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시 주변 인문학도의 말을 듣자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임원들의 전공을 따져 가리라는 말이 아니다. 기업 위기의 특성을 잘 들여다보라는 의미다. 위기 시엔 항상 그 위기로 피해를 받거나,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당황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들과 기업이 공감하는 데에는 공학적 사고보다는 인문학적 사고가 더 적절하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하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하면 일부 임원들은 “솔직히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해 왔었고 이번에는 단지 재수가 없었을 뿐인데요”라 이야기한다. 다른 일부 임원들은 “우리가 간과한 것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게 이렇게 까지 우리가 비판 받아야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 자기합리화 한다. 위기 시 CEO 주변에는 이렇게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들의 시각을 표현하는 임원들이 여럿 위치하게 마련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군가 “이번 위기는 저희가 신중하지 못했고 사려 깊지 못해 발생한 인재(人災)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건을 계기로 철저히 반성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라 이야기한다 상상해 보자. 대부분의 임원들과 심지어 CEO 자신부터도 이질감을 느끼고 거부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갈등과 불균형은 기업 위기 시 내부에서 벌어지는 아주 일반적이고 흔한 현상이다.
이런 주장들의 충돌 속에서 CEO의 올바른 의사결정이 바로 내려지지 않으면 이내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해당 위기는 내부에서 실제보다 ‘과소 평가’되거나 ‘폄하’ 또는 ‘왜곡’되어 정의(定義) 내려지게 된다. 위기 발생시 최초 내려지는 이러한 정의는 위기관리 전반을 지배하게 되고, 위기관리 성패에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대표적으로 이런 위기 폄하 분위기는 기업으로 하여금 ‘큰 맥락’을 제시하여 해당 위기의 영향이나 부정 수준을 평가절하하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사내 중대 산재사고 위기에 맞서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불미스러운 재해 사망사고는 저희 직원 수를 감안해 볼 때 발생가능성은 겨우 1만분의 일 정도였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재해로 유명을 달리한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과 이 사건에 놀란 직원들의 감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숫자들과 확률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유해물질 유출과 관련된 위기의 경우 “이번 유출된 OO화학물질의 경우 유해물질로 분류되어 있기는 했었지만 OO%로 희석된 상태였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의 건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경우가 생긴다. 이는 인근 공장에서 유해물질이 유출됐다는 TV 뉴스를 접한 아이 부모들의 놀람과 우려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이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게 된다. 별것도 아닌 일에 소란을 떨 필요는 없지 않느냐 하는 메시지로 해석되면서 해당 위기는 더욱 심각해 진다.
기업은 위기 시 자기 보호 본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때문에 CEO를 비롯한 많은 기업 구성원들은 자신들과 맞선 위기를 최초 부정하고, 상대적으로 폄하하게 된다. 그래야 해당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업 구성원들은 해당 위기 자체를 주로 들여다본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 관리할 수 있을까를 처음부터 고민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다시 발생한다. 위기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피해, 아픔, 슬픔, 분노 그리고 불만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되는 것이다. 상황관리를 위해서는 ‘위기 그 자체’를 봐야 하겠지만, 커뮤니케이션 관리에 있어서는 그 주변의 ‘사람’을 동시에 바라봐야 하는데 ‘사람의 감정’을 놓치고 공감하지 못한 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니 종종 문제가 된다.
위기 시 기업은 최대한 인간화되어야 한다. 인간화 된 기업으로서 위기 주변에 관련되어 있는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지속적으로 공감해야 위기관리에 성공할 수 있다. 위기관리 성공을 위해서는 CEO 주변에 ‘숫자’나 ‘확률’이나 ‘과학’을 주로 이야기하는 공학도들보다, ‘사람’과 ‘감정’과 ‘공감’을 이야기하는 임원들이 좀 더 많아야 한다.
실제 위기 시 부정적 상황을 잘 관리해 놓고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는 이유와 해명을 남발 해 위기를 재앙으로 만들어 버리는 기업들을 본다. 그런 기업 대부분에서는 내부 의사결정 그룹에게 ‘사람’을 보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것이 제일 큰 원인이다. 위기는 여러 사람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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