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미국의 유명 미식축구선수인 챨리 배치(Charlie Batch)는 자신의 실적에 대한 비결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Proper preparation prevents poor performance (올바른 준비는 부실한 성과를 예방합니다)” 이 모토는 다른 여러 유명 스포츠맨들에 의해서도 여러 번 강조된 성공 비결이다.
위기관리에 있어서도 이 준비(preparation)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준비하지 않아 실패한 위기관리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준비하지 않는 이상한 선택을 하면서 위기를 맞이 한다. 말 그대로 알면서도 당하는 허망함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올바르게 준비하지 못할까? 왜 그럴까? 실제 위기를 맞은 기업 내부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그 이유들을 꼽아 보자.
첫째 이유. 다가오는 위기에 대해 감지는 했지만, 이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 놓기가 힘든 경우다. 심지어 사내에 ‘위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기업 문화도 존재하는 곳이 있다. 대표이사를 비롯해 고위 임원들은 자신들의 리더십이 ‘위기’와 연결되는 것에 심히 못 마땅해 한다. 일선에서 ‘분명히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감이 있어도 쉽사리 이에 대해 전사적 차원의 준비 의견을 내지 못하는 기업 문화가 성공적 준비에 걸림돌이라는 이야기다.
두 번째 이유. 마땅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경우다. 기업 위기의 종류들이 여럿 있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 심각한 위기로 꼽히는 유형들에는 사실 해법이 없는 경우가 많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예 없거나, 위기 발생을 전제로 준비 한다 해도 한계가 너무 많은 경우들도 있다. 위기의 속성이 자사의 분명한 책임이라던가, 어느 정도 의도를 가지고 발생시킨 유형이라던가, 위법적인 행위였거나 하는 것들일 때는 준비 자체가 별반 그 의미를 잃게 되니 문제다.
세 번째 이유. 준비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막상 준비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다. 여러 전문가들이 미리 대비하라고 조언은 많이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리스트를 내놓거나, 가이드라인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준비 자체가 난감한 경우다. 위기관리를 해야 하는 일선 직원들은 물론 대부분의 임원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경험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쉽사리 믿을 만한 전문가 그룹과 협업 하기도 만만치 않고 시간은 흐르는데 딱히 방법이 없다.
네 번째 이유. 준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준비의 정의가 서로 다른 경우다. 다가오는 위기를 감지했다면, 우선은 그 발생을 방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들이 그 방지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방지책은 내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발생 이후에 미봉책만을 ‘준비’로 정의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준비 내용은 ‘기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부정적 기자들을 어떻게 집중 관리할 것인가?’ ‘온라인에서의 예상되는 문제들을 어떻게 희석하거나 밀어낼 것인가?’등과 같은 책략들에 집중 되어 있다.
다섯 번째 이유. 준비 하긴 하는데 사내 각 부서들이 따로 따로 부서별 준비를 하는 경우다. 아예 준비가 없는 것 보다는 나은데, 실제 위기가 발생하면 부서간 협업이 힘들고, 준비된 대응들이 상충하여 문제를 더 키우는 경우들이다. 평소 사내에 존재하던 사일로(silo)가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누군가 그 사일로를 해체하고 각 부서들을 올바른 협업 체계로 지향시켜야 하는데 그런 리더십 조차 존재하지 않는 경우다.
이렇게 다양한 ‘올바른 준비’의 걸림돌들이 존재한다 해도 기업 실무자들은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준비하는 것이 맞다. 그러면 어떤 것들을 주로 준비해야 할까? 가시화 되는 기업 위기에 대한 중요한 준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준비. 위기관리 매뉴얼을 찾아 다시 공유하자. 위기관리 매뉴얼은 위기 시 대응 절차와 방식들을 잘 정리해 놓은 규정들이 들어 있다. 여기에서 정한 절차와 방식을 따라 위기관리를 제대로 실행하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추궁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도 있다. 사무실 책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위기관리 매뉴얼이라도 다시 찾아 먼지를 털어내 보자. 이를 일단 주요 인력들에게 공유해 놓자.
둘째 준비. 위기관리팀을 다시 지정해 보자. 어떤 인력들이 위기 발생 시 다 같이 힘을 모아야 하는지 미리 확인 해 보는 것이다. 운이 좋다면 대표이사가 담당 임원을 지정해 줄 수도 있다. 그 담당 임원을 중심으로 어떤 부서의 어떤 직원들로 위기관리팀을 구성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어 보자. 일단 만나 미팅을 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당부분 준비는 시작된 것이다.
셋째 준비. 다가오는 위기 유형을 잘 들여다 보고 필요한 위기관리 역량들을 위기관리팀의 기능과 연결 시켜 보자. 해당 위기가 일단 법적 이슈로 발아 된 것이라면, 가장 핵심적인 역량은 우선 법무팀과 로펌을 중심으로 개발되어야 맞다. 고객정보보안 이슈라면 정보보안 부서가, 안전사고문제라면 안전관리부서가, 제품품질 관련이라면 품질관련 부서가 그 기능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 각 위기유형에 따라 홍보부서와 법무부서, 대관부서, 재무부서 등이 지원 해야 하는 체계를 다듬어 준비하는 것이다.
넷째 준비. 핵심 이해관계자들을 사전과 사후에 집중 관리하자. 이 또한 위기유형과 관련되어 있다. 해당 위기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할 이해관계자가 어떤 그룹들인지 정확하게 분석해 놓자. 국회, 규제기관, 소비자, 직원과 가족, 피해자, 언론, NGO, 지역주민… 누가 핵심 이해관계자인지 미리 파악해 놓고, 가능한 사전과 사후에 관리할 수 있도록 접근 채널과 인력들을 준비해 보자.
다섯째 준비. 해당 위기에 대해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 팩을 준비해 보자. 홍보팀만을 위한 커뮤니케이션팩이면 안 된다. 홍보팀만 알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팩은 항상 취약하다. 개발은 홍보팀과 여러 관련 부서들이 함께 하고, 대표이사로부터 일선 직원들까지 공히 공유하고 이해되는 커뮤니케이션팩이어야 올바른 준비가 된다. 가능하다면 해당 커뮤니케이션 팩을 외부의 중립적인 전문가들에게도 검증 받아 보자. 또한 이를 기반으로 각 이해관계자별 대변인(창구) 역할을 할 핵심 인력들을 훈련해 놓자. 어떤 공격적인 질문과 논리적 공격을 받아도 준비된 메시지와 근거들을 자유자재로 제시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자.
여섯째 준비. 상황 모니터링 역량을 강화해 놓자. 미세하게 감지되는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즉각 공유 보고 될 수 있도록 감지 기능의 민감성을 극대화 해 놓자. 공유와 보고 라인에 병목이나 스크리닝이 끼지 않도록 하자. 앞의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에서 감지 기능을 통해 들어온 유의미한 상황변화를 놓치지 말고, 때가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개입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준비. 내부 인력들로 위기관리가 가능하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외부 조력 그룹들과 파트너십을 수립해 놓도록 하자. 보다 경험 많고, 제대로 위기를 관리해 본 많은 외부 기능들을 내부 위기관리팀과 통합해 놓으면 올바른 준비가 상당부분 완성된다. 이는 평소 고안되어야 하는 협업체계다. 위기관리는 기본적으로 단체전이다. 상당한 용병들이 포함된 단체전의 아트 그 자체다.
마지막 준비. 위기관리 예산을 감안해 놓자. 보험이나 특별예산을 고안해 놓도록 하자. 그 예산이 압도적이라면 위기관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 빠르게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원동력도 예산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예산 수준에서 우리가 책임 질 수 있겠다는 감이 있으면 빠르게 단호한 결심이 가능하다. 일선 위기관리 실무를 하는 직원들도 선제적으로 관리업무들을 실행하게 된다. 당연히 부실한 성과는 많은 부분 예방될 수 있다.
준비. 말은 쉽다. 하지만, 실제로 적절한 준비를 실행했던 기업들은 그리 많지 않다. 준비라는 의미의 실행이 분명 생각보다 어렵다는 의미다. 이 어려움을 우선 관리할 수 있어야 실제 위기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적절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당연히 부실한 성과가 눈에 뻔하게 된다. 성공을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 해내야 한다.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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