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기고문
[여의도칼럼]기업 위기 정면으로 승부하자
2013.09.12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
외국 기업과 국내 기업 간에는 분명한 다름이 있다. 기업 위기관리 측면에서도 다름이 존재한다. 해외와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위기 시 외국 기업은 내부에 집단 의사결정 체제가 가동된다. 물론 CEO가 리더십을 갖지만 각 부서가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위기관리위원회(crisis management committee)를 구성해 CEO를 지원하도록 매뉴얼에 명시되어 있다.
우리 기업들의 경우 위기관리위원회란 대부분 매뉴얼상에만 적시돼 있는 사문화된 조항이다. 그 명칭이나 개념도 미국식 위기관리 매뉴얼의 개념을 차용했기에 존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위기 시 의사결정 상당 부분을 오너와 CEO 개인에게 의지한다. 또한 그들 대부분은 공식적 집단 지원 체계에 의지하기보다는 사적이고 선별적인 루트에 귀를 기울인다.
오죽하면 “회의 시 직급과는 상관없이 눈을 감고 있는 분들이 실세”라는 농담이 돌곤 한다. 이는 권위주의적 위기관리 체계를 의미한다. 외국 기업들에게 ‘위기관리’란 CEO 중심의 전문 집단과 외부 이해관계자 그룹 간 ‘단체전’의 의미를 지닌다면, 한국 기업들은 오너나 CEO 개인이 외부 이해관계자 그룹과 맞서는 의미를 실질적으로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오너나 CEO가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같은 시각으로 위기를 바라보면 문제는 의외로 쉽고 빠르게 풀릴 수 있다. 반면 중요한 이해관계자들의 시각과 입장을 달리하면 해당 위기는 극도의 노이즈를 일으키며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납부 발표를 보면서 이 위기관리 체계가 우리 기업들과 어떤 다름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지난 16년간 전 전 대통령은 법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추징금을 이행하지 않고 시간을 끌어왔다. 기업으로 비교하자면 오너가 외부이해관계자들과 시각을 달리하면서 기업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기로 내부 입장을 정한 상황과 유사하다.
대신 주변 측근들은 이해관계자(정치권·검찰·언론·국민)들의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긴 시간을 관리해 왔던 것이다. 기업에서는 이를 위해 언론의 정당한 비판을 완화하고 막아내면서 오너나 CEO가 느끼는 이해관계자 압력에 대한 체감도를 최소화하는데 몰두한다. 아마 이런 대증적(對症的) 활동들이 전 전 대통령 주변에도 계속되었으리라 본다.
결국 세월이 흘러 대증적 치료의 약발이 다하면서 그간 불어난 이해관계자 압력이 봇물처럼 터져 이전 위기관리체계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강한 압력이 오너나 CEO의 피부에 와 닿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수습에 나선다. 그때도 기업들은 ‘(오너 또는 CEO의) 대승적 결단’이라 표명하며 상황을 합리화시킨다. 전 전 대통령도 마지막 선택으로 추징금 납부 의사를 밝히며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토록 위기관리 관점에서 우리 기업들과 전 전 대통령의 위기관리에는 유사점들이 많다. 둘 다 한국 조직의 권위주의적 특성과 의사결정 형태의 고질적 관행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전형적 위기관리 관행이 사회적으로 이해관계자들의 공격성을 극단화시킨다는 점이다.
“끝까지 무조건 밀어붙이지 않으면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이해관계자 마음속에 매번 각인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 시 대화로 해결할 기회도 사라지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문제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국민들의 마음에는 불신만 생긴다.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 기업이 위기를 숨기기 보다는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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