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기고문]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이해한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어린 아이들은 종종 사물을 마주할 때 마치 그것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심지어 인형, 장난감, 의자, 선풍기 등과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도 있다. 각종 동화나 애니메이션에서도 사람의 모습으로 말과 행동을 하는 동물과 사물이 인기 많은 주인공이다. 심리적으로 사물을 인간화 하여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람과 기업의 관계도 그렇다. 사람들이 기업을 인간처럼 이해하고 관계 맺으려 하기 이전에, 오래전부터 기업은 사람들 머릿속에 자신이 자리잡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기업 광고에서 유명 모델을 내세우거나, 사람을 로고로 만들거나, 이미지 좋은 사람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오너나 대표이사가 다양한 스타일로 대중에게 직접 나서기도 한다. 우리가 다양한 기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여러 인간의 모습이 그 때문이다.
기업 자체로는 인간의 모습을 띠지 않지만, 사람들이 기업을 생각할 때에는 특정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린다. 어떤 기업은 세련되고 스마트한 청년의 모습이다. 어떤 기업은 우직하고 성실한 아저씨의 모습이다. 애정 있고 상냥한 엄마의 모습도 있다. 어떤 기업은 이국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의 셀럽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기업을 인간으로 받아들여 이해하고, 관계를 그린다.
기업 위기관리 관점에서 이 기업의 인간적 면모는 아주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기반이 된다. 평시와 위기 시 일관성이라는 기준을 두고 볼 때 기존 보유하던 인간성 자산을 위기 시 얼마나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에 위기관리 성패가 갈린다. 이런 시각을 가지고, 위기 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한 기업들의 주된 인간적 유형을 살펴본다.
그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평소 엄청난 광고 및 홍보 물량으로 사람들과 꾸준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기업이 있다. TV나 온라인 상에서 끊임없이 그 기업의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찬사가 메아리 친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 기업을 아주 멋지고 좋은 친구로 생각하게 되었다. 항상 그 기업과 관련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찾아다니고, 그들이 베푸는 여러 사회활동과 행사에도 흔쾌하게 참석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과 그 기업은 막연한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회사 제품에서 엄청난 문제가 발견되었다. 소비자 일부는 실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언론과 규제기관이 나서면서 금세 북새통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그 친구(기업)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하지만, 그 기업은 그 것은 문제가 아니라 관행이었을 뿐이며 심지어 치명적인 것도 아니라 이야기한다. 일부 피해 입은 소비자에게는 보상하겠지만, 너무 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 같이 만들지 말라 소리쳤다.
그 기업을 오랜 친구로 여기던 사람들은 그 기업에게서 낯섦을 느꼈다. 어 저 친구가 왜 저러지? 저런 친구가 아닌데 이상하네? 친구가 왜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할까? 사람들은 그 친구를 향해 애석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후 어느 날 그 기업이 다시 등장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역시 최고의 친구라 이야기하며 다가온다.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같이 다시 더 좋은 친구가 되자 손을 내민다. 더욱 다양한 행사에 초대하고, 사회 봉사 활동에 나서는 자신에게 박수 처달라고 요청한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고민에 빠진다. 그때 그 친구는 어디로 간 걸까?
너는 나를 알지만 나는 너를 모른다
철수에게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좋아하는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원하고 주식을 사서 주주로서 자랑스러움 까지 느끼고 있다. 그 기업의 여러 온라인 소셜미디어 계정을 팔로우 하고 있으며, 종종 댓글을 달아 칭찬과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기업의 여러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우호적 평가를 하기도 한다. 때때로 그 회사의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다닐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수는 그 기업 제품을 사용하다가 큰 문제를 발견했다. 당연히 이 문제는 오랜 친구 (기업)가 나서서 깔끔하게 해결해 주겠지 라는 기대가 있었다. 소비자만족센터에 전화를 걸고, 매장에 나가 상담까지 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당신이 제품 관리를 잘 못한 것일 뿐, 우리에게 책임도 없고,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였다. 일부 직원은 귀찮다는 듯 철수에게 블랙 컨슈머라며 비아냥 거리기까지 했다.
철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를 좋아하고 응원했는데, 이럴 수 있어?’ 화가 나고 눈물까지 난다. ‘누가 당신 보고 우리를 좋아하라고 했나? 그냥 당신이 우리를 짝사랑했던 것 뿐이잖아. 심지어 우린 당신을 잘 몰라. 알 필요도 없고. 바보 같은 녀석’ 그 기업은 이렇게 철수와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는 것 같다. 철수는 생각한다. 이게 내가 좋아했던 그 친구가 진짜 맞나?
나에 대해 잘 모르면서
어떤 기업이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문제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나온다. 보도 내용을 보니 정말 어처구니없고, 그에 대해 기업이 해명하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이 기업을 이전에 몰랐었고 이 부정적 뉴스를 통해서야 처음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그 기업에 대해 악평을 하고 분노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기업은 억울했다. 자신들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앞뒤와 전후좌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미웠다. 우리에 대해 잘 모르면서 욕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에게 왜 저렇게까지 악의를 품으며 공격할까? 우리가 자기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식으로 우리를 힘들게 할까? 하며 서러움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자신의 아주 친한 친구가 비난 받을 상황이 되면, 아예 입을 다문다. 그 친구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까지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모두 욕을 하는 상황에서 나까지 나서서 내 친한 친구에게 욕을 퍼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위와 같이 서러움을 느끼는 그 기업은 평소에 사람들과 친한 친구가 되려는 노력을 좀 더 했었어야 했다. 낯선 기업은 그 자체가 취약함이다.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는 항상 색안경을 끼게 된다.
너희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어?
온라인에서 팔로워만 수십만명 거느리고 있는 기업이 있다. 매일 매시간 사람들과 대화하며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반응을 보면 대부분 엄지척을 들어 보이며 기업에게 좋은 친구임을 반복해 강조했다. 기업 경영진은 이정도 사랑받는 기업이라면 어떤 사업이라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크게 문제가 터졌다. 여기저기에서 화살이 날라와 꽂혔다. 기업은 여러 다양한 메시지로 해명하고, 예전처럼 대화를 계속하려 하는데, 이전과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그렇게 많던 엄지척이 하루 아침에 수많은 나빠요와 싫어요로 대체되어 버렸다. 경영진은 물론 임직원들까지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나쁜 놈도 이런 나쁜 놈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가 있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가 당신들에게 얼마나 잘 했는데? 이런 불만이 기업 경영진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유형은 평시 자사에게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진정한 우정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상호 관계가 그런 우정에 까지는 이르지 못한 의례적/이익적 관계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온라인을 중심으로 하는 상호 관계 때문에 이런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는 기업들이 늘어간다.
너희가 뭔 데?
평소 광고나 홍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기업이 있다. 단순히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경영진은 대부분 사람들과 여론에 대하여 부정적인 개념까지 가지고 있다. 특히 언론이나 온라인을 통해 떠드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멸했다. 언론은 썩었고, 온라인은 쓰레기 통이라 이야기했다. 평소에도 일부 불만이나 비판은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가니까.
사람들은 그 기업을 상당히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인간으로 인식했다. 때로는 무례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태도에 실망했다. 딱히 그 기업과 친해지고 싶지 않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마음도 별로 없었다. 그냥 저 기업은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고 지내고 있었다. 기분 나빠 관심두기 싫은 인간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기업에 큰 문제가 발생됐다. 수사기관이 그 기업을 압수수색하고, 오너와 대표이사를 줄줄이 소환 했다. 언론과 온라인도 당연히 주목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기분 나쁨에 관심을 끊고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씩 그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내 그 여론은 엄청난 비판과 비난 그리고 공격으로 이어지고, 일부는 그 공격성을 행동으로 까지 표현했다.
그 기업은 여러 조언을 들어 오너가 직접 나와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겸허하게 책임 지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 기업을 향한 화살은 줄어들지 않았다. 예전 사례와 다른 사례들이 줄줄이 따라 나와 더 다양한 비판이 창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한번 이럴 때가 올 것이라며 기다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무례하게 우리를 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 기업은 이러게 생각했다. ‘올 게 왔다’
서두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사람은 기업을 생명이 있는 인간으로 바라본다. 별 관심이나 관계 맺기의 기회가 없던 기업을 볼 때에는 그냥 낯설거나 한 두 번 본 인간으로만 이해한다. 알고는 있지만 친하지는 않은 그런 존재다. 일부 기업은 운 좋게 그 보다 사람들에게 좀더 관심과 사랑을 받는 친구로 여겨 지기도 한다. 그런 관계가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강화되면 사람들은 일부 기업을 아주 친한 친구, 막역한 사이로 인식하기 까지 한다.
기업에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 기업에게 ‘인간화’ 전략을 종종 조언한다. 해당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었거나, 고통을 받았거나, 분노를 느끼는 여러 사람들과 먼저 공감해 보라 이야기한다. 위기 시 기업이 주변 사람들을 오래된 친구로 보는지, 그냥 아는 친구로만 바라보는지, 별로 친하지 않은 인간으로 바라보는지, 전혀 낯설어 하는지는 해당 기업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공감은 상당히 유효한 전략이 된다.
당연히 사람들은 기업이 자신을 좋은 친구로 여길 때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에 더해 자신들이 그 기업을 좋은 친구로 여기고 있었다면 더욱 더 이상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위기관리에 실패할 가능성은 대폭 줄어들고, 대신 이해와 장상참작의 분위기가 생겨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기업이 제대로 인간화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기업은 좀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기업은 위기 시 어떤 인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떻게 해야 좋은 친구로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좋다.
자사의 이익과 손해를 따지기 전에, 친구들과의 관계를 먼저 따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래된 좋은 친구는 좀처럼 배반하지 않는다. 모르면서 친구를 욕하지도 않는다. 친구가 어려울 때에는 도움의 손길도 내민다. 좋은 친구가 많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좋은 친구가 많은 기업은 성공한다. 그러니 위기일 수록 그 친구들과 더 좋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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