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정부·규제기관

  • 위기는 인정한 만큼만 관리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스토아 학파의 두 번째 수장 클레안테스가 남긴 시구가 있다. 세네카가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에 옮겨 적어 오늘까지 전해진다. “운명은 따르는 자를 인도하고, 거스르는 자를 끌고 간다.” 두 사람에게 같은 운명이 온다. 피할 수는 없다. 다만 따르는 자는 제 발로 걸어가고, 거스르는 자는 끌려간다. 갈림길은 운명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는 뜻이다.

    위기를 맞은 기업의 첫 대응 회의실을 떠올려 보자. 많은 회의가 조금 색다른 말로 시작된다. “이게 무슨 위기입니까?” “언론이 과장하는 겁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요.” “조금 지나면 잠잠해집니다.” 사실 이런 주장과 대화는 상황 분석이 아니다. 섣부른 부정(denial)이다. 이 경우 눈앞에 도착한 위기를 위기가 아니라고 우기는 데 회의의 절반이 쓰인다는 특징이 있다.

    부정은 공짜가 아니다.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동안 대응은 시작조차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연락하지 않고, 사실 확인을 미루고, 입장 정리를 뒤로 민다. 그렇게 골든타임은 소모된다. 더 나쁜 것은 부정이 밖으로 새어 나갈 때다. “별일 아니다”라는 부정의 초기 입장은 며칠 뒤 거의 수정된다.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던 위기는 그 의도 때문에 이내 심각성이 두 배가 되어 돌아온다.

    그런 경우 기업들은 위기 앞에서 왜 부정부터 하게 될까? 위기를 인정하는 일이 곧 잘못을 인정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은 다르다. 위기의 인정은 죄의 자백이 아니다. 상황의 직시다. “지금 우리에게 위기가 왔다”는 문장에는 아무런 법적 책임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그 문장을 입 밖에 내는 순간, 조직은 비로소 움직일 근거와 동력을 얻는다.

    수용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클레안테스가 권한 것도 두 손 놓고 떠밀려 가는 삶이 아니었다. 받아들이되, 받아들인 그 지점에서 자기 몫의 일을 시작하는 태도였다.

    에픽테토스는 이를 주사위 놀이에 비유했다. 어떤 수가 나올지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 그러나 나온 수를 잘 쓰는 것, 그것은 온전히 우리의 일이다. 이를 위기관리에 적용해 보자. 위기라는 패는 이미 기업 앞에 던져졌다. 그 패를 무르겠다고 우기는 데 시간을 쓰는 기업이 있고, 던져진 패를 손에 쥐고 다음 수를 두는 기업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위기가 왔다”를 인정하는 것은 항복 선언이 아니라 출발 신호다. 인정해야 목표가 서고, 목표가 서야 우선순위가 생기고, 우선순위가 생겨야 조직이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위기는 인정한 만큼만 관리된다. 절반만 인정한 기업은 절반만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장에서 보아도, 위기를 빨리 인정하는 기업일수록 위기를 짧게 겪는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당연한 이치다. 일찍 인정한 기업은 일찍 움직이고, 일찍 움직인 기업이 상황의 주도권을 쥔다. 늦게 인정한 기업에는 유효한 대응 없이 흘려보낸 시간만 쌓인다.

    위기가 왔는가.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회의실에서 “이게 무슨 위기냐”는 말이 나오려는 순간, 클레안테스의 시구를 떠올리자. 따르는 자는 인도되고, 거스르는 자는 끌려간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 왜 리더는 대변인 뒤에 서는가?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에는 대변인이 있다. 조직의 얼굴이라는 리더를 두고도, 굳이 그 앞에 다른 입을 세운다. 리더가 말을 못해서가 아니다. 말을 잘하는 리더일수록 대변인 뒤에 서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대변인 제도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답이 보인다. 미국에서 백악관 대변인이라는 공식 직책이 처음 생긴 것은 1929년이다. 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행정부의 메시지를 한 창구로 모아 내보낼 필요가 생겼다.

    여기에 깔린 전제가 있다. 최고 권력자도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도 예외가 아니다. 대변인 제도는 이 단순한 사실 위에 세워졌다. 리더도 사람인 이상 반드시 실수한다는 전제 위에, 그 실수를 미리 걸러내려 만든 장치다.

    대변인은 조직의 말을 다듬는 사람

    대변인 제도가 실제로 하는 일은 세 가지다.

    첫째, 검증이다. 메시지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적·정무적 리스크를 걸러낸다. 리더 혼자 던지는 말에는 이 관문이 없다.

    둘째, 일원화다. 조직의 입을 하나로 모은다. 여러 입이 제각각 말하면 메시지는 흩어지고, 받는 쪽은 혼란스럽다. 창구가 하나여야 조직의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셋째, 완충이다. 리더와 즉각적인 여론 사이에 시간과 사람을 둔다. 그 사이에서 조직은 한 번 더 생각하고, 필요하면 고친다. 완충이 없으면 리더의 실수는 곧바로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메시지가 나가기 전에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여러 부서가 표현을 맞추고, 최종적으로 검증한다. 조직의 집단지성이 합의한 메시지가 단일한 창구를 통해 나간다. 대변인 제도의 본질은 이 과정 전체다. 대변인은 리더의 말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말을 다듬는 사람이다.

    직접 던지는 말에는 관문이 없다

    최근 일부 리더들은 이 관문을 통째로 건너뛴다. 개인 소셜미디어로 사소한 생각을 실시간으로 던진다. 빠르고, 꾸밈없고, 중간의 왜곡이 없다. 지지층은 열광한다. 직접 소통의 매력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 매력이 앞의 세 관문을 모두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검증이 없으니 틀린 사실이 그대로 나간다. 일원화가 없으니 리더의 말과 조직의 공식 입장이 어긋난다. 완충이 없으니 실수는 즉시 박제된다. 지우거나 정정해도 이미 늦다. 캡처들이 계속 남는다.

    직접 소통, 그럴듯하지만 위태롭다

    직접 소통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정리하면 대체로 네 가지다.

    진정성(authenticity). 다듬어진 보도자료보다 리더의 날것이 더 믿음직하다는 생각이다.

    속도. 위기의 순간에 대변인을 거칠 시간이 없다는 시각이다.

    왜곡 제거. 언론이라는 중간 필터가 메시지를 비튼다는 것이다.

    결속. 지지층과 직접 이어져 자기 서사의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고잉 다이렉트(going direct)’ 전략은 최근 몇 년 사이 강력한 흐름이 되었다.

    하나씩 되짚어 보자.

    진정성부터 보자. 날것이 곧 진정성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날것은 그냥 사고(事故)일 뿐이다. 틀린 사실을 진솔하게 말한다고 그 사실이 참이 되지는 않는다. 대중이 원하는 것은 꾸밈없음이 아니라 믿을 수 있음이다. 그 둘은 다르다.

    속도를 보자. 조직과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빠른 말이 아니라 맞는 말이다. 대변인을 거치는 몇 시간이 아까워 던진 한마디가, 이후 몇 달의 수습을 부른다. 빨라서 이기는 경우보다, 빨라서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왜곡 제거를 보자. 언론이라는 필터를 없애면 왜곡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필터가 없으면 리더 자신의 실수가 그대로 통과할 뿐이다. 중간의 왜곡을 없앤 대가로, 원본의 결함을 걸러 줄 장치까지 함께 잃는다.

    결속을 보자. 지지층과 직접 이어지는 것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직접성은 우호적인 청중에게만 통한다. 같은 메시지를 반대 진영과 규제 당국, 투자자와 언론이 동시에 본다. 지지층을 결속시킨 바로 그 한마디가, 나머지 모두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된다. 하나의 청중을 위해 던진 말이 여러 청중 앞에서 폭탄이 된다.

    네 가지 이득은 모두 실재한다. 문제는 그 이득이 하나같이 ‘잘 될 때’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잘못될 때의 손실은 그 이득을 전부 합친 것보다 크다. 진정성으로 얻은 신뢰는 실언 한 번에 무너지고, 속도로 아낀 몇 시간은 몇 달의 위기로 돌아온다. 이득은 선형으로 쌓이지만, 손실은 한순간에 터진다. 이 비대칭(asymmetry)이 핵심이다.

    누구를 위한 직접 커뮤니케이션인가

    여기까지는 실수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은 불완전하니 관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더 무거운 이야기가 남아 있다. 의도의 문제다.

    공직자와 기업 총수의 말에는 애초에 사적 영역이 좁다. 공직자는 공익을 실현할 법적 의무를 진다. 기업 총수는 회사에 대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duty of care), 그리고 회사의 이익에 충실할 의무(duty of loyalty)를 진다. 이른바 선관의무와 충실의무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이들의 공적 발언은 개인의 표현이 아니라, 위임받은 목적의 수행이다. 자기 것이 아닌 말을 대신 맡아 하는 자리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하나인 매디슨은 헌법을 설계하며 이렇게 썼다.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는 필요 없다.” 그가 견제 장치를 만든 이유는 단순히 사람이 실수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은 권력을 쥐면 사익을 좇고 야심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야심이 야심을 견제하게 하라”고 했다. 자리에 맡겨진 목적과, 그 자리에 앉은 개인의 욕심은 늘 어긋날 수 있다. 그 어긋남을 걸러 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변인 제도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대변인을 거친다는 것은 ‘이 말이 조직의 목적에 부합하는가’를 조직이 한 번 확인한다는 뜻이다. 관문을 건너뛴다는 것은 그 확인을 회피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회피에는 대개 이유가 있다.

    던져지는 말들을 보면 짐작이 된다. 조직의 공식 입장과 어긋나는 말. 개인의 감정과 과시, 정치적 야심이 앞선 말. 조직에 이득이 없거나 오히려 손해인데도 반복되는 말. 이런 말들은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의심이 시작된다. 리더가 굳이 관문을 건너뛰는 이유는, 그 말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할 말이기 때문은 아닌가? 직접 소통이라는 방식 자체가, 사적 목적을 걸러지지 않게 통과시키는 통로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핵심은 커뮤니케이션 구조다. 직접 소통이라는 방식은 사적 목적을 걸러낼 수 없다는 것이다. 걸러지지 않으니, 사심이 있어도 그대로 나가고, 없어도 의심을 받는다.

    리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은 하나다. 지금 이 말은 조직을 위한 것인가, 국가를 위한 말인가, 기업을 위한 말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말인가. 이 자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말은 애초에 나가지 말아야 할 말이다.

    참는 것도 리더의 능력이다

    리더가 대변인 뒤에 서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절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리더가 아니라, 해야 할 말만 골라 내보내는 리더가 조직을 지킨다.

    직접 던지는 한마디는 통쾌하다. 그러나 그 통쾌함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리더 개인이 아니라 조직 전체다. 국가의 신뢰이고, 기업의 평판이다. 대변인이라는 낡아 보이는 제도가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리더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실수하고, 때로는 사심을 따른다. 그 둘을 미리 걸러 줄 관문 하나가, 조직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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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이 왜 참지 않게 되었을까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요즘 기업들의 위기관리 방식을 보면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전에는 정치권이나 수사 기관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걸 상당히 조심스러워 했는데요. 최근에는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아마 최근 기업 이슈관리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게 감지되는 변화가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과거 이슈 및 위기 관리 지침서들은 대부분 정부나 규제 기관, 수사 기관에 대해 ‘반박’보다는 ‘협조’를 우선시했습니다. 특히 특수한 사회적 환경에 놓인 한국 기업들은 영향력 있는 기관과의 갈등을 극도로 경계해 왔으며, 이슈 발생 시 커뮤니케이션을 최소화하며 ‘로우 키(Low-key)’를 유지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기업 내부에는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사실관계를 바로잡고 싶다는 욕구가 존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의사결정자들은 “말을 아끼라”거나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라”는 정무적인 지시를 내리곤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기업에게는 정치권이나 정부는 매우 두렵고 부담스러운 대상이었으며, 그들을 자극해서 얻을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곧 상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변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환경 변화에 대한 기업별 시각차가 크고 여전히 대다수 기업은 과거의 전략적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정부나 규제 기관의 권위적 전횡이 이전보다 줄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입니다. 과거에는 그들 “눈 밖에 나면 오랫동안 고생한다”는 두려움이 컸다면, 이제는 “법적으로 정당하다면 과도하게 저자세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방향으로 대응 전략이 선회한 것입니다. 물론 법적 대응을 담당하는 로펌 등 전문가 집단에서는 아직도 상대 기관을 자극하는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자제하라고 조언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둘째, 기업 내 대관 인력의 구성 변화입니다. 정치권이나 정부 기관 출신 인사가 기업 내부에 대거 포진하면서, 보다 적극적이고 강경한 대응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업의 정당화(政黨化) 과정’이라 불러도 될 만큼, 이전과는 다른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이끄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셋째, 온라인 및 소셜 미디어 관리 경험을 통한 자신감의 발로입니다. 기업 스스로 여론을 주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비합리적 주장에 적극 반박함으로써 여론을 우군으로 만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인데, 이는 객관적 역량이라고 보다 기업 측의 희망 섞인 기대가 반영된 측면이 큽니다.

    정리하자면, 질문하신 변화는 일부 기업의 사례에서 눈에 띄게 나타나는 현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 대응이 주류 트렌드로 자리 잡을지, 혹은 지속적인 효과를 거둘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실익 관점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슈 관리의 본질은 논란을 지속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이슈를 증폭시킬 위험이 있는 강경 전략을 ‘좋은 전략’으로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Problem solver? Problem maker?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최근 저희와 관계 있는 한 회사의 위기관리를 전사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언론이나 국회나 여러 핵심인사들이 공통적 위기대응 방식을 조언하고 있는데요. 그 회사는 그것을 충분히 알 것 같은데, 결코 그 방식을 따르지 않을 것 같아 보입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유가 무얼 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의 위기 시 언론이나 국회 등 주요 이해관계자들이 제시하는 공통된 해법을 해당 기업이 외면하는 모습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습니다. 외부 시선에서는 해답이 명확해 보이는데, 왜 당사자인 기업은 그 길을 택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현장의 실상은 일반적인 추측과는 사뭇 다릅니다. 심각한 위기에 봉착한 주체는 사실 무엇이 정답인지 이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해답을 인지하는 것과 이를 실제 실행으로 옮기는 것 사이의 거대한 간극에서 발생됩니다.

    흔히 제3자들은 위기 주체가 상황의 엄중함을 모르거나 해법을 찾지 못해 방황한다고 생각하여 반복적인 조언을 건네곤 합니다. 하지만 기업은 외부 우려보다 훨씬 민감하게 움직입니다. 기사 속의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의 뉘앙스에도 일희일비하며 대응책을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명해 보이는 해답이 실행되지 않는 이유는, 그 해법 자체가 자신들이 실행하기 원하는 방향이나 유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랜 기간 위기관리 현장에서 목격한 바에 따르면, 기업들은 위기 시 ‘어떻게(How)’라는 방법론적 해답을 찾기보다, 철저히 자신의 ‘호오(好惡, Like or Dislike)’에 기반하여 대안을 쇼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이라 할지라도, 의사결정권자가 ‘하기 싫은(Dislike)’ 방식이라면 그것은 결코 선택되지 않습니다. 일단 리더가 ‘하고 싶다(Like)’는 의지를 가져야만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인 ‘어떻게’를 논의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기조를 거스르거나 변화시킬 수 있는 내부의 위기관리팀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전략적 조언과 설득이 무력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위기관리의 격언 중 “리더는 문제 해결자(Problem Solver)가 되어야지, 문제 유발자(Problem Maker)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위기의 파고 속에서 리더는 조직을 구하는 구원자(Life Saver)로서 전면에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의 많은 리더는 문제 해결의 책임을 하부 조직에 위임한 채 뒤로 물러나 있습니다. 임직원들에게 신속한 수습을 주문하며 절치부심(切齒腐心)을 요구하지만, 리더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실무진이 내놓는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미봉이나 모면에 그칠 뿐입니다.

    진정한 위기관리의 성패는 결국 리더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리더가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어, 자신이 ‘하기 싫은 해답’이라 할지라도 이를 수용하고 실행하는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위기는 수습의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위기관리란 단순히 기술적인 대응의 영역이 아니라, 리더가 자신의 책임을 대면하고 ‘옳은 선택’을 실행에 옮기는 결단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공적(公的) vs. 사적(私的) 커뮤니케이션의 차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얼마전 고위공무원이 한 유투브에 출연해 민감한 정부정책에 대해 설명한 내용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기업도 그렇고 공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요? 그 둘 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이나 정부기관 리더들이 그렇게 자주 실수하는 이유는 그 둘 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커뮤니케이션 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만 봐도 제대로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따라서 그로 인한 사후 폭풍은 온전히 개인이 감내해야 할 당연한 결과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이나 조직에게 필수적인 커뮤니케이션 태도이자 실행 기준입니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은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 아닙니다. 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속에 공적 커뮤니케이션과 사적 커뮤니케이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알기 쉽게 퀴즈를 내 보겠습니다. 대표이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회사 사업과 전략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 대표이사가 준비된 답변을 하는 것은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정답은 예상과 같이 대표이사의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쉬운 예죠.

    그렇다면, 인터뷰가 끝나고 기자와 대표이사가 저녁식사를 함께 합니다. 술잔이 오가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기자가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한 영화내용에 대해 대표이사의 의견을 묻습니다. 그에 대해 대표이사는 자신의 관전평과 해석을 자세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일까요? 여기부터 헷갈리시죠?

    또 기자가 대표이사에게 어떤 타기업 대표에 대한 개인적 평가를 문의합니다. 대표이사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과 실적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친한 정부인사나 정치인과의 친분도 이야기합니다. 자기 회사가 속한 그룹 오너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자랑합니다. 자기 자녀가 어느 공공 조직에 속해 있다며 칭찬합니다. 기타 다양한 개인사를 기자에게 공유합니다. 이런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인 것일까요? 사적인 것일까요?

    답을 내기 위해서는 첫째, 대상이 공적 대상인가? 사적 대상인가? 둘째, 대화 내용이 공적 주제인가? (순수한) 사적 주제인가? 셋째, 메시지가 공식적으로 합의된 것인가? 개인적인 것인가? 마지막으로, 만약 그런 메시지로 문제가 생기는 최악의 경우 그 책임을 위해 자신의 자리(위치)가 위협받을 수 있는가? 등과 같은 여러 복잡한 수식을 동시 적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보다 간단한 기준이 있습니다. 만약 리더 자신이 기업과 조직에 현재 속해 있다면, 자신이 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럼 사적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인가 궁금하시겠지요? 공적인 자리에 계시는 동안에는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없다고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대상이 가족이나 친지 정도라면 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일부 존재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 영역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 외 리더에게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공적인 것입니다. 그에 더해 자기 주변 ‘모든’ 사람은 기자(공적 대상)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잘 준비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자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컨트롤타워의 부재라고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지적이 종종 반복되더군요. 기업의 케이스보다 정부기관과 케이스에서 그런 지적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위기관리에 있어서 컨트롤타워는 어떤 의미이고, 실제로 컨트롤타워가 없는 케이스들이 있는 걸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에 있어 컨트롤타워 논란은 사실 상당히 민감한 영역에 위치해 있는 주제라서 다루기가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질문에서는 기업보다 정부기관 케이스에서 컨트롤타워 부재 현상이 많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양측이 거의 유사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기업 위기와 정부기관의 위기를 다루는 언론의 취재 깊이와 시각에 차이가 있어서 기업측 내면이 정부보다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컨트롤타워가 없어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세간의 지적은 정확하지 않은 지적입니다.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그 상황을 보고받고, 대응 의사결정을 하는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컨트롤타워가 적절한 역할을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습니다.

    정부기관 위기관리 케이스에서 언급되는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의미는 정부체제상 법이나 규정에 기반한 컨트롤타워의 위치와 역할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대형 위기에 대한 대응을 이끄는 컨트롤타워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후 그 유사 컨트롤타워를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로 인정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같은 논란이 반복되는 것이겠지요.

    기업의 경우에는 컨트롤타워 부재 현상은 더욱 더 있을 수 없습니다. 만약 회사에 위기가 발생했는데도 컨트롤타워가 실제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 상황은 진짜 위기가 아닌 것일 수 있습니다. 실무진이 봤을 때 최고경영진인 컨트롤타워가 위기관리에 적극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거나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컨트롤타워가 그렇게 조심스럽게 위기를 다루는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렇듯 일부 기업 케이스에서 컨트롤타워 부재 현상이란, 실무자나 언론 및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볼 때 그 기업의 위기관리 과정에서 최고경영진이 적절히 가시화되지 않는 경우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큰 위기상황이 발생했는데도, 그 기업 오너나 대표이사가 사과나 해명을 위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언급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컨트롤타워 스스로의 전략과 전술적 의사결정에 기반한 대응 방식일 뿐입니다. 이를 보고 컨트롤타워 부재라고 하는 것은 적절한 지적이 아닙니다.

    컨트롤타워란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면 머리 속 뇌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이 일정하게 움직여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면, 그 사람의 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해당 뇌가 이상적 상태로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여부는 다른 주제입니다. 일단 뇌는 존재하며, 그 뇌가 사람 자체를 상당부분 컨트롤하고,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컨트롤타워의 부재라는 것이 위기관리 실패의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위기관리란 그렇게 단순한 이유 때문에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원회를 만드는 이유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은 기업을 보면, 위기관리 활동의 일환으로 ‘위원회’를 만들고 그에 대하여 커뮤니케이션 하곤 하던데요.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업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도 있겠지요?”

    컨설턴트의 답변

    기업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위원회(committee)’를 구성해 대응하는 방식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위기관리 기법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위원회 구성의 핵심 목적은 해당 위기에 대해 기업이 진지하고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며, 실질적인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대외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특히 위원회를 통한 위기 대응은 이해관계자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거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거나, 기업의 브랜드와 명성이 큰 타격을 입은 중대 위기 상황에서 주로 활용됩니다.

    이러한 위원회는 그 기능에 따라 조사위원회, 피해복구위원회, 개선위원회 등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고유 역할을 수행합니다. 위원회에는 대외적으로 신뢰받는 외부 인사와 기관, 그리고 내부 핵심 임원들이 함께 참여하여, 공정하고 효과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 내부 인사의 참여를 전면 배제한 완전히 독립적인 위원회를 구성해 진단 및 조사 기능만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단, 기업이 이미 정부 규제 기관이나 수사 기관의 공식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독립 조사 기능보다는 개선 방향 제시와 이해관계자 관리에 위원회의 역할이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외부 조사와 병행해 별도의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혼선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원회의 구성은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선, 위기 이슈로 인해 기업에만 여론이 집중된 상황에서 독립 위원회의 설치는 공적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기업 자체의 신뢰도가 낮은 경우에도 위원회를 통해 외부의 신뢰를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기업이 향후 유사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실질적이고 강력한 개선 의지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제3자 인증효과(Third Party Endorsement)’라는 전문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즉, 위기관리 당사자인 기업을 대신해 제3자가 나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파함으로써 위기관리를 지원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전문가나 외부 기관이 자발적으로 이를 수행할 경우 부담이 클 수 있기에, 기업이 위원회를 공식적으로 구성하여 제3자의 인증을 제도화하고, 이를 실제 위기관리에 반영하는 것이지요.

    다만, 위원회 구성은 위기 발생 후보다 사전적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준비해 운영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위기관리 방식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흔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방식보다는, 위원회를 통해 ‘외양간을 미리 고쳐 소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대응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위기관리는 사후 대응보다는 사전 예방이 훨씬 더 낫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실익(實益) 속에 전략 있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고문에서 여러 번 반복해 강조했던 내용 중 하나가 전략과 실익의 관계다. 전략이 실익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시각 보다는 실익이 전략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현장에서는 좀 더 현실적이다. 실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전략과 실행은 정당화된다. 그렇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종종 “A라는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은 왜?”라는 질문을 한다.

    이슈나 위기 시 주체가 어떤 실익을 얻기 위해 그 특정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을 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이 정확하게 나오는 경우에는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했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다면 그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에는 전략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질문해 보면 상당수 경우에 정확한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실익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서 실익이라는 것이 다르게 나뉘기도 한다. 특정 실행을 해서 실익을 얻을 것이 확실하다면, 그것은 전략적인 것이다. 특정 실행을 해도 별 실익이 없고, 손해도 없을 것이 확실하다면, 그 경우는 정치적인 결정의 대상이다. 무언가 하라, 어떤 것이든 해보라는 지시에 따라 하는 실행의 대부분이 이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정 실행을 했을 때 상당한 손해가 예상되거나 확실할 때에는 (상식적으로도) 그 실행은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상식적이지 않은 실행 유형은 생각보다 많고 흔하다. 일반적이지 않고 무언가 창조적인 이슈관리, 위기관리를 한다는 경우들이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결과로 얻어진 손해가 부정 이슈나 위기 자체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전략적이지 않은 실행에 의한 것인지를 사후 분별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경우 비전략적, 반전략적 실행이 쉽게 용인된다.

    이슈와 위기관리 현장에서의 실익과 전략의 관계를 좀더 들여다보자.

    목적을 정해야 실익이 보인다

    이슈나 위기 발생시 특정 실행과 커뮤니케이션을 결정한 이유가 뭔가 하는 질문에 “속이라도 시원 하려고” “억울해서 이렇게 안 하면 미칠 것 같아서” “(상대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줄라고”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서” 등의 답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대부분은 이슈나 위기관리의 목적을 정확하게 정하지 않은 채 반응적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실익과 비실익을 구분하지 못한다. 실익의 정의와 시각이 제각각이 된다.

    정확한 목적이 내부에 공유되면, 위와 같은 이상한 답변은 나올 수가 없다. 누군가 그런 의지를 피력하며 특정 실행을 제안한다면, 내부적으로 비웃음만 받게 되기 때문이다. 전략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찍히는 것은 그 다음이다. 실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예상하는 기준이 곧 목적이다. 그 목적이 전략이 된다.

    실익이 타이밍을 정한다

    지금 실행을 해야 하는가? 하루 이틀 후에 해야 하는가? 적절한 타이밍은 언제인가? 이런 질문도 이슈나 위기관리 현장의 흔한 질문이다. 그 타이밍을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할까? 가장 간단하고 중요한 기준은 실익이다. 지금 실행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과 하루나 이틀 후 실행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 중 어느 것이 더 큰가? 앞으로 전개될 타임라인을 예상해 놓고 본다면 과연 언제의 실행이 가장 큰 실익을 보장할 것인가? 이런 검토가 타이밍 전략의 기반이다.

    실패하는 이슈나 위기관리 케이스에서는 실익을 기준으로 타이밍을 정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들의 준비 수준이나 속도, 자의적 의향, 무조건 신속해야 한다는 생각, 타사 유사사례에서의 타이밍 비교 등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실행 타이밍을 맞춘다. 실익을 전제하지 않는 타이밍 결정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실익이 메시지를 정한다

    메시지를 제대로 정해야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커뮤니케이션 되지 않는 메시지는 그냥 해프닝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면 그것은 노이즈다. 더 나아가 해사(害社)행위가 된다. 잘 된 메시지에도 실익은 기준이 된다. A라는 메시지와 B라는 메시지간에 어떤 메시지의 실익이 더 큰가를 결정해 보아야 한다.

    A메시지는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될 수 있도록 해당 메시지를 개선해야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B라는 메시지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면 해당 메시지는 절대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아야 실익을 기대할 수 있다. 차라리 메시지 없이 커뮤니케이션을 홀딩하거나 로우프로파일을 견지해야 실익이 있다면, 그것도 좋은 전략이 된다. 이 모든 것의 기준이 실익이다.

    실익이 타겟을 정한다

    대체 누구에게 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건가요?라는 타겟 질문에 대한 답도 실익이다. 길거리에 휘날리는 정치인의 우스꽝스러운 현수막은 과연 누구를 타겟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일까? 앞에서와 같이 실익을 기준으로 판단했더라면, 그런 괴상한 메시지는 실행으로 옮겨지지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 메시지가 흉측한 현수막으로 커뮤니케이션 되었다. 누가 그 메시지를 흡족 해 할까? 아마 그 대상은 그 현수막에서 웃고 있는 국회의원 자신일 것이다. 이런 타겟팅을 통해 실익을 얻는 사람도 있다는 의미다.

    이슈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타겟의 적절한 설정은 상당한 의미와 효과를 가진다. 특별히 이상한 커뮤니케이션의 경우에는 타겟이 따로 정해져 있다. 우리가 얼핏 예상하는 대상이 그 커뮤니케이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또한 실익에 대한 것이다. 이상한 타겟에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이유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실익을 얻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 타겟을 보면, 그 주체가 어떤 실익을 추구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실익이 실행을 거른다

    뭐든 한다. 일단 하고 본다. 모든 것을 한다. 이런 생각은 전략적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최대 적들 중 하나다. 이를 제대로 걸러낼 수 있는 방법은 실익을 판단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A에서 Z까지의 실행안에 있어 실제 실행 시 가장 실익이 큰 것은 어떤 것인가를 예상해 보아야 한다. 실익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을 우선 실행해야 한다. 별 실익이나 손해도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정치적으로 판단해서 실무선에서 결정한다. 실행해서 손해만 예상되는 것이라면 실행안에서 지워 버려야 한다.

    이는 초등학생도 이해 가능한 단순한 기준이다. 하지만, 기업의 실행 현장에서는 아주 어려운 고민 주제가 된다. 실익을 누가 판단하는가? 누구에게 실익인가?와 같은 고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무선에서는 경험상 A 실행은 사후 손해 부담과 규모가 크다고 예상하지만, VIP의 강력한 의지가 내려오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더 이상 설득은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손해 부담과 규모를 계속 강조하며 실행에 반대한다면, 실무총괄임원이 인사조치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면. 대부분 실무그룹은 이를 일단 실행한다. 그리고 사후 데미지컨트롤 모드로 전환한다. 실익에 대한 공유된 시각과 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실익이 성패를 평가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 실익 없는 장기간의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란 어떤 의미인가? 재정적 부담과 인적 부담만 쌓였고, 명성과 이미지는 무너졌다면 그 제반 관리 활동은 무엇이었다는 것일까? 덩그러니 손해만 산처럼 남았다면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는 왜 했던 것일까? 성공한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서 정답은 당연히 실익이다.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를 우리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해 나가는 이유는 그로 인해 실익을 얻어 내기 위함이다. 명성의 절반이 무너졌어도, 위기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전체가 다 무너져 내렸을 것이라면, 이 또한 실익은 남긴 셈이다. 실행했을 때와 실행하지 않았을 때의 실익의 규모와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만약 실행했더라면 실익을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실행하지 않아 손해만 남았다면 이는 실패한 이슈관리와 위기관리라는 의미다. 물론 사후 정신승리 자체를 실익이라 정의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실익을 만들어야 성공한 위기관리다

    이 개념은 상당히 민감한 것이다. 이슈나 위기관리 사후에 실무진은 어떻게든 지난 실행들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어필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 이 때 실익을 어떻게 조작적으로 정의하는 가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우리가 원래는 A라는 실익을 추구하며 실행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B라는 실익을 얻었으니, 이는 성공이다.”와 같은 긍정적인 사후 정의 부여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실익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사후 논의는 중요하다. 그런 논의가 생산적일수록 차후 다른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서 실익을 기준으로 하는 판단이 당연해지고 익숙해진다. “이 실행을 했을 때 실익이 있을까?” “실익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이 실행은 꼭 실행되어야 하는가?” “실익을 제대로 얻지 못한 실행은 과연 어떻게 수정 실행해야 최초 예상했던 실익을 얻어낼 수 있을까?” 등과 같은 현장의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 글을 읽은 경영진과 실무진은 앞으로 여러 기업의 이슈관리와 위기관리 실행을 볼 때 이런 질문을 해 보자. “이 실행으로 저 회사가 얻을 실익은 무엇일까?” 그 답 안에 그 기업의 의지와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다. 예상과 기대가 들어있을 것이다. 전략이 확실한 윤곽을 나타낼 것이다. 반대로 그 많은 것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경우라고 해도 이제부터는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 통제가능한 것에 집중하자

    [The PR Times기고문]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흔히 위기관리는 불확실성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한다. 위기라는 것의 본래 특성이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위기가 발생된 이후에는 더욱 더 많은 불확실성을 끌어 들이며 덩치를 키우기 때문이다. 또한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기업 스스로로 많은 불확실성에 기반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런 의사결정으로 매우 다양한 불확실성들을 관리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위기관리 같다. 불확실성에 기반하여 불확실성이 극에 달한 상황을 불확실한 정보에 의지해 의사결정하여 결국 다양한 불확실성을 잡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인다. 일부에서 위기관리를 운칠기삼이라 이야기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기업이 위기관리 노력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불확실한 환경과 기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첫 단추가 된다. 가끔 심각한 위기상황에 직면하여 대응에 어려움을 겪는 실무자들에게 “왜 그렇게 위기관리가 잘 안되는가?”라고 질문하는 VIP를 본다. 이는 VIP가 위기관리를 마치 규정되어 있는 스텝에 서로 발을 맞추는 ‘춤’과 같은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가 제대로 스텝을 밟고 있는데, 많은 변수들이 그 스텝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이유다.

    위기관리는 그런 규정된 스텝에 발을 맞추는 춤이라기 보다는, 수많은 변수와 운이 섞여 있는 포커게임과 같다. 지속해서 변수들이 생겨나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이해관계자의 입장과 변화가 석여 다시 변수로 작용되는 포커게임이다. 나만 혼자 규정에 맞추어 위기대응을 한다고 무조건 효과를 발휘하거나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는 약속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위기관리는 이제 운에만 의지하면서 대응이 잘되기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사전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되지 않도록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 최선의 대응일까? 포커게임처럼 두둑한 배짱이 큰 밑천이 된다는 의미일까? 운이 좋은 회사였으니, 앞으로도 운이 좋을 것이라 생각해야 할까?

    불확실성과 싸우는 위기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대응 방식의 핵심은 통제가능성(controllable)과 통제불가능성(uncontrollable)을 신속하게 나누어 관리하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통제가능성 기반 대상에 대한 오해와 통제불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 직원들은 통제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 통제가능성에 해당하는 대상으로 직원을 꼽는다. 직원은 우리 회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회사가 충분히 통제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에도 그 통제가능해 보이는 직원들은 완전하게 제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현실에서 위기발생 시 직원들은 통제가능성에 위치하는 대상이 아니다. 통제불가능성에 위치한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적절한 시각이다. 최근 들어 그러한 직원들에 대한 통제불가능성은 더욱 더 커져간다.

    회사의 공식입장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는 직원들이 계속 생겨났다. 블라인드나 소셜미디어에 회사의 위기관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쏟아낸다. 회사는 그로 인해 다시 더 어려운 위기관리 과제를 떠맡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반복된다. 직원들이 통제가능성 위치에 있다는 전제는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 상상일 뿐이다. (노조는 이미 통제불가능성에 위치한다)

    그렇다고 직원들을 모두 통제불가능한 대상으로 묶어 놓는다면, 위기관리를 해야 할 주체가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평시 직원들을 통제불가능한 대상으로 전제하고 그 직원들을 철저하게 훈련해야 한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교육 및 훈련 기회의 제공을 통해 통제불가능한 직원들을 통제가능한 위치로 상당수 이동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 또한 위기관리다.

    두번째, 언론은 통제불가능하다. 온라인은 더욱 더 그렇다.

    아주 예전에는 언론을 통제가능하다 생각하는 대기업이 있었다. 매체수가 지금보다 적고 단순했던 시절에는 어느 정도 가능했던 이야기다. 그러나 현재 언론을 통제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될 만큼 환경이 바뀌었다.

    온라인 여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시절도 있었다 다양한 기술과 기법으로 온라인상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런 주장은 일반인들에게도 통하지 않는 비상식이 되었다. 언론과 온라인 여론은 가장 정확하게 통제불가능성에 위치한 대상이다. 그 전제는 앞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언론과 온라인 여론을 그냥 통제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여 관리 노력을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위기관리에 있어 중요하게 개념을 분류해야 하는 것이 있다. 위기가 발생한 상황에 기업이 ‘반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대응’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개념의 분류다. 언론과 온라인 여론에는 ‘대응’하는 것이 맞다. 여기에서 대응이란 깊은 분석과 고민을 통해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극에 대한 반사작용과 같은 반응에는 깊은 분석과 고민이 없다.

    세번째, 정부부처와 정치권은 통제불가능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목격되는 막후에서의 담판과 같은 일은 그리 흔하거나 상식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위기 시 그러한 모종의 협의 과정을 거치는 일부 기업들도 있을 수는 있다. 우리가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가 위기관리를 할 때 모르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이 생각해서 의지할 수는 없다.

    정부부처와 정치권은 철저하게 여론을 따라 움직이는 법이다. 그들은 그것을 정무감각이라고 한다. 특정 기업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위기관리를 하고 있을 때 나서서 그 여론에 반하는 지원을 해 줄 정부부처나 정치권은 없다. 평소 좋은 일로 여론의 호감을 받을 때에는 지원을 약속하는 곳들이 많았어도 부정적인 상황에 기업이 처했을 때는 그런 약속을 동일하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기업은 위기 시 그들로부터는 어떠한 지원도 기대하지 말아야 할까?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효과적인 대응일까? 그렇지 않다. 기업은 그들로 부터 좀더 넓고 깊은 정무감각을 배울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해야 여론을 관리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열쇠를 얻을 수 있다. 위기관리에서 대관의 중요성이 나날이 커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단순하게 그들을 안정시키고 적대성을 관리하고 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들이 기업의 전략에 공감하며 정무감각에 기반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환경을 선제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네번째, 시민단체, 환경단체, 비정부기관등도 통제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정치단체다. 앞에서 이야기한 정규 정치단체들 보다 훨씬 선명성이 강하기 때문에 통제가능한 여지는 더욱 좁다. 실제 기업이 위기를 경험하면 가장 공격성 짙게 다가오는 부류가 이들이다. 이들을 통제가능하다고 보는 기업은 없다.

    대부분의 위기관리에서 기업은 이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선택을 한다. 절대 통제불가능하므로 통제시도 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명분의 싸움에서 기업이 승리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기업이 명분 없는 부정적 상황에 처했더라도 신속하게 입장을 바꾸고 조치를 취해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명분을 먼저 쟁취하는 것이다. 그들이 기존에 가지는 명분보다 상대적으로 큰 명분을 취해 강조하는 것이 나은 대응이다. 그것이 그나마 그들이 아닌, 그들의 ‘영향력’을 통제가능하게 하는 전략이 된다.

    다섯번째, 주주와 투자자들도 통제불가능하다.

    주주와 투자자들이 우리 기업을 언제까지나 믿고 지원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투자자의 입장에서 초기에는 우리의 위기관리를 믿고 지원해 주기는 할 것이라 볼 수는 있다. 여기에서 핵심은 ‘초기’라는 기간이다. 부정적 위기가 발생되어 투자자들이 대규모의 손실을 입고 문제가 장기화되어 가면 갈수록 투자자들은 통제불가능한 위치로 대거 이동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관리에서 위기관리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키라는 주문을 한다. 투자자의 손실을 최소화 하고 단기화하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큰 위기관리 의미가 될 수 도 있다. 기업이 그렇지 못한 경우 주주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든 위기관리의 전반을 점검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을 고민하게 될 수도 있다. 기업 경영진으로서는 아주 직접적인 통제불가능성이자 위기인 셈이다.

    여섯번째, 거래처와 파트너사들도 통제불가능하다.

    수십년간 관계를 맺어온 거래처와 파트너사들은 평시에는 우리 기업을 응원하고 지원한다. 오랫동안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 나왔다며 우리는 한팀이라 생각하는 관계도 분명 존재한다. 서로가 어려울 때 돕고 힘을 모아 실제 문제를 해결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심각한 위기에 처한 기업이 위기대응을 하는 환경에서 거래처와 파트너사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점점 고민하게 된다. 자칫 자사가 문제의 기업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런 정보가 공개되어 공중으로부터 대대적 공격을 받게 된 경우도 생겨났다.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주체가 아니었는데, 이내 위기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그런 경우 그들을 계속 통제가능하다 볼 수는 없다. 그들 내부에도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존재한다. 최초 위기관리를 기업이 제대로 해내지 못해 그 피해와 영향이 거래처와 파트너사에게 까지 미치게 되면 그들은 언젠가 통제불가능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워하는 그들의 노조나 직원들이라도 우리 기업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일곱번쨰, 통제가능한 대상(플레이어)은 없다. 하나도 없다.

    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그 다음으로의 진전이 가능하게 된다. 평소 통제가능하다 또는 통제가능할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하던 습관을 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주변 대상은 모두 통제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야 최대한 통제가능한 주제를 위해 관심과 투자를 집중하게 된다. 일부라도 가능할 통제 방법을 찾게 된다. 최소한 통제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대상에게서 배신감과 실망감이라도 느끼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통제가능한 것을 꼽으라면 그것은 ‘메시지’다. 기업 내부에서 잘 합의된 메시지는 위기관리에서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통제가능한 주제이자 대상이다. 여러 의사결정자들이 함께 모여 현 상황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을 찾아 그에 집중한 메시지를 뽑아 내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그 때문이다.

    훌륭하게 마련된 메시지는 위기 시 여론을 바꾼다. 최소한 여론에 영향을 준다. 수많은 변수와 불확실성에서 통제불가능한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통제하려 애쓰는 것 보다 유일하게 통제가능한 메시지를 통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려 노력하는 것이 좀더 나은 위기관리다.

    강력한 메시지는 통제불가능했던 이해관계자들을 통제가능한 위치로 이동시키는 위력 또한 발휘한다. 적절한 메시지는 해당 기업의 위기에 관심 없던 공중들까지도 움직인다. 여론에 분명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전략적 위기관리란 전략적 메시지를 빼고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통제가능한 메시지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좀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미치광이와도 합의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에서는 가능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왠만한 고객 컴플레인이나 이해관계자 문제는 합의해서 잘 해결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문제는 블랙컨슈머나 악의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협박을 일삼는 사람들인데요. 이런 소위 ‘미치광이’들과도 합의를 해야 할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질문하실 때 사용하신 단어만 들어보아도 회사에서 그 사람들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계신지 잘 알겠습니다. 실제 여러 기업들이 그런 사람들 때문에 협박아닌 협박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일부는 그들을 대상으로 소송이나 여러 조치들을 강력하게 진행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말씀대로 조용히 그러나 어렵사리 합의해 문제를 종결시키기도 하지요.

    고민 주제는 어떤 사람들에게 까지 그런 합의 전략을 유지해야 하는가 같습니다. 말씀대로 진짜 미치광이와도 합의를 해야 하는지? 아니라면, 합리적인 사람과만 합의하고, 일정한 도를 넘는 사람과는 합의 없이 법적 대응이나 다른 압박책을 적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기업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응에 있어 기업측에서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꾸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사에게 협박을 해 오거나, 여러 컴플레인을 하며 문제화 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대부분의 기업은 그 사람을 먼저 봅니다. 그 사람이 어떤 매체의 어떤 기자인지, 어떤 정부관계자인지, 어떤 부처 실무자인지, 실제 고객인지, 고객이라면 정상고객인지 아니면 블랙컨슈머인지, 뒷정보를 캐 보며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까지 확인하려 하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상대에 대한 파악은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좀 더 비중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그 상대가 제기하고 있는 이슈의 중대성 여부입니다. 제3자 시각에서 볼 때 그가 제기하는 이슈가 상당한 부정성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 부정성이 최악의 경우 어떤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따져 보는 것이 급선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문 앞에 강도가 서 있는데, 그 강도가 어린 아이인지, 덩치 큰 강패인지, 여성인지, 노인인지를 오랫동안 따지기 전에, 그 강도 손에 쥔 무기나 폭약이 어떤 것인지를 빨리 살펴보라는 것이지요. 돌맹이를 쥐고 있는지, 아니면 핵폭탄을 쥐고 있는지에 따라 대응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 상대의 문제제기로 인해 자사가 입을 수 있는 피해규모와 범위를 면밀하게 예상해 이해해야 대응 전략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의 경우 그 상대가 미치광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고 합의할 가치가 있는가? 합의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저런 미치광이에게 어느정도 수준에서 합의 해야 하는가? 등의 부차적이고 상대적으로 덜 시급한 주제로 고민의 시간을 메꾸게 됩니다. 이는 실제 합의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니 자사에게는 이득이 없습니다.

    사람을 보기 보다 먼저 그가 제기하는 이슈를 보십시오. 사람만 보면 감정이 먼저 생깁니다. 그 감정이 그가 제기하는 이슈의 중대성을 가리게 됩니다. 감정으로 대응해서는 그런 사람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상대가 정상이 아니라고 하기전에, 먼저 회사가 더욱 정상적 판단을 하려 노력하십시오. 제기한 이슈가 별것 아니라면, 합의는 필요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합의는 그 누구와도 시도해 보는 것이 곧 이슈관리이자 위기관리 일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