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CEO·최고경영진

  • “우리의 피는 자주색이다!” – 페덱스(Fe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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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피는 빨간색이 아니라 자주색이다!” – 페덱스

    정용민

    세계 210여개국을 대상으로 항공기 640여대와 4만 5천여대의 화물 차량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기업. 2002년도에는 매출 220억불(한화 약 28조원)을 기록. 계열사를 합쳐 직원만 19만명. 어느 대형 항공사이야기인가 하겠지만 이는 한 화물배달업체의 이야기다. 이름은 페덱스(Fedex).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라는 지방 도시에서 태어난 이 ‘배달회사’는 참으로 재미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직원만족 경영 때문에 직원들은 자신들의 피가 페덱스 로고의 색깔인 ‘자주색’인줄 안다니 말이다.

    전날 밤에 미국 LA에서 맡긴 소포를 태평양을 건너 바로 다음날 오전 한국 서울의 사무실에서 받을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를 페덱스는 매일 만들어 낸다. 고객이 자신이 발송한 화물이 현재 어디 있는지를 추적할 수 있게도 해준다. 만약  배달에 착오가 생기면 고객에게 요금을 돌려주는 웃기는(?) 회사도 페덱스다.

    각지에서 걸려오는 고객들의 전화를 2초 안에 받기 위해서 미국에만 16개 콜센터에 3500명이 대기시킨다. 비행기 고장 등 비상상황에 대비해 미국 전역에 24시간 비행기를 6대씩이나 덩그런히 비상 대기시킨다. 한가하게 대기만 하는 것만은 아니다. 몇 년 전 9·11테러가 발생하자 24시간 만에 위험을 무릅쓰고 수백톤에 이르는 구급약 등을 현장에 배달해 칭찬도 들었다.

    97년 여름, 경쟁사인 UPS의 직원들이 장기파업에 돌입해 급한 화물들이 구름같이 페덱스로 몰려들었다. 이때 페덱스의 직원들은 ‘나의 피는 자주색(페덱스사의 로고 색깔)’이라며 매일 밤늦게까지 자발적으로 우편물을 분류했다. ‘다음날까지 무조건 배달’이라는 페덱스와 고객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고객을 신(神)같이 받들어 모시는 회사. 그렇다고 직원들만 애꿎게 희생하는 회사도 아닌 곳. 고객도 직원도 회사도 함께 상생(win-win)하는 모습.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 다 이유가 있다.

    페덱스에서는 파트타임직원도 CEO가 될 수 있다고?

    1976년 데이비드 브론젝이라는 이름의 한 청년은 최하위급 배달직원(쿠리어)으로 페덱스에 첫발을 디뎠다. 그러나 그는 24년 후인 2000년, 페덱스 그룹의 계열사인 페덱스 익스프레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같은 회사의 데이브 레브홀츠 부사장은 6만명의 임직원을 지휘하는 페덱스의 핵심인재. 그러나 그도 76년에는 페덱스 사업장에서 트럭을 세차하고 비행기에 짐을 싣던 파트타임 직원이었다. 페덱스 고위 임원들 중에는 쿠리어 출신이 무척 많기 때문에 이들의 성공담은 페덱스에서는 별 이야깃 거리도 되지 못한다.

    한번 페덱스 맨은 영원한 페덱스 맨?

    페덱스에서 한국의 상무정도의 직급 경영진은 약 3백50명. 이 중 85%는 내부에서 승진했다. 중간관리자들까지 합치면 외부 채용 비율은 겨우 3~7% 정도다. 금융, IT 등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직종이 아니면 페덱스 맨이 우선이다.

    인력개발을 위해서 간부급인 매니저는 물론 쿠리어 같은 하위 직급들도 지역본부별로 마련된 프로그램에 따라 끊임없이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페덱스 인력의 3~5%는 매일 교육 중인 셈이다. 고객에게 잘 봉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내부에서 커온 직원이며, 그런 직원에게 회사가 잘해줘야 이익도 많아진다는 것이 페덱스의 일관된 생각이다.

    하위직급에겐 훌륭한 직장, 상급자에게는 고달픈 시험장?

    직원 존중의 전통 때문에 페덱스는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힌다. 페덱스는 미국 기업으로선 드물게 무해고 정책을 자랑한다. 업무 평가가 나쁜 직원이라도 냉정하게 내보내지 않는다. 대신 직무향상 계획(Performance Planning)을 통해 회생의 기회를 준다. 상급자는 어떻게 든 하급자를 끌고 가야 한다. 상급자가 리더쉽을 발휘하라는 이야기다.

    매년 한 차례 전직원을 대상으로 회사와 임원, 간부들을 평가한다. 이 조사에서 만약 2년 연속 기준 점수 이하를 받은 임원이나 간부는 스스로 군말 없이 짐을 싸야 한다. 그래서 하위 직급 직원들 중에는 리더십에 따른 책임을 지기 싫어 일부러 간부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대신 이러한 혹독한 리더십 수련을 거치고 페덱스의 임원을 지낸 인재는 리더십에 관한 한 다른 미국 기업에서도 능력을 인정 받기 때문에 스카우트의 표적이 된다

    페덱스의 경영진은 직원을 존중하고 공정하게 대우하여 회사에서 상실감과 슬픔을 느끼지 않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최고 경영자의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경영자는 직원들과 항상 친밀하게 접촉해야 한다고 믿었고 이것이 상하간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로운 현재의 기업문화를 낳게 했다.

    항상 기업들은 ‘고객만족’을 말한다. 어느 기업은 ‘고객만족’을 넘어 ‘고객감동’ ‘고객행복’, 심지어는 우스개 소리로 ‘고객기절’까지도 추구한다고 한다. 미국의 성공한 기업들은 곧 고객들을 만족시키고 감동시키는데 성공한 기업들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보면 항상 비슷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객을 만족 시키기 위해 먼저 직원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직원이 자신의 일터와 업무 그리고 마음 편한 환경에 만족하도록 회사는 성심을 다한다. 행복한 직원들은 고객들을 행복하게 대하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해서 자신의 고객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행동에 옮기게 된다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원리를 믿는 것 같다.

    페덱스는 이러한 측면에서 완벽하게 직원감동에 성공하여 고객감동을 이룬 기업이다. 일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310만개의 화물을 배달하면서도 항상 웃는 페덱스 직원들. 잘못 된 주소로 배달된 화물 하나를 가지고 직접 300km를 운전해가서 고객의 손에 쥐어준 한 페덱스 직원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그 증거다.
     

  • 글로벌 브랜드 ‘샘숭(SAMSUNG)’- 한국의 삼성전자

    한국의 삼성전자 – 글로벌 브랜드 ‘샘숭(SAMSUNG)’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미국 시장에서 삼성은 샘숭(SAMSUNG)으로 불린다. 믿기지 않겠지만 90년대 중반만 해도 많은 미국인들은 그들의 발음대로 샘숭이 “일본의 싸구려 가전제품(?)”인 줄 알고 있었다. 뉴욕 맨하탄의 초대형 전자제품 매장의 고급형 진열대에는500불이 넘는 소니(SONY) 제품들이, 맨 구석 싸구려 코너에는 99불짜리 샘숭(SAMSUNG) 제품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삼성전자의 “Syncmaster”라는 PC 모니터는 북미 지역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삼성 제품은 전반적으로 블루칼라 브랜드 (blue collar brand: 싸구려 브랜드의 의미)의 이미지를 벋어날 수 없었다.

    96년 8월 서울의 신라호텔. 사장단을 비롯한 삼성의 핵심 경영진 6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돌아 온 이건희 회장의 ‘IOC 위원 피선 축하연’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어쩐지 주인공인 이 회장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 회장이 마침내 말문을 열었다.

    “다가올 21세기는 브랜드가 경쟁의 핵심이 되는 소프트 경쟁 시대인데, 사장들이 앉아서 광고 카피나 고치고 있어서야 어디 될 일입니까. 브랜드나 광고는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전문가에게 맡겨 삼성의 이미지를 높일 전략을 짜도록 하세요.” 올림픽을 무대로 한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들은 이 회장은 현장에서 본 삼성의 이미지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어쨌든 삼성의 글로벌 마케팅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97년 9월 그룹차원의 브랜드 전략이 수립됐다. 삼성의 이미지를 말 그대로 C급에서 A급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전략이 마련됐다. 그 동안 삼성전자의 해외 법인들은 국가별로 55개의 서로 다른 광고 대행사를 고용했었는데, 기업이미지 통일을 위해 모든 글로벌 광고를 Foote, Cone & Belding Worldwide라는 한 회사에게 맡기고 무려 4억달러의 광고 캠페인을 진행했다.

    90년대 후반 중국시장에서 삼성 ‘애니콜’이라는 휴대폰 브랜드가 히트를 하고, 고급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서 삼성 휴대폰 브랜드의 자신감은, 고부가가치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게 만들었다.

    미주나 유럽시장에 먼저 신제품을 출시하는 전략을 바꿔 중국 등 개발도상국에도 동시에 출품했다. 그 결과 2001년 한해 애니콜은 전세계 시장에서 3000만대 이상 판매되어 1조원 이상 순익을 기록했다.

    또한 삼성은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을 강화했다. 삼성은 무선통신 파트너로서 98년 일본 나가노(長野) 동계 올림픽,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을 거쳐 오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까지 연이어 공식 후원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스포츠 마케팅 노력으로 최근 ‘애니콜’은 노키아나 모토롤라보다 세계시장에서 더 고급 휴대폰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에는 ‘DigitAll Hope’라는 자선 프로그램을 마련해 인도,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NGO, 교육기관 등에 자선활동 기금을 위한 대규모 펀드를 조성하기도 하는 등 이제는 세계 각지에서 그 지역에 맞는 토착 마케팅을 통해 강자(强者)의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

    최근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사 인터브랜드(Interbrand)는2003년 ‘브랜드 가치(Brand Value)’ 랭킹에서 삼성전자를 25위로 꼽았다. 아쉽게도 98년까지 삼성전자는 세계 100대 브랜드에 포함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새롭게 수립된 브랜드 전략을 지속적으로 실행한 결과 삼성은 2000년 43위, 2001년 42위에 랭크되더니 작년에는 34위로 급상승했다. 현재 세계 25위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약 108억 달러(한화 약 12조4천억원)로 산정된다.

    90년대 중반, 미국 뉴욕의 중심 타임스퀘어에서 반짝이던 삼성의 파란 로고 네온사인은 당시 가난한 유학생인 필자에게 ‘애국심’을 자극하는 향수(鄕愁)였을 뿐이었다. 지금 그 곳을 다시 방문한다면 아마 삼성의 로고는 필자에게 글로벌 시대의 ‘자긍심’으로 다가 올 것 같다.

  • 커피를 갈아 금으로 만드는 기업- 스타벅스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성업하고 있는 세계적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 1987년 하워드 슐츠가 인수한 스타벅스는 당시 전국에 11개 점포와 종업원 100명을 두고 있었다. 16년이 지난 지금 스타벅스는 전세계 30개국 6300개 점포를 자랑한다. 종업원만 7만명이다. 700배 성장한 셈이다. 하워드 슐츠의 커피를 통한 혁신은 어떤 것이었을까? 여러분들도 스타벅스에 들어설 때 마다 커피 향에 섞여 있는 혁신의 향을 음미하길 바란다.

    스타벅스의 성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의 커피 문화를 알아야 한다. 맥스웰 스타일로 통하는 미국의 커피는 한마디로 싸고 부담 없는 음료다. 필자가 유학생활을 하던 90년대 뉴욕 한 동네의 조그마한 도넛가게에서 매일 사먹던 커피의 가격은 75센트. 우리나라돈 1000원가량의 단순한 먹거리였다. 미국인들은 그냥 허름한 가게에서 커피를 아무 생각 없이 사먹는 것이다.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란 하워드 슐츠는 가난했지만 미식축구를 잘해 겨우 대학에 들어간다. 그러나 대학 시절 중반에 미식축구를 그만두고 고학과 학자금 융자로 학교를 졸업한 뒤 제록스사 세일즈맨을 거쳐 스웨덴계 가정용품 회사에서 주방기기 판매로 능력을 인정 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한다.

    미국내 영업을 총괄 관리하던 중 시애틀의 한 소매상에서 커피 끓이는 용구를 다량 구입하는 데 눈길이 끌렸다. 어떤 회사인지 궁금해 알아본 것이 바로 스타벅스였다. 1971년에 시애틀에서 조그만 커피점으로 시작된 이 스타벅스를 하워드 슐츠는 1981년 처음 찾아 갔다. 고급원두커피에 매료된 그는 좋은 직장을 때려 치우고 이 스타벅스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이직한다.

    1983년 우연히 슐츠는 이탈리아의 고급 에스프레소 바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기존의 스타벅스를 고급 스타일의 원두커피 바로 변화시키려 시도했다. 그러나 당연히 기존 경영진들이 그러한 변화를 좋아 할리가 없었다. “무사안일에 빠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스타벅스를 관둔 슐츠는 자기가 꿈꾸던 이태리 스타일 커피전문점 “일 지오르날레”를 연다.

    일 지오르날레에서 슐츠는 정통 이탈리안 커피숍의 느낌을 재현하고자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매장에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틀어 놓았고, 종업원은 나비넥타이를 매도록 하였다. 서서 즐길 수 있는 바(Bar)만 준비되어 있을 뿐, 의자는 없었다. 슐츠는 커피의 향을 해칠 수 있는 무지방 커피를 제공하지 않았다. 메뉴 또한 모두 이탈리아 말로 쓰여져 있었다. 실내장식도 그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이탈리아식으로 꾸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이와 같은 이탈리안 커피숍의 분위기가 시애틀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고객들은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페라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고, 종업원마저 나비넥타이를 불편해했다. 게다가 사람들은 앉아서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의자를 요구했다. 그래서 슐츠는 고객의 니즈에 맞도록 차츰 매장을 개조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음악을 바꾸고, 의자를 갖다 놓았다. 심지어는 무지방 커피까지도 그들의 메뉴에 등장하였다. 유럽식 스타일에 고객만족이라는 미국식 경영방식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비로소 이탈리안 스타일의 미국식 커피숍이 생겨 나게 되었다.

    1987년 슐츠는 스타벅스의 경영진들로부터 스타벅스를 인수하지 않겠냐는 전화를 받게 된다. 슐츠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타벅스의 시애틀 점포들과 원두처리공장, 그리고 상호를 4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곧 그는 자신의 집념이 담긴 ‘일 지오르날레’ 상호를 스타벅스로 개명하여 제2의 창업을 하게 된다.

    슐츠는 이 스타벅스를 통해서 미국인들에게 유럽 스타일의 고급문화를 전하게 되었다. 대중문화에 익숙해 있던 미국 소비자들에게 스타벅스는 세련된 만남의 장소, 고급스러움, 안락함, 대화, 독창적인 커피 음료 등을 제공하는 새로운 커피 문화 그 자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를 슐츠는 ‘스타벅스 경험(Starbuck Experience)’라고 부른다. 그는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판다”고 말한다.물론 스타벅스는 최고 품질의 커피를 만든다. 인공 향을 넣지 않고 프랜차이즈로 운영하지도 않는다. 커피가 쉽게 상하지 않는 최신 포장 기술을 개발해 자신의 고급 원두 커피를 해외로 수출한다.

    그러나 스타벅스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 존중의 철학이다. 어떤 기업경영 가치보다도 `인간`은 그 위에 있다. 처음 슐츠는 종업원들과 회사 발전전략을 논의할 때 `위대한 회사(great company)`를 만들자고 약속했다. 인간 정신을 존중하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게 슐츠와 종업원들이 공유하는 위대한 회사의 의미다. 스타벅스가 어떤 미국 기업들보다 이직률이 낮고 존경 받는 기업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혁신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모든 종업원들에게 스며 들어 있는 스타벅스의 정신이다. 스타벅스는 예스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연공서열도 없다. 휴대용 종이컵이나 스타벅스만의 음악 CD 같은 튀는 아이디어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런 종업원들에게 스타벅스는 `브라보` 상을 준다.

    하워드 슐츠가 75센트짜리 미국식 커피를 3달러짜리 유럽식 커피로 재창조하는 첫번째 혁신에 성공했다면 스타벅스의 직원들은 인간존중, 자선, 사회적 신뢰, 자긍심과 같은 두번째 혁신에 성공했다. 연간 스타벅스에서 팔리는 커피 약 4000억잔과 한달 평균 18번씩 스타벅스를 찾는 전세계의 고객들은 이러한 혁신의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존경을 상징한다. 항상 위대한 회사는 존경스러운 법이다.

  • Best or Different -이탈리아 베네통(Benetton)

    이탈리아 베네통(Benetton)

    최고가 되라 아니면 차별화 (Best or Different)하라!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1955년 이탈리아 시골의 한 스웨터 가게로 시작된 ‘베네통’은 그리 변한 것은 없다. 약간(?)의 변화라면 세계 각국에 8000여 개의 가게들을 통해 옷을 팔게 되었다는 것과 한 시즌에 5000개의 디자인에 280만 종의 옷들을 시장에 내 놓고 있다는 점 뿐이다. 옷보다 이슈를 먼저 파는 베네통의 “최고가 되라 아니면 차별화하라(Best or Different)”전략을 살펴보자.

    거대 글로벌 패션기업 베네통의 출발은 다른 기업에 비해 형편없이 초라하다. 1955년 이탈리아 폰자노 지방의 한 가난한 집. 부친이 돌아가셔 생계가 어려워진 당시 스무 살 장남 루치아노 베네통은 막내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옷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1res Jolie라는 브랜드로 판매된 스웨터는 루치아노의 여동생 줄리아나의 멋진 뜨개질 솜씨와 화려하고 대담한 색상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대담한 색상과 독특한 디자인의 스웨터로 성공한 것을 계기로 1964년에는 이탈리아의 벨루노 지방에 첫 판매점과 1965년 첫 번째 생산공장을 열었다. 그리고 1970년에는 프랑스로부터 시슬리 상표를 인수해 1975년 베네통은 이탈리아에만 200여 개의 판매점을 가진 큰 의류회사가 되었다.

    일단 차별화하자!

    1980년대 초 베네통의 문제는 의류업계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사실 고유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브랜드 고유의 이미지는 글로벌 마케팅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산이다. 베네통은 최고가 되라 아니면 차별화하라(Best or Different)는 전략을 기반으로 당시 세계 최고들과 맞서 철저하게 스스로를 차별화하기로 결심한다.

    1982년 베네통과 패션 사진 작가 올리베이로 토스카니는 베네통의 ‘차별화 전략”을 기반으로 한 베네통만의 독특한 광고를 만들어냈다. 그 유명한 광고 ‘United Colors of Benetton’의 탄생이었다.

    광고를 통한 베네통의 메시지는 “인종과 문화를 넘어선 인류의 화합”이었다. 하지만 이 광고들은 종종 언론에 보도될 만큼 금기의 영역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평가는 물론 여러 나라에서 논쟁을 야기시켰다.

    신부와 수녀의 키스, 탯줄을 자르지 않은 갓 태어난 아기, 지면 가득히 정렬된 콘돔, 전쟁 참전 용사의 묘지, 가족에 둘러싸여 에이즈(AIDS)로 죽어가는 환자의 모습, 발가벗은 임산부 등이 주요 주제였다. 베네통은 표나는 상품광고보다는 단순히 광고 독자에게 판단을 맡기는 베네통만의 다큐식 광고를 개발했다.

    전쟁, 출생, 죽음, 폭력이 의류회사 베네통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물론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왜 베네통은 엄청난 비난을 받으면서 이런 주제들을 자신들의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일까?

    사진작가 토스카니는 “베네통은 가장 적은 예산으로 브랜드를 알리는 회사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베네통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웨터를 생산해냅니다’라는 식의 광고는 이미지로서 충분하지가 않다”고 설명한다. 베네통의 광고는 철저히 ‘차별화’를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그만, 최고가 되었다!

    차별화 된 광고 덕으로 베네통은 세계 120여 개국 8000개 점포에서 연 간 2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패션 그룹이 되었다.

    최근 루치아노 베네통은 60대 후반인 자신이 직접 나체로 나서 “난 여전히 양모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광고를 끝으로 지금까지의 ‘차별화’ 전략을 마감하는 듯 하다. 지난 4월 영입 된 베네통의 신임 CEO 실바노 카사노에 의하면 베네통은 앞으로 튀는 광고를 자제할 예정이란다. 그는 이제 튀는 광고로 시장에서 반감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며 전세계 사람들이 편안하게 공유할 수 있는 광고로 다가서겠다고 한다.

    이제 베네통에게는 차별화(Different)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곧 최고(Best)가 되었다는 의미다. 글로벌 시장에서 아직도 ‘튀는’ 광고와 마케팅으로 최고를 향해 달리고 있는 후발 주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부러운 모습이다. 최고로서 그들의 여유로움과 관대함이 말이다.

  • 일관성을 지키며 변화에 성공한 월마트(Wal 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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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포츈 500 기업들 중 1위,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들 중 2위, 2002년 한해 2천450억 달러(한화 약 294조)의 매출, 종업원수 140만명. 이 것이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에 대한 소개다. 매출액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인 112조5천억원의 2배를 훨씬 넘고 매주 월마트에 들러 쇼핑하는 인구가 전세계 4~5천만명에 이른다니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이들은 어떻게 성공했으며 왜 성공할 수 밖에 없었을까?

    1962년 우리에게는 클린턴 대통령의 고향으로 알려진 미국 아칸소에 샘 월튼이라는 한 40대 잡화상이 할인점을 하나 열었다. 그 이름은 월마트(Wal Mart). 당시에는 이미 K마트, 울코, 타깃 같은 대형 할인점들이 대도시에서 성업 중이었다. 이후 30년이 채 안되어 월마트는 이들 선두 주자들을 밀어내고 세계최대의 유통업체로 뛰어 오른다.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핵심철학은 지킨다

    월마트 1호점에 최초 내걸린 문구는 “우리는 항상 싸게 팝니다(We sell for less, always)”와 “고객의 만족을 보장합니다”였다. 이들 철학은 언제나 가장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물품을 공급한다는 창업자 샘 월튼의 신념이었다.

    이후 월마트는 ‘5년 이내에 아칸소주에서 수익성이 가장 높은 회사가 된다(1965)’ ‘4년 이내에 10억 달러짜리 회사가 된다(1977)’ ‘2000년까지 점포 수를 2배로 늘리고 제곱 피트당 매출액을 60% 증대 시킨다(1990)’ 등과 같은 구체적 비전을 제시해 구성원들의 열정을 이끌어냈다.

    1992년 샘 월튼이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후계를 이은 데이비드 글라스는 모든 부문에서 ‘철저한 원가절감을 통한 최저가 상품 공급’이라는 샘 월튼의 경영철학을 ‘그대로’ 계승해 발전시켰다. 이렇듯 우리는 월마트가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도 그들만의 핵심 철학만은 ‘일관되게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객을 향한 철학 – 고객은 항상 옳다!

    월마트가 가진 독특한 또 하나의 철학은 ‘고객은 항상 옳다(Customer is always right)’는 믿음이다. 샘 월튼은 “항상 고객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하며, 고객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고객은 우리에게 와 물건을 살 것이다”라며 직원들에게 고객제일주의를 강조했다.

    월마트에는 크리에이터로 불리는 독특한 안내 직원들이 있다. 이들은 해당 지역 출신의 아줌마 아저씨들로 구성되어 있고 월마트에 들어오는 고객들에게 미소로 반기며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크리에이터의 존재는 고객들에게 기분 좋은 쇼핑과 점포에 대한 친근감을 제공한다.

    또 월마트는 직원들의 웃옷에 모두 ‘만약 미소 짓지 않으면 1달러를 가져가세요’란 문구가 적인 명찰을 달게 한다. 고객을 만나 미소 짓지 않는 직원에게 고객은 언제든지 1달러를 요구할 수 있다. 이 1달러를 일명 ‘스마일 1달러’라고 부른다. 스마일 1달러는 매장 판촉 직원에서 매니저 까지 예외가 없다.

    이밖에도 월마트는 고객이 10발짝 이내에 있다면 고객의 눈을 응시하고 반기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말을 걸도록 교육 시키는 ‘10 발자국 룰’, 회사에 들어온 요청은 국내외에서 들어온 것을 막론하고 요청 당일 해가 지기 전까지 해결한다는 ‘Sundown Rule’등을 실천하고 있다. 이렇듯 월마트에서는 고객제일주의라는 기본원칙을 지키기 위해 조직의 모든 시스템과 제도들이 유기적으로 연계 운영되고 있다.

    행복하게 일하는 회사 월마트

    구성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하되 최고의 성과를 요구 한다는 게 월마트 샘 월튼의 이념이었다. 최고의 자부심을 가진 종업원이 최고의 고객만족과 효율적 매장운영을 이루어 내는 법이다. 따라서 월마트는 직원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 개선에 힘쓰고, 의료비 지원은 물론 목표 이상의 실적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공정하게 이윤을 분배함으로써 매년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최고 경영자가 직접 커피를 타 마시고, 최고 경영자와 경영진은 4평 남짓한 작고 검소한 사무실을 사용하며, 잦은 현장방문을 통해 구성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킨다. 또한 전 직원이 서로를 ‘고객에게 봉사한다’는 공통 목적을 갖는다는 뜻에서 ‘동료(associate)’라 부른다. 회장을 비롯한 모든 종업원이 월마트 심벌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일하는 평등주의도 재미있다.

    자발적 서비스 정신 고취를 위해 회사측에서는 직원들의 사기진작에도 힘쓴다. 특히 하루 업무 개시 직전에 매장의 전직원이 함께 모여 월마트 구호(Wal Mart Cheers)를 외치는데 이를 통해 직원들은 월마트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 의식 및 자부심을 느끼고 이를 고객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나간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월마트 구호는 샘 월튼이 70년대 한국 방문 당시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체 직원들이 작업전 회사 구호를 외치는 장면을 보고 미국에 건너가 자사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메이드 인 코리아’ 방식이다.

    현재 월마트는 미국내에서만 3,000여개가 넘는 촘촘한 점포망을 구비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멕시코 587개, 영국 256개 등 한국을 포함한 9개 국가에 1,227개 점포를 운영중이다. 샘 월튼은 생전 늘 “한때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고 해서 그것이 계속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은 항상 변화하기 때문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변화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일관된 철학을 기반으로 한 끊임없는 변화 노력은 언제나 보답을 받게 마련이다. 성공적 혁신은 일관성과 변화의 오묘한 칵테일로 비유될 수 있겠다.

  • 롤리타 렘피카: 프랑스 시장을 무너뜨린 한국의 트로이 목마

    글로벌 마케팅의 세계를 가다

    3회: 한국 태평양 롤리타 렘피카 향수

    프랑스 시장을 무너뜨린 한국의 트로이 목마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세계 27위, 53살 짜리 한국의 화장품 회사가 화장품의 나라 프랑스에서 큰 사건을 냈다. 프랑스인이 이끄는 프랑스식 회사를 만들어 프랑스식 향수를 팔아 프랑스 시장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 누구도 유명향수 ‘롤리타 렘피카’를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프랑스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보낸 ‘트로이의 목마’로 보지 않았던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1945년 설립된 화장품 회사 태평양은 1990년 프랑스에 PBS라는 현지법인을 세워 ‘리리코스’라는 기초화장품을 생산했었지만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프랑스에서는 기초화장품보다 향수나 색조화장품이 인기라는 점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태평양은 이 실패의 교훈을 통해 한국 화장품 시장의2-3% 정도인 향수시장이 프랑스에서는 32%나 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고 이 시장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태평양은 야심찬 ‘현지화’ 전략을 세웠다. 프랑스 향수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자본만 제공할 뿐 기획, 디자인, 제조 및 판매를 모두 프랑스 현지인들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1995년 설립된 프랑스 현지회사 PCP(PACIFIC CREATION PARFUMS)에는 한국인 파견직원 2명을 제외한 150명이 모두 현지 채용인들로 채워졌다.

    프랑스의, 프랑스에 의한, 프랑스를 위한 향수

    특히 태평양은 당시 크리스찬 디오르 이사인 카트린 도팡을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영입했다. 그녀는 지난 74년 이브생로랑에 입사해 유니레버, 이브로세 등에서 근무한 화장품 업계의 전설적인 영업통이었다.

    그녀는 소비자들에게 낯선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대신 유명 디자이너와 손잡고 그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을 택했다. 당시 ‘롤리타 렘피카’는 주목 받는 신예 디자이너로 그녀의 작품들은 동화를 연상시키는 순수함과 사로잡힐 듯한 관능미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마침내 1997년 4월 PCP는 유명 디자이너 롤리타 렘피카와 라이센싱 계약을 맺고 ‘Made in Paris’ 향수 ‘롤리타 렘피카’를 선보이게 된다. 향 (Firmenich) 과 용기 디자인 (Alain de Mourgues), 패키지(Autajon) 광고 (Saatchi & Saatchi)등도 모두 롤리타 렘피카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현지 전문가들의 작품이었다.

    샤넬 No.5의 10년이 롤리타 렘피카에게는 2년?

    명품들이 즐비해 새 브랜드가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는 고급 향수 시장 프랑스에서 여성적이고 환상적인 향과 용기 디자인을 내세운 롤리타 렘피카는 출시 8개월 만에 시장 점유율 1%로 프랑스 고급 향수시장10위권에 진입한다.

    200여개 브랜드의 향수가 경쟁하는 프랑스에서 샤넬No. 5의 점유율이 3.6%인 점을 감안하면 롤리타 렘피카의 성공은 기적이었다. 이후 롤리타 렘피카는 샤넬 No.5가 10년을 투자해 얻은 결실을 단 2년 만에 달성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2002년에는 프랑스 시장 시장점유율 2.7%로 샤넬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세계 500개 고급 향수 브랜드 중 9위 브랜드 롤리타 렘피카

    롤리타 렘피카는 지난 수년간 프랑스와 미국의 향수 재단들이 선정하는 최우수 여성 향수, 최우수 남성 향수 및 최우수 용기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또한 유럽 주요국은 물론 미국. 중동. 중남미.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 약 80여 개국에서 세계적 향수 브랜드로 명품 대우를 받고 있다.

    프랑스는 화장품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확보하고 있어 세계적 화장품 회사들이 최고의 인프라를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곧 글로벌 경쟁에서의 성공을 의미하기에 태평양의 글로벌 브랜드 전략은 성공적으로 평가 받는다.

    만약 태평양이 고집 세게 한국적 제품과 브랜드로 프랑스 시장에 계속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성공적 결과를 위해서는 국적도 과도한 자존심도 실리를 위해 과감하게 포기하는 야심찬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생한 교훈을 태평양과 롤리타 렘피카는 제공하고 있다.

  • 산골 종이공장에서 세계 휴대전화 거인으로 – 노키아(Nok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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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휴대전화 시장 1위,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 35% 점유 기업, 유럽 증시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 92년부터 7년간 주가가 291배 뛴 기업, 이 기업이 바로 핀란드의 노키아다. 산림국 핀란드를 일으킨 IT (정보통신) 기업 노키아의 생생한 성공담을 구경하자.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산타 클로스의 고향이라는 북유럽 핀란드는 전 국토의 70%가 삼림이다. 일년 중 반이 겨울인 이 나라가 가진 자원은 아이러니 하게도 울창한 나무들뿐이다. 노키아는 이런 조국의 IT산업을 이끌어 담박에 핀란드를 세계 정보통신 산업의 메카로 만들어 놓았다.

    올해로 138살을 맞는 회사 노키아가 처음부터 통신 관련 사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91년 경제 불황 전까지 노키아는 고무, 케이블, 텔레비전, 컴퓨터, 알루미늄, 펄프 및 종이, 발전, 부동산, 통신을 취급하는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잡동사니 회사였다. 당시 노키아도 그룹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었다.

    80년대 말 노키아는 독일에서 컴퓨터, 컬러 TV로 막대한 손실을 보았고, 당시 사장이 자살할 정도로 어려웠다. 더욱이 소련의 붕괴는 안정적 수출 상품이었던 노키아의 경공업 제품을 창고에 쌓이게 하였고 국내 경기 침체로 90년대 초 적자액은 무려 2억 달러(한화 2500억)에 달했다.

    경쟁력 없는 사업은 버려라!

    이런 위기에서 노키아를 구출해낸 것은 요르마 오릴라(Jorma Ollila) 회장을 비롯한 노키아 이사회의 최고경영자들이었다. 92년 오릴라는 취임과 동시에 업계에서 1위를 할 가능성이 없는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했다. 그는 “장차 죽느냐 사느냐의 승부를 걸 수 있는 분야는 전자통신분야뿐”이라며 휴대전화 하나에만 전념키 위해 8개 계열사를 몽땅 처분했다. 다소 모험적이었지만 당시 경영진은 무선통신시대가 다가올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사실 노키아는 81년부터 휴대전화를 만들기 시작했었다. 핀란드는 산악지대가 많고 인구가 분산되어 있는 휴대전화 시장으로는 최적지였지만 당시 잘 나가던 경공업과 가전제품 사업에 매달린 노키아에게는 부수적 사업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키아는 GSM(유럽 등지에서 통하는 비동기 방식) 휴대전화가 처음 출시되기 9년전인 82년부터 GSM 표준 기술 개발에 착수해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휴대전화를 노키아의 핵심사업으로 결정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핵심역량은 지킨다!

    현재도 노키아의 전체 직원 6만명 중 3분의 1이 연구 개발(R&D)에 종사하고 있다. 제품 주기가 짧은 통신산업에서 성공하려면 ‘신속한 제품개발’과 ‘대량생산을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라 믿기 때문이다.

    또한 지멘스 등 경쟁사가 부품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데 반해 노키아는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만큼 외부에서 사들인다. 노키아의 표어인 커넥팅 피플(connecting people)에는 자신이 가장 잘 하는 핵심 부문을 빼고는 모두 다른 기업에 맡긴다는 뜻이 들어 있다.

    연구활동도 다른 곳이 더 잘 할 것 같으면 그곳에 맡기고, 심지어 경쟁업체와도 같이 연구 활동을 하면서 노키아는 경쟁력을 유지한다. 이러한 노키아의 경쟁력 때문에 2001년 세계 3대 휴대전화 회사인 스웨덴의 에릭슨은 “노키아 등 질 좋고 값싼 제품을 공급하는 경쟁사에 밀려 휴대전화 생산을 완전 중단한다”고 발표할 정도다.

    기업 전략을 사내 모두가 공유한다!

    통신업으로 급격히 사업을 전환하면서도 노키아 직원들은 문화적 이질감을 느끼지 않았다. 노키아는 늘 비전과 전략을 종업원들한테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부터 매년 전세계 간부들이 일반 직원들과 함께 회사의 비전과 전략을 토론하는 “노키아 웨이(Nokia Way)”가 그 방식이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노키아는 가벼운 조직과 신속한 의사결정을 덤으로 얻었다.

    매력적인 조직문화를 만든다!

    노키아는 금전적 인센티브 외에도 직원들에게 젊은 나이에 경력을 쌓고 책임 있는 일을 담당하면서 일을 즐기고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현재의 노키아 경영진은 90년대 초반 매우 젊은 나이에 중책을 맡았던 이들이다.

    노키아는 직원을 해고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다른 회사들은 실수를 한 직원을 내보내지만, 노키아는 그 자리에서 실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그 직원을 함부로 해고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키아는 90년대 초 사업부서를 매각하는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직원들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했다. 소비자가전 부문 등을 매각할 때에도 고용 안정이 계약서에 명시되도록 직원 입장에서 협상했다.

    브랜드가 전부다! (Brand is everything)

    이외에도 전문가들은 노키아의 마케팅과 브랜딩을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노키아는 휴대전화 업체 중 가장 먼저 고객 차별화 전략을 도입하여 각각의 고객에 맞는 제품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했다. 노키아는 성능이 비슷한 제품이 넘쳐 나는 휴대전화 시장에서의 성패는 브랜드에 달려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노키아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이 브랜드 마케팅 시장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2002년 인터브랜드의 글로벌 브랜드 자산가치 평가에서 유럽계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6위를 차지했다.

    많은 기업들 중 노키아는 정말 ‘모범생’ 같은 성공신화를 자랑한다. 어느 한 구석 모난 데가 없이 정확하고 깔끔한 변화와 혁신 사례다. 최근 노키아는 10년 전 자신이 그랬듯이 무선통신분야에 다시 한번 새로운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노리다 한번에 낚아채 듯이 노키아는 오늘도 무선통신을 노린다. 혁신은 그만큼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강한 자는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다.

  • 예쁜 바비(Barbie)에서 여성 바비로의 변신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1959년에 처음 소개된 예쁜 인형의 대명사 바비 (Barbie) 인형은 1999년 탄생 40주년 기념행사를 가지면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 인형을 만드는 회사 마텔(Mattel)은 항상 바비 인형에 쏠려있는 일부 사람들의 부정적 이미지를 신경 쓰여 했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도 끊임없는 바비 신화를 이어가기 위해 마텔은 이러한 바비에 관한 부정적 이미지를 쇄신해야 했다. 그 때 마침 바비 탄생 40주년을 맞게 되었고 마텔은 이 기회를 맞아 기존 바비의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로 다시 포지셔닝하는 PR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먼저 마텔은 500여명의 여성들과 3~11세 연령층의 딸을 가진 엄마들을 대상으로 전화 서베이를 실시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바비에 대한 이미지는 “풍만하다” “운동을 해서 날씬하다” “독립적이다”등과 같이 비교적 긍정적인 이미지였다. 다만 그들은 바비가 이러한 이미지에 더해 “지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다정다감한’ 느낌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자신의 딸들이 하나의 롤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보다 완벽하고 훌륭한 여성상을 바비에게 원했던 것이다.

    또 한가지 마텔이 놀란 것은 바비 브랜드가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자선활동들을 조사대상인 여성들이 거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텔은 언론매체를 대상으로도 별도의 미디어 오딧을 실시했다. 기자들은 바비에 대해 직접적 소비자인 여성들보다 약간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여성의 성적 매력만을 너무 강조하고 있다”, “의존적이고 나약한 여성상의 상징이다” “차갑고 쌀쌀 맞은 느낌이다”등의 의견이 많았다. 그들 또한 기존에 시행중인 바비 브랜드의 자선 및 사회 공헌 활동들에 대해서는 깊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텔은 ‘바비’ PR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여성들의 사회적 성공과 비전의 실현을 지원하고 있는 다양한 조직들도 조사했다. 미국 걸스카웃 협회, 걸스 인코포레이티드 (Girls Incorporated), 걸스 파워(Girls Power)등과 같은 여성 조직들이 바비의 이미지 재 포지셔닝 프로그램에 관심을 나타내는 곳들이었다.

    마텔은 바비 탄생 40주년을 맞아 바비가 ‘소녀들의 꿈을 키워주는 가치를 제공한다’는 이미지를 특별히 부각시키는 야심찬 PR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바비 이미지인 “예쁘기만 한 수동적, 의존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목표지향적이며 지적이고 다정다감한’ 바비상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바비가 제공하는 핵심메시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Be Anything)”로 소녀들에게 미래에 대한 용기를 심어주는 의미였다. 목표공중으로는 여성 전체로 현재 또는 미래에 엄마가 될 모든 여성이 주요 대상이었고 물론 언론 매체들도 포함되었다.

    먼저 마텔은 당시 소녀들에게 “강하고, 현명하며, 용감하라”는 메시지를 제공하면서 활발하게 여성운동을 실행하고 있는 조직인 걸스(Girls. Inc)와 전략적인 제휴를 맺었다. 이 조직과 마텔은 10명의 유명 여성으로 구성된 ‘꿈의 바비 대사(Barbie Ambassadors of Dreams)’들을 조직했다. 이 대사들은 로시 오도넬과 같은 유명 여성 앵커로부터 과학자인 카트리나 가넷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맹렬 여성들이었다.

    1999년 1월 1일 마텔의 CEO인 질 바라드는 1999년 한해를 바비 브랜드 테마의 해로 정했다. 뉴욕 장난감 박람회에서 마텔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Be Anything)”는 바비의 새로운 브랜드 테마를 발표하면서 걸스(Girls. Inc)에게 여성 교육 활동을 위해 사용하라며 150만불을 기부했다. 또한 ‘꿈의 바비 대사들’로 뽑힌 유명 인사들을 발표하여 바비를 소녀들의 미래를 가꾸어 줄 수 있는 가치를 제공하는 인형으로서 포지셔닝했다. 행사의 프레스킷에서 마텔은 바비가 여성의 사회적인 역할을 대변하고 있다는 취지로 당시까지 40년간 바비 인형이 대표 했었던 약 75종의 다양한 직업군들을 보여주었다.

    바비의 실제 탄생일인 3월 9일 마텔은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형 생일 파티를 개최했다. 바비의 이미지를 비즈니스적 성공과 연계 시키는 전략이었다. 마텔은 월스트리트를 하루동안 ‘핑크’ 빛으로 물들였다. 거리 도로와 벽에 분홍색 커튼과 카펫으로 도배를 했던 것이다.

    증시 장의 개장과 폐장을 알리는 벨 데스크에 분홍색 생일 축하 케익을 올려 놓았다. 개장 버튼을 누르기 위해 바비 인형의 창시자인 당시 84세의 루스 핸들러 여사가 단상에 올랐다. 개장 버튼을 누른 후 핸들러 여사는 분홍 케익 위에 켜진 40개의 촛불을 불어 껐다.

    마텔은 뉴욕증권거래소 행사를 마친 후 바로 걸스 (Girls. Inc)와 함께 “파워 브랙퍼스트” 이벤트를 시작했다. 약 30여명의 비즈니스 우먼들을 초청해 아침식사와 함께 이벤트에 참여한 소녀들과 여성들에게 예산 구성 방법, 재무 상식 및 비즈니스 커리어 관리등과 같은 교육을 실시했다.

    이날 오후에는 루스 핸들러 여사가 뉴욕의 초대형 완구 배장인 FAO 슈워츠에서 생일 축하 케익의 촛불을 끄는 행사가 있었다. 바비의 살아있는 어머니로 불리는 핸들러 여사는 약 800여개의 수집용 바비인형에 직접 서명을 해 바비 팬들에게 선물했다.

    마텔은 1999년 일년 내내 걸스(Girls, Inc)와 함께 꿈의 바비 대사들에 대한 언론홍보와 더 나아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실시 해 나갔다. 또한 “일하는 여성 바비’ 인형을 제작 판매하기도 했다.

    마텔은 이러한 일련의 PR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완벽한 실행을 위해 마텔의 모든 임원들을 대상으로 언론훈련을 실행했다. 또한 루스 핸들러 여사를 세계에서 가장 큰 완구 제조사인 마텔을 창시한 인물로 적극 노출 시켜 메시지 전달에 활용했다.

    마텔은 1999년 내낸 여러 여성 단체들과 소녀들의 엄마들로부터 수많은 감사편지를 받았다. 그 내용들은 거의 모두 “바비가 소녀들과 여성들을 위해 보여준 비전에 동감하고 마텔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약 70%의 언론 매체들이 바비 PR 프로그램의 핵심 메시지들을 정확하게 전달했으며, 약 50%의 언론매체들로부터 ‘바비가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로 치하 받았다.

    바비의 이 프로그램은 미국 외에도 총 25개 국가에서 기사화 되었다. The Wall Street Journal, New York Times, USA Today, The Hollywood Reporter 등과 CNN에서도 집중적으로 조명을 받았다. 199년 1년간 약 1700여 개의 바비 관련 기사들이 다양한 매체들에서 게재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하나의 제품을 문화적인 상징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기존의 냉소적인 공중들의 바비에 대한 이미지를 마텔은 공격적인 PR을 통해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 PR은 변화관리 기능이다

    정용민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기업들은 최근 격심해져 가는 경쟁환경과 시장환경에서 대부분 성공하려 애쓰기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리엔지니어링, 다운사이징, 리스트럭쳐링, 아웃소싱 등은 이미 한물간 경영 패션(fad)이 되어 버린 듯하다.

    최근에 국내에서 인기를 끄는 경영 패션이 있다면 전사적자원관리, 6시그마, 지식경영, 시나리오 경영, 윤리경영등일 것이다.

    기업이 항상 경영의 패션을 쫓는 것이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하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왜 기업은 이러한 경영혁신 또는 변화 프로그램은 실패하는가? 중요한 실패요인은 부실한 커뮤니케이션으로 부터 발생한다. 모든 경영혁신의 대상은 인간이다. 비지니스 프로세스 리엔지니어링이라고 해서 “프로세스’에만 변화의 포커스를 맞추는 것은 나무를 보고 산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프로세스를 형성하고 실행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혁신과 변화의 중심은 인간이다.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것은 관계다. 관계는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형성된다. 즉, 목표로 하는 경영혁신 또는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고, 그 대상을 향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가가 가장 큰 성패요인이 된다는 말이 되겠다.

    CEO의 비전과 가치를 사원들이 알지 못하고, 중간관리자가 바로 아래 사원들의 생각과 반응을 제대로 경영진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기업 및 조직 내부 성원 상호간의 오해와 불신 그리고 갈등으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목적성 있는 경영개선과 변화적 노력에 있어서 실패의 쓴맛을 맛본다. 이러한 실패의 주요 원인인 커뮤니케이션상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PR이다.

    PR을 통해서 기업의 경영진은 말단 사원들과 함께 동일한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 PR을 통해 전사원은 동일한 가치를 숭배할 수 있다. PR을 통해 전사원은 자신들이 일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 충성심과 애사심을 고취할 수 있는 것이다.

    해외 선진 기업들의 경우 기업 내부의 일관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혁신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먼저 형성하고 구성원 스스로가 혁신과 변화의 흐름에 적극 동참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변화의 도상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 받는 것은 과연 경영진이 지향하는 비전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성이 사원들에게 골고루 공유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경영진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고 많은 사원들이 스스로 그 방향과는 관계없는 곳으로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이다. PR을 통한 변화관리는 바로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갭을 대폭 줄여주고 가시화 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일단 사원들이 변화의 때를 맞아 경영진이 지향하는 방향성을 감지하고 이해하게 되면 그러한 방향으로 대부분은 정렬(alignment)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것이 PR이 창조할 수 있는 변화의 동력(momentum)이 되는 것이다.

    변화관리에 있어서 “달리는 기차에 올라 탈 것인가 타지 않을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문제다”라는 말이 있다. 이 기차가 어디로 향하는 지를 확실히 알게 되면 사원들 중 그 종착역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죽을 힘을 다해 달려 그 기차에 올라타면 된다. 종착역에 관심이 없는 사원은? 타지 않으면 된다. 이 것이 PR을 통한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이다. 같은 방향성을 가진 사람들만을 태우고 달리는 열차는 만드는 힘,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힘이고 PR의 소득이다.

    한참 미국에서 기업들의 대대적 구조조정이 가해지던 90년대, 기업 PR담당자들의 최대 고민은 바로 기업에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사원들과 남아있는 사원들 두 부류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였다. 기업에서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내쫓기게 된 사람들은 내일 부터 집의 대출금과 각종 보험, 그리고 차량유지비, 자녀들의 학비 및 생활비로 고통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들은 기업으로 향한 분노와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해당 기업은 물론 사회전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반대로 살아 남아서 기업내에서 생존자(Survivor)라고 불리는 잔류 사원들은 하루아침에 옆자리 동료들이 쫓겨 나가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가치와 기업으로 향한 신뢰에 대해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기업 구조조정 및 변화의 목적이라면 생산성과 효율성의 증대로 대변될 수 있을 텐데, 실상 구조조정 및 변화 프로그램들을 실시한 기업들의 3분이 2가 떠난 자들과 남은 자들 양쪽의 부정적인 결과로 무참히 실패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이에 기업 PR담당자들은 “어떻게 하면 떠난자들과 남은자들에게 있어서 우리 기업이 원했던 모든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떠난자들에 대한 PR적인 치료는 기업 변화 이전에 중장기적으로 해당기업의 비전과 가치를 심어주는 교육 및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을 실행하여 기업 사명을 깊이 인식하게 하고, 더 나아가 기업으로 향한 애사심과 충성심을 고취하여, 영원한 ‘식구’로서 그들을 인정하는 기업의 배려와 관심을 표현해 주는데 그 핵심이 있다.

    그 예로 기업이 떠나는 사원들에 대해 한없는 감사와 선배들로서 현재의 우리 기업을 만든 업적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표시하고, 더 나아가 그들이 다른 분야에서 지난날과 같았던 업적들을 다시 한번 발휘하기 위한 기회를 제공 또는 알선 해 주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이러한 PR활동을 진행하는 사례다.

    남은자, 즉 서바이버(survivor)들의 경우에는 PR을 통해서 “왜 우리가 남게 되었는가?” “기업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앞으로 기업은 우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 줄 것인가?” “기업이 지향하는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보답은 무엇인가?”에 대한 뚜렷하고 확실한 대안을 제시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모든 복잡하고 중요한 실행들을 누가 직접 행해나가는가? 선진 기업들의 사례를 볼 때 바로 기업의 PR담당자들이다. 따라서 PR은 변화관리의 핵심 기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

    PR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지금까지 PR의 기능에 대해 자세히 알아 보았다. 여기서 언급하고 분류한 기능 외에도 수 많은 PR의 기능들이 존재한다. 서두에서 예를 든 것과 마찬가지로 PR은 스위스 칼과 같은 여러 기능과 다양성을 지녔다.

    문제는 PR을 활용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그 주체가 100%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적으로 초우량 기업들로 추앙 받고 있는 기업들의 대부분은 PR의 기능들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반대로 비우량 기업들의 경우 극히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PR기능들만을 겨우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PR기능 자체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기업들은 그 앞날을 예측할 수 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R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성공을 원하는 모든 기업이나 조직은 필히 실행해야 하는 전략적인 활동이다. 그 선택은 기업의 경영주와 사원들 전부에게 달렸다. 바꾸어 말하면 성공과 실패는 모두 자신들의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무척 간단하지 않은가?

  • PR은 경영 기능이다

    정용민(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PR이 마케팅인가? PR이 영업인가? PR이 교육인가? PR이 고객서비스인가? 모두 아니다, 또 모두 맞다. PR은 때로는 마케팅 활동을 지원한다. 영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환경 또한 제공한다. PR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대상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한다. 고객들에게도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가가려고 한다. 이 거이 모두 다 기업 및 조직을 위해서다.

    PR의 목적은 한마디로 ‘성공적인 기업 및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성공적인 기업 및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 학자들에 의해 다양하게 성공적인 기업 및 조직의 의미가 정의되고는 하지만 PR이 지향하는 성공적인 기업 및 조직은 “좋은 제품 또는 서비스를 통해 시장 및 사회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기업 및 조직으로서, 시장 및 사회에서 이에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기업 및 조직”으로 정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R이 마케팅을 지원하는 이유는 우리의 좋은 제품 또는 서비스에 관해 목표공중과 ‘올바로’ 커뮤니케이션 하기위한 것이다. 우리의 제품이 ‘은(銀)’일 때 고객들이 그 제품을 ‘은(銀)’으로 이해하고 구입한 후 만족스럽게 하기 위한 것이 마케팅을 지원하는 PR의 목표다. 우리회사의 ‘은(銀)’을 고객들이 ‘동(銅)’으로 생각해서 구입하지 않는 것은 제대로 PR이 마케팅을 지원하지 않은 증거다. 반대로 우리회사의 ‘은(銀)’을 ‘금(金)이나 다이어몬드’로 고객들이 이해하고 구입하게 만드는 것은 PR이 할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고객의 입장에서 판단할 때 진정으로 우리회사의 것이 좋은 제품 및 서비스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전제라는 것이다.

    PR이 영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우리 좋은 제품 또는 서비스가 다른 경쟁사 또는 경쟁조직의 그것과 어떻게 다르고 어떤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떠한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나 세일즈 토크(sales talk)를 개발해서 메시지화하고 유요하게 전달할 수 있는 가를 PR과 영업부문은 함께 상의해 나가야 한다. 물론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주제들은 제 3자적인 입장에서 사실적이고 명확한 것들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PR이 교육을 지원하는 것 또한 온전히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서다. 교육이라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사원들과, 고객들과, 공중들과 함께 균형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다. 함께 의미와 목표를 공유하고 큰일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커뮤니케이션의 힘을 PR이 생산해 낸다. 물론 이 지원 활동에도 전제가 있다. 모든 교육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의 주제가 주체와 객체간 상생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PR이 고객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은 더욱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위해서다. 더 나아가 우리 기업 및 조직에게 이상적인 사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고객들의 불만을 적극적인 자세로 듣고 해결하려는 조정자의 역할을 하는 고객 서비스 부문을 위해 고객과 자사간의 균형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실행하는 것이 PR이다. 자사에 대한 안티사이트를 적절하게 대응 관리하는 것 또한 PR의 일이다. 쌍방향적인 고객 서비스 (CS)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해당 기업이 PR마인드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고객 서비스에 PR의 쌍방향성을 가미하면 더욱 훌륭한 제품 및 서비스를 위해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 일 수 있게 된다.

    이 밖에도 PR은 기업의 여러 활동 분야들을 지원하지만, 한편으로는 각 분야들의 중심 기능에 가깝다. 쌀의 눈과 같다고 할까. 이렇듯 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주는 PR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곧 ‘경영’이다. 성공적 기업 및 조직을 만들기 위한 전략적인 활동. 이것이 PR과 경영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PR인은 작은 CEO다

    기업 및 조직 내에서 PR담당자들은 정보를 관리한다. 정보는 곧 기업 및 조직 내에서 힘의 상징이다. 일부 조직에서 홍보담당자나 대변인에게 적절한 정보를 제공 또는 공유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기업 및 조직 자신에게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경영자가 아는 정보는 PR인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의 전대통령 빌 클린턴 시절에 공보 비서관(press secretary)로 유명한 마이크 맥커리 (Mike McCurry)는 “PR인(대변인)은 마치 정부 내부에서 공중을 위한 정보를 취재하는 기자와 같다. 공중에게 전달하기 위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가지는 것이 PR인 (대변인)의 역할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청와대 대변인의 비교 사례)
    송경희씨는 2003년 2월 10일 청와대 대변인에 내정된 뒤 가진 첫 기자회견 때부터 ‘뉴스메이커’였다. 당시 송 대변인은 ‘대통령(당선자)의 국정철학’을 묻는 질문에 “당선자를 만난 적이 없어 다음에 말하겠다”고 답해 기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노 대통령 당선자는 송 대변인에게 “나에게 호감을 갖고 지지했다면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대답했느냐”며 유감의 뜻을 전했다. 이후 송 대변인은 취임 전까지 각종 회의나 행사에 참석하고 대통령의 저서를 읽는 등 ‘노무현 익히기’에 주력했다. 그의 ‘학습’은 대통령의 취임 후까지 계속됐다. (OHMYNEWS, 2003.03.23)

    PR인은 기업 및 조직 내에서 그 기업 및 조직만의 사명, 비전, 가치등에 관해서는 가장 정통한 소스이자 정예의 역할 모델이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그 기업 및 조직의 정체성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람은 당연히 “CEO”다. 그러나 이러한 가시성(Visibility)을 개발, 확보하는 것은 그 기업 및 조직의 PR인이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PR인들은 자신 기업의 사명, 비전, 가치를 이해하게 되고 체득하게 되어 마침내 작은 CEO의 모습을 가지게 된다. PR인 스스로가 외적으로는 기업 및 조직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내적으로는 역할모델로서 기능을 다하게 된다는 뜻이다.

    PR인들은 기업 및 조직의 피를 돌게 한다. 자신의 책상에 가만히 앉아서 하루를 보내는 PR인은 좋은 PR인 일찌는 몰라도 훌륭한 PR인이 되긴 힘들다. PR인들은 항상 걸어 다녀야 한다. 각 부서만의 생각들과 활동들을 이해하고 자신이 나서서 부서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중재자 또는 조정자의 역할이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이다. 마치 GE의 전회장 잭 웰치가 사무실 안을 걸어 다니 듯이 PR인들도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쉴새 없이 걸어야 한다.

    CCO. 기업의 관계 자산을 책임지는 자

    PR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고위직책은 CCO(Chief Executive Officer)다. 우리나라말로 옮기면 ‘최고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임원들의 직책명을 한번 살펴보자. COO (Chief Operating Officer), 즉 최고 업무 책임자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업무 전반을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CFO(Chief Financial Officer), 최고 재무 책임자다. 기업의 재무 자산 전반을 관리 책임진다. CIO(Chief Information Officer), 최고 정보 책임자다. 기업의 정보자산을 관리 책임진다. CMO(Chief Marketing Officer)는 어떤가. 최고 마케팅 책임자다. 기업의 마케팅 자산을 관리하고 책임진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CCO(Chief Executive Officer)는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자산 즉 관계를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직책이란 의미가 되겠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자산 (communication asset)이라면 무엇이 있을까? 기업의 명성과 같이 기업 주변의 중요한 관계공중(Stakeholder)들과의 관계(relationship)자체가 자산이다.

    거미가 거미줄을 만드는 모습을 보자. 한 두줄 만을 얼기설기 역어 놓고 거미줄 치기를 마치지 않는다. 만약 한두 줄로 만들어진 거미줄이 있다면, 그렇게 성긴 거미줄에 어떤 곤충이 걸려들 까. 거미줄은 최소한 수십 가닥 이상이 서로서로 엮여서 하나의 망(Network)을 만들어 전체로서 견고한 거미줄을 이룬다. 그래야 망의 형이 흩뜨러지지 않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거미줄 한 부분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거미는 재빠르게 찢어진 양쪽 부분을 촘촘하게 다시 연결해 최초의 모양을 유지 관리한다.

    기업의 관계자산도 마찬가지다. 일부 언론매체만의 관계 하나가 기업의 생존과 성공에 전반적으로 이바지 할 수는 없다. 기업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이해 공중들과의 견고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어떤 관계의 부분이 흩뜨러지면 PR인들은 즉각 관심을 가지고 관계 개선에 힘써야 한다. 이렇게 거미줄 같은 기업과 공중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바로 CCO인 것이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는 “기업이 명성을 쌓는 데는 50년이 걸리지만, 그 명성을 잃는 데는 채 5분도 필요하지 않다”라고 했다. 얼마나 CCO의 일이 어렵고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표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