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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업은 항상 선의의 행위자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1982년 미국 시카고. 익명의 누군가가 약국 진열대에 놓인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를 주입했다. 일곱 명이 사망했다. 제조사인 맥닐컨슈머프로덕츠와 모회사 존슨앤존슨은 범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유통망 어딘가에서 저질러진 외부 범죄의 피해자였다. 그럼에도 맥닐은 시장에 유통 중이던 타이레놀 3100만 병을 즉각 전량 회수했다. 당시 기준으로 1억 달러가 넘는 비용이었다. 사과했고, 투명하게 공개했으며, 피해자 중심으로 움직였다. 위기관리론의 교과서가 된 사건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의 기업 위기관리 강의실과 컨설팅 현장에서 이 케이스는 반복적으로 소환된다. “타이레놀처럼 해야 한다”는 말은 위기관리의 불문율처럼 통용된다. 그런데 타이레놀 케이스와 한국의 기업 위기 케이스들은 과연 유사한 구조인가?

    기업은 더이상 선의의 행위자가 아니다

    기존 위기관리론은 암묵적으로 기업을 선의의 행위자로 전제한다. 위기는 기업 밖에서 오고, 기업은 그것을 당한다는 구조다. 타이레놀 모델이 그 전제의 정점에 있다. 범죄자가 위기를 만들었고, 맥닐은 피해자이면서 위기를 관리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 위기의 실제를 들여다보면 이 전제는 대부분 통하지 않는다. 기업 내부 갑질 케이스에서는 누가 위기를 만들었는가? 대리점 갑질 폭언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을 때, 그 위기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나? 데이터센터 화재로 수천만 명이 서비스 장애를 겪었을 때, 단일 장애점 구조를 설계하고 방치한 것은 누구였는가? 통신사 고객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보안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은 책임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타이레놀 케이스를 만능 교과서로 삼는 한국 위기관리론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실질적 다수는 기업이 피해자가 아니라, 기업 자신의 행위 또는 부작위가 위기의 직접 원인인 구조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타이레놀 모델을 적용하면, 위기 자체를 잘못 판단하게 되는 오류에 빠진다.

    두 축으로 위기의 실체를 바라보자

    한국 기업 위기를 있는 그대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축이 필요하다. 첫 번째 축은 주체 ‘책임도’다. 해당 위기에 대해 관리 주체가 지는 사회적, 도덕적, 법적 책임의 총량이다. 두 번째 축은 ‘위기유발의도의 강도’다. 위기 발생 구조에서 특정 행위자의 목적적, 의식적 의도가 얼마나 강하게 개입되었는가다.

    여기서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두 축 모두 시작점이 0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 위기로 판정되는 순간, 해당 주체에게는 최소한의 사후 대응 ‘책임’이 이미 발생해 있다. 마찬가지로 위기 발생 이전 주로 목격되는 ‘방치, 방관, 방목’은 의도가 없는 현상이 아니다. 위기관리의 본질적 정의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하는 것”을 위반하는 소극적 선택으로서, 약한 형태의 위기유발의도인 셈이다. 이렇듯 모든 위기에는 의도와 책임이 존재한다. 분류되어야 하는 것은 그 존재 여부가 아니라 강도의 차이다. 이 두 축을 교차시키면 네 개의 영역이 도출된다. 이것이 이슈, 위기 통합 관리 매트릭스다.

    제1사분면: 작위형 위기, 가장 중한 유형

    주체 책임도 크고, 위기유발의도도 강한 조합이다. 식별 가능한 특정 행위자의 의식적, 선택적 행위 자체가 위기의 직접 발생 원인인 경우다. 핵심 판별 기준은 하나다. “해당 행위자가 그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 유형에는 개인 일탈형, 계획적 논란화형, 조직적 불공정거래형, 허위, 기만 마케팅형, 안전, 환경 기준 의도적 위반형, 재무 조작형, 채용, 노동 착취 설계형이 포함된다. 대표적인 내부 갑질과 거래처 등 외부 갑질, 폭언, 부적절한 정치성 강요, 분식회계, 가격 담합 등이 이 유형의 대표 케이스들이다.

    두 축 모두 최고값에 위치하는 이 사분면은 성격상 가장 중한 유형이다. 대응 전략의 핵심은 행위자 격리와 행위에 대한 직접적 책임 인수다. 언어적 사과만으로는 수습이 불가능하며, 구조적 재발 방지의 가시화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한국 오너 기업에서 자주 목격되는 패턴은 가해 당사자가 동시에 위기관리 의사결정자인 이중 구조다. 이 구조에서 행위자 격리 없이는 어떤 대응 전략도 공중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종종 목격해 왔다.

    제2사분면: 부작위형 위기, 한국 위기의 실질적 다수

    주체 책임도는 크지만, 위기유발의도는 약한 조합이다. 주체에게 위기를 유발하려는 명시적 의도는 없었지만, 조직 시스템의 설계 부재, 방치, 방관, 방목이 위기를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경우다. 핵심 판별 기준은 “조직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적시에 했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까?”다.

    보안 방목형, 인프라 방치형, 노동안전 방관형, 가치관, 문화 방관형, 운영, 마케팅 과실형이 이 유형에 포함된다. 대규모 고객 개인정보 유출, 데이터센터, 생산시설, 물류센터 화재, 근로자 연속 사망, 남혐, 여혐 이슈, 기업의 정치 사회 아젠다 몰이해로 발생된 위기들이 이 사분면의 대표 케이스들이다.

    이 유형에서 방치, 방관, 방목의 삼분법은 내부 귀책 수위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방목은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지 않은 것, 방치는 시스템이 있었지만 작동을 내버려둔 것, 방관은 문제가 가시화되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개입하지 않은 것이다. 방관의 귀책이 가장 무거운 이유는 인지 이후의 무선택이 위기유발의도 선택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실질적 다수가 이 사분면에 분포한다는 사실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실패가 대부분 악의보다 무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공중은 무관심을 악의보다 가볍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알면서도 하지 않았다”는 방관의 증거가 드러나는 순간, 공중의 판단은 더욱 가혹해진다.

    제3사분면: 이슈관리 핵심 영역, 위기 이전의 공간

    주체 책임도가 적고, 위기유발의도 약한 조합이다. 아직 위기로 전환되지 않은 사회적 갈등 잠재력의 영역이다. 관리 주체의 직접적 귀책이 낮고 위기를 유발하려는 의도도 약하거나 부재하지만, 방치하면 위기로 전환될 수 있는 잠재적 긴장 상태다.

    중요한 것은 이 사분면이 이슈관리 유형 전체를 포괄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임도나 유발의도가 사회적 가시화의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 이슈는 위기로 판정되어 다른 사분면으로 이동한다. 즉, 이 사분면은 두 축 모두 임계점 이하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이슈만을 포함하는 영역이다.

    사회적 의제 충돌형 이슈, 규제 환경 변화형 이슈, 업계 전반 신뢰 하락형 이슈, 기술, 사회 변화 충돌형 이슈가 여기에 속한다. ESG 관련 이슈들, 플랫폼 경제와 기존 규범의 마찰, 인공지능·데이터 활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이 영역에 위치한다.

    이 사분면에서의 개입비용은 위기로 전이된 이후의 수습비용과 비교할 수 없이 낮다. 이슈관리의 실패는 이슈를 위기로 악화되는 것을 방치한 것이다.

    제4사분면: 외부공세형 위기, 타이레놀이 속하는 곳

    주체 책임도는 적지만, 위기유발의도가 강한 조합이다. 실질 귀책은 낮거나 최소인데,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위기를 구동하는 경우다. 이 강한 위기유발의도의 출처는 주로 외부다. 주체의 책임이 적은데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존재한다면, 그 의도의 주체는 논리적으로 외부일 수밖에 없다.

    1982년 타이레놀 케이스가 바로 이 사분면에 위치하는 케이스다. 외부 범죄자의 강한 위기유발의도가 위기를 구동했고, 맥닐사의 실질 귀책은 최소였다. 타이레놀 모델이 교과서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분면 안에서만이다. 한국 기업 위기의 다수가 제2사분면에 분포하는데 타이레놀 모델을 적용해온 것, 이것이 한국 위기관리론의 가장 큰 구조적 오류라고 볼 수 있다.

    이 유형에는 외부범죄 공격형, NGO, 시민단체 공세형, 경쟁사 마타도어형, 정치적 표적화형, 전직 임직원 보복형, 미디어, 인플루언서 표적형이 포함된다. 생리대 위해성 논란이 대표 케이스다. NGO 연계 연구팀의 공세 구조가 위기를 구동한 반면, 결과적으로 실질 귀책은 최소였다.

    이 사분면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전략 오류는 제2사분면의 대응 방식, 즉 내부 개선과 사과 중심 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수습할 내부 귀책이 없는 상황에서 사과를 선택하는 순간, 공중은 귀책이 있다는 신호로 읽는다. 분류가 잘못되면 처방이 잘못된다.

    분면에서의 위치는 계속 고정되지 않는다

    이 매트릭스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는 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위기는 진행되고, 대응이 개입되며, 공중의 해석이 축적되면서 케이스의 사분면 위치는 이동한다.

    두 축의 이동 메커니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X축(주체 책임도)은 객관적 사실의 확인과 변경에 의해 움직이는 경성(硬性) 변수다. 추가 사실 발견, 반복 발생, 은폐 시도 발각, 법적 판결 확정이 X축을 상승 이동시킨다. 반면 X축의 하강 이동은 극히 어렵다. 한번 확정된 귀책은 사실상 사라지지 않는다.

    Y축(위기유발의도)은 공중의 인식과 해석에 의해 움직이는 동적 변수다. 위기 발생 이후 주체의 대응 방식을 관찰하면서, 공중은 위기유발의도를 소급하여 재평가한다. 늦장 대응, 축소 시도, 형식적 사과는 모두 사전 의도의 증거로 해석된다. 반대로 진정성 있는 적시 대응은 Y축의 추가 상승을 차단한다.

    즉, 실무적으로 위기관리 주체가 실질적으로 통제 가능한 변수는 Y축이다. X축, 즉 이미 발생한 귀책은 사후에 없애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Y축, 즉 공중이 인식하는 위기유발의도는 대응의 적시성과 진정성으로 방어할 수 있다.

    가장 파국적인 경로는 제2사분면에서 출발한 위기가 대응 실패를 거쳐 공중의 Y축 재판단을 통해 제1사분면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초기에는 보안 방목형의 부작위 위기였던 케이스가 있다. 그러나 늦장 공지, 형식적 사과, 피해 규모 축소 시도가 반복되면서 공중의 판단은 바뀌었다.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의도에 대한 판단이 소급하여 형성된 것이다. 대응의 실패가 위기 성격 자체를 바꿔버린 경우다.

    분류가 달라지면 처방이 달라진다

    처방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타이레놀 케이스는 제4사분면의 이야기다. 한국 기업 위기의 다수는 제1사분면과 제2사분면의 이야기다. 이 두 세계에는 같은 처방이 통하지 않는다. 핵심은 위기유발의도라는 개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평시에도, 위기 국면에도, 이 개념은 작동한다.

    X축의 책임은 때로 시간이 소멸시켜 준다. 사건은 잊히고 귀책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위기가 불타오르는 국면에서 살길은 단 하나다. 공중이 인식하는 위기유발의도를 최소한으로 인정받는 것. 그것이 타이레놀이 40년 뒤에도 교과서로 남아 있는 진짜 이유다. 맥닐은 귀책이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위기유발의도를 단 한 순간도 의심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의 위기가 어느 사분면에 위치하는지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 그리고 그 사분면에서 공중이 위기유발의도를 어떻게 읽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주시하는 것이다.

  • 정용민 대표의 정기 기고문 목록

    updated, 2025.

    이코노믹 리뷰, 기업이 묻고 위기관리 컨설턴트가 답하다 (2015년 7월~현재)

    더피알, 기업위기관리 (2012년 8월~현재)

    이코노믹 리뷰, 한국기업 CEO들을 위한 위기관리 가이드라인 (2013년 3월~2014년 2월)

    이코노믹 리뷰,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원 포인트 레슨 (2014년 3월~2014년 12월)

    이데일리, 기업 위기관리 백팔수(百八手) (2017년 10월~2019년 12월)

    그 외, 대기업 사보, 언론사 단편 기고, 연구소 및 공기관 풀판물 기고문 다수.

  • 사내 1%의 인력이 곧 위기관리 경쟁력이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천명 정도의 임직원을 가진 회사가 있다고 치자. 그런 회사 내에서 실제 발생할 위기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대비하면서 평시 위기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상위 1% 가량의 고위경영진들이다. 약 십여 명 정도 된다. 여기에는 물론 대표이사도 포함된다.

    한국 기업들의 위기 유형을 한번 살펴보자. 몇 가지 유형에 있어 특징이 있다. 첫째 특징은 스스로 만드는 위기가 많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최고 수준의 위해성을 나타내는 기업 위기로 대략 세가지 유형을 꼽는다. 1. 오너나 최고경영진관련 2, 내부고발 3. 기업 범죄나 규제 적발. 이 세가지 유형을 보면 종종 해당 기업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해당 기업의 상위 1%에게 완전한 책임이 있는 유형이다. 흔히들 ‘대표이사는 몰랐었다’며 한발 물러서고는 하지만 여론에서는 그런 주장을 쉽게 믿거나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기업 내 1%의 경영 철학과 준법경영 마인드는 위기관리의 핵심이다.

    국내 기업 위기의 둘째 특징은 유사한 위기를 반복 경험한다는 점이다. 재작년과 작년에 경험했던 유사한 위기를 올해 다시 경험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던 위기지만, 다른 경쟁사나 동종 업계에서는 빈발하던 위기를 그대로 따라 경험할 때도 있다. 왜 유사한 위기를 반복해 맞고, 다른 기업에게 발생해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위기를 자사도 그대로 따라 맞는 걸까? 평소 회사가 위기관리에 관심을 두지 않아서 그렇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사내 1%인 핵심 인력들이 위기관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게다. 그러다 보니 바깥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반복과 답습이 계속된다.

    셋째 기업 위기 유형의 특징이라면, 기업 오너나 CEO가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는 위기관리 케이스들이 아직도 많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서야 일부 기업 오너들이 위기 발생 후 공개적 석상에서 사과 하고 재발방지와 배상책에 대해 커뮤니케이션 하곤 한다. 큰 변화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기업들에서 최상위 0.1%는 바깥으로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실제로는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내외부 커뮤니케이션은 그보다 하급자들이 담당 한다. 일종의 권위주의적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다. 그것이 전략적인 결정이라면 이견은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관습적인 것이라면 재고의 여지는 있다.

    넷째 기업 위기 유형의 특징이라면 사내에 강력한 기업 경영 철학이나 위기 시 따를 의사결정의 기준 가치가 별반 존재하지 않아 벌어지는 실패사례들이 많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 품질과 관련된 부분이다. 평소 사내 1%가 직원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하던 기업 철학은 무엇인가?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라 했을 수도 있다. 품질이나 안전이 최우선이라고도 한다. 환경과 커뮤니티가 최고 가치라고도 한다. 그렇지만 막상 그와 관련한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말이 달라지니 문제다. 사내 1% 임원들 중 대부분이 ‘평소 우리의 가치는 가치이고, 이번 위기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좀 더 영리하게 헤쳐 나가야 하지 않겠나?’라는 다른 공감대를 가지게 되면 문제다. 평시와 위기 시 각기 다른 입장과 행동을 보이는 이중적인 기업을 이해관계자들이 신뢰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평소 위기에 대해 대응하는 고민과 훈련을 했었다면 비교적 쉽게 큰 문제 없이 관리될 수 있는 위기들이 많다는 점이다. 평소 대비와 훈련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대응 훈련 예산은 사내 1%가 소위 ‘인문학’ 강의를 듣는 수준의 예산보다도 적은 게 현실이다. 필자는 모 기업을 위한 위기관리 워크샵을 마치고 그 회사를 30년째 다닌다는 고위 임원의 말을 기억한다. “제가 그렇게 오래 이 회사를 다니는데, 오늘처럼 하루 종일 우리 회사에게 어떤 위기가 발생할 수 있겠는지를 같이 모여 고민해 본 경험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사내 1%가 한번도 같이 모여 회사의 위기를 생각해 보거나 훈련해 보지 않았다면 과연 그 회사에게 위기란 수 십 년간 한번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이런 한국적 기업 위기관리 환경에서 가장 핵심 중 핵심은 사내 1%의 위기관리 경쟁력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평소 그 1%가 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하는 활동들을 직접 해야 한다. 하다못해 관심이라도 지속적으로 표현해 아래 직원들이 그렇게 움직이도록 독려해야 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라” 부하 직원들에게 지시하기 보다는 “위기관리 매뉴얼을 같이 만들어 보자” 해야 맞다. 그 과정에서 1%가 얻을 수 있는 배움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99% 위기는 예상 가능하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아’라는 말이 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흔히 말하는 ‘상상치도 못했다’는 말은 변명일 가능성이 많다. 평소 예상을 전혀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상치도 못한 것’일 뿐이다. 만약 예상할 수 있다면 사전 관리도 어느 정도 가능하게 된다. 이 기회를 1%가 직접 잡아야 한다.

    상위 1%는 계속 질문해야 한다. “경쟁사에게 이런 위기가 발생했는데, 우리에게 유사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겠는가?” “우리는 최대한 준비되어 있는가?” “어떻게 하면 그런 위기가 우리에게만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는가?”를 1%는 직접 계속 물어야 한다. 상위 1%가 질문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고려되지 않는다. 직원들은 상사의 질문에 움직인다. 답을 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실제 위기가 발생하고 나서 “어떻게 이런 위기가 우리에게 발생할 수 있지?”라고 묻는 1%라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상위 1%는 평소 질문을 많이 해 둘수록 위기 시에는 스스로 답을 낼 수 있게 된다.

    상위 1%가 먼저 훈련 받아야 한다. 위기관리 워크샵이, 트레이닝, 강의에 상위 1%만 빠지면 안 된다. 멋지게 소개나 축사를 하고 강의장을 나서서는 안 된다. 1%가 스스로 제대로 훈련 받아야 전사적으로 개념 잡힌 훈련과 대비 독려가 가능하다.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과 위기 대응을 해야 할 사내 1%들이 완전하게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위기관리가 경험지(經驗知)냐 학습지(學習知)냐 하는 논란이 있다. 위기관리는 평소에는 학습지이지만, 위기 발생시에는 경험지로 관리된다. 우리 사내 1%가 위기를 관리하기에 충분한 학습지와 경험지를 갖추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최고경영자의 책무다. 그렇지 못하다면 당장 지금이라도 그런 학습과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자신을 포함해서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비유가 담긴 우화를 하나 소개한다. 아주 옛날. 산속에서 마을로 내려온 야생 호랑이에게 큰 피해를 입은 ‘위기(危機)’라는 마을과 ‘관리(管理)’라는 마을이 있었다. 출몰한 호랑이는 각각의 마을에서 사람들 여럿을 물어 죽이고 달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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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危機)’ 마을 사람들과 이장은 고민 끝에 평생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던 사냥꾼을 불렀다. 호랑이 사냥꾼은 ‘위기(危機)’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호랑이 그림을 보여 주며 조심하라 이야기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호랑이를 조심해야 하겠다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관리(管理)’ 마을에서도 이장과 마을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대책을 이야기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을 모두 힘을 모아 마을 주변에 돌담과 가시나무 덩굴을 쌓았다. 무기를 만들어 나누어 주며 호랑이 잡는 법을 훈련했다. 밤마다 횃불을 들고 순시를 돌았다. 크게 짖는 사나운 개들을 사왔다. 아낙네들과 어린이들에게는 호루라기를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가 무서워한다는 쑥향과 모닥불들도 마을 군데 군데 펴 놓아 호랑이 접근을 막았다. 모두가 다음 호랑이의 출몰을 예상하고 이에 대비하는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 두 마을의 대응을 자사의 그것과 비교해 보자. 둘 중 어느 마을이 다시는 피해를 입지 않을까도 한번 상상해 보자. 기업 내 핵심 인력인 1%들의 ‘실천’을 위한 사고 전환은 그 무엇보다도 절실하다. 실천하자. 지금 바로.

  • 한국기업들의 위기, 경영의 문제? 위기관리의 문제?

    한국기업들의 위기, 경영의 문제? 위기관리의 문제?

    기업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기의 유형들을 스트래티지샐러드에서는 총 87가지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121개 유형으로 또 분류한다. [출처: 스트래티지샐러드 위기관리 매뉴얼 체크리스트 2013]

    이 유형들 중 한국 기업들에게 주로 발생하는 위기 유형들의 특성들을 분석 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3가지 특징을 보인다.

    1. (기업이) 의도적으로 발생 시키는 위기

    2. Guilty성 위기

    3. 구조적인 위기

    많은 학자들과 실무 전문가들이 위기관리를 사전 위기관리와 사후 위기관리로 구분하곤 한다. 하지만, 위기관리라는 개념하에 사전적 위기관리를 집어 넣는 것이 실제로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평소 위기 유형들을 분석 해 자사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미연에 발견하고, 완화 시키고, 억제 방지하고, 대비하는 모든 활동들. 즉, 발생 가능한 위기 유형 또는 요소들에 대한 사전적 관리는 위기관리 이전에 곧 경영(management)의 영역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위기관리는 평소 경영 활동에 의해 감지, 억제, 완화, 방지 되던 위기가 실제로 발생 해 가시적 영향을 미치게 된 상황을 관리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보면 위기 발생 이전에는 경영의 영역이고, 위기가 실제 발생한 시점 이후가 바로 위기관리의 주요 영역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위기관리 실무자들의 입장에서도 위기 발생 이전에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방지, 극복 활동들은 경영의 영역으로 구분되는 것을 원한다. 위에서 제시했던 한국기업들의 주요 위기 유형들의 특성을 보자.

    1, (기업이) 의도적으로 발생 시키는 위기

    예를 들어 시장 내에서의 지배적 위치를 이용 해 불공정한 사업 관행을 전개해 이득을 취하는 기업의 경우를 보자. 이런 사업 구조는 경영진의 관리 대상이고 책임이다. 이를 위기관리 관점에서 실무자들이 경고 해 불공정성을 해소 해 버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오너와 최고경영진들의 결단에 의한 개선이 없이는 해당 이슈는 곧 위기로 발화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관리 실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미봉이나 모면, 발화 지연 전략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위기관리 전략이 성공했다 치더라도 해당 위기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의미의 위기관리는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책임은 위기관리의 영역이 아니라 최고경영진의 경영 영역에 한정되어야 한다.

    2. Guilty성 위기

    예를 들어 생산시설 내 안전 조치나, 교육 그리고 사고 대응 장비들의 미비에 의한 안전사고 발생 경우를 들어 보자. 분명히 법적 규정에 따른 모든 제반 준비 체계를 갖추지 않았던 것이 주요 원인이다. 분명한 기업의 Guilty성 위기다.

    이에 대한 관리도 경영의 영역이다. 최고경영진의 안전에 대한 철학과 그 구현 의지가 핵심이었다. 위기관리 실무자가 진단작업을 통해 생산시설에서의 안전 체계 미비를 지적한다 해도 최고경영진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 한 즉각적인 개선은 힘들었던 것이다.

    안전사고는 반복되고 이에 대한 사후 위기관리도 똑같이 반복된다. 미봉, 무마, 모면 등이 최선이다. 끝까지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경영 노력이 없다면 위기관리의 성공은 불가능한 것이다.

    3. 구조적인 위기

    가장 흔한 예가 기업 경영진이나 오너에 의한 문제다. 한국적 지배구조상에서 기업 경영진 및 오너의 management override에 대해 기업 내 어느 누가 사전 감지, 억제, 완화, 방지가 가능할 수 있겠나?

    이 또한 경영 그 자체의 영역이고 책임인 부분이다. 위기관리 실무자, 즉 예를 들어 감사팀 등이 오너의 management override를 감지했다 해도 이를 근본적으로 사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은 실무진들에게는 없어 보인다.

    이상 같이 한국적 위기 특성들에서 위기관리 활동으로 실행 가능한 전략은 모면, 무마, 미봉, 발화지연 등이 전부일 수 밖에 없다, 물론 그럼에도 반복적인 동일 또는 유사 위기의 발발은 당연하게 된다. [위기관리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아노미(anomie) 상태의 지속]

    한국 기업이나 조직들의 위기는 위기관리의 부실이나 실패가 문제 핵심이 아니라, 경영의 부실과 철학 부재, 낮은 품질을 핵심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위기관리 실무자들은 매번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옵션 속에서 고민한다. 또, 근본적 위기관리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선을 그어 실행에 엄두 조차 내지 못하게 된다.

    사진 출처: Flickr [http://www.flickr.com/photos/53370644@N06/4975888229/sizes/m/in/photolist-8zGJdn-bWf8Ud-bWf9d1-bWf965-85hsb8-bWf8Zj-bWf8Cw-bWf8MU-bWf8JC-bWf8Fd-dD7gsM/]

    경영이 그대로 인데, 위기관리가 더 나아질 순 없다.

    근본적으로 위기 발생의 책임은 최고경영자에게 있다. 그러나 최고경영자는 현실에서 웬만해서는 위기발생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대신 위기관리가 잘 못되었다고 책임자들을 비판한다. 최고경영진들이 위기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한국 기업이나 조직에서 위기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 위기(危機)와 관리(管理)라는 마을의 호랑이 우화

    위기(危機)와 관리(管理)라는 마을의 호랑이 우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산 하나를 양 옆에 두고 ‘위기(危機)’라는 마을과 ‘관리(管理)’라는 마을이 있었다. 두 마을 사람들 모두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危機)’ 마을에 야생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는 마을 사람 여럿을 물어 죽이고, 가축들을 먹어 치우곤 사라져 버렸다. 마을에서 가장 연세 많으신 이장은 벌벌 떨면서 호랑이가 떠나간 뒤 마을 사람들을 모아 대책을 마련했다.

    그 다음날 ‘관리(管理)’ 마을에도 호랑이가 나타났다. ‘위기(危機)’ 마을과 같이 ‘관리(管理)’ 마을에서도 호랑이는 마을사람들을 해치며 맘껏 배를 채우고 사라졌다. ‘관리(管理)’ 마을 이장도 겁에 질린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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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危機)’ 마을 사람들과 이장은 머리를 모아 고민 했다. “어떻게 호랑이에게 물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 결국 마을사람들과 이장은 묘수를 냈다. 평생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던 호랑이 사냥꾼을 불렀던 것이다. 호랑이 사냥꾼은 ‘위기(危機)’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 놓고 호랑이 그림을 보여 주었다. “호랑이란 짐승은 길이가 6척에 이르고, 이빨이 날카로워 한번 물리면 여러분의 숨통을 끊고 뼈를 부러뜨릴 것이오. 호랑이가 나타나면 집에 꼼짝 말고 숨어 계시오. 재수 없으면 잡혀 먹소…” 재미있지만 무서운 이야기를 오랫동안 하고 유유히 사라졌다. 이장은 쌀 두 되를 호랑이 사냥꾼에게 퍼주어 보낸 뒤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자, 이제 호랑이를 우리가 경계해야 하겠다. 다시는 어제와 같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자. 그러면 모두 집으로 들어가 생활하자”

    ‘관리(管理)’ 마을에서도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장과 마을사람들이 밤을 새우며 대책을 이야기했다. 그 결과 다음날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을 모두 힘을 모아 마을 주변에 돌담과 가시나무 덩굴담을 쌓기 시작했다. 마을 청년들에게 활과 화살들을 만들어 나누어 주며 호랑이 잡는 법을 훈련시켰다. 밤마다 조를 짜서 마을 어른들이 횃불을 들고 순시를 돌기로 했다. 크게 짖는 사나운 개들을 장에서 사와 열 댓 마리를 마을 주변에 묶어 놓았다. 마을 아낙네들과 어린이들은 밭을 매다 호랑이를 멀리서 발견하면 마을에 알릴 수 있도록 호루라기를 만들어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가 무서워한다는 쑥향과 모닥불들도 마을 군데 군데 펴 놓아 호랑이 접근을 막는 공사들을 했다. 몇 주가 지나 모든 것들이 완성되자 ‘관리(管理)’ 마을 이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 우리가 다시 호랑이에게 당하지 않도록 여러 준비를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경계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호랑이는 당장이라도 다시 내려 올 것이다. 정해진 바에 따라 훈련하고 보고하고 경계하도록 하자”

    위기관리에 있어서는 이렇게 ‘위기(危機)’ 마을과 ‘관리(管理)’ 마을의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한국의 정부조직과 공공조직 그리고 기업들은 이 두 타입 중 어떤 마을의 타입이 많을까? 그들은 스스로 호랑이로 인한 비극이 다시 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까? 정말 그렇게 될까?

    관련 기사

    여야 “2008년 이후 4조원 넘게 손해” 원전비리 질타 / 조석 한수원 사장 “송구… 혁신에 힘 쓰겠다”

    http://news.hankooki.com/lpage/politics/201310/h2013102821093621060.htm

    “제2 윤창중 사태 벌어지면?” 주영 한국대사관 황당한 인턴 면접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08693.html

    상관의 성관계 요구에 시달리던 여군대위 자살 파문

    http://news.donga.com/Main/3/all/20131026/58470101/1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 좌담 “SNS發 이슈 빅뱅…위기관리 대수술 필요”

    위기가 발생했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뇌졸중에 걸린 것과 같아요. 며칠 동안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난 것이거든요. 이 상황에서 두 가지 유형의 기업이 나와요. 첫째 유형은 전문가를 불러 위기관리에 대한 강의를 들어요. 그것으로 끝이죠. 두 번째 유형은 ‘수술’을 합니다. 뇌를 열어 혈전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거죠. 컨설턴트와 외부 전문가를 동원해 조직 전반을 점검하는 거죠. 한국 기업 99.9%가 강의를 선택합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되는 거죠. [좌담 기사 중]

    http://magazine.hankyung.com/business/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3052300912000181&mode=sub_view

  • 기업 위기 정면으로 승부하자

    이데일리 기고문

    [여의도칼럼]기업 위기 정면으로 승부하자

    2013.09.12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간에는 분명한 다름이 있다. 기업 위기관리 측면에서도 다름이 존재한다. 해외와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위기 시 외국 기업은 내부에 집단 의사결정 체제가 가동된다. 물론 CEO가 리더십을 갖지만 각 부서가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위기관리위원회(crisis management committee)를 구성해 CEO를 지원하도록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 기업들의 경우 위기관리위원회란 대부분 매뉴얼상에만 적시돼 있는 사문화된 조항이다. 그 명칭이나 개념도 미국식 위기관리 매뉴얼의 개념을 차용했기에 존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위기 시 의사결정 상당 부분을 오너와 CEO 개인에게 의지한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공식적 집단 지원 체계에 의지하기보다는 사적이고 선별적인 루트에 귀를 기울인다.

    오죽하면 “회의 시 직급과는 상관없이 눈을 감고 있는 분들이 실세”라는 농담이 돌곤 한다. 이는 권위주의적 위기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외국 기업들에게 ‘위기관리’란 CEO 중심의 전문 집단과 외부 이해관계자 그룹 간 ‘단체전’의 의미를 지닌다면, 한국 기업들은 오너나 CEO 개인이 외부 이해관계자 그룹과 맞서는 의미를 실질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오너나 CEO가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같은 시각으로 위기를 바라보면 문제는 의외로 쉽고 빠르게 풀릴 수 있다. 반면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의 시각과 입장을 달리하면 해당 위기는 극도의 노이즈를 일으키며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납부 발표를 보면서 이 위기관리 체계가 우리 기업들과 어떤 다름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지난 16년간 전 전 대통령은 법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추징금을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끌어왔다. 기업으로 비교하자면 오너가 외부이해관계자들과 시각을 달리하면서 기업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로 내부 입장을 정한 상황과 유사하다.

    대신 주변 측근들은 이해관계자(정치권·검찰·언론·국민)들의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긴 시간을 관리해 왔던 것이다. 기업에서는 이를 위해 언론의 정당한 비판을 완화하고 막아내면서 오너나 CEO가 느끼는 이해관계자 압력에 대한 체감도를 최소화하는데 몰두한다. 아마 이런 대증적(對症的) 활동들이 전 전 대통령 주변에도 계속되었으리라 본다.

    결국 세월이 흘러 대증적 치료의 약발이 다하면서 그간 불어난 이해관계자 압력이 봇물처럼 터져 이전 위기관리체계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강한 압력이 오너나 CEO의 피부에 와 닿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다. 그때도 기업들은 ‘(오너 또는 CEO의) 대승적 결단’이라 표명하며 상황을 합리화시킨다. 전 전 대통령도 마지막 선택으로 추징금 납부 의사를 밝히며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토록 위기관리 관점에서 우리 기업들과 전 전 대통령의 위기관리에는 유사점들이 많다. 둘 다 한국 조직의 권위주의적 특성과 의사결정 형태의 고질적 관행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형적 위기관리 관행이 사회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의 공격성을 극단화시킨다는 점이다.

    “끝까지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해관계자 마음속에 매번 각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 시 대화로 해결할 기회도 사라지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마음에는 불신만 생긴다.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기업이 위기를 숨기기 보다는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 Why Asiana Has a PR Problem

    Why Asiana Has a PR Problem

    근 10년만에 월스트리트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 한국 위기관리 시장과 특성들에 대해 아주 여러 이야기들을 했다. 한국 기업들과 위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주 흥미롭게 들어 준 Alastair Gale, WSJ Korea bureau chief에게 감사.

    기사 보기 : HERE

  • 각양 각색의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필수!

    위기관리 시스템 측면에서 국내주재 외국기업들은 시스템의 기본 밑그림을 본사로부터 부여 받을 뿐 아니라, 트레이닝까지 받기 때문에 일반 국내 기업보다는 안정적이라 볼 수 있다. 아직 많은 국내 기업들은 전사적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현실적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아 위기관리 시스템 차원에서는 외국기업들에 비해 숙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기업들은 위기 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접근에 있어 그 경험과 커넥션이 일반 국내기업들 보다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들 중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분야가 언론과 정부관계다. 이 부분은 반대로 국내기업들이 상당 기간 동안 경험과 투자를 통해 일구어 놓은 분야라 그들에게 경쟁력이 있어 보인다.

    또, 국내 기업들은 모든 의사결정이 한국어로 이루어지는 데 비해, 외국기업들은 외국어로 상황분석, 의사결정, 커뮤니케이션 메시징 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간 대부분을 이런 내부 커뮤니케이션에 소비한다. 시스템이 있어도 그 시스템이 운용되는 데 있어 현실적 장애물이 ‘언어와 의사결정그룹과의 물리적 거리(시차 포함)’라는 데 이견이 있는 외국기업 인하우스들은 없어 보인다.

    일반 국내기업들의 경우에도 단지 한국어를 함께 말한다고 해서 빠른 의사결정이 담보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상황파악과 분석, 의사결정그룹의 소집, 토론과 의사결정, 보고라인의 통합 등 여러 시스템적 요소들이 듬성 듬성 빠져있거나, 실제 시뮬레이션 등을 통한 경험이 부족해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들로 시간을 대부분 허비한다는 게 문제다.

    시스템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행력에 있어 일부 한계를 가지는 외국기업들의 위기관리 시스템. 실행력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유리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실행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게 만드는 체계인 위기관리 시스템이 부실한 국내기업. 둘 다 나름대로의 아쉬움과 한계를 보여준다.

    외국기업들에게 가장 위협적이고, 관리하기 힘든 위기 유형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본사 비즈니스의 부실. 국내 사업 부문의 부실 이슈
    • M&A관련 이슈 또는 한국 BU의 매각, 철수 이슈
    • 본사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 및 비판 (유상감자, 고액의 로열티, 투자금 대비 초대형 이익 구현 이슈등)
    • 본사의 감사로 인한 한국 경영진의 경질, 고발 이슈
    • 한국 정부 규제기관과의 갈등, 조사, 압수, 고발, 과징금, 소송 이슈
    • 부정적인 국내 언론으로부터의 악의적 공격 (장기간 또는 정기적 이슈화)

    국내기업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형들이 가장 골치 아픈 유형들이 아닐까 한다.

    • 내부고발 (법무담당, 홍보담당, 영업담당, 재무담당, IT담당 임직원들의 양심선언 이슈들)
    • 오너 및 CEO 관련 이슈들 (고발, 소송, 조사, 과징금, 폭행, 구속, 탈세, 개인 해프닝등)
    • 불법적인 활동 관련 이슈들 (기업 탈세, 분식회계, 불공정거래, 법규위반, 상속 이슈 등)
    • 제품 또는 서비스 품질 관련 이슈들 (이물질, 서비스 품질 문제, 소비자 고발 등)
    • 정부 규제기관 또는 정치권과의 갈등 (규제 이슈, 정치권 압력 등 중심)
    • 대규모 고객정보유출 관련 이슈들

    이들 중 한가지 유형만 해도 상당히 관리하기 어려운 이슈들인데,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이상의 유형들이 혼합된 위기 케이스의 경우에는 기업들이 관리에 있어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들이 흔하다.

    일부 인하우스들은 ‘이런 심각한 위기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으로 관리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한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 홀로 위기를 관리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관리 실행과 함께 오는 것이며, 위기 시 기업이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준비되고, 전략적으로 실행 되야 하는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업 오너와 관련된 탈세 이슈 그리고 국세청으로부터의 조사와 검찰 고발, 이와 함께 내부고발자들의 양심선언들이 이어지는 케이스를 한번 상상 해 보자. 이 심각한 일련의 상황들을 관리하기 위한 대응 활동들이 선행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까?

    법적 자문과 이에 근거한 대응, 대정부관계에 기반한 대응, 조사에 대한 전략적 협조, 조직을 비롯한 많은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대응들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이상의 대응 활동만 수면 하에서 진행 될 뿐 전혀 그와 관련 한 대응 커뮤니케이션이 진행 되지 않는 상황이다.

    법정(courtroom)으로 가기 전 기업은 항상 리빙룸(living room)을 거치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법적 판결 이전에 이미 리빙룸(거실)에서 열리는 여론의 법정을 거치게 된다. 위기 시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 기업을 이해해주거나, 편들어 줄 이해관계자들은 없다. 더구나 상당히 많은 이해관계의 훼손을 경험한 직접적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주저하는 기업들은 위기관리에 실패 할 수 밖에 없다.

    관리하기에 골치 아픈 많은 위기 유형들에 기업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철학 마저 곁들여지지 않는다면, 항상 그 위기관리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 오프라인 언론에 대한 기업 블로그의 반론 : GM대우

    오프라인 언론에 대한 기업 블로그의 반론 : GM대우

    (Source: GM대우 블로그)

    GM대우 블로그에
    게재된 GM대우측의 공식 반론이다. 본문에 어떤 기사에 대한
    반론인지는 적시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근 조선일보 기사
    의해 반론의 의지가 굳어진 듯 하다.

    국내 기업 블로그에서 조선일보 기사에 대한 반론을 대형 포스팅으로 접하는 것은 상당히 흔치 않은 케이스라서 일단 놀라웠다. 하지만, 이 포스팅의 원문은 GM대우의
    PR부문 부사장인 제이쿠니씨다. 이 블로그에서 한 섹션을 담당하고 계신 분인데…이전 포스팅들을
    보니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각종 GM대우관련 기사에 대한 반론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고 있었다.

    한국 임원으로서는 하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또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이나 문구 표현들도
    상당히 이국적이다.

    궁금한 점은 제이쿠니 부사장의 이 bold한 대응 결정에 대해 한국 실무자들이나 다른 임원들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 지다. 물론 마이크 아카몬 사장과는 align이 있었겠지만.

    두 번째 궁금한 점은 이런 포스팅에 대해 해당 기자가 보이는 반응은 어떤 것일까 하는 부분이다. 물론
    해당 매체와 기사 그리고 기자를 적시하지 않아 그 직접적인 영향이 적겠지만.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은 다른 기업 블로그 실무자들은 이런 스타일의 반론 시스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거다. 미국에서는 종종 유력언론들과 블로그상에서 반론/논쟁을 벌이고는 하지만…Op-ed를 통해서도 실제 신문에서도 대응을 하고…국내에서는
    이런 대응이 상당히 민감한 이슈인데 다른 기업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나 하는 거다.

    대형 외국기업의 블로그 포스팅을 들여다 보니 참 흥미롭다. 그 뒤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와
    고민들을 상상해 보니 더욱 더 관심이 간다.

  • 위기관리 전문가 선배들과의 대화

    어제 저녁 국내 기업 위기관리 분야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경험을 가진 시니어들 한 무리와 같이 저녁을 했다. 여러 흥미로운 경험담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

    선배 A: “그게 타이밍이야. 진작 검찰에서 박살날줄 알았으면 변호사 그룹 그렇게 많이 꾸려서 쓰지 말고, 초반부터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말 한마디하고 낮추는 자세를 보였으면 될걸 말이지…”

    선배 B: “결국 나중에는 다 까고 잘못했다 시인했잖아. 그 양반…그러려면 진작 했었어야 하는 거지”

    선배 A: “거 사실 그 뒤에는 법무 쪽 입김이 너무 세서 홍보쪽은 관여 할 엄두도 못 냈던 거야. 그래서 실무 하는 선수들도 죽겠다 죽겠다 했었어…당시에..”

    선배 B: “그래도 홍보쪽 이야기를 그렇게 안 들어서 잘 되리라 생각한 건가? 홍보쪽도 그 양반에게 죽자 사자 고언을 했었어야 하는 거지…”

    나: “선배…선배들도 경험이 있지만…노인네가 안 하시겠다는데 홍보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어요? 절대 안 하시겠다고 하면 어쩌겠어요. 그 포지션대로 가야지. 홍보쪽에서 다른 포지션 탈 수도 없고.”

    선배들 (동시에): “하긴 그렇지…”

    우리는 동시에 소주잔을 한잔씩 들이키면서 천장을 처다 본다.

    그렇다. 최고위 당사자께서 절대 사과 안 하신다는데…플랜B를 만들어야지. 홍보팀이 계속 플랜 A에 어떻게 목을 메냐 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