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CEO를 위한 스토익(Stoic) 위기관리 원칙
첫째, 위기를 기회라 부르기 전에 먼저 피해자와 상황 앞에 겸손하라.
둘째, 위기가 여는 기회는 홍보의 기회가 아니라 개선과 신뢰 재구축의 기회임을 구분하라.
셋째, 막힌 지점을 기록하라. 그 목록이 다음 위기를 막는 길이 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행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행동을 진전시킨다. 길을 막아선 것이 길이 된다.” 이 문장이 단순 책상 앞의 낙관론이었다면 흘려들어도 좋다. 그러나 이 글은 전쟁과 역병이 이어지던 국경의 진중에서 쓴 것으로 전해진다. 실전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기업 위기관리 현장에서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은 자주 위험하게 쓰인다. 분노하는 피해자가 있는 사안에서 기회를 먼저 입에 올리는 회사는, 말 한마디로 2차 위기를 만든다.
처절하게 고통받는 사람들 앞에서 기회를 계산하는 회사로 읽히는 순간, 남아 있던 이해도 등을 돌린다. 마르쿠스가 말한 것은 고난의 미화가 아니라 고난의 용도 변경이었다. 이미 닥친 장애물이라면 그것을 재료로 쓰라는 것이다.
위기가 실제로 여는 대표적인 기회는 세 가지다.
첫째, 평시에는 불가능하던 개선의 명분을 만들어 준다. 수 년째 미뤄지던 설비 투자와 규정 정비가 위기 앞에서는 단숨에 결재된다.
둘째, 조직의 민낯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해진다. 보고가 어디서 막히고 결정이 어디서 늦어지는지가 위기만큼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없다.
셋째, 신뢰를 재구축할 접점이 생긴다. 평소 만나기 어렵던 이해관계자들이 지금은 회사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셋 모두 경영의 영역이다.
이 기회들은 위기관리를 건너뛰거나 망친 회사에게는 열리지 않는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낸 회사에게만, 그 수습의 끝에서 기회의 문이 열린다. 지난 편에서 위기는 인정한 만큼만 관리된다고 했다. 인정하고 수습해 낸 회사만이 장애물을 길로 바꿀 자격을 얻는다. 수습에 실패한 회사에게 위기는 그냥 재난으로만 끝난다.
장애물을 길로 바꾸는 실무 장치는 의외로 단순하다. 위기 대응 중에 부딪힌 막힌 지점들을 기록하는 것이다. 현장 정보가 올라오다 끊긴 지점, 의사결정이 하루를 넘긴 지점, 창구가 흔들려 말이 어긋난 지점, 준비된 문서가 없어 밤을 새운 지점. 대응하는 동안에는 이것들이 전부 장애물이다. 그러나 위기가 지나간 뒤 이 목록은 그대로 개선 과제 목록이 된다. 장애물의 지도가 곧 다음 길의 설계도가 되는 것이다.
반대의 회사도 있다. 위기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일상으로 복귀하는 회사다. 기록도 복기도 없이, 그 고생을 어서 잊는 것이 회복이라 여기는 경우다. 그 회사는 얼마 뒤 같은 장애물 앞에 다시 선다. 같은 지점에서 정보가 끊기고, 같은 지점에서 결정이 늦어진다. 장애물을 길로 바꾼 회사와 같은 장애물을 다시 만나는 회사. 위기관리에서 이 둘 간의 차이는 상상하는 것보다 크고 심각하다.
길을 막아선 것이 곧 길이 된다. 다만 그 길은 저절로 열리지 않는다. 피해자 앞에서 겸손했던 회사, 수습을 끝까지 제대로 해낸 회사, 그리고 막힌 지점을 꼼꼼하게 기록해 둔 회사. 그렇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때그때 한 회사에게만 장애물은 길이 된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