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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퍼트 머독의 “We Are Sorry” : 사과문의 전형+전략의 샐러드

    루퍼트 머독의 “We Are Sorry” : 사과문의 전형+전략의 샐러드

    루퍼트 머독이 지난 주말 전면 광고를 게재하면서 도청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제목은 “We Are Sorry”

    사과 광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살펴보자.

    도입부

    • 핵심 메시지를 포함하는 부분이다. 핵심 메시지는 ‘We Are Sorry’
    • 포지션을 밝히는 부분이다. 즉, Fully Guilty. 스스로가 무엇을 어떻게 잘 못했는지 서술하고 있다.

    “We are sorry. The News of the World was in the business of holding others to account. It failed when it came to itself.”

    본문(I)

    • 핵심 메시지를 다시 반복 반복 강조했다. ‘We are sorry’ ‘We are deeply sorry’
    • 이해관계자의 감정과 피해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공감한다.
    • 마지막 부분에 스리슬쩍 ‘빨리 대응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언급하며 후회’하고 있다 ==> 민감한 부분.
      이 문장을 어디에 위치하느냐 고민 했을 것이다. 결국 연결 측면에서 이해관계자와의 공감 말미에 위치시켜 아주 부드럽다.

    “We are sorry for the serious wrongdoing that occurred. We are deeply sorry for the hurt suffered by the individuals affected. We regret not acting faster to sort things out.”

    본문(II)

    • 여기에서 갑자기 ‘I(루퍼트 머독)’이 등장한다. 그룹 오너로서 본 Wrongdoing과의 거리두기를 노리고, 이 Wrongdoing에 대한 해결 주체로서 등장하는 방식을 택했다.
    •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그룹의 저널리즘 원칙(철학)을 함께 연결 언급함으로써 루퍼트 머독과 저널리즘 원칙(철학)과의 연관성을 강조한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위기관리 주체와 위기관리의 기본 원칙(철학)을 언급하는 것은 핵심 중의 핵심. 많은 기업들이 상황을 설명하는데 집중할 뿐 원칙은 피상적으로 언급하는 것과 다르다.

    “I realise that simply apologising is not enough. Our business was founded on the idea that a free and open press should be a positive force in society. We need to live up to this.”

    마무리

    • 해결책을 제시하는 말미 부분이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요소들 중에 하나.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다시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활동(실행)을 할 것인가? 이 죄를 뉘우친다면 이해관계자들에게 어떤 사과의 행위를 할 것인가? 아주 어렵지만 빠지면 안되는 부분이다.

    “In the coming days, as we take further concrete steps to resolve these issues and make amends for the damage they have caused, you will hear more from us. Sincerely, Rupert Murdoch.”

    결론적으로 분석해 보면:

    • Full Guilty인정 후 반복적 사과
    • 피해 입은 이해관계자들과의 공감에 민감한 타이밍 이슈 버무리기
    • 위기관리 주체로서 루퍼트 머독의 등장과 그의 저널리즘 비즈니스 원칙 연결 강조
    • 그에 상응한 해결책 제시에 대한 약속

    하나 더 흥미로운 것은…

    그러면 왜 처음부터 ‘I am sorry’가 아니었느냐 하는 것. 그러나 전체적인 문장 흐름을 보면 먼저 We를 내세우고 해결사로서 I를 등장 시키는 것이 더욱 극적이라는 분석.

    마지막 사인(signature) 또한 루퍼트 머독으로 끝내면서 해결 주체로서의 포지션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는 부분도 주목

    이 한 장의 사과문에는 CEO, Board members, 변호사들, 홍보담당자들(spin doctors), 기술적 작가들(Technical Writers), 관련 광고 전문가들의 땀이 베어 있다. 해외 기업들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그렇지만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작품(masterpiece)이다. 이 부분이 그들에게 부러운 부분이다.

  • 위기관리, 저울질 해 대응하라

    기업에게 위기가 발생했다. 상황분석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에 대한 전략적 대응책을 마련하는 순간이 왔다. 이 단계에서 많은 기업들은 상당한 시간을 소모하면서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하는 훈수들이 난무한다. CEO나 오너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중구난방의 토론만으로도 날이 샌다. 과연 대응책에 있어서 어떤 것을 기준점으로 의사결정 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해외사례들을 분석해 보자. 왜 서양 기업의 CEO는 직접 나서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자신의 난처한 메시지가 담긴 동영상을 유투브에 공개하면서 사과하며 머리를 숙일까? 왜 이런 방식의 대응이 이제는 많은 기업에서 아주 기본적 사과방식으로 굳어졌을까?

    소비자들이 원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그렇게 하기 원하며, 주주들이 그렇게 사과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 여기기 때문이다. NGO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최소한의 대응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정부가 고개를 끄덕여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바를 기업과 그 기업의 CEO는 그냥 따르는 것이다.

    서양 기업은 위해 관련 제품 위기 시 왜 전량 리콜 도는 대규모의 풀아웃을 감행(!)할까? 표면적으로는 기업의 철학과 가치관을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 이전 이해관계자(stakeholder)들로부터의 기본적 압력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런 하이프로파일 대응이 없다면 소비자들의 대규모 집단소송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도 없이 많고 강한 NGO들과 엄격한 정부에게 예상을 뛰어 넘는 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의 대부분을 쓰레기통에 넣는 그 비용을 아끼려다가는 바닥 없이 추락하는 주가에 대한 주주들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책임하다는 언론으로부터의 지적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전 여러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의 뜻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따라야만 하는 천심(天心)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그들은 왜 평소에 위기를 준비하며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할까? 왜 이런 고단한 시스템적인 준비상태를 유지하다 위기발생시 신속하게 개입해 체계적 대응을 실행할까?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그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놓치며 침묵하다가는 더 큰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대비 없이 지냈다가는 위기발생시 경영진이 무능하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경쟁사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 시스템 없이 지내는 걸 경영자들 스스로 못 견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부 이해관계자들로부터도 아주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서양기업들은 왜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을 스스로 통제하려 할까? 왜 그들은 문장 하나 하나와 단어 하나 하나 그리고 표현 방식 한 줄에 고민하면서 토론하고 전략적 조언들을 받아 정리할까? 왜 그들은 함부로 말하는 것을 경계하고, 애드립을 통제하려 애쓸까? 왜 모든 조직 구성원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위기 시 내부를 극도로 통제할까?

    이해관계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언론이 황당해하며 취재를 강화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NGO와 정부가 당황스러워 하면서 그 메시지의 취지에 의문을 갖지 않게 하려 하는 것이다. 소비자들과 일부 피해자들이 성 내며 울부짖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경쟁사나 다른 업체들의 경영자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면서 비웃음 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주주들과 직원들이 스스로 창피해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겠다 소리지르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자. 왜 우리는 그런 결정에 주저하는가? 우선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식이 서양 기업들과는 많이 다르다. 기업이 언론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미 지난 이야기다. 국내의 일부 대기업들은 그냥 성가신 존재들로 언론을 간주하기 시작한지 오래다. 기업들이 두려워하는 NGO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가난한 불평가 집단으로 없어져야 할 사회악이라 정의하진 않는가?

    소비자들이나 피해자들도 그렇게 중요도와 영향력적 측면에서 높은 이해관계수준을 보여주진 못한다. 이들 중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또는 ‘언론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만 일부 신경 쓸 뿐 그들에 대한 기본적 두려움은 그렇게 크지 않아 보인다. 정부는 어떤가? 최근 외국기업들과 일부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관련 규제기관들과 보이지 않는 갈등과 물밑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예전의 규제기관과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기업은 비즈니스를 하는 조직이다. 이득이 되는가 해가 되는가에 대해서는 동물적 분석과 대응이 가능한 곳이다. 이들에게 우리 이해관계자들은 어떤 의미인가 한번 돌아보자. 그들이 분명 기업 조직 자체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 위치와 수준인가 하는 부분이 핵심이다.

    기업은 위기 시 대응 방식 결정에 있어 정확한 저울 하나를 가지고 있다. ‘CEO가 사과를 해야 한다’하는 한쪽편의 추와 ‘CEO가 사과 할 필요는 없다’라는 한쪽 편 추가 그 무게를 겨루는 저울이다. CEO가 나서 사과해 상쇄시킬 수 있는 이해관계자의 부정적 반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CEO가 얼굴을 내밀 필요는 당연히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전량 리콜도 마찬가지다.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중 하지 않는 것이 당연히 유리하니 그게 전략적이다. 이해관계자들이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전량 리콜 운운은 과잉대응 아닌가 하는 공감대다. 기업이 위기 시 빨리 대응하지 않아도 이해관계자들 스스로 ‘다 그렇지 뭐’하는 인식이 있으니 평소의 시스템적 준비는 낯설다. 위기 시 말조심을 하지 않아도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흘려 보내는 현실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별반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거다.

    기업의 위기관리 수준 그리고 그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은 이해관계자들의 수준과 품질에 대한 확실한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한 게 아닌가 한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현 기업들은 스스로 위기관리를 아주 영악하게 잘하고 있는 셈이다.

  • 소리치는 노조와 침묵하는 회사 @소셜미디어

    정용민 /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컨설턴트

    한국 노조와 노조원들은 이미 소셜미디어를 이해하고 있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론을 알고 있는 듯 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프로그램들을 통합적으로 운영해 자신들이 뜻하는 목적을 이루는데 큰 자산으로 활용하고 있어 보인다.

    지금까지 노조가 활용 가능했던 미디어들 (즉, 벽보, 현수막, 리플렛, 가두 투쟁 등)이 가졌던 확산의 한계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너지고 이제는 노조원을 넘어 일반공중에게도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된 거다. 이는 분명히 노조에게 엄청난 커뮤니케이션의 힘을 부여했다.

    이미 이런 노조의 새로운 투쟁방식은 여러 케이스에서 현실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전을 보자. 현재 피인수 기업의 노조는 10년 전과는 분명 다른 인수반대 활동을 펼치고 있다. M&A시장에서도 노조관련 이슈에 있어 소셜미디어가 아주 강력한 변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자유롭고 활발한 노조의 인수 반대 투쟁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소셜미디어상에서 인수의향사나 그 이해관계사들이 할 수 있는 대응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일부에서는 노조를 대상으로 하는 법적 소송 등을 시도하지만, 이는 소셜미디어 시대 이전에도 존재했었던 회사측의 녹슨 칼일 뿐이다. 여론은 계속 악화되고, 정부의 부담과 노조의 목소리는 커져만 간다.

    기업은 침묵한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다 하소연한다. 분명한 것은 언제까지 계속 침묵할 것인가 하는 이슈다. 소셜미디어상 전개되는 노조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기업은 정보의 균형을 추구하기보다는 영원한 침묵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노조와의 관계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해당 기업이 침묵하는 상황은 주변 규제감독기관인 정부측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 하는 특성이 있다. 실제 노사관계에 있어 소셜미디어상에서 ‘노(勞)’는 존재하지만 ‘사(社)’가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불균형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노조측의 커뮤니케이션 타겟은 일반공중이 되고 있고, 이는 해당 기업 이슈가 국민 여론으로 형성 확산되는 상황이 목격되고 있다. 당연히 해당 노사이슈에 있어 제3자인 일반공중들이 여론을 형성하게 되고, 이는 해당 이슈와 관련된 정부기관에 압력으로 작용하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과 금융감독원, 청와대 등등이 여론의 타겟이 되는 것이다. 노조 관계에 있어 대화당사자인 사(社)측이 소셜미디어에서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그 동력이 주변 이해관계자 그룹에게 번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소셜미디어상의 뜨겁게 달구었던 홍익대학교 환경미화원 노조 케이스와 한진중공업 노사분규 케이스를 살펴보자. 앞의 홍익대학교는 소셜미디어상에서 환경미화원노조를 지지하는 소셜미디어 유저들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 소셜미디어상에서 동영상, 트위터, 웹툰, 패러디, 오프라인 지원 투쟁까지 환경미화원측과 지지그룹측의 어느 한가지 이슈 마케팅 활동에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침묵했다. 이슈화 이후 일반 공중들로부터 이와 관련한 커뮤니케이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이해당사자인 홍익대학교는 적절하거나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공급의 질이나 양에 있어 효과적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좀더 현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역부족이었다.

    해당 이슈에 있어 어떤 측이 옳고 그르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장(Venue)에서 과연 이해관계간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노력들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다. 침묵이 과연 기업(社)측의 유일한 전략이어야만 하는지를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한진중공업 이슈는 어떤가? 마치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면 한진중공업 노사분규에 있어서 한진중공업은 존재하지 않는 기업처럼 보인다. 소셜미디어상의 대화들을 분석해 보면 부산의 그 현장에는 노조와 노조지지자들 그리고 경찰만이 존재할 뿐이다. 노조를 지지하는 측은 ‘희망버스’라는 오프라인 이슈 마케팅 활동까지 이르는 가장 숙성된 투쟁 단계에 올라있는 데 비해, 사측은 지속적으로 로우 프로파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당연히 그 분노의 동력은 한진중공업 입구를 막고 있는 경찰에게 향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답답한 경찰 측에서 대신 소셜미디어 대화에 참여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이해관계자에서 이해당사자가 되어 버렸다. 기업 노사분규 케이스에 있어 경찰의 소셜미디어 대화 참여는 반대로 그 적절성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 대화의 주제와 메시지에 있어 시위대 측의 정확하지 않은 주장을 반박하는 메시지가 전략적인지, 그 시위에 가담하지 않고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을 타겟으로 하는 메시지가 전략적인지 한번 논의해 보아야 하겠다. 분명한 것은 소셜미디어상 모든 메시지는 경찰측에서 공식적으로 릴리즈를 결정한 전략적 메시지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지방경찰청 트윗에서 ‘색깔론’이나 ‘음모론’을 제기하는 메시지를 보게 되는데 이는 이슈를 더욱 더 확산 강화시키는 데 기여할 뿐, 경찰 측에게 합당한 전략적 메시지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기업의 침묵과 실패. 정부의 부담과 개입, 노조의 상처 많은 승리…이 자연스러운 연결의 고리가 과연 우리 모두에게 이상적인 것인지도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 기업이 자신들의 침묵이 완전하게 전략적인 침묵이라 주장하고 싶다면, 침묵
    이외에 스스로와 정부에게로 향한 부담을 덜어내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이끌 수 있는 다른 활동이나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무조건 침묵이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소셜미디어를 이해하고, 전략적으로 이를 활용해 대응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대화’ 방법론에 고민을 집중해야 한다.

    경찰을 포함한 정부는 앞으로 아주 빈번하게 발생할 이런 기업의 침묵상황을 염두에 둔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해관계자이기는 하지만, 스스로 이해당사자를 자처하는 소셜미디어상 개입은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경찰의 문제뿐이 아닌 정부 전반에 걸친 부담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크다. 지금과 같이 일부 경찰 개인의 사적 개입이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한 비전략적 개입은 극히 경계해야 할 만한 일이다.

    노조의 경우에도 투쟁의 목적과 성취하고자 하는 결과는 확보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사회적 부담에 대한 배려가 있었으면 한다. 스스로 소셜미디어라는 강력한 투쟁의 도구를 잘 활용하고 있다 해서, 이를 과용하는 것은 사회 전반을 위해서도 바람 직 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소셜미디어는 기본적으로 대화의 도구라는 생각을 버리지 말고, 침묵에서 깨어나는 사측과의 ‘대화’에 좀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화와 소통의 이상적 환경을 꿈꾼다. 기업은 침묵에서 깨어났으면 하고, 정부는 무언가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이해관계자로 남았으면 하고, 노조는 좀더 대화를 이끌었으면 한다. 그래야 많은 국민들이 불필요한 소셜미디어 스트레스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 위기관리, 당장 소셜라이즈(socialize)하라

    이야기 하나. 한밤중 노인이 길을 가다 한 소년을 발견했다. 그 소년은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는 듯 보였다. 노인이 물었다. “무엇을 찾고 있는 거냐?” 소년이 답했다. “동전을 떨어뜨렸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없네요. 여기 어딘가 있을 텐데…” 노인이 함께 동전을 찾아주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 곳에서 동전을 떨어뜨린 거구나?” 소년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니요. 저기 길 건너편에서 동전을 떨어드렸어요.” 노인은 길 건너편을 바라보면서 소년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 근데 왜 저기에서 동전을 찾지 않고, 여기에서 찾고 있어?” 소년이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저쪽은 가로등이 없어 어둡잖아요.”

    기업 위기관리 컨설팅을 하면서 종종 떠오르는 이야기다. 최근 우리 기업들을 위협하는 위기들은 많은 부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상에서 성장하고, 확산되고,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 사실에 대해 대부분 공감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기업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해서는 상당부분 주저한다.

    일부 기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고객층은 소셜미디어를 하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소셜미디어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맞다. 마케팅이나 영업, 프로모션적인 측면으로서는 옳다. 고객들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 진행하는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상황이나 현실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리 회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갑자기 여러 소셜미디어 공간에 생성되고 존재하게 된다. 이들에 대해 회사는 어쩔 수 없이 침묵하게 된다. 단순하게도 ‘입’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 사장님은 소셜미디어를 상당히 혐오하세요. 조중동이나 방송3사 이외에는 언론으로 치지도 않으세요. 그래서 소셜미디어를 시작하자는 제안은 힘듭니다.” 괜찮다. 그렇게만 회사가 잘 되어가면 문제 없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해도 ‘조중동과 방송3사에만’ 신경을 쓰실 수 있으실 지가 문제다. 그 일부 오프라인 언론에서만 다루어지지 않으면 괜찮은 위기가 얼마나 될까 하는 거다. 위기 시 모르는 게 약이 되면 절대 안 된다.

    또 어떤 기업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마케팅에서 열심히 트위터를 하고 있어요. 상당히 열심이고, 업계에서도 경쟁력 있다 평가 받고 있어요. 이렇게 잘 성장시켜 놓은 트위터 자산을 위기 시 부정적인 이슈들로 물들이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이해한다. 최근 기업 소셜미디어 담당자들을 보면 해당 계정들을 마치 자신의 자식과 같이 아끼고 애정을 쏟고 있다. 그런 애정 어린 계정들이 하루 아침에 살벌하고, 무서운 대화들로 범벅이 되는 것을 꺼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 위기가 발생했는데도 침묵하는 것은 더 살벌하고 무서운 행위다. ‘소셜미디어를 잘하고 있다’는 기준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왜 기업들은 이 문제의 소셜미디어상 위기관리에 주저할까? 왜 그런 환경을 정확하게 분석 이해하고, 이에 상응한 위기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큰 관심을 두지 못할까? 왜 내부에서 공감대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기력이 없을까? 이런 대화를 하면서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가 ‘밝은 가로등 아래에서 잃어 버린 동전을 찾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다. 익숙한 것에서만 솔루션을 찾는 모습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의사 결정한다.’ 모든 CEO는 그렇다. 내가 이해하기 힘든 이슈들에 대해서는 그 만큼 관심도 적게 가질 수 밖에 없고, 그에 대한 심도 있는 의사결정도 꺼려지게 마련이다. 가능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솔루션을 찾으려 하고 의사결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한다. 소셜미디어.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자들에게 익숙한 주제가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익숙해 질 주제가 못 된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위기관리 시스템에서 소외 되고 있다는 부분이다.

    동전(성공적인 위기관리)은 찾고 싶지만, 가능한 밝은(스스로에게 익숙한) 곳에서만 동전을 찾으려 하는 모습을 기억하자. 동전(성공적인 위기관리)이 떨어져있는 저 어두운(스스로에게 낯선 소셜미디어) 곳에는 가기도 싫고, 별반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거다. 결국 동전은 찾지 못하고, 힘만 들게 마련이다.

    “모든 기업이 소셜미디어를 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필자는 “노(No)”라고 답변하곤 한다. 하지만 단서가 하나 붙는다. ‘어떠한 위기 시에도 소셜미디어상 이해관계자들과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 조언한다. 그렇게 해서 자신 있게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 하는 확신이 있다면 소셜미디어를 안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거다.

    최근 여러 기업들의 소셜미디어상 위기를 보면서 소셜미디어 담당자들은 “우리 회사가 지금 이런 유사한 위기를 경험하게 되면, 지금 저 회사보다 더 잘 위기를 관리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자. 공통적인 문제는 이런 질문에 ‘솔직히 자신이 없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이다. 당연하다.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어느 한 개인의 역량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사적으로 소셜미디어상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업이 비즈니스를 영위하고 있는 사회(society)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사회 구성원들 즉, 우리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이 어디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고, 서식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순하게 소비자 시각에서 벗어나 위기관리의 핵심인 이해관계자들을 떠 올려 보자 하는 거다. 모든 기업은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화(socialize)는 어쩔 수 없는 필수 활동이다. 기업이 소셜미디어를 시작해야 하고, 잘해야 하고, 또 위기 시 그 속에서 대화를 전개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밝고 어두움. 즉, 익숙함과 낯섦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과연 동전이 어디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지는 한번 기억해 보자 하는 이야기다.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였다.

  • 기업에게 소통은 이상향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기업에게 소통은 이상향이 아니라 두려움이다

    소통은 두려운 것이다. 소통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특히나 소셜미디어상에서 기업에게 “소통하라!” 주문하는 것은 기업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감사하며 받아들이라는 강요나 다름없다.

    소통을 시도해 본 개인이나 기업은 그 소통의 과정이 얼마나 두렵고 힘든지 경험한다. 소통이라는 과정에서 개인이나 기업은 나와 관계된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직접 들어야 하는 극한 고통’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이전 개인이나 기업은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별로 많지 않았다. 실시간으로 직접 들을 수 있는 미디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개인이나 기업에게 불만을 가진 이해관계자들 일부는 아주 가끔 다가와 직접 불만을 이야기하거나, 문서를 보내 컴플레인 하거나, 전화를 걸어 불만을 제기 하곤 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전체 자신에게 불만을 가진 숫자의 극히 일부였을 뿐이다. 이외 대부분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 스스로 간주하는 이유가 여기에 기반했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이나 PR의 경우에도 그 발아 시점에서 판단하건대, 이전의 이해관계자들의 모습으로 그들을 그대로 정의하고,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 중심을 두었었다.

    그러나, 현재의 소셜미디어 환경에서 개인이나 기업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에 대한 대다수의 불평들과 실망들을 ‘실시간으로 직접’ 접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무균질 상태에서만 서식하던 CEO나 임원들도 그 이해관계자들의 머릿속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거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은 상황과도 유사한 고통을 준다. [영화 What Women Want를 기억하라]

    • 항상 성스러운 설교로 유명한 목사님은 돌아서 자신을 멍청하다 험담하는 신도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게 되었다.

    • 항상 스스로 존경 받고 있다 생각했던 교수님은 자신에 대해 변태라는 여학생들의 비아냥을 엿들을 수 있게 되었다.

    • 항상 리더십이 있다 자만했던 CEO는 자신이 개념 없고 게으르다는 직원들의 불만을 엿들을 수 있게 되었다.

    • 항상 아내는 자신에게 순종하고 있다 생각하던 남편은 아내가 나의 남편은 구제불능이라는 옆집 아줌마와의 하소연을 엿듣게 되었다.

    • 항상 차분하고 예의 바른 며느리가 돌아서 지껄이는 욕설들을 시아버지는 그대로 듣게 되었다.

    • 평생 죽마고우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루저라 이야기 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개인 미디어이며, 직접적 미디어인 소셜미디어를 통한 소통 과정은 개인이나 기업에게 이런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소통은 기업에게 이상향이라기 보다는 지옥과 같은 고통이자 두려움이다.

    모 라디오 방송 사연처럼, 평소 시부모에게 사랑 받던 얌전한 며느리가 매달 시어머니에게 용돈을 부치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아들 집에 들러 우연히 며느리 가계부를 들쳐보니 ‘시골 년에게 돈 부치는 날 ‘이라고 메모를 해 놓은 것을 보고 어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어떤 개그맨의 할머니는 돌아가신 이후 남겨 놓으신 일기장에서 매일 자신의 며느리를 ‘썩을 년’ ‘나쁜 년’이라고 마무리 지었었다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언제 기업이 소통해 본 적이 있었나?

    소셜미디어는 이전에는 이랬던 사후 소통도 실시간으로 진행하고, 직접적으로 전달한다는 게 특징이다. 기업은 이런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에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또한 간접적 대중 미디어를 통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선별적 일방적 소통에서도 성공하지 못했었기 때문에, 이런 급격한 업그레이드에는 헉헉댈 수 밖에 없다.

    최근 기업들이 너도 나도 ‘소통’이라는 가치를 마치 이상향인 것처럼 내세우는데…진정 현재와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 소통을 지향하려면 우선 철학이 바뀌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두려움이나 고통에서 자유로울 정도로 그것은 완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소통을 통한 고통을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한다.

    소통은 진정 몰라서 무섭지 않은 거다.

  • 기업은 소통하겠다는 과욕을 버려라

    사람에게도 되고 싶은 것이 있는 반면, 될 수 있는 것이 있다. 70년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은 ‘대통령’을 꿈꿨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지금 그냥 성실한 중년 가장으로 만족하고 있다.

    기업에게 언제부터인가 ‘소통’이라는 주문들이 너무 많다.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했으니 소비자들은 물론 국민들과 온전히 소통하라는 주문이다. 소통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시기는 아마 몇 년전 광우병 이슈가 불거졌을 때부터가 아닐까 한다. 당시에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소통불능을 꼬집기 위한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 소셜미디어의 활성화를 기반으로 이 소통 프레임은 기업에게도 옮겨갔다. 소통이라는 의미는 좋은 의미다. 절대 필요 없다는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기업에게 소통은 여러 현실적 한계가 존재할 뿐 아니라 거의 불가능한 이상향이라는 것이 문제다.

    먼저, 소통이라는 것은 경영적 단어거나 측정 가능한(measurable) 비즈니스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유행에
    따라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는 경영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MBA출신의 경영인들이 듣기에는 참으로 손발 오그라드는 주문이 아닐까 한다. 소비자들과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이전의 관계(Relationship)와 이 새로운 소통은 또 어떻게 다른가 하는 질문이 끊임 없이 이어진다. ‘왜 소통이냐?’ 하는 질문에도 경영적인 답은 궁색하다.

    둘째, 기업은 소통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은 기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기업의 목적이 소통 그 자체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소통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좋은 과정이라는 의미는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이 소통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소통이전에 우리 기업 스스로 해야 할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현재 우리나라 기업들에게는 더 어울리지 않나 한다.

    셋째, 기업은 결코 완전하게 소통할 수 없다. 과욕을 버리자는 거다. 기업을 구성하는 CEO부터 모든 직원 개개인을 생각해 보자. 개인으로서도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하는 개인들이 대부분 아닌가? 어떻게 그런 조직원들이 모여 기업 차원의 소통을 감히 꿈꿀 수 있나? 근본적으로 기업은 완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이상을 버려라. 단지 우리는 소통하고 있다 착각하는 주체일 뿐이다.

    넷째, 의외로 소비자들도 기업들이 소통하는 것을 그리 원하지 않는 듯하다. 소셜미디어상의 많은 기업들이 소통을 목적으로 자신들의 여러 SNS 플랫폼들을 통해 소통을 시도한다. 소통한다며 신제품을 뿌리고, 쿠폰을 날려준다. 소통하기 위한 초청장을 전달하고, 사용후기를 요청한다. 자사 직원들의 일 거수 일 투족을 많은 소비자들도 궁금해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들의 여러 속 이야기들로 소통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부담스럽다. 그냥 우리가 원할 때 제대로 된 답변이나 들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물론 그 소비자들도 근본적으로는 소통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다.

    다섯째, 기업 스스로 소통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CEO가 직원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가수 포미닛의 춤을 춘다. 50대 임원들이나 교수들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단체 군무에 열중한다. 누구는 색소폰을 불고, 누구는 마술 쇼를 한다. 직원들은 길거리에 나와 난데없이 인사를 해대고, 캠페인 복장을 하며 담배꽁초를 줍는다. 각종 SNS에서 하루도 빠짐 없이 사람들과 지저귀고 댓글로 감사를 전한다. 상당히 행복한 착각이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소통에는 얼마나 뒤를 돌아보고 있는가? 은행의 금융 상품 소개 전단을 읽어봐라. MBA출신들도 이해가 완벽하지 않을 수준이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자 열려있는 게시판은 없어진 지 오래다. 문제가 있어 수신자부담 전화를 걸어봐라 답변이 시시껄렁하다. A/S를 원해봐라 시간이 없어 바쁜 소비자에게 제품을 가지고 언제 어디로 나와달란다 그리고 찾아가란다. 분명 둘 중 하나는 착각이다.

    소통이 만약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고 한다면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소통(Communication) 그 자체라기 보다는 소통 관리(Communication Management)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은 바로 Communication이 아니라 Management다. 관리 또는 경영 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에게 독(毒)이며 악(惡)이다. 아무 쓸모 없고 부정적 결과만 확대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기본부터 차근차근 소통 ‘관리’ 관점에서 점검 하는게 옳다. 과연 우리가 기존의 모든 이해관계자 접점에서 올바른 소통 ‘관리’를 하고는 있는지 점검해보자. 우리가 기존 우리의 메시지를 관리하려 하기 이전에 내 외부 이해관계자를 관리하려 했거나, 적대적 미디어를 관리하려 했거나, 익명의 많은 네티즌들을 관리하려 과욕을 부렸었던 것은 아니었나 한번 뒤돌아 보자.

    소셜미디어가 새롭다고 너도 나도 소통의 도구이자 장이라 외치는 것에만 너무 관심을 두지는 말자. 어차피 관리되지 않는 또 다른 소통은 필요 없다. 우리가 과연 먼저 관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차근차근 관리하자. 그리고 그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서는 어떻게 우리의 메시지를 관리해 새롭게 ‘소통 관리’에 성공할 것인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물론 그냥 소통 그 자체를 선(善)으로 생각하지 말자. 지금처럼 쥬니어들에게 그 위험한 소통의 임무를 떠 넘기지만 말자.

    갑작스런 분위기에 허겁지겁 되지도 못할 대통령을 꿈꾸는 철부지 어린이로 평생 남지 말자는 이야기다.

  • 준비 안된 기업의 위기커뮤니케이션 10대 공식: 코레일 사례를 기반으로

    성공적인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지 못한 기업의 위기관리 공식은 대략 이런 공통점을 가진다.

    1. 상황만을 중심으로 위기를 파악한다. 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은 위기관리 대상에서 최초 제외되거나, 대부분 경시된다.

    2. 해당 상황을 정상 처리하면 모든 위기는 사라지는 것으로 개념 정리한다.

    3. 해당 위기를 둘러싸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불편, 손해, 스트레스, 신체적 손상, 슬픔, 고통, 분노, 흥분, 실망, 아쉬움 등은 상당히 지엽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4. 자사와 이해관계자들을 연결하는 언론을 적으로 생각하거나, 최소한 귀찮은 존재들로 간주한다.

    5.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트레이닝 받지 않은 채로 아무나 대충 임하거나, 피한다.

    6. 언론과 커뮤니케이션에서 여러 ‘하지 말아야 할 말들’과 ‘할 필요 없는 말들’을 남발한다. 반면, ‘꼭 해야만 하는 말’과 ‘할 필요가 있는 말’은 대충 얼버무리거나 확보하지 못한다.

    7. 언론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CEO나 직원들이 전달한 ‘하지 말아야 할말들과 할 필요가 없는 말’관련 TV보도나 기사를 보고 도리어 언론을 욕하거나, 문제 있다 지적한다.

    8. 결론적으로 언론에 대해 불만과 부정적 감정만 가진다. 언론이 그렇게 보도 하면 우리 사회나 기업들이 모두 망가질 것이라 경고한다. 이 상황에서도 이해관계자들의 여러 감정들에 대해서는 ‘언론이 조장한 결과’라고 정의한다.

    9. 똑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언론을 확실히 방어해야 한다’고만 생각한다.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생각이나 대응은 그대로 유지한다.

    10. 실제 위기가 또 발생하면 다시 1번으로 돌아가 동일한 프로세스를 반복한다.

    결론적으로 준비되지 않은 기업들의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그냥 예전 그대로’ 반복 진행되고, 언론만 더욱 더 몹쓸 집단으로 평가 하면서 마무리된다. 위기를 둘러싼 유일한 죄인(?)은 항상 언론이 돼 버리는 거다.

    해당 기업은 개선할 대상이나 목적이 없는 셈이다. 그들은 언론만 없으면 위기도 없고, 위기관리도 제대로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절대 준비하지 않고, 제대로 준비 되지 않는다.

    왜 기업들이 항상 위기관리에 실패하는가 하는 질문을 내게 한다면, 이런 것들이 현실적 이유들이라고 말한다.

    관련사례:
    KTX 또 고장…”무슨 큰일이라고?”

  • 애플이 다섯가지 PR룰을 깼을까? : 멜버른대 Joshua교수의 칼럼을 읽고

    아거님께서 소개/공유해 주신 칼럼. 멜버른 대학교 교수이신 Joshua Gans의 칼럼인데, 애플의 작년 안테나게이트 위기관리 사례를 분석해 주셨다. 제목이나 핵심 또한 아주 멋지게 정해주셨다.

    How Apple Broke the PR Rules — And Got Away With It

    – By breaking 5 key “rules” ingrained in the public relations playbook.

    Joshua 교수께서 애플이 깨버렸다고 주장하시는 다섯 가지의 위기관리(PR) 룰을 한번 살펴 보고 내 나름대로의 의견을 붙여보았다.

    1. Apologize and take full responsibility.이칼럼에서는 애플이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으로 기존의 PR룰을 깨뜨렸다고 주장한다. 애플은 그들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위기관리에 있어서 위기관리 주체는 애플과 같은 기업이지만, 그 이슈의 핵심은 이해관계자들에게 있고, 커뮤니케이션의 열쇠 또한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속에 있다. 위기시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던, 어떤 자신감에 차있건 그것은 별반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되지 못한다.

    애플은 해당 위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과의 공감이 없기 때문에 사과하지 않은 것이고, 책임 또한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애플이 위기관리에 실패했다 보는 핵심이다. 칼럼에서는 그것을 도리어 룰을 깨고 성공한 핵심으로 보는데 그 시각이 독특하다.

    1. Don’t create expectations with a mediaevent.최초 위기 발아가 된 소비자 이메일 부터 장장 몇 주가 지나 애플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칼럼에서는 애플이 ‘미디어 이벤트를 통해 불필요한 기대감을 조성하지 말라’는 PR 룰을 깨버렸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들이 애플의 기자회견 소식에 문제개선의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애플은 문제해결을 택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또한 애플 스스로가 이번 문제를 실수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이 기자회견의 본질을 한번 들여다 보자. 이 기자회견은 소비자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주지 않고를 떠나, 제품의 문제를 ‘일부’ 인정하고, ‘가벼운 형태의 리콜’을 발표하는 것이 주요 주제였다. 많은 매스미디어들이 애플의 이러한 발표에 대해 제품하자 인정과 리콜 부분에 촛점을 맞춘 것으로 알 수 있다. 애플은 이 미디어 이벤트를 통해 아주 깨끗한 사과와 헌신적 리콜 대신에, 어정쩡한 변명과 오만한 리콜을 발표했을 뿐이다.

    1. Announce the give away first.이 칼럼에서처음 듣는 원칙인데, 기브 어웨이를 모두에 발표하지 않고, 마지막에 발표했다는 부분에서 애플이 기존 룰을 깨버렸다는 지적을 이 칼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메시지의 배열을 들여다 보자. 항상 중요한 메시지를 맨 앞에 놓고 뒤로 갈 수록 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서양과 매스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 배열 방식말이다. 그런 방식을 통해 애플의 메시지 배열을 보면, 애플이 케이스를 제공하면서 진행하는 경미한 리콜의 메시지를 아주 하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스스로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아집이 이 메시지 배열에서도 목격된다. 어쩔 수 없어, 과도하게 민감한 소비자들 때문에 우리가 이런 favor를 마련했으니 이제 그만 해라 하는 투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러한 메시지의 우선 순위 때문이 아닐까 한다.

    1. Avoid specific comparisons withcompetitors.이 칼럼에서는 애플이 ‘경쟁사들과의 특정적인 비교를 하지 말라’는 PR룰을 깨고 위기관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또한 애플의 특유한 기업문화와 업계 위상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기업도 스스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비슷한 이슈를 가지고 있는 다른 경쟁사들을 끌고 들어가는 것은 피한다. 그렇게 경쟁사들을 끌고 들어가서 얻는 이득이 그러지 않고 위기를 관리하는 데서 오는 이득보다 적기 때문이다. 애플이 깨버린 것은 PR의 룰이 아니라, 기업 경영과 경쟁에 있어서의 ‘신사도’라고 볼 수 있다. 특유의 문화와 지위를 악용한 사례라고 본다.

    1. Don’t air your industry’s dark secrets.이칼럼에서는 또 ‘업계의 비밀을 들추지 말라’는 PR룰을 애플이 깨고 위기관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번 더 들여다보자. 애플이 이러한 비밀을 스스로 들추어 내어 성공했다는 말인가?

    누가 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에 처음 불을 붙였나? 소비자다. 그 소비자가 잡스에게 이메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 이메일에 잡스가 답변을 하지 않고, 그 과정이 매스미디어에 노출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 업계의 비밀은 소리 없이 사라져갔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런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을 애플이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해 위기로 불거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에 대해 개선의 의지와 프로세스를 밝혔더라도, 이미 그것은 자사의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고육책으로서의 메시지였지, 이런 룰을 깨고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전략적이거나 주도적이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이 칼럼의 마지막 패러그래프를 보면 이런 주장이 나온다.

    Apple broke all five rules in their management of AntennaGate — indeed, they broke a sixth and actually referred to the issue as “AntennaGate” — and drew the ire of public relations
    experts. Their handling of the situation worked. The same option was available to any of its competitors and none of them seized the opportunity. They now look like fools.

    애플이 스스로의 위기를 ‘안테나게이트’라는 표현을 써서 또 다른 PR룰을 깼다는 지적이다. 이 부분에서 이 칼럼을 쓴 교수님의 입장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안테나게이트’라는 단어에서 품어 나오는 애플의 억울함과 냉소를 읽지 못하는 거다.

    결론적으로 애플은 공감하지 않았고, 늦었고, 대응에 있어 사소했으며, 메시지에 있어 자기중심적이었다. 경쟁사들에게도 핑거포인팅 했고, 확실하게 개선하거나 이슈를 해결하지도 못한 채 위기관리에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이슈가 스스로 잦아 들었던 것뿐이다.

    앞으로 비슷한 통화품질의 이슈가 발생하면?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 구태의연한 위기관리 방식의 반복: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구태의연한 위기관리 방식의 반복: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

    “여보세요. 이숙정 의원이십니까.” “…. . “이숙정 의원이십니까.” “…. 네.” “이번 일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입장을 듣고 싶어 연락드렸습니다.” “….”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선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했는데요. 맞습니까.” “인터뷰한 적 없습니다.” “CCTV에 잡힌 화면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이만 끊겠습니다. 뚝.”
    [
    중앙일보]

    여러 기업이나 유명인들이 위기와 맞닥뜨렸을 때 내부적으로 공공연하게 제안되거나, 공감되는 조언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하는 전략이다.

    이’소나기 피하기 전략’은 일단 몇 가지 상황적인 제약에 근거해 공감된다.

    • 첫째는, 시기적, 상황적으로 위기관리 주체에게 극도로 불리한 상황인 경우.
    • 둘째,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 등에서 너무 감당하기 힘든 신상 털이 진행되고 마녀사냥으로 급격하게 상황이 진행되는 경우.
    • 셋째, 여러 루트를 통해 대응하기에는 일단 때를 놓친 경우.
    • 넷째, 위기관리 주체가 대응할 상황이 되지 않는 경우(신체적, 정신적)
    • 다섯째. 위기관리의 경험상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 그나마 괜찮았다 기억하는 경우.

    전반적으로 이런 ‘소나기 피하기 전략’에 공감하는 기업이나 유명인들은 심리적으로 그나마 편하고 단순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스스로 왈가왈부 하는데 에서 드는 힘듦과 이 과정에서 상처들이 더 커질까 봐 심리적으로 이를 꺼리는 듯하다. 보통 “뭐 좋은 스토리라고 우리 스스로 나서서 왈가왈부 할 필요가 있나?”하는 공감대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간의 본성에 따른 위기관리는 항상 그렇다. 타조가 심리적으로 불안하면 머리를 모래에 파묻는 것을 보며 웃지만, 인간도 실제 위기시 그와 다름이 없는 행동을 한다. 본성이기 때문에 이를 멍청하다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소나기가 지나가길 바라는 전략’이 발생시키는 문제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거다. 일단 소나기를 피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기업이나 유명인들은 이런 새로운 위기 상황을 맡게 된다.

    1. 위기관리 주체의 메시지는 절대적 SOV(Share of Voice)의 열세를 경험한다.
    2. 위기관리 주체가 의도적으로 형성한 ‘정보의 진공’을 다른 부정적 소스들이 채우는 것에 경악한다.
    3. 위기관리 주체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전혀 다른 새 루머들이 연이어 생산되는 것에 분통을 터뜨린다.
    4. 위기관리 주체를 파는 많은 이름 모를 매체들과 SNS 유저들이 나타나 자신을 괴롭게 한다.
    5. 일정기간이 흐른 후 전혀 사과나 개선의지 표명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발견하고 좌절한다.
    6.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나서는 자신을 하나의 희생양으로 포지셔닝 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다.
    7. 결국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극단적이고 부정적 압력에 떠밀려 비참하게 사과하고 비굴하게 용서를 구한다.

    위기가 발생하면 주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정보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런 폭발적 상황 속에서 위기관리 주체가 얼마나 전략적 메시지를 공급해 의미 있는 SOV를 빨리 확보하는 가가 위기관리 초기 단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기업이나 유명인들이 위기시 “평소 우리 블로그나 트위터 계정이 포털에 게시되지 않았던 것이 도리어 다행이다”라 안위해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간절하게 기다리던 블로그 방문자들과 트위터 팔로워들을 하루 아침에 부담스러운 저주의 대상으로 간주해서 되겠는가 말이다.

    성공을 위해 본능과 한번 싸워보면 어떨까?

    [이숙정 의원의 트위터와 블로그. 2011년 2월 6일 현재]

  • 지하철 2호선 고장 사태로 본 위기관리 인사이트 : 서울메트로

    18일 오전 6시50분께 문래역을 출발해 영등포구청역으로 진입하던 서울지하철 2호선 2028호 열차가 전기장치 고장으로 선로 위에 약 50분간 멈춰섰다. 서울메트로는 사고 직후 기술인력을 투입해 오전 7시40분께 고장열차의 운행을 재개했으나 사고 여파로 오전 8시30분 현재까지 지하철 2호선 내선순환(시청역→충정로역 방향 순환선) 열차들이 지연운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 사고에서 목격된 위기관리 환경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주요 이해관계자
    현재 탑승 승객
    인근역에서 지연된 지하철을 기다리는 승객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들어오는 승객
    지하철을 타려 지하철역으로 이동 중인 승객
    ==> 이번 위기관리에서 이상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 골고루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했는가? 운행이 되지 않는데도 지하철역사로 계속 쏟아져 들어오는 승객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커뮤니케이션 메시지
    사고 고지
    운행재개 여부 및 재개 가능 시간 고지
    환불 관련 고지
    ==> 이번 위기관리에서 이상의 메시지들이 정확하게 전달되었을까? 바쁜 아침시간임에도 문이 열린 지하철속에서 계속 대기하던 수많은 지각생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차내 방송
    역내 방송
    ==> 이번 위기관리에서 이상의 미디어들이 거의 유일한 미디어였는데,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 충분하다 생각하는가? 수많은 승객들이 트위터를 통해 사고사실을 전파하고, 공유하고, 비평하는 현재 위기관리 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실행조직
    운행요원
    역무원
    ==> 이번 위기관리에서 역무원들이 충분하게 준비된 활동들을 진행했는가? 환불을 고지했으면, 환불을 담당한 충분한 인력이 배치되거나 시스템화 되어 환불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던가?

    보통 지하철이나 기차가 고장이 나면, 이를 경험하는 승객들의 유형은 3가지로 나뉜다.

    1. 무조건 다른 빠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는 바쁜 승객
    2. 일정시간 후에 운행 재개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다리는 승객
    3. 별 급히 할 일이 없어 그냥 계속 기다려주는 승객

    문제는 두 번째 승객들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숫자가 많은 유형이다. 문제는 그들에게 정확한 운행재개 시간을 고지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생긴다. 사고 발생 고지만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정확하게 언제 운행이 재개될는지를 알려주기 힘들다면, 대략적으로 가능한 시간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분노하는 이들의 숫자를 대폭 줄일 수 있다. (“한 시간 가량 지연 예정입니다”) 그러나 위기관리에 실패하는 위기관리 주체는 부실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메이저 공중 모두를 분노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대중교통수단이 사고로 지연 운행되는 상황은 운영회사에게는 100% 예측이 가능한 위기요소다. 이런 예측 가능한 위기요소에 대해 발생 직후 대응하는 체계와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불완전하다는 것이 더 놀랍다.

    왜 서울메트로는 제한된 메시지와 제한된 매체와 제한된 인력으로 승객들의 불만을 더 키울 수 밖에 없었을까? 왜 그렇게 수 많은 지각자들을 발생하게 만들었으며, 그들 모두가 서울메트로에 대해 불평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을까?

    왜 준비하고, 훈련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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