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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TV보도에 힘이 빠진 것 같은데요? [기업 위기관리 Q&A 237]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예전에는 TV 뉴스로 부정 보도가 나가면 여러 파장이 즉시 전해지고,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사후 압력이 들어오고는 했습니다. 위력이 대단했지요. 근데 최근 모 TV 방송에서 저희 회사를 부정 보도했는데 사후 파장이 아주 미미합니다. 이게 왜 그런 걸까요?”

    컨설턴트의 답변

    구체적으로 해당 부정 보도를 보고 말씀드려야 할 사안 같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최근 여러 클라이언트로부터 비슷한 의견과 궁금증을 접하고 있습니다. 공통 의견들은 TV 뉴스 보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말씀처럼 예전 같은 사후 파장이나 위해성이 감소되고 있다는 평이 많습니다.

    그 원인을 몇가지로 정리해 보면, 일단 TV 시청률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작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더구나 TV뉴스 시청률은 예전과 비교해 천치 차이가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부 방송사에서 자사 주요 뉴스를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는 작업도 하고 있지만, 본방 시청률이 하늘을 찌르던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두번째 요인으로 거론되는 것이, 이미 기업 부정 이슈는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출되고 확산되는 경로로 굳어진 지 오래 라는 사실입니다. 최근 유투브나 페이스북 같은 채널을 빼고는 기업 이슈나 위기관리를 진행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중요하고 심도 있는 부정 보도를 초기 진행하던 권한을 이미 TV는 온라인에 빼앗겨 버렸습니다. 반대로 온라인 상 논란을 재보도 하는 형태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세번째 요인으로는 TV특성상 구체적 보도에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TV보도는 화면이 있어야 하고, 시간에 맞추어야 합니다. 사람을 여럿 만나 취재해야 하고, 실제 가시적 근거들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이런 한계 때문에 부정 보도가 매번 매력적으로 제작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는 TV가 유일한 영상 보도 매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독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여럿 중 일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부정보도를 하는 유투브 같은 곳과 달리 기존 게이트키핑 프로세스가 발 목을 잡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것입니다.

    부정 보도의 주제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TV를 통해 예전 같은 위해성이 기업에게 전해지려면, 해당 주제는 ‘아주’ 자극적인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아주 자극적인 주제이면서도 여러 공중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형태의 것이어야 해당 기업에게 예전 같은 위해성을 일부 끼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최초 보도이고,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증거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는 형태이어야 하지요.

    그렇지 못하고, 일부만 자극성을 띠거나, 그 주제가 여러 일반 공중에게 정확한 피해를 끼친다고 보이지 않거나, 최초 보도도 아니고,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증거 대신 편향적인 ‘카더라’ 풍의 보도로는 이제 더 이상 영향력을 키우기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우려 되는 것은 TV 보도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이 스스로 위기관리 민감성이나 대응 전략에 힘을 빼는 상황입니다. 이슈나 위기가 사라진 것인 아니라, 이를 보도하는 매체 한 그룹의 유력성이 감소되고 있는 것 뿐이라 보아야 합니다. 자사 관련 한 이슈나 위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이번 위기관리 잘 한 것 같은데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이번 OO사의 위기관리를 보면 대부분 반응이 좋더군요. 제가 봐도 그 회사가 빨리 기자회견도 잘하고, 열심히 커뮤니케이션도 하고 좀 뭔가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전문가들이 볼 때에도 이번 위기관리를 잘 했다고 보시지 않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최근 들어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전반적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워낙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 환경이 대세가 되다 보니 기업 스스로 여론에 대한 민감성이나 대응 속도 측면에서 예전과는 다른 변화가 여럿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기업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 상 여론 반응에만 너무 몰두해 있어서, 과잉 반응이나 반사적 대응을 한다는 것이 문제될 정도입니다. 더구나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반응’을 해야 한다고 믿고 부실한 실행을 반복하는 상황이 벌어기지도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번 OO사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적절했고, 적당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는 상당수 기업에서 많은 성장이 있었고, 그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공중의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다 개선 강화해야 할 핵심 부분은 상황관리 체계에 대한 평소 노력과 투자입니다. 이와 함께 금번 발생한 위기와 같은 유사 위기에 대한 기업 차원의 재발방지 노력이 가시적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플랜이 중요합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산 측면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위기관리 분야라는 의미입니다. 반면 실제 상황발생을 경계하고, 발생을 억제 방지하고, 발생된 상황을 관리해 내고, 재발하지 않도록 지속 관리하는 이런 제반 위기관리 활동은 비쌉니다. 계속해서 예산을 쏟아 부어야만 목적 달성이 겨우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최근 기업 위기관리 형태를 보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주로 집중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기업이 평소 홍보에 집중하듯, 위기 시에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얼마나 멋지게 잘 하는가에 주된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과도 제대로 하고, 기자회견이나 사과문도 멋지게 씁니다. 고객 상담전화도 열심히 일하게 만들지요.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서도 낮은 자세로 여러 공중과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을 합니다. 위기 시 언론과의 인터뷰도 핵심 메시지를 잘 잡아 합니다. 관계기관과의 지속적 협조 커뮤니케이션을 기반으로 추가 상황 변화를 막아 내기도 합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는 잘해 내는 기업들이 이렇게 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에 더해 위기(상황)관리를 위한 실질적 체계와 개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기관리는 예산으로 한다는 말처럼 제대로 된 예산확보와 투자를 상황관리 체계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노력을 통해 유사 위기 재발을 방지하고, 재발하더라도 더욱 더 제대로 상황을 관리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대로 한 것으로 보이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거짓말쟁이 양치기’의 것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실질적 개선 투자는 필요합니다. 같은 위기가 반복되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효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반감됩니다. 말로만 천냥 빚을 갚아 나가는 것도 한 두 번입니다. 매번 말로만 무언가를 해내려 하는 기업은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는 곳이 아닙니다. 무언가는 보여주어야 합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어디까지 투명해야 하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위기 시 기업은 최대한 투명해야 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 정확하게 밝혀라. 이런 조언들을 하는데요. 위기가 발생했을 때 투명하게 밝힌다고 하면, 어디에서 어디까지 투명해야 하는 건가요? 숨김과 남김 없이 다 밝히라는 것은 아니겠죠?”

    컨설턴트의 답변

    미국의 위기관리 명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투명성이라는 것이 “위기 시 기업의 모든 ‘더러운 빨래(dirty laundry)’를 바깥에 널어 놓는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위기 시 이 ‘투명성’에 대한 조언에 상당한 고민을 합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어디에서 어디까지 알려야 투명한 것인지에 대해 기준을 찾기 어려워하는 것이죠.

    문제 핵심은 누구도 자신의 ‘더러운 빨래’를 바깥에 널어 놓는 것을 원하지 않고, 반대로 누구도 일반적으로 기업의 ‘더러운 빨래’를 직접 보고 듣고 싶어하지 않는 다는 것이죠. 일부 정치적으로 기업을 공격하려 하거나, 문제를 빌미로 다른 의지를 구현하고자 하는 이해관계자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위기를 겪는 기업의 ‘더러운 빨래’까지 굳이 들추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업은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위기관리에 있어 투명성의 기준이란 핵심 이해관계자의 눈높이 그 이상이나 이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준입니다. 따라서 먼저 핵심 이해관계자가 바라보는 눈높이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투명성에 대한 개념은 ‘신속함’입니다. 일단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해당 기업이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 한다면 일단 해당 실행은 ‘투명하다’는 평가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대로 시기를 놓치고, 한참동안 침묵한 뒤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될 수록 투명성은 인정받기 어려워집니다.

    또한 투명성은 ‘빈도’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지속적 커뮤니케이션과 정기적 업데이트가 진행된다면 그 위기관리에는 투명성이 존재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반대로 위기관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중단되거나, 업데이트에 있어 수동적 자세를 보인다면 투명성을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투명성은 그 외에도 기존에 해당 기업이 보유했던 투명성의 가치 와도 연결되는 개념입니다. 평소 투명해 보이지 않던 기업은 절대 위기 시 투명하게 보일 수 없을 것입니다. 평소 투명하게 인식되었던 기업이 위기 시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투명성의 가치를 얼마나 구현하고 있었는 가는 기업의 중요한 위기관리 자산입니다.

    질문하신 내용의 구체적 어감을 기반으로 추가 답변 드리면, 기업이 위기 시 공개해야 하는 정보의 투명성은 실무적으로 ‘제3자 검증 가능’ 여부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보라도 최소한 제3자검증이 가능한 것이라면 최대한 공개해야 하며,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간단하게 제3자 검증이 가능한 정보를 숨기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비추어지면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입니다.

    둘러보시면 공감하시겠지만, 또 다른 고민은 최근 제3자검증 가능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셜미디어상에 유행하는 것처럼 ‘네티즌 수사대’를 이겨 낼 기업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환경이 기업으로 하여금 ‘투명성’에 대한 실행을 점점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업이 투명할 수밖에 없는 경영 환경이라는 것이죠.

    그래도 일단 위기관리 실행 차원에서 제3자 검증 가능 정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선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3자 검증이 불가능한 정보인 경우에만 상황에 따라 기업의 전략적 선택 고민이 가능합니다. 그 정도가 투명성의 허용 범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투명성은 절대 고해성사의 의미는 아닙니다. 영원히 그럴 수도 없습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페이스북 댓글을 왜 기사화하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한 기업의 질문

    ““저희 대표님이 얼마전 개인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기자들이 죄다 기사화 해서 곤욕을 치룬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분들과 댓글 논쟁을 벌이신 것도 기사화가 되네요. 사실 페이스북 같은 건 개인적인 건데 개인간 대화나 잡담 같은 것이 왜 기사화되죠? 프라이버시라는 게 없나요?”

    컨설턴트의 답변

    미국의 권위지인 뉴욕타임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인쇄할 가치가 있는 것은 뉴스(all the news that is fit to print)’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님의 페이스북은 기본적으로는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 개인적 글의 내용이 기사 가치를 지닌다면 그것은 다른 의미가 됩니다.

    물론 대표님의 개인 사생활을 무분별하게 기사화 했다면, 그런 기사를 쓴 기자와 언론사는 공중의 큰 비판을 받을 것입니다. 공중이 알 필요 없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일부 자극적 흥미라는 것은 존재할지 몰라도 기본적으로 그것을 공중이 알아도 별 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기사화는 적절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대표님의 페이스북 글이나 댓글 논쟁이 다수의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었고, 그로 인해 여러 사회적 논란이 발생했다면 일단 그 글은 일단 기사화 가치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단순한 프라이버시를 넘어 사회적 시의성, 저명성, 영향력, 이상성, 인간적 흥미 중 어떤 뉴스 가치라라도 한 두개 이상 해당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대표는 대표직에 있는 이상 최대한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습관을 유지해야 합니다. 대표이사는 기업을 대표해서 여러 주변 이해관계자들에게 정해진 가치를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사업과 그 결과를 통해 주주와 임직원들에 대한 의무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투자자, 주주, 임직원, 거래처는 물론 사회적 이해관계자인 정부, 국회, 언론 등에게도 성실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기업 대표의 모든 메시지는 일단 기사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기자들이 그로부터 기사 가치를 발견하지 못해 기사화하지 않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기사 가치가 있음에도 기자들이 기사화하지 않을 경우는 없다 생각해야 합니다. 이 생각을 기반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관리하는 것이 자신과 회사를 위해 이롭습니다.

    언론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통한 기업 대표의 메시지는 언론 기사화를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반면 페이스북은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거기에 실린 메시지는 기사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십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정제되지 않고, 사적인 감정이 들어있으며, 술김에 나온 이야기나, 푸념 등을 적는 것이라 기사화 가치가 없다고 일부 대표님들께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오프라인과 다른 언론 취재 방식에 비교해 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기업 대표나 핵심 장관이 기자와 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 아주 중요한 정보를 흘리는 실언을 합니다. 해당 기자가 기사를 쓸까요? 쓰지 않을까요? 특종의 기회를 마다할까요?

    식당에서 기자의 옆 테이블에 우연하게 앉은 유명인이 떠드는 자극적인 개인 사생활을 듣게 된 기자는 어떻게 할까요? 우연히 기자실 옆 쓰레기 통에서 얻은 기업의 비밀자료를 손에 쥔 기자는 어떻게 할까요? 길을 가다 고급 식당에서 나온 유력 인사들이 나누는 중요한 대화를 전부 듣게 되었다면 기자는 어떻게 할까요? 이런 경우 기자는 개인적인 내용이니 기사화를 절대 하지 않아야 할까요?

    기업 대표에게 ‘오프 더 레코드(비 보도 전제)’란 개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기업 대표가 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전달 메시지는 ‘온 더 레코드’ 입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는 더더욱 ‘오프 더 레코드’라는 진부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업 대표께서 자의적으로 ‘온 더 레코드’와 ‘오프 더 레코드’를 나누려 하시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세상은 이미 모든 것이 ‘온 더 레코드’입니다. 그 뿐입니다.

    ※ 이 글은 정용민 대표가 이코노믹리뷰에 연재한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칼럼입니다.

  • 소리치는 소수 vs. 침묵하는 다수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예전 이슈관리나 위기관리 원칙에서는 어떠한 부정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관련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을 잘 살펴 기업의 대응 방향과 전략을 정리하라 조언한다. 여기에서 공중 및 이해관계자들을 잘 살피라는 의미는 발생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의견, 감정, 태도, 느낌 등 여론을 다방면으로 리스닝 해 보고 분석하여 기업 대응 기조를 정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예전 기업들은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기업들은 언론의 기사와 논설을 주로 읽고 그것을 여론으로 이해했다. 일부 여론지도층의 개인 의견을 들어 그것을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이후 점차 공중 및 이해관계자의 형태와 생각이 다양해지고, 이슈 및 위기 유형과 지속성이 변화무쌍 해 지면서 이슈와 위기 시 공중 및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는 소셜미디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그때부터는 기업이 직접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수 많은 소셜미디어 채널 각각에서의 의견들을 다각적으로 듣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을 기업 스스로 완벽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 공중의 의견을 듣고 분석해 이슈나 위기 대응의 기조를 정하는 것이 익숙해 지면서 여론을 파악하는 것이 이전보다 쉬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겨 났다. 침묵하는 다수가 어느 곳에서 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는 소수보다 훨씬 더 많은 다수는 침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다시 기업의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과연 현 상황에서 소셜미디어상에서 소리치는 일부 공중의 의견을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일부 진영의 의견을 대변하는 전통 언론을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간주해도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차피 기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나 각각 자기 진영이나 도그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찾아 따를 것인가? 침묵하는 다수를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인가? 그들이 침묵하고 있는 데 어떻게 그들의 의견을 알아 내 이해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실제 현장에서 위와 같은 고민으로 기업 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화두들을 정리해 보자.

    소리치는 소수는 그저 소수일 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더욱 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라고 부를 때 일부는 ‘소수(minority)’에 방점을 찍는다. 반대로 일부는 ‘소리치는’에 방점을 찍는다. 이슈나 위기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부정 상황에서는 소리치는 자들이 생겨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상황과 관련된 분노를 이야기하고, 실망감을 표현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며, 비웃음을 보낸다. 상호간에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신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공중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며 성장한다.

    바로 그들이 소리치는 소수다.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는 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리치는 소수가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관찰 가능하다. 실재하는 공중인 것이다. 그들의 소리가 커져 다른 주변 이해관계자들이 듣게 되면, 상황은 이전과 또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심각성이 더해진다. 추가적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상황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기업이 해당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 들에 의한 압력과 공격 그리고 그로 인한 장기간의 부담이 기업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가져온다. 위기가 돼 버리는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는 대저택 마당에 풀어 놓은 큰 개들과 같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자신을 왓치독(watch do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를 보고 그들이 짖기 시작하고, 그 소리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집 주인(다른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은 현관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와보게 된다.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두렵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문제를 보았음에도 소리치지 않는 개들(침묵하는 다수)은 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소수가 시끄럽게 소리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최근 이슈 및 위기관리의 목표가 되고 있다. 소리치던 소수가 점차 목소리를 줄여 나가게 하는 것, 소리치는 소수가 점차 사라지게 이끄는 대응 방식을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그러다고 해도 극소수의 극단적 의견까지 수용해야 하나?

    그렇다. 그 극소수로 보이는 극단적 의견이 일단 기업에게 보여지고, 피부에 와 닿는 수준이라면 그들의 의견은 이미 무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자사에 대하여 젠더 극단의 일부 그룹이 상당한 수준의 분노와 적대행동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실제 사회 및 시장 접촉면(point of connection)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면, 이 상황을 무시로 해결할 수는 없게 된다.

    아주 극소수의 매우 극단적 의견이라 폄하만 해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실제로 아주 극소수의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의견이나 주장이라면 아예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잠깐 시끄러울 수는 있어도, 이내 스스로 사라져 버리게 될 뿐이다. 그들의 소리를 접하는 대다수가 그들의 존재와 의견을 먼저 무시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아 지속되는 극소수의 극단적 의견이라면, 기업은 큰 심각성을 느끼며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예상되는 더 큰 데미지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소리치는 공중에 대해 숫자, 이성 또는 합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보았 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기업이 피해를 입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의견이 어떻게 살아남아 성장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에 각각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더 예후가 좋다.

    침묵하는 다수는 그럼 존재하지 않는 다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어디에나 침묵하는 자들은 존재한다. 특히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는 그 상황에 따라 침묵하는 자들의 수가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이슈나 위기 발생 시 해당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자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침묵하는 자가 소수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이슈나 위기 초기에는 침묵하는 자들의 수는 다수로 존재한다. 그것을 전제로 해서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이해해야 한다. 기업의 전략적 대응이 성공했다면, 침묵하는 자들은 다수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기업의 대응이 실패한 것이라면. 침묵하는 자들은 급격히 줄어들고, 소리치는 자들로 변화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소리치는 다수의 상황, 곧, 사회적 공분의 사태로 해당 이슈나 위기는 악화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침묵하는 다수를 찾아 해 메거나, 분석해 보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소리치는 소수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다. 상황 발생 또는 대응 이후 소리치는 소수가 점차 다수화 되는 상황이 목격된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되어 간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막연하게 모집단의 규모를 잘 알지 못하니 소리치는 소수가 두 세 배 증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다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별 의미가 없다. 이슈나 위기관리는 수학이나 과학이 아니다. 소리치는 소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면 어떤 이유나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침묵하던 다수가 따라서 소리를 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것을 이해하고 집중 관리해 나가는 것이 이슈관리고 위기관리다.

    소수가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이해관계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런 상황으로 분석되는 경우라면, 현재 소리치는 소수는 실제 여론의 정글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은 소수가 아닐 것이다. 제대로 여론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폐쇄된 의견들의 집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폐쇄형 커뮤니티나 카페, 메신저그룹내에서 고여 있는 의견들이 그런 것이다. 그들의 소리침이 여론의 정글로 직접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일부 흘러나와도 오래 생존할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겨우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그 소수의 소리침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에도 유사한 분석이 가능하다. 주변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과 감정의 일치를 형성하지 못하는 주제라는 의미다. 이런 경우에는 그 소리치는 소수를 모니터링만 할 뿐, 대응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면, 지켜만 보는 것 자체가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성장하고 확산되지 않는 소수의 소리침은 바라봄이 최선의 대응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닐까?

    그렇지 않다. 만약 침묵하는 다수가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면, 일단 소리치는 소수는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아 성장할 수 없다. 소리치는 소수의 잘못된 의견을 반박하고 반대하는 다른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기존 소수와 새롭게 그들을 비판하는 소수의 시끄러운 싸움이 시작된다. 여론의 정글에서 치열한 싸움이 발생되었다는 것은 이미 기업에게는 이전보다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기업측에서는 그런 소수 간의 싸움이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도움이 된다 해석해야 한다.

    그런 싸움이 없이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공중이 다수로만 그대로 남아 있을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새로운 소수가 태어나지 않은 채 침묵하는 다수만 계속 존재한다면, 그 다수는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주목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거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말로 그들은 부동층이다. 이런 부동층의 침묵하는 다수를 소리치는 소수 쪽으로 이동시키지 않는 노력을 해야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는 성공한다. 침묵하는 다수라고 해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 막연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이전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론이라는 것 자체도 이전의 여론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여론은 기본적으로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특성만 변하지 않았다. 여론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언제든 어떻게 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나뉘며 널을 뛸 수 있다.

    까다로운 여론을 들여다보며, 만져지지 않는 여론을 관리해야 하는 기업은 그래서 어려움을 느낀다. 무엇이 여론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다. 어떻게 여론을 찾고 이해해야 하는 가에도 이론들이 많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여론의 정글 속에서 이슈나 위기를 관리하려는 기업들은 더욱 더 여론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정의하는 것에 익숙 해 질 필요가 있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소리치는 소수, 즉 가시적으로 도출되어 있는 의견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여론의 정글에서 메아리를 울리고 있는지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로 강도를 더해만 가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그와 함께 소리치는 소수의 활동성, 확산성, 공격성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최근의 기업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정원에서 엄청나게 짖어 대는 두세 마리의 개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많은 개들이 아직 잠자고 있다고 짖어 대는 개들의 위력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언제 잠자던 개들이 일어나 따라 짖으며 달려들게 될지를 예측하며 항상 경계해야 한다. 짖고 있는 소수의 개들을 신속하게 관리하는 대응도 필요하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옛말을 믿고 소리치는 소수에는 무조건 대응하지 않는 기업은 이상의 조언과는 관계없는 기업이다. 그냥 갈 길을 가면 된다. 결과가 어떻든.

  • 누가 요즘 신문을 읽어요?

    [The PR 기고문]

    누가 요즘 신문을 읽어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얼마전부터는 홍보담당자 중에서도 종이신문을 건너뛰는 경향이 생겼다. 회사 PC나 노트북으로 스크랩 서비스 이용이나 온라인 검색이 가능한 데 왜 그 불편한 종이신문을 한 장 한 장 읽어야 하느냐 이야기하는 홍보담당자도 나타났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다.

    아예 종이신문을 접해보지 못한 젊은 홍보 신입도 늘고 있다. 그들에게 “종이 신문을 좀더 접해라. 그래야 전체적인 여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조언은 이제 종이 신문과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됐다는 분위기다.

    미디어 트레이닝을 진행하면서 50대 한 임원분으로부터 “요즘 누가 신문을 읽나요?”하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종이 신문은 이미 죽었는데 그 죽은 기사를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하는 거였다. 이 질문에 요즘 기자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까지 따라 나왔다. 죽은 신문에 아무도 읽지 않는 기사를 계속 올리는 수많은 기자들도 이젠 죽었다는 거다.

    신문, 종이 신문, 기사, 기자…이 화두들은 종종 혼동 속에서 언급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신문이 죽었을까? 종이 신문이 죽었을까? 기사가 죽었을까? 기자가 죽었을까? 정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다 죽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사업이고 플레이어들이다’는 이야기로 퉁 쳐진다.

    문제는 이런 혼동에 기반한 논의가 기존 기업 내 언론홍보 기능까지 고사시키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죽었으니 이제 그 기능은 필요 없다는 의식의 흐름 때문이다. 더구나 기업 커뮤니케이션이나 이슈 및 위기관리 기능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이 함께 저하되는 현상까지 보인다. 보지 않은 신문을 통한 문제 제기가 이제는 그 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그 기반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우리의 환경을 보자. 언론홍보와 이슈와 위기관리 관점에서 실질적인 실행 환경을 들여 다 보자. 진짜 신문이 죽었을까? 종이 신문은 진짜 계란판의 의미 밖에 없게 되었을까? 기사는 진짜 아무도 읽지 않을까? 기자도 신문과 함께 그 실제 기능을 잃었을까? 답은 글쎄다.

    첫째, 신문은 더욱 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종이 신문과 신문을 동일어로 사용하지 말자. 실제로 종이 신문의 구독 비율은 형편없이 줄었다. 그렇다고, 해당 신문을 읽는 독자들까지 형편없이 줄었다고는 볼 수 없다. 종이 신문을 비롯하여, 온라인 매체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 신문 발 정보의 공급과 소비량은 그 이전 보다 엄청나게 늘었다. 신문은 더 강력 해 졌다.

    오히려 읽기 싫은 기사가 너무 많이 노출되어 지겹고 괴로울 지경 까지 환경이 변했을 뿐이다. 신문 발 정보 없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기존 신문들이 한 일주일 아무 취재나 정보 공유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현재 같은 사회 상황이 지속될 수는 있을까? 만약 신문이 죽었다면 그들이 눈 앞에서 사라져도 아무 문제나 변화는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실행 차원에서도 기업 내 분위기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목격된다. 평소 다양한 보도자료를 통한 기사화에 별 반응 없는 임원들이 많아 졌다. 신문을 아무도 안 보는데, 거기에 보도자료를 뿌려 기사를 얻어 내는 것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이야기한다. 그런 생각이 합리적인 것 아니냐는 동의 요청까지 이어진다.

    그 후 해당 임원의 문제와 관련된 신문 기사가 실리면 반응은 어떨까? 합리적 기준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자면 해당 신문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니, 아무리 자신의 이야기라 해도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은 다르다. 해당 임원은 그 신문에 주목하고, 어떻게 든 처리해야 한다며 홍보실과 로펌을 두루 찾는다. 그 임원은 왜 그러는 걸까? 아무도 보지 않는 신문 일 뿐인데.

    둘째, 종이 신문은 청와대가 읽는다.

    청와대만 종이 신문을 볼까? 국회와 의원실에서도 본다.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들이 모두 종이 신문을 본다. 규제기관을 비롯하여 경찰과 검찰 같은 다양한 수사기관도 종이 신문을 읽는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어떤가? 그리고 다른 매체의 수많은 기자들은? 진짜 종이 신문은 모두 계란 판 정도의 의미만으로 전락했나?

    기업 내에서는 어떤가? 회장과 대표이사, 주요 임원들이 종이 신문을 본다. 그들 가정에서도 종이 신문을 읽기도 한다. 홍보실이 임원들로부터 듣는 익숙한 말이 있다. “그거 지면에도 났습니까?” 이 질문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아직도 온라인 보다는 지면에 더 신경 쓰는 최고의사결정자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기업이 합리적 사고를 한다며 무시하는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로 인해 규제 조사와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를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아침 받아 본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회사로 문의해 오는 국회 인사나, 환경이나 시민 단체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종이 신문 지면에 도배되는 기사를 읽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기업이 계속 무시할 수 있을까? 특정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따라서 취재를 시작하는 기자들의 전화는 아무것도 아닌가?

    지면을 확인하며 이야기하는 경영진을 무시할 수 있는 부서는 얼마나 있을까? 그 앞에서 ‘이미 종이 신문은 죽었습니다. 아무도 종이 신문을 읽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임원은 몇이나 될까? 그 이야기에 그렇구나 하며 종이 신문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는 회장과 대표이사는 몇이나 될까?

    셋째, 가짜 기사와 나쁜 기사 때문에 기사는 빛난다

    굳이 일반화의 오류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다. 모든 기사가 가짜이며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다만, 자신이나 자사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 내용이면 그 기사는 가짜이며 나쁘다 해석된다. 그리고는 요즘은 가짜뉴스와 나쁜 뉴스가 너무 많아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수십년 전 예전에는 가짜나 나쁜 뉴스가 전혀 없었을까? 그 때는 정말 저널리즘이 살아 있어서 가짜나 나쁜 뉴스가 발붙일 곳이 없었을까? 모든 독자들이 기사를 보며 전부 진짜이며, 좋은 뉴스구나 감탄하기만 했을까? 그런 상황이 오히려 가짜다.

    부정확한 기사, 품질이 떨어지는 기사, 일부러 왜곡된 시각을 집어넣은 교묘한 기사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이전과 같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런 수준 낮은 기사는 자신과 자사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지속적으로 키워 나가면 걸러 낼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반복적으로 수준 낮은 기사에 휘둘린다면 자신이나 자사의 리터러시 수준을 의심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몰라도 대중이 그런 수준 낮은 기사에 휘둘린다 믿는 것도 문제다. 그렇지 않다. 이슈나 위기관리 관점에서 대중, 공중,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확한 시각와 평가는 아주 중요한 대응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다. 상대를 우매한 그룹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성공할 수 없다.

    차라리 수준 낮은 기사 때문에 수준 높은 기사의 가치는 빛나게 되었다. 제대로 된 기사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진영논리 속에서도 뼈아픈 기사는 의미 있는 충격을 미친다. 겉으로는 그 기사를 가짜이고 나쁜 뉴스라 폄하해도 시린 부분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계일학은 계속 존재한다. 오히려 기사 아웃렛 환경이 확장되면서 군계일학의 기사나 기자의 사후 취재담이 세상에 알려질 확률은 더 늘었다. 당연히 그 내용이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수배로 높아졌다. 기사가 죽었다며 안일하게 바라볼 환경은 절대 아니라는 의미다.

    넷째, 기자를 무시하며 이슈나 위기관리에 성공한 기업 없다

    기자를 건너 뛰자는 논의를 진행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왜곡을 일삼는 기자를 상대하지 말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상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어차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자사 입장이 게시되면, 그걸 기자들이 받아쓸 텐데, 왜 골치 아프게 기자에게 까지 자료를 보내야 하는지 질문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한마디로 기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에 대한 대우나 평가가 이전 보다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현상을 가지고 기자가 죽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진짜 기자들은 아무 의미 없는 이해관계자로 무시해 버릴 수 있을까? 자사가 뿌린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주어 먹는 하이에나 정도로 폄하하면 아무 문제는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실제 대형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관련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을 무시하는 실험을 해 보면 된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된다. 기자들의 방문을 막아 철통방어를 해보자. 어쩌다 연락된 기자에게 묵비권이나 거짓 정보를 흘려 괴롭혀 보자. 대신 소셜미디어로 잘 정리된 내용을 게재한 뒤, 알아서 해석해 기사 쓰라 가이드 해보자. 그 결과가 소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각각의 기사에게도 그랬던 것과 같이, 유리하고 좋은 기사를 쓴 기자는 진짜 기자라 하고, 반대인 기자는 나쁜 기자라 하며 비속어를 써 비아냥 거리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그런 편향된 시각이 기자들에 대한 전략적 대응 기반을 무너뜨린다. 기자를 폄하하고, 기자를 차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자의 취재 방향과 수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내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니 문제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도 사후 아무 평가를 내부로부터 받지 못하게 되니 악순환은 계속된다. 기자가 죽었다고 확신해 보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업 홍보나 마케팅도 마찬가지고,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공히 적용되어야 하는 룰이 있다. ‘A 또는 B 또는 C’라는 ‘or’ 주장과 생각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문과 기자가 죽었으니 우리는 이제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집중해야 한다’ 같은 주장은 경계해야 하며 실질적이지 않은 주장이라는 의미다.

    얼핏 보면 상당히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주장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A나 B가 죽었을 리 없고,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다면 C에 집중하는 것이 정상적 대안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이해가능 한 것이다. 가장 전략적인 룰은 ‘A와 B와 C 모두를 제대로…’라는 ‘and’ 시각에 기반한 것이다. 신문, 종이 신문 기사, 기자 그 어떤 것도 죽은 것이 없다. 완전하게 사라지지도 않았으며, 그 다양한 영향력은 계속 변화할 뿐 아직도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생생하다. 그러니 ‘and’룰도 계속 유효하다.

    신문과 기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회사 내 언론홍보 기능을 없애자 하는 기업은 몇 년 후 아주 뼈아픈 교훈을 가진 후 스스로 다시 언론 홍보 기능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신문과 기자들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생각으로 기업 이슈관리와 위기관리 기능을 축소한 기업도 이내 마찬가지 환원의 심각한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실제 환경과 영향력 구도에 대한 시각이 부실한 기업은 그러한 폐지, 축소, 충격, 환원의 고통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홍보실 직원들이 불철주야 언론 홍보를 너무 잘했더니, 스스로 인기 좋은 기업이 된 줄 알고 이후 홍보실을 축소한 예전 기업들도 그랬다. 이슈나 위기를 초반에 잘 관리하던 실무진이 고생하던 기업에서는 자사 스스로 ‘발생될 이슈나 위기가 없는 기업’이라는 환상을 가지기도 했다. 그 후 위기관리 시스템을 오래도록 방치했고, 그 기업들도 몇 년 후에는 똑같았다. 그런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반복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살아있는 신문과 기자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 내내 그래왔듯.

  • CEO의 허심탄회 소망이 재앙이 되는 이유

    [The PR 기고문]

    CEO의 허심탄회 소망이 재앙이 되는 이유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신임 대표가 취임하게 되면 대부분 회사에서는 신임대표와 직원이 참석하는 간담회를 마련한다. 직원들은 새 대표의 얼굴을 직접 구경하며, 그가 가진 경영 방향성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신임 대표 입장에서는 새로운 마음으로 직원들과 마주해 허심탄회하게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일종의 상견례의 기분으로 서로가 즐겁게 얼굴을 마주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여기 까지다. 일단 간담회가 끝나면 상황은 이상한 쪽으로 흐르곤 한다. 직원들 각자가 신임 대표에 대한 첫인상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한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새 대표에 대해 그리고 회사 분위기에 대한 정보를 교환한다.

    블라인드에는 익명의 직원들이 신임 대표의 간담회 속 언급 내용들을 메모 형식으로 공유하며 평가를 시작한다. 그 포스팅 속 텍스트에 몰입된 사람들이 부문별한 개인적 평을 덧붙인다. 신임 대표의 일부 부적절 했던 메시지에는 융단폭격이 가해지고, 머지않아 그 내용이 언론에 기사화된다. 결국 소망이 재앙으로 변해 버렸다.

    신임 대표의 순수하고 희망적인 소망이 대체 어떻게 몇시간 만에 재앙의 모습으로 변질될까? 무엇이 문제일까? 신임 대표의 순진함이 문제인가? 직원들의 몰지각함이 문제인가? 언론의 지나친 가십성 관심이 문제인가? 대체 왜 그런 재앙이 여러 회사에서 반복될까? 그 이유를 이해해 보자.

    첫째, 소통은 고통이다

    얼마전부터 기업이나 정부나 할 것 없이 소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통은 지상명령이 되어 버렸다. 소통은 꼭 해야만 하고, 소통하지 않는 기업은 도태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 리더들은 소통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소통을 잘하는 리더로서 스스로 포지셔닝 하기 위해 애쓴다.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자주 하려 한다. 각종 회식이나 모임에 얼굴을 비춘다. 젊은 신입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한다. 언제든 대표에게 아이디어를 던지고 질문하라 한다. 대표이사의 사무실 문을 오픈 해 놓고 누구든 할말이 있으면 들어와 이야기 나누자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셜미디어를 열어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기적으로 직원들에게 레터를 쓰고, 멘토링도 즐긴다.

    여기에서 핵심은 그러한 소통이라는 것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리더가 확실히 깨달어야 여러 소통의 노력들이 제대로 된 결실을 맺게 된다는 점이다. 소통이 마냥 즐겁게 느껴지거나, 소통에 가슴이 뛰거나, 소통은 편안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리더는 위험하다. 소통은 듣는 것이 주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을 평가하는 직원들의 다양한 사견들을 듣는 것은 더 나아가 공포다. 이런 고통과 공포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 리더의 소통 방식은 위험한 것이라는 반증이다.

    둘째, 자녀와도 소통이 어려운 가장의 소망은 위험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중년 가장은 자신이 20-30 년 동안 키운 아들 딸 과도 소통을 어려워한다. 세대차이는 물론이고,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관에 대한 적응이 좀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자신이 아버지와 원활하게 소통하고 있다 느끼는 비율은 상당히 적다.

    그런 흔한 중년 가장이 리더의 자리에 오르게 되면 어디에 선가 소통의 자신감이 생겨난다. 20-30대 직원들에게 리더인 자신이 허심탄회 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을 그들이 웃으며 공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성공담이 그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이고, 리더로서 자신이 계획하는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 정확하게 각인되리라 소망한다.

    그런 믿음과 소망이 위험하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실패를 전제로 한다. 더구나 마주 앉은 상대 직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자녀들 보다 내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낯선자들이다. 그에 더해 대표와 직원이라는 정치적 조직적 분리가 기반 되어 있다. 그들이 신임 대표에 대해 오랜 익숙함과 친근함, 그리고 사랑을 품고 있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 많은 기반들이 생략된 채 행해지는 낯선 소통의 시도는 폭력이 된다.

    셋째, 하고 싶은 말 보다는 해야 할 말만 해야 하는 시대다

    회사내에서 직원들과 ‘정’을 나누는 시대는 끝났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예전 그 시절에도 진짜로 직원들과 정을 나눈 리더들은 없었을 수도 있다. 일단 정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리더가 산다.

    ‘허심탄회’라는 말의 의미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 놓는다는 의미다. 일단 기업 내에서 리더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제 마음을 터 놓는 것이 가능한가? 큰 일 날 소리다. 생각을 터 놓는 것은 또 어떤가? 언제 누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터 놓아 본적 있는지 한번 스스로 생각해 보자. 기본적으로 허심탄회와 같은 개념은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고 보는게 안전하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을 비롯한 유명기업들의 리더는 직원들과 철저하게 ‘정치적 정도 (Political Correctness)’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주체를 가장 안전하게 방어해 주는 개념이 정치적 정도다. 누구와도 중립적인 개념의 메시지로만 커뮤니케이션 하기 때문이다.

    최근 리더들이 골치 아파하는 커뮤니케이션 주제인 젠더, 사회적 차별 및 불평등, 부적절한 규정, 공정성, 정치적 가치관, 환경, 사회적 가치 등과 관련해 어떤 것이 정치적 정도이며 그에 기반한 메시지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리더가 소통에 성공한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있어 정치적 정도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무조건 재앙이 된다. 하고 싶은 말 보다 꼭 해야 하는 말만 하자

    넷째,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지 못할 이야기는 직원에게도 하지 말자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된 세상이다. 직원들도 이제는 모두 기자다. 직원의 휴대폰에는 언제든 기사를 출고할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채널들이 반짝이고 있다. 기자들을 모아 놓고 하지 못할 말이면 직원들에게도 하면 안되는 환경이 되었다. 블라인드나 소셜미디어에서 보기 싫은 자신의 말은 입 밖으로 내지 말자. 그러면 재앙은 미연에 방지된다.

    일부 리더는 직원들에게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강조하고,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외부로 알리지 못하는 제한이 필요하다 이야기한다. 회사 모니터링 체계와 규정을 강화해서 온라인에서 일부 몰지각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직원들을 찾아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받게 되는 회사의 피해에 대해 그대로 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물리자고도 한다.

    하지만, 다시 기억하자. 직원은 기자다. 기자는 질문하고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을 세상에 알린다. 직원에게 질문하지 말고,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와 블라인드에 올리지 말라 강제할 수는 없다. 직원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도 없다. 기자가 쓰는 부정기사를 전략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기자가 부정적인 것이라 판단할 기사 꺼리를 회사가 만들지 않는 것이다.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수밖에 없다.

    다섯째, 노 선배와의 허심탄회를 한번 생각 해 보자

    CEO 자신보다 대략 서른살 많은 직장 선배가 자신과 같은 또래들을 모아 놓고 그의 스타일 대로 소통한다고 상상해 보자. 80~90세 선배가 자신의 오래된 경험과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거다. 중년인 자신들에게 회사 생활하는 방법과 여러 최근 사내 이슈에 대해 선배 나름대로 생각을 피력한다. 그리고는 중년인 후배들에게 멘토링을 해 주겠으니 허심탄회 하기를 제안한다. 어떤 느낌이 드나?

    바로 그 느낌이 현재 직원들이 느끼는 소통의 세대차 느낌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자. 최근 젊은 직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꼰대’다. 일단 싫다는 거다. 말도 통하지 않고, 더 나아가 말하기도 싫은 대상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은 금지어가 된 지 오래다. ‘라떼 이스 호스(Latte is horse)’라는 비아냥 속에서도 선배들의 라떼 사랑은 계속 이어진다. 일부 80년대 생들은 벌써 젊은 꼰대라고 까지 불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제인가? 그들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기업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일까? 글쎄다. 수십년 전에도 젊은 친구들은 윗 사람들을 꼰대라 불렀었다. 지금처럼 당시에도 꼰대는 존재했다. 그 때 그 선배들을 꼰대라고 부르며 뒷담화 했던 젊은이들이 이제는 그 꼰대의 자리에 오른 것뿐이다.

    소통이 성공하려면 상대의 문제를 문제라 생각해서는 안된다. 상대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상수라고 간주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리더는 자신이 꼰대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친근한 꼰대가 되는 것이 낫다. 직원들과의 소통에서도 불편하고 기분 나쁜 꼰대로 비추어 지지 않기 위한 준비된 노력만이 상책이다.

    마지막,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하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소통의 시도다. 준비 없는 소통, 메시지전략과 핵심 메시지 없는 소통은 곧 위기로 발화된다는 생각을 하자. 이미 우린 수많은 소통으로 인한 재앙을 목격했다. 재앙으로 결론 난 소통의 시도들의 주된 공통점은 리더가 완벽하게 소통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통을 지원하는 실무팀에서도 리더를 위한 철저한 준비와 지원이 부족했을 것이다.

    소통은 고통이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소통의 시도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자신이 시도하는 소통은 언제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고, 실패를 줄이기 위한 준비와 노력을 부단히 해야 맞다. 해야 하는 말로만 메시지 전략을 짜야 한다. 세부적인 핵심 메시지도 대부분 해야 할 말에 연결되어지는 구조를 지녀야 한다. 리더는 스스로를 부정하지 말고, 직원들이 바라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좀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또한 철저한 준비와 노력과 연습에서만 나온다.

    만약 그런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준비의 과정을 참지 못하는 리더라면, 지금과 같은 소통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신도 실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 신비함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존재 가능한 것이다. 만약 거룩한 신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와 면대면 소통을 하고, 같이 식사를 하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 하자 한다면 이내 신비감은 사라질 것이다. 그 신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면 실망감은 더더욱 클 것이다.

    완전히 준비된 전략을 가지고 직원들 앞에 나와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할 것 같은 리더라면, 차라리 신비함을 유지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다. 면대면을 피하고 전통적인 텍스트와 잘 편집된 영상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은 가능하다. 소통의 횟수를 의미 있게 조정하고, 주제를 완전하게 관리해서,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것도 의미는 있다. 일단 무엇보다도 안전한 소통의 방식이어서 더 가치가 있다. 트렌드를 쫓는 헛된 소망이 재앙으로 변질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란 준비된 커뮤니케이션을 의미한다. 준비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은 비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누구도 그 결과를 예상하거나 일부라도 통제할 수 없다. 결과와 반응을 그저 운에 맡기는 커뮤니케이션 행위가 될 뿐이다. 이제부터 허심탄회라는 말은 쓰지 말자. 정이나 운을 기대하지도 말자. 헛된 소망을 버리고, 준비와 연습을 통한 전략을 믿자.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본질로 돌아가자.

  • 통제가 곧 관리라는 개념이 사라져 간다

    [The PR 기고문]

    통제가 곧 관리라는 개념이 사라져 간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들의 최근 위기관리 케이스를 보면 뚜렷하게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기업이 기업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위기 사례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기업이 내부 임직원을 통제하지 못한다. 내부 정보의 흐름 또한 통제하지 못한다. 내부 기록을 통제하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관행이나 습관도 통제하지 못한다. 거래처는 물론 여러 파트너사도 통제 대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이에 더해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외부 이해관계자나 미디어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언론을 어떻게든 관리해 보려던 노력은 이미 옛 무용담이 되었다. 경찰, 검찰, 국세청, 식약처, 관세청, 국회, 금융관련 기관 어느 하나도 예전 같은 통제나 관리가 여의치 않다.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라는 곳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통제라는 개념과는 멀었던 곳들이다. 인플루언서나 여러 빅마우스들은 통제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물론 ‘일부 가능하다’ 또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기업도 아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 시각에서 모두를 자사의 의지대로 일사불란하게 통제할 수 있는 기업이 존재할 수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대부분은 ‘최대한 가능한 대로 해보자’ 또는 ‘필요한 방법을 찾자’하는 수준에서 여러 통제불가능성을 관리하려 애 쓸 뿐이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한 것들을 가지고 위기를 관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보인다. 위기관리라는 것이 관리 방식을 통해 최대한 부정적 변수를 제거해 나가는 일인데, 통제되지 않는 수 많은 변수들을 가지고 위기를 관리한다는 것은 참 웃긴 말이다.

    통제를 전제해서 쓰여진 매뉴얼과 교과서

    통제되지 않는 것은 절대 관리되지 않는다. 심지어 통제되는 것을 가지고도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위기관리 매뉴얼이나 교과서들은 통제가능성을 전제로 쓰여져 있다. 예를 들어 ‘위기관리를 위해 위기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구성원들은 훈련 시키라’는 조언을 보아도 그렇다. 이 조언에는 지명 받고 훈련 받은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 통제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상당부분 반론이 나온다. ‘내가 왜 위기관리위원회에 소속 되어야 하지?’ ‘평소 일도 많아서 매일 야근 하는데 위기관리 업무까지 맡으라면 좀 곤란한데’ 이런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통제불가능성이다. 훈련을 받고도 ‘이 훈련을 받아서 어디에 쓰라는 건가?’ ‘이 한번 훈련으로 내가 제대로 위기관리를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하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이 또한 통제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대표이사도 통제불가능하긴 마찬가지일 수 있다. 위기관리 조언에 의하면 ‘필요 시 CEO가 나와서 문제를 해결 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라’ 한다. 그런 조언을 들은 대표이사가 마음 속으로 ‘나는 기자나 외부 사람들하고 진행하는 이런 부정적 커뮤니케이션으로 기록에 남기 싫은 데’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커리어에 큰 오점을 남기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완전한 통제불가능성이다. 대표이사가 외부로 나서기를 꺼려 하는데, 억지로 그를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부는 이미 통제불가능 그 자체

    직원들이 쓰고 공유하는 블라인드 앱에 들어가 보자. 어디에 통제가능이라는 개념이 적용될 수 있을까? 아무리 감사팀과 법무팀이 내부 정보를 외부로 유출하지 말라 해도 소용 없다. 정보유출을 적발한다고 하는 다양한 수사 내용까지도 외부로 유출된다. 유출자를 발본색원하겠다는 그 의지가 다시 비판 받게 된다.

    직원들이 가지는 퇴근 후 술자리는 통제가능 할까? 그들이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 하루 종일 떠들어 대는 내용들은 통제가능 한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통제해야 하며, 얼마나 그런 노력이 가능할까?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어떤 기업의 홍보팀장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었을 때 창구를 홍보실로 일원화 하라는 요청도 종종 무시됩니다. 그걸 함구령이나 내부에서 말을 맞춘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임직원이 많습니다. 심지어 홍보실이 직원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만든다는 비판까지 나오곤 합니다.” 이게 현장의 이야기다.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어떤 직원이 회사관련 한 내용을 자기 페이스북에 올렸다고, 지인이 알려와서 해당 게시물을 내려달라 이야기했거든요. 그랬더니 자기를 회사에서 감시하는 거냐고 오히려 화를 내고 사표를 낸다는 둥 항의를 하더라고요.” 이런 케이스들이 늘고 있다는 하소연들이 많다.

    내부 교육이나 훈련 내용도 이제는 외부로 흘러나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함부로 직원이나 내부 구성원들을 통제하려 했다가는, 아니 통제하려는 시도나 의지만 가지고 있어도 문제가 된다. 위기관리에 참여해야 하는 임직원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위기관리 업무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새롭다.

    더욱 통제 불가능한 외부 환경

    뭔가 통제 할 수 있어야 상황을 관리할 것 아닌가? 위기관리 현장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여기저기 나온다. 문제가 불거진 뒤 수천에서 수만 건씩 치솟는 트위터, 커뮤니티 게시물들은 아예 포기한지 오래다. 유투브 영상이나 각종 종편 방송 내용들이 확산 공유되는 것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지 오래다.

    소위 물타기나 밀어내기 같은 온라인 기술이 적용된 지 한참이지만, 항상 개운하지가 않다. 몰려드는 밀물을 양동이로 퍼내는 기분이다. “윗분들이 어떻게든 해보라 하시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작업입니다. 실제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하는 실무자들이 상당수다. 무언가 해서라도 작은 변화를 보여야 윗분들이 위기관리를 그나마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주 예전 가판에 떴던 기사를 밤늦게까지 네고 해서 가판에서 빼내던 추억과도 비슷한 현상이다. 일단 나왔던 기사를 빼 내었으니 홍보실이 할 일은 한 것이다라는 자위가 당시 실무자들의 위기관리 목적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당시나 지금이나 언론을 비롯한 모든 여론 기반의 미디어는 통제 불가능한 것이다. 일부 기사를 빼고 수정하고 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였는지, 그를 통해 언론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 생각했는지 물으면 실무자들이 확신에 찬 답을 하지 못하기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흥미로운 것은 수 십 년 전에도 미국을 비롯한 해외 위기관리 서적에는 ‘미디어는 통제할 수 없다. 통제해서도 안 된다’는 개념이 기반이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그런 전제를 아마추어라고 손가락질 하던 실무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손가락질은 사라져간다. 진짜 통제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론을 감히 통제?

    여론을 통제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매력적이고 강력한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권위주의 독재 정부에서는 매번 여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기업들도 그런 개념을 기반으로 일부 여론을 움직여 보거나, 제한 하려는 시도를 함께 하기도 했다. 아주 예전 이야기다. 지금은 어떤가?

    여론이 사회적 공분 수준으로 치달아 큰 곤욕을 치른 기업이 수도 없이 많다는 사실이 답이 될 것이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물러나야 했던 케이스들도 많다. 대대적 배상과 개선책을 발표해 가며 머리를 조아리는 경우가 이제는 일반화 되었다. 비판 여론을 잠재워 보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럼에도 여론의 공분으로 위기관리에 실패한 일부 경영진들은 ‘초기 여론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곤욕을 치렀다. 초기에 제대로 여론만 관리했더라면 그렇게까지 최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시각은 자사가 여론이라는 어마어마한 힘을 통제 가능한 대상이라 보는 것이다. 이런 시각이야 말로 현실을 억지로 외면한 것일 수 있다. 여론은 통제 불가능하다.

    비판 여론을 관리하는 것과 여론을 통제한다는 개념은 전혀 다른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비판 여론을 관리하는 것 조차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여론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하는 기업들의 위기관리 시도가 여러 통제불가능성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늘어난다. 내외부 관계자의 뒷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추가적 내용이 고발되기도 한다. 여론을 향한 관리 시도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난타전으로 번지기도 한다. 여론을 대상으로 하는 위기관리란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위기 원점을 통제하라고요?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원점을 먼저 관리하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참 말이 쉽다. 만나주지도 않고, 만나는 경우 더욱 더 격렬해지고, 만나서 하는 모든 이야기가 언론이나 온라인에 올라오는 경우 이런 원점을 어떻게 통제하거나 관리하라는 이야기인가?

    자칫 아마추어 같은 생각을 하고 진정성만 가지고 원점을 만나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라. 사람이 제일 무섭더라. 성악설을 믿는다. 이런 이야기가 위기 시 원점을 관리하는 업무를 해 본 직원들의 하소연이다.

    위기관리 명언 중에 ‘목욕 욕조에 물이 넘치기 시작하면 마른 걸레를 가지러 가기 전에 수도 꼭지를 잠그라”는 말이 있다. 이 명언의 비유에서 ‘수도꼭지’가 바로 원점이다.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은 채 아무리 마른 걸레를 쌓아 놓고 닦아 내도 넘치는 욕조를 감당 해 내기는 어렵다.

    어떤 기업에서 생산시설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어 계속 문제 제품이 나왔다.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위기관리 미팅이 열렸다. 앞 서와 같이 수도꼭지를 잠그자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의 생산시설을 일단 멈추고,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이다.

    그러나, 최고경영진은 아직까지 소비자 불만 제기 수가 적고, 해당 문제가 법적으로나 안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아니기 때문에 생산과 판매를 중단할 수준은 아니라는 의견을 낸다. 사실은 그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이 발생하고, 성과를 맞추지 못하게 되면 자신의 인사가 불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내부의 위기원점도 통제불가능하기는 마찬가지다. 원점은 통제 불가능한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다.

    그렇다면 어떻게 위기관리를 해냐 하나?

    다시 아주 예전 해외 국가에서 쓰여진 교과서와 매뉴얼들을 좀더 꼼꼼하게 읽어 보자. 우리가 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투명하라. 거짓말 하지 말라.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 하라. 신속하게 하라. 이런 조언들을 기억해 보자.

    이런 부분이야 말로 통제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미래의 위기관리라는 것이 어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팁들이다. 투명하라는 조언은 문제 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말라는 의미다. 평시에 돌아보고 문제 될 부분을 스스로 개선하라는 의미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투명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내부 문화를 만들라는 조언이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조언은 더 나아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문제를 아예 만들지 말라는 의미다. 거짓말 해야 하는 상황이나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급한 통제와 관리가 필요해진다. 이 또한 평시 돌아봄의 주문이다.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조언은 전략을 가진 창구들이 전략대로 움직이라는 의미다.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 량이나 빈도는 주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 자체가 사람의 본능이다. 그런 일반성과 본능에 반해서 더 많고 자주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조언은 전략을 가지라는 의미다. 전략에 기반해서 자사의 투명성과 진실을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 하라는 의미가 된다.

    신속하게 위기관리하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조직이 신속하게 움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신속하게 관리될 수 있는 위기만 만들라는 의미도 된다. 의도를 가지고 위기를 만들어 내지 말라는 것이다. 심각한 수준까지 위기를 숙성시키지 말라는 의미다. 뻔히 관리할 수 있는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 폭발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통제. 그리고 그 통제를 기반으로 하는 관리. 위기 시 가장 필요한 두 가지 가치는 어떻게 보면 평시 돌아봄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가는 노력과 대체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평시 기반이 조성된다면 위기 발생 시 누구도 어떻게도 통제할 이유가 없는 위기관리 환경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가 투명하고, 떳떳하게 철학과 원칙에 따라 움직일 수만 있다면, 왜 내부 인력을 통제해야 하나? 왜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제해야 할까? 왜 규제기관을 통제해 보려 시도해야 하나? 왜 정보와 자료들을 통제해야 하나? 통제가 곧 관리라는 개념을 버려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104. 상상하지 않았던 게 문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가 발생하면 “상상할 수 없던 일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 위기관리 현장에서 살펴보면 해당 위기는 조금만 돌아보면 ‘상상 가능했던 것’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왜 위기관리를 하는 기업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할까?

    일단은 자신이 맞닥뜨린 위기가 생소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위기관리가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 준비가 되지 않았던 원인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명언 중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람이 꿈을 크게 가져야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일 뿐이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은 꼭 일어나고, 상상할 수 없던 일도 일어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우선 ‘상상할 수 없었던’ 원인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살펴보자. 만약 그 이유가 상상 자체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제대로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발생될 위기를 몰랐을 뿐이다. 반대로 제대로 상상해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면, 그런 일은 발생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핵심은 위기관리를 준비하면서 기업내 위기관리위원회가 얼마나 제대로 된 상상을 오랫동안 해 보았는 지다. 대부분 위기는 상상가능한 범위내에 있으며, 그 범위 내에서 발생된다. 하늘 아래 새로운 위기가 없다는 이야기는 수 없이 들었을 것이다. 모든 위기는 이미 발생했던 기출문제라는 비유에도 이제는 익숙할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만 상상했더라면, 해당 위기가 발생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던 경우가 많아 질 것이다. 발생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발생을 억제 차단할 수 있는 방법도 고안 가능 했을 것이다. 그와 함께 해당 위기가 어떤 형식으로라도 발생된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도 가능했을 것이다. 절대로 해당 위기는 낯설고, 놀라운 위기가 아니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업에서는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었다’ 이야기는 하지 말자.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해당 기업이 제대로 된 상상을 해 보지 않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 더구나 많은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이 누구라도 뻔히 예상 가능했던 위기에 대해 상상 하지 못했다는 기업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한번 생각해 보자.

    이는 위기관리에 대한 전사적 관심과 투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상상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는 평시에 위기관리에 대한 적절한 관심과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에도 부정적이다. 더 나아가 그런 관심과 투자를 생략했기 때문에 이번 같은 위기를 발생시킨 것이라는 논리와도 연결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완전한 책임론이다.

    진정으로 해당 위기를 자사 위기관리 위원회 구성원 누구도 ‘상상해 보지 못한 것’이라면 그 과정을 다시 돌아볼 필요도 있다. 위기에 대한 상상을 하는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발생되는 수준의 위기를 상상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실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상상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면 다음부터는 더욱 더 확실한 상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모든 위기관리는 이처럼 위기를 바라보고, 위기에 대해 생각하고,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상상해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각각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살핌과 고민이 있어야 좋은 위기관리 체계와 역량이 구축된다. 위기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또한 이 과정에 문제가 존재했던 것이다.

    제대로 상상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상상할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관리가 잘 안되는 것을 보면 위기관리를 잘 못했기 때문이라며 실행을 주로 탓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보면 잘 못된 위기관리는 실행 이전에 이미 잘 못될 이유의 99%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위기관리가 잘 못될 수밖에 없는 원인에 대해서도 평시 조금만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의미다. 평시에 그런 잘 못될 수밖에 없는 원인들을 하나 하나 고쳐 나가야만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잘 된 실행이 가능해진다. 그런 준비 없이 막상 위기에 맞서 제대로 된 실행이 진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상해 보고, 위기관리가 잘 못 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찾아 해결해 보고 하는 것이 진짜 위기관리다. 진짜 위기관리를 해 보자.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

  • : 96편] 마녀는 물에 뜬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유럽 중세시대 가장 비극적인 여론몰이와 그로 인한 피해의 역사를 우리는 ‘마녀 사냥’이라 부른다. 수 백 년 지난 지금도 마녀 사냥으로 불리는 여론 몰이와 그로 인한 피해들은 매일 매일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업들은 어쩌다 여론의 희생양이 될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내 폭력적인 여론의 실제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한다. 경영자들은 합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일 뿐,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여론을 엉터리라 손가락질한다. 그렇게 대부분은 여론에 손가락질을 하다가 결국 성난 여론의 희생양이 된다.

    위기를 관리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당장 마녀사냥을 멈추어 주십시오!” “저희는 마녀사냥의 희생양입니다. 이런 불행한 역사가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런 메시지는 별반 효과도 없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금방 사라져 버린다.

    중세시대 마녀라 의심을 받는 사람을 붙잡아 그가 마녀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마녀의 혐의가 있는 사람을 의자에 묶어 깊은 강물속에 빠뜨려 보는 시험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마녀는 물에 뜬다’고 믿었다.

    물속에 빠져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된 혐의자가 발버둥 치다가 우연히 물 위로 떠오르게 되면 그 혐의자는 곧 마녀라 간주되었다. 사라들은 그를 꺼내 올려 화형 시켜 죽여 버렸다. 반대로 물속에서 고통받던 혐의자가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죽어버리면 사람들은 그가 마녀가 아니었다 생각하고 시체를 건져 올려 묻었다.

    기억하자. 물에 뜨건 뜨지 않건 모든 결과는 동일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미친 마녀사냥에서 살아 남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마녀라는 혐의를 받지 않는 것이 유일한 위기관리였을 것이다. 마녀 혐의를 일단 받으면 그 후 그 혐의로부터 벗어날 방식은 극히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여론 즉,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마녀라고 볼 수 있는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삼가 하는 것이 최선의 위기관리였다는 의미다. 밤중에 아무도 가지 않는 무덤들 사이를 걸어가지 않아야 했다. 별이나 불을 보며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시늉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기적을 행 하겠다고 거리를 떠들고 다니지 않는 것이 안전했을 것이다. 자신이 진짜 마녀이건 아니건 그렇게 보여 질 일만 하지 않았으면 되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그런 이상한 행동을 반복하고 이를 통해 마녀라는 혐의를 받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 사람이다. 여론을 문제라 부르기 전에 마녀사냥이 횡횡하는 그 시기에 마녀라는 혐의를 받기 충분한 행동을 계속 한 사람이 더 문제라는 이야기다.

    여론을 태풍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거대한 태풍이 다가와 그 속에 갇혀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해 보자. 몰아치는 폭풍에 주먹질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바람을 거스리려 여러 노력을 하는 것은 의미가 있나? 태풍에서 살아남는 가장 좋은 위기관리 방법은 태풍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숨거나 도망가는 것뿐이다.

    역사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여러 사건들이 여론과 그로 인한 피해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최근 들어서 여론이라는 것이 그렇게 이상하게 되어 버린 것도 아니다. 많은 선례와 유사사례들이 흔하게 기억됨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사람들은 반복해서 여론의 희생양이 되기를 스스로 자처한다.

    여론의 재판에 처하지 않도록 평시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올바른 위기관리다. 최대한 여론의 주목이나 비판을 받지 않도록 모든 일을 제대로 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면 최대한 여론에 순응하는 것이 그나마 살길이다. 고개를 숙이고, 성의 있는 대책이나 개선안을 발표하는 것이 그를 위함이다.

    여론은 옳다 그르다 하는 판단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여론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여론이 문제라 이야기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여론을 대하는 기업이나 유명인들의 자세는 해당 여론이 자사 또는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신속하게 평가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여론은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적극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여론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할 필요도 없다. 그런 판단을 할 시간에 빨리 관리 방법을 고민하고, 여론의 주목으로부터 살아남는 실행에 몰두하자.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호랑이 앞에서 그 호랑이가 옳다 그르다 따지다 가는 금세 잡혀 먹힌다는 생각을 해보자는 것이다.

    필자소개

    정용민은 국내 최초로 설립된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사 스트래티지샐러드의 대표 컨설턴트다. 200여 이상의 국내 대기업 및 유명 중견기업 클라이언트들에게 지난 20년간 위기관리 컨설팅과 코칭, 자문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기업 위기관리 전문서적 [소셜미디어시대의 위기관리], [기업위기, 시스템으로 이겨라], [1%, 원퍼센트], [기업의 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