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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요즘 신문을 읽어요?

    [The PR 기고문]

    누가 요즘 신문을 읽어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얼마전부터는 홍보담당자 중에서도 종이신문을 건너뛰는 경향이 생겼다. 회사 PC나 노트북으로 스크랩 서비스 이용이나 온라인 검색이 가능한 데 왜 그 불편한 종이신문을 한 장 한 장 읽어야 하느냐 이야기하는 홍보담당자도 나타났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다.

    아예 종이신문을 접해보지 못한 젊은 홍보 신입도 늘고 있다. 그들에게 “종이 신문을 좀더 접해라. 그래야 전체적인 여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조언은 이제 종이 신문과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됐다는 분위기다.

    미디어 트레이닝을 진행하면서 50대 한 임원분으로부터 “요즘 누가 신문을 읽나요?”하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종이 신문은 이미 죽었는데 그 죽은 기사를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하는 거였다. 이 질문에 요즘 기자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까지 따라 나왔다. 죽은 신문에 아무도 읽지 않는 기사를 계속 올리는 수많은 기자들도 이젠 죽었다는 거다.

    신문, 종이 신문, 기사, 기자…이 화두들은 종종 혼동 속에서 언급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신문이 죽었을까? 종이 신문이 죽었을까? 기사가 죽었을까? 기자가 죽었을까? 정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다 죽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사업이고 플레이어들이다’는 이야기로 퉁 쳐진다.

    문제는 이런 혼동에 기반한 논의가 기존 기업 내 언론홍보 기능까지 고사시키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죽었으니 이제 그 기능은 필요 없다는 의식의 흐름 때문이다. 더구나 기업 커뮤니케이션이나 이슈 및 위기관리 기능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이 함께 저하되는 현상까지 보인다. 보지 않은 신문을 통한 문제 제기가 이제는 그 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그 기반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우리의 환경을 보자. 언론홍보와 이슈와 위기관리 관점에서 실질적인 실행 환경을 들여 다 보자. 진짜 신문이 죽었을까? 종이 신문은 진짜 계란판의 의미 밖에 없게 되었을까? 기사는 진짜 아무도 읽지 않을까? 기자도 신문과 함께 그 실제 기능을 잃었을까? 답은 글쎄다.

    첫째, 신문은 더욱 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종이 신문과 신문을 동일어로 사용하지 말자. 실제로 종이 신문의 구독 비율은 형편없이 줄었다. 그렇다고, 해당 신문을 읽는 독자들까지 형편없이 줄었다고는 볼 수 없다. 종이 신문을 비롯하여, 온라인 매체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 신문 발 정보의 공급과 소비량은 그 이전 보다 엄청나게 늘었다. 신문은 더 강력 해 졌다.

    오히려 읽기 싫은 기사가 너무 많이 노출되어 지겹고 괴로울 지경 까지 환경이 변했을 뿐이다. 신문 발 정보 없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기존 신문들이 한 일주일 아무 취재나 정보 공유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현재 같은 사회 상황이 지속될 수는 있을까? 만약 신문이 죽었다면 그들이 눈 앞에서 사라져도 아무 문제나 변화는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실행 차원에서도 기업 내 분위기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목격된다. 평소 다양한 보도자료를 통한 기사화에 별 반응 없는 임원들이 많아 졌다. 신문을 아무도 안 보는데, 거기에 보도자료를 뿌려 기사를 얻어 내는 것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이야기한다. 그런 생각이 합리적인 것 아니냐는 동의 요청까지 이어진다.

    그 후 해당 임원의 문제와 관련된 신문 기사가 실리면 반응은 어떨까? 합리적 기준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자면 해당 신문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니, 아무리 자신의 이야기라 해도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은 다르다. 해당 임원은 그 신문에 주목하고, 어떻게 든 처리해야 한다며 홍보실과 로펌을 두루 찾는다. 그 임원은 왜 그러는 걸까? 아무도 보지 않는 신문 일 뿐인데.

    둘째, 종이 신문은 청와대가 읽는다.

    청와대만 종이 신문을 볼까? 국회와 의원실에서도 본다.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들이 모두 종이 신문을 본다. 규제기관을 비롯하여 경찰과 검찰 같은 다양한 수사기관도 종이 신문을 읽는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어떤가? 그리고 다른 매체의 수많은 기자들은? 진짜 종이 신문은 모두 계란 판 정도의 의미만으로 전락했나?

    기업 내에서는 어떤가? 회장과 대표이사, 주요 임원들이 종이 신문을 본다. 그들 가정에서도 종이 신문을 읽기도 한다. 홍보실이 임원들로부터 듣는 익숙한 말이 있다. “그거 지면에도 났습니까?” 이 질문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아직도 온라인 보다는 지면에 더 신경 쓰는 최고의사결정자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기업이 합리적 사고를 한다며 무시하는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로 인해 규제 조사와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를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아침 받아 본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회사로 문의해 오는 국회 인사나, 환경이나 시민 단체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종이 신문 지면에 도배되는 기사를 읽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기업이 계속 무시할 수 있을까? 특정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따라서 취재를 시작하는 기자들의 전화는 아무것도 아닌가?

    지면을 확인하며 이야기하는 경영진을 무시할 수 있는 부서는 얼마나 있을까? 그 앞에서 ‘이미 종이 신문은 죽었습니다. 아무도 종이 신문을 읽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임원은 몇이나 될까? 그 이야기에 그렇구나 하며 종이 신문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는 회장과 대표이사는 몇이나 될까?

    셋째, 가짜 기사와 나쁜 기사 때문에 기사는 빛난다

    굳이 일반화의 오류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다. 모든 기사가 가짜이며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다만, 자신이나 자사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 내용이면 그 기사는 가짜이며 나쁘다 해석된다. 그리고는 요즘은 가짜뉴스와 나쁜 뉴스가 너무 많아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수십년 전 예전에는 가짜나 나쁜 뉴스가 전혀 없었을까? 그 때는 정말 저널리즘이 살아 있어서 가짜나 나쁜 뉴스가 발붙일 곳이 없었을까? 모든 독자들이 기사를 보며 전부 진짜이며, 좋은 뉴스구나 감탄하기만 했을까? 그런 상황이 오히려 가짜다.

    부정확한 기사, 품질이 떨어지는 기사, 일부러 왜곡된 시각을 집어넣은 교묘한 기사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이전과 같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런 수준 낮은 기사는 자신과 자사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지속적으로 키워 나가면 걸러 낼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반복적으로 수준 낮은 기사에 휘둘린다면 자신이나 자사의 리터러시 수준을 의심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몰라도 대중이 그런 수준 낮은 기사에 휘둘린다 믿는 것도 문제다. 그렇지 않다. 이슈나 위기관리 관점에서 대중, 공중,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확한 시각와 평가는 아주 중요한 대응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다. 상대를 우매한 그룹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성공할 수 없다.

    차라리 수준 낮은 기사 때문에 수준 높은 기사의 가치는 빛나게 되었다. 제대로 된 기사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진영논리 속에서도 뼈아픈 기사는 의미 있는 충격을 미친다. 겉으로는 그 기사를 가짜이고 나쁜 뉴스라 폄하해도 시린 부분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계일학은 계속 존재한다. 오히려 기사 아웃렛 환경이 확장되면서 군계일학의 기사나 기자의 사후 취재담이 세상에 알려질 확률은 더 늘었다. 당연히 그 내용이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수배로 높아졌다. 기사가 죽었다며 안일하게 바라볼 환경은 절대 아니라는 의미다.

    넷째, 기자를 무시하며 이슈나 위기관리에 성공한 기업 없다

    기자를 건너 뛰자는 논의를 진행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왜곡을 일삼는 기자를 상대하지 말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상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어차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자사 입장이 게시되면, 그걸 기자들이 받아쓸 텐데, 왜 골치 아프게 기자에게 까지 자료를 보내야 하는지 질문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한마디로 기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에 대한 대우나 평가가 이전 보다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현상을 가지고 기자가 죽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진짜 기자들은 아무 의미 없는 이해관계자로 무시해 버릴 수 있을까? 자사가 뿌린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주어 먹는 하이에나 정도로 폄하하면 아무 문제는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실제 대형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관련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을 무시하는 실험을 해 보면 된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된다. 기자들의 방문을 막아 철통방어를 해보자. 어쩌다 연락된 기자에게 묵비권이나 거짓 정보를 흘려 괴롭혀 보자. 대신 소셜미디어로 잘 정리된 내용을 게재한 뒤, 알아서 해석해 기사 쓰라 가이드 해보자. 그 결과가 소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각각의 기사에게도 그랬던 것과 같이, 유리하고 좋은 기사를 쓴 기자는 진짜 기자라 하고, 반대인 기자는 나쁜 기자라 하며 비속어를 써 비아냥 거리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그런 편향된 시각이 기자들에 대한 전략적 대응 기반을 무너뜨린다. 기자를 폄하하고, 기자를 차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자의 취재 방향과 수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내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니 문제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도 사후 아무 평가를 내부로부터 받지 못하게 되니 악순환은 계속된다. 기자가 죽었다고 확신해 보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업 홍보나 마케팅도 마찬가지고,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공히 적용되어야 하는 룰이 있다. ‘A 또는 B 또는 C’라는 ‘or’ 주장과 생각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문과 기자가 죽었으니 우리는 이제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집중해야 한다’ 같은 주장은 경계해야 하며 실질적이지 않은 주장이라는 의미다.

    얼핏 보면 상당히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주장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A나 B가 죽었을 리 없고,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다면 C에 집중하는 것이 정상적 대안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이해가능 한 것이다. 가장 전략적인 룰은 ‘A와 B와 C 모두를 제대로…’라는 ‘and’ 시각에 기반한 것이다. 신문, 종이 신문 기사, 기자 그 어떤 것도 죽은 것이 없다. 완전하게 사라지지도 않았으며, 그 다양한 영향력은 계속 변화할 뿐 아직도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생생하다. 그러니 ‘and’룰도 계속 유효하다.

    신문과 기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회사 내 언론홍보 기능을 없애자 하는 기업은 몇 년 후 아주 뼈아픈 교훈을 가진 후 스스로 다시 언론 홍보 기능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신문과 기자들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생각으로 기업 이슈관리와 위기관리 기능을 축소한 기업도 이내 마찬가지 환원의 심각한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실제 환경과 영향력 구도에 대한 시각이 부실한 기업은 그러한 폐지, 축소, 충격, 환원의 고통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홍보실 직원들이 불철주야 언론 홍보를 너무 잘했더니, 스스로 인기 좋은 기업이 된 줄 알고 이후 홍보실을 축소한 예전 기업들도 그랬다. 이슈나 위기를 초반에 잘 관리하던 실무진이 고생하던 기업에서는 자사 스스로 ‘발생될 이슈나 위기가 없는 기업’이라는 환상을 가지기도 했다. 그 후 위기관리 시스템을 오래도록 방치했고, 그 기업들도 몇 년 후에는 똑같았다. 그런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반복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살아있는 신문과 기자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 내내 그래왔듯.

  • 경험이 많으니 괜찮겠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는 다른 것은 몰라도 OOO관련 위기는 관리 경험이 많습니다. 지금 본사부터 지점에 있는 핵심 직원들이 그 위기와 관련해서는 전부 베테랑들이에요. 저번에도 아주 초기부터 일사불란하게 처리해 대응했습니다. 이 정도 대비 수준이면 별 문제가 없겠죠?”

    컨설턴트의 답변

    맞습니다. 경험만큼 소중한 위기관리 자산이 없습니다. 다양한 위기관리를 경험해 본 직원들이 많다는 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큰 자산입니다. 물론 그 직원을 이끌어 위기관리에 성공하신 경영진은 더욱 더 훌륭한 경험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단, 최근 여러 케이스들을 반면교사 삼아 경험 많은 기업에게 조언 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특정 위기에 대해 지금까지 대응 관리해 왔던 방식을 언젠가는 한번 돌아보는 노력을 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큰 위기를 경험한 기업이나 조직은 일종의 ‘백서’ 형태로 위기관리 전반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이런 백서 형태의 기록은 이후 경영진과 새로운 직원들이 선행되었던 위기관리에 대해 배우고, 그에 기반한 준비를 다시 하게 되는 선순환 시스템 그 자체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반면,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은 위기관리는 그 때 그 대응을 했던 몇몇의 무용담으로만 남게 되니 문제입니다.

    특정 위기를 여러 번 관리해 경험이 많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더욱 더 해당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기 원한다면 매번 기록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대응단계 하나 하나에 대해 적정성을 검토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도 바랍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적정성’ 검증 기준은 하나 하나의 대응이 백서에 ‘기록 가능한 대응’이었는지 여부입니다. 만약, 기록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대응이 있었다면, 그 대응 방식에 대해서는 새로운 검토를 해 보아야 합니다. 꼭 언젠가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록하기에 적절한 대응만으로 대응 방식을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는 기록에 남기기에 적절하지 않은 대응 방식을 더 멋지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대응을 하면서 동분서주하는 직원들을 능력 있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대응 방식은 언제든 또 다른 문제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모 기업에 규제기관 조사가 나왔습니다. 그와 관련 해 내부적으로 그룹 메신저방을 통해 여러 정보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대표이사와 핵심 임원들의 감지 및 지시 사항이 전달되기도 합니다. 일부 부서장이 메신저 방에 있는 직원들에게 문제가 될 많은 증거들을 폐기하거나 감추라고 지시 합니다. 그에 대한 직원들의 완료 보고가 수 십 건 메신저 방에 쌓입니다. 결국 관련 규제기관은 문제 있을 만한 자료를 찾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이런 대응방식을 단순히 경험이고 베테랑들의 일사불란 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과연 그러한 메신저방을 열어 지시와 완료 보고를 하는 방식이 안전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 할 것입니다.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증거자료의 폐기와 은닉이 회사의 일관된 위기관리 방식이어야 하는 가 하는 점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위의 위기대응 방식 전반을 백서 같은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을까요? 대표이사는 어디로부터 규제기관의 압수수색 정보를 취득했는지. 증거자료 폐기 명령의 주체는 누구였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어떤 범위의 자료들을 폐기 은닉했는지, 누가 누가 그 대응을 진행했는지. 이런 여러 대응 방식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성격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특정 위기관리를 여러 번 해보았고, 경험 많은 직원들이 많아 위기관리가 잘 되겠다고만 생각하기 보다는, 지난 위기관리에 대한 돌아봄과 살펴봄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기록으로 남기지 못할 위기대응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는 원칙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47. 기관들과 협업하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대형 기업 위기가 발생하면 항상 정부기관과 규제기관이 개입 하게 된다. 그들이 스스로 개입하고 싶어 개입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형 위기를 둘러싸고 끓어 오르는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되는 경우들이 사실 더 많다 볼 수 있다.

    정부규제기관은 법에 정해진 대로 그 기관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주체들이다. 그들의 개입에 대해 왜 개입하는가? 이 정도가 개입 할 일인가? 아닌가? 등의 하소연은 기업측에서 위기 시 아무 필요 없는 논의 주제다. 그런 당위성을 이야기 할 시간에 미리 개입 가능성이 있는 정부규제기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더 낫다.

    최근 들어서는 그런 정부규제기관의 이슈 및 여론 민감성이 극대화 되가고 있다. 여러 사례에서 보듯 정부규제기관은 특정 위기 발생 시 여론을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는 때가 되면 여론에 부응하려 애 쓴다. 일반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조치들을 반복 실행하며 자신만의 위기 개입을 가시화 시킨다. 이에 능하다.

    일단 그들은 영리하고 경험이 많다. 기업은 몇 년에 한번 겪는 위기라 해도, 그들에게는 일년에도 여러 번 다뤄본 위기다. 당연히 해당 위기와 관련 한 기업의 움직임이나 대응방식을 손금 보듯 알고 있다. 가뜩이나 유사 위기 사례에 대해 벤치마킹도 하지 않는 아마추어(?) 기업들은 실제 비슷한 위기가 터지면, 경험 많은 프로 정부규제기관에게 그대로 속 모습을 드러내버리고 만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게임이 되지 않는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는 위기 시 나름 최선 다해 정부규제기관 대응에 만전을 기했다 생각한다. 로펌이나 전직 정부관계자들을 주변에 배치해 그들의 개입이나 조사를 방어하려 애쓴다. 그러나, 쓰나미 처럼 폭증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들어오는 정부규제기관을 막아낼 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일부에서는 정부규제기관이 위기 시 기업에게 보이는 과도한 행위를 비판하기도 한다. 반복적으로 퍼포먼스 처럼 펼쳐지는 압수수색이라던가, 무리하게 기업 VIP나 관련자들을 연이어 소환한다거나, 불만 직원이나 위기와 관련 된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편을 들어 자신의 포지션을 강조하는 그런 행위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위기를 맞은 기업이 하고 있을 일은 아니다.

    기업에서는 당연히 위기가 발생하면 여론이 좋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여론이 좋지 않게 되면 정부규제기관이 개입 할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도 이해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이해관계자 그룹들이 개입을 서로 다툰다는 것도 미리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일단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사전적 대비와 대응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이 성패에 좀 더 나은 영향을 준다.

    위기를 맞은 기업은 언론을 끌어 안고, 언론의 지원을 받으려 노력해 보라 했다. 정부규제기관도 마찬가지다. 그들과 시종을 아우르는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은 위기관리 실행에 있어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그들에게 위법이나 탈법적 행위를 시도하라는 것이 아니다. 먼저 그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니즈를 분석해서, 그들의 위기관리 방향성에 자사의 방향을 맞추는 노력을 기하라는 의미다.

    그들이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들과 지속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보자.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현 상황을 좀 더 낫게 관리할 수 있겠습니까?’ ‘언제 그런 조치들을 저희가 취하면 되겠습니까?’ ‘어느 수준에서 저희가 대응 하면 가장 이상적일까요?’와 같은 질문을 해 조언을 얻어내려 애써보자.

    이를 통해 정부와 기업은 최종에는 결국 윈윈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중간에서 잘 전달 공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평시의 준비가 되겠다. 전체적으로 여론의 풍향 속에서, 언론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부규제기관과 협업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선진 기능과 경험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에서는 위기 시 정부규제기관을 겉모습 그대로 대적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어떻게 막아내지?” “정부 개입을 법적으로 제동 걸 수는 없을까?” “법적으로 그럴 의무는 없으니, 정부요청에도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지…” “그 기관장을 만나 볼까? 더 위 선에다가 줄을 대 볼 수 있는 커넥션은?” 그래서 그들은 이런 논의를 주로 한다.

    더 나은 대응을 하는 기업들은 정부규제기관에게 명분과 성과를 만들어 준다. 그에 따라 적절한 기업 대응으로 화답한다. 진작 가장 중요한 핵심은 커버하되, 가시적 협업의 성과는 극대화 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하이프로파일 시기와 로우프로파일 시기를 안다. 옛말에 이대도강(李代桃僵)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넘어지다’라는 뜻이다. 가시적으로는 작은 손해를 보는 대신 실질적인 큰 승리를 거두는 전략이다. 위기 시 정부규제기관과의 협업은 상호간 그러한 ‘이대도강’의 전략이 기반이 된다.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회사가 있나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사실 최근 기업 위기사례들을 보면, 좀 웃긴 게 있습니다. 예전에는 별 것 아니었던 이슈가 문제가 되고요. 지금 봐도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문제라고 하네요. 한 두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니고, 세상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회사가 몇이나 있겠어요?”

    컨설턴트의 답변

    그렇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개인이나 회사가 어디 있느냐는 말을 종종 하긴 합니다. 여기 저기 기업 위기관리 매니저들이 그래서 ‘털리지 않으려’ 그렇게 평소 애를 쓰는가 봅니다. 일단 언론이나 공중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 해당 기업이 ‘털리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기업 마인드의 핵심은 ‘털면 털린다’는 마음가짐이라기 보다는, ‘털려도 가능한 많은 먼지를 뿜어서는 안되겠다’는 마음가짐 아닐까 합니다. 앞의 마음가짐이 그냥 ‘내려 놓음’이라 한다면, 뒤의 마음 가짐은 ‘부단한 노력’이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말 그대로 회사를 털 때 그 회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털리느냐?’하는 것입니다. 이해관계자의 시각에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 수 없이 털려 나오느냐, 아니면 털었는데 별 큰 먹잇감 없이 자잘한 것들만 털려 나오느냐 하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A라는 회사와 관련해 이미 문제가 되었던 이슈가 B사에서도 유사하게 털리고, 이어 C사에서도 여지없이 털리고, D사에서는 더욱 더 황당한 형태로 털리는 것이 돌며 반복되니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털면 털린다’는 안일한 마음가짐은 회사에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최소한 A사가 발생시킨 이슈와 비슷한 이슈는 우리 회사에 없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최근 위기관리를 위한 기본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회사들이 모두 동일 또는 유사한 이슈로 털리더라도 우리는 그러지 않아야 하겠다 각오하며 개선 교정하는 실제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최근의 문제는 털린 이슈가 또 털리고, 여기저기에서 다시 털리고, 이어 털리고, 새롭게 업그레이드 되어 털리는 기업 내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부에서는 ‘올게 왔다’라던가, ‘그럴 줄 알았다’라던가, ‘우린 사실 더 한데 그 정도라서 다행이다’라던가 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나니 더욱 더 암울합니다.

    “왜 우리만 가지고 그래?” “우리만 그런 줄 아나? 다 그런데?” “저 회사가 더 할걸?” 이런 내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한 해당 기업의 개선이나 교정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무차별적으로 이슈화를 하는 언론이나 공중이나 규제기관을 비판하며 문제라고 손가락질 하게 될 것입니다.

    질문에서도 잠깐 표현 하셨지만, 예전에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 이제는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정확하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만약 지금에도 그것이 어떤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스스로 내부 변화의 분위기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은 그 누구보다도 더 빨리 변화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기업이 스스로 나서서 사회적 이슈를 개선해 나가지는 못할 망정, 사회적 논란에 반복적으로 발목을 잡혀 끌려 다니는 장면은 연출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회적 논란에 대한 이해도 기업 내부에서는 계속 업데이트 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지속 개선하고 교정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더 이상 도매금으로 다른 곳들과 엮이는 논란에 휘말리지 않아야 합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기업이 있느냐며 자위하는 것은 회사를 위해 이제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언제든 똑같이 털릴 수 있으니 미리 개선하자 해야 합니다. 제대로 털리더라도 큰 먼지는 없게 만들어야 하겠다 각오 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가장 위 VIP의 결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VIP가 결심하면 뭐든 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데미지 컨트롤이 뭔 가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자사 관련 한 큰 논란이 발생해 벌써 한달여간 정신없이 대응하고 있습니다. 임원부터 인력들이 모두 지쳐 있고요, 앞으로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혼돈뿐입니다. 추가적으로 여러 일들이 또 있는데 어떡해야 할까요? 대표님은 데미지 컨트롤에 집중하라 하시는 데요?”

    컨설턴트의 답변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단 위기관리라는 개념과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개념 간에 차이를 좀 살펴봐야 하는데요. 위기관리는 전통적으로 위기관리 주체가 ‘선제적’으로 문제 상황을 관리해 불필요한 사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데미지 컨트롤이란 위기관리 개념보다는 다분히 ‘방어적’ 개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일단 해당 위기 유형이 일반적 관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는 경우 위기관리 주체는 데미지 컨트롤 전략을 선택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것에 대응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죠.

    가장 흔한 예가 대형재난이 발생한 경우가 됩니다. 지진이나 해일 등으로 엄청난 인구가 피해를 입었을 때 정부는 데미지 컨트롤을 실행합니다. 재난 상황 이후 추가적으로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국민들을 구제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려 노력하는 것에 일단 집중하는 것이죠.

    이 경우 일단 위기관리 주체는 발생한 데미지를 감내하는 한편, 추가적 데미지를 방어해 해 내는 활동에 집중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고, 그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하기 위한 모든 방어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이후 상황이 안정되면 이미 입은 데미지를 돌아보며 관리하게 됩니다.

    데미지 컨트롤은 대부분의 노력을 최악의 상황 방지에 집중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위기관리가 여러 다양한 해결책 마련과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상황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에 균형을 이루어 위기를 관리하려 노력하는 것이라면, 데미지 컨트롤은 주로 상황관리에 집중한다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최악으로 흘러가는 현 상황에서 자신의 역량이 분산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죠.

    데미지 컨트롤을 대응 방식으로 택한 많은 기업들은 시끄러운 위기 상황에서도 수면하에서 몇 가지 노력에만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법적 대응에 집중해 자사의 중대 책임을 일단 벗어보려 합니다. 주요 피해자들과 합의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피해보려 합니다. 규제 및 수사기관과 담판을 벌입니다. 공격적인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원점관리에 힘을 씁니다.

    반면 외부 언론이나 온라인 등에서 어떤 비판과 지적이 있어도 그에 대해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위기관리 주체 스스로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제한하고,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생존전략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일반적 위기관리 방식으로는 관리되지 않을 위기 유형이라는 판단을 하는 경우 위기관리 주체는 데미지 컨트롤을 선택한다 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어떤 경우일까요? 대부분은 자사에게 상당한 책임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되거나, 이미 상당한 데미지가 발생 해 추가적인 데미지가 생기면 재앙이 되는 경우, VIP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는 중대한 위기인 경우일 것입니다.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최악의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데미지 컨트롤을 한다는 것은 이미 해당 위기는 응급실에 들어갔다는 의미와 유사합니다. 출혈이 막대하고, 심박동이나 여러 생체 수치가 최악의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의사는 어떻게 든 생명은 살려야 하겠다는 목적을 가집니다. 사고로 상한 신체부위가 있다면 보다 과감하게 조치를 합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이죠. 일단 생명을 살리고 나야 정상 생활을 위한 재활은 그 다음입니다.

    기업은 데미지 컨트롤에 대한 생각을 하기 이전에 응급실에까지 들어갈 위기를 만들지 않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개념보다는 위기관리 개념을 통해 사전과 사후에 걸친 정상적 대응과 전략에 더욱 정성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기업이 건강해야 위기관리도 가능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너무 혼란스러운데 어쩌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상황이 하도 가변적이어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상황이 더 발생될지에 대한 감도 없는 상태고요. 컨설턴트께서 보실 때 지금은 어떤 상황이고, 저희가 무엇을 해야 현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저희가 너무 혼란스러워서요””

    컨설턴트의 답변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높은 파도와 싸우더라도, 배위에 있는 큰 나침반은 항상 일정 방향을 향하고 있을 것입니다. 파도의 울렁거림으로 나침반이 불규칙하게 움직인다고 그 나침반이 스스로 방향을 잃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조직도 나침반과 같은 자세와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해당 위기가 어떤 방향을 향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예상하는 것만큼 중요한 초기 대응이 없습니다. 위기가 발전해 갈 방향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최악의 상황을 예측’하는 것입니다.

    흔히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최악을 예상하고, 최악을 피하려는 노력을 하라”는 조언을 하는데, 그와도 관계 있는 의미입니다. 현재 상황을 면밀하게 들여다 보면, 향후 어디까지 최악의 상황이 전이될 수 있을 것인지 알게 됩니다. 물론 상상 하거나, 여럿이 모여 고민 하는 주제로서는 심리적 거부감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폭풍 속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일단 최악의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면,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도 이미 예상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다음 중요한 단계는 그 판단 속에서 ‘위기관리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 또한 최고의사결정권자와 함께 숙련된 위기관리팀이 내려야 하는 아주 중요한 결정입니다. 정치적으로도 다분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너의 직원 폭행이 문제가 되었다 해 보시죠. 그 폭행 자체는 아주 경미하고 법적으로도 처벌 대상에 미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고 이 것이 갑질이라는 프레임으로 대대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내부적으로 가장 우선적 의사결정은 ‘이렇게 흘러가다 보면 최악에는 어떤 상황까지 예상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 이어야 합니다.

    폭행당한 직원(원점)이 적극적으로 불만과 고발을 진행하고. 언론과 온라인에서 이를 전파하며 공분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된 이전 제보들과, 폭로, 추가 피해 경험자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논란의 대상자가 늘어나고, 논란의 주제도 늘어납니다. 수사기관과 각종 규제기관이 움직일 것입니다.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공개소환이 개시됩니다. 정치권이 화를 내고, 청와대도 개입 할 것입니다. 불매운동에 이어 시민단체의 집단소송이 개시됩니다. 최악의 경우 자사의 오너와 임원이 대대적인 법적 처벌을 받게 되고, 심지어 회사 사업에 치명적 데미지가 발생할 것입니다. 이 정도 최악의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를 상상해 보시죠.

    그 다음은 ‘그러면 우리의 위기관리 목표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를 고민할 차례입니다. 어떤 임원은 이와 관련 해 “오너와 임원들의 사법 처벌까지는 가지 않아야 한다”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임원은 “수사와 규제기관이 움직이게 하면 안됩니다. 그 전에 마무리 합시다”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논의를 통해 목표가 설정되면 그때부터 그 목표 달성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위기관리 실행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수사와 규제기관이 움직이기 전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표가 세워졌다면, 그 이전 오늘이라도 빨리 대대적 사과와 배상 그리고 재발방지대책을 강력 발표하고, 고개를 숙이는 실행이 필요할 것입니다. 불만 직원(원점)에게는 압도적 지원을 해 관리하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 외 수사나 규제기관이 자극 받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사전 노력들을 집중 실행합니다. 이 것이 목표에 의한 실행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묻는 기업은 이런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위기관리 목표도 설정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폭풍 속에서 나침반을 던져버린 채 그냥 파도에 몸을 맡기면서 잔잔해 지기를 기도합니다. 위태로울 뿐 어떤 관리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11. 우군을 확보해 놓으라

    [기업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11편] 우군을 확보해 놓으라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주변을 둘러 보라. 우리 회사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이해관계자들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확인해 보라. 평시에는 여러모로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야기하는 이해관계자들이라 하더라도 특정 위기가 발생하면 그 손길을 선뜻 주기 어려워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특히 위기 직후 해당 기업이 집중적으로 여론의 포화를 맞게 되면, 그 기업 임원들에 직접 전화를 받는 것도 꺼려하는 이해관계자들이 생겨난다. 공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해 달라면서 비밀준수 계약을 맺고 위기의 기업을 돕는 컨설팅 회사들도 있을 정도다.

    그렇게 친하던 기자들도 막상 우리 기업이 위기에 처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도움을 주기 어려워한다. 모두 문제를 지적하는데, 혼자 나서 그 기업을 두둔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 그리고 국회 등도 대부분 위기 시에는 해당 기업과 일정 거리를 두려 한다.

    위기가 발생 했을 때 기업 스스로 이렇게 질문 해 보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해관계자는 누구인가? 누가 우리편이 될 수 있을까?’ 만약 그 질문에 답을 선뜻 하기 힘들고, 대부분 주변 이해관계자들이 손사래를 친다면 위기관리 차원에서 새로운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상황에서는 이해관계자들이 개입하기 어려워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우군 역할을 해 줄 이해관계자를 만드는 결단과 실행을 해야 한다. 적대적 원점 이해관계자나 상당히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이해관계자를 하루 아침에 우군으로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쳐도 나머지는 다르다.

    면밀하게 이해관계자들을 분석해서, 중립 또는 중립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이해관계자를 위기관리 관점에서 관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발생한 논란 때문에 특정 규제기관에게 사회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면, 그 규제기관과 협의해 기관의 조사에 보다 적극적이고 전향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한 수가 될 수 있다. 시민단체가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면, 기업측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고 의혹을 감소시키는 전향적 실행을 하는 것이 상호간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언론에게도 마찬가지다. 부정적 비난을 감수하고 버티기 보다, 기자회견을 열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획기적 개선이나 재발방지책을 전달하는 것도 언론에게 기사거리를 주는 노력이 되겠다.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가족까지 포함해 커뮤니케이션 할 수도 있다. 현재 회사에게 처한 위기상황을 솔직하게 전략적으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작업은 유효하다. 그들이 사회로 나가 회사를 위한 우군이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강력한 잠재적 우군은 사실 소비자나 고객들이어야 한다. 기업 위기관리 사례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통해 위기를 관리한 케이스들이 꽤 된다. 더욱 더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늘리려 애쓰고, 그들에게 도움과 신뢰를 보여주길 요청하는 위기관리처럼 멋진 것이 없다.

    위기 시 이런 우군 만들기 전략이 유효 하려면 먼저 해야 할 숙제가 있다. 평시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자산이 존재하도록 꾸준히 노력했어야 했다는 숙제다. 그런 숙제를 등한 시 했다면, 현실적으로 우군이 되어줄 이해관계자를 찾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또한 주저해 하던 이해관계자가 이전보다 훨씬 부담을 덜 느끼며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은 거의 예술에 가깝다. 상당한 수준의 정무감각과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강한 의지가 필수적이다. 정치적 수준의 제스츄어와 투자 그리고 관심이 필요충분 조건이다.

    일정 기간 어려움을 겪은 기업 위기 케이스의 말미로 가면 대략 이런 이해관계자 반응들이 나오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제 비판은 그만하고 해당 기업에게 개선 기회를 주자” “사실 알고 보니 이 기업만의 책임은 아니었다” “깊이 사과하고 뉘우치고 있다. 과감한 결단을 통해 재발방지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참작한다” 등의 이해관계자가 태도변화 말이다.

    이런 변화는 대부분 위기관리를 진행하는 기업의 전략적 우군 만들기 작업의 결과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전반적 이해관계자 시각들이 변화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상황이 점차 소멸 수준으로 나아가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를 받아 너무 광적이었던 비판에 대한 반성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해당 기업이 일종의 사회적 부조리의 피해자인 것처럼 해석하는 시각도 나타난다. 희생양론이나 마녀사냥론이 그런 것이다.

    이런 우군 만들기 전략이 얼핏 상당히 극적이고 어렵지 않은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위기를 맞은 기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숙제에 대한 부담과 그 숙제를 하지 않았음을 후회 하게 된다. 평소 숙제 하지 않는 학생은 시험을 잘 보기 어렵다는 단순한 교훈을 얻게 된다.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 여론을 왜 신경 써야 하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는 사실 법적으로 잘못이 없어요. 얼핏 보면 문제 있어 보이지만 위법은 아니에요. 굳이 문제를 집어내도 경미한 수준이에요. 근데 이런 사소한 이슈를 가지고 여론과 언론이 여기저기 난리를 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그런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여론과 언론을 신경 써야 하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위기관리 명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지진이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지진에 흔들린) 빌딩이 사람을 죽인다. (Earthquakes Don’t Kill People, Buildings Do)’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위기 발생 시 여론의 위해도를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진(논란) 그 자제가 사람(기업)을 죽일 수는 없지만, 지진(논란)에 의해 흔들린 빌딩(여론)이 무너지면 사람(기업)을 죽게 할 수는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슈나 논란이 그 자체만으로 기업에게 큰 데미지를 주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슈나 논란이 여론을 흔들어 그 여론에 의한 후폭풍이 기업에게 큰 데미지를 주는 것이죠. 아무리 큰 지진(논란)이 일어나더라도, 빌딩(여론)이 끄떡 없다면 사람(기업)은 다치거나 죽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 지진(논란)임에도 빌딩(여론)이 심하게 흔들리다 무너져 내리면 사람(기업)을 다치게 되겠지요.

    지금 질문하신 그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특히 법무나 로펌쪽에서 그런 방향성의 조언을 많이 할겁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미”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위 명언에 비추어 볼 때 지진에 의해 흔들릴 수 있는 유일한 빌딩을 ‘법’이라 생각하는 것이죠. 이 정도의 지진(논란)은 저 큰 빌딩(법)을 흔들지 못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업에게 조언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슈나 논란 그리고 위기를 전체론적 시각으로 보면, 그 빌딩을 ‘법’이라는 하나의 기준만을 가지고 바라보는 시각에는 분명 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개인이 아니라 광범위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의 차원에서는 지진 발생 시 우려해야 하는 것이 ‘법’이라는 하나의 빌딩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일단 위기가 발생 했을 때 위기관리 주체인 기업이 여론에 아랑곳 하지 않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사회적 공분은 계속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언론은 지속적으로 여러 정보들을 뉴스화하면서 여론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수사기관, 규제기관등은 이런 여론에 떠밀려 어떤 조치라도 실행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됩니다. 기업을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어떻습니까? 의원 개개인을 넘어 정당과 국회 차원에서의 개입이 필요한 상황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청와대와 주무부처들 또한 여론을 거슬러 위기에 빠진 기업을 감쌀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 의견을 밝히게 되고, 그에 따라 수많은 기관들이 위기관리 전쟁에 투입되게 됩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법’이라는 빌딩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주변을 둘러싼 여론과 관계된 그 수 많은 이해관계자 빌딩들이 쉼 없이 흔들린다면 기업은 어떤 대응이 필요하겠습니까? 여러 이해관계자 빌딩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면 그 옆의 ‘법’이라는 빌딩만 그대로 꼿꼿할 수 있을까요? 법조인들은 ‘법은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법이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단언하지는 못합니다. 그만큼 여론은 중요하고 위해 가능한 것입니다.

    위기관리 실무적으로 여론을 관리하기 위한 기업의 여러 대응은 이를 둘러싼 많은 수사 및 규제기관, 정부부처가 받고 있는 여론의 압력을 감소시켜주기 위한 2차적 목적도 있습니다. 해당 기업이 여론을 잘 관리해 정상참작을 받는 상황이라면 굳이 수사나 규제, 정부기관이 개입할 필요가 없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한 지진이 났더라도 이해관계자 빌딩들을 하나 하나 받쳐 지탱해 흔들리지 않게 해 주는 것이 성공하는 위기관리입니다. ‘법’이라는 빌딩 아래에 숨어 이 지진이 끝나기만 바라고 있는 기업이 되지 마십시오. 주변에 ‘여론’이라는 어마 어마한 빌딩 숲을 바라보십시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일이 터지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회사에서 우려하던 일이 조만간 터질 것 같습니다. 조마 조마 했었는데, 결국 터질 것 같습니다. 여러 대응 준비를 하긴 했습니다만, 위기라는 것이 또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몰라 노심초사 하고 있습니다. 추가적인 조언을 좀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종종 우리가 쓰는 말들 중 재미있는 것 하나가 ‘일이 터졌다’는 표현입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은 스스로 터지지 않습니다. ‘(부정적인) 일’이 스스로 생겨나 알아서 터져버리는 것이라는 표현은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사람이 일을 터뜨린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주체가 있어야 ‘일’이라는 객체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사람’입니다. 모든 위기는 ‘사람’에 의해 발생됩니다. 그리고 ‘사람’에 의해 확산됩니다. ‘사람’에 의해 관리되며, 종결됩니다. 위기관리의 핵심을 곧 ‘사람’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질문에서 ‘일이 터질 것 같다’는 표현의 실제 의미는 ‘누군가 또는 어떤 사람(들)이 무언가 부정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것 같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일단 그 표현에 주체와 객체가 빠져 있으니 상당한 정보가 빠져있는 것입니다.

    일단 해당 일(위기)이 발생되기 까지 그와 관련해 위기를 터뜨릴 수 있는 이해관계자들을 정리하셔야 하겠습니다. 이미 회사측에서 누가 그 일(위기)을 터뜨릴 것인지 알고 계시겠지만, 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위기가 가시화 되는데 일조하거나, 관련해서 현재 환경을 조성하고 있는 핵심 이해관계자들을 좀더 면밀히 분석해 보셔야 그 다음 준비 작업이 가능해 집니다.

    위기와 같이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어느 개인 단독의 실행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종의 원점 역할을 하는 개인 또는 단체가 존재하고, 그를 돕는 공모 또는 조력자들이 존재해야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기업 차원에서는 보다 폭 넓은 통합적인 이해관계자 시각을 보유하고 있어야 위기관리가 가능합니다. 일단 특정 개인과 그를 돕는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국회 차원의 지원이 있어서 위기가 발생 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그에 대한 대응에서도 마찬가지로 통합적 이해관계자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해당 위기가 수면 위로 떠 오르게 된다면, 추가적으로 개입이 예상되는 이해관계자들은 누구일지 예측해야 합니다.

    해당 위기에 영향을 받아 소비자들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경쟁사가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온라인 공중들, 투자자, 계약 파트너, 직원과 가족들, 입사예정자들, 각종 규제기관, 조사기관 등등의 개입을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추가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적 심각성이 더해져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런 상황적 심각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전적 위기관리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기업 차원에서 사전적으로 고강도의 조치를 취해 불필요한 이해관계자 추가 개입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개념입니다.

    스스로 위기를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 남에 의해 ‘관리 당하는’ 지경이 벌어집니다. 스스로 상황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수사기관이 그 조사를 대신 해 시비를 가려주는 경우 같은 것이죠. 위기 발생 이전과 직후, 그리고 그 이후에 이르기 까지 ‘사람’에 대한 시각에는 필히 집중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일은 절대 스스로 터지지 않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대형 위기를 우리는 왜 항상 몰랐었다 할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항상 몰랐다. 항상 대부분이 몰랐었다 한다.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그렇게들 군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들에게 “정말 몰랐던 것인가?” 물으면 이내 답이 궁해진다. “꿈도 꾸지 못했던 위기인가?”라고 물으면 침묵 한다.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주체에게 그 스스로 ‘몰랐던’ 그리고 ‘꿈도 꾸지 못했던 위기’라는 것이 어떻게 발생 가능할 것인가? 실제 현장에서 아무 전조(前兆) 없이 발생하는 위기라는 것이 대체 존재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억지스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자 일지 모른다.

    실제로는 ‘알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 위기가 언젠가는 발생할 것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그 위기가 ‘언제’ 발생할지 정도는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위기를 몰랐었다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상당 수의 위기관리 주체는 ‘알았지만 관심 두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이 말이 보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위기란 사전에 ‘알았다’ 또는 ‘몰랐다’의 주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조금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들켰다’ 또는 ‘들키지 않았다’의 주제가 아닌가 한다. 많은 조직들은 이미 해당 위기가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올라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올 것이 왔다’는 표현도 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일 수 있을 것이다.

    항상 대형 위기가 발생해 알고 보면 그 위기의 뿌리는 깊고 오랫동안 지속된 것으로 알려진다. 언론이나 규제기관이 몇 일에서 몇 주면 그 뿌리를 정확하게 캐내곤 한다. 만약 그 위기관리 주체가 그 보다 오랫동안 그 위기의 뿌리를 감지 조차 하지 못했었다면, 그것은 철저한 직무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완전하게 직무를 유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감지 했었지만, 개선이나 관리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왜 매번 그래야만 했을까? 이는 사회적 임팩트가 큰 대형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상식적으로 누구든 자신 앞에 다가오는 위기를 알고 있다면, 스스로 재빠르게 그 위기를 완화시키려 하거나, 방지책을 찾아 나서거나, 관리 활동을 즉각 실행하는 게 정상일 텐데 왜 그러지 못할까?

    첫째, 위기 전조에 주목하지 않고 그냥 흘려 보낸 유형

    일종의 무관심이다. 철저한 직무유기일 수도 있다. 문제가 눈에 보인다 해도 자신들은 보지 못했다는 경우다. 잘 알려진 하인리히 법칙에서 이야기하는 300번의 전조와 관련된 이야기다. 큰 문제를 겪는 위기관리 주체들은 대부분 한번의 대형 위기가 발생하기 이전에 선행되는 전조들을300번씩이나 그냥 무시해 버렸다는 바보 같은 이야기다. 이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아주 일부 무능한 조직을 빼고는 전혀 일반적이지 못하다.

    둘째, 위기 전조를 발견했지만, 이를 내부에서 공론화 하지 못한 유형

    이 경우 위기관리 관점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모든 위기 요소들은 직원들의 책상 속에 있다.”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 관점에서 보면 ‘숨겨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직원들 관점에서는 ‘관심 받지 못했던 것’이라고 한다. 이는 조직내부적으로 위기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는 경우에 종종 해당한다. 한마디로 위기와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조직이다. 이 때문에 일선에서 상부로 위기 전조를 보고 해도 의사결정 중요도나 선호도에서 한참 밀리게 된다. 실제 위기가 발생해 버리면 그 때가서 경영자들은 “몰랐었다”하는 이유가 된다.

    셋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의지가 없었던 유형

    이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다. 위기관리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서 정치적인 행위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제대로 된 위기관리는 힘들다. 일부 부서에서 특정 위기의 전조를 발견했다고 치자. 이를 공론화 해서 문제 의식이 경영진 사이에서 형성 된다. 그 이후 일부 기업에서는 정치적인 논란이 발생한다. 이 전조에 대한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왜 일이 이렇게 될 때까지 내버려 두었는가? 이 전조를 지금이라도 해결하자 하면 어떤 부서와 누가 다치게 될까? 누가 제일 고생 하게 될까? 그런데 누가 왜 이런 공론화를 하고 있나? 그 의도가 뭔가? 이런 조직 내 고민이 길어진다. 결국 누구도 아무도 직접 관리하려 하지 않게 돼버린다.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이 경우에는 차라리 다 같이 몰랐다 하는 게 더 쉬워진다.

    넷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관리 못할 이유가 더 컸던 유형

    ‘누가 함부로 이 위기를 관리하자고 할 수 있을까?’하는 위기다. 예를 들어 오너와 관련된 위기인 경우가 그렇다. 오너께서 앞으로 큰 문제가 될 만한 행동을 하고 계신다. 그 정황을 조직에서 감지했고, 그 심각성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해도 해당 조직이 정작 위기를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오히려 위기를 관리하자고 나서는 부서나 임원은 다른 마음이 있다고 비판 받고 오히려 그런 경고 행위가 문제가 되어 버린다. 전조는 공식적으로 무시된다. 몰랐던 것으로 추후 알려진다. 정확히는 그렇게 알려지길 원한다.

    다섯째, 위기 전조와 심각성을 알았지만, 잘못된 대응책을 세웠던 유형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경우 위기가 발생했다는 의미는 이전에 실행된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오히려 위기를 더욱 더 키워 폭발 시켰다는 의미일 것이다.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감지된 문제를 정공법을 통해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무마나 은폐 시도를 통해 사전 대응 하려 했던 경우다. 이 경우에는 사후에 ‘해당 조직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는 의심을 크게 받게 된다. 실제로 사전에 실행했던 행위들이 일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도 해당 조직은 “몰랐다”고 한다. 팩트가 어떻게 드러나건 지속적으로 몰랐다는 포지션을 지키려 노력한다.

    여섯째,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에서 살아 남기 위해 몰랐다는 택한 유형

    위기가 발생하면 바로 당면하게 되는 ‘악당과 바보’의 딜레마. 위기 발생 이후 많은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이 질문을 한다. ‘이 문제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 이에 대한 조직의 질문은 “알고 있었다”와 “몰랐다”의 두 옵션으로 나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해당 문제를 “알고 있었다”라고 답하게 되면 해당 조직은 그 심각한 문제를 알고도 수수방관했던 ‘악당’이 되어 버린다. 더 이상 정상참작이나 사회적인 관용이 적용되기 힘든 상황이 되어 버린다.

    반면 “몰랐다” 답하게 되면 “어떻게 그런 큰 문제를 모르고 있었나?”는 비판은 받겠지만, 일부 책임은 면하게 된다. 대신 ‘무능한 바보’ 이미지를 떠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조직들은 ‘악당’으로 인정 받느니 ‘바보’라는 이미지를 택하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조직들이 습관적으로 위기 발생 이후 “몰랐다” 이야기한다.

    이상의 유형들은 다시 한번 살펴보자. 실제로 몰랐던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할 것이다. 몰랐다 이야기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보다 편리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느끼기 때문에 몰랐다 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몰랐다’는 조직의 포지션이 실제로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해당 조직이 “몰랐다”고 했지만, 언론이나 규제기관이 밝혀보니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는 경우다. 이미 그 조직이 해당 문제를 오래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고, 그 문제를 수수방관 했으며, 오히려 그 문제를 덮고 숨기려 했고, 결국에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게 되니 단순히 몰랐다 주장 하고 있다고 이해관계자들이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 만큼 이해관계자들의 관심과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직이 스스로 투명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는 위기관리 환경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비밀은 없다는 말도 요즘처럼 생생한 적이 없었다. 환경은 그렇게 훌쩍 변해 버렸다.

    그에 비해 조직이 가진 위기관리에 대한 관심, 문화, 역량, 습관, 방식들은 별반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예로 든 여러 유형들을 골고루 답습하고 그를 반복하는데 익숙하기만 하다. 이미 여러 케이스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는 데도 계속 ‘몰랐다’는 포지션으로 일관한다. 최초 얻은 ‘바보’의 포지션이 안타깝게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결국에는 ‘바보 악당’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조직들은 계속 ‘몰랐다’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런 실패의 전철을 그대로 밟지 않으려면 위기관리에 대해 보다 큰 관심을 보여야 한다. 위기의 전조를 실시간 감지하려 애써야 한다. 그 심각성을 입체적으로 논할 수 있는 체계와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내부적으로 위기 민감성을 극대화 하고, 위기관리를 위해 이를 쉽게 공론화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제대로 된 사전 대응을 통해 위기의 발생을 지금보다 더욱 더 제한해야 한다.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정확하게 책임 범위를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야 살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조언을 추가한다.

    일선 조직이 문제의 전조를 감지했다고 치자. 그 문제의 전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해당 조직이 어떤 대응을 기해야 하는가 고민 할 때 참고 해 볼 기준이 하나 있다. 의사결정 그룹이 다 함께 모여 해당 전조를 놓고 이렇게 스스로 물어 보길 바란다.

    “언론이 이 문제를 세세하게 보도했을 때 우리 조직에게 어떤 상황이 예상될 것인가?”

    언론이 해당 문제를 보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말이다. 일단 보도가 아주 자세하게 된다 가정하고 그 이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 문제가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을 때, 고객, 직원, 거래처, 규제기관, 기타 정부, 국회, 정치권, 시민단체 등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로 인해 우리 조직이 어떤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게 될까? 이런 질문을 해 보자는 것이다.

    만약 그런 질문에 대해 “보도가 되어도 별반 우리의 책임을 묻는 분위기는 조성되지 않을 것이다” 또는 “보도되더라도 별 문제가 없어 이해관계자들이 우리 조직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주를 이룬다면 해당 전조는 아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반면에 보도가 되면 우리 조직에게 큰 책임이 지워질 것이라던가,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공격적인 영향력을 행사 하게 될 것이라는 답변이 나오면 이 전조는 필히 신속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큰 문제인 것이다. 그 이전에 “이는 보도되면 안 된다”는 내부 느낌이 있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의 전조란 의미다.

    사회에서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언론을 통해 보도가 되어도 문제 없는 일만 해야 맞다. 언론에서 보도하려 해도 너무 당연하고 일반적이라 보도되지 못할 일들이 대부분인 게 정상이다. 만약 아주 일부의 경우 보도되면 민감할 전조들이 있다면, 필히 그 전조를 관리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지속적이고 민감한 감지와 개선 노력들이 있어야 위기는 관리 된다. 기존의 “몰랐다”는 비전략적인 노력은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경영 품질의 관점에서도 제대로 된 조직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 그럴 리가 없고 그럴 수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 조직의 현실이다.

    항상 ‘몰랐다’는 포지션 뒤로는 ‘숨는 실행’이 따라온다. 한마디로 쉬쉬하는 것이다. 해당 조직은 당연히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고 피해 다니게 된다. 이는 곧 위기 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길티(guilty)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부정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셈이 돼 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인가?

    지금이라도 어떤 문제의 전조를 발견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자. 이 것이 언론에 보도돼도 괜찮을 까?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진짜 그럴까? 이런 질문이 곧 위기관리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