 민간 홍보 전문가들이 정치 공보 시장에 점차 진입에 성공하고, 거기에서 승리한다면, 추후 민간 홍보시장에 가져올 긍정적인 영향은 없을까?

    민간 기업에서 볼때 기자출신 홍보담당자는 거의 엑설런트한 담당자를 보기 힘들다. 정치쪽에서는 그 반대다. 시장이 틀린건가? 아니면 시장이 아직 진화가 덜 된 걸까?

    왜 민간 홍보전문가들은 정치 공보 시장에 진출하기 힘들걸까? 광고 대행사 출신 공보담당자들은 많이 보았는데…왜 홍보 담당자들은?? 다 야망없고 착한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후후후…

    그러고 보니…부시 대통령의 국무부 공보 차관인 캐런 휴즈는 지방 TV 리포터 출신이군…

    생각에 잠긴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공보 책임자 알라스테어 캠벨

    토니블레어 영국수상의 공보 브레인 Alastair Campbell도 하긴 타블로이드 기자 출신이군…

    쩝…

  • 국정홍보처 폐지론

    이명박씨와 박근혜씨가 어제 모 편집기자관련 포럼에서 “이번 브리핑실 통폐합 조치는 잘못됬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페쇄한 기자실을 다 복원하겠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국정홍보처를 페지하고, 해외홍보부문은 민간회사를 통해 하겠다”고 했단다.

    국정홍보처 폐지론은 이미 야당에서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정부 정책 홍보를 견제하기 위해 논의 되었던 사안들이다. 국정홍보처는 DJ가 집권하면서 처음 만들어 졌다. YS 이전에는 공보처가 그 비슷한 기능을 했었다.

    일반 사기업 홍보담당자로서 그리고 이쪽 바닥에서 밥을 버는 사람으로서, 국정홍보처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어느기업이나 그 회사를 위한 홍보팀이나 홍보실이 있다. 하다못해 NGO까지도 홍보담당자들이 있는 시대다. 왜 국가에 홍보부문이 있으면 안되나?

    일부 사람들은 “국정홍보처가 국민을 위한 홍보가 아니라 대통령, 정부를 위한 홍보를 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국가 정책이라는 것이 국민의 이익을 지향하고 있고, 대통령 또한 국민이 선택한 사람이다. 그 대통령과 align이 되어 있는 각 부처의장들도 그 대통령이 임명한 간접적인 국민의 선택이다.

    국정홍보처가 대통령이나 여당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홍보를 한다면 물론 문제가 있다. 그러나 국정홍보처가 지향하는 테마는 정책홍보다. 이미 말했다 시피 정책하나 하나는 우리나라의 공무원들이 국민을 위해 고안하고 제안하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국민을 위한 시스템을 홍보하는 데 왜 문제가 되는가?

    물론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국정홍보처가 노심(盧心)을 받아 언론이 보기에는 비상식적인 수준의 기자실폐쇄, 공무원사무실출입금지, 브리핑제도 도입에 브리핑실 통폐합까지 오바를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주인이 밉다고 그집 개를 죽이고 개집을 없애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명박씨도 현대/서울시장 시절에 홍보실의 도움을 안받은 사람이 아니고 (특히 서울시장 시절에 서울시 홍보관련 인원은 내외부 100여명을 넘기도 했다), 박근혜씨도 그 아버님부터 공보처의 공헌이 없었으면 그러한 이미지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한테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 국정홍보처의 역할들을 좀더 다른방향으로 개선시키겠습니다. 국정홍보라는 것은 국가 리더쉽의 차원이고, 정부와 국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적인 시각에서 매우 중요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정도의 수준이었으면 더할나위 없겠다.

    “저 자식 지 홍보하고 있네…” “야 이자리가 뭐 당신네 홍보하는 자린줄 알어?” “이거 이제 보니 홍보하고 있네…” 뭐 이딴 소리의 뉘앙스 처럼 홍보가 천박하고, 비열하고, 사기같은 그런 일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는 지도자가 그리운거다.

    수만명의 홍보인들…우리가 사기꾼은 아니지 않나…

  • 정부의 기자실 /브리핑룸 통폐합에 즈음해…

    정부에서 7월부터 정부 각부처의 기자실을 폐쇄하고 브리핑룸을 통합해 3개로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이미 정부 부처 기자실은 사실상 노무현 정부 초반부터 폐쇄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고, 브리핑룸을 설치 브리핑제도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가지고 왔다.

    “기자실 폐지, 노 대통령의 언론 보복”

    유종필 전 노무현 캠프 언론특보, 기자실 폐지 맹비난 나서

    언론인 출신 의원들 “재정 풍부한 언론사만 남을 것”

    보도책임자 86%, 기자실 통폐합 반대

    [보도책임자 반응]“언론 제대로 이해 못해 … 최악의 선택”

    [각계 반응]“회의공개법 등 대책 선행돼야”

    [정치권 반응]‘물 만난’ 한나라 맹공

    청와대, 입안과정 주도했나

    [아침신문 솎아보기] “노무현 정부의 오만과 독선”

    [사설] 참여정부, ‘독재정권’ 닮아가나

    (미디어 오늘)
    이는 기자들에게는 어떨찌 모르겠지만…(사실 열렬히 반대하고 있는 건 알고 있다) 홍보담당자들에게는 아주 바람직한 시스템으로 보인다.

    예전시절 기자들은 마치 자기집 안방처럼 부처 사무실들을 돌아 다니고, 담배를 피우고, 소파나 남의 책상에 앉아 신문을 읽어댔다.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복사기 앞에서 뽑아 놓은 문건들을 짚어들기도 했다. 사무관들에게 다가가 저녁 소주 자리를 약속하거나, 커피 한잔 하자면서 농을 치는게 일반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뭔가 꺼리를 찾아 특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일상을 통해 기자들은 새로운 부동산정책에 대한 특종을 하거나, 부처내 감사결과를 미리 알아내기도 한다. 사무관들이나 서기관들과의 술자리를 통해 넌지시 부처내의 분위기를 감지해 소설을 쓰는데도 성공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 이후에는 기자들의 부처 사무실 출입이 금지됬다. 맘편하게 공무원들이 일하는 환경이 조성된 거다. 기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언론탄압”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게 뭔 언론 탄압인가. 당연한거 아닌가. 어슬렁 어슬렁 저널리즘, 하이에나 저널리즘이 변화되면 되지 않는가.

    그대신 기자들의 취재갈증은 브리핑실을 설치해 정기적이거나 사안별 브리핑을 통해 해소해 준다고 했다. 기자들은 이것도 불만이다. 기자들사이에서는 ‘병아리 부대’로 자신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부처 홍보담당자가 브리핑을 하려 오면 기자들의 모습이 모이를 먹기 위해 모여드는 노란 병아리들 같다는 거다. 자조적인 비유겠지만, 이게 뭐가 문제인가?

    기자들의 특권의식이 문제아닌가? 홍보담당자는 하나고, 기자는 여럿이면 홍보담당자(정보제공자)에게 몰려드는 것이 당연한거지. 기자들에게는 내심 “내가 이러면서까지 먹고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렇게 구차하게 취재 안했다”는 과거의 기억도 있고…

    근데, 왠일인가. 이런 불만폭발직전의 기자들에게 비보가 또 하나 떨어진거다. 정부부처 브리핑실을 또 통폐합한단다. 광화문, 과천, 대전에 하나씩. 기존에 여러부처를 나누어 출입하던 기자들은 이제 3개의 브리핑룸앞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게 된거다. 기자들의 숫자도 당연 줄어 들겠다. 취재의 분량이나 깊이도 줄어들게 됬다고 불만이다. 기사쓰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 브리핑실 통폐합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될것이 없다. 단, 브리핑 제도라는 것을 내세운 정부가 신경써야 할 것이 있다. 브리핑의 프로페셔널한 운영말이다. 반면에 기자들은 브리핑 시간을 취재를 위한 중요하고 생산력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에는 이제 진짜 프로페셔널한 브리핑 전문가가 길러져야 한다. 기존에 보도자료를 읽고, 대략적인 질문 몇개만을 주고 받는 시스템은 절대 안된다. 기자들도 보도자료를 훑어보고, 대충 의미없는 확인 질문이나 던져 놓고, 그냥 대충대충 스토리 라인 잡는 방식은 이제 끝내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TV에서는 정치권에서 서로 본 제도에 대해 비판을 하는데..국민의 알권리라던가…헌법소원이라던가…국정감사라던가…뭔 개뿔이 그런가. 정부는 정부대로 프로페셔널한 브리핑 담당자(장관이 이렇게 되야한다)를 길러 속시원하게 운영하면 되고, 기자들은 취재하는 방법을 선진화시키고, 더욱 용의주도해야 한다. 소스도 다변화시키고, 공무원들에 대한 직접 취재에만 기대면 안된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정부 홍보담당자 그리고 기자 양측이 다 더욱 전문적으로 경쟁하면 된다고 본다. 둘다 전문적이지 못하니까 뭐…서로 욕을하고 진흙탕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핑계로 아웅다웅하는거다.

    국민들은 양측 선수들이 아쉽다.

  • 관계자산(Relationship Asset)

    사람이나 단체나 기업의 경우 그들이 진공/무균상태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닌 이상 주변 stakeholder들과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relationships)을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들은 해당 조직에 직간접적으로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법이다. 살아 움직이면서 실시간으로 그 관계들은 변화한다.

    이러한 관계는 커뮤니케이션이 주요 파이프라인이 되면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변화되고, 사멸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이 관계라는 것은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하는 public relations(PR)라는 것은 조직내에서 이러한 관계(relationship)을 관리하는 업무다. PR팀은 무엇을 관리하는가 했을때, PR인들은 “우리는 관계자산(relationship asset)을 관리하는 부서입니다”라고 말하는 게 옳다.

    인사팀에서는 human resources를 전담 관리한다. 재무팀은 financial asset을 관리한다. 마케팅팀은 brand asset을 관리하고, 기술팀에서는 technologic asset을 관리하는 셈이다.

    이 관계라는 자산은 참으로 복잡하고, 까다롭다. 처음 관계 자산을 취득하는 것도 힘들지만, 이 관계 자산을 유지 성장 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과 시간, 그리고 관심을 투자해야 한다.

    또한 이 관계라는 자산은 PR팀의 one point relationship building으로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전사적으로 조직적이고 근본적인 뒷바침 없이는 훌륭한 관계 자산의 구축은 절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 PR팀은 그 관계를 관리하는 manager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항상 관계를 모니터링하고, 조직내에서 센서(sensor)의 역할을 한다.

    PR팀에서 관계자산을 일정기간 방치하거나 외면한다면 이들은 자신들의 핵심업무를 불성실하게 실행하는 것이 된다.

    최근 우리 회사의 PR정책이 일정부분 변경되는 감이 있다. 관계 자산에 대한 철학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변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내가 학교에서 배운것과 경험상으로 확실히 아는 사실은…

    1. 관계는 지속적인 관심과 예산 그리고 시간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 긴 싸움이라는 것
    2. 그러나 관계는 한번 일으켜 세우기는 매우 힘들지만, 한번 무너지기는 것은 순간이라는 것
    3. 한번 무너진 관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 관계를 유지 발전 시키기 위한 관심/예산/시간의 몇배가 재투자되어야 한다는 것
    4. 마지막으로…그 관계가 절대 이전의 그것과는 같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PR팀에 대한 비전있는 리더쉽은 “…를 그만해”하는 것 보다 “…도 해보지 않겠니?”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관계자산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아는 리더면 말이다.

    길게 보자…매일 일희일비하지말자…나의 ex-boss가 항상 해주는 말이다. 지금의 상황에 딱 필요한 말이다. 그러나 긴 기다림이 있은 후에 나는 결코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임을 맹세한다. 인생은 짧고 할일은 많다.

  •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언론비판 발언

    뉴스메이커 최신호에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 플레이(개인적으로 이 표현을 좋아 하진 않는다)에 관한 언론측의 분석 기사가 주목할만하다.

    특히 전남식 경향신문 출판본부장(언론학 박사)이 쓴 ‘대통령과 언론통제’(나남출판사·사진)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는 것 같다.

    기사 속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Quotation들도 재미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주요 언론비판 발언

    “언론과의 전쟁선포도 불사해야 한다.”(2001년 2월7일·기자간담회)
    “언론개혁의 본질은 몇몇 수구·족벌 언론의 문제다.”(2001년 2월12일·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언론개혁은 제2의 6월항쟁이다.”(2001년 6월24일·민주당 고문단회의).
    “말이 좋아 권고지 (언론)개혁해야 한다. 내가 하려고 한다.”(2002년 10월8일·국회의원 후원회)
    “북한보다는 오히려 전쟁이 날 것처럼 보도하는 일부 언론이 더 걱정이다.”(2003년 1월17일·조찬간담회)
    “앞으로는 불합리한 기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와 반론도 청구하고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이다.”(2003년 2월22일·’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2003년 3월11일·국무회의)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가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2004년 7월8일·국무회의)
    “여기에서 대안경쟁을 통한 어떤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계로 가자.”2005년 08월 25일·국민과의 대화)
    “잘했어요. 그 소설 가만둘 건가요”(2005년 11월 11일·조기숙 전 홍보수석이 한 신문 A특파원의 칼럼을 ‘소설’이라고 평가절하한 데 대해)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언론·폭력조직은 ‘국민이 무서워하는 6가지’다. 이 가운데 특히 언론을 ‘무소불위’다.”(2006년 6월·노사모 초청모임)
    “정치·언론 문제는 임기가 끝난 후에도 손을 놓지 않겠다”(2006년 8월·노사모 모임)
    “(정정)보도를 보는 순간 새삼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2006년 11월 27일·전자우편)
    “꼭 필요한 정보를 성실하게 전달하는 KTV(국정TV)를 보라.”(2006년 12월 14일·청와대 브리핑에 띄운 편지)
    “신문 보고 나가서 참모들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자꾸 어긋나간다.”(2006년 12월 22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
    “언론과의 전쟁선포도 불사해야 한다.”(2001년 2월7일·기자간담회)
    “언론개혁의 본질은 몇몇 수구·족벌 언론의 문제다.”(2001년 2월12일·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언론개혁은 제2의 6월항쟁이다.”(2001년 6월24일·민주당 고문단회의).
    “말이 좋아 권고지 (언론)개혁해야 한다. 내가 하려고 한다.”(2002년 10월8일·국회의원 후원회)
    “북한보다는 오히려 전쟁이 날 것처럼 보도하는 일부 언론이 더 걱정이다.”(2003년 1월17일·조찬간담회)
    “앞으로는 불합리한 기사에 대해서는 정정보도와 반론도 청구하고 원칙대로 해나갈 생각이다.”(2003년 2월22일·’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앞으로 오보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2003년 3월11일·국무회의)
    “서울 한복판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신문사가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2004년 7월8일·국무회의)
    “여기에서 대안경쟁을 통한 어떤 생산적인 경쟁과 협력의 관계로 가자.”2005년 08월 25일·국민과의 대화)
    “잘했어요. 그 소설 가만둘 건가요”(2005년 11월 11일·조기숙 전 홍보수석이 한 신문 A특파원의 칼럼을 ‘소설’이라고 평가절하한 데 대해)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언론·폭력조직은 ‘국민이 무서워하는 6가지’다. 이 가운데 특히 언론을 ‘무소불위’다.”(2006년 6월·노사모 초청모임)
    “정치·언론 문제는 임기가 끝난 후에도 손을 놓지 않겠다”(2006년 8월·노사모 모임)
    “(정정)보도를 보는 순간 새삼 신기한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2006년 11월 27일·전자우편)
    “꼭 필요한 정보를 성실하게 전달하는 KTV(국정TV)를 보라.”(2006년 12월 14일·청와대 브리핑에 띄운 편지)
    “신문 보고 나가서 참모들하고 대화를 하다 보면 자꾸 어긋나간다.”(2006년 12월 22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

  • 청와대 홍보라인! ‘선수’가 되라

    올해 처음 회사에 나가 시무식을 준비 하면서 그간 휴가동안 책상에 쌓인 우편물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작년말 호 기자협회보에서 흥미로운 논평을 하나 발견했다.

    노무현 대통령 출범 초기부터 홍보인들 사이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식 ‘시스템 홍보’라는 것이 진정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구현이 될것인가에 대해 의견들이 많았다.

    흔히 업계에서는 ‘선수’라는 말을 쓴다. ‘선수’라는 말이 어떻게 보면 약간 상스러운 표현 같기도 하지만, 실무자로서 기자들에게 “당신은 선수야” 또는 “아 OOO회사 김 선수?” 이런식의 호칭을 들으면 은근히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한다.

    기자협회보 해당 기사에서는 청와대 홍보라인의 아마츄어리즘과 대통령의 홍보관 그리고 언론관에 대해 지적 하고 있다. 최근 읽었던 어떤 기사보다도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눈길이 간다.

    나는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을 위해서는 전제가 하나 필요하다고 믿는다. 홍보라인과 취재라인간의 ‘긴장’은 우선 양쪽이 ‘선수’일 때, 즉 나름 분야의 전문가들일 때나 가능한 것이다. 대통령은 이 점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홍보라인이 전문가들로 셋업 되었다 손 치더라도, 정부 정책 홍보의 경우 ‘어른’의 포지션이나 의중이 매우 중요하고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어른의 의중을 프로페셔널하게 전달할 여러가지 방법은 전문가에게 분명 존재한다. 목적없이 또는 실수로 ‘설화’를 일으키고 급기야는 언론에게 수세에 몰려 계단을 내려오는 몇몇 홍보라인들을 바라보면서 찹잡함을 금할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어른의 의중이라는 것이 현 정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박/전/노/김/김에 걸친 역대 정권 시기에도 어른의 독특한(?) 언론관과 홍보관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나 현 정권에서 다른 것은 언론과 홍보의 환경이 그 때보다 진일보 했다는 것 그리고 청와대 주위에 전문적 홍보라인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노 대통령께서도 국회의원/장관/대선 후보 시절 여러 정치부 기자들과 술자리를 갖곤 했다고 들었다. (물론 성격상 즐기는 스타일은 아니었단다) 기자들과 차수를 거듭하면서 기자들을 집에도 데려가 거실에서 술잔을 나누기 까지 할 정도로 당시에는 대 언론 활동이 있었다고 시니어 기자들한테 전해 들었다.

    그러나 취임 후 홍보라인에 내린 일갈이 모순적이다. “괜히 기자들과 소주마시지 마라”

    좋다. 소주없이 하는 홍보? 정정당당(?)해 보이는 홍보? 기사의 가치와 뚜렷한 대의명분으로 승부하는 홍보? 홍보 실무자로서 이것 보다 편한 홍보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이상적인 홍보환경을 구축하기전 중요한 전제요건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기자협회보의 <청와대 홍보라인! ‘선수’가 되라>라는 제목이 마음에 와 닿는거다.

    이제는 청와대 홍보수석실 당국자들도 책상과 인터넷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언론사들이 있는 세종로 여의도 신문로로 나와야 한다. 특히 ‘선수’를 다루려면 홍보라인이 먼저 ‘선수’가 돼야 한다. 바로 그 ‘선수’가 돼서 기자들과 쓴 소주잔이라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정부정책이나 각종 국정현안을 학습시킬 수 있다. 2006년 12월 20일 기자 협회보 <청와대홍보라인! ‘선수’가 돼라>

    P.S. 재미있는 것은 일반 기업이나 일부 외국계 기업 CEO들 중에서도 노 대통령과 비슷한 언론관과 홍보관을 가진 분들이 꽤 존재한다는 거다. 그 기업의 홍보? 그들의 홍보는 Internal selling에만 치중 하면서 자위하는 홍보일 뿐이다. 그들의 재미난 몇몇 예는 다음 기회에…

  •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CK)

    [홍보맨을 찾아서]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CK)

    “큰 생각 큰 PR로 전략적 PR 지향”

    김경해 사장·이주호 부사장 ‘PR전도사’ 맹활약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김경해 사장과 역시 언론인 출신인 이주호 부사장이 이끌어가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구정서·민경세 이사가 이들을 보필하는 체제다. 그리고 PR1·2·3팀과 괌관광청으로 나뉘어 모두 14명의 PR 전문 컨설턴트들이 각자의 영역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척박한 홍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명감(?)이 당시 로이터통신 서울특파원으로 활동하던 김경해씨의 결심을 부채질했다. 외국 언론인들과의 잦은 교류도 홍보대행사를 세우는 데 한 몫을 했다. 그래서 닻을 올린 게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였다. “큰 생각 큰 PR로 전략적인 PR을 지향한다”는 모토 아래 지난 1987년 출범한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국내 최초의 PR 전문 회사란 타이틀과 함께 점차 명성을 쌓아 갔다.

    김경해 사장은 이듬해 세계적인 PR 전문 회사인 힐 & 놀튼사와 제휴,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 그리고 첫번째로 맡은 게 괌정부관광청 홍보였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는 괌관광청 홍보 대행 이외에 식품의약품안전청·이랜드 호텔사업부·한성김치 등을 비롯, JTI·한국존슨앤존슨·메트라이프생보 등 굵직굵직한 클라이언트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창사 이후 고객들의 다양한 고객 요구에 부응키 위해 전략적 사고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최고의 결과물과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언론 중심의 퍼블리시티(Publicity)를 뛰어넘어 위기 관리, 마케팅PR, 정부 정책 PR, 공공 기관 및 지방자치단체 커뮤니케이션 로드맵 구축, 관광 PR, 미디어 트레이닝 등으로 영역을 점차 확산하면서 호평을 받아 왔다. 이주호 부사장, 매일경제 기자 출신 김경해 사장과 역시 언론인 출신인 이주호 부사장이 이끌어가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구정서·민경세 이사가 이들을 보필하는 체제다. 그리고 PR1·2·3팀과 괌관광청으로 나뉘어 모두 14명의 PR 전문 컨설턴트들이 각자의 영역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연혁

    1987년 창립

    1988년 PR 전문 회사 힐 & 놀튼과 제휴

    1989~1990년 ‘PR전쟁’으로 불리는 F-16과 F-18의 PR 경쟁에서 승리

    1993년 위기 관리 서비스 제공 1999년 국정홍보처로부터 최초 민간 컨설팅회사 선정

    2002년 위기 관리 인증 과정(ACM) 개설 2005년 한국식 위기 관리 모델 ‘펙스시스템’ 개발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진두지휘하는 이주호 부사장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와 매일경제신문에 입사, 경제부·산업부·과학기술부 등에서 무려 26년 동안 필력을 발휘했다. 피지 정부 초청으로 남태평양대에서 연수를 받기도 한 이 부사장은 미국 UC버클리대 연수, 서울대 최고산업전략과정, 서울대 보건의료정책최고관리자과정, KAIST 벤처최고경영자과정을 거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김 사장과 대학 선후배 사이인 이 부사장은 지난 2004년 9월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 합류했다. 그는 ‘야후 100% 따라하기’ 등 4권의 저서를 펴내기도 했다.

    괌정부관광청 홍보를 맡고 있는 구정서 이사는 서울대 독어교육과를 나왔다.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던 구 이사는 대한항공에서 28년 동안 근무하다가 지난 2002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서강대 사회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민경세 이사는 지난 1999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로 적을 옮겼다. 현재 홍보 담당 이사로 활동하면서 이 회사 부설 기관인 위기관리전략연구소 부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개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미디어리서치,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가 배출한 홍보인으로는 신성인 KPR 사장과 김장열 코콤 포터노벨리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이 회사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역시 홍보대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 홍보대행사 호프만의 서울지사장을 지낸 박현정씨와 한양대에서 후학을 양성중인 한미정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오비맥주 홍보팀에서 활약중인 정용민 차장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에서 잔뼈가 굵었다.

    맞춤형 위기관리시스템 개발하기도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는 지난해 한국 실정에 맞는 위기관리시스템을 개발, 기업들의 위기 관리 해결사로 나서기도 했다.

    지난 1993년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 온 김경해 사장이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의 한정호 교수와 함께 한국식 모델인 ‘펙스’를 선보인 것. 이를 위해 김 사장은 회사내에 위기관리전략연구소를 개설, 국내 기업들에 위기 상황이 닥칠 때 좀더 정확하고 발빠른 대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위기 관리 매뉴얼을 작성하는 등 점차 결실을 맺어 가는 분위기다. 민경세 이사는 “기업들이 위기가 감지될 경우 우리 회사를 찾아 조언을 듣는 사례가 늘어나는 등 점차 호응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한편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를 탐방하던 날 이 회사의 홍보맨들은 국내 최초보다는 국내 최고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클라이언트들을 제대로 알리느라 분주했다.

    PR2팀에서 뛰고 있는 김경해 사장의 딸인 김희진 대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홍보 대물림’이 자연스레 이어질 것 같다는 질문에 김 사장은 “본인 마음 아니겠느냐”고 말머리를 돌렸지만, “아트와 PR을 접목한 한국 최초의 인물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한 것을 보면 당연한 게 아니겠느냐는 의미로 다가왔다.

    김 대리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연세대 언론대학원에서 홍보를 전공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Interview | 김경해 사장

    “PR을 마케팅으로 승화시켜야”

    언론인 출신 홍보인… PR업계 ‘대부’로 불려

    ▲ 약력 서강대 영문학과와 언론대학원을 나와 코리아헤럴드 기자와 로이터통신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언론인 샐활을 청산하고 PR업계에 뛰어든 그는 1987년 세계 최대 PR회사인 힐 & 놀튼과 한국내 독점 업무를 제휴, 국내 PR업게에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다. 한국PR기업협회 초대 회장과 한국 PR협회 2ㆍ3대 회장을 지낸 그에게 PR업계의 ‘대부’란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을 정도의 ‘베테랑 PR인’이다.

    – 홍보와 인연을 맺은 동기가 궁금합니다.

    ▶ “로이터통신 특파원 시절이었어요. 당시엔 뉴욕타임스·비즈니스위크지 등의 특파원이 서울에 상주하지 않았습니다. 도쿄 주재 특파원이 일이 터지면 서울로 달려오곤 했지요. 이들 특파원이 언론인인 데다 업계와 정부를 잘 알고 있는 독특한 경우라며 홍보회사 설립을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된 것 같아요.”

    – 기자와 홍보인 중 어떤 쪽 일이 쉬운 것 같습니까.

    ▶ “둘 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비슷한 점은 있습니다. 통신사 근무는 초 단위 경쟁 아닙니까. 2~3초만 빨라도 특종이거든요. 홍보도 그래요. 빈틈없이 하면서 남보다 앞서야죠. 또 둘 다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생각으론 더 빨리 PR업계에 투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긴 합니다.”

    – 홍보를 간략히 정의할 수 있을까요.

    ▶ “홍보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것은 지금도 업계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과거 언론 보도에 치중했던 데서 탈피한 것은 분명해요. 또 홍보는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이젠 과장되거나 제대로 된 실상을 알리지 않을 경우 먹히질 않아요. 잘못이 있으면 시인하고, 평소 좋은 평판을 쌓도록 노력해야만 진정한 홍보 효과가 나타나겠지요.”

    – 홍보의 최근 트렌드에 대해 들려주시지요.

    ▶ “홍보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홍보 하면 언론 홍보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보다 광범위하고 전략적인 경향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PR=홍보’라는 의미가 이젠 ‘PR〉홍보’로 PR이 홍보보다 더 큰 상위 개념이 됐습니다. PR은 ‘공중관계’를 일컫는 말로, 공중(公衆)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기업 경영의 절대 요소로 떠올랐습니다. 이젠 PR을 통한 마케팅, 즉 MPR이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 괌관광청과는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1987년 회사를 창립하고 나서 첫번째 클라이언트가 괌관광청이었어요. 효과적인 홍보 방법을 위해 DM(목적지 관광 마케팅)을 사용했습니다. 당시 인기가 있던 ‘당신이 그리워질 때’란 KBS 드라마의 신혼여행 장면을 위해 5만달러를 투입, 스태프 40명을 몽땅 괌으로 데려갔어요. 그리고 괌에서 촬영한 장면을 10분씩 7회를 방영했더니 관광객이 급증하더군요. 로켓이 하늘로 치솟는 데 비유되는 ‘스카이 로케팅’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죠. 이게 연속극에 DM을 도입한 첫 사례입니다.”

    – 특히 잊혀지지 않는 홍보 사례가 있을 것 같은데요.

    ▶ “언론에서 ‘PR전쟁’으로 불려지기까지 했던 전투기 수주전 PR에서 승리한 것이지요.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F16 홍보 대행을 맡아 맥도널 더글러스의 F18을 따돌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게다가 상대방이 대학 동문인 조안리여서 더욱 관심을 끌었었지요. 조안리는 ‘잠수함 작전’으로 은밀한 PR을 전개한 데 반해 우리는 철저히 ‘공개 작전’으로 일관해 대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김 사장은 당시 모든 신문 1면에 5단통으로 무기 광고를 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게다가 언론 홍보가 아니라 중대한 구매 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 PR의 위상을 높였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단다.

    – 홍보인들과 자주 만나시나요.

    ▶ “앞서 언급한 조안리, 서강대 최창섭 교수, 나라기획 조해형 회장, 수원대 최윤희 교수와 서정우 전 연세대 교수를 자주 만납니다. 얼마 전에 열린 한국PR협회 행사에서도 자리를 함께 했어요.” 자주 만나는 인사들이 한국PR협회의 산파역이다. 외국 언론인들이 “내한할 때마다 광고시장은 대단한데 왜 PR 관련 단체가 없느냐”며 의아하게 생각해 단체를 만드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는 협회가 있으면 PR 발전에 좀더 체계적으로 기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후배들에게 들려줄 바람직한 홍보인상이 있을 것 같은데요.

    ▶ “가치 있는 뉴스 발굴과 함께 PR도 컨설팅이란 생각을 지녀야 합니다. 한마디로 고차원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지요. 또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판을 듣도록 해야만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겠어요. 여기에다 외국어 구사 능력을 키운다면 금상첨화입니다.”

    – 홍보 관련 서적 출간도 활발하시잖아요.

    ▶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펴냈지요. 제 견해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위해 출간을 생각중입니다만, 머릿속에서 뱅뱅 돌 뿐입니다.” 그는 ‘생생한 PR현장 이야기’ ‘큰 생각 큰 PR’ 등 4권의 저서를 펴낸 바 있다. 뚜렷한 테마를 잡아 PR의 싱싱한 얘기를 글로 옮길 생각은 항상 갖고 있단다.

    – 좌우명을 들어 볼까요.

    ▶ “무슨 일이든 항상 최선을 다해야지요. 그리고 젊었을 때는 쉴 틈 없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입력 : 2005년 12월 26일 14:41:22 / 수정 : 2005년 12월 28일 15:4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