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1월 062022 Tagged with ,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위기 시 성공적 입장(position)의 구성요소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위기관리와 관련하여 우리가 가장 흔히 이야기하는 클리쉐이면서, 가장 위험(?)할 수 있는 명언을 하나 꼽으라면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이야기를 들겠다. 아무리 많은 실제 위기관리 케이스를 보아도 위기가 곧 기회였던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어떤 기업이 그렇게 큰 기회를 창출했다면, 그 케이스는 위기관리 케이스에는 들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를 위기 그대로 바라보는 담담함이 필요한 기업들에게 너무 나간 ‘기회’를 이야기하는 행태는 문제다. 절대 위기는 기회가 아니다. 위기는 말 그대로 위기이며, 여러 소중한 가치의 손실과 피해를 의미한다. 훼손된 평판을 의미하고, 떨어진 신뢰를 의미한다. 창피함과 곤란함과 어려움이 그 뒤를 수십년간 잇는다. 위기를 위기 그대로 볼 수 있을 때에만 위기관리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생겨나게 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에서는 가장 먼저 해당 상황을 분석하여 자사의 입장(position)을 정리한다. 해당 상황에서 제기된 문제의 책임에 대해 자사가 동의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모든 제기된 문제의 책임을 완전하게 인정하고 개선과 재발방지에 노력하겠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일부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그 외 문제에 대한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흔하다. 상황에 따라 기업의 입장을 대충 대별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케이스별로 아주 미세한 입장차들이 존재한다.

위기관리에 있어 입장의 확정은 위기관리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의사결정 주제다. 일부 케이스에서는 VIP의 개인적 감정에 기반해 입장 정리를 했는데, 그 입장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곤란을 겪는다. 일부 케이스에서는 초기 여론을 두려워한 나머지 무리한 수용 입장을 피력해 불필요한 책임과 부담까지 떠 앉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입장 정리를 적시에 하지 못해 여론에 의해 한참을 끌려 다니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최초 입장을 계속 바꿔가며 여론에 맞서 오락가락, 우왕좌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오랜 경험상 어떤 기업의 입장이라도 위기 시100 퍼센트 공중에게 이해 받고, 공감 받는 포지션은 극히 드물다. 대다수 아니 절반 이상의 공중에게 이해나 공감 받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대체 그나마 성공적인 포지션의 구성요소는 무엇일까?

첫번째, 법적인 문제는 없어야 한다.

위기관리의 기본 토양은 준법이다. 준법하지 않고는 위기를 예방할 수도 없고, 위기를 관리할 수도 없다. 일부 기업에서는 ‘들키는 것이 가장 큰 죄’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준법 대신 오래된 관행을 따르는 것이 기업문화가 고착되었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준법 체계나 프로세스로 모든 것을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는 핵심 주제나 논란에 대하여 법적 판단을 스스로 신속하게 결론 내릴 필요가 있다. 만약 법을 준수하지 않아 발생된 위기라면 기업의 입장을 정리할 때 절대 핑계나 불평이 기반 된 입장을 정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억울해해서도 안 된다. 준법이 평소와 위기 시 중요한 이유다.

둘째, 맥락적 문제도 없어야 한다

앞의 준법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일단 법만 지키면 아무 문제는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사에서는 안전관련 법을 준수했기 때문에 안전 사고로 사망한 계약직원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이 없다는 입장과 같은 뉘앙스다. 법을 준수하면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이야기는 법정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여론의 법정에서는 법을 넘어선 맥락까지 중시한다.

‘관련 법을 철저하게 준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이런 입장이 종종 보이는 이유는 해당 기업이 사회적, 여론적 맥락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법을 준수하였고, 여러 맥락에서도 자유로운 상황이라면 사실 위기가 아니다. 하나의 해프닝이거나 단순 사건 사고일 뿐이다. 반대로 어떤 의미로든 사회적으로 여론이 좋지 않다면, 그건 준법을 넘어 맥락에 대한 기업의 관심과 케어가 더욱 필요한 상황을 의미한다.

셋째, 인간적이어야 한다

위기 시 기업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아주 의미 있는 말이다. 기업이 위기 시 계속 차갑고 큰 빌딩과 어마어마한 자이언트의 모습으로 공중과 이해관계자 앞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어떤 위기나 그로 인해 피해를 주장하고, 슬퍼하거나 아파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하는 여러 원점, 이해관계자, 공중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가는 기업의 입장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기업은 기업다워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기업이 너무 인간적으로 포용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연약하게 굴어서는 어떻게 기업을 경영하겠느냐 하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 시 자사가 비인간적 입장을 정해 대응하였을 때와 인간적 입장을 정해 대응하였을 때를 비교하여 어떤 경우에 상대적 이득이 있겠는지는 꼭 분별해 볼 필요가 있다. 경험상 대부분의 경우 기업이 인간적인 입장을 견지했을 때 이후 보다 나은 상황이 펼쳐졌다.

넷째, 원칙의 일관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말처럼 실망스러운 것이 없다. 왜 그때는 그렇게 입장을 정했으면서 이번에는 이렇게 입장을 정했는가 하는 질문이 나온다면 해당 위기관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일부 기업에서는 VIP의 하이 프로파일 위기 대응을 두고 사후 임직원들이 부담스러움을 토로한다. 이번에는 저렇게 대대적으로 피해를 보상하고 사과에 개선조치를 심하게 하셨는데, 또 다시 이번 같은 위기가 발생되면 대응을 더 크고 심하게 해야 한다 생각하니 막막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일관성에 대한 가치는 그러한 부담을 전제로 해야 계속해 커지는 것이다. 시쳇말로 원칙은 어기라고 존재한다며 농담을 하는데, 위기관리에서는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원칙은 지켜질 때에만 그 가치를 발한다.

대형 회의실에만 걸려 있는 원칙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액자 속 원칙이 바깥으로 걸어 나와 실제로 적용이 되고, 적용이 되고, 적용이 되고 하는 일관성과 연속성이 장기간 생겨야 비로소 진짜 원칙이 되는 것이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입장문에는 항상 자사의 원칙을 언급하라는 조언을 한다. 일부는 적당한 관련 원칙이 없다는 하소연을 한다. 일부는 원칙은 있는데, 그게 안 지켜져서 지금 이 상황이 되었다며 곤란해 한다. 일부는 비슷한 원칙은 있는 것 같은데, 잘 기억 나지 않는다며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제대로 된 자사의 원칙이 있어야 하며, 그 원칙에 기반하여 일관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입장은 성공적인 원칙에서만 잉태 가능하다.

다섯째, 타이밍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버스가 모두 지나가 막차까지 끊겨 벼렸을 때 커뮤니케이션 하게 되면 그 의미와 효과는 사라지게 된다. 그 자체로는 훌륭한 입장이라고 해도 시간이 너무 흘러 커뮤니케이션 되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은 기업이 그 동안 자신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입장을 내 놓은 것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사의 입장은 훌륭할수록 신속하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한다.

선제적으로 훌륭한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해야 불필요한 공중과 이해관계자로부터의 비판과 비난을 방지하고 감소시킬 수 있다. 최초에는 그들이 해당 위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지만, 그 직후에는 자사가 내 놓은 훌륭한 입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주제 변화의 기간이 길면 길수록 위기관리 실패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입장을 밝힐 때 어떤 타이밍이 가장 적절한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은 정해져 있다.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이 회사의 입장에 대해 궁금해하기 ‘직전’이 자사의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여섯째, 화자의 적절성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기업 오너가 큰 문제를 일으켜 사회적 지탄을 받기 시작했을 때 그 기업 홍보실에서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는 어떤가? 대기업의 생산시설에서 어마어마 한 안전사고로 인명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와 관련된 입장을 해당 인력 파견회사가 커뮤니케이션 하면 어떨까? 어마어마한 은행 직원의 횡령이 발생했을 때 해당 지점 지점장이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모든 커뮤니케이션에는 화자와 수신자의 설정이 기본 중 기본이다. 같은 메시지라도 누가 커뮤니케이션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조성된다. 평소 좋은 뉴스일수록 가장 윗 분이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맞고, 나쁜 뉴스 일수록 아래 사람들이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는 관행이 있는 기업은 위기관리 이전에 문제가 많은 기업이다.

민감한 위기 일수록 해당 기업의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화자의 중요성은 커진다. 성공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케이스들의 대부분은 가장 큰 리더가 앞에 나가 강력하게 커뮤니케이션 했던 케이스들이다. 뒤로 숨거나 전혀 엉뚱한 화자를 내세우기 보다는 훌륭한 입장일수록 리더가 직접 나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이 좀 더 전략적이라는 생각을 하자.

마지막, 위기관리 주체의 의지에 관련 한 문제는 없어야 한다.

개선을 발표하거나, 재발방지책을 발표하거나, 단호한 조치사항을 발표하거나, 강력한 보상방안을 발표하거나 입장의 기조에는 해당 기업의 진정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가치가 내재되어 묻어 나오는 형태의 것이어야 한다. 단순하게 현재 상황을 모면해 보기 위한 창의성 차원의 레토릭으로 보여져서는 위기상황을 관리하기가 어렵다. 훌륭한 입장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주체의 의지를 어떠한 형태로든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VIP들은 위기 시에도 앞에 나가 깊숙하게 머리를 조아린다. 평시에는 즐겁고 행복한 표정으로 프레젠테이션 하던 리더도 위기 시에는 입장을 발표하며 울먹이거나 침통한 표정을 유지한다. 해당 위기로 얻은 교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리더도 있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는 메시지가 진실되게 받아들여 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모든 표현과 장치들은 이내 실질적 개선과 재발장지 대책 등으로 실행되어야 한다. 공중과 이해관계자 대부분은 기업의 말보다 행동을 본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행동이 말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만큼 실망스러운 것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위기관리는 약속한 행동에 대한 실행을 의미한다. 흔히 위기관리를 약속을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자체로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런 시각은 매우 잘못되고 위험한 것이다. 위기관리 주체의 의지에 대한 신뢰는 함부로 저버리면 안 된다.

이상과 같이 위기 시 기업이 정해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입장(position)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모든 공중과 이해관계자 전원에게 이해 받고 공감 받고 싶어하는 욕심은 현실적이지 않다. 대신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 받거나, 공격받을 입장은 최대한 피하자 하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현장에서 보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자사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 의사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의사결정자의 감정이다. 개인적 감정이다. 그 감정의 뿌리를 잘 들여다보고, 기업을 위한 더 큰 결정을 하는 그 과정에서 대부분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일부는 최초 의사결정자의 감정이 기업의 입장에 그대로 묻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 일수록 위에서 제시한 몇 가지 원칙들을 돌아보자. 훌륭한 입장을 정해 리더가 나가 진정성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하면 아무리 복잡하고 힘든 문제도 이내 풀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 보자.

이미 많은 선례를 통해 전략적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효과를 실제로 경험한 선배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더 나아가 평소 훌륭한 입장(position)을 정해 위기를 선제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위기관리라는 사실도 꼭 기억하자. 위기관리는 마음만 먹으면 하나도 어렵지 않다. 마음을 빨리 먹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 # #

11월 042021 Tagged with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CEO가 언론을 이해하지 못할 때 보이는 증상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자사에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최고의사결정권자인 CEO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혼란이나 무리수 없이 순리에 따라 문제를 풀 기회를 빨리 잡을 수 있다. 정상기업으로 분류되는 일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는 공히 CEO의 언론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경향이 있다. 반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는 언론을 제대로 된 이해하고 있는 CEO가 매우 드물다.

이는 특정 기업군과 CEO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진화 기간과 사회적 책임과 노출 규모 등 여러 사회적 환경에 의해 대기업군 CEO들은 보다 빠른 발전을 한 것뿐이다. 이미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여러 번에 걸쳐 사회를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 과정에서 얻은 많은 교훈들로 각 회사 CEO들은 훈련되었다. 그런 반복적 경험과 교훈, 훈련이 쌓여 지금과 같은 CEO 언론관을 만들어 낸 것이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임원으로 일하다 중견이나 중소기업 대표로 자리를 옮긴 CEO들은 해당 기업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언론 이해보다 훨씬 더 높은 언론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대로 스타트업 등에서 일하다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경영진의 경우에는 기존 대기업의 일반적인 언론관을 낯설어 하기도 한다. 오히려 보수적이라 보거나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까지 받고는 한다. 상호간에 차이와 다름이 있다는 의미다.

이번 주제로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CEO들이 보이는 공통 증상들을 알아본다. 한가지 논의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언론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의미는 ‘CEO가 기자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들과 매우 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냥 CEO가 기자들과 막역한 사이라는 의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하소연하거나 일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 지인 기자들을 활용할 수는 있다. 일부 친한 기자는 회사 편을 들어 우호적 기사를 내 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런 커넥션이 곧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CEO가 보이는 주요 증상들은 무엇일까? 회사에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런 이해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부정적 상황에서 보여지는 증상들을 꼽아 본다.

첫째, CEO께서 부정기사나 보도를 나가지 못하게 하라 하신다

기사를 빼라. 못 나가게 하라. 보도를 막아라. 방송 안되게 하라. 이런 지시를 하는 CEO는 언론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케이스마다 다르지만 집중적으로 해명을 하고, 전략적인 접근을 통해 초기 취재를 완화시키거나 기사나 보도 톤앤매너를 조정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못 나가게 하라는 지시는 그런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초대형 기업들은 기사나 보도를 쑥쑥 빼는 것 같던데 왜 우리 홍보실은 빼지 못하는가 하고 묻는 CEO도 사실 언론을 잘 모르는 분이다. 초대형 기업도 기사나 보도를 그렇게 쉽게 쑥쑥 빼지는 못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사는 그런 초대형 기업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는 CEO는 현재 어떤 언론사 어떤 기자가 무슨 주제로 취재를 하고 있는지를 먼저 심도 있게 이해하려 한다. 그리고, 부정 기사나 보도 대응에 있어 목표를 세운다. 어느 주제나 어느 앵글은 가능한 피했으면 한다는 논의로 대응을 시작한다. 최선을 다하지만 해당 기사나 보도를 싹 빼겠다는 생각이나 지시를 하지는 않는다. 언론을 잘 이해하는 CEO는 홍보실과 함께 주로 데미지 컨트롤을 위한 접근을 지시한다.

둘째, CEO 자신이 언론사 VIP에게 연락해보겠다고 하신다

평소에 A매체 회장이 내 친구야. B방송 사장이 선배야. 이렇게 이야기하는 CEO들이 주로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언론사 윗분들에게 전화를 많이 한다. SOS 전화를 하는 셈이다. A매체 기자가 현재 자사에 대한 부정적 취재를 하고 있는데, CEO가 A매체 윗분들에게 전화를 한다고 해당 취재가 사라질 수 있을까? 전화를 받은 그 언론사 윗분들은 이후 취재하는 그 기자를 불러 취재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요즘 같은 언론사 분위기에서 그런 취재 중단 지시가 기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는 CEO라면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단순 하소연을 하고 어떤 도움이나 해명을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CEO의 그런 전화들이 많아질 수록 해당 기사나 보도 대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기사나 보도가 나가기 전 여기저기 언론사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고, 압력도 아닌 압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노이즈만 대대적으로 일으킨 기업들이 실제로도 많다. 그후 그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을까? 글쎄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라면 심사숙고해서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딜 주제를 가지고 핵심 인사를 선택적으로 접촉하려 노력한다. 지인이라고 해도 가능한 말을 아끼고 걸려온 전화에도 주로 들으려 한다. 여러 유력인사들의 조언을 듣고 겹치는 핵심 인맥을 찾으려 한다. 노이즈 보다는 조용하게 타겟에게 접근하려 한다는 점이 다르다.

셋째, CEO가 여기 저기에서 이야기를 듣고 언론대응을 지시하신다

일단 먼저 정확하게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포인트가 있다. 특정 이슈나 위기가 발생하고 난 이후 기사나 보도를 보고 연락해 오는 지인들은 해당 주제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론에서 다룬 피상적 내용들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심도 있는 대응이나 전략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그들이 원래부터 다양한 이슈나 위기관리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아닐 가능성도 높다. 정무적 감각이나 예전 일부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 할 수는 있지만, 그 조언의 수준이 CEO에게 새로운 경우는 드물다.

해당 이슈나 위기의 배경이나 세부 정보를 잘 알고 있지 않은 비전문가들이 CEO에게 전하는 조언은 최대한 CEO가 개인적으로 필터링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하나 하나를 매번 위기대응팀에게 전달하고 이것도 시도해 보라 저것도 해 보라 하는 지시를 하면 상황을 관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CEO는 그것이 무엇이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겠지만, 이슈나 위기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 우선순위를 따져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 저것이라는 개념이 들어서서는 안된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라면 최초 정한 이슈나 위기관리 목적에 기반하여 조언을 분별할 것이다. 그것을 실행하면 현재의 위기관리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될 것인가? 그것을 하지 않으면 반대로 위기관리 목적 달성으로부터 심각하게 멀어지게 될 것인가? 그것을 꼭 지금 실행해야 할 것인가? 아니라면 언제 실행해도 괜찮을 것인가? 등등에 대한 고민을 할 것이다.

넷째, CEO가 앞장서 돌아다니신다

알고 있는 지인 기자들을 죄다 만나서 하소연을 하는 경우다. 심지어 현재 취재중인 기자나 PD를 직접 만나려 시도하기도 한다. 그 기자나 PD와 친한 지인을 찾아 마치 비즈니스 미팅 같이 알음알음 기자와 PD에게 접근한다. 심지어 그런 개인적 어프로치를 회사 홍보실이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다. 홍보실이 일부 알고 있어 위험성을 이야기해도 CEO가 귀기울여 듣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CEO들 상당수가 취재 중인 기자나 PD에게 ‘일용할 양식’을 준다. 기자의 질문에 길고 긴 답변을 해 완성도 높은 기사를 선물하고, PD의 질문에 답변하는 CEO의 모습이 방송을 그대로 탄다. CEO가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했으니, 기자나 PD도 비즈니스적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는 절대 함부로 개인이 나서지 않는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홍보실이 존재하는 이유를 기억한다. 경험 많고 훈련된 홍보실을 내세워 언론과 공식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기자를 개인으로 보지 않고 언론사를 대표하는 공인으로 바라본다. 회사와 회사가 그러하듯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나 하나 제대로 하려 노력한다.

다섯째, CEO가 예산을 활용하라 하신다

기자에게 돈을 주라 지시하는 CEO는 한 십년전까지는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안다. 취재를 막으려 예산을 동원하는 경우는 아직도 존재한다. 언론사 광고국을 통해 정보에 접근하려 하기도 한다. 언론사 데스크에게 광고로 딜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 소규모 매체들의 경우에는 그런 옛적 관행이 존재하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모든 언론을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CEO라면 그는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고 있는 CEO라면 취재 과정에서 갑자기 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기자나 데스크에게나 돈으로 딜을 하자는 제안은 하지 않는다. 다른 라인을 통해서도 공개적으로 시도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가진 홍보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순리대로 문제를 풀려 노력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홍보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CEO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여섯째, CEO가 처음부터 로펌들을 불러 언론 대응을 지시하신다

대형 로펌은 사실 대형 언론사에 대한 법적 대응을 맡는 것을 매우 껄끄러워한다. 이미 해당 로펌에서는 대형 언론사 한두 곳을 대리하고 있기도 하다. 대대적으로 시끄러운 대언론 소송을 맡는 것이 로펌 차원에서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큰 수입이 되는 소송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잘 모르는CEO는 초기부터 로펌들을 불러 대대적인 언론사 상대 소송을 지시하고, 취재하는 데스크와 기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라 지시한다.

언론 대응은 홍보실의 역할이다. 아무리 뛰고 나는 로펌도 자사 홍보실만큼 언론 대응을 잘 하기는 어렵다. 언론을 제대로 이해하는 CEO는 홍보실의 조언을 먼저 듣고, 홍보실의 전략적 대응과 발 맞추어 로펌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언론 대상 소송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소송을 피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송이나 그로 인한 판결을 최종 목표로 두지 않는다. 언론을 잘 아는 CEO는 그런 법적 제스츄어를 통해 언론과 딜을 성사시키려 한다. 로펌을 단순 송무 대리인으로 활용하기 보다, 협상과 딜을 만들어내는 중간자로 활용하려 한다. 회사와 홍보실, 로펌 그리고 언론이 상호간 윈윈하는 지점을 함께 찾는 것이다.

일곱째, CEO가 자사 홍보실을 못 믿겠다 하신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특히 그와 관련한 부정 기사나 보도의 취재가 진행 중일 때, 가장 힘들고 가장 대응에 심혈을 기울이는 부서가 바로 홍보실이다. 그런데 CEO는 왜 그들이 제대로 대응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생각할까? 왜 그들이 대응에 있어 무력하다고 판단할까? 언론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CEE들은 그럴 때 일수록 홍보실에게 회사가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하는지를 묻는데, 왜 언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는 홍보실이 무력하다고만 생각할까? 그간에는 무엇이 다를까?

그런 다름 때문에 기업 CEO를 비롯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의사결정을 내리는 그룹은 평소 언론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이전과 현재 언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계속 새롭게 업데이트 해 이해해 나가야 한다. 부정기사나 보도에 대응했던 기업들의 사례를 분석해 보면서 어떤 것이 유효했고, 어떤 것이 무리수였는지를 판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사가 그 상황에 처했을 때 제대로 된 이해를 바탕으로 언론 대응에 성공할 수 있다.

CEO인 자신이 언론사 부장들을 모두 알고 있으니 언론을 나만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과 같이 기자들과 친한 것과 부정 이슈나 위기 발생 시 대응해야 할 언론을 잘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CEO와 기자가 친한 것을 개인과 개인의 관계로 본다면, 부정 이슈나 위기 시 취재 상황에서는 개인의 관계는 사라지고, 회사와 회사의 관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자. 자꾸 그 속에 개인의 관점을 투영하거나 개인간 관계에 주로 의존하는 비정상적 어프로치를 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자.

무엇은 해야 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먼저 이해해 보자. 그렇게 하기 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평소에는 문제없던 것이 이런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조언에도 공감해야 한다. 회사에서 가장 공적 대응 경험이 많은 홍보실을 무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을 통해 제대로 언론을 이해하고 있는 CEO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성공적으로 이슈와 위기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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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42021 Tagged with 0 Responses

[The PR 기고문]평시 언론관계 역량이 위기관리 성패 가른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 임원과 실무진들을 대상으로 위기관리 워크샵을 할 때 종종 ‘숙제를 잘 해 놓으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린 학생 시절 경험했을 수도 있는 기분을 다시 떠올려 보자. 숙제검사를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선생님이 하루는 수업을 시작하자 마자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제 내준 숙제해 온 사람은 숙제를 책상위에 펼쳐 놓도록 해. 숙제 안 한 사람들은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고.”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자.

물론 숙제를 정상적으로 해 온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숙제를 펼쳐 놓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반면 숙제를 해 오지 않은 학생들은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벌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 가슴 두근거림과 두려움은 실제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기업에게 그 기분 나쁜 숙제검사는 곧 부정 이슈의 발생이나 위기의 발화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세계적 투자자인 워렌 버핏이 이야기했다. “누구나 즐겁게 수영을 하지만, 그 풀장에 물이 빠져나가면 누가 수영복을 입고 있지 않았는지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시장이 악화되었을 때에는 어떤 기업의 펀더멘털이 좋은 지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비유다. 이슈나 위기관리에서도 그렇다. 평소에는 대부분 기업이 이미지 좋고, 평판도 훌륭해 보이 지만, 그 회사에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그 기업의 실제 이미지와 평판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상기업인지 그 여부가 드러난다.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해당 역량에 대한 착시 현상이 존재한다. 요즘같이 유가(buying)를 기반으로 보도자료나 기사를 뿌려 댈 수 있는 환경에서는 더욱 더 언론관계 역량의 품질을 식별하기 어렵다. 예산이 풍부하면 그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기사와 버즈가 생성되니, 그 결과를 놓고 언론관계를 잘한다 홍보를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대한 부정 이슈나 위기가 발발 되면 해당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은 그대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된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누가 맡겨진 숙제를 잘 해 왔는지를 그대로 검사 받는 상황이 돼 버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보담당이나 부서는 물론 대표이사와 여러 임원들까지 인지부조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 회사는 지금까지 언론관계나 홍보를 잘 해 왔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상황이 흘러가지?’ 하는 이야기가 여기저기 흘러나온다.

특히 이런 현상은 정상 홍보 역량과 조직을 갖춘 대기업들에서 보다, 그에 미치지 못하는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최근 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기업들에게서 훨씬 더 흔하게 목격된다. 부정 이슈나 위기 발생 시 언론관계 역량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게는 어떤 구체적 해프닝들이 발생될까? 정리해 본다.

미디어리스트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가장 대표적 언론관계 역량의 문제가 미디어리스트와 관련되어 있다. 기업 언론관계의 수준을 평가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홍보실로부터 최신 버전의 미디어리스트를 받아 점검해 보면 된다. 자사를 담당하는 기자들의 리스트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이다. 대부분 언론관계 업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기업들의 미디어리스트는 기준이 모호하거나, 예전 담당기자의 정보가 들어있거나, 새롭게 변화는 상황과 정보를 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갑작스럽게 상황이 발생하여 자사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기자들에게 배포해야 하는데, 그 리스트가 충분하거나 유효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는 기업들이 있다. 미디어리스트 내 한 언론사에는 데스크급 기자의 정보가 전부이고, 어떤 언론사는 이미 퇴사해 버린 기자들의 정보만 가득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자. 미디어리스트는 전혀 쓸모 없는 쓰레기인 셈이다.

아는 기자는 많은데, 친한 기자가 없다

이 또한 전형적으로 이슈나 위기관리 시 기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는 이유다. 미디어리스트에 담당기자 정보가 200-300명 되지만, 그 중 누구 하나에게 딱히 전화 걸어 정보를 확인하기 쉬운 기자가 없는 상황이 이런 경우다. 예전에 친했던 기자는 이미 다른 부서로 발령 되어 직접적으로 해당 이슈와는 상관이 없다. 그래도 아주 모르는 기자보다는 낫겠지 하면서 그 옛 기자에게 전화해 간접적인 확인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전형적으로 언론관계 업무와 관련해 제 숙제를 그때 그때 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이슈관리를 위해 한 경제지 내부 분위기를 알고 싶다고 그 경제지의 자매지 기자에게 전화를 건다든가. 한 종편의 취재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 같은 오너의 일간지 기자를 만나 본다든가. 흔히 광고국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는 것도 그런 류다. 직접적 언론 네트워크 대신 간접적으로 또는 두세 다리를 건너서 상황을 파악하는 활동이 많은데, 이 모든 것이 언론관계 역량이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 취득의 범위나 정확성이 떨어진다

당연한 결과다. 앞서 미디어리스트와 친한 기자의 부재 원인과 바로 연결되는 결과다. 부정적 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작업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인데, 이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워지지 않는다. 상황 정보를 취합해 본 경험이 있는 실무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정보를 조각 조각으로 입수해서는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충분해 보이는 깊이 있는 정보를 얻었다 해도 그에 대해 크로스 체킹 해 보기 전에는 정확성을 부여할 수 없다. 자꾸 새롭게 충돌하거나 가려져 있는 다른 정보들이 나타나고, 주장과 예측이 진짜 정보들과 버무려져 혼란스럽기만 하게 된다.

언론관계 숙제를 제대로 해 놓지 못한 기업은 기자들을 통한 정보 취득과 분석 작업은 일단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입수되는 정보 양이나 질이 형편없을 뿐 아니라, 정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수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제공한다는 소스 기자들이 아주 예전 기자였던 분이거나, 현장에서 떨어져 있는 단순 시니어 기자이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분이면 상황은 더욱 더 재앙적으로 변한다.

다른 출입처 기자 리스트가 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라면 담당기자 리스트와 커넥션은 물론, 그에 더해 법조, 국회, 특정 규제기관 출입기자단 리스트가 어느 정도 구비되어 있어야 대응 업무가 가능 해 진다. 미디어리스트가 곧 언론관계나 커넥션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경험 있는 홍보임원이나 팀장이 있는 기업에서는 이전 담당기자들이 출입처가 변경되어 여러 주요 기자단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커넥션을 찾을 수 있다. 리스트만 있으면 즉각적인 커넥션 활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업에게 부정적 상황이 발생되면, 홍보실은 관련된 기관이나 조직의 담당기자 리스트를 구하려 애쓴다. 각종 방식으로 우회하여 미디어리스트를 입수하고, 그 중 커넥션 있는 기자들을 찾아 내 정리하며 접근 방식을 고민한다. 이는 그나마 언론관계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갖춰진 기업이다. 그 외 기업은 혹시나 운이 좋게 해당 기관의 미디어리스트를 구했다 해도 별 소용이 없다.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한다

보도자료는 평소 잘 써서 여기 저기 기사화했는데, 실제 발생된 문제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문 작성에는 자꾸 주저하게 되는 경우다. 다른 기업은 실제 해명문이나 사과문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샘플을 급히 구해 보기도 한다. 어떤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할지, 어떤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할지에 대해서도 상호간 왈가왈부만 이어진다.

일부 조언하는 내외부 분들로부터 자꾸 자신의 생각을 포함하라며 지시가 내려온다. 수정과 수정이 계속된다. 문서 하나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의 검토와 훈수가 이어지다 보면, 해명문이나 사과문이 장장 수 천자 수준의 길이가 되기도 한다. 형식 또한 많은 사공이 인풋을 한 결과 언론대상 해명문이나 사과문의 형식을 일찌감치 벗어나 버린다. 정치 성명문 같기도 하고, 법적 소장 같기도 한 괴상한 문서가 생성된다. 평소 제대로 된 언론관계 역량을 기반으로 정상적인 대 언론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되었다면 상상하기 힘든 해프닝이 내부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그후 결국 그 문서를 모르는 기자들에게 이메일 발송한 뒤 배포 완료를 선언한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언론 체계나 습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홍보실 사람들에게 당연하고 일상적인 언론 관련 내용들에 대해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생소 해 한다. 평소 언론관계 역량이 안정된 기업에서는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도 언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경험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 못한 기업에서는 언론이 매우 새롭다. 홍보실에서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해도 임원들이 그 조언을 듣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홍보실이 너무 언론 시각에서만 이야기한다 거나, 언론편을 들고 그들의 눈치를 너무 살핀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의사결정자들이 언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꾸 대응 의사결정을 하다 보니 무리수가 이어진다. 홍보실은 그 사이에서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인 하부 업무만 반복한다. 언론을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을 관리해야 하는데, 내부 의사결정자들의 심기를 관리하고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평소 경영진의 언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나 경험은 언론관계 역량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대표이사나 주요 임원들이 언론을 몰라서는 이슈나 위기관리는 커녕 사업도 어렵다.

의사결정권자들이 홍보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아이러니다. 평소에는 대표이사나 임원들이 자사 홍보실에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발생되니 금세 신뢰를 거두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의사결정자들은 기본적으로 변덕스럽다. 각 기능들의 실체와 수준을 신속하게 평가하고, 대안을 찾는데 익숙하다. 평소 언론관계 역량은 위기 시처럼 직접 평가받지 못하게 마련이다. 반면 상황이 발생하고 하루 정도면 의사결정자들은 홍보실의 실제 역량에 대해 평가를 내린다.

문제는 단순히 의사결정자들이 홍보실에 대한 신뢰만 거두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더 큰 난맥상이 목격된다. 전문성 없고, 허락되지 않은 임원들의 개인적 언론 접근이 이어진다. 현장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공식 메시지가 아닌 내용들이 전파된다. 상당히 위험한 언론 매체들의 동원 시도도 이어지고, 전혀 다른 위기를 양산해 낸다. 통제불가능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 돼 버린다. 일단 홍보실이 약간 부족하더라도 경영진이 기존 홍보실을 제외하거나 무력화시켜서는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홍보담당자나 홍보임원이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어떤 홍보담당자라도 평소 언론관계 역량을 제대로 가꾸어 왔고, 맡겨진 숙제를 잘 해 왔다면 이슈나 위기 발생 시 무력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역량과 커넥션을 잘 발휘해서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내려 현장을 뛰며 밤을 새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경우 홍보담당자는 극도의 불안과 패배감 그리고 조직적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이슈나 위기가 발생되면 해야 할 업무는 더 줄어드는 경험을 한 홍보담당자는 그런 상황에 처한 경우다. 일부 대응 업무만 맡겨진다 거나, 위기관리팀을 소집 운영하거나 보조하는 총무의 역할로 홍보담당자의 역할이 바뀌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슈나 위기 발생 시 홍보담당자가 무력감을 느낀다면, 그 기업의 언론관계 역량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자사에게 부정적인 상황이 발생되어 진짜 거대한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를 경험해 본 경영진이나 홍보담당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경험이 오랜 홍보팀장이나 임원들의 경우에는 물론 기억에 남는 자신의 위기관리 케이스를 몇 개 꼽을 것이다. 그 외에는 자잘하거나 부정적인 해프닝에 대한 홍보실 차원의 다양한 대응 경험이 대부분이다.

우선 주목해야 하는 건 그 자잘하고 부정적인 해프닝 수준의 일상적 이슈관리에 관한 것이다. 그 때 그때 해당 해프닝에 대응하면서 자신과 자기 부서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역량이 부족하다 느꼈는지 기억해 낼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무엇을 해야 그런 어려움과 부족함을 해소시킬 수 있을지를 경영진과 함께 여럿이 고민해 보면 좋다.

그런 일상적인 깨달음과 기억들 그리고 고민들이 실행으로 이어져야 언론관계 역량이 성장한다. 정상기업으로서 필요한 정상적 언론관계 역량을 갖추게 된다. 지금은 상황이 평온하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이만하면 충분하다 느낄 수 있겠지만, 문제를 찾아내는 노력은 언제나 부족하다. 언제 이 풀장의 많은 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우리의 수영복이 드러날지 노심초사해 보는 것은 결과적으로 유익한 일이다. 막연히 불안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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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42021 Tagged with 0 Responses

[The PR 기고문]소리치는 소수 vs. 침묵하는 다수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예전 이슈관리나 위기관리 원칙에서는 어떠한 부정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관련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을 잘 살펴 기업의 대응 방향과 전략을 정리하라 조언한다. 여기에서 공중 및 이해관계자들을 잘 살피라는 의미는 발생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의견, 감정, 태도, 느낌 등 여론을 다방면으로 리스닝 해 보고 분석하여 기업 대응 기조를 정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예전 기업들은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공중과 이해관계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기업들은 언론의 기사와 논설을 주로 읽고 그것을 여론으로 이해했다. 일부 여론지도층의 개인 의견을 들어 그것을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이후 점차 공중 및 이해관계자의 형태와 생각이 다양해지고, 이슈 및 위기 유형과 지속성이 변화무쌍 해 지면서 이슈와 위기 시 공중 및 이해관계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는 소셜미디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그때부터는 기업이 직접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수 많은 소셜미디어 채널 각각에서의 의견들을 다각적으로 듣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을 기업 스스로 완벽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소셜미디어 공중의 의견을 듣고 분석해 이슈나 위기 대응의 기조를 정하는 것이 익숙해 지면서 여론을 파악하는 것이 이전보다 쉬워진 것 같았다. 그러나, 새로운 의문이 생겨 났다. 침묵하는 다수가 어느 곳에서 건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는 소수보다 훨씬 더 많은 다수는 침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수가 다수를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다시 기업의 고민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과연 현 상황에서 소셜미디어상에서 소리치는 일부 공중의 의견을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다시 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일부 진영의 의견을 대변하는 전통 언론을 사회 전체의 여론으로 간주해도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어차피 기존 언론이나 소셜미디어나 각각 자기 진영이나 도그마에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침묵하는 다수의 의견을 찾아 따를 것인가? 침묵하는 다수를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인가? 그들이 침묵하고 있는 데 어떻게 그들의 의견을 알아 내 이해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실제 현장에서 위와 같은 고민으로 기업 내에서 자주 회자되는 화두들을 정리해 보자.

소리치는 소수는 그저 소수일 뿐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더욱 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라고 부를 때 일부는 ‘소수(minority)’에 방점을 찍는다. 반대로 일부는 ‘소리치는’에 방점을 찍는다. 이슈나 위기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부정 상황에서는 소리치는 자들이 생겨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대부분 상황과 관련된 분노를 이야기하고, 실망감을 표현하고, 아파하고, 슬퍼하며, 비웃음을 보낸다. 상호간에 자신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자신과 유사한 감정을 가진 공중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며 성장한다.

바로 그들이 소리치는 소수다. 침묵하는 다수가 존재하는 지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리치는 소수가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관찰 가능하다. 실재하는 공중인 것이다. 그들의 소리가 커져 다른 주변 이해관계자들이 듣게 되면, 상황은 이전과 또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심각성이 더해진다. 추가적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상황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기업이 해당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들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그 들에 의한 압력과 공격 그리고 그로 인한 장기간의 부담이 기업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가져온다. 위기가 돼 버리는 것이다.

소리치는 소수는 대저택 마당에 풀어 놓은 큰 개들과 같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자신을 왓치독(watch do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제를 보고 그들이 짖기 시작하고, 그 소리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집 주인(다른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은 현관문을 열고 정원으로 나와보게 된다.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기업에게는 이 순간이 가장 두렵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문제를 보았음에도 소리치지 않는 개들(침묵하는 다수)은 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셈이다. 소수가 시끄럽게 소리치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 최근 이슈 및 위기관리의 목표가 되고 있다. 소리치던 소수가 점차 목소리를 줄여 나가게 하는 것, 소리치는 소수가 점차 사라지게 이끄는 대응 방식을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하게 되었다.

그러다고 해도 극소수의 극단적 의견까지 수용해야 하나?

그렇다. 그 극소수로 보이는 극단적 의견이 일단 기업에게 보여지고, 피부에 와 닿는 수준이라면 그들의 의견은 이미 무시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예를 들어 자사에 대하여 젠더 극단의 일부 그룹이 상당한 수준의 분노와 적대행동을 시작했고, 그로 인해 실제 사회 및 시장 접촉면(point of connection)에서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면, 이 상황을 무시로 해결할 수는 없게 된다.

아주 극소수의 매우 극단적 의견이라 폄하만 해서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실제로 아주 극소수의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의견이나 주장이라면 아예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잠깐 시끄러울 수는 있어도, 이내 스스로 사라져 버리게 될 뿐이다. 그들의 소리를 접하는 대다수가 그들의 존재와 의견을 먼저 무시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아 지속되는 극소수의 극단적 의견이라면, 기업은 큰 심각성을 느끼며 대응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예상되는 더 큰 데미지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소리치는 공중에 대해 숫자, 이성 또는 합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 보았 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기업이 피해를 입는 결말이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의견이 어떻게 살아남아 성장하는지를 잘 살펴보고 그에 각각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더 예후가 좋다.

침묵하는 다수는 그럼 존재하지 않는 다는 의미인가?

그렇지 않다. 어디에나 침묵하는 자들은 존재한다. 특히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에는 그 상황에 따라 침묵하는 자들의 수가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한다.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이슈나 위기 발생 시 해당 상황에 대해 침묵하는 자들의 수가 줄어들지 않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침묵하는 자가 소수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이슈나 위기 초기에는 침묵하는 자들의 수는 다수로 존재한다. 그것을 전제로 해서 상황을 분석하고 판단하고 이해해야 한다. 기업의 전략적 대응이 성공했다면, 침묵하는 자들은 다수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반대로 기업의 대응이 실패한 것이라면. 침묵하는 자들은 급격히 줄어들고, 소리치는 자들로 변화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소리치는 다수의 상황, 곧, 사회적 공분의 사태로 해당 이슈나 위기는 악화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침묵하는 다수를 찾아 해 메거나, 분석해 보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소리치는 소수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다. 상황 발생 또는 대응 이후 소리치는 소수가 점차 다수화 되는 상황이 목격된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 되어 간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막연하게 모집단의 규모를 잘 알지 못하니 소리치는 소수가 두 세 배 증가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다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별 의미가 없다. 이슈나 위기관리는 수학이나 과학이 아니다. 소리치는 소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면 어떤 이유나 원인이 있다는 의미다. 침묵하던 다수가 따라서 소리를 치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것을 이해하고 집중 관리해 나가는 것이 이슈관리고 위기관리다.

소수가 아무리 시끄럽게 해도 이해관계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런 상황으로 분석되는 경우라면, 현재 소리치는 소수는 실제 여론의 정글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은 소수가 아닐 것이다. 제대로 여론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폐쇄된 의견들의 집합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폐쇄형 커뮤니티나 카페, 메신저그룹내에서 고여 있는 의견들이 그런 것이다. 그들의 소리침이 여론의 정글로 직접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일부 흘러나와도 오래 생존할 수 없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겨우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았다 해도 그 소수의 소리침이 적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에도 유사한 분석이 가능하다. 주변 공중이나 이해관계자들과 감정의 일치를 형성하지 못하는 주제라는 의미다. 이런 경우에는 그 소리치는 소수를 모니터링만 할 뿐, 대응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면, 지켜만 보는 것 자체가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성장하고 확산되지 않는 소수의 소리침은 바라봄이 최선의 대응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닐까?

그렇지 않다. 만약 침묵하는 다수가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면, 일단 소리치는 소수는 여론의 정글에서 살아남아 성장할 수 없다. 소리치는 소수의 잘못된 의견을 반박하고 반대하는 다른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로부터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기존 소수와 새롭게 그들을 비판하는 소수의 시끄러운 싸움이 시작된다. 여론의 정글에서 치열한 싸움이 발생되었다는 것은 이미 기업에게는 이전보다 유리한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기업측에서는 그런 소수 간의 싸움이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도움이 된다 해석해야 한다.

그런 싸움이 없이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공중이 다수로만 그대로 남아 있을 확률은 대단히 희박하다. 새로운 소수가 태어나지 않은 채 침묵하는 다수만 계속 존재한다면, 그 다수는 소리치는 소수의 의견에 주목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거나,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말로 그들은 부동층이다. 이런 부동층의 침묵하는 다수를 소리치는 소수 쪽으로 이동시키지 않는 노력을 해야 이슈관리나 위기관리는 성공한다. 침묵하는 다수라고 해서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 막연한 착각을 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이전과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여론이라는 것 자체도 이전의 여론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다. 여론은 기본적으로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특성만 변하지 않았다. 여론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언제든 어떻게 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나뉘며 널을 뛸 수 있다.

까다로운 여론을 들여다보며, 만져지지 않는 여론을 관리해야 하는 기업은 그래서 어려움을 느낀다. 무엇이 여론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다. 어떻게 여론을 찾고 이해해야 하는 가에도 이론들이 많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여론의 정글 속에서 이슈나 위기를 관리하려는 기업들은 더욱 더 여론을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고 정의하는 것에 익숙 해 질 필요가 있다.

그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소리치는 소수, 즉 가시적으로 도출되어 있는 의견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여론의 정글에서 메아리를 울리고 있는지를 지속해서 모니터링해야 한다. 그것들이 어느 정도로 강도를 더해만 가는지에 대해서도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

그와 함께 소리치는 소수의 활동성, 확산성, 공격성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최근의 기업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의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정원에서 엄청나게 짖어 대는 두세 마리의 개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많은 개들이 아직 잠자고 있다고 짖어 대는 개들의 위력을 폄하해서도 안 된다. 언제 잠자던 개들이 일어나 따라 짖으며 달려들게 될지를 예측하며 항상 경계해야 한다. 짖고 있는 소수의 개들을 신속하게 관리하는 대응도 필요하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옛말을 믿고 소리치는 소수에는 무조건 대응하지 않는 기업은 이상의 조언과는 관계없는 기업이다. 그냥 갈 길을 가면 된다. 결과가 어떻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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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042021 Tagged with 0 Responses

[The PR 기고문]정답 대신 해답을 찾자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자,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나요? 큰 이슈가 발생했거나 위기상황에 처한 기업에서 컨설턴트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무언가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복잡한 상황을 툭툭 끊어내고 잘라내서 가지런히 정렬할 수 있는 마법 가위를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세상 많은 것이 그렇지만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는 시대다. 어제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 옆 회사의 정답이 우리 회사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그들은 되었지만, 우리는 안 되는 거다. 정답이 영원히 정답일 수 없게 만드는 무한한 변수들이 혼동 속에서 상호 충돌하기 때문에,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있어 정답은 존재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인 시각이다.

예를 들어 빨리 사과하라는 원칙이 정답 같아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신속하게 한 사과로 인해 추가적인 곤란을 겪는 많은 사례들이 나타났다. 다른 변수들이 사과의 신속함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대표가 직접 나가서 위기관리 하라 하는 것도 정답 같아 보인다. 하지만, 때때로 대표가 나가서는 안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가 무리하게 나서면 전선을 더욱 극대화해 버리는 결과가 나타나는 경우도 늘어난다.

뭐든 정답 같아 보이면 일단 의심하고 다시한번 다각적인 고려를 해 봐야 안전하다. 매뉴얼이나 이론서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효용가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 커만 간다. 그렇다고 매뉴얼이나 이론서 없이 이슈나 위기관리를 해 보려 하니 더욱 더 난감하다. 의사결정이 바로 정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참고해야 할 텐데 마땅한 것이 없다. 자신이 내린 의사결정이 정답일지 아닌 지에 대해 확신이 없고, 식은땀만 난다.

일단 정답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보자. 정답은 없고, 다양한 해답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새로 가져 보자. 정해진 답이 정답이다. 그렇게 정해진 것은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현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차라리 해답을 찾아 유연하게 사고하고, 폭 넓게 범위를 활용해 보자. 좀더 나은 이슈관리와 위기관리가 가능 해 질 것이다.

기업이 고통받는 젠더이슈, 정답이 있나?

기업들이 최근 들어 젠더간 갈등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업 내부에서는 사실 이번 자사 이슈 발생 이전에는 젠더 이슈에 대해 별로 알지 못했다며 한숨을 쉰다. 일부에서는 만약 자신들이 그런 극단적인 젠더 갈등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자사 직원들이 그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 아니겠냐 한다. 그런 직원들이 없기 때문에 아무 의식 없이 디자인이나 카피를 사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 좋다. 정상 기업이 일부러 그런 논란을 일으켰을 리 없다. 일부 실무자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부러 게임을 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사후 담당자들이 받을 스트레스와 각종 인사적 불이익을 미리 감내하면서까지 게임을 할 직원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했다는 것이다. 공중은 기업이나 직원을 의심한다. 그런 여론으로 중요한 사업적 이해관계자들이 불이익이나 피해를 받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해당 기업은 그 상황을 심각한 이슈나 위기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무엇인가? 유일한 정답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위해도 높은 해프닝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법은 문제의 해프닝의 지속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가 되는 내용이나 소스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사과를 하고 개선이나 재발방지 약속을 하는 것이 해법이다. 아니, 해법들 중에 하나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 해법에는 이해 안 되는 것이 많다. 우리가 진짜 특정 사상을 가지고 그런 컨텐츠를 만든 것이 아닌데, 왜 우리가 유죄를 인정해야 하는가? 컨텐츠를 내려 버리는 것은 문제를 인정하는 행동 아닌가? 전체가 아닌 아주 일부 집단에 의해 지적 받고 있는 컨텐츠를 내리고 사과하는 것이 과연 전략적인가? 다양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반론들이 따라붙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을 뿌리로 해서 급격하게 자라난 해프닝에 합리성이나 이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서는 정답은 커녕 해답도 찾기 힘들어 질 뿐이다. 아예 답이 없다는 허망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앞으로 기업과 관련 한 온라인발 해프닝은 점점 더 다양해 지고 심각해 질 것이다. 온라인 여론의 특성에 대한 기업의 이해 노력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향후 어떤 정답 비슷한 것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현재는 빨리 해프닝의 지속기간을 최소화 하는 것이 가장 유익한 해답 같아 보인다. 맞서 싸워 더 나아질 성격의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다른 해법이 있다면 회사마다 그 해법을 따르면 된다.

글로벌 사업에서의 한중일 삼국간 갈등, 정답이 있나?

얼마전까지 우리나라 기업들 중 일본 시장에서 사업을 하거나, 국내에서 일본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들이 장기간의 고통을 경험했다. 국가적으로 반일정서가 심각해서, 사업 자체가 위기를 겪었다. 일부는 한국내 사업을 철수하기도 했고, 반대로 일본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한국에서 사업하는 일본기업에서 많은 자문 요청이 있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을 간절하게 찾았다. 그러나 정답은 없었다.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이라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있자’ 정도가 결론이었다. 그 답 같지 않은 답을 보면서 그 회사 임원들은 한숨을 쉰다. 어떻게 그것이 정답이나 해답이 될 수 있습니까 하며 울상이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 이외에는 상황에 맞는 해답이 없는데 말이다. 조용히 견디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 눈에 띄지 말자. 이런 것들이 어쩔 수 없는 해답이었다.

최근 한 기업에서는 중국 시장에서의 문제로 큰 고민에 빠졌다. 중국의 동북아 역사 수정 갈등의 중심에 자사가 끼어 버린 것이다. 글로벌 출시한 제품 디자인과 브랜드 컨셉에서 한류를 강조했는데, 중국 시장 반응이 심각했다. 그 디자인과 컨셉은 최초 중국의 것인데 왜 한국적이라는 개념으로 사용하는가 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비판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약 중국 소비자 시각에 맞추어 해당 제품을 접고, 브랜드를 포기하며 사과하면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그런 이슈관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반대로 중국 소비자들에게 무슨 소리냐 이건 한국적인 것이라며 강력 대응한다면 중국에서의 사업은 어떻게 될까? 앞의 젠더 이슈와 같이 한쪽의 편을 들면, 한쪽이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로 해도 동일한 골치 아픈 진영 갈등 속에서 회사는 어떤 결정도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해답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이게 현실이다.

말과 행동이 다른 ESG 관련 이슈, 정답이 있나?

최근 유행하는 ESG 경영 트렌드와 관련된 이슈에도 정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그럼 예전에는 기업들에게 환경이나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에 대한 생각이나 체계가 없었을까? 이미 존재하던 개념이었다. 최근 들어 그 세가지 개념이 하나로 묶여 경영 트렌드로 재강조되고, 정부나 시민단체나 기업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아 가고 있는 과정일 뿐이다.

이런 환경에서 어떤 기업은 아직도 환경관련 문제를 터뜨리고 있다. 예전에는 그리 관심 끌지 못했던 단순 환경 사고로 해당 기업은 ESG경영에 반하는 겉과 속 다른 기업으로 비판 받게 되었다. 환경 사고가 나는 그 순간에도 대표이사는 ESG 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거나, 글을 올리고 있었다면 더욱 복잡한 상황이다.

최근 온라인에서는 앞장서서 ESG경영을 외치는 신문사들이 발행하는 종이 신문에 주목한다. 그 상당부분이 그대로 버려지거나 해외에 포장지로 수출되는 상황을 비꼰다. 진정한 ESG를 위한다면 신문사들이 먼저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하라는 비아냥이 이어진다. 웃지 못할 이런 이슈에 대해서는 신문사들의 이슈관리 정답은 무엇일까? 해법은? 무시가 가능한 해법으로는 보인다.

어떤 기업은 ESG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약속하고도, 사회적 논란을 연이어 일으킨다. 어떤 기업은 오너 중심의 심각한 지배구조를 유지한 채 ESG경영을 브랜드로만 내걸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지적에는 무시나 침묵으로 대응한다. 해답을 그렇게 정한 모양이다. 정답은 찾는 것을 포기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현실적이다.

현란한 MZ 세대 직원들 관련 이슈, 정답이 있나?

소위 MZ세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인류군의 직원들은 어떤가? 굳이 어떤 회사라고 꼽지 않아도 작고 큰 다양한 MZ 세대 관련 이슈들은 발생되어 이어지고 있다. 블라인드와 브이로그, 각종 소셜미디어 등과 연계된 여러 해프닝이 기업 이슈의 한 카테고리를 이룬지 오래다.

큰 세대차를 드러내고 있는 경영진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그렇고, 공개적으로 대표의 허심탄회 한 대화 노력을 평가하는 직원들까지 한둘이 아니다. 공개적으로 성과급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여 사내는 물론 언론에까지 노이즈를 만들어 낸다.

부정적인 이슈로 회사가 어려울 때에도 MZ 세대 직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일부 이해관계자들과 대립하거나 충돌하기도 한다. 법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 윤리적 문제 등과 버무려진 MZ 세대 이슈는 세부 유형을 나누기조차 어렵다.

그렇다면 기업측에서는 그런 새로운 환경인 MZ세대 관련 이슈에 대해 어떤 정답을 가질 수 있을까? 정해진 답을 가지고 오색찬란 한 MZ세대의 생각과 움직임을 관리해 나갈 수 있을까? 진짜 그런 정답이 있어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는 한 것인가?

기업 이슈관리와 위기관리에 있어서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업은 처해진 상황에서 가능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 뿐이다. 해법은 그럼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우선 적절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해당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있어 지향하는 목적이나 목표를 정해야 한다. 우리가 현 상황에서 관리 활동을 통해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어떤 상황을 목표로 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젠더간 갈등과 관련된 부적절해 보이는 이미지로 컨텐츠를 만들어 논란이 되었다면, 그 상황에서 해당 기업은 어떤 이슈관리 목적과 목표를 세울 수 있을까? 어떤 기업은 ‘해당 논란의 조기 진화로 회사 매출 및 거래처 피해 방어’를 목적과 목표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신속하게 해당 컨텐츠를 내리거나 수거해 버리고, 부주의했음을 신속히 사과해서 논란을 조기 종식시키는 노력을 하는 관리방식도 그중 하나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다.

목적과 목표를 세웠다면 그에 정렬되어 있는 가용한 모든 대응방식을 찾아 검토하는 것이 그 다음 단계다. 해당 컨텐츠를 삭제하고 말 것인가? 해당 컨텐츠를 새로운 플랜 B컨텐츠로 대체할 것인가? 재발방지 프로그램에 어떤 계획을 넣을 것인가? 누구 명의로 사과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어떤 표현과 설명을 해야 이슈관리 목적과 목표에 가장 정렬될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언제 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검토와 고민 그리고 결정이 필요하다.

개선이나 재발방지책에는 어떤 옵션들이 있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그 다음 단계의 것이다. 일단 이전에는 재수가 없어서 관련 논란에 휩싸여 고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번 그리고 세 번 비슷한 논란에 휩싸이게 되면 공중들 시각에서는 그것이 회사의 의지나 숨겨진 의도라 간주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정답이 없다면, 가능한 다양하고 여러 차원의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그때 그때 적용해서 문제의 핵심에 접근해 개선해야 한다. 그 뿐이다.

추후 그 동안 회사는 어떤 실질적 개선과 재발방지 노력을 했는가 하는 질문을 들었을 때, 즉각적으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답 없는 이슈나 위기라고 해서 해답을 찾고, 실제로 해답을 적용하는 활동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어떻게 해서 든 최악으로 상황이 번지는 것을 막고, 적절한 지점에서 상황과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해 내는 것이 잘된 이슈 및 위기관리다. 그 과정에는 해법들이 존재한다. 정답 대신 해법을 찾아보자. 좀더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여러 고민을 해보자. 그리고 다양하게 실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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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2021 Tagged with 0 Responses

[The PR 기고문]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이해한다

[The PR 기고문]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이해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린 아이들은 종종 사물을 마주할 때 마치 그것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심지어 인형, 장난감, 의자, 선풍기 등과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도 있다. 각종 동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람의 모습으로 말과 행동을 하는 동물과 사물이 인기 많은 주인공이다. 심리적으로 사물을 인간화 하여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과 기업의 관계도 그렇다. 사람들이 기업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관계 맺으려 하기 이전에, 오래전부터 기업은 사람들 머릿속에 자신이 자리잡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기업 광고에서 유명 모델을 내세우거나, 사람을 로고로 만들거나, 이미지 좋은 사람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다양한 스타일로 대중에게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우리가 다양한 기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여러 인간의 모습이 그 때문이다.

기업 자체로는 인간의 모습을 띠지 않지만, 사람들이 기업을 생각할 때에는 특정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기업은 세련되고 스마트한 청년의 모습이다. 어떤 기업은 우직하고 성실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애정 있고 상냥한 엄마의 모습도 있다. 어떤 기업은 이국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의 셀럽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관계를 그린다.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기업의 인간적 면모는 아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기반이 된다. 평시와 위기 시 일관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볼 때 기존 보유하던 인간성 자산을 위기 시 얼마나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위기관리 성패가 갈린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위기 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기업들의 주된 인간적 유형을 살펴본다.

그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평소 엄청난 광고 및 홍보 물량으로 사람들과 꾸준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기업이 있다. TV나 온라인 상에서 끊임없이 그 기업의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찬사가 메아리 친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 기업을 아주 멋지고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그 기업과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아다니고, 그들이 베푸는 여러 사회활동과 행사에도 흔쾌하게 참석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과 그 기업은 막연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회사 제품에서 엄청난 문제가 발견되었다. 소비자 일부는 실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언론과 규제기관이 나서면서 금세 북새통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그 친구(기업)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 기업은 그 것은 문제가 아니라 관행이었을 뿐이며 심지어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 이야기한다. 일부 피해 입은 소비자에게는 보상하겠지만, 너무 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 같이 만들지 말라 소리쳤다.

그 기업을 오랜 친구로 여기던 사람들은 그 기업에게서 낯섦을 느꼈다. 어 저 친구가 왜 저러지? 저런 친구가 아닌데 이상하네? 친구가 왜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할까? 사람들은 그 친구를 향해 애석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후 어느 날 그 기업이 다시 등장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역시 최고의 친구라 이야기하며 다가온다.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같이 다시 더 좋은 친구가 되자 손을 내민다. 더욱 다양한 행사에 초대하고, 사회 봉사 활동에 나서는 자신에게 박수 처달라고 요청한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고민에 빠진다. 그때 그 친구는 어디로 간 걸까?

너는 나를 알지만 나는 너를 모른다

철수에게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원하고 주식을 사서 주주로서 자랑스러움 까지 느끼고 있다. 그 기업의 여러 온라인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 하고 있으며, 종종 댓글을 달아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기업의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우호적 평가를 하기도 한다. 때때로 그 회사의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다닐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수는 그 기업 제품을 사용하다가 큰 문제를 발견했다. 당연히 이 문제는 오랜 친구 (기업)가 나서서 깔끔하게 해결해 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다. 소비자만족센터에 전화를 걸고, 매장에 나가 상담까지 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당신이 제품 관리를 잘 못한 것일 뿐, 우리에게 책임도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였다. 일부 직원은 귀찮다는 듯 철수에게 블랙 컨슈머라며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다.

철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를 좋아하고 응원했는데, 이럴 수 있어?’ 화가 나고 눈물까지 난다. ‘누가 당신 보고 우리를 좋아하라고 했나? 그냥 당신이 우리를 짝사랑했던 것 뿐이잖아. 심지어 우린 당신을 잘 몰라. 알 필요도 없고. 바보 같은 녀석’ 그 기업은 이렇게 철수와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것 같다. 철수는 생각한다. 이게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가 진짜 맞나?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어떤 기업이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문제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온다. 보도 내용을 보니 정말 어처구니없고, 그에 대해 기업이 해명하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이 기업을 이전에 몰랐었고 이 부정적 뉴스를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그 기업에 대해 악평을 하고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기업은 억울했다. 자신들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앞뒤와 전후좌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미웠다. 우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욕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에게 왜 저렇게까지 악의를 품으며 공격할까? 우리가 자기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식으로 우리를 힘들게 할까? 하며 서러움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아주 친한 친구가 비난 받을 상황이 되면, 아예 입을 다문다. 그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까지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욕을 하는 상황에서 나까지 나서서 내 친한 친구에게 욕을 퍼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위와 같이 서러움을 느끼는 그 기업은 평소에 사람들과 친한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좀 더 했었어야 했다. 낯선 기업은 그 자체가 취약함이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는 항상 색안경을 끼게 된다.

너희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온라인에서 팔로워만 수십만명 거느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 매일 매시간 사람들과 대화하며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 엄지척을 들어 보이며 기업에게 좋은 친구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기업 경영진은 이정도 사랑받는 기업이라면 어떤 사업이라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크게 문제가 터졌다. 여기저기에서 화살이 날라와 꽂혔다. 기업은 여러 다양한 메시지로 해명하고, 예전처럼 대화를 계속하려 하는데,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그렇게 많던 엄지척이 하루 아침에 수많은 나빠요와 싫어요로 대체되어 버렸다. 경영진은 물론 임직원들까지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나쁜 놈도 이런 나쁜 놈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가 당신들에게 얼마나 잘 했는데? 이런 불만이 기업 경영진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유형은 평시 자사에게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진정한 우정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상호 관계가 그런 우정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 의례적/이익적 관계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호 관계 때문에 이런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는 기업들이 늘어간다.

너희가 뭔 데?

평소 광고나 홍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기업이 있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은 대부분 사람들과 여론에 대하여 부정적인 개념까지 가지고 있다. 특히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멸했다. 언론은 썩었고, 온라인은 쓰레기 통이라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일부 불만이나 비판은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가니까.

사람들은 그 기업을 상당히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인간으로 인식했다. 때로는 무례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태도에 실망했다. 딱히 그 기업과 친해지고 싶지 않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마음도 별로 없었다. 그냥 저 기업은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지내고 있었다. 기분 나빠 관심두기 싫은 인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업에 큰 문제가 발생됐다. 수사기관이 그 기업을 압수수색하고, 오너와 대표이사를 줄줄이 소환 했다. 언론과 온라인도 당연히 주목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분 나쁨에 관심을 끊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내 그 여론은 엄청난 비판과 비난 그리고 공격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그 공격성을 행동으로 까지 표현했다.

그 기업은 여러 조언을 들어 오너가 직접 나와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겸허하게 책임 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기업을 향한 화살은 줄어들지 않았다. 예전 사례와 다른 사례들이 줄줄이 따라 나와 더 다양한 비판이 창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한번 이럴 때가 올 것이라며 기다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무례하게 우리를 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 기업은 이러게 생각했다. ‘올 게 왔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사람은 기업을 생명이 있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별 관심이나 관계 맺기의 기회가 없던 기업을 볼 때에는 그냥 낯설거나 한 두 번 본 인간으로만 이해한다. 알고는 있지만 친하지는 않은 그런 존재다. 일부 기업은 운 좋게 그 보다 사람들에게 좀더 관심과 사랑을 받는 친구로 여겨 지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강화되면 사람들은 일부 기업을 아주 친한 친구, 막역한 사이로 인식하기 까지 한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 기업에게 ‘인간화’ 전략을 종종 조언한다. 해당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고통을 받았거나, 분노를 느끼는 여러 사람들과 먼저 공감해 보라 이야기한다. 위기 시 기업이 주변 사람들을 오래된 친구로 보는지, 그냥 아는 친구로만 바라보는지, 별로 친하지 않은 인간으로 바라보는지, 전혀 낯설어 하는지는 해당 기업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공감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 된다.

당연히 사람들은 기업이 자신을 좋은 친구로 여길 때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에 더해 자신들이 그 기업을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면 더욱 더 이상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위기관리에 실패할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고, 대신 이해와 장상참작의 분위기가 생겨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기업이 제대로 인간화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기업은 좀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업은 위기 시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좋은 친구로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좋다.

자사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기 전에, 친구들과의 관계를 먼저 따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래된 좋은 친구는 좀처럼 배반하지 않는다. 모르면서 친구를 욕하지도 않는다. 친구가 어려울 때에는 도움의 손길도 내민다.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좋은 친구가 많은 기업은 성공한다. 그러니 위기일 수록 그 친구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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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 기고문] 누가 요즘 신문을 읽어요?

[The PR 기고문]

누가 요즘 신문을 읽어요?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얼마전부터는 홍보담당자 중에서도 종이신문을 건너뛰는 경향이 생겼다. 회사 PC나 노트북으로 스크랩 서비스 이용이나 온라인 검색이 가능한 데 왜 그 불편한 종이신문을 한 장 한 장 읽어야 하느냐 이야기하는 홍보담당자도 나타났다.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다.

아예 종이신문을 접해보지 못한 젊은 홍보 신입도 늘고 있다. 그들에게 “종이 신문을 좀더 접해라. 그래야 전체적인 여론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식의 조언은 이제 종이 신문과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됐다는 분위기다.

미디어 트레이닝을 진행하면서 50대 한 임원분으로부터 “요즘 누가 신문을 읽나요?”하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다.  종이 신문은 이미 죽었는데 그 죽은 기사를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하는 거였다. 이 질문에 요즘 기자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까지 따라 나왔다. 죽은 신문에 아무도 읽지 않는 기사를 계속 올리는 수많은 기자들도 이젠 죽었다는 거다.

신문, 종이 신문, 기사, 기자…이 화두들은 종종 혼동 속에서 언급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 신문이 죽었을까? 종이 신문이 죽었을까? 기사가 죽었을까? 기자가 죽었을까? 정확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다 죽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사업이고 플레이어들이다’는 이야기로 퉁 쳐진다.

문제는 이런 혼동에 기반한 논의가 기존 기업 내 언론홍보 기능까지 고사시키는 의사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들이 죽었으니 이제 그 기능은 필요 없다는 의식의 흐름 때문이다. 더구나 기업 커뮤니케이션이나 이슈 및 위기관리 기능에 있어서도 그 중요성이 함께 저하되는 현상까지 보인다. 보지 않은 신문을 통한 문제 제기가 이제는 그 위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그 기반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우리의 환경을 보자. 언론홍보와 이슈와 위기관리 관점에서 실질적인 실행 환경을 들여 다 보자. 진짜 신문이 죽었을까? 종이 신문은 진짜 계란판의 의미 밖에 없게 되었을까? 기사는 진짜 아무도 읽지 않을까? 기자도 신문과 함께 그 실제 기능을 잃었을까? 답은 글쎄다.

첫째, 신문은 더욱 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종이 신문과 신문을 동일어로 사용하지 말자. 실제로 종이 신문의 구독 비율은 형편없이 줄었다. 그렇다고, 해당 신문을 읽는 독자들까지 형편없이 줄었다고는 볼 수 없다. 종이 신문을 비롯하여, 온라인 매체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는 신문 발 정보의 공급과 소비량은 그 이전 보다 엄청나게 늘었다. 신문은 더 강력 해 졌다.

오히려 읽기 싫은 기사가 너무 많이 노출되어 지겹고 괴로울 지경 까지 환경이 변했을 뿐이다. 신문 발 정보 없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나? 기존 신문들이 한 일주일 아무 취재나 정보 공유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현재 같은 사회 상황이 지속될 수는 있을까? 만약 신문이 죽었다면 그들이 눈 앞에서 사라져도 아무 문제나 변화는 없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실행 차원에서도 기업 내 분위기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목격된다. 평소 다양한 보도자료를 통한 기사화에 별 반응 없는 임원들이 많아 졌다. 신문을 아무도 안 보는데, 거기에 보도자료를 뿌려 기사를 얻어 내는 것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이야기한다. 그런 생각이 합리적인 것 아니냐는 동의 요청까지 이어진다.

그 후 해당 임원의 문제와 관련된 신문 기사가 실리면 반응은 어떨까? 합리적 기준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자면 해당 신문은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니, 아무리 자신의 이야기라 해도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은 다르다. 해당 임원은 그 신문에 주목하고, 어떻게 든 처리해야 한다며 홍보실과 로펌을 두루 찾는다. 그 임원은 왜 그러는 걸까? 아무도 보지 않는 신문 일 뿐인데.

둘째, 종이 신문은 청와대가 읽는다.

청와대만 종이 신문을 볼까? 국회와 의원실에서도 본다. 정부 부처와 산하 기관들이 모두 종이 신문을 본다. 규제기관을 비롯하여 경찰과 검찰 같은 다양한 수사기관도 종이 신문을 읽는다. 환경단체와 시민단체는 어떤가? 그리고 다른 매체의 수많은 기자들은? 진짜 종이 신문은 모두 계란 판 정도의 의미만으로 전락했나?

기업 내에서는 어떤가? 회장과 대표이사, 주요 임원들이 종이 신문을 본다. 그들 가정에서도 종이 신문을 읽기도 한다. 홍보실이 임원들로부터 듣는 익숙한 말이 있다. “그거 지면에도 났습니까?” 이 질문의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 아직도 온라인 보다는 지면에 더 신경 쓰는 최고의사결정자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기업이 합리적 사고를 한다며 무시하는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로 인해 규제 조사와 수사를 받게 되는 경우를 무시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까? 아침 받아 본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회사로 문의해 오는 국회 인사나, 환경이나 시민 단체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매일 같이 종이 신문 지면에 도배되는 기사를 읽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기업이 계속 무시할 수 있을까? 특정 종이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따라서 취재를 시작하는 기자들의 전화는 아무것도 아닌가?

지면을 확인하며 이야기하는 경영진을 무시할 수 있는 부서는 얼마나 있을까? 그 앞에서 ‘이미 종이 신문은 죽었습니다. 아무도 종이 신문을 읽지는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임원은 몇이나 될까? 그 이야기에 그렇구나 하며 종이 신문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는 회장과 대표이사는 몇이나 될까?

셋째, 가짜 기사와 나쁜 기사 때문에 기사는 빛난다

굳이 일반화의 오류라는 표현을 쓸 필요도 없다. 모든 기사가 가짜이며 나쁘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다만, 자신이나 자사에게 불리하거나 부정적 내용이면 그 기사는 가짜이며 나쁘다 해석된다. 그리고는 요즘은 가짜뉴스와 나쁜 뉴스가 너무 많아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수십년 전 예전에는 가짜나 나쁜 뉴스가 전혀 없었을까? 그 때는 정말 저널리즘이 살아 있어서 가짜나 나쁜 뉴스가 발붙일 곳이 없었을까? 모든 독자들이 기사를 보며 전부 진짜이며, 좋은 뉴스구나 감탄하기만 했을까? 그런 상황이 오히려 가짜다.

부정확한 기사, 품질이 떨어지는 기사, 일부러 왜곡된 시각을 집어넣은 교묘한 기사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도 이전과 같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런 수준 낮은 기사는 자신과 자사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지속적으로 키워 나가면 걸러 낼 수 있는 대상일 뿐이다. 반복적으로 수준 낮은 기사에 휘둘린다면 자신이나 자사의 리터러시 수준을 의심하는 것이 맞다.

우리는 몰라도 대중이 그런 수준 낮은 기사에 휘둘린다 믿는 것도 문제다. 그렇지 않다. 이슈나 위기관리 관점에서 대중, 공중, 이해관계자에 대한 정확한 시각와 평가는 아주 중요한 대응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다. 상대를 우매한 그룹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어떤 커뮤니케이션도 성공할 수 없다.

차라리 수준 낮은 기사 때문에 수준 높은 기사의 가치는 빛나게 되었다. 제대로 된 기사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진영논리 속에서도 뼈아픈 기사는 의미 있는 충격을 미친다. 겉으로는 그 기사를 가짜이고 나쁜 뉴스라 폄하해도 시린 부분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군계일학은 계속 존재한다. 오히려 기사 아웃렛 환경이 확장되면서 군계일학의 기사나 기자의 사후 취재담이 세상에 알려질 확률은 더 늘었다. 당연히 그 내용이 기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수배로 높아졌다. 기사가 죽었다며 안일하게 바라볼 환경은 절대 아니라는 의미다.

넷째, 기자를 무시하며 이슈나 위기관리에 성공한 기업 없다

기자를 건너 뛰자는 논의를 진행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왜곡을 일삼는 기자를 상대하지 말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중과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상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어차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자사 입장이 게시되면, 그걸 기자들이 받아쓸 텐데, 왜 골치 아프게 기자에게 까지 자료를 보내야 하는지 질문하는 기업도 생겨났다.

한마디로 기업을 취재하는 기자들에 대한 대우나 평가가 이전 보다 낮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그 현상을 가지고 기자가 죽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진짜 기자들은 아무 의미 없는 이해관계자로 무시해 버릴 수 있을까? 자사가 뿌린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주어 먹는 하이에나 정도로 폄하하면 아무 문제는 없을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실제 대형 이슈나 위기가 발생했을 때 관련된 취재를 하는 기자들을 무시하는 실험을 해 보면 된다.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으면 된다. 기자들의 방문을 막아 철통방어를 해보자. 어쩌다 연락된 기자에게 묵비권이나 거짓 정보를 흘려 괴롭혀 보자. 대신 소셜미디어로 잘 정리된 내용을 게재한 뒤, 알아서 해석해 기사 쓰라 가이드 해보자. 그 결과가 소중한 교훈이 될 것이다.

각각의 기사에게도 그랬던 것과 같이, 유리하고 좋은 기사를 쓴 기자는 진짜 기자라 하고, 반대인 기자는 나쁜 기자라 하며 비속어를 써 비아냥 거리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그런 편향된 시각이 기자들에 대한 전략적 대응 기반을 무너뜨린다. 기자를 폄하하고, 기자를 차별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자의 취재 방향과 수준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사내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니 문제다. 제대로 된 대응을 하고도 사후 아무 평가를 내부로부터 받지 못하게 되니 악순환은 계속된다. 기자가 죽었다고 확신해 보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업 홍보나 마케팅도 마찬가지고, 이슈관리나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공히 적용되어야 하는 룰이 있다. ‘A 또는 B 또는 C’라는 ‘or’ 주장과 생각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문과 기자가 죽었으니 우리는 이제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집중해야 한다’ 같은 주장은 경계해야 하며 실질적이지 않은 주장이라는 의미다.

얼핏 보면 상당히 전략적이고 효율적인 주장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A나 B가 죽었을 리 없고,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다면 C에 집중하는 것이 정상적 대안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이해가능 한 것이다. 가장 전략적인 룰은 ‘A와 B와 C 모두를 제대로…’라는 ‘and’ 시각에 기반한 것이다. 신문, 종이 신문 기사, 기자 그 어떤 것도 죽은 것이 없다. 완전하게 사라지지도 않았으며, 그 다양한 영향력은 계속 변화할 뿐 아직도 기업에게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생생하다. 그러니 ‘and’룰도 계속 유효하다.

신문과 기자들이 죽었기 때문에 회사 내 언론홍보 기능을 없애자 하는 기업은 몇 년 후 아주 뼈아픈 교훈을 가진 후 스스로 다시 언론 홍보 기능을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신문과 기자들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생각으로 기업 이슈관리와 위기관리 기능을 축소한 기업도 이내 마찬가지 환원의 심각한 고통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실제 환경과 영향력 구도에 대한 시각이 부실한 기업은 그러한 폐지, 축소, 충격, 환원의 고통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홍보실 직원들이 불철주야 언론 홍보를 너무 잘했더니, 스스로 인기 좋은 기업이 된 줄 알고 이후 홍보실을 축소한 예전 기업들도 그랬다. 이슈나 위기를 초반에 잘 관리하던 실무진이 고생하던 기업에서는 자사 스스로 ‘발생될 이슈나 위기가 없는 기업’이라는 환상을 가지기도 했다. 그 후 위기관리 시스템을 오래도록 방치했고, 그 기업들도 몇 년 후에는 똑같았다. 그런 불필요하고 고통스러운 반복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살아있는 신문과 기자들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 내내 그래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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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 기고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기는 사라진다

[The PR 기고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기는 사라진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발생된 위기는 사라진다. 언젠가는 우리 기억에서도 잊혀진다. 위기를 모든 사람이나 기업이 필히 관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위기관리가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다. 우선 그 위기로 자신이 잃을 것이 많아야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반대로 그 위기로 잃을 것이 없거나, 무시할 만하다면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도 된다.

실행해서 얻을 것이 있다면 그 대응은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 보아 특정 위기관리를 하더라도 얻을 것이 변변하지 않다면 그 대응은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제는 잃을 것이 없는 개인이나 사람이 억지로 위기관리를 하려 할 때 발생된다. 별로 크게 잃을 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오버해 대응하다 보니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실행해도 얻을 것이 뻔한데, 막무가내로 힘들게 실행 해 망신을 당하고 결과를 망친다. 왜 그런 전략적이지 못한 대응을 했는가 물으면 그런 경우 대부분은 ‘마음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또는 ‘본 때를 보여주려고’ 등의 답변이 돌아온다. 아쉬운 경우다.

이번에는 위기 발생 시 대응을 해야 하는 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쟁점들을 살펴보겠다. 위기관리에서도 그렇고 인생에서도 가장 위험한 단어는 ‘무조건’이라는 말이다. 이 다음 글을 읽기 위해서는 위기가 발생되었을 때 무조건 대응해야 한다는 상식을 먼저 버리자. 위기가 발생하면 대응해야 할 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다는 새로운 상식을 가지고 글을 읽어 보자.

대부분의 위기는 스스로 사라진다

이건 진리다. 몇 년간 수십년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는 개인이나 기업의 위기는 없다. 며칠이나 몇 개월 고생을 해도 결국 위기는 사라져 버린다. 엄청나게 활활 타오르는 산림의 화재도 언젠가는 꺼져 버리게 마련이다. 한없이 밀려오는 강물도 언젠가는 줄어든다. 어떤 위기 건 끝이 있다.

그에 비해 위기관리 주체인 자신이나 자사는 대부분 그 끝을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을 보인다. 금세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고, 폭발적인 억울함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며 대적하고 싶은 본능으로 고통받는다. 전문가들이 좀 더 미래를 보자 하더라도 그 조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어떻게 든 대응해야 이 상황이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강하다.

위기가 발생되면 그 위기를 검증된 의사결정자 스스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대응의 첫걸음이 된다. 금세 사라질 성격인지, 장기간 소란을 피울 성격의 것인지 먼저 판정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간 소란이 이어질수록 우리에게 점점 더 큰 데미지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지를 살펴보자. 일단 이미 받은 데미지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데미지가 계속 추가되어 우리의 맷집 한도를 뛰어 넘게 될 상황인지 여부다. 대응은 그 후에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이다.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 때만 대응하자

특정 대응을 실행해서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다면 그건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경우 그 대응을 실행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무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예측해 볼 때 실행을 하더라도 크게 얻을 것이 없거나, 전혀 목적과 동떨어진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그런 실행은 자제하는 것이 낫다.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홧김에 하는 대응은 위험하다. 기분전환용 대응도 그렇다. 억울함이나 분노를 어떻게 든 풀어보려 하는 대응도 종종 큰 논란을 만든다. 그걸 “왜 실행하는가?”라는 질문에 즉각적으로 “왜냐하면”이라는 답변이 궁하다면 그 실행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그 이유가 있더라도 들어보아 위기관리를 위한 핵심 목적이 아니라면 조금 참아 보는 것이 낫다.

조금이라도 얻는 것이 있다면 이것 저것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질문하는 개인이나 기업도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산속에서 타오르는 불이나 밀려오는 강물도 언젠가는 줄어든다. 사소하게 실행한 여러 대응이 그 결과를 만들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대응은 그냥 소모적인 것일 뿐, 진정한 위기관리는 되지 못한다.

전략을 기술이나 트릭과 혼동하지 말자

위기관리에서는 순리를 따라야 그나마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는 안되는 대응을 두고 스스로 기술적인 것이라 부르면 안된다. 신기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는 대응도 매번 바람직할 수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과 트릭을 총동원해서 하는 희한한 대응은 자칫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우선 자신 또는 자사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경계해야 한다. 평시가 아니라 특정 위기시에 위기관리 주체인 자신 또는 자사의 의지대로 여론이 움직여진다 믿는 근거는 무엇일까? 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도 그렇다.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 또는 내부고발자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는 충격적 방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존재한다.

위기관리에서 가장 훌륭한 전략은 견디는 것이다. 자신이나 자사의 맷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최대한 몸을 사리면서, 꼭 해야 하는 대응에 효과적으로 집중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최상의 전략이다. 그 기간 동안 입은 데미지는 사후에 어떻게 든 노력해서 복구하면 된다. 한 겨울 덫에 걸린 산토끼처럼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뭐든 다 해 보자 해서는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질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무능이 아니다

해야 할 것만 하는 것이 전략적인 것이다. 어떤 것을 해서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대응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비전략적이고, 무능한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은 버리자. 때때로 그렇게 보여도 그 이유를 계속 상기해보자.

막무가내 침묵과 전략적 침묵은 다르다. 무대응과 전략적 대응 자제도 또 서로 다르다. 그리고 침묵하지 않는 것이 침묵보다 차라리 쉽다. 무조건적 대응이 전략적 대응자제보다 훨씬 쉽다. 그래서 기업이나 개인은 쉬운 것을 좋아하고 선택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 전략은 없어 보인다.

일부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전략적으로 대응을 자제하는 것을 누가 못할까 생각한다.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해 보면 안다. 전략적 침묵처럼 어려운 실행이 없다. 전략적 대응자제처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없다. 위기 시에는 내부와 외부 자극에 위기관리 주체가 끊임없이 들썩들썩 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략적 침묵이나 대응자제를 잘 못 생각하는 사람은 그 대응을 두고 상황을 외면하고 외부 변화에 눈과 귀를 닫고 있는 것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정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외부 변화를 입체적으로 파악해 업데이트 받고 있어야 전략적 침묵이나 대응자제는 가능해진다. 강력한 위기관리 리더십이 내부에 존재해야 겨우 유지 가능한 어려운 전략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대응보다 해야 하는 대응을 하자

내가 온라인을 잘 알고 잘 하고 있으니 온라인으로만 대응 해 야지 하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우리가 출입기자들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위기 원점보다 먼저 출입기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그 실행이 하고 싶은 것이냐 꼭 해야만 하는 것이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가장 좋은 대응 방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동시에 그 실행이 현 상황에서 꼭 해야만 하는 것일 경우다. 그 결과는 당연히 좋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고, 그나마 자신이 잘하기 때문에만 선택한 대응은 위험하다. 최대한 상황을 분석해 자신이 원하는 대응 방식이 그를 관리하기 위해 최선인가는 가려 보자는 이야기다.

위기관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대상과 채널 그리고 메시지의 우선순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 우선순위와 비중 할당에 있어 하고 싶은 방향 보다는 꼭 해야만 하는 방향을 잘 찾아 정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순리를 따르는 위기대응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순리를 따르는 것이 위기관리 보다 중요할 때도 있다

해당 위기가 우리의 실수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면 그 실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순리다. 해당 위기가 우리의 불법적 관행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면 스스로 법적 책임을 감수하며 반성하는 것이 맞다. 재발방지는 이 경우에도 기본이다. 말도 안되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논란이라면 사실관계를 해명하면서 대응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그런 순리를 자신의 사정 때문에 외면하고 역행하는 경우에 발생된다. 자신들의 실수였음에도 그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 법적 책임을 지기 싫어하고 어떻게 든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기업은 어떤가? 스스로도 힘겹다. 어마 어마한 예산을 써가면서 그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 순리라 보기는 어렵다.

수년이 흘러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기업이나 개인도 물론 존재한다. 일부는 그를 보고 위기관리에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위기관리의 완전한 성공을 의미하지는 못한다. 그런 기업이나 개인은 다시 다른 법적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똑같은 위기관리(?)에 만족하면서 반복되는 실행을 할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위기관리라 생각할 것이다. 순리를 따르자. 순리를 떠올리며 평소에 위기를 관리하자. 그것이 더 낫다.

위기 발생이 예상되는 경우나 위기가 발생한 직후 위기관리 주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 일부에서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하는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결국은 ‘대응’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일부는 아이디어를 달라고도 한다.

그만큼 대응 방식이나 그와 관련된 전략은 위기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간과하는 것은 대응하지 않는 것도 대응이라는 생각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최초 경영진이 결정한 대응 자제에 대한 기조를 유지하는 도중에도 실무진들은 계속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의문을 품는다. 이래서는 안돼는 데, 무언가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계속 몸이 달아오른다. 이런 경우 경영진은 왜 대응을 자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반복적으로 실무진들에게 설명하고 확인시켜야 한다. 위기 시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야 완전한 대응이 된다.

이 글에서는 위기는 이내 사라지니 대응하지 말아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침묵이나 대응 자제가 항상 유효한 전략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기 시 무조건적 대응이나 상황에 대한 ‘반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하는 것이다.  전략적인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때를 기다리며 조용히 앉아 있는 상대는 강하다. 보이지 않는 적이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모든 대응 준비를 마치고 상황을 면밀하게 바라보는 역량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경지의 것이 아니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고, 대응을 자제하며 필요한 때를 기다릴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 꼭 대응해야 할 때와 꼭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때를 잘 가려 대응하자. 무조건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상황에 따라 라는 기준을 세우자. 전략이 있으면 대부분의 위기는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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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 기고문]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The PR 기고문]

전략적 침묵이란 무엇인가?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나 조직에게 부정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부에서는 종종 ‘전략적 침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현장에서 보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일부 논의는 전략적이지만, 상당수 경우 의사결정자들은 비전략적 침묵을 전략적 침묵과 혼동하는 우를 범한다. 대체 어떤 침묵이 전략적인 것일까? 그리고 이슈나 위기 상황에서 침묵이라는 것 자체가 자칫 위험한 것은 아닐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주제인 ‘전략적 침묵’에 대하여 선택 시 중요한 고려 사항을 정리해 본다. 현재 자사가 이슈나 위기에 맞서 침묵을 선택하고 있다면, 이 글에서 정리된 전략적 침묵을 위한 고려 사항들을 자사의 실행에 적용해 보아도 좋겠다. 그렇다면 최소한 비전략적 침묵의 늪에서는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떤 가치가 있나?

일단 침묵이 적용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전혀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필자는 침묵이 ‘적용되어야 하는’ 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침묵이 ‘적용될 수 있는’ 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자. 구체적 상황과 구도에 따라 기업이나 조직에서는 침묵이라는 대응을 아주 선별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꼭 침묵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없다. 지난번에 침묵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침묵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황에 따라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말 그대로 그 때 그때 다르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시각에서 침묵은 때때로 아주 강력한 위기관리 효과를 발휘한다. 물론 이슈나 위기 상황에서 해당 기업이나 조직이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때를 놓치거나 무시하는 침묵은 반대로 큰 부작용을 생산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선택한 침묵은 비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훨씬 뛰어 넘는 가치를 지닌다. 침묵은 무조건 안된다는 말도 현실적이지 않고, 무조건 침묵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침묵은 전략적으로 선택해서 써야만 하는 양날의 검이다.

전략적 침묵은 상대적 비교 선택의 주제

핵심 원칙 중 하나는 현상황에서 기업 스스로 ‘침묵과 커뮤니케이션, 이 둘 중 실행 할 때 어떤 경우에 얻는 것이 많은가?’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확인 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적극 또는 소극적이라도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상황 변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커뮤니케이션은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에 대한 단순 반응의 차원에서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 실행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실행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거나 적다면, 또한 차라리 침묵 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그 커뮤니케이션 실행은 비전략적인 것이다.

침묵의 실행을 통해 결론적으로 목표했던 결과를 얻었다면 그 침묵은 전략적 침묵이다. 그러나 침묵을 통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고, 자사에서 최초 목표했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부정적 결과를 얻었다면 이는 비전략적인 것이다.

질문해 보자 “현 상황에서 침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커뮤니케이션 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둘 중 어떤 실행이 더 많은 중요한 가치를 생산해 낼까?”

침묵해도 문제없다면 당연히 침묵

‘현재 침묵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해서 선택한 침묵은 전략적인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사가 커뮤니케이션 할 필요 없는 이슈나 위기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계속 침묵하게 되면 상황이 자체적으로 약화되거나, 사라져 버리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떤 추가 상황이 더해질지 모르는 경우에도 침묵은 전략적일 수 있다. 단, 이런 경우는 한시적 침묵이 된다.

자사가 굳이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아도 될 때 침묵을 깨는 커뮤니케이션은 비전략적이다. 침묵하면 사라질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장기화하였다면 그 실행은 비전략적이다. 앞으로 상황이 계속 변화하고 더해질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때 그때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면 그도 마찬가지다. 상황을 예상하고 침묵을 대입해 보아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면 침묵이 답이다. 무조건 꼭 커뮤니케이션 해야만 하는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해 보자 “현 상황에서 침묵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까?”

침묵할 수밖에 없는 침묵도 있다

이 원칙에서 혼동이 많이 발생한다. 일단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부정 이슈나 위기 상황에 처해 자사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거나, 아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하거나, 의사결정이 너무 지연되고, 끝까지 되지 않아 커뮤니케이션 할 주제가 없는 상황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경우는 전략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준비하고 적극 시도해야 하는 상황인 경우일 수 있다.

정확하게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어떠한 형태로든 커뮤니케이션 하게 되면 분명히 더 상황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는 경우다. 대표적인 예가 해당 상황 관련 자사에게 아주 심각한 책임과 과실이 크게 있는 경우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데미지 컨트롤이라도 시도해 보겠지만, 그 수준을 훨씬 상회하는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자의 주목이 없는 경우라면 침묵은 전략적으로 더욱 유효하다.

질문해 보자 “현 상황에서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경우에 따라 침묵이 용인되는 경우도 있다

기업 및 조직의 비밀과 관련된 주제가 바로 그 대상이다. 조사기관의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도 침묵은 적용된다. M&A나 신사업 관련 한 주제에 대해서도 침묵은 폭넓게 용인된다. 단, 왜 자사가 해당 이슈에 대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는지가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이해관계자가 그 이유를 듣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 침묵은 전략적이다.

그 외 기업 및 조직이 침묵하는 것이 더 큰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이해관계자들이 그 침묵을 보고 어떤 긍정적 가치를 느낀다면 침묵은 적극적으로 선택되어져야 한다. 그것의 목적으로 자발적인 개선, 반성, 애도, 결의 등에 방점을 둔다면 그 침묵은 종종 용인된다.

질문해 보자 “현 상황에서 우리가 침묵한다면 대부분의 이해관계자들이 공감할까?”

기타 침묵이 곧 전략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상황이 가변적인 경우도 그렇고, 상대가 지속적 공격성을 나타낼 때도 일부 그렇다. 좀더 상대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문제의 핵심을 잡아 내기 위한 시간 벌기 전략으로서의 침묵이다. 상대 프레임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침묵을 선택할 때도 있다. 상대 주장에 대한 관심을 일부러 표하지 않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할 가치가 없다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일종의 무시 전략 개념의 침묵이다.

물론 이런 전략으로의 침묵도 위에서 언급한 여러 질문을 선행한 뒤 결정되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보다 침묵하면 더 얻을 것이 많아야 한다. 침묵해도 별 문제가 없다면 더 좋다.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도 있다. 그리고 우리의 침묵이 이해관계자들에 의해 용인되는 수준이라면 침묵을 거부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진다. 그 침묵은 매우 훌륭한 전략이 된다.

비전략적 침묵은 어떤 특징이 있나?

커뮤니케이션이 무조건적 반응이라고 착각하고 실행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그 반대로 무조건적으로 침묵이 금이라는 생각으로 실행하는 침묵은 상당히 비전략적이다. 침묵이 독이 되는 경우는 혹시 아닐지를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 할 능력이 없어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도 종종 비전략적 결정이다.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능력을 차용하거나, 지원받아서라도 해야 할 커뮤니케이션은 꼭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상황에 제대로 커뮤니케이션 하지 못하면서 이를 스스로 전략적 침묵이라고 부르는 습관은 경계해야 한다. 물론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억지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다가 더 큰 재앙을 맞게 되는 것이 두려운 경우라면 차라리 침묵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대신 그 결과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이미 위기관리의 주제가 아니다)

단순하게 침묵하면 문제가 언젠가 사라지겠지 하는 희망으로 선택된 침묵도 비전략적이다. 이런 경우 문제는 침묵하며 기다려 보아도 상황이 사라지기는 커녕 더욱 더 악화될 때 생긴다. 이 때 부랴부랴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게 되면 늑장대응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뒤 늦은 커뮤니케이션으로는 악화된 상황을 개선시키기 더욱 어려울 뿐 더러, 이를 위해서는 더 큰 책임인정과 배상 등이 필요하게 될 뿐이다. 그래서 순수한 희망에 의한 침묵은 위험하다.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심리적 침묵도 비전략적이다. 사람들 중에서 골치 아픈 문제가 불거지면 그에 대한 대응으로 입을 굳게 다무는 스타일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해도 이런 습관과 심리가 기업이나 조직에 적용되면 위험 해 진다. 개인은 문제가 생기면 골방에 들어가 침묵한다 거나, 전화를 꺼 놓고 사라질 수 있겠지만 기업이나 조직은 그래서는 안된다. 커뮤니케이션 창구 역할을 담당하는 임직원들은 더더욱 그래서는 안된다.

현장에서 이슈나 위기관리를 해 보면 의사결정자들과 실무자들은 ‘침묵’을 선택한 후 그 침묵을 적정기간 유지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 한다. 선택된 침묵이 충분한 전략적 검토를 통해 결정된 것임에도, 사후 민감하고 미세한 상황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침묵의 유지 입장이 흔들리는 것이다. 어떻게 서든 무엇이든 커뮤니케이션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계속 되 묻는다. 침묵을 유지하는 것을 심지어는 고통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은 전략적 검토와 그에 기반한 선택도 중요하지만, 침묵 대응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여러 미세 변화가 자극을 견디는 조직의 맷집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실재하는 긴장감과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침묵을 선택할 때 해당 침묵을 깨야 하는 향후 예상 변수를 설정하고, 커뮤니케이션으로 입장을 변화시킬 때 압도적으로 실행할 커뮤니케이션 플랜을 미리 세워 놓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항상 문제는 검토와 준비가 부족한 채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침묵과 커뮤니케이션을 기준 없이 오가는 것이다. 주제에 따라 자극에 따라 침묵하기도 하고, 커뮤니케이션 하기도 하는 대응도 위험하다. 또한 같은 기업이나 조직 내에서도 누구는 현 상황에 대하여 침묵하는데, 누구는 커뮤니케이션 하는 일원화 부재 현상도 경계해야 한다.

심지어 언론 대응에 있어서는 침묵을 선택했는데,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어 공간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진행된다 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조직 스스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경우 그런 이상 증상이 발생된다. 일사불란 함의 실행이 전혀 불가능 한 경우다.

전략적 침묵은 그래서 어렵다. 어찌 보면 커뮤니케이션이 차라리 침묵보다 쉽다. 단순한 함구나 노코멘트 이미지로만 상상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완전한 침묵은 예술이다. 기업 스스로 모든 구성원과 조직 체계, 채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속적 침묵의 유지는 내부 실행 인력들의 전략적 인내와 스트레스를 견디는 역량이 매우 우수하다는 반증이다. 침묵은 그래야 말 그대로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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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2021 Tagged with , , , 0 Responses

[The PR 기고문]위기관리는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이 한다

[The PR 기고문]

위기관리는 매뉴얼이 아니라 사람이 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는 특이하게도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구체적 비판이 다른 국가적 재난 때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국가적 재난 때 마다 반복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위기관리 매뉴얼 문제와 컨트롤 타워 문제 등이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는 그리 심각하게 다루어 지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반대로 일본의 코로나 19 대응에 대해서는 많은 언론에서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위기관리 매뉴얼 문제를 지적했다. 예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서도 언급되었던 매뉴얼과 실행 주체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이 다시 주를 이룬다. 일본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이 위기관리 보다는 자신들의 책임관리에 더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아주 흥미로운 주제다.

이런 상황을 기반으로 이번 코로나 19 위기를 맞아 위기관리 관점에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반복되던 위기관리 매뉴얼에 대한 비판과 논의 시각을 정리해 보자. 매번 소모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위기관리 매뉴얼 때리기도 이제 점차 정리 되어야 한다. 비판이 필요한 성장과 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좋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거나, 개악으로 자칫 전환 될 수 있는 비아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기관리 매뉴얼을 놓고 회자되는 언론의 비판과 다양한 전문가들이 전하는 논평의 핵심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본다.

첫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에 모든 상황과 변수를 반영하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문제다?

이번 코로나 19 위기관리 관련 일본 정부가 요코하마 항에 정박한 대형 크루즈선 내 탑승객들에 대한 조치를 적절하게 하지 못했다는 비판의 핵심이다. 일본 정부가 미처 크루즈선 내 수천 명의 탑승객에 대한 전염병 감염 대응을 위한 매뉴얼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은 매뉴얼에 대한 대응 방안이 없어 즉각 대응 할 수 없었고, 그런 대응 체계를 고민하다 보니 타이밍을 놓쳤다고 비판한다.

그나마 이후 정치적으로 결정한 미봉책이 더 큰 문제를 만들었고, 크루즈선을 완전한 재앙 상태로 방치해 버리기 까지 했다 한다. 이 모든 것이 일본 정부가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다양한 상황과 변수를 반영해 놓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번 백지 상태에서부터 생각해 보자. 정부나 기업 같은 거대한 위기관리 주체 말고, 자기 자신을 개인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주체로 설정 해 매뉴얼을 상상해 보자. 자신의 일생에서 발생될 다양한 위기 상황을 꼽아 보자. 최대 몇 개가 될까? 거기에 상황 하나 하나에 연결될 변수들을 다시 꼽아 보자. 그 상황과 변수를 모두 곱해 보아야 실제 경우의 수가 계산된다. 그렇게 하루 종일 계산 하다 보면, 내 자신의 위기관리 매뉴얼에 담을 상황과 변수를 통한 경우의 수만 해도 최소 수백에서 수천 개를 넘게 될 것이다. 그런 매뉴얼은 진정한 의미의 매뉴얼이 아니다. 일단 위기관리 주체가 한눈에 파악하기도 힘들 뿐 더러, 위기 시 활용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나 기업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기의 유형은 대분류를 거친 후 발생적 특징에 따른 중분류 정도의 상황과 변수 확정이면 적절한 것이다. 물론 그 분류 기준이 상호배제적이고 전체포괄적(MECE)일 필요는 있다. 따라서 감염병 대응 매뉴얼에서도 대형 크루즈선, 중형 크루즈선, 소형 크루즈선, 단거리 관광선 등과 같이 각각의 환경과 변수 매뉴얼을 각각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국제적으로 운행되는) 다중 교통수단 내 감염’ 정도의 매뉴얼 상 중분류 정도면 충분하다.

오히려 다양한 상황이나 변수가 세부적으로 정리될수록 어디에도 위치하지 않는 회색지대는 더 많아 진다. 실무차원에서는 매뉴얼 상 정확하게 표기되지 않은 위기는 위기로 보기 어렵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제시된 상황과 변수가 없으면 대응도 불가해지는 상황이 그런 경우 발생된다. 따라서, 모든 상황과 변수를 매뉴얼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은 현실적이지도 못하고, 효과적이지도 못한 개념이다.

일본 정부의 이번 논란은 매뉴얼 보다는 해당 상황 대응에 있어 정치적 판단이 강해 제대로 매뉴얼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본다.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 발생 직전과 직후까지 주로 활용된다. 그 이후 상황과 변수가 등장하면서 변화되는 위기에 대한 대응은 온전히 위기관리 의사결정그룹의 몫이다. 상황과 변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 이는 의사결정그룹의 대응 결정 역량이 부족했던 것이다. 매뉴얼은 그에 대한 단순 핑계일 수 있으며, 직접적인 문제의 핵심은 아닐 수 있다.

그래도 굳이 일본의 매뉴얼 문제까지 따지자면, 발생 가능성이 높고, 전례가 있던 위기 유형에 대한 사전적 고민이 매뉴얼에 제대로 반영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형 국제 선박이 자주 입출항 하는 지역의 지자체 차원에서라도 해당 상황을 예상 했어야 했고, 전례를 찾는 평시 노력을 했었어야 했다.

두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이 구체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문제다?

구체적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상황과 변수 그리고 각 대응 프로세스와 방식에 대한 기술이 어느 정도까지 구체적이어야 하는가는 항상 논란이다. 구체적이라는 기준은 매뉴얼에 따라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의사결정자와 실행그룹이 ‘참고하기에 적절한 수준’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참고’다.

위기관리 의사결정이나 실행을 할 때 필요한 매뉴얼은 제품의 조작설명서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조작설명서에는 ‘제품을 개봉 후, 플러그를 꼽고, 빨간 불이 들어오는지 확인할 것. 그 후 작동 스위치를 ON에 놓고, 1분간 제품의 가열시간을 기다릴 것’ 같은 구체적인 단계별 서술이 들어간다. 하지만, 위기관리 매뉴얼에서는 그러한 수준의 구체성을 모든 의사결정과 실행 프로세스에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불필요하다.

그러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서술은 실무 (훈련용) 매뉴얼에는 일부 수록 가능하다. 실제 일선에서 대응 해야 하는 실무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트레이닝 매뉴얼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트레이닝 매뉴얼도 실무자들이 해당 업무에 상당 수준 익숙해 지면, 이내 열람되지 않는다. 교육과 훈련의 목적을 가질 뿐, 실행단에서 순간순간 지시를 내리는 매뉴얼의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매뉴얼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해당 매뉴얼을 제품 조직 설명서와 일부 혼동하는 것이다. 정부 조직이나 기업의 구조를 조금만 상상해 보면 그런 시각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그들의 매뉴얼이 조작설명서와 같은 구체성에 따라 수십만 페이지에 달하는 구체적인 매뉴얼의 모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이 현실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문제다?

매뉴얼은 분명 현실적이어야 한다. 특히 일선에서 실행 함에 있어 현실적 참고가 되지 못하는 매뉴얼은 위험하다. 예를 들어, 고층빌딩 화재 위기 시 인명 구조를 위해 수십 미터 높이의 고가 사다리들과 구조용 헬리콥터를 사용하라는 매뉴얼상 지시가 있는 경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고층용 사다리나 헬리콥터를 현장 대응 주체가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에는 매뉴얼이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사결정 차원에서 해당 의사결정이 현실적이다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은 칼로 무 자르듯 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이번 코로나 19 위기 대응에 있어서도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지시가 현실적이냐 현실적이지 않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각자 여러 판단이 분분하다. 일부 지자체 등에서 과잉대응이 낫다 하는 주장도 현실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란에 연결이 된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반영해야 하는 현실성이란 실행 차원에서 가용될 유무형 자산들(예산, 인력, 장비, 설비, 협력체계 등)과 관련 된 것이 핵심이다. 그 외 위기대응 의사결정에 있어서 현실성은 매뉴얼에 제대로 기록될 수도 없고 기록되어도 별 실효가 없는 것이다.

최근 코로나 19 위기에서도 목도되었던 것과 같이 의사결정 그룹의 의사결정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는 많은 언론과 국민들은 각자 이런 현실성 개념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해당 위기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어떤 것이 현실적인가 하는 것은 상당부분이 상황적 판단에 근거하는 것일 뿐, 이를 매뉴얼에 정확하게 기록하거나, 분분하는 의견에 따라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 성격의 것은 아니다.

네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이 구닥다리다. 그래서 문제다?

업데이트 되지 않은 매뉴얼은 쓸모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매번 위기가 발생했을 때 마다 새롭게 얼굴을 바꾸는 매뉴얼이 좋다고 보기도 어렵다. 가장 좋은 매뉴얼은 오랫동안 개선되어 왔고, 환류 관리되어 온 최신판 매뉴얼이다. 초판은 수십 년 전에 만들어 졌지만, 개정과 환류관리를 통해 현재의 환경과 체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오늘의 매뉴얼처럼 훌륭한 매뉴얼이 없다.

매뉴얼이 구닥다리라는 비판은 최초 매뉴얼을 만든 이후 그 매뉴얼을 가지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매뉴얼에나 어울리는 것이다. 현재 환경이나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으며, 체계와도 연결되지 않는 죽어있는 매뉴얼이다. 조직은 그 매뉴얼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며, 당연히 그 매뉴얼에 기반 해 아무 훈련도 해 보지 못한 경우가 그런 경우다.

반대로 매뉴얼이 최신 환경과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현 체계와도 적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라도, 이전 위기관리로 얻은 개선 사항이나 반면교사 포인트들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훌륭한 매뉴얼로 보기는 어렵다. 매번 비정기적으로 새롭게 표지를 바꾸고, 전체 내용을 바꾸고, 아름답게 매뉴얼을 꾸미는 관행은 다시 생각해 보자. 감사에 대비 해 매뉴얼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두는 개념도 다시 돌아보자. 구닥다리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매뉴얼을 관리하고 운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구닥다리라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내용뿐이다. 그래서 문제다?

이는 분명하게 비판자들이 위기관리 매뉴얼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혼동하기 때문에 나오는 비판이다. 물론 일부 매뉴얼에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프로세스와 방식들이 과도하게 자세히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그 매뉴얼 한 부분이 위기관리 매뉴얼 전반을 대표한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실무자 차원에서는 위기관리 매뉴얼과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일단 정확하게 분리하고, 병행관리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 속에는 제3자들이 민감하게 해석할 여지의 내용은 절대 담아서는 안 된다. 위기관리 매뉴얼이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 자체가 또 다른 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언론은 위기관리 매뉴얼 보다는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에 보다 큰 관심을 보인다. 위기 시에 정부나 기관, 기업이 어떻게 언론과 여론을 ‘마사지’ 하려고 하는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알러지를 일으킨다. 정치적으로 반대세력을 견제하려는 측에서도 민감한 매뉴얼의 내용은 비판을 위한 호재가 된다. 일단 의사결정자와 실무자 차원에서 다각적 검토를 통해 매뉴얼 상 문제 요소는 찾아낼 필요가 있다. 그 후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이 어떻게 위기관리 매뉴얼과 다른가를 설명하면 된다.

여섯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 속 대응 단계와 컨트롤 타워 지정이 엉망이다. 그래서 문제다?

대응 단계와 컨트롤 타워의 지정 또한 매뉴얼에서 하나의 기준과 원칙을 적용해 서술하고 있으면 충분하다. 변화하는 세부 상황에 따라 단계를 지정하는 타이밍이나 주체 그리고 동기의 결정은 의사결정그룹에 일임하는 것이 맞다. 컨트롤타워의 지정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매뉴얼에 서술해 놓은 기준이나 원칙에 크게 반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대응 단계나 컨트롤 타워 설정이라면 문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위기관리의 책임을 맡은 위기관리 주체가 그러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일부러 행할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사후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위기관리에서도 당시 의사결정 주체들은 최대한 위기관리 성공을 위한 의사결정을 했었다고 본다. 그 결정 기반이 되는 경험이나 전문성, 협력체계, 실행의 존재 여부에는 일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의사결정 자체가 완전하게 매뉴얼에 반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음모론은 제외하고 생각하자)

현실적으로 대응 단계와 컨트롤 타워 지정 문제는 위기 시에 처음 드러나서는 안 된다. 평시 매뉴얼에 따른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매뉴얼 상 대응단계나 컨트롤타워 설정의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개선해 나갔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위기 시 치명적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평시 시뮬레이션을 통한 매뉴얼의 개선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매뉴얼 보다는 그것을 관리 개선하는 사람들이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 비판: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정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의사결정과 실행 주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가이드하고 통제한다면 실제로 위기관리가 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시종일관 매뉴얼에 따라서만 움직여야 하고, 한치의 어긋남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정부기관의 매뉴얼은 완벽해 질 수가 없다. 일반인의 생각처럼 매뉴얼이 세세하고 구체적이고 완전할수록 위기관리를 실제 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입지와 활동반경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사후 위기대응에 대한 책임과 적절성 검증에 있어도 실무자의 부담은 지나치게 커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부 위기관리 매뉴얼은 적절한 선에서 관리되게 마련이다. 이 또한 소극적인 의미의 책임관리인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위기관리 매뉴얼에서 정한 ‘방향성’을 얼마나 준수했는가 하는 점이다. 매뉴얼의 세부 프로세스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 만약 매뉴얼에서 제시 된 세부 프로세스가 현 상황에 적절하지 않은 것이라면, 의사결정그룹에 의해 다른 프로세스에 대한 대체 준수 지시가 있어야 맞다. 매뉴얼은 방향성에 대한 것이며, 구체적인 실행은 사람에 의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양한 위기관리 매뉴얼에 관한 비판과 논란에 있어 공통점은 사람이다. 매뉴얼을 만들고, 검증하고, 업데이트해 관리하고, 실제 운용 하고, 매뉴얼을 넘는 상황과 변수에까지 대응하는 모든 주체는 바로 사람이다. 매뉴얼이 위기관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위기를 관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위기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그 원인은 대부분 사람 때문이지, 매뉴얼 때문은 아니다.

국가적 재난 사태 극복을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협조와 정부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이 된다. 국민으로부터의 이러한 지원 없이는 정부의 어떤 훌륭한 위기관리 매뉴얼이나 컨트롤 타워도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실제 효력을 발휘하기도 어렵다. 이번 코로나 19 위기관리에서는 이런 국민들로부터의 위기관리 자산이 상당한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이 큰 교훈일 것이다. 이렇듯 위기관리는 사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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