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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비맥주 희망퇴직 부럽네 [매일경제 2006-01-13]

    07:53]

    “그런 조건이라면 나도 조기 희망퇴직하겠다.” 최근 퇴직금의 2배 이상을 위로금으로 주고 퇴직 후 창업까지 지원해주는 오비맥주 의 조기희망퇴직 조건에 주류업계는 물론 다른 산업계 종사자들이 부러워하고 있다 .

    오비맥주는 하이트맥주의 진로 인수 등으로 인한 주류시장 변화에 따른 대응책으로 지난 5일부터 근무연차 5년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조기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운영 하고 있는데 희망자가 기대 이상으로 몰려 회사 측이 고민에 빠졌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직원 1800명 중 250명이 조기 희망퇴직을 신청해 13일까지 받 기로 했던 희망퇴직자 접수를 11일 조기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오비맥주가 희망자 전원 의견을 받아들여 조기 퇴직시킨다면 회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다.

    이처럼 희망퇴직자들이 대거 몰린 것은 희망퇴직 조건이 파격적이기 때문이라는 것 . 사측은 조기 희망퇴직 신청자들에게 △5년 이상~10년 미만 근무자에게는 평균 임금 의 12개월치를 △10년 이상 ~ 만 15년 미만은 평균 임금의 24개월치 △15년 이상 근무자에게는 평균 임금의 30개월치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조기 희망퇴직자는 퇴직금 외에도 근무연차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퇴직금의 2배 이상을 위 로금으로 더 받게 되는 셈이다. 이 같은 파격적인 혜택은 국내에서는 그 동안 일부 금융 등 서비스 업종에서는 있 었지만 제조업체에서는 드문 일이다.

    또한 조기 희망퇴직자가 주류도매상을 인수할 경우 퇴직 당시 직급에 따라 1억~3억 원을 장기 대출해 주고 1년거치 100개월 무이자로 상환하도록 했다. 맥주펍을 창업 하려는 퇴직 직원에게는 5000만~1억원을 사업 자금으로 장기 대출(6개월 거치 50개 월 무이자 상환)해 줄 계획이다.

    이처럼 오비맥주가 희망퇴직자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게 된 것은 모회사인 벨기 에의 인베브 인사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인베브는 40개국에 진출해 있는 세계 최대 맥주회사다.

    정용민 오비맥주 홍보팀장은 “오비맥주의 희망퇴직 프로그램은 회사와 직원이 상생 (win-win) 환경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호응도가 예상 외로 높다”면서 “퇴 직자들의 만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창업 지원으로 오비맥주의 지원 세력 확대라 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성회 기자]

  • OB맥주 임직원들 넥타이 풀었다

    [매일경제 2005-03-10 17:26]

    오비맥주 임직원들은 요즘 정장에 넥타이를 벗어던지고 ‘자유복’ 차림으로 출 근한다.
    이 회사는 최근 검정 양복으로 상징되던 사내 복장규정을 캐주얼로 바꿨다. 캐 주얼 복장규정은 1933년 회사가 출범한 이래 72년 만에 처음 있는 일. 그 동안 영업의 중요성을 내세워 영업사원은 물론 모든 임직원에게 정장을 입도록 해왔 다.

    그러나 올해 초 부임한 패트리스 티스 사장(49) 지시로 복장에 변화가 왔다.

    티스 사장은 최근 “맥주 소비의 대부분은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이루 어지는데 맥주를 생산ㆍ판매하는 사람들이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하고 시장을 바라보면 절대로 시장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넥타이를 풀고 소비자에게 더 가 까이 가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오비맥주 임직원 1800여 명은 이달부터 정장을 벗어버리고 다양한 캐주얼 복장 차림으로 일하고 있다.

    정용민 차장은 “면바지에 점퍼를 입고 출근하는 것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간부 사원들이 캐주얼 복장에 앞장서고 있고 고객 반응도 좋다”고 말했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취임한 지 불과 두 달여 밖에 안된 외국인 사장이 한국 의 형식적이고 관행적인 문화를 지적한 것 같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 다”고 말했다.

    <김성회 기자>

  • 외국기업 CEO 잇단 방한

    [문화일보 2005-01-21 12:32]

    (::한국 자회사 사업현황·시장상황 ‘현장체크’::) 한국에 자회사를 두고 있는 외국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최 근 한국을 방문, 주목을 받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테스코 홈플러스의 최대주주인 영국 테 스코, 오비맥주의 모회사인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 인베브, 월마 트코리아를 둔 월마트 등 국내에 사업장이 있는 외국 대기업 CEO 들이 잇따라 방한했다. 이들 CEO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한국내 자회사의 사업현황과 한국의 시장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

    테스코의 테리 리히 회장은 지난 18일 한국을 방문, 21일까지 3 박4일간의 일정을 보냈다. 그는 방한기간에 새로 개점한 매장은 물론 다른 경쟁업체 매장도 방문하며 할인점 시장을 꼼꼼하게 챙 겼다.

    설도원 삼성테스코홈플러스 상무는 “리히 회장은 지난 99년부터 매년 1~2회씩 한국을 직접 방문해 오고 있다”며 “방한기간에 는 주로 매장을 둘러보며 전반적인 유통시장을 점검한다”고 말 했다. 그는 리히 회장이 매장을 확인하는 것에 대해 “현장경영 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 브록 인베브 CEO도 지난 11일부터 1주일동안 한국을 방문했다 . 그는 이번 방문에서 오비맥주의 사업계획을 보고 받고, 현지 직원들과 신년인사를 나눴다. 또 이천, 창원, 광주공장을 차례로 찾아 현장을 점검했다. 그는 이같은 현장경영을 위해 매년 3~4 차례 한국을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비맥주 정용민 홍보팀장은 “특히 광주방문에서는 박광태 시장 을 만나 유럽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맥주 브랜드 오렌지붐 국내 생산문제를 협의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월마트 CEO인 리 스콧 회장도 지난해 11월말 1박2일 일정으로 방문해 월마트코리아 일산점과 평촌점을 둘러보며 상품 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등을 점검하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월마트코리아 이세영팀장은 “스콧 회장이 방문했을 때 국내지사 의 브리핑도 있었지만 주된 일정은 매장방문과 직원격려”라며 현장경영 차원의 방문을 강조했다.

    김교만기자 baikal20@

  • 2001년 3월 정주영 회장, 안녕히 가세요.

    2001년 3월.

    한가지 잊은 사건이 이 기간동안에 있었다. 2001년 3월 21일 현대 정주영 회장이 별세를 했다. 숙환이지만 그간 왕자의 난이니 뭐니 해서 현대출입기자들은 말그대로 입에 신물이 나도록 뛰어 다니고 있던 중이었다. 저녁 늦게 속보형식으로 TV에서 정회장의 별세 사실이 보도되었고 현대아산병원입구가 생방송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자동차 담당기자들이 TV화면 여기저기에서 보이는게 난리가 터진 모습이었다. (참고로 자동차는 1진이 국내산자동차, 2진이 수입차를 맞곤한다. 그들은 둘다 현대그룹 (자동차 중심)을 담당한다.)

    다음날 우연히 나와 내 부사수는 중앙일보 기자의 시승차량을 픽업해야 했다. 그 기자왈 “야, 일이 터졌는데 바쁘니 너희가 가지러 와라” “어디계셔요?” “어디긴 청운동이지..” 참 심난하다.

    정주영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청운동 자택. 살아 있을 때도 한번 안가봤던 그 곳에 다른 외산 자동차 레이블을 달고 방문을 해야 하다니.

    택시를 타고 정회장의 청운동 자택 입구 골목에 내렸다. 화환행렬이 보인다. 골목 입구부터 청운동 자택은 한 500m가 훨씬 넘는 언덕이다. 그 언덕 한켠으로 화환들이 단 1m의 틈도 없이 줄을 섰다. 거물이긴 거물이다. 입구부터 무전기를 들고 리시버를 귀에 꼽은 현대의 행사요원들이 이리 뛰고 조리 뛴다. 일단 골목으로 자동차 출입을 막는 것 같았다.

    화환접수처가 골목 입구에 세워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화환 각각에도 등급이 매겨져서 500m간 순서를 지킨다고 한다. 만약 장관급 화환이면 몇번째 이런식이다. 높은 사람의 화환이 나중에 오면 그 사람 등급 이후의 화환들이 다 후진 배치다. 이 일을 십여명의 현대 사원들이 검정양복에 하얀장갑을 끼고 한다. 초봄인데도 땀이 나보인다.

    자택입구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 들어가던지 왜 기웃거릴까. 암튼 우리는 중앙일보 기자를 찾아야 했다. 휴대전화 “어디계셔요?” “여기 기자단 있는데 정회장 집 바로 앞집이야..테니스 코트 있는데 보여?” “아..예” 정회장 자택 주변에 많은 집들이 정씨 일가 소유다. 앞에 테니스 코트가 크게 마당에 있는 집에 기자취재구역을 만들었다. 기자들이 앉을 수 있도록 교실 수준의 차양과 책걸상들을 일렬로 깔았다. 열지어 착하게 앉아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들이 우습다. 한 100명정도.

    TV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무척이나 부산을 떤다. 가만히 보니 1,2,3진이 총출동이다. 기자취재 천막옆에는 언제든지 밥과 술을 먹을 수 있도록 차양 밑에 돗자리가 깔려있다. 현대 여직원으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 검정 바지 투피스를 입고 음식을 나르고 있다. 떡이랑 그런 음식들이다. 기자들이 추울까봐 열난로도 군데 군데 킬 태세다.

    중앙일보 기자가 눈에 띈다. 다른 기자들을 처음에는 피해다니다가 여기저기서 불러대서 인사를 안할 수 없었다. 그 기자왈 “어이 토요타가 여기 왜 왔어?…뭐 먹고 가라. 떡 먹을래?” ” – – 아뇨 됬습니다.” 다른 TV기자왈 “어? 자기 ‘정(鄭)’씨? 무슨관계?”하고 농을 한다. 하긴 기자들은 전장에서도 농을 한다니.

    여기 저기서 어? 토요타가 여기 왜?…한다. 조금 더 있다가는 “토요타 조문”으로 기사를 쓸 태세다. 문제의 그 중앙일보 기자에게 키를 낚아채서 자리를 나서는데, 현대 홍보담당자가 언론 브리핑을 한다. 정 회장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귀가 솔깃해서 들어보니 이건 기자들이 마치 빚장이들 같다. MH, MK에게는 뭘 남겼냐? 그건 어디 몫이냐? 참 웃기는 질문이다.

    한쪽에서는 다른 기자들이 브리핑에도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 정 회장의 일대기를 쓰는 것 같다. 여기 저기 인터넷을 뒤지고 살을 붙여 ‘정주영 송별가”를 짓는 표정이다. 하긴 최근에 이렇게 큰 상(喪)이 없었으니 기자들도 참 상기될만도 할 것이다.

    기자들에게 계속 여기 있어야 하냐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벌써 얼굴에 수염이 성성한 선수들도 있다. “야유 큰일이세요들. 그럼 고생 하세요…”하고 내려왔다.

    나중에 기자들과 밥먹으면서 “강OO의 통곡 조문 이야기” “고OO 설” “정회장의 OO편력” “아들들의 뒷 이야기”등등을 들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과연 현대 답다는 것을 이렇게 초대형 상가 경영을 보면서 느낀다. 일단 일하는 사람이 많고 돈이 많은 느낌이다. 대통령 부럽지 않게 갔다는 평이 와 닿는다. 이상하게 그렇게 반감을 가졌던 정회장에 대한 내 생각도 눈처럼 녹아 바뀐다. 사람의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오늘 아침 정몽헌 회장이 아버지를 따라갔다. 몇일전 부터 정주영 회장의 상가 이야기를 여기다 쓰려고 생각 중이어서 더욱 섬뜻하다.

    MH는 개인적으로 내 선배다. 미국 대학원 선배. 우리학교 메인 빌딩 중 하나인 Dreyfuse Building에 가면 그의 얼굴이 새겨진 유리판이 있다. 우리 학교가 배출한 대표적인 100명의 선배들 중 하나였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학교의 힘도 없어졌다. 학교 총장님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 했는데…

    왜 죽었든, 어떻게 죽었든 사람의 죽음은 성스럽다. 살아있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하는 성스러움이다.

    아빠와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맘이 참 좋지 않다. 성스러움이 좋지 않다니…..안녕 선배.

  • 2000년 11월 후지산과 아타미 온천 그리고 범퍼카

    일본 토요타 프레스 투어 두번째날.

    아침에 동경에서 후지산 밑에 위치한 히가시후지에 있는 토요타 시승장으로 떠난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누가 아침식사를 하는지 않하는지 살펴본다. 그래도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발을 옮기는 기자들이 꽤 있다. 예상보다는 어제밤이 건전했던 것 같다.

    아침을 마치고 히가시후지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기자들 앞으로 어디서 많이 본 노 부부와 일단의 노인들이 상반된 복장으로 떼를 지어 로비를 지나간다. 맨앞의 노인은 츄리닝 바람에 수건을 목에 둘렀다. 뒤에 쫗아가는 여자 노인은 한복차림이다. 뒤에 쫗아가는 노인들은 벗겨진 대머리들에 양복차림이다. 이게 뭐지?

    前대통령 김영삼씨 부부였다. 뒤에는 일단의 수행원들. 당시 2000년말 김 전대통령은 전립선 수술차 일본에 요양중이었다. 기자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리 없다. “안녕하세요.” 한 방송기자가 말을 건넸다. 뛰어가던 김영삼씨. “어? 한국인이신가?” 그냥 지난간다. 근데 왜 특급 호텔에서 뛰어 다닐까? 궁금하다.

    수행원중 한명이 이들이 기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KBS 카메라가 땅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호텔 로비에서 차가 오기를 기다리던 츄리닝 김영삼씨. 다시 돌아온다. “어..한국 기자들이시라구?” 표정이 환해지고 그렇게 다정해 보일 수가 없다. 엄청난 변화다. 기자들이 마치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라도 하듯이 줄을 섰다. 악수를 하면서 관등성명을 댄다. “조선일보 누굽니다.” “동아일보 누굽니다.” 바라보면서 웃었다. 기자들이란. 정치가들이란.

    한 기자가 손여사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지요?”…..손여사 “(미소지으며)…”

    참 기자라는 사람이 시사에 어둡다. 남편 전립선 여행이 부인에게 무슨 좋은 말꺼리라구.

    버스에 다 올랐다. 히가시 후지로 향한다. 정말 멀다. 기자들은 존다. 나는 깨있다. 이거 곤욕이다.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버스가 멈추어 서고, 토요타의 멋진 벨로드롬이 보인다. 자동차만을 위한 시승장. 백자 항아리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가끔씩 시범주행 차량이 그 항아리속을 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벨로드롬의 크기는 아마 잠실운동장 만한 듯 하다.

    기자들이 간단하게 현지 기술인력들에게 브리핑을 받고 시승장소로 이동한다. 26명을 2개조로 나누어 한조는 오전에 VSC (Vehicle Stability Control) 경험주행을 하고 한조는 벨로드롬 시승을 한다. 오후에는 두조가 임무를 교대한다.

    VSC는 자동차가 빗길이나 얼음길에서 차체의 중심을 빼았기지 않게 하기 위해 자동으로 차체를 보정해주는 신기술이다. 빗길이나 빙판길 운전에 서툰 여성 오너 드라이버들에게 인기를 끌 것 같다는 어떤 기자의 평이다.

    실제로 빗물과 빙판길을 재현해 놓은 특수 도로위를 렉서스 LS430이 시속 100km정도로 달린다. 물론 시범운전은 프로 드라이버가 한다. 기자들? 헬멧을 쓰고 뒷자리에 두명씩 앉는다. 조수석에는 한국토요타 손창규 부장이 앉았다.

    빙판길에서 스핀하는 렉서스 그안에서 하얀 헬멧들이 좌우로 움직인다. VSC를 작동시킨후 다시한번 트라이. 차체가 몇번 흔들릴뿐 스핀하지 않는다. 기자들의 헬멧도 그자리에 있다.

    자동차가 돌아왔다. 모두 십년 감수한 표정이다. “어이 장난아닌데..” 이때 장가간 기자들은 “죽을뻔 했네..”하는 표정이고 장가 못간 기자들은 “아, 재밌네..”한다. 처차식이 뭔지. KBS 풀이 VSC 시범 장면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후지산을 배경으로 달리는 렉서스를 잡느냐고 이리저리 뛴다.

    오후에 벨로드롬 시승이다. 렉서스 4개 모델이 정렬되어 있다. 2001년 1월부로 한국시장에 출시될 라인이다. 기자들에게 안전운전 요령을 브리핑하는 토요타직원. 아무도 안듣는다. 기자들은 아마 학교때 리스닝 점수는 제로였을 것 같다. 언제나 기자들은 중요한 이야기는 흘려버린다.

    몇몇 운전면허가 취소된 기자들이 시승을 하려는 요량으로 헬멧을 쓴다. “어..” 괜찮다는 눈짓이다. 그래 해라…다 팔자다.

    분명히 기자들에게 시속 100km를 넘기지 말라고 토요타 담당 직원이 신신당부를 했다. 기자들은 그말을 200km는 넘기지 말라는 소리로 들었는 듯 하다. 모두 최고속력 자랑이다. 4개의 렉서스 차량이 마치 놀이공원 범퍼카 처럼 잘나간다. 기자들은 줄 서 있는 어린애들 같다. 신이난 표정이다. 어디가서 이런 고급차를 200km까지 몰아 보겠나.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오후 5시. 이동이다. 아타미 온천으로 향한다. 기자들과 온천이라. 일본답다. 차가 엄청 막힌다.

    저녁이 다되서 아타미에 도착했다. 호텔안에는 모두 유카다 차림의 가족들이다. 참고로 일본 유카다는 약식 기모노로 잠옷류다. 남녀가 공용으로 입는다. 여자들은 둘둘말아서 허리를 묶고, 남자는 둘둘말아 엉덩이를 둘러 묶는다. 이유는 알사람은 다안다.

    기자들이 한명씩 유카다를 입고 나선다. “속옷은 입어라”는 통역의 당부는 그나름데로 잘 따른 듯하다. 기자들은 이런말은 잘 듣는다.

    한시간 정도 여유시간을 주고 저녁식사에 모이라고 했는데도 빠른 기자들은 온천에 들어가 씻고 나온다. 군대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웃었다.

    저녁 식사자리. 다다미가 깔리고 금색병풍이 둘러싼 커다란 방이다. 조선호텔 1층의 컨벤션홀 1/3 크기랄까. 1인용 작은 탁자들이 4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 있다. 방석도 같이.

    기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으니 마치 조폭들을 연상시킨다. 4열이 2열씩 서로 마주보면서 식사를 한다. 열과 열사이에는 서빙을 위한 폭 1m 정도의 통로가 있다.

    일단의 토요타 임원들의 축사가 끝나고 회정식류의 저녁식사와 함께 기자들과 술자리가 벌어 졌다. 사께와 맥주들로 몇몇 기자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이때, 네명의 게이샤(기생)들이 정문앞에 정렬을 한다. 일본특유의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리는 절을 한 후 4명의 게이샤들은 한줄씩 맡아 술을 돌린다. 복장은 꼭 어린왕자 같은 옷을 입었다. 생김새는 아마 러시안과 일본인의 혼혈 스타일이다. 기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다가. 곧 작업에 들어갔다. “이찌방!” “오케이?” 등등 만국어를 섞어가면서 애교 또는 주접을 떤다. 그녀들은 웃기만 할뿐 도대체 커뮤니케이션은 안되는 표정이다.

    일본기업 특유의 배려라는 측면에서 게이샤들의 출현은 독특했다. 흠 일본이라…

    2시간이 훨씬 넘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가라오케로 전체 자리를 옮겼다. 온천장에 있는 일본식 가라오케가 오죽할까. 우리나라 지방 노래방 수준이다. 거의 30여명이 술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일본 토요타 사람들이 더 줄거워 한다. 손창규 부장은 나에게 사회를 보라는 표정이다. 야…PR인이 무슨 레크리에이션 강사냐? 대충 사회를 보는데 흥에 겨운 손부장이 마이크를 넘겨 받는다. 웬 개다리춤?

    참 인하우스 생활하기 힘든 것 같다. 개다리 춤이라…

    기자들이 한명씩 불려나와 또는 자청해서 한곡조를 한다.

    그 와중에 테이블 한편에는 경제지 기자들이 둘러 앉아 위험한 장난을 한다. “폭탄”을 돌리기 시작한거다. 매일경제 기자의 분수쇼를 관람(?)한 후 돌아가는 폭탄들. 거기까지 동행한 게이샤 한명을 불러 시음회를 한다. “디스 이스 코리안 칵테일”…..한국망신이다. 폭탄잔의 냄새를 맡은 게이샤의 얼굴이 찡그러진다. 한잔 하더니 다른 테이블로 꽁지를 뺀다. 기자들은 좋단다.

    기자들과 함께 폭탄을 주고 받다가 가라오케의 타임은 끝이 났다. 밤12시가 넘었다. 한국토요타 일본인 사장이 해장을 하잔다. 호텔내 라면집에 20여명이 자리를 잡았다. 일본에 와서 먹는 라면이라. 기대가 많았는데 기자들이 많이 남긴다. 느끼하단다. 술먹고 느끼한 것 먹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덕분에 돈내야 가져다 주는 특별메뉴 김치의 매상고가 업청 올랐다.

    각자 객실에 들어갔다. 몇몇 젊은 기자들은 이미 폭탄에 산화하여 영혼끼리 한 객실에 뭉친다고 한다. 그래 뭉쳐라. 나는 피곤하다. 이틀째 밤이다. 어떻게 기사는 나왔나? 내일 아침에 한국에 전화를 걸어봐야지.

  • 2000년 5월 하지메마시데, 오쿠다!

    2000년 5월 중순, 서울 모토쇼의 기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한국토요타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일본 토요타자동차 본사의 오쿠다 히로시 회장이 한국읅 방문한다는 이야기다.

    손창규 부장말로는 내년(2001년)에 렉서스를 한국에 들여 온다는 사실을 알렸으니 자기네 오쿠다 회장이 방한하는 것도 뉴스가 되지 않겠는냐는 것이다. 맞다.

    사실 오투다 회장은 경협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정말 잠시 한국에 들린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자 답게 오쿠다 회장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뿌리고 있었다. 그 뒤에는 “나는 지금 아부를 떨고 있소. 그것도 오버해가며 말이오”하는 구절이 얼굴에 적혀 있는 수많은 일본 측근들이 졸졸 따라 다니고 있었다.

    한국토요타사장인 일본인 야스노 히데아키 사장은 본사에서는 차장급정도의 인물이다. 당연히 서열에 끼지 못하지만 지사장이기 때문에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손부장은 또 장소를 핑계로 기자들을 조금만 부르라고 했다. 조중동만 부르자는 개념없는 명령에 항거했다. 누구 죽는 꼴 보시렵니까?

    일간지들만 부르기로 했다 스포츠? 빼라고 한다. 몇개의 마이너 경제지가 초청자 명단에서 날아갔다. 다른 기업들을 기자들을 한명이라도 더 불르려 하는데 토요타는 참 웃기다.

    서강대 근처의 경총빌딩 회의실에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불른 기자들은 다왔다. 보통 자동차 출입 중 수입차 담당은 2진인 경우가 많은데 몇몇 기자들은 부른 2진이 아니라 1진들이 왔다. 외국기업담당이 직접 온 경제지도 있다. 대신 TV는 않왔다. 왜? 초청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인하우스의 명령에 항상 “예”해야 한다. 그것도 전략이겠거니 하고…

    40분만 기자간담회를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는 오쿠다 회장의 스케쥴이 마구 헝클어 졌다. 기자들이 여러가지 복습질문들과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져댔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김종호 차장 (당시 일반 기자)이 “이전 69년 신진자동차와의 결별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한국소비자들에게 사과를 할 용의는 없느냐?”고 다그쳤다. 오쿠다 회장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신진자동차 건은 사실이 아니다. 잘 못한 부분이 있으면 당연히 사과를 하겠지만, 그건 그게 아니다”라고 받았다.

    한국토요타의 박건우 회장은 오쿠다 회장의 다른편 옆에 앉아 있었고 신진자동차 이야기에 약간 거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신진자동차로 입사해 GM, 대우를 거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신진 과장이었다고 하면서 “토요타가 신진을 버린 것이 아니고 경영진간의 계약이 틀어졌기 때문”이라는 요지의 증언(?)을 했다.

    기사는 어떻게 나갔을까? 김영수기자의 의도대로 나갔다. 물론. 이후에도 김영수-김종호라인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자동차 라인은 시시때때로 ‘신진’건을 들러 토요타를 공격했다. 즐기는 것 같았다. 나중에는 손부장과 나도 즐기게 됬다. 역시 기자들은 애국자 “같다”.

    그건 그렇구..초청받지 않은 기자들의 전화가 내 휴대폰을 울리기 시작했다. 여러명에게 똑같은 욕을 동시에 먹어대니 그날 점심이 지나도 배고프지가 않았다. 살 빠지는데 좋을 것 같다.

    그 다음날 기사가 나가고 현대자동차 홍보실에서 한국토요타에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해 댔다. 몇몇 신문들이 오쿠다 기자간담회의 야마를 “연간 생산능력 500만대 이상 브랜드만 살아 남는다”고 뽑았기 때문이다.

    사실 오투가 회장이 그런말은 했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기자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썻다. 욕은 우리가 먹었다. 현대측에서는 “그럼 현대, 대우, 기아는 앞으로 다 망할 꺼라는 이야기냐?”고 했다. 그럴찌도 모르지 솔직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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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00-05-23 (경제) 기획.연재 13면 45판 1023자
    日경연 이끌고 방한 오쿠다 도요타 회장
    “한국 차산업의 약점은 엔진·미션등 주요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오쿠다 회장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약점은 엔진과 오토 트랜스미션 같은 중요하고 정교한 부품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일경련(일경련) 회장 자격으로 방한 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21세기에는 연간 생산능력 400만-500만대의 자동차 회사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그러나 BMW, 혼다, 폴크스바겐 등 독자적인 기술을 가진 회사는 생산 규모가 적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도요타는 내년에 한국 시장에 약 1000대의 고급차(렉서스)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6월 도요타 오너 가문 출신이 아니면서도 처음으로 회장직을 맡았으며, 현재 일본 일경련 회장과 일본 자동차공업협회장, 총리 경제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다음은 오쿠다 회장과 일문일답.
    ―한국자동차 산업의 강점과 단점은.
    “한국 자동차 메이커는 경영자가 노력하고 직원도 열심히 일한다.
    또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약점은 엔진과 미션 등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것이다.
    머리좋고 기술 좋은 한국 사람이 왜 그런 부품을 만들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재편이 한창이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어떻게 재편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대우차 문제를 해결한 뒤 3사 체제로 갈 것이다.
    우리는 한국 메이커와 제휴를 맺을 계획은 없다.
    다만 자동차 부품을 한국에서 수입할 의사는 있다.
    ―한국차의 미국 시장 수출이 잘되고 있는데 조언을 한다면.
    “우리도 1959년 미국시장에 처음 진출할 때 엔진 가속력이 좋지 않아 몇 차례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차는 과거 미국에서 철판이 빨리 부식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점을 개선해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한다.
    ―오너의 자동차 회사 경영 참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최근 도요타 이사회 임원 56명 중 도요타 가문 사람은 1명뿐이다.
    우리는 도요타 가문을 존경하지만 인사문제는 불편부당 평등하게 하고 있다.
    /김영수기자 yskim2@chosun.com

    한국일보] 2000-05-24 (국제/외신) 뉴스 12면 30판 1647자
    도요타 생존비결 “사람중시 경영”
    거품붕괴의 후유증에 ‘일본주식회사’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의 도입이 일본 재계의 화두가 된지 오래다.
    그러나 도요타자동차의 ‘사람을 지키고(人守), 사람을 살리는(人活)경영’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회장은 “고용을 지키지 못하는 경영자는 할복하라”고 외친다.
    도쿄(東京)증시의 폭락 장세 속에서도 도요타자동차의 액면가 50엔짜리 주식은 5,000엔대의 안정세를 유지하며 시가총액은 19조엔을 넘어섰다.
    1999년도(3월말 기준) 순익은 1998년도보다 14.2% 늘어 사상 최고인 4,068억엔에 이르렀고 기간중 자동차 판매 대수도 500만대를 넘어 세계 최고였다.
    도요타는 자동차업계의 세계적 재편 바람에도 흔들림이 없다. 3월말 다임러 크라이슬러와 미쓰비시(三菱)자동차의 자본 제휴 합의로 일본의 자동차메이커 11개사 가운데 7개사가 외국업체와 제휴했다. 혼다(本田)기연공업과 도요타그룹 3개사만이 남았다.
    오쿠다회장은 22일 서울에서 가진 회견에서도 “아직 준비중인 외자 제휴는 없다”고 확인하면서 “독자 기술개발에 힘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본 제휴를 통한 덩치키우기보다는 독자 기술에 승부를 건다는 점은 혼다와 닮았다. 차세대 자동차인 연료전지차(전기자동차) 개발이나 그 과도형인 ‘하이브리드카’, 자동주행시스템 개발 등에서 도요타가 세계 정상의 기술을 확보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쓰비시자동차는 세계 최초로 직분사 엔진을 상용화하고도 어려움을 겪었다. 세계적 과잉생산 국면인 자동차시장의 생존경쟁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도요타를 지탱하고 있는가. 최근 일본 언론의 잇단 분석에서는 인간 중시 경영과 함께 ‘혈연공동체’‘위기의식’등이 공통적으로 꼽혔다.
    인간 중시 경영은 ‘도요타 생산방식(TPS)’의 핵심이다. 생산성 향상에 따른 여유 인력을 그대로 남겨 자기 노력을 통한 품질·생산성 향상으로 다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핵심 작업을 로봇 대신 사람이 맡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족적 분위기의 중심에 창업 가문의 화목이 존재하는 것도 특이하다. ‘중시조(中始祖)’격인 도요다 에이지(豊田英二)최고고문과 쇼이치로(章一郞)명예회장, 다쓰로(達郞)전사장 등은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룹의 정책결정에 관여한다.
    에이지의 2남으로 고급차 ‘렉서스’를 탄생시킨 데쓰로(鐵郞)는 도요타자동직기 전무로, 3남으로 소형차 ‘비츠’를 개발한 슈헤이(周平)는 이사로, 쇼이치로의 장남인 다케오(章男)는 인터넷전략을 지휘하는 ‘Gazoo’의 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역대 사장은 늘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다. 숙명의 라이벌 닛산과의 대결, 금융기관의 대출 경색 등 위기의식의 내용은 그때마다 달랐지만 그룹 전체의 분발을 불렀다.
    금융경제 시대에 2조5,000억엔의 사내 잉여금을 예치하고 있는 ‘바보같은’ 관행도 항상적 위기의식에서 비롯했다. 지금은 ‘혼다 위협론’은 물론 ‘현대 위협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고 도요타가 변화에 둔감한 것도 아니다. 외자와의 제휴 대신 히노(日野)자동차(트럭), 다이하쓰(소형차)에 대한 출자를 늘려 자체 종합생산망을 갖추었다.
    한편으로 통신인프라는 물론 휴대폰 제조, 주택 건설, 신용카드 등 다양한 업종으로 사업을 넓혀 ‘24시간 소비자가 도요타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내외경제] 2000-05-22 687자
    “자동차 年500만대 생산해야 생존”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연간 400만~500만대 규모 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남지 못 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 초청으로 방한 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경총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히고 “세계시장에서의 생존 전략은 독자적인 기술확보에 있는 만큼 한국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 자개발할 경우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곳은 기술력을 가진 BMW나 폴크스바겐, 혼다 등일 것”이라며 독자기술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세계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에 대해 “도요타의 경우 아직 준비된 것이 없으며 독자기술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며 “그 러나 좋은 부품이 있다면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완성차를 수입해 판 매하는 것이지만 연간 1000대를 팔 수 있다면 다행일 것”이라고 전망했 다.
    또 국내 자동차업계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가 모두 노력하고 해외진출에 강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 품의 자체 생산 능력이 약하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을 수 있다”고 말했 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도요타 회장직에 올랐으며 현재 닛케이렌(日經連 ) 회장도 맡고 있다.

    [서울경제] 2000-05-22 733자
    “연간 400만대 양산능력이 세게車시장 생산기준”-도요타회장
    오쿠다 히로시(奧田 碩·사진) 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연간 400만∼500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경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은 독자적인 기술확보에 있는 만큼 한국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자개발할 경우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능력 없이도 생존할 수 있는 곳은 기술력을 가진 BMW나 폴크스바겐, 혼다 등일 것』이라며 독자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내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완성차를 수입, 판매하는 것이지만 연 1,000대를 팔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 자동차업계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노력하고 해외진출에 강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품의 자체생산 능력이 약한 것이 단점』이라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굴뚝산업의 생존전략과 관련, 『정보기술(IT)을 접목할 경우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한 뒤 국내 자동차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일단 경영만 잘하면 다른 회사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현재의 3사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도요타 회장직에 올랐으며 현재 닛케이렌(日經連) 회장을 맡고 있다.
    임석훈기자SHIM@SED.CO.KR

    한국경제] 2000-05-23 1265자
    오쿠다 도요타회장, “연4-5백만대 생산력 갖춰야 생존”
    “혼다 BMW 폴크스바겐 등과 같이 독자적 기술력을 갖춘 업체를 제외하고는 연간 4백만~5백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21세기 생존이 불투명하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협회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22일 서울 경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자동차업체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자개발할 능력을 갖춘다면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쿠다회장의 진단은 독자기술력을 갖출 역량을 갖추거나 그렇지않으면 규모의 경제(4-5백만대 생산체제)를 확보하기위해 전략제휴나 인수합병의 대열에 참여하지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견에서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도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몇차례 실패를 경험했다”며 “한국업체들도 기술력을 확보하면 중대형차도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독자기술력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한국자동차 업체들의 해외제휴문제에 대해 “대우자동차가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한국자동차 업체들은 경영만 잘하면 해외업체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3사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경영기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않았다.
    그는 이어 “70년대 한국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경영진간의 견해차로 철수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내년부터 한국에서 매년 1천대 정도의 자동차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의 앞날에 대해선 “세계적인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흐름에 상관없이 독자노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도요타는 세계 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을 외면한채 독자해외공장 확대와 자체기술개발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있어 “도요타의 마이웨이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있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내년 봄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 현지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며 2003년에는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요타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이미 4백만대 체제를 구축했으며 특히 해외공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성장엔진을 확보해 놓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라인업에서도 일본내 트럭제조 업체인 히노와 소형차 업체인 다이하츠와의 제휴를 강화함으로써 부족한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오쿠다 회장이 이날 한국기자들에게 들려준 한국차업계진단도 결국 “도요타수준이 아니면 합종연횡의 대열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로 요약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한국경제] 2000-05-23 1265자
    [인터뷰]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
    “혼다 BMW 폴크스바겐 등과 같이 독자적 기술력을 갖춘 업체를 제외하고는 연간 4백만~5백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21세기 생존이 불투명하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협회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22일 서울 경총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 자동차업체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자개발할 능력을 갖춘다면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쿠다회장의 진단은 독자기술력을 갖출 역량을 갖추거나 그렇지않으면 규모의 경제(4-5백만대 생산체제)를 확보하기위해 전략제휴나 인수합병의 대열에 참여하지않을 수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견에서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도 미국시장에 진출하면서 몇차례 실패를 경험했다”며 “한국업체들도 기술력을 확보하면 중대형차도 미국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독자기술력의 중요성”을 유난히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한국자동차 업체들의 해외제휴문제에 대해 “대우자동차가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한국자동차 업체들은 경영만 잘하면 해외업체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3사체제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지만 경영기법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않았다.
    그는 이어 “70년대 한국시장에서 한국과 일본 경영진간의 견해차로 철수해 한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내년부터 한국에서 매년 1천대 정도의 자동차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쿠다 회장은 도요타의 앞날에 대해선 “세계적인 자동차업계의 합종연횡흐름에 상관없이 독자노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도요타는 세계 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을 외면한채 독자해외공장 확대와 자체기술개발을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있어 “도요타의 마이웨이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있는 상황이다.
    도요타는 내년 봄 프랑스 북부 발랑시엔에 현지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며 2003년에는 연료전지 기술이 적용된 차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요타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자동차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이미 4백만대 체제를 구축했으며 특히 해외공장을 통해 글로벌 경쟁에 필요한 성장엔진을 확보해 놓았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라인업에서도 일본내 트럭제조 업체인 히노와 소형차 업체인 다이하츠와의 제휴를 강화함으로써 부족한 것이 없다는 분석이다.
    오쿠다 회장이 이날 한국기자들에게 들려준 한국차업계진단도 결국 “도요타수준이 아니면 합종연횡의 대열에 참여할 수 밖에 없다”로 요약된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매일경제] 2000-05-23 820자
    도요타 회장, “연산 400만대 능력이 생존 기준”
    오쿠다 히로시(奧田 碩) 도요타도요타자동차 회장이 연간 400만∼500 만대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자동차시장에서살 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밝혀 주목된다.
    한국 ILO(국제노동기구) 초청으로 방한중인 오쿠다 회장은 22일 경총 회관에서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히고 “세계시장에서의 생존전략은 독자적인 기술확보에있는 만큼 한국도 엔진이나 미션 등 정밀부품을 독 자개발할 경우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연간 400만대 이상 생산능력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곳 은 기술력을 가진 BMW나 폴크스바겐, 혼다 등일 것”이라며 독자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쿠다 회장은 세계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 바람에 대해 “도요타의 경 우 아직준비된 것이 없으며 독자기술 개발에 주력할 것”이라며 “그러나 좋은 부품이 있다면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시장 진출 전략에 대해 “현 단계에서는 완성차를 수입, 판매 하는 것이지만 연 1천대를 팔수 있으면 다행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 자동차업계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가 노력하고해외진출에 강하다는 게 장점인 반면 약점으로는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품의 자체생산 능력이 약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 다.
    오쿠다 회장은 굴뚝산업의 생존전략과 관련, “정보기술(IT)을 접목할 경우 발전할 것”이라고 설명한 뒤 국내 자동차업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 일단 경영만 잘하면다른 회사와의 자본제휴 없이도 현재의 3사체제가 유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쿠다 회장은 지난해 도요타 회장직에 올랐으며 현재 닛케이렌(日經連 ) 회장도맡고 있다.

    매일경제] 2000-05-23 880자
    [인터뷰] 오쿠다 히로시 도요타자동차 회장
    = “한국 부품업체와의 협력 적극 추진”<황인혁>”내년 초 한국 자동차 시장 진출을 앞두고 한국 부품업체 와의 협력을 통한 부품조달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진출 첫 해에 1000대만 팔려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노동기구(ILO) 초청으로 21일한국을 찾은 오쿠다 히로시 도 요타자동차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내에 좋은 부품업체가 있으 면 언제든 협력할 용의가 있으며 점진적인 한국시장 진출을 꾀하겠다 고 밝혔다.
    오크다 회장은 “앞으로는 연간 400만∼500만대 이상 생산업체 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지만 혼다, BMW, 폭스바겐 등 독자 기술을 확 보한 자동차업체도 시장에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에 대해 “경영자와 직원들의 근무의욕이 높은 데다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엔진·미션 등 핵심 부품에 대한 국산화율이 여전히 떨어지 는 것은 개선할 부분”이라며 “한·일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엔진·핵심부품의 국산화는 절실한 과제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월드카 개발은 자동차에 대한 각국별 선호도가 다른 만큼 추진 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며 “현재 경차 모델인 `비츠’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유럽에서는 `야리츠’, 미국에서는 `에코’로 판매되고 있는 게 도 요타의 월드카로 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월드카 개발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한 편 차세대 자동차로 불리는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에 대해 “지금까지 약 3만대가 판매됐으며 올해 중순경 유럽과 미국 등에 수출할 계획”이 라고 말했다.
    오크다 회장은 현재 일본경영자연맹 회장, 일본자동차공업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일본 재계를 주도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 사장에서 회장 으로 전격 승진했다.

  • M&A comm-12(final)

    여론 마당에서는 이겼는데 왜 본 게임에서는 졌을까?

    경험상 M&A Communication의 핵심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1.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존재하는 chaos를 communication 활동으로 어떻게 관리하는가?
    2. 다른 M&A 전문가들(컨소시엄멤버들, 자금라인들, 법률자문들, 회계자문들, 경영자문들, 정부 로비스트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딩에 참석한 기업들의 owner들) 과 어떻게 message와 strategy를 align하는가?
    3. 게임이 진행중일 때는 어떻게 극단적인 performance를 보여주고, 게임이 끝났을 때는 얼마나 완벽하게 평상으로 돌아가는가?

    특히, 3번의 경우 ‘게임시의 커뮤니케이션 활동들로 인한 후유증(!)을 얼마나 깨끗하게 남기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마치, 최근 한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후보와 박후보간의 설전이 후보선출 후 후유증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사실 이것 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발을 뺄 장소를 돌아보면서 싸우면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말이다. (스파르타!^^)

    왜 이 핵심들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하는가 하면…우리는 경쟁사에 대한 이런 negative campaign을 끝내고 나서 일정 기간 동안 아주 호된(!) 반격들을 당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본사 중국 오피스 PR VP가 한국에 와서 내게 한 말…”Now I understand why they are doing like that…Huh Huh… James, You need to understand them too. Right?”

    결국 경쟁사는 J 소주 인수에 대한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을 받아 냈다. 심사 위원 9명중 과반수 이상의 조건부 승인 의사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의 패배원인을 분석해 보면;

    1. 경쟁사 대비 로비력의 열세 (전략, owner의 의지, 투자, 기존 네트워크…)
    2. 중반 이후 유럽 본사의 관심 소멸 (우리는 중반 이후에 별동대 처럼 싸워야 했다)
    3. 사내 정치적으로 본 프로젝트에 많은 힘이 되어준 AP 사장이 사내적으로 정치적 약화
    4. 우리 회사 사내에 만연한 패배의식
    5.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특수성
    6. 정부차원의 암묵적 관여

    각각의 원인들에 대해 간단하게 부연하면;

    1. 경쟁사 대비 로비력의 열세 (전략, owner의 의지, 투자, 기존 네트워크…)

    우리는 이미 경쟁사와 공정위를 사이에 둔 경쟁에서 무참하게 패배한 전력이 있었다. 경쟁사가 천연 암반수를 강조하는 광고를 개시 했던 90년대 초반, 시장 우위에 있던 우리는 공정위에 경쟁사가 맥주 용수로 강조하는 천연 암반수의 현실에 대해 증거를 제시하면서 과장/허위광고 건으로 공정위에 제소한 적이있다. 분명한 과학적 조사결과에 따른 제소건에 대해 무참하게 어떻게 보면 어이없이 우리는 패배했다. 그 만큼 경쟁사의 공정위 네트워크를 비롯한 대정부 로비력은 강력하다. 한국적인 오너기업이라는 특수성도 존재한다. 일부기자들의 말을 빌리면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 3조 4500억원을 써내고, 3천 450억원을 인수 보증금으로 넣어 논 기업의 오너가 만약 공정위가 승인 불가 결정을 내리면 그 보증금을 날리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눈이 뒤집히는데 막말로 300-400억원이 아깝겠나? 나 같아도 그렇겠지…” 동의한다. 반면에 우리는 중반 이후로 넘어가는 시점에 겨우 재경위 국회의원 명단을 얻어 각개 전투를 시작했다. 아무리 로비스트가 있어도 로비는 기업에서 하는 것이다. 로비스트는 거간꾼 일 뿐이다. 막판까지 누가 공정위의 해당 건 심사위원단으로 구성될런지…아무도 몰랐다. 극단적으로 우리 회사에서 골프를 치는 최고 경영진은 한명밖에 없었다. 은퇴를 내일모레 남겨둔 임원 분…

    2. 중반 이후 유럽 본사의 관심 소멸 (우리는 중반 이후에 별동대 처럼 싸워야 했다)

    2005년은 벨기에 본사와 브라질 본사간에 한찬 이사진 구성을 통해 파워게임이 진행되고 있던 시절이었다. 현재는 브라질 그룹이 승리를 해서 전세계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 시절에 한국이라는 변방에서 일어나는 소모적(?)인 프로젝트는 당연히 관심 밖이 었다. 또한 본사 차원에서는 경쟁사가 더욱(?) 강력해 진다고 해도 어짜피 2개 회사의 과점 체제하에서 생존(!)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던 것이다. 본사적인 시각에서는 단편적으로 수억명 인구의 남미 전체 맥주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국경적회사 A사를 인수(합병)하는 금액이 약 9조원 가량이었다. 반면에 세계적으로 성장가능성이 없는 지역주인 소주회사 하나를 인수하기 위해 겨우 인구 4000만명의 변방에 3조 4500억원을 투입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처음에는 한국 지사 차원에서 이것은 ‘위기’라는 신호를 보내서 주목했었지만… 결국 본사에서는 ‘so what…don’t care…not a big deal…’하는 반응이 오고 있었다.

    3. 사내 정치적으로 본 프로젝트에 많은 힘이 되어준 AP 사장이 사내적으로 정치적 약화

    본사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우리들의 프로젝트 성과에 매주 박수를 보내주었던 AP 사장도 사내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유러피언이었던 그는 결국 브라질 경영진에게 큰그림을 보지 못하는 인사로 간주되었고…이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이나 지원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했다. 결국 그는 2005년말경에 회사를 떠났다. 현재 세계적인 모 콜라 회사의 유럽사장을 하고 있다. (이 분을 추종하는 유러피언들과 미국인들은 지금 다 그와 함께 일한다…)

    4. 우리 회사 사내에 만연한 패배의식

    시잠점유율을 반전 당한 90년대 중반이후 10년간 반복되어진 시장에서의 실패들은 우리 회사 임직원들에게 뿌리 깊은 패배의식을 만연하게 했다. 이 프로젝트 당시에도…”우린 이제 가망이 없다. 도매상들의 반응을 봐. 이제 우린 진짜 마이너가 되가고 있어…”라는 의식이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뛰어 다니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마치 암말기 환자가 그를 위해 신약을 구하러 뛰어 다니는 자식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할까…되면 좋지만…하는 그런…

    5. 우리 회사 구성원들의 특수성

    우리회사는 98년 당시 벨기에 회사가 최초 회사를 인수했고, 99년에 현재 J소주가 만들던 맥주회사 C사를 추가 인수해 만든 컴비네이션 회사다. 따라서 주된 사내 구성원들을 분류해 보면 전통적인 D그룹의 O맥주회사 출신들 + J소주에 입사해 C맥주를 만들던 J소주회사 출신들 + 외국회사화 된 이후에 들어온 외국계 기업 출신의 외인부대들이다. 그러나 해당 프로젝트는 J소주 회사의 성공적인 회생을 어떻게 보면 방해하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경쟁사 인수를 방해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J소주사에서 볼 때는 훼방꾼이었다. 당연 친정이 J사인 우리회사의 내부 인력들 일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거…그렇게 극단적이게까지 우리가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 사실 우리측의 정보에 대한 leaking도 일부 존재했다.

    6. 정부차원의 암묵적 관여

    환경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유효하게 경쟁사의 J소주 인수를 가능하게 한 요소라고 본다. 여론과 정치권의 인식은 확연히 다르다. 명분이라는 측면에서 국민경제와 연결이 되어있는 J소주사를 다시 유찰 시키는 것은 곧 정치적인 부담이었다. 또한 외국자본과 민족자본의 논리로 맞서는 구도설정 자체가 정치권에는 명분을 주었다. 참으로 비참한 이야기지만, 아직도 정치권의 명분인식에는 문제가 있다. 항상 그렇지만…우리에게 유리하면 글로벌이고, 불리하면 민족자존이다. 이 ‘암묵적 관여’라는 것이 얼마나 PA부분에서 힘을 발휘하는지…정확히는 겪어 보는 사람만 안다.

    패자는 말이 많다. 그러나 왜 패배했는지에 대한 learning이 없으면 그 다음의 승리는 없다. 패배에 대한 변명이라기 보다는 분석이라고 보면 된다. 이 분석요소들을 뒤짚어 보면 얼마나 경쟁사가 우수했는지를 알수 있다. 승리자는 항상 존경받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PR이라는 것, Communication이라는 것, 그리고 여론이라는 것. 이런 것들이 홀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환경적인 요소들과 부문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고 빈약한 진실을 그렇게 오랬동안 고생하면서 깨달았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바보다. 경험해야 똑바로 아는 동물이기 때문에…

  • M&A comm-7

    인수의향서 제출과 예비실사

    2월 중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14개의 컨소시엄 (원래는 20개의 컨소시엄이 의향서를 냈다)이 약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J기업에 대한 실사(Due Dilligence)를 했다. 이 과정은 J기업을 얼마에 살것인지를 각 컨소시엄이 결정하기 위한 수순이다.

    J기업은 시장에 내 놓인 매물로 완전 노예시장에 나와있는 노예의 형상이다. “이 남자 노예는 키가 180이고, 이빨이 튼튼하고, 힘도 셉니다. 대신 음식을 많이 먹지는 않고 잠도 없어요. 자식도 많이 낳아서 주인을 부자로 만들 겁니다. 살펴보세요” 이런식…인 셈.

    우리 회사의 중역들과 팀장들도 컨소시엄 멤버로서 J기업의 실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당시 이를 통해 같은 업종의 거대기업인 J사의 속내를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라서 매우 소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 영업사원들을 포함한 직원들은 우리가 J사를 인수한다면? 하는 부푼 꿈이 있었다. 일부 영업사원들은 도매상들에게 우리가 인수할 것이라고 은근히 뻐기고 다니기도 했다. 실제로 영업실적이 좋아지기도 했었다…

    3월 중순…최종 인수 제안서 제출을 2주가량 앞둔 어느날. 본사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DH컨소시엄에서 빠지기로 했다” 아니…컨소시엄에서 빠지기만 하면 다인가?

    플랜상에 Plan B가 실제로 실행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공식적으로 DH컨소시엄에 참여했다는 발표는 하지 않았기때문에, 이젠 참여 안할꺼라는 발표도 할수는 없다.

    기자들이 물어오지 않기를 바랄 뿐. 본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기자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알려줄래? 본사의 반응 “우리는 지금까지 J인수전에 참여하겠다고 밝힌적이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 문제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참 마음 편한사람들.

    예비실사까지 참여해서 J사에 들락달락 거린 양반들이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니…아니 무슨 우리 기자들을 바보로 아나? 너무 이성적인 것도 병이다.

    나는 어떻게 우리가 인수전에서 빠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기자들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PR담당자는 확실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는 마치 변호사가 의뢰인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가지 본사의 정치적이고 고단수 경영적인 결정이었다. 알고보니. 그냥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좋다.

    역시나…발빠른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온다. “야 당신네 컨소시엄에서 빠졌다면서?” “왜 빠진거야?” “DH랑 트러블이 있었던거야?” “다른 컨소시엄이랑 손잡는거 아니야?”

    나의 답변. “컨소시엄 참여 여부에 대한 결정이 지금 내려 진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저희는 참여 않기로 결정한거죠” “본사의 경영상의 결정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DH사와는 현재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번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컨소시엄에 대한 검토는 없습니다.”

    DH쪽의 반응도 냉담하다. 그쪽의 PR대행사측은 이제 자기네가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세 아군에서 남으로 변해간다. 당연한거지. 알아서 하시지요.

    이제 우리는 그냥 방관자의 입장이 되어 버렸다. 우리는 조용히 인수전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DH 컨소시엄은 메이져 컨소시엄에서 격이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경쟁사인 H사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되지 않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H 컨소시엄은 마이너로 치부당하고 있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D기업과 우리가 인수전에 참여하니까 위협을 느껴서 어쩔수 없이 H사도 인수전에 발을 담근 것이라는 평이 우세했다. 현금도 없고 그런 큰 기업을 인수하기에는 역부족인 회사라는 평도 일반적이었다.

    이젠 당분간 컨퍼런스콜도 없다. 기자들을 만나서 이야기 할 것도 없다. 당분간…

    3월말일 최종 인수제안서들이 접수되는 날이다. 이날 오전부터 기자들과 관련 PR담당자들은 모든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자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DH사는 얼마정도 쓴것 같어? D사는? 어디 C나 L에 대해 들은바는 없어?”

    나는 맘편하게 답변했다. “솔직히 약간 오바하는 회사가 나오기전에는 한 3조 미만에서 가격대가 형성되지 않겠어요? 문제는 오바하는 회사가 누가 될까하는 거지요. 그런 회사가 나오면 이 판은 깨지는거지…”

    오후가 되니 모든 컨소시엄의 인수 제안서들이 마감되었다. 채권단은 이 인수제안서들을 검토하여 4월 1일경에 우선협상 대상자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기자들과 PR인들은 그 싯점을 기다릴 수 없다. 계속 360도 정보력을 발휘해서 각 컨소시엄의 정보를 빼내고 공유하고 있었다.

    오후 6시경. 모 신문사 부장 및 출입기자와 술자리를 갖기로 되어 있어 우리 회사 상무와 나는 일찍 회사에서 나와 여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나에게 D그룹 홍보실에서 전화가 왔다. “방금 정보가 들어왔는데, H가 가져갈꺼 같다. 준비해라.” “네….”

    여의도로 향하는 차 속에서 상무와 나는 아무말도 없었다.

    본사에서 밤늦게 전화가 왔다. 기자들과 술을 거나하게 나눈 상태. (당시 그 기자들은 H사의 선정 사실을 몰랐다) “Plan B를 다시 시작하자. 내일 아침 긴급회의를 열자”

    새벽…택시를 타고 취해 집에 돌아오면서…눈물이 났다. 앞으로 펼쳐질 힘든 시기에 대한 두려움때문에…

  • M&A comm-6

    파이낸셜 타임즈(FT)로부터의 변수

    3월 1일…2월 새해 연휴에도 나는 쉬질 못했었다. 부모님들이 와 계시는데도 나는 내 서재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유럽 본사와 컨퍼런스콜을 해야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아주 유럽본사는 안달복달을 한다. 아직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 전이라서 나에게 프레스를 넣지는 않지만, 무조건 모른다 아니다라고 말하라고 반복적으로 당부한다. (이미 한국기자들은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유럽의 한 조그만 도시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르쇠 타령이다….)

    휴일이 지나고 출근을 하니 모니터링이 불이 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J기업 최대 채권자 중 하나인 투자은행 G사의 보도자료를 인용하여 “J기업의 자산가치는 지난 2년간 성공적 경영으로 기존 25억불에서 36억불로 상승했다”는 평가 리포트를 내 놓은 것이다.

    자기가 팔 물건에 대해 자기가 값을 올려 놓은 것이다. 최초 기자들은 자산가치를 약 2조원대 초반쯤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일반 감정가를 거의 두배로 올려 놓은 것이다. 이때부터 기자들은 이 3조 5-6천억원이라는 산정 가치가 어떤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를 놓고 취재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기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G사의 관련 리포트 발표 이유였다. 왜 하필 G사는 J사와 민감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전에 이런 논란꺼리가 생길만한 리포트를 발표했는가?

    파이낸셜 타임즈는 어느 투자전문가의 말을 빌어 “G사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3조원대가량의 돈을 내고 J기업을 사는 곳은 없을 것”이라는 멘트를 후반에 달았었다.

    G사는 이전에도 J사의 사내기밀 유출을 통한 채권확보 및 매각추진 혐의로 재판을 받은적이 있었다. 물론 혐의 없음으로 판결이 났지만, 전문가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에 혐의가 발견됬다면 G사는 프로가 아니겠지.

    어째든, 각 컨소시엄은 이번 G사의 발표에 대해 촉각을 곤두 세웠다. 기존에 세워둔 투자 플랜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약 1조원 가량을 더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1조원을 더 쏟아 부어 넣어도 수익성이 있을까…

    본사와 우리 모든 컨소시엄 멤버들이 컨퍼런스콜을 했다. 본사측에서 회의 초반에 G사의 발표에 대해 이야기하자 누군가가 뇌까렸다. “Fuck… Fuck… Fuck…” 콜에 참여한 모든 전문가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데 동감을 하는 분위기 였다. 그러나…어찌하랴. M&A 비딩은 숫자뿐만 아니라 서로간의 기싸움인데…

    기자들은 각각의 컨소시엄들이 과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과연 어느 정도선이 적정가일까라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비딩전에 우리가 쓸 가격에 대해서 말해주는 컨소시엄이 어디 있나? 그래도 기자들은 각 컨소시엄을 간 보고있다.

    “당신네 컨소시엄은 J기업을 어느정도 가격대로 보고 있나? 아니 그냥 어느정도대로만…”

    “글쎄요. 아직 인수의향서도 제출하지 않았는데 말씀드리기는 불가능한데요. 일단 인수의향서를 내고 예비실사(Due Dilligence)를 거쳐 봐야 하지 않겠어요? 중요한것은 G사의 일방적인 산정 기준과 액수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거지요”

    “그래. 그렇지? 말도 안되지? 이 자식들…아주…”

    기자들은 전반적으로 G사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나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으로 G사를 치받을 수는 또 없었다. 거의 모든 컨소시엄들이 침묵하면서 긴장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G사의 언론 플레이는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그 시기 측면, 그리고 그 파급력은 진짜 성공적이었다. G사의 내공이 보이는 활동이다. 발표 직후에도 G사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강건함을 보여 주었다. 일단 입에 물은 쥐의 숨이 끊어 질때까지 절대 입을 벌리지 않는 큰뱀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옆에서 본 G사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은 ‘우리가 꼭 하고싶은 말만 한다.’ 그러나 ‘크게하거나 여럿에게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메시지를 왜곡하거나 오해하는 언론에게는 선별적으로 적극 대응한다.’ 이렇다. 투자기관으로서 당연하고 상당히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전략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공중과의 Goodwill 이라던가…뭐 이따위의 PR기초 논리는 쓸모없다. (이 사실은 내가 2000년대 초반 잠깐 G사의 press officer를 해 봤기 때문에 잘 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G사는 정확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투자금을 받아냈다. 힘들게 돈을 마련해 지불해야 했던 H사는 그 금액을 전략에 근거한 자랑스러운 금액으로 보지만….글쎄다…

    두고 볼일이다.

    P.S. 이 G사의 움직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지속적으로 관리되어 하반기에 전면적인 네가티브 캠페인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된다. G사에게도 사실 약간 미안한 감이 없지 않다…

  • 생각이 바뀌면 모두가 편하다

    [정용민의 미디어 트레이닝]

    기업&미디어 web@biznmedia.com

    언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CEO의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규정하는 4가지 요건들인 언론에 대한 고정관념(Stereotype), 언론 접촉 경험(Experience), 성격(Personality), 커뮤니케이션 습관(Habit) 중 오늘은 ‘언론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해 본다.

    여러 CEO들을 만나 보면 의외로 언론과 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이 많다. 일반적으로 CEO들이 생각하는 언론과 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나쁜 이슈들만을 물고 늘어진다
    -주관적이며 공정하지 못하다
    -권위적이다
    -부패(spoil)했다
    -점점 비즈니스맨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사내에서 CEO 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에게도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듯 하다. 오전에 홍보팀장이 자칫 술 냄새라도 풍기면서 지나가면 인사말투로 이렇게 이야기들을 한다. “기자O들 접대하느라 고생이 많네요. 저 같으면 그런 거 못해요…” 도대체 언제 기자들을 만나 봤다고 대뜸 ‘기자O’인가?

    세월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은 홍보 담당자들은 절대로 사내에서 기자들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들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일부 홍보 담당자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기자들과의 관계와 특성에 대한 과도한 이야기들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단기적으로는 “홍보팀이 고생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홍보팀은 그냥 그런 친구(?)들을 관리하는 3D 부서’ ‘정도로 사내에서 큰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일반직원들이 가지는 언론과 기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그렇다고 치자. 언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CEO가 가지는 부정적 인식은 가끔 치명적인 상황을 초래하곤 한다.

    CEO의 대 언론 편견, 홍보실도 책임
    모 그룹 계열사 CEO께서는 한 경제단체에서 주제 발표를 하시면서 참석한 CEO들에게 기자들의 특성에 대한 재미있는 (그러나 상당히 시니컬 한) 농담을 몇 개 했다. 그 CEO는 업계에서 친언론 CEO로 알려졌기 때문에 그의 농담은 참석한 CEO들에게 언론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과 편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현장에 그 경제단체 출입 기자들 일부가 취재차 참석 했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그 농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따라서 맨 뒤 줄지어 앉아 있는 기자들을 뒤 늦게 발견한 그 CEO께서는 발표 후반부에 진땀을 많이 흘렸다는 후문이다.

    홍보 담당자들은 CEO가 가지고 있는 언론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능한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CEO의 언론관에는 언론의 존재이유와 기자의 취재 목적 그리고 그 의미를 바라보는 철학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

    모 사의 신제품 출시 전략 미팅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생산, 기획, 영업, 마케팅, 홍보팀의 장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 그 회사 CEO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잘 준비되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이 제품에 대한 버즈(buzz)를 일으키느냐에 우리의 성패가 달려있다. 홍보팀에서는 가능한 언론에 본 제품 출시 정보를 노출하는데 최선을 다하라. 마케팅에서는 홍보팀이 최대한 퍼포먼스를 얻을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논의해라. 언론 노출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금은 가장 중요하다.”

    이 CEO는 회의 2주전 회사에 인사차 들른 모 경제지 기자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홍보팀장이 그 기자를 소개하자 반갑게 악수를 나눈 그는 뒤 돌아 서 홍보팀장에게 눈을 찡긋하면서 이렇게 속삭였다. “뭐, 광고 같은 거 달라고 온 거 아니야? 거 그냥 어디가 술 한잔 해.”

    이렇게 부정적인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 CEO도 자신의 제품 출시를 위해서는 언론의 관심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 언론은 ‘싫지만’ 이용할 ‘가치’는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CEO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대해 홍보 담당자들도 일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언론관으로의 교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편하다. 회사 전체는 물론 소비자들도 모두가 말이다.

    정 용 민
    PR컨설팅그룹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사장
    前 오비맥주 홍보팀장
    前 커뮤니케이션즈 코리아 부장
    ICO Global Communication, LG-EDS, JTI Korea, 제일은행, Agribrand Purina Korea, Cargill 등 다수의 국내외 기업 경영진들에게 Media Training 서비스 제공
    Hill & Knowlton, Crisis Management Training Course 이수(도쿄)/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s, Media Training and 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InBev Corporate Affairs Conference in Miami에 참석해 영국 Isherwood Communication의 Mr. Isherwood에게 두번째 Media Training 및 Crisis Simulation Training 기법 사사/ 네덜란드 위기관리 컨설팅회사 CRG의 Media training/crisis simulation session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