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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관리에서 책임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 글은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용어 사전」에 실린 글입니다. 원문 보기

    위기관리에서 말하는 책임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맡은 일을 해내야 하는 수행책임(responsibility), 그 결과에 대해 답하고 감당해야 하는 결과책임(accountability), 그리고 법이 묻는 법적 책임(liability)이 각각 다르게 작동합니다. 세 가지는 같은 사람에게 함께 오지 않으며, 하나를 이행했다고 나머지가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위기 대응에서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은 대개 이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책임은 한 종류가 아닙니다

    영어에는 우리말 「책임」에 해당하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그중 위기관리에서 반드시 나누어야 하는 것이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입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책임으로 옮겨지지만 실제로 가리키는 대상은 다릅니다.

    수행책임(responsibility)은 맡은 일을 해내야 하는 의무입니다. 누가 그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안전 점검을 맡은 담당자, 품질을 검수하는 부서, 협력사를 관리하는 라인이 각각 나누어 지고 있는 책임입니다. 아래로 위임할 수 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눌 수 있습니다.

    결과책임(accountability)은 그 결과에 대해 이해관계자에게 답하고 그 평가를 감당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누가 이 사태에 답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나눌 수 없고 아래로 넘길 수도 없으며, 직접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성립합니다.

    여기에 법적 책임(liability)이 더해집니다. 법원과 수사기관이 판단하는 배상과 처벌의 문제입니다.

    두 책임을 구분해서 보는 시각은 조직 이론과 거버넌스 연구에서 오래 다루어져 왔습니다. 영국의 행정학자 리처드 멀건(Richard Mulgan)은 accountability를 다른 사람에게 답하고 그 판단을 받아야 하는 외부적 관계로 규정하면서, 스스로 판단해 처리하는 내부적 의무인 responsibility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구분수행책임결과책임법적 책임
    묻는 것누가 그 일을 했는가누가 이 사태에 답하는가누가 법을 어겼는가
    작동 시점위기 발생 이전위기 발생 이후사후 판단
    나눌 수 있는가나눌 수 있음나눌 수 없음법이 정함
    판단하는 주체회사 내부이해관계자와 공중법원과 수사기관
    표. 위기관리에서 구분해야 하는 세 가지 책임 — 스트래티지샐러드

    일은 아래로, 답변은 위로

    두 책임은 방향이 서로 반대입니다.

    수행책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갑니다. 조직이 일을 나누어 맡기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결과책임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갑니다. 현장에서 발생한 일이라도 최종적으로 답해야 할 사람은 위에 있습니다.

    일은 여럿이 나누어도, 답변은 한 사람이 합니다. 그 한 사람이 어느 자리에 있는가는 사안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달라집니다.

    위기 대응이 실패하는 지점은 두 방향이 같아지는 순간입니다. 일도 아래로 내려보내고 답변까지 아래로 내려보내는 경우입니다. 사고가 나면 현장 책임자를 앞에 세우고 담당 임원을 문책해 사안을 종결하려는 대응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흔히 꼬리 자르기라고 부르는 것의 구조입니다.

    답변을 아래로 내리면 다음 위기를 모르게 됩니다

    꼬리 자르기의 문제는 도의적인 데 그치지 않습니다. 조직의 작동 방식을 망가뜨립니다.

    회사가 위기를 미리 아는 경로는 현장에서 올라오는 보고입니다. 이상 징후를 처음 보는 사람은 언제나 현장에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났을 때 답변의 부담이 현장으로 내려간 전례가 생기면, 다음번에 이상 징후를 발견한 직원은 그것을 올리지 않습니다. 올리는 순간 자신이 그 사안의 답변자가 된다는 것을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조직 심리학자 에이미 에드먼드슨(Amy Edmondson)이 병원 조직을 관찰하면서 확인한 것도 같은 현상입니다. 오류 보고 건수가 많은 팀이 실제로 오류가 많은 팀이 아니라, 보고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믿는 팀이었습니다. 보고가 적은 조직은 안전한 조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조직입니다.

    결과책임을 아래로 내리면 수행책임의 기반까지 무너집니다. 보고가 끊긴 조직은 위기를 예방할 수 없고, 경영진의 판단은 틀린 사실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위기관리의 전제에서 위험 신호가 불이익 없이 위로 올라오는 경로를 확인 항목으로 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실무자를 지키는 일이 다음 위기를 아는 방법입니다.

    법적으로 이겨도 책임은 남습니다

    세 가지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직접 관여하지도 않은 사안에서 결과책임이 발생하는 경우는 흔합니다. 협력사 사업장에서 일어난 중대재해, 가맹점에서 발생한 위생 사고, 인수하기 전에 벌어진 피인수기업의 부정행위가 그렇습니다. 법적으로는 방어할 수 있고 인과적으로도 연결되지 않지만, 공중은 그 회사에 답을 요구합니다.

    이때 위법 사항이 없다는 해명을 앞세우면 상황은 대개 나빠집니다. 법적 책임에 대한 답을 결과책임에 대한 답으로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공중이 물은 것은 처벌받을 일인가가 아니라 이 회사가 이 일을 어떻게 다루었는가입니다.

    법적 방어에 성공한 기업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은 대응이 부실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답해야 할 질문과 답한 내용이 서로 달랐기 때문에 생깁니다.

    세 가지를 따로 다루어야 합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분리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누가 그 일을 했는가는 내부 조사가 밝힐 문제입니다. 무엇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는 법무가 판단할 문제입니다. 누가 이 사태에 답할 것인가는 커뮤니케이션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세 가지를 같은 자리에서 함께 처리하면 두 방향의 사고가 발생합니다. 내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법적 책임을 인정해 버리거나, 반대로 법적 방어 논리가 대외 메시지를 지배해 답해야 할 질문에 답하지 못하게 됩니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자주 발생하는 실패는 후자 쪽입니다.

    책임을 정확히 이행하려면 먼저 책임을 정확히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중 국내 기업이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이 답하는 책임입니다.

    근거로 삼은 표준과 자료
    상법 제382조 제2항 · 제382조의3
    민법 제681조 · 제683조
    Richard Mulgan, 「Accountability」: An Ever-Expanding Concept?, Public Administration (2000) — responsibility와 accountability의 구분
    Amy C. Edmondson, Learning from Mistakes Is Easier Said Than Done, Journal of Applied Behavioral Science (1996) — 오류 보고와 심리적 안전에 관한 병원 조직 연구
    위 개념들을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두 책임의 방향으로 정리하고 세 가지 책임의 분리 운용으로 구성한 부분은 스트래티지샐러드의 정리입니다.

  • 말실수 좀 했다고 큰 문제가 되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경쟁사 공장 사고 위기관리를 면밀히 분석해 보고 있는데요. 당시 대표나 공장장이 기자회견을 하면서 말 실수를 여러 번 하더라고요. 저희는 깜짝 놀랐는데요. 이후 그 말실수를 지적하는 부정기사 몇 개 외에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실수하지 말라는 조언은 약간 과장된 거 아닐까요?

    날카롭게 보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놀라운 것은 경쟁사의 말실수가 아니라, 그 장면을 보시고 대표님이 내리신 결론입니다. “말실수해도 별 문제 없더라”는 결론 말입니다.

    잠깐 사업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대표님은 경쟁사 제품에 결함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왜 그런 결함이 생겼는지 뜯어보고, 우리 제품에는 그런 문제가 없도록 개선하시지요. 그렇게 남의 약점을 우리의 강점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경쟁력입니다. 옛말로 타산지석입니다. 남의 산에 있는 거친 돌로 내 옥을 간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유독 위기관리에서는 이 타산지석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사의 사고 대응을 그렇게 면밀히 지켜보시고도, 대표님이 얻으신 결론은 “말실수, 별거 아니네”였습니다. 만약 제품이었다면 어떠셨을까요. 경쟁사의 불량품이 어쩌다 리콜을 피해 갔다고 해서, “저 정도 불량은 괜찮구나”라고 결론 내리진 않으셨을 겁니다.

    말실수도 똑같습니다. 그 경쟁사가 넘어간 것은 말실수가 무해해서가 아닙니다. 결함 있는 제품이 운 좋게 리콜을 피한 것과 같습니다. 사고 자체가 워낙 커서 말실수가 묻혔을 수도, 더 큰 뉴스가 관심을 가져갔을 수도, 회사의 평판 체력이 버텨 줬을 수도 있습니다. 조건이 조금만 달랐다면, 인명 피해가 조금만 더 무거웠다면, 그 한마디는 유가족의 마음에, 수사기관의 심증에, 법정의 판단에 그대로 새겨졌을 겁니다. 결함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잠시 가려졌을 뿐이지요.

    그 사례에서 얻어야 할 진짜 교훈은 정반대입니다. “말실수해도 괜찮다”가 아니라 “우리는 절대 저렇게 하지 말자”입니다. 경쟁사가 카메라 앞에서 흔들렸다는 것 자체가, 사전 준비와 대변인 훈련이 부족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을 보고 준비하고 훈련하면 됩니다. 그것이 위기관리의 경쟁력입니다.

    왜 우리는 유독 위기관리에서만 이 좋은 교본을 덮어 둘까요. 제품 경쟁은 매출과 점유율로 당장 성적표가 나오니 다들 열심히 배웁니다. 그러나 위기관리 역량은 평시에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위기가 터지지 않으면 아무도 그 준비를 알아주지 않지요. 게다가 남의 위기는 ‘우리 일이 아니다’라며 밀어 두기 쉽고, 위기관리를 꾸준한 경쟁력이 아니라 한 번의 사고 대응쯤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제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관리에서도 합니다. 경쟁사의 그 말실수는, 대표님께 공짜로 배달된 기출문제입니다. 그 문제집을 덮지 마시고, 우리 대변인의 훈련 교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남의 실수에서 배우는 회사와, 그것을 남의 일로 흘려보내는 회사. 다음 위기 앞에서 두 회사의 격차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 기업 위기관리에서 맷집이란?

    [Blog Exclusive]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권투를 아는 사람이라면 ‘맷집’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겉보기에 우람하고 화려한 펀치를 뽐내는 선수가 한 방에 무너지는가 하면, 크게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온갖 타격을 견디며 끝까지 링 위에 서 있는 선수가 있다. 후자를 두고 맷집이 좋다고 말한다. 기업 위기관리에서 이 맷집은 위기를 맞은 기업에게 가장 절실하면서도 가장 저평가된 역량이다.

    위기관리 시 기업의 맷집이란 이런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다 했음에도 불운하게 위기를 맞은 기업이, 그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부화뇌동 없이 견뎌내는 조직적 내구력. 위기를 사전에 회피하는 예방역량과는 달리 맷집은 위기가 이미 도래한 국면, 즉 펀치가 이미 날아든 순간에 조직이 무너지지 않고 기능을 유지하며 그 국면을 통과해 내는 힘이다.

    일부 기업은 맷집을 오해한다. 맷집을 그저 버티기, 침묵하고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로 여긴다. 맷집은 방관이 아니다.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능동적으로 대응하되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힘이다.

    맷집을 덩치나 명성과 혼동하는 오해도 있다. 규모가 크고 브랜드가 강하면 어떤 위기도 견딜 수 있으리라 믿지만, 겉보기에 강한 상대일수록 한 방에 무너지는 경우가 오히려 잦다.

    맷집이 타고나는 것이라는 오해도 흔하다. 맷집은 기질이 아니라 위기 이전에 길러 두는 역량이다. 평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해 온 기업만이 위기 국면에서 그 힘을 꺼내 쓸 수 있다.

    맷집은 서구의 조직 이론과 철학, 그리고 스포츠 과학이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하는 개념이다. 좀 더 들여다 보자.

    무너지지 않는 조직의 과학

    미시간대학의 칼 웨익(Karl Weick)과 캐슬린 서트클리프(Kathleen Sutcliffe)는 원자력 발전소, 항공모함, 응급의료처럼 사소한 오류가 곧 대형 재난으로 이어지는 고위험 환경의 조직을 연구해 왔다. 이들이 정립한 ‘고신뢰조직(High Reliability Organization)’ 이론은 조직이 예상치 못한 사건 앞에서 어떻게 붕괴하지 않는가를 다룬다.

    이 이론의 핵심에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있다. 웨익과 서트클리프는 회복탄력성을 세 가지로 나눈다. 역경 속에서도 긴장을 흡수하고 기능을 보존하는 능력, 충격적 사건으로부터 정상으로 복귀하는 능력, 이전 사건으로부터 학습하고 성장하는 능력이다. 이들은 회복탄력성을 단순히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그 순간에 견뎌내는 힘까지 포함한다.

    최고의 고신뢰조직은 오류가 닥친 뒤에야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소에 지식과 기술적 숙련, 자원에 대한 장악력을 미리 확장해 둠으로써 불가피한 위기에 대비한다.

    이렇듯 맷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이전에 길러지는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기업이 곧 자신의 맷집을 미리 단련하는 기업이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 평정

    맷집이 조직의 물리적 내구력만을 뜻한다면 절반의 개념에 그친다. 나머지 절반은 마음에 있다.

    고대 스토아 철학에는 ’평정(euthymia)’이라는 개념이 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불안에 시달리던 친구 세레누스를 위해 쓴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De Tranquillitate Animi)』에서 이 그리스어 euthymia를 라틴어 ’트란퀼리타스(tranquillitas)’로 옮기며, 그리스인들이 ‘영혼의 안녕’이라 부르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안정성을 논했다.

    세네카가 말한 평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적인 부동성이 아니라, 운명의 부침에 흔들리지 않는 평형된 마음이다. 세네카는 이를 폭풍이 막 지나간 뒤에도 잔물결이 이는 바다에 비유했다. 완전한 무풍이 아니라, 큰 파도에 뒤집히지 않는 안정된 항해가 평정의 본질이다. 위기의 급류 속에서 속도를 늦추되 방향만은 잃지 않는 태도, 이른바 아다지오(adagio)와 전략적 조향(strategic steering)이 바로 이것이다.

    이 평정을 실천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또 다른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통제의 이분법’이다.

    에픽테토스는 우리 힘 안에 있는 것과 밖에 있는 것을 구분했다. 판단과 반응, 선택은 힘 안에 있으나,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 자체는 힘 밖에 있다는 것이다. 위기관리에 대입하면 명료해진다. 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다는 것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소임을 다했다는 뜻이며, 불운하게 맞은 위기는 통제 불가능한 외부의 몫이다.

    맷집이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소임을 완수한 것을 전제로, 통제 불가능한 외부 충격 앞에서 부화뇌동을 다스리는 역량이다. 스토아 철학에서 외부적인 것이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에 대한 태도와 대응은 여전히 중요하다.

    잘 맞는 것도 기술이다

    격투기가 말하는 맷집의 구조는 앞의 두 개념들과 그대로 맞물린다.

    권투에서 펀치를 견디는 힘은 단일한 능력이 아니다.

    첫째는 목 근력이다. 스포츠 생체역학 연구는 목의 강성이 충격 시 머리 가속도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 중 하나임을 보여준다. 목 근육이 충격흡수기 역할을 하여 타격이 유발하는 머리의 회전과 가속을 버텨내는 것이다. 목 근육이 충격을 흡수해 뇌로의 전달을 막듯, 조직의 회복탄력성은 국소적 오류가 시스템 전체의 실패로 번지는 것을 막는다. 목 근력이 훈련으로 길러진다는 사실은 맷집이 배양 가능한 역량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해 준다.

    둘째는 기술이다. 최고의 수비형 복서들은 펀치를 완전히 피할 수 없을 때 머리를 펀치와 같은 방향으로 흘려보내 충격을 줄인다. 이른바 ‘롤링 위드 더 펀치’다. 이 기술의 요체는 예측이다. 언제 맞을지를 미리 읽고 그 방향으로 몸을 흘린다. 통제할 수 없는 펀치의 도래를 정면으로 맞받지 않고, 통제 가능한 자신의 반응을 조정해 충격을 무해화하는 것이다. 위기를 정면으로 받아치다 자멸하는 기업과, 흘려보내며 국면을 넘기는 기업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셋째는 평정이다. 격투기 전문가들은 진정한 맷집이 턱 강도만이 아니라 타격을 흡수하면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정신적 강인함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목이 강해도 정신이 흔들리면 무너진다. 조직 역량이 충분해도 내부의 부화뇌동이 통제되지 않으면 위기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유리턱은 왜 무너지는가?

    미국의 위기관리 전문가 에릭 데젠홀(Eric Dezenhall)이 쓴 책의 제목이 『글래스 조(Glass Jaw)』다. ‘글래스 조’, 곧 유리턱은 권투에서 겉보기에 강해 보이나 펀치 한 방을 견디지 못하는 선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데젠홀은 오늘날 논란의 표적이 된 기업과 개인이 이 유리턱과 같다고 본다. 그는 스캔들의 세계에서는 약자가 강하고 강자가 약하며, 온라인 여론 동원이 무력한 자를 강력하게 만든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시대에 논란은 순식간에 퍼져 한때 강력했던 조직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날아든 펀치를 그대로 맞받아 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데젠홀이 왜 강자가 유리턱이 되어 무너지는가를 진단했다면, 남는 과제는 어떻게 맷집을 길러 무너지지 않을 것인가를 처방하는 일이다. 회복탄력성과 평정과 흘리기, 이 세 가지가 그 처방이 된다. 펀치를 맞받아 치지 말라는 데젠홀의 경고도 결국 충격을 흘려보내라는 맷집의 논리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맷집은 위기관리 성공의 비결

    기업의 맷집이란, 통제 가능한 영역에서 마땅한 소임을 적시에 완수한 기업이, 통제 불가능한 외부 충격으로 위기를 맞았을 때, 평정을 유지한 채 부화뇌동을 다스리며, 조직 기능을 보존하고 국면을 통과해 학습으로 전환하는 힘이다.

    위기를 완벽히 회피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러나 마땅한 소임을 다하고 흔들림 없이 견뎌내는 기업은 있다. 그 기업의 성공 비결이 곧 맷집이다.

  • 3. 위기란 ‘언제’에 관한 것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느 기업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큰 위기 없이 잘 왔습니다. 앞으로도 큰 이상이 없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회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위기를 ‘발생 여부’의 문제로 보는 경영진은, 위기가 실제로 닥쳤을 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은 유형이다. 위기는 ‘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올 것인가’의 문제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위기를 대하는 경영진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죽음을 피할 수 없듯, 위기도 피할 수 없다

    세네카는 기원후 64년, 로마 대화재가 리옹을 집어삼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편지를 썼다. “도시 하나가 하룻밤에 사라졌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놀라는가. 불, 홍수, 전쟁, 질병. 이것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가 외면했을 뿐이다.”

    세네카가 말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더 직접적으로 말한다. “어떤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그 일이 닥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겪어보아야 한다.”

    이것이 스토아 철학자들이 말하는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Praemeditatio Malorum)이다. 직역하면 ‘나쁜 일들에 대한 사전 숙고’. 현대적 언어로는 ‘부정적 시각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 매일 아침 이 훈련을 실천했다. ‘명상록’ 전반에 걸쳐 그는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어떤 인간을 만나게 될지를, 어떤 실패와 좌절이 기다리는지를 먼저 떠올렸다. 그리고 나서 하루를 시작했다.

    이 훈련의 목적은 비관론이 아니다. 패배주의적 낙담은 더더욱 아니다. 최악을 미리 직면함으로써, 실제 위기 앞에서 이성을 잃지 않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렇게만 잘 하면 위기는 없다”는 착각

    기업 경영진에게는 세 가지 위기관에 대한 착각이 공통적으로 목격된다.

    첫 번째는 “이렇게만 잘 가면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관리 착각이다. 규정을 지키고, 내부 감사를 하고, 컴플라이언스를 강화하면 위기를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그런 노력이 위기 발생 확률을 낮추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제로(0)로 만들지는 못한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없었으니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경험 착각이다. 과거의 평온함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논리는, 통계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위기는 대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취약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세 번째는 “위기는 문제 있는 회사에게 생기는 것”이라는 타자화 착각이다. 이 착각은 가장 위험하다. 위기를 ‘우리 밖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내부 준비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네카라면 이 세 가지 착각 모두에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네가 그것을 예상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그것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악을 직면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의 시작

    프레메디타티오 말로룸을 기업 위기관리에 적용하면 실천적 질문은 하나로 압축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수를 써도 반드시 막아야 할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경영진이 불편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시나리오, 핵심 인물의 돌발적 일탈, 협력사의 연쇄 부도, 내부 고발과 미디어의 동시 공세, 규제기관의 갑작스러운 조사. 이런 시나리오를 회의실에서 꺼내 놓는 것 자체를 불길하게 여기는 경영진이 많다. 하지만 정확히 그 불편함을 회피하는 순간, 준비는 멈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훈련을 ‘사전에 상처를 입어두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미 마음속에서 그 상황을 한 번 겪었다면, 실제로 닥쳤을 때 공황 상태 없이 대응할 수 있다. 이것이 스토아적 위기관리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위기관리는 예언이 아니라 준비의 문제

    혹자는 물을 수 있다. 최악을 미리 상상하는 것이 실제로 준비에 도움이 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실제 위기 현장에서 수없이 확인되었다.

    위기 대응 속도와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그 순간의 판단력’이 아니다. ‘그 이전에 얼마나 그 상황을 생각해 두었는가’다. 위기 시뮬레이션을 정기적으로 실시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차이는,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자는 논의의 출발점이 ‘이미 생각해 둔 것’이고, 후자는 출발점 자체를 그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세네카는 루킬리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일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잠들어라. 그러면 그것들이 닥쳤을 때, 너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CEO에게 위기관리란 결국 이것이다. 위기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올 것을 알고 준비하는 것. 위기는 ‘언제’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언제’를 앞서 살아보는 훈련이 곧 가장 강력한 위기 대비책이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피플워치에 연재한 [정용민의 CEO 탐구생활] 칼럼입니다. 원문: 피플워치

  • 소통은 평시에?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문제가 발생해 요 며칠간 엄청나게 바쁩니다. 계속 해명문을 내고, 각종 자료를 뿌리고, 이해관계자들과도 다각도로 소통하고 있는데요. 제대로 소통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부 부서에서는 소통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네요.”

    컨설턴트의 답변

    아주 중요한 주제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은 이슈나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소통이 문제의 부정적 영향을 관리하고 해결로 이끄는 효과적인 도구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소통이 이루어지는 시점입니다. 소통이 문제 해결에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시점은, 그 문제가 발생하기 이전입니다. 적절한 사전 소통은 문제가 문제로 불거지기 전에 이를 미리 해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평소에 충분한 소통 없이 문제가 터진 뒤에 이루어지는 사후 소통은 기대만큼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이야기 입니다.

    흔히 말하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처럼, 때늦은 소통은 이미 발생한 문제를 그 이전 상태로 되돌리거나 없애는 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소통은 문제 발생 이전까지의 예방적 효과를 지닙니다. 문제가 발생한 이후의 소통은 가능한 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데미지 컨트롤’의 수단으로만 유효합니다.

    해명, 사과, 개선책, 재발방지대책, 보상에 관한 소통들은 모두 그 목적이 데미지 컨트롤에 있습니다. 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통이라기 보다는 문제가 재앙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소통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혼동을 겪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소통하고 있는데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마치 엄청난 물을 퍼붓고 있는데도 불이 쉽게 꺼지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하고 이상한 느낌이지요.

    하지만 사후 소통의 역할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불이 주변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있습니다. 주변을 충분히 적셔 놓으면 불길이 옮겨붙거나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비유를 문제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시점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불씨가 생기기 전에 집 안팎을 충분히 적셔 놓는다면 어떨까요? 설령 불씨가 생기더라도 폭발적으로 번지거나 커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전 소통의 효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 문제 발생 후 소통을 지속하고 계신 것 자체는 좋습니다. 다만 그 소통의 목적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운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전 소통과 사후 소통은 그 성격과 목적이 다릅니다. 빨리 이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시고, 현재 상황의 목적에 맞게 소통을 잘 관리해 나가시길 권해 드립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고질병처럼 관리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이번 논란에 대해 저희도 할 말이 많은데요, 저희만 문제이거나 이상한 회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른 회사 그리고 경쟁사도 저희와 비슷한 상황이지 더 낫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내부에서는 운이 나빴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 이슈나 위기 요소가 없는 회사가 존재하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맞습니다. 기업의 규모나 유형, 역사, 시장 등 많은 변수가 있지만, 그래도 어떤 회사이든 자사만의 부정 이슈와 위기요소들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중년들이 정기 건강진단을 받으면, 아무 이상 없이 깨끗한 검진 결과가 나오는 분이 아주 드문 것처럼, 대부분 기업도 마찬가지 사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차이가 있다면, 그 검진 결과가 생명에 큰 지장을 주는 것이냐 여부일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신속하게 치료나 수술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겠지요. 그 다음 차이라면, 그것이 일과성의 문제인가, 아니면 고질적 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일과성이라면 간단한 약물이나 시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요.

    반면 고질적 문제라면, 지속적으로 의사와 환자는 문제 상태를 트레킹 해 가면서 관리와 치료를 이어 나갈 것입니다. 대부분 기업 이슈나 위기 요소들은 이런 고질적 형태로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유형들이 많습니다. 고질적 관리, 이 부분에서 기업간 관리 수준의 차이가 발생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사람에 비유하자면, 고질적으로 고혈압이 있으신 분의 경우, 다양한 식이요법과 운동을 약물치료와 병행하면서 혈압을 정상수준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이슈나 위기 요소가 발견되었다면, 그에 대해 전사적 관심을 투여하고 실제 문제로 비화되지 않도록 모니터링 하고, 예방, 개선, 완화, 방지 작업을 진행하게 되겠지요.

    그런 기업의 관리 활동이 지속적으로만 이어진다면, 해당 문제는 큰 이슈나 위기의 모습으로 일거에 폭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질적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도 그와 유사하게 자신과 외부의 관리를 통해 심각한 건강 질환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업이 자사에게 어떤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과 분석이 전혀 없는 경우 발생합니다. 정기적이거나 심도 있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과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항상 조마조마하게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꼴이지요.

    일부는 건강검진을 통해 문제가 진단되거나 예견되었는데도, 특별한 관리활동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혈압이나 당뇨 증상이 발견되었는데도, 치료약 섭취나 운동은 커녕 술 담배에 폭식과 당분 섭취를 줄이지 않는 환자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질문에서 타사나 경쟁사도 똑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 유사 이슈와 위기 요소들을 품고 있는 각 사가 어떤 꾸준한 관리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서로 다름이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사가 다른 회사 보다 한발자국만 더 나아가 꾸준히 관리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아무 문제없는 기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그것들을 제대로 관리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이 있을 뿐이지요.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병은 소문을 내라 던데?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회사 사건으로 상당히 시끄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든 이 이슈를 관리해 보기 위해 대응을 전담해 줄 대행사를 선정하려고 합니다. 일단 롱리스트를 뽑아서 쇼트리스트를 추렸고요. 경쟁 비딩 방식으로 하나의 대행사를 선정하려고 하는데요. 전문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부정이슈가 이미 발발하여 떠들썩 한 가운데, 관리를 대행할 대행사를 공개 비딩을 거쳐 선정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단 기업 내부에서 그런 사무 행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 상황은 중대한 부정이슈 상황은 일단 아닌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집이 불에 타고 있는데, 소방수 역할을 할 사람들을 뽑는다는 공고를 내는 셈이니까요.

    그럼에도 그런 절차를 밟는다면, 대부분은 이미 상당부분 이슈 진척이 되어 버린 경우일 것입니다. 물론 이슈발생부터 현재까지의 대응활동이 내부 평가상 그리 이상적이지 않았다는 판단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즉, 이미 절반 이상 잿더미가 돼 버린 불타는 집을 두고, 사람을 모집한다는 것은 화재 대응 보다는 이후 잿더미를 치우거나, 새로운 집을 건축하기 위한 역할을 원하는 것이 되겠지요.

    일부 기업은 이슈관리를 위해 대행사를 선정할 때, 경쟁 비딩 보다는 인적 네트워크에 의한 비밀 위임을 합니다. 경쟁 비딩 과정에서 부정이슈 관련 정보가 불필요하게 오픈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지요.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요. 그래서 대부분은 전 과정에서 비밀준수를 통한 수면하 위임 진행을 주로 합니다. 이 정도 업무는 상대적으로 신속히 끝낼 수 있어서 시간 제약을 많이 받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슈가 발생한 시점에 대행사를 선정하는 행위는 일단 적절한 대응 타이밍은 놓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전문가 그룹을 조인 시켰다 해도, 해당 이슈에 관련한 내외부 상황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물리적 시간이 소모됩니다. 급한 작은 불은 함께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전반적으로 큰 불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대행사 품질에 대한 원인 보다는, 현실적 제약이 주된 원인입니다. 어떤 기업과 대행사도 그런 제약을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 이슈가 발발하고 나서 알려지는 대행사 선정 시도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급해서 인력의 지원을 보강하는 데 의미를 둔다면 모르겠습니다. 불을 끄는 일손이 모자라 더 여러 사람과 양동이를 준비하는 것은 좋은 시도입니다.

    하지만, 더 많은 인력과 양동이를 준비해서, 어디부터 불을 어떻게 끌 것인지 미처 결정되지 않았다면, 인력과 양동이 보강의 의미는 반감됩니다. 새로 강화된 인력이 불이 난 집을 살피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기존 불을 끄고 있던 집 가족과의 협력에 문제가 있거나, 집주인으로부터 제대로 된 지시사항을 전달받지 못해 양동이에 물만 채우고 있거나 한다면 그 대응 결과는 뻔한 것이 되겠지요. 그래서 미국 카우보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카우보이는 달리는 말에 올라타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큰 의미지요.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위기를 관리하면 어떻게 되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전문가들은 종종 위기관리를 시작할 때에는 그 목적과 목표를 정확하게 세우라는 조언을 하는데요. 쉽게 이야기하면 이번 위기관리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성취할 것인지를 정하라는 의미 같습니다. 위기를 관리하면서 위기관리 주체는 보통 어떤 결과를 기대해야 하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아주 중요한 주제에 대한 질문을 주셨습니다. 위기관리를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한 내용인데요. 현장에서 접하다 보면 많은 기업이 당면한 위기를 관리하면서 내심 위기 발생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기를 기대한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매출 저조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고 회사가 비판을 받는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러한 경우, 해당 기업은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주가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주주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다시 얻기를 원합니다.

    자사가 제조 판매한 제품에 유해물질이 검출되어 사회적 논란이 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당 회사는 어떻게든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해당 제품이 다시 시장에서 선택받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소비자나 관계 기관의 비판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상 상황으로의 복귀는 사실 위기관리의 목적이나 결과에 대한 적절한 기대가 될 수 없습니다. 될 가능성이 희박하거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불가능한 것을 바라며 위기관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보다는, 보다 현실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위기관리와 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최악의 상황을 최대한 방지 및 관리하는 것’입니다. 일단 발생한 상황을 이전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당장은 불가능합니다. 불타서 재가 된 공장을 반짝거리는 이전 상태로 단박에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불가능한 기대보다는 이번 화재로 인해 예상되는 최악의 이후 상황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관련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거나, 발생하더라도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나은 위기관리가 되겠습니다.

    그러한 노력을 한다고 해도 ‘사라져버린 공장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위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관리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위기는 일단 발생하면 원래 상태로 복귀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특성을 가집니다. 일부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기회는 경쟁사나 주변 이해관계자들이 취할 뿐입니다. 위기를 맞은 기업은 정확하게 위기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의지가 생깁니다.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는 것이 위기관리와 그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입니다. 이미 발생한 위기 상황을 한정하여 관리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상황들을 중립적 또는 일부 긍정적인 상황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더욱 좋습니다. 눈 높이를 정확하게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해당 위기관리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여론의 법정에서 이긴다면?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회사 관련한 이슈가 발생되면, 무조건 여론의 법정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경험해 보니 여론을 우리편으로 만드는 데 실패해버리면 여러가지 더 큰 문제들이 생기더군요. 이슈발생 초기에 여론전을 펼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여론의 법정에서 이겨야 실제 법정에서도 승률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맞는 경우가 있기는 합니다. 법조계분들은 사실 그런 주장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 기 보다는 그런 주장 자체가 사법체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으로 싫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주장에 따라 이슈에 관련된 기업 중 일부는 초기부터 강력하게 여론전을 이끌기도 합니다. 신속하게 입장을 발표하고, 여러 관련 사실들을 언론에 제공하고, 온라인 등에서 상당한 주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를 기반으로 자사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여론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여론의 법정 접근은 회사가 당면 이슈와 관련하여 전혀 책임이 없거나, 그 책임의 수준이 매우 경미한 경우에 시도할 수 있는 접근입니다. 일반 법정에서 같이 결백성(not guilty)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실제 현장에서 이슈 관련 기업이나 조직 중 그와 같은 완전한 ‘결백성’을 지닌 곳은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업이나 조직이 누가 봐도 결백하다면 일단 이슈화가 되지 않습니다. 일부 이슈화 되었다고 해도 실제 법정의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더 흔치 않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도 여론전을 통해 초기 이슈관리를 하는 기업이나 조직들은 결백성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유죄기업인 경우가 많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유죄 또는 일부 유죄의 부분을 최대한 숨기고, 강력한 커뮤케이션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아 실제 법정에서의 출구 전략을 희망하는 것이지요. 만약 그렇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여론의 법정 접근 방식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만에 하나 여론의 법정에서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고 해도, 실제 법정에서 사실관계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해당 기업이나 조직에 대한 여론의 신뢰는 완전 붕괴될 것입니다. 해당 이슈도 관리가 힘든 상황에서 이슈관리의 기반인 신뢰 자산이 함께 붕괴되는 결과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슈관리가 성공할 수 없게 되는 최악의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버린 셈입니다.

    일부 기업은 그런 경우 진실한 사과와 배상 대책, 재발방지책을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여론의 동정과 이해를 이끌어 내려는 전략을 실행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라면 일반 법정에서의 커뮤니케이션과 일관성을 유지하는 한 이슈관리 관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법정과 전혀 다른 여론만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여론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잠깐 그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실제 법정으로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여론전이라고 해도 다양한 내부 점검과 분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쉽게 노이즈나 버즈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대부분 실패하게 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왜 우리의 위기관리를 쇼라고 할까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는 이번 위기관리를 진정성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여러 메시지도 전달하고, 다양하게 VIP가 나서서 각종 활동을 이어 나가면서 위기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희 위기관리를 쇼 한다, 퍼포먼스 한다며 비판을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 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라고 봅니다. 한마디로 위기 시 위기관리 주체가 어떻게 진정성을 표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요. 이런 고민은 직접적으로 위기관리 결과와 이어지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위기관리 주체의 활동을 보며 ‘쇼다’ ‘퍼포먼스’다 하고 평할 때에는 몇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가 그 활동에 강력한 메시지가 같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입니다. 강력한 메시지는 모든 활동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맥락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메시지는 매우 큰 힘을 발휘합니다. 만약 정성 드려 진행한 위기관리 활동이 제대로 비춰지지 않는다면, 그와 함께 전달했던 메시지를 재검토하셔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강력해 보이는 메시지는 있는데, 그와 연관된 활동이 없다면 그것도 사실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말뿐이다,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이 나오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행동과 메시지는 항상 함께 움직여야 하는 샴 쌍둥이 같은 성질을 지닙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부족하거나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맥락과 상황에 맞는 적절한 메시지란 그럼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그리 어려운 개념이나 전략적 인사이트가 필요한 대상은 아닙니다.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의 인식과 의견, 감정을 그대로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 방향성이 드러납니다. 현재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위기관리 주체의 위기관리 의도 속에 녹여 내야 합니다.

    그들이 이번 위기로 인해 많이 슬퍼한다면 위기관리 주체는 최대한 함께 슬퍼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메시지도 그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 메시지를 보다 가시화하고 강화 시킬 수 있는 활동을 고안해 실행해야 합니다. 그들이 슬퍼하는 수위에 메시지와 활동을 맞추고, 그 수위를 압도하여 실행하게 되면 보다 나은 결과를 얻게 됩니다.

    단순하게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겠다, 진정성을 나타내야 하겠다, 무언가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겠다,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하겠다는 식으로 위기관기 주체의 일방적 생각이 기반이 된 활동에서는 제대로 된 메시지도 전달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그들은 위기관리 주체의 활동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 주체의 생각이나 의지가 아닙니다. 위기를 둘러싸고 있는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의 인식과 감정이 중심입니다. 그들에게 공감 받고 싶다면, 위기관리 주체 스스로 자기만의 생각과 의도를 우선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 방향에 위기관리 주체의 위기관리 의도를 녹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쇼나 퍼포먼스로 위기관리가 추락해 버릴 뿐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