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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話術’은 카멜레온?

‘정치인 話術’은 카멜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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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話術’은 카멜레온?
 
 
 [커버스토리-정치인들의 화술]
때로는 禍가 되고… 때로는 和도 되고…

정치인과 말(言)은 뗄래야 뗄 수 없다.

정치적 설득을 위해 말이 필수적이고, 말의 영향력은 정치인의 위상을 정하는 잣대가 된다.

오죽하면 ‘의회(parliament)’의 어원이 ‘말하다’는 뜻의 ‘parley’일까. 말이 정치의 수단임은 운명같은 것이니, 선용되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고서(古書)는 ‘입은 화를 불러들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口是入禍門 舌是斬身刀)이라고 경계한다.

정책과 새로운 비전에 대한 설득에 활용되어야 할 말이 요즘 춤을 춘다.

독설은 비수(刀)가 되어 정적의 가슴을 겨냥하고, 국민을 화(禍)에 빠뜨리는 혹세무민의 흉기가 되고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요즘들어 더 한 것 같다.

승자만이 모든것을 가져가는 대선의 해라서 더욱 그러하다.

1980~1990년대식 여유와 우회적 화법이라는 ‘여백의미’ 는 사라진 듯 하다.

경쟁 정당를 상대할때 보다 더욱 치열했던 올해 한나라당 경선 당시 설전을 보자. 이명박 후보의 재산문제가 불거지자 박근혜 후보측은 “범죄자는 대선후보가 될수없다”고 했고, 이 후보측은 “나를 끌어내리려고 세상이 날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후보측이 박 후보와 C목사 간 커넥션과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루머를 수면위에 올리자, 박후보는 “한탄스런일”이라면서 “애를 데려와도 좋다.

DNA검사를 해주겠다”며 노기를 씻지 못했다.

과거에는 이렇지는 않았다.

한국정치사에서 화술의 대표주자는 3김, 그 중에서도 김종필 전 총리(JP)이다.

JP는 1964년 ‘6.3사태’의 희생양이 되자 당의장직을 사임하고 은신성 외유길에 오르면서 섭섭한 심경을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말로 애써 감췄다.

1980년 봄 정치활동 금지라는 위기상황에서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다)”이라며 달관하듯 말했다.

이 말은 탄핵소추로 대통령직무가 정지됐던 2004년 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주변의 풍경에 자신을 감정을 이입할때 활용하기도 했다.

JP는 1995년 김영삼 당시 대통령(YS)과 사이가 벌어져 민자당 탈당을 결심할 무렵에는 “토사구팽(兎死狗烹:토끼를 사냥하고 난뒤 사냥개를 삶는다)”는 말로 김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고 1998년 ‘몽니’(권리주장을 위해 심술을 부림)가 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토사구팽’ 상황의 가해자들은 흔히 ‘어쩔수 없이 충복을 제거한다’는 뜻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로 맞섰다.

읍참마속이 토사구팽의 반의어가 돼 버리는 ‘왜곡’은 정치판이기에 가능했던 현상이다.

하지만 JP 역시 공격을 당하면 직설적 표현도 동원했다.

1996년 총선때 김윤환 당시 신한국당 대표를 겨냥, ‘TK 이완용’이라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근대화를 위해 자생력을 키우자는 취지의 ‘자조정신’을 강조했고, YS는 ‘거리낌 없이 큰 길을 걷는다’는 뜻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을, DJ는 ‘대중경제학’의 근간이 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했다.

1990년대에도 서슬퍼런 공방은 심심찮게 이어졌다.

1992년 총선당시 민주당 정상용 후보는 “5,6공은 걸레정권이고 6공의 실적은 날치기,들치기 등 치기배의 대량양산 밖에 없다”고 했다.

김제지역구 민주당 최락도 후보는 “미우나 고우나 똘똘 뭉쳐 전라도 농민의 한을 풀도록 몰표를 달라”고 호소했고, 그해 대선에서 부산 초원복집에 모인 부산지역 기관장들은 “YS가 대통령 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영도다리에 빠져 죽어야 한다”고 말해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비난의 과녁이 됐다.

1996년 총선에서 민주당 김홍신 선대위대변인은 “3김씨는 씨없는 수박으로 씨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한다”고 하더니 1998년 지방선거에서는 DJ를 향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막음을 해야한다”를 독설로 유명하다.

가까운 지인은 그를 보건복지분야 정책통으로 알지만, 대다수 국민은 ‘독설가’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1997년 대선정국에서의 공방은 요즘처럼 서슬 퍼렇지는 않았다.

이인제 후보가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오자 DJ는 “나이를 갖고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반박한뒤 “우리가 집권하면 ‘고려장’은 없을 것”이라며 이인제 후보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법대로’라는 닉네임의 이회창 후보는 아들 현역미필로 구설에 오르자, “송구스럽다.

하지만 법적으로 하자는 없다”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말았다.

사실이라도 사실임을 고집하는 자세 역시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noblesse oblige)’에 어긋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직설적 표현은 2002년 어느정도 예견됐다.

그는 대선을 반년가량 앞두고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후 ‘사방에서 구시대적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뜻의 ‘사면구가(四面舊歌)’라는 말을 썼다.

대미(對美)인식, DJ와의 관계, 언론관, 분배론 등에 대한 소신을 거침없이 밝히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과연 노 대통령은 취임후 특유의 직설적 화법으로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는 “대통령직 못해먹겠다”(2003년), “(행정수도 위헌결정시 등장한 ‘관습헌법’은) 처음 들어보는 이론” (2004년),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2005년), “그놈의 헌법”, “~깜도 안된다” (2007년)는 말을 이어갔다.

노태우 전대통령은 2003년 12월 노무현정권에 대해 “행동은 없고 말만 있는 ‘나토(노 액션 토크 온리) 정권’이라는 농담이 돌고 있다”고 꼬집었다.

2004년 천정배 의원은 “열린우리당은 전형적인 ‘노빠’당”이라고 꼬집었다가 노 대통령과 등지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가 동지를 적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항간의 소문을 인용해 노 대통령을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라고 비꼬았고,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차기 대통령은 대졸자여야 한다”고 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노대통령은 2004년에는 청와대 직원들에게 ‘우공이산(愚公移山: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이라는 말로 언젠가는 좋은 평가가 있을 것이니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일해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강재섭 대표는 지난해 7월 ‘수해 골프’등 한나라당내 잇단 구설을 사죄하면서 “여리박빙(如履薄氷:살얼음을 딛는 것 같다)이며, 일일삼성(一日三省:하루 세번 반성)하고 단사표음(簞食瓢飮:대나무통 밥과 표주박의 물, 소박한 생활) 할 것”을 다짐했다.

정치판에 여유ㆍ여백의 미가 넘쳐나는 은유와 국민을 위한 정책비전을 담은 언사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은 과연 올까. 한국 정치에서 양언(良言)이 악언(惡言)을 구축(驅逐:내쫓음)하는 일은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에 달렸다.

함영훈ㆍ김형곤ㆍ이태경 기자( abc@heraldm.com)

2007.09.15

 

by 우마미 | 2007/09/15 15:34 | Crisis & Com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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