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BRAIN 기고문: 위기 관리 스토리
스트래티지샐러드
OO주식회사 홍보실 홍실장. 홍실장은 공항에서 봉변을 당한 사장께서 지시하신 긴급 대책 회의를 임원들에게 통보했다. 오후 11시. 회의장에는 숙연함이 맴돌았고, 사장의 이마에 붙여져 있는 상처치료용 거즈가 그 무거움을 더하고 있다. 사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까지 상황은 홍보실 보고를 받아서 어느 정도 알겠는데,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나?”
법무실장이 로펌 변호사들과 세부적인 대응 활동들을 브리핑하기 시작한다. 사장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다가 한 말씀 하신다. “그렇게 법적으로만 대응하는 걸로 충분한 거요? 아니면 정치권에도 좀 커넥션을 놓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법무실장과 대관팀장이 한마디로 거든다. “사장님, 그건 이렇게 공개 회의상에서 세부적으로 말씀 드리기는 그렇고요, 나중에 따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홍실장은 이런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 “홍보실에도 세부적인 활동 사항들에 대해 어느 정도 정보를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장은 홍실장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눈짓을 보낸다. 일단 회의를 마치고 임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홍실장에게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맡은 홍보실 조과장이 다가 온다. 아직 퇴근 이전이다. “실장님, 직원들에게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까요? 내부 인트라넷에서 도는 이야기들도 심상치가 않네요.” 홍실장은 일단 두고 보자고 조과장을 돌려 보냈다. 뭐든지 지금 알 수 있는 게 없고 파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니 홍실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출입기자 관계를 담당하는 신부장도 찾아와 하소연을 한다. 오늘 하루 종일 수없이 많은 기자 문의를 받았는데, 무언가 공식적으로 발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다. 신부장을 따라 들어온 온라인 담당 김 대리는 “소셜미디어상 여론이 극도로 안 좋습니다”한다. 소셜미디어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볼멘소리다. ‘제기랄…뭐라 말할게 있어야지 말을 하지’ 홍실장은 혼자 중얼거린다.
이때 비서실장이 전화를 해왔다. “홍실장님, 공항에서는 상당히 적절하지 못한 대비였습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분명히 직원들 풀어서 기자들 차단하라 하셨는데 그게 제대로 안된 이유가 뭡니까?” 홍실장은 성질이 나서 당장 비서실장실로 달려 올라가 한방 먹이고 싶어진다. 하지만, 여러 이유들을 대면서 설명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홍실장님, 이번 건은 사장님께서 그냥 넘어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비서실장이 남긴 말이다.
법무실장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홍실장님, 공항 사고 건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그러는데…몇 일 뒤 사장님 검찰 출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말씀 드리는 건데 오늘 같이 그렇게 기자들 관리하시면 안됩니다. 시간이 좀 있으니 검찰 출두하실 때 기자들 관리 좀 잘해 주세요.” 홍실장은 전화를 끊으면서 이걸 어쩌나 하는 고민에 빠진다.
그 다음날 아침 홍실장은 OO지검이 있는 OO동으로 향한다. 그 이전에 검찰 출입하는 기자들 몇 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예전 검찰 출입하면서 힘 좀 썼었던 현재 모일간지 데스크에게 찾아가 일단 대처하는 가이드라인을 얻었다. “일단 어른에게 포토라인 정해 거기 서서 몇 말씀 하시고 들어가시라고 해. 그냥 치고 들어가면 또 불상사 난다. 그리고 쓸데 없이 뒷문이나 주차장 통해 몰래 들어가시지는 말라고 해. 그거 이미지 문제야” 이런 조언을 받았다.
검찰 출입 기자실 간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가능한 ‘보기 좋게’ 입장하실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했다. 몇몇 TV기자들에게는 직접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 출두하시는데요?”라고 묻는 질문에는 그냥 웃음으로 답하면서 만약 하시게 되면 잘 부탁 드린다고만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회사로 돌아와서 홍실장은 법무실장과 대관팀장에게 사장의 검찰 출두 일정에 대해 문의한 뒤 사장실로 올라갔다. 홍실장은 워낙 사장의 성격을 잘 알기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장님, 이번 공항에서의 문제는 기자들이 원하는 포토라인을 설치하지 않은 것이 기본적으로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검찰 출두 하실 때에는…” 이 말을 듣자 마자 사장께서 말씀 하신다.
“나 기자들 앞에 서는 거 못합니다. 이번에도 그 OOOTV 그 카메라 기자 XX는 내가 고소하려다가 말았어. 포토라인이고 뭐고 내가 왜 그 사람들 앞에서 맘에도 없는 이야기 해야 합니까? 내가 로펌 변호사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냥 뒤로 출입하는 곳이 있다고 하더라고, 몰래 들어가서 조사 받고 나올 수 있게 해달라고 했으니 홍보실은 빠지는 게 좋겠어요” 홍실장은 눈을 감으면서 또 올게 왔구나 하고 한숨을 내쉰다.
“사장님, 저희는 그래도 대기업입니다. 대기업 사장님께서 그런 모습으로 언론을 피하시는 건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얼마 전 OO그룹도 그렇고 OOO산업 회장께서도 당당하게 검찰 출두하시면서 ‘문제 없다’ 커뮤니케이션 하셨습니다. 일반적인 방식을 따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홍실장이 간곡하게 이야기했다. 사장님은 “일단 로펌 쪽 이야기 좀 더 들어보고요” 하신다.
홍보실로 들어서니 기다렸다는 듯이 직원들이 각자 자신들의 담당 분야 이야기들을 가지고 몰려 온다. 출입기자 이야기,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모니터링 이야기, 사내 인트라넷과 커뮤니케이션 이야기, 함께 CSR을 진행하던 NGO에서의 문의 이야기 등등 모든 업무들이 밀려 있다.
일단 법무실 의견을 받아서 회사의 공식입장을 정리했고, 이에 따라 각각 이해관계자 커뮤니케이션을 좀더 적극적으로 실행하라 지시를 내렸다. 메시지에는 한계가 있어도 가능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들을 챙겨 듣고 공감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했다. 단,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는 사안들에 대한 추측이나 단정은 절대 피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주었다.
홍실장은 그날 밤 꿈에서 사장이 OO지검 출입문에 누워 계시는 꿈을 꾸었다. 기자들이 그 위로 셔터를 눌러대고 TV카메라를 가까이 비추고 있다. 손발이 움직이지 않아 마치 가위 눌린 듯 홍실장은 꿈에서 깼다. 새벽 4시 반이다. 회사에 좀 일찍 나가봐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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