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니어 시절 선배들로 부터 가장 듣기 싫었던 소리들 중 하나가 ‘너무 이상적이야’하는 투의 말들이었다. 꿈을 꾸고 있다는 비아냥(!)도 술자리에서 들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말씀을 해 주신분이 나와 가장 가까운 분들 중 한분이 되어 있지만…)
그당시에는 이런 마음이 있었다. ‘이상적인 것이 곧 현실적인 거야. 두고봐. 언젠가 그게 맞다고 생각할 날들이 올꺼니까.”
그리고 이런 말들을 싫어했다. ‘너무 교과서적이야. 현실은 교과서와 틀려’ 그때는 이런말을 하는 사람들과 싸웠다. ‘이론과 현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당신이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면서 클라이언트들의 마음속을 읽다보면 위와 똑같은 갈등을 함께 읽게된다.
이상적인 위기관리 그리고 현실적인 위기관리 사이의 갈등이다.
‘내가 위기관리에 대해서 배웠을 때는 기업이 항상 고객과 소비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배웠지. 그러면 이번 이슈에 대해서는 고객과 소비자들을 생각해서 자발적 리콜을 해야 하는거 아닌가? 그래야 제대로 된 위기관리가 되는 것 아닐까?’
‘말도안되. 올 한해 장사를 다 해도 그 비용을 감당 할 수는 없어. 회사가 망한 후에도 위기관리 타령을 한껀가? 현실적인 위기관리는 이번 사안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거야.’
‘만약 그냥 넘어가려다가 이 일이 더커지고, 문제가 더 크게 불거지면 어쩔라고 그래? 이번이 우리가 고객과 소비자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강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쓸데없는 소리. 우리가 그들에게 우리의 철학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다른데도 많아. 일단 이번 것은 그냥 넘어가자구. 왜 그렇게 일을 벌릴라고 그래?’
‘아냐…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가지 못할 것 같아.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거든.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이번 이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우리가 선수를 치자는 거야.’
‘말이 안 통하는구나. 당신은 너무 이상적이야. 이론적이구. 왜 현실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나? 하루 이틀 사업한 것도 아니고.’
‘나도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 항상 왜 그렇게 그냥 넘어가려고 하는지 몰라. 저번에도 그렇게 당하고 나서는 말이지. 실패에서 배우는 학습이 없는건가?’
이런 갈등들이다.
위기관리 코치는 이 갈등 사이에서 어디에 서야 할까? 정답은 항상 클라이언트의 마음 속에 있다. 클라이언트가 어떤 위기관리 방식을 원하는 가를 읽는 것이 코치가 해야 할 가장 첫번째 일이다. 일단 클라이언트가 어떤 방식을 원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런 클라이언트의 방식에 어떤 pros와 cons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그 다음단계다. 선택은 클라이언트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코치는 그 선택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충분하게 클라이언트에게 이해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코치는 실행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측은 한다. 그 예측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선택을 하는 클라이언트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위기관리 코치가 할 수 있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거의 유일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와 싸우는 코치가 가장 저급이다.
이상
이상향 without fat
add,
but when there is nothing left to take away.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을 때 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어제 그 프리젠테이션을 보면서 그 벤처 사장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가만히 오늘 이 말을 들여다보면서 문득…”그럼 당신은 어때? 완벽해?”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직히 미디어트레이닝이나 여러가지 내외부 강의 파일들을 들여다보면 내 메시지들 조차도 fat이 너무 많다. 미디어 트레이닝 슬라이드들 중에 ‘메시지에서 군살을 없애세요’라는 슬라이드도 있는데…그 전체 슬라이드들에서도 빼도 그렇게 문제가 없을 것 같은 fat이 많이 들어있다.
작심을 하고 fat을 빼보자…해도 참… 손가락만 떨릴뿐 쉽지가 않다.
또 재미있는건 나름대로 fat을 제거한 생고기 형태의 슬라이드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면 지난번 이야기 한데로 ‘일부’ 청중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 “너무 한거 아닌가…고작 슬라이드 몇장으로 말이지…’
얼마전 모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정부부처 컨설팅을 하고 있는 양반인데, 작년까지 우리회사에서 그 업무를 진행했었던터라 우리에게 조언을 얻고자 전화를 해 왔다. “자네 회사가 OOOO부 일할때 보고서를 왜 그렇게 많이 썼어. 분량이 뭐 툭하면 500 페이지야. 우리 보고도 이렇게 해 오라고 하는데 죽겠다. 뭘 채우지?”
우리가 500페이지를 스스로 채우고 싶어서 채웠을까? 담당자분들 말로 “몇억을 가지고 가는 회사가 성의를 보여야 하지 않겠냐…”하는 무언의 압력 때문이었던거지.
많은 실무자들은 어느정도 이렇게 생각한다. “일단 어느 정도는 분량이 되어야 성의가 있다고 보지 않겠어…?” 제안 미팅에서도 한뼘쯤되는 제안서가 ‘시각적’으로 통하는 게 현실이다. 이번 대우조선입찰에서도 포스코와 한화는 다섯박스짜리 제안서를 냈는데, 현대중공업은 달랑 한박스더라…하는 뒷담화가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생떽쥐베리가 이야기 한 완벽함이란…사람들이 죽을때까지도 영원히 이루지 못할 이상이 아닐까 한다.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는 더더욱 힘드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