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담당자에게 권한을 부여하라!
OO 주식회사 홍보실 홍실장. 전사적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하라는 사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최근 천안함과 서해안 무력 충돌로 인해 최고경영진의 위기 의식이
높아진 까닭이다. 심지어 회사 일부에서는 미국의 911사태
수준의 위기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들도 나오고 있다.
홍실장은 일단
기존 위기관리 매뉴얼과 실제 위기를 관리했던 자사 케이스들을 모아 분석을 시작했다. 기존 관계를 맺고
있던 외부 컨설턴트들을 불러 함께 작업을 시작한 거다. 사장께서는 “빠른
시일내에 위기관리 시스템 점검을 마치고, 개선 및 강화안을 가져오라”
다그치신다.
컨설턴트들이
홍실장에게 기존 시스템 점검을 위해 위기관리팀으로 지정되어 있는 24명의 부서장들을 인터뷰 하고 싶다
했다. 홍실장은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무겁다. 평소에도
여러 경영 컨설턴트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온갖 인터뷰들을 진행해 사내에 인터뷰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아니 우리가 뭐 일하러 회사를 다니지, 컨설턴트들에게 인터뷰 해 주려고
회사를 다닌답니까?” “이 프로젝트 기획한 부서가 어디야? 왜
우리만 이렇게 반복적으로 귀찮게 해?” “감사 받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자료를 어느 세월에 준비해 준답니까? 프로젝트 하는 팀이 알아서 자료 좀 챙겨주면 안 되요?” 이런 불만들이 가득하다.
홍실장은 컨설턴트들에게
“가능한 인터뷰 대상을 축소해달라” 부탁한다. 홍실장은 위기관리팀에 속해 있는 24명의 부서장들에게 인터뷰 목적과
가능시간을 알려달라 이메일 했다. 주간경영회의 시간에도 발언권을 얻어 사장 앞에서 여러 부서장들에게
협조를 구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도 답변이 없다. 홍실장은 비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부는 아직 일정을 정해 주시지
않았다는 반응이고, 일부는 이메일에 대해 별반 답변이 없으시다는 반응이다. 시간은 흐른다.
2주가 흘러 여러 비서들의 협조와 사장을 통한 압력(?)을 통해 겨우 3분의 2정도 부서장들의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인터뷰 시작. 컨설턴트들이 소회의실에서 주재하면서 일정에 따라 부서장들을
인터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예상대로 갑작스러운 일정들이
끼어들어 인터뷰의 대부분이 정해진 일정에 진행되지 않는다. 홍실장은 컨설턴트들에게 또 양해를 구한다. “가능한 분들만 인터뷰 하고, 일정이 급박하니 다른 연구방법으로
대체하는 게 어떨까요?”
컨설턴트들이
고민 끝에 홍실장 회사의 기존 사례 분석들을 기반으로 문제점 및 개선점을 도출하기 위한 일일 워크샵을 제안했다.
24명의 위기관리팀 소속 부서장들을 한자리에 모으자는 뜻이다. 홍실장은 다시 난감해진다. 부서장 전체를 한자리에 하루 동안 묶어 놓는다는 것이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한 태스크(?)기 때문.
홍실장은 다시
각 부서장 비서들의 협조를 얻어 위기관리 시스템 개선 워크샵 일정을 어랜지 한다. 여기 저기 홍실장에게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주말에는 좀 쉽시다” “미국 출장과
겹치는데 어떻게 해요?” “아무리 사장님이 하라 하셨어도 우선순위가 있는 거 아닙니까?” 홍실장은 이런 내부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에도 힘들다. 반론을
제기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운 좋게 일단
워크샵 일정 확보. 3분의 1의 부서장들이 여타 사정으로
워크샵에 불참의사를 밝혀왔다. 홍실장은 컨설턴트들에게 “이
정도 모일 수 있는 것도 기적”이라며 협조를 당부했다. 컨설턴트들과
부서장들의 워크샵이 시작되었다. 일부 참석한 부서장들은 활발하게 자신의 부서에서 위기관리에 필요한 사항들을
개진한다. 일부는 역시 침묵하거나, 랩탑으로 다른 업무를
진행 중이다. 홍실장은 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이게
어떻게 마련한 자린데…’
다음주 월요일. 사장이 홍실장을 호출한다. “홍실장, 지난달 이야기했던 위기관리 시스템 개선 프로젝트는 어떻게 됐어?” 홍실장은
“사장님, 그렇지 않아도 지난 주말 피닉스파크에서 전체 부서장들과
워크샵을 진행 했습니다. 이번 주말에 1차 리포트가 보고될
예정입니다.”라 답했다. 사장은 약간 짜증을 낸다. “프로젝트가 너무 느려…당장 지금이라도 위기가 발생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홍실장은 빨리 마무리 짓겠다 하고 사장실을 떠났다.
홍실장은 컨설턴트들을
쪼기 시작했다. 수요일까지 내부 리포트 리뷰를 하자 했다. 수요일이
되니 컨설턴트들이 여러 밤을 세워 마련한 개선안을 가지고 왔다. 홍실장은 컨설턴트들을 데리고 회의를
위해 12층 회의실들을 돌아 다닌다. 빈 회의실이 없다. 예약을 해 놓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홍실장은 회의실 사용 예약기록이
없는 빈 회의실 문을 열었다. 세네 명 팀장들이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다. 홍실장이 양해를 구했다. “홍보실에서 위기관리 프로젝트로 이 회의실을
잠깐 사용해야 하겠는데, 여러분들이 좀 회의실을 비워 줄 수 있겠어요?”
회의실에 있던
마케팅 팀장이 홍실장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저희도 회의 중입니다. 꼭
이 회의실을 쓰셔야겠어요?” 그 옆 프로모션팀장이 거든다. “요즘
홍보실 프로젝트 때문에 윗분들이 힘들다고 난리신데, 회의실로 저희들에게까지 압박을 주십니까? 홍보실 구석에 회의할 수 있는 공간 있잖아요?” 홍실장은 주먹을
꽉 쥐면서 한마디 한다. “이게 내가 혼자 좋자 하는 일입니까? 사장님께서
관심가지시고 회사를 위한 일 아니십니까? 회의실 내주는 게 그렇게 힘듭니까? 너무 하네요.”
팀장들이 한마디로
답한다. “저희도 회사를 위해 지금 이 회의를 하고 있거든요?” 홍실장은
컨설턴트들에게 회사 주변 커피샵으로 가 회의 하자며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홍실장은 힘이 없다. 사내에서 그 누구도 홍보실에게 힘을 실어준 적이 없다. 누구는 홍보실이
조직내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같이 움직여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하지만,
홍실장은 이런 상황의 원인이 홍보실에 있는지, 아니면 사장을 비롯한 다른 환경에 기인하는지
알고 싶다. 왜 홍보실이 회사의 중대한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힘을 얻지 못하고 떠다녀야 하는지가
고민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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