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기업이나 조직의 위기관리에 있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핵심 중 핵심이 되고 있다. 그 전략적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대변인(spokesperson)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청와대 대변인이나 정당의 대변인처럼 공기관을 대변하는 사람들만 대변인이 아니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대외 언론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 그룹을 상대하며, 그들을 대상으로 공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임무가 맡겨진 자들을 모두 대변인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는 홍보실과 그 홍보실에서 주로 언론 커뮤니케이션을 상시적으로 진행하는 사람이 대변인이 된다. 위기관리 매뉴얼에서는 위기 시 회사를 대변해야 할 대변인 직위와 대상을 지정하고도 있다. 더불어 그 대변인이 평시와 위기 시 따라야 하는 원칙들도 적시하고 있다.
이에 기업과 조직을 살리는 대변인들을 위한 중요한 원칙들을 한번 정리 해 본다. 부디 대변인이 오히려 설화(舌禍)를 만들거나, 불필요한 갈등의 주체가 되거나, 부적절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제대로 된 대변인의 역할을 방기하는 모순이 없기를 바란다.
미국의 한 퇴직 기자가 기업 대변인의 자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을 무는 강아지는 많지 않다. 그러나 우편배달부는 항상 강아지들을 조심하며 다닌다.” 여기에서 강아지는 곧 기자를 의미한다. 자사를 직접적으로 해하는 질문을 하거나, 공격적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대변인(우편배달부)은 기자들의 질문이나 취재에 대응하는 데 있어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교훈이다.
이미 150여년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이렇게 말했었다. “나의 발언은 낱낱이 인쇄됩니다. 내가 어쩌다 실언이라도 하면 그것은 나 자신과 여러분 그리고 이 나라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칩니다. 때문에 나는 나의 실수가 최소한에 머무르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굳이 대통령 뿐 아니라 조직의 리더 또는 대변인들도 언론을 대할 때 필히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대변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첫째, 대변인은 내외부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사람이다.
평시나 위기 발생 시 내외부 이해관계자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모든 임직원은 스스로 이런 자문(自問)을 해 보아야 한다. “내가 공식적으로 이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도록 허락되어 있는 자인가?” 만약 그렇게 공식적으로 허락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커뮤니케이션 해서는 안된다.
대변인은 공적인 임무다. 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임무가 아닌 자가 함부로 커뮤니케이션 해서 대변인을 사칭해서는 안된다. 이는 모든 임직원은 물론 대표이사 또한 물론이다. 현 상황에서 내 자신이 회사를 대변하여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가? 해야만 하는가? 항상 답변전에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둘째, 대변인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자신이 대변하는 기업이나 조직의 입장이 가끔은 자신의 개인적 입장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다름은 대변인 개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기업이나 조직을 대변하는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더욱 더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해야 한다.
반대로 자신의 기업이나 조직의 입장을 대변인이 과도하게 지지하고 감정 이입 해 열정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대변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공적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 대상인 이해관계자의 관점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된다. 일방적인 자랑이나 개인적 감동을 전달하는 대변인이 되어서도 안된다.
셋째, 대변인이 단순한 스피커(speaker)는 아니다.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기계가 스피커다. 대변인이라는 영어 표현으로 ‘Spokesperson’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가 있다. 사람(Person)이 붙는 이유를 생각 해 보자. 단순히 기계적인 신호를 음성으로 표현하는 역할이 아니라는 의미다.
공적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들이 취합되고 정리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많은 사람 들과의 협업을 기반으로 한 여러 사전 정리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변인은 충실한 취재자이어야 하고, 조정자여야 하며, 전략가이어야 한다. 대변인의 메시지 하나 하나는 그 역할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넷째, 대변인은 조직이 인간화 된 형태다
기자들을 비롯해 많은 이해관계자들은 대변인을 바라보며 그 기업이나 조직을 느낀다. 대변인의 생김새, 행동방식, 목소리, 답변 자세, 메시지, 논리, 신뢰감, 인간미 등 여러 인간적 특성이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대변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뢰’에 대한 가치는 수 백 번이라도 강조해야 하다. 대변인이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나 조직이 신뢰를 잃는 것이다. 대변인이 공격적이라는 것은 해당 기업이나 조직이 기자들을 공격하는 셈이다. 대변인이 전략적이지 못하고 아마추어같이 행동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나 조직이 형편없다는 증표다. 대변인은 스스로 자신을 관리해야 한다.
다섯 번째, 대변인은 기업이나 조직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단순히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대변인이 종종 기자들과 질의 응답을 하며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대변인은 주로 답변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언론과의 질의 응답에 있어 기자의 질문 목적은 무엇인가?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질문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다면 대변인은 언론과의 질의응답에서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가? 그렇다. 좋은 기사가 나 올 수 있도록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단순 답변이나 질문에 반응하는 행위로서의 답변이 아니다. 여기에서 물론 기자가 바라는 ‘좋은 기사’는 대변인이 생각하는 ‘좋은 기사’가 아닐 수도 있다. 그 다름 때문에 대변인은 전략화라는 과정을 거쳐 메시지를 정제한다. 그렇게 정제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여섯 번째, 성공적인 대변인은 만들어 진다.
현장에서 기업이나 조직을 대변하는 많은 대변인들을 둘러보자. 그들 중 태어날 때부터 대변인이었던 사람은 없다. 그리고 한두 해 경험을 가지고 대변인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타고난 사람도 없다. 훌륭한 대변인은 장기간 끊임없는 경험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전세계 많은 대변인들은 항상 스스로를 관리하고, 훈련한다. 반복해 연습하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산다. 메시지의 중요함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다. 함부로 우쭐해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유없이 비굴해지지도 않는다. 많은 대변인의 특성은 부단한 후천적 노력에 의한 것들이다.
이상과 같은 원칙이 훌륭한 대변인을 위한 것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단순한 것 같은 이런 원칙들이 실제 현장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는 가는 또 다른 문제다. 대변인이 대변인 답지 못한 모습으로 비추어 지거나, 대변인으로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에서 가장 많이 목격되는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창구일원화가 되지 않는 기업이나 조직이 많다.
기자들은 안다. 대변인에게 질문해도 그들이 원하는 답이 나올 확률이 적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들은 대변인이 아닌 내부 관계자들을 직접 취재한다. 문제는 여기부터 다. 분명히 사내 규정에는 ‘창구일원화’라는 문구가 써 있다. 기자를 비롯한 외부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판단하기 이전에 대변인을 통해 창구를 일원화하라는 아주 간단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임직원들은 그 원칙을 망각한다. 일부는 원칙을 강조하다가 결국 그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다. 기자의 기술적 질문에 위험한 답변으로 호응한다. 대부분 사후에 후회하고, 자신에게 로 향한 책임 추궁을 억울 해 한다. 자신의 전략적이지 못했던 답변으로 회사와 조직이 망가졌다는 지적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은 계속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대변인의 역할은 점점 모호해진다.
둘째, 스스로 일방적 커뮤니케이터가 되고자 하는 대변인이 많다.
대변인 개인의 생각 뿐만 아니다. 일부 VIP는 대변인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어디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지 항상 기억하십시오” 회사와 조직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라는 압력이다. 물론 반조직적인 대변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존재해서도 안된다. 문제는 대변인의 어떤 자세가 조직을 위하는 것이고, 어떤 자세가 조직을 위하지 않는 것이냐 하는 점이다.
대변인은 일방적 커뮤니케이터로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흔히 대변인이 홍보(selling)를 한다는 지적을 한다. 입 발린 수사학을 기반으로 말장난만 한다고도 한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기자들과 흔히 언쟁을 벌이고 하소연을 하는 대변인도 일방적인 생각에 편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변인은 먼저 공감하는 자가 되려 노력해야 한다. 그 공감을 기반으로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꾸며 전달하려 노력하는 중간자이어야 한다. 대시 한번 생각 해 보자.
셋째, 대변인이 내용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대변인이 사전에 먼저 취재를 해야 하고, 조정을 해야 하고, 메시지를 정제해야 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들다. 힘들어 한다. 개인이 홀로 하는 작업이 아니라 서다. 문제가 있으면 그와 관련된 많은 부서들을 모아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거의 불가능하다.
일방적 편향적인 정보들만 사내 도처에 깔려 있다. 대변인에게 전달되는 내부 정보는 상당부분 진짜 팩트가 아닌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정보는 내부적으로 디자인된 정보뿐이다. 상호검증이나 외부 검증을 하려 해도 대변인의 역량에 한계가 있다. 대변인이 정확하게 모른 채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흔하다. 당연히 백전불태 (百戰不殆)해야 하는데, 대신 백전백태(百戰百殆)한다. 불안 불안하다.
넷째, 신뢰받지 못하는 대변인이 있다.
기자들이 대변인을 두고 하는 말은 두 종류가 있는 듯하다. “O상무는 대단한 사람이야. 존경할 만 해”와 같은 평을 받는 대변인이 있는 반면, “O상무는 사람만 좋아…” 같은 평을 받는 대변인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기자들이 그렇게 신뢰할 만하다 기보다는 그냥 함께 밥 먹으며 이야기하고, 술 한잔 같이 하고, 골프 한번 치기 좋다는 경우다.
그 외에 그 대변인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재차 검증이 필요할 때도 있고, 바로 받아 기사화하기에는 종종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기자들이 가진다. 가끔은 그 분이 내용을 잘 알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사람은 좋아 그리 부정적으로 기사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제대로 된 메시지나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그 대변인을 안타까워한다.
다섯 번째, 의미 있는 메시지가 없는 대변인이 있다.
답변도 어쩔 때는 하지 않는다. 답변을 하더라도 빙빙 돌려 가면서 기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어디에서 배운 기술인지 모르지만, 알맹이 없는 답변을 반복하는 것을 자신의 필살기라 생각하는 대변인도 있다. 기자들과 거리를 두는 것도 모자라는지, 대변인이 상당히 딱딱하고 권위적이다.
인간미는 없어도 제대로 된 정보를 메시지에 담아서 회사의 입장을 대변 해 주면 좋겠는데, 그 걸 못하는 대변인이 있다. 그 대변인은 스스로 ‘전략적으로 하지 않을 뿐’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왜 대변인이라는 자리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창구를 일원화하자는 내부 원칙이 창구를 일원화 해 ‘닫아 걸자’는 담합의 의미가 아니라면 개선의 여지가 있다.
여섯 번째, 훈련받지 않는 대변인이 있다.
대신에 이런 이야기는 하는 대변인이 있다. “저희 회사 대표이사와 임원들을 좀 교육해야 합니다. 기자들에게 함부로 이야기하고, 문제를 만들어 내서 제가 죽겠습니다. 기자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좀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도 선진적이긴 하다.
그러나, 대변인은 스스로도 계속 훈련해야 한다. 부족하다면 계속 시뮬레이션 하며 연습해야 한다. 자신 스스로 대변인 훈련이나 사내 미디어트레이닝에서 열외 하면 안 된다. 향후 대변인 역할을 물려줄 직원이 있다면 그 또한 지속적으로 훈련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에만 의지해 스트리트 파이터 같이 성장한 대변인도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지속해서 훈련하고 연습하는 대변인을 따라갈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훌륭한 대변인을 위한 원칙들이 자주 위협받는다. 단순하고 쉬워 보여도 현장에서 제대로 원칙이 구현되지 않는다. 기업 경영진이 바뀌는 것처럼 대변인도 계속해서 바뀌어 간다. 기업이나 조직을 바라보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이해관계자들은 그대로인데, 대변인이 계속해서 바뀐다. 당연히 메시지가 들쭉날쭉하고, 개인의 역량에 따라 결과들이 일희일비 한다. 전략적 기업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얼마전 이와 비슷한 상황에 고통받던 이낙연 총리가 장관들을 대상으로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기자들로부터) 어떤 질문이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은 사회적 감수성으로 당연히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하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아야 됩니다. 그런 준비가 갖춰져야 기자들에게 나설 수 있습니다. 덤벙덤벙 나섰다가는 완전히 망하는 것입니다.”
이는 딱히 장관들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대변인들이 필히 반복해 기억해야 하는 조언이다. 사회적 감수성, 본능, 준비라는 이런 가치는 아무리 반복해 강조해도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평생 기자와 앵커를 하며 인생을 보낸 미국의 유명 언론인 샘 도널슨(Sam Donaldson)의 조언으로 마무리한다. 모든 대변인들에게 주는 그의 소중한 조언이다. “항상 기자들의 질문보다는 그에 대한 답변이 문제를 일으키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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